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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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음이 꽤 빠른 편이다

보폭도 크고 뛰듯이 걷는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기 힘든 편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은 걷기와 오래 달리기

단거리는 못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비교적 잘 하는 편이다

민첩성 보다는 지구력이 낫다고 할까...

 

언제부터인가 걷기가 좋아졌다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는 책도 있던데, 자동차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이 부족하다고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트레드밀을 뛰느니, 차라리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가는게 현명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운동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피트니스 클럽으로 간다...

왠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걷기와 더불어 트래킹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가장 좋은 독서법이란 생각이 든다

 

"걷기 예찬"은 상당히 현학적인 책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양하의 "신록 예찬"을 읽는 기분이다

걷기의 미학에 대한 온갖 사변적 생각을 늘어 놓아, 사색적이란 느낌은 들지만 실제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웰빙 열풍을 타고 걷기가 왜 몸에 좋은가를 역설하는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책들 보다는 훨씬 낫다

저자는 프랑스의 사회학과 교수라고 하는데, 직업에 딱 맞는 감상들을 풀어 놓는다

"이미지와 환상"에서 부어스틴은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여행 풍조를 한탄하는데, "걷기 예찬"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자주 등장한다

두 발로 걷는 것, 자동차를 버리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묘사한다

문득 한비야가 쓴 기행문이 생각난다

그녀 역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절대 자동차는 안 타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관광으로서의 여행도 좋아하지만, 시간만 허락한다면 두 발로 걷는 여행을 하고 싶다

 

책은 전체적으로 지루하다

인문학자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사변적인 생각들이 많아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많아 자동차를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생긴다

특히 파리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거니는 행복함이 기억에 남는다

확실히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 그 곳에 대한 감상은 표면적이기 마련이다

배낭 여행 갔을 때도 참 열심히 걸어다녔는데, 유럽 도시들은 크기가 작아 굳이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파리나 런던 모두 관광지가 한데 모여 있어 어지간한 거리는 두 발로 열심히 걸었던 생각이 난다

걷기 힘든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

우리나라는 자전거 타기에 상당히 위험한데, 자전거야 말로 환경 정책에도 부합하고 건강에도 좋은 최고의 교통 수단이 될 듯 하다

 

물질의 풍요 속에 허우적거리며 절제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현대인들이 몸에 관심을 돌리는 건 당연한 현상 같다

우리는 너무 편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적게 먹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일부러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한다

풍요가 주는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풍스런 도시들, 혹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

꼭 좋은 책도 손에 쥐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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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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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까페"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경제 에세이다

오래 전에 추천받은 책인데 이제서야 읽는다

그 때가 대학 막 입학했을 때니까, 벌써 10여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는 걸 보면, 아직도 빛이 바래지 않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원저는 1989년에 나온 것이라, 러시아 대신 소련이 나오고 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들어 있으며 주로 레이건 시대 얘기다

(아버지 부시도 부통령으로 등장한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만,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 훌륭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여전히 우리 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제목처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흔히 경제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경제에 대해 그렇게 잘 안다면 돈을 한 번 벌어보라는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다

불행히도 웃음거리를 모면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리카도와 케인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학문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쌓은 학자들도 실제 경제 행위에 있어서는 이윤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이란 돈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정책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부동산 투기를 연구하는 게 빠를 것이다

경제와 경영은 다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 비웃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주위의 모든 정책들은 바로 이 석학들의 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늘 경제가 휘청거리는 원인을, 경제학자들은 정치가에게서 찾는다

정치가들이 경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내가 빵을 먹는 것은 농부의 자비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그의 이기심 때문이므로 나는 농부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부터 식사하기 전 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고생한 농부 아저씨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스미스의 주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렸을 때는 역시 서양 사람들은 개인주의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좀 커서 살펴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미스의 주장대로 농부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곡식을 제배하고, 또 나는 내 이익을 위해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살 뿐이다

여기에 자비나 선행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산 활동을 열심히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절해 줄 거라 믿었다

