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1권을 읽고 다시 한참만에 2권을 읽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잘 나가던 1권에 비해,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내야 했던 불행한 말년이 담긴 2권이 더 정이 간다
가엾은 다산...
정조가 얼마나 그를 아끼고 신임했는지는 많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도 펼 수 있었을텐데,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나...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이 과연 큰 인물이구나 감탄을 했다
소외 계층이었던 남인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출사한 그는, 천주교에 잘못 연루되어 결국 머나먼 전라도 땅으로 유배를 떠난다
(당시 강진이 얼마나 시골이었으면 풍속이 비루하다고까지 했다 아마 형의 유배지인 흑산도나 거의 진배없는 벽지였을 것이다)
셋째형 정약종은 사형당하고 식솔들이 관비로 전락하면서 아들들의 과거길마저 꽉 막혀 버렸다
자신은 언제 풀려 날지 모르는 기약없는 유배형에 처해져 벽지 산골에 갖혔다
이 상황에서 한 때 가문의 기대와 국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 같으면 자포자기 하고 술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큰 학자였다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킬 기회로 여겼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역사가 그를 평가해 줄 것이라 믿었다
자신부터 학문에 몰두하고,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진 아들들에게 진정한 학문의 길을 가라고 다독인다
아버지 때문에 벼슬길이 막힌 불행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눈물겹다
지금은 노론 세상이나 그들은 공자의 본뜻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무리다
그러므로 너희는 비록 출세할 수 없다 하나, 유학의 참뜻을 배우고 닦아 실천한다면 너희야 말로 진정한 학문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노론에 대한 진짜 복수가 아니겠느냐...

그가 처음부터 은둔자 생활을 원하고 학문적 성취만 바랬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연암 박지원과는 달리 벼슬에 뜻을 두고 현실 정치에서 역량을 발휘하길 원했던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노론 명문가의 자제였던 연암과는 달리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 사람이었다
기득권층이었다면 권력욕이나 출세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소외된 사람은 누려보지도 못한 것을 포기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좌절감을 학문적 성취로 훌륭하게 극복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기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 진정한 학자였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문득 앤서니 라빈스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 와도, 즉 애인이 나를 차 버려도, 직장에서 ?겨나도, 파산 선고를 당해도, 그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인 것 같다

정약용은 신학문에 대한 욕구로 천주학을 접하지만 처음부터 예학을 중시한 유학자였던지라 곧 사학이라 규정하고 발을 뺀다
그러나 이 때 잠깐 접한 천주학 때문에 그는 평생을 불행하게 산다
그가 차라리 천주학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의 형 정약종처럼 구원을 받고 천주학 때문에 죽었다면 죽은 후의 영생이라도 기약하겠지만, 그는 그저 학문으로서 잠깐 접했을 뿐이다
그런 다산에게 18년의 유배형은 너무나 가혹하다
조선 사회가 얼마나 사상적으로 경직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예다

1801년은 조선 천주교 역사사 잊을 수 없는 해다
이 때 정순왕후에 의해 벌어진 신유박해는 그 규모나 잔인함 면에서 참으로 끔찍하다
정순왕후는 단순히 천주교만 엄금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를 이용해 남인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늘그막에 영조가 얻은 15세의 신부는 사도세자와 정조에 이어 순조의 발목까지 잡는다
순조는 겨우 11세에 등극한 왕이다
대비와 어린 왕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수렴청정이 정국을 안정시키겠지만 (정희왕후와 성종의 예처럼), 그 반대의 경우면 국정을 난도질 하게 된다
정순왕후는 상당히 여걸이었던 것 같다
그녀를 배경으로 사극을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
문정왕후처럼 한자를 잘 알아 더욱 국정을 좌지우지 했다
10살이나 어린 시어머니 밑에서 죽은 듯 살아야 했던 불행한 혜경궁 홍씨의 비극적 삶이 눈에 보인다
정성왕후가 오래 살았거나 영조가 일찍 죽어서, 혹은 사도세자가 조금만 더 정상적이어서 제대로 등극을 했다면 혜경궁의 삶은 누구보다 편안하고 화려했을 것이다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갔으나 그 남편이 미치광이일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정약전은 결국 흑산도에서 유배가 풀리지 않는 상태로 죽고 만다
그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흑산도의 어종을 구분한 "자산어보"를 펴냈다
유학만이 인정받던 시대에 물고기에 관한 책을 펴냈으니, 과연 실학자 답다
정약용은 주역에 몰두해 주역에 관한 여러 책을 쓴다
주역이라면 일면 점술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근본 원리로써 즉 유학의 일부로써 받아 들인다
그런 다산이었으니, 천주학에 흥미를 잃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산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들 넷과 딸 하나를 잃었던 것이다
셋은 홍역으로 세 살이 못 돼 죽었고, 딸은 태어난지 열흘만에 죽었다고 한다
유아 사망률이 이렇게 높으니 옛날 사람들이 자식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게 이해된다
특히 막내 농장은 유배지에 있을 때 죽은지라 아버지로서 자책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또 자신의 학문적 후계자로 여긴 정약적의 외아들 학초 역시 장가든 직후 사망해 그의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두 아들 보다는 조카가 낫다고 여겼으니, 아들들이 마음에 안 찼던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장수한다
그 시대에 75세를 살았다면 큰 질병 없이 천수를 누린 셈이다
그는 회혼일(결혼 60주년 기념일)에 세상을 뜬다
결혼 생활을 60년이나 할 수 있었다니, 이들 부부는 꽤나 해로한 셈이다
비록 18년을 떨어져 지냈지만 말이다
사실 정약용의 생활 방식을 살펴 보면 장수하는 게 당연한 듯 하다
연암 박지원은 꽤나 비만이었는데, 정약용의 초상화를 보면 체구가 작고 단아한 선비상이다
당연히 당뇨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은 없었을 것이다
또 술이 세지만 입술을 축일 만큼만 마시는 자제력을 보이고 아마 담배도 안 태웠던 것 같다
더구나 초의 선사를 만난 후 강진에서 차 문화를 꽃 피운 만큼 녹차를 수시로 마셨으니 고지혈증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반면 초의 선사는 술을 많이 마셔 간경화로 40에 죽는다)
육식을 못하는 정약전을 위해 개고기 요리하는 법까지 자상하게 편지로 써 보낸 걸 보면 영양에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더구나 유배지에서 많이 걷고 운동을 했을테니, 어지간한 병은 다 이겨낼 정도로 강건했음이 틀림없다

하여간 그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고 정리할 기회를 얻는다
그가 쓴 책들은 다산학이라 할 정도로 19세기 조선 학문의 경지를 높힌다
현실 정치에서 뜻을 펼쳤으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시대가 천재를 원하지 않았으니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불행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간 큰 학자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

특별한 과장이나 논리적 비약 없이 사료에 근거해 비교적 정확히 서술한 점이 마음에 든다
우리 역사에 획을 그은 덜 유명한 사람들을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 처럼, 비록 지나친 과장으로 읽기이덕일은 간혹 지나친 비약을 하는데, 이번 다산 책은 주관적인 평가는 상당히 줄고 객관적 자료 인용이 많다
 불편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역사는 이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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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만에 읽어 버린 책이다
300 쪽 정도 되는데 워낙 평이한 내용이라 딱 두 시간 걸렸다
솔직히 너무 평범해서 돈 주고 사서 읽기는 아깝다
그냥 가벼운 스케치 같다
혼자 수첩에 메모하는 수준?
읽기는 편하