지금이야 완전 시장 경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적어도 보호 무역으로 일관하던 18세기 영국에서는 센세이션한 얘기였을 것이다

 

사실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책은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보는 셈이다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애국심에 기댄 구호들을 지키다 보면, 소비자들은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나라 경제 수준은 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재화가 얼마나 되느냐로 측정된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국산품이든 외제품이든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고 재화의 유통이 자유로운 시대가 소비자에게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경제학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돈이 유동되면 될수록 모두가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런 예를 든다

링컨 대통령이 영국제 버버리 코트와 미국 코트 중 애국심을 생각해 미국 것을 산다

그러면 그 돈은 단지 미국 상인에게만 지불될 뿐이고, 링컨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입게 된다

그런데 영국 코트를 사면 미국 달러를 지불하므로 영국 상인이 돈을 벌고, 그 상인은 은행에서 다시 영국돈으로 바꿀 것이므로 은행은 달러를 벌게 된다

은행이 이 달러를 다른 사업에 투자하면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링컨은 같은 값으로 더 좋은 코트를 입게 된다

이처럼 국산품을 사는 게 애국이 아니라, 질 좋은 물건을 낮은 가격에 사는 합리적인 행동이 결국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우던 여러 이론들의 창안자들이 등장해 흥미로웠다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경제 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가장 어려웠던 이론이 비교우위론인데, 이것을 창안한 사람이 리카도다

스미스가 절대 우위론을 주장해 국내 제품보다 생산비가 적게 드는 외국 제품만 수입하라고 한 반면, 리카도는 비교 우위론을 내세워 모든 물품들은 다 교역의 대상이 되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 시간에도 나온 유명한 로빈슨 크룻 얘기가 등장한다

로빈슨이 그의 충복 프라이데이와 무인도에 갇히는데, 로빈슨은 오두막을 짓고 물고기 잡는데 프라이데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스미스 이론을 적용하면 두 가지 다 프라이데이가 앞섬으로 로빈슨과 교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리카도에 따르면, 로빈슨은 프라이데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두막 짓기 보다 물고기 잡는데 시간이 덜 걸리므로 로빈슨은 물고기만 잡고 프라이데이는 오두막만 지어 서로 교역하는 게 둘 다에게 유리하다

즉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적게 되는 일에 집중한 후 교역하는 쪽이 아예 무역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이 비교우위론은 꽤나 어려운 문제라(문제집에 나오면 자주 틀렸다) 리카도는 국회에서 정치가들을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경제 시간에 배웠던 것들 중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용어는 "수정 자본주의"다

애덤 스미스-국부론, 케인스-수정 자본주의, 이런 식으로 외웠던 것 같다

케인스는 한계 효용으로 유명한 마셜의 제자인데, 뛰어난 천재였다고 한다

19세기만 해도 전문화가 덜 된 시점이라 케인스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여러 학문 중 하나로 경제학을 택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완전 방임주의가 내포한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라는 중재자 내지는 구원자를 등장시킨다

즉 불경기가 오면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공공 사업 등을 통해 정부가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케인스의 조언을 받아 들인 정책이 루즈벨트의 그 유명한 뉴딜 정책이다

세계 공황 이후 미국은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창출하므로써 경기를 활성화 시켰다

오늘날도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는 각 정부의 기본 정책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런데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의 이기심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빅토리아풍의 학자였던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이 양심껏 정책을 수행하리가 믿었다

불행히도 양심적인 관료를 드물었다

기업과 결탁해 다수 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뷰캐넌을 위시한 공공학파가 등장한다

관료들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인 인간에 불과하므로, 국가에 지나친 권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 "합리적인 무시"다

정부의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데 100만원이 드는데 비해, 그 부정을 바로잡아 얻는 내 개인의 이익은 2원에 불과하다면 감시하는 것보다 부정을 눈감아 주는 게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다수보다 소수 이익집단이 언제나 로비에 성공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소수 이익집단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얻게 될 혜택을 나눠 가질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돌아올 몫도 커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끊임없이 정치가를 어르고 달래면서 수억원을 들여 로비를 펼친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는 특별히 도덕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부에 지나친 기대를 건 케인스의 이론은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불경기를 타개해야 할까?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조절하라고 제안한다

불경기가 되서 돈이 안 돌면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므로써 민간의 통화량을 늘린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유동성을 원치 않으므로 소비재 투자재를 구입할 것이다

반면 호경기가 되서 돈이 지나치제 많이 유통되면 중앙은행은 채권을 매각해 통화량을 줄인다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유지하길 원하므로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것이다

프리드먼은 정부 대신 통화량 조절을 통한 중앙은행의 조절을 강조했다

 

또다른 재밌는 개념으로는 마셜의 "한계효용"과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가 있다

한계효용이란 예를 들어 요플레 한 개가 1000원의 만족감을 준다면 두 개는 9백원, 세 개는 6백원, 네 개는 300원,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다

요플레 가격이 310원이라면 세 개를 사는 게 합리적이다

만약 네 개를 사면 310원을 지불하는데 비해, 한계효용은 300원이므로 10원의 손해를 본다

이처럼 소비자는 한계효용과 한계비용, 즉 가격을 비교하면서 사므로 값을 내리면 수요가 늘고, 값을 올리면 수요가 줄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수요의 법칙이다

또 만약 대체제가 있거나 의료처럼 가격에 비해 수요가 비탄력적인 분야는 얘기가 달라진다

 

베블런은 욕구(want)와 필요(need)를 구분했는데, 유한 계급의 경우 보이기 위한 현시적 소비와 레져를 즐긴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돈이 있으므로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는 얘기다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를 고가로 구입하는 이유는 다른 청바지에 비해 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표가 주는 네임 벨류 때문에 비싸게 산다

"빽튜더 퓨처"를 보면 1950년대 소녀가 미래에서 온 소년의 이름을 캘빈으로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지 뒤에 캘빈 클라인 로고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비싼 소비를 부추긴다

아마도 19세기의 천재 경제학자들에게 광고 효과까지 고려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러 경제학자들의 빛나는 이론들을 읽으면서 경제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류 복지를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이론만 늘어 놓을 뿐 제대로 된 예측을 한 적이 없다는 불평은 현대의 불확실성에 비추면 무리한 비판일 것이다

저자도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는 급변하고 있으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확실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대신,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고, 과거보다 살기 좋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정신적으로는 복잡해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의 이윤 추구 동기를 무시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 국가의 해체로 완전히 실패했고, 인구 폭발로 인한 식량난을 우려했던 멜서스의 인구론도 틀렸음이 입증됐다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다듬어져, 또 정치가들이 그것을 정책에 잘 반영하여 조금씩 더 나아지는 일상을 기대해 본다

 

경제학의 기본 이론에 대해 풍부한 사례와 설명을 통해 자세히 기술되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에 대한 위트 넘치는 비판도 서슴치 않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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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2 - 1994.11 - 1995.11
장정일 지음 / 미학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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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 한 책이다

한 번 집은 책은 끝까지 읽는 편인데  (마음에 안 드는 책은 욕하려고라도 읽는다), 절반 읽고 손을 놔 버렸다

내가 거의 읽지 않은 책들이야 공감할 수가 없었다

다른 책 에세이들은 감상문 외에도 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많이 추가되어 공감할 때가 많았는데, 장정일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불친절 하다

읽다가 그만 둔, 내 독서 역사에 아주 드문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

의미없이 읽어가는 문장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의 사색적인 감상문들이 좀처럼 감동을 주지 않았다

대신 꽤나 책을 많이 읽는다는 생각은 했다

1년간 쓴 감상문을 세어 보니 영화 몇 편까지 합해서 대략 일주일에 세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사실 이 정도면 직업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아주 많이 읽는 건 아니다

예전에 일본의 한 평론가가 하루에 1권 꼴로 한 달이면 30권을 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글 쓰는 게 직업이라면, 즉 직장을 따로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독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려운 책은 예외겠지만, 글쓰기를 직업으로 한다면 자기 일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글재주를 타고 난 위대한 작가들이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차에서는 오디오북을 듣고 헬스 클럽에서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 읽는데 이 정도의 시간 투자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일 주일에 세 권은 읽는다

직장에서 10시간을 근무하고 남는 시간에 이렇게 읽는다

장정일처럼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독서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그의 처지가 부럽기도 했다

물론 창작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싫지만,  솔직히 독서하는 게 직업인 사람은 부럽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가 제일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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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벨 다이어트
스즈키 마사시게 지음, 이근아 옮김 / 넥서스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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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운동 효과가 좋습니다

꽤 땀을 흘리게 되요

좀 힘든 자세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할 만 합니다

직장에서 시간날 때 하기 좋아요

살 빠지는 건 몰라도, 어쨌든 운동은 꽤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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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위한 변명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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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어스틴이 쓴 "이미지와 환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명성은 다 알고 있고 수없이 인용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와 고전의 차이는 사람들이 읽느냐, 읽지 않느냐의 차이라고까지 한다

그의 지적처럼, 카뮈는 흔히 회자되는 작가이면서도 정작 그의 작품인 "이방인"이나 "페스트" "반항인" 등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을 쓴 저자의 말처럼, 위대한 작품을 어렵게 해석함으로써 먹고 사는 평론가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카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평범한 독자인 나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카뮈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평론집을 집어 들었다

적어도 저자 박홍규는, 복잡하고 난해한 말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노벨상 수상자 혹은 프랑스 문학의 대가라는 점 때문에 무조건 찬양되고 숭상되는 우리 평론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 한다

 

제목은 "카뮈를 위한 변명"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저자는 카뮈에게 씌워진 지나친 찬사를 벗겨 내고 그 안에서 인간 카뮈를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 장에서 저자는 알제리와 식민 조선의 비교를 장황하게 늘어 놓으면서 카뮈의 식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이런 시도는, 어찌보면 참 위험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이며, 온통 그에 대한 찬양 일색인 우리나라 주류 평론가들을 무시하는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증법의 논리대로 참이라고 인정되는 모든 명제에는 반드시 반론이 따르는 법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사상이라도 제발 이런 기본적인 법칙은 수용되었음 좋겠다

세상에 100% 완전무결한 게 도대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저자는 카뮈를, 식민지 조선에 살던 일본 작가로 비유한다

일제가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를 참조한 것만 봐도 상당히 적절해 보인다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자랐고 조선의 자연을 사랑했음에도, 정작 식민지인으로서 느껴야 할 조선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작가의 소설에 어떤 조선인이 감동할 수 있겠는가?

카뮈는 할아버지 때부터 알제리로 이주해 젊은 시절을 그 곳에서 보낸 만큼, 알제리의 자연을 사랑하고 평생의 고향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소설에서 식민지인 알제리 국민이 느꼈을 고통과 억압에 대해서는 일절 서술하는 법이 없고, 알제리가 독립 전쟁을 치룰 당시도 그의 어머니가 알제리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독립을 반대한다

이런 카뮈의 작품은 당연히 알제리에서 금서 목록에 올랐다

우리 역시 일제 치하의 식민지를 경험한 이상, 제국주의자인 프랑스 보다는 식민지 알제리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평론가들은 그저 카뮈를 일방적으로 찬양하기만 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저자는 통탄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강대국 프랑스와 동일시하고, 예술과 자유와 평등, 인권의 나라에 대한 동경심에 비롯된 문화 사대주의가 아닌가 의심한다

흔히 프랑스 하면 떠올리는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도 실은 파리의 일부 상류 계층에 국한된 것이고, 우리는 지나치게 큰 환상에 쌓여 있다고 꼬집는다

문득 최연구가 쓴 "프랑스 문화 읽기"가 생각난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연구는 미국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프랑스의 위대한 문화에 대해 찬탄을 아끼지 않고, 미국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대주의 의식을 비판했는데 정작 그 역시 프랑스 문화 사대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화, 세계화는 좋지만, 미국 대신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문화가 대장이 되는 것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프랑스 문화 사대주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판은 지양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같은 비판 방식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히려 정말로 카뮈가 원했던 것, 진짜 카뮈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

실제로 카뮈는 꽤 잘 생겼다

험프리 보가트를 평생 좋아했다고 하는데, 나란히 배치한 사진을 보니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준수한 외모다

더구나 노벨상을 탈 만큼 글도 잘 쓰고 프랑스의 지성인이라 인정받았으니, 여자들이 많이 따를 법 하다

카뮈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다

절대 못 끊는 게 있다면 담배와 섹스(혹은 사랑)였다고 하니, 그의 성향을 알 만 하다

결혼하지 않고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 상태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던 샤르트르와는 달리, 결혼한 상태에서 간통한 셈이 된 카뮈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고 싶으면 샤르트르처럼 결혼이 주는 안정과 특혜도 거부해야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게 아닐까?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논하면서도 정작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는 간통으로 인한 끊임없는 괴로움을 주는 이중적인 심리 구조를 보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의 두 번째 아내 역시 십 여살이나 어린 아름다운 여배우였던지라, 카뮈도 아내 마리아를 둘러 싼 남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저자는 카뮈를 아나키스트로 본다

아나키스트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권력과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로 보는 게 옳다고 한다

그는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의 지배를 지지한 것도 아니다

알제리인과 프랑스인이 모두 화합하여 국가의 지배가 없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자고 했다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저자의 표현대로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일본인과 함께 사는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카뮈는 자신이 낳고 자란 알제리의 현실에 너무나 둔감했다

늘상 옆에서 지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식민지인으로 겪어야 할 알제리인의 고통과 억압에 항상 무지했다

그의 소설 "이방인"을 봐도 태양 때문에 무심코 저지른 살인의 희생자 알제리인에 대해서 어떤 묘사도 없다

 

카뮈가 식민지 알제리에 대해 어떤 문제 의식도 안 가졌던 것처럼, 그는 조국 프랑스에 대해서도 별다른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프랑스는 그저 우연히 태어난 곳일 뿐이다

카뮈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를 옹호하는 신념에 따라 레지스탕스 활동도 하고,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물론 공산주의가 더 큰 억압을 가한다는 것을 깨닫고 당령에 반항하다 추방당한다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찬미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려고 입대하나, 결핵 때문에 거부당한다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확실히 카뮈는 권력과 억압에 저항하고 부르주아 속성을 비판한 비공산주의 좌파였던 모양이다

샤르트르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모순을 깨닫고 좌파 지식인의 선봉에 섰던 것과 달리, 카뮈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이 주는 괴로움을 내적으로 승화시켜 노동자 편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처럼,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 선 사람은 반드시 그 내부에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자리잡기 마련이다

저자는 표현은 안했지만, 카뮈보다 샤르트르를 더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

 

연극을 사랑한 카뮈는 여러 소설을 각색하고 연출했으며, 스스로 배우가 되기도 하고 연극의 여주인공들과 실제로 사랑을 나눈다

문학이 지배자로 군림하려고 하나, 실상 허공에 군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연극이야 말로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대등한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다고 예찬한다

그가 정말로 원했던 사회는 바로 이런 평등한 공동체, 혹은 권력과 억압이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연극 같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연극에서나 가능한 이상향일 뿐이지만 말이다

 

300페이지가 채 못되는 길지 않은 평전인데, 역시 위대한 작가의 평전이라 쉽지는 않다

비교적 저자가 쉽게 풀어 쓰긴 했지만, 카뮈가 나타내려고 한 부조리한 세상의 고발이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이방인"과 "페스트"를 새롭게 읽어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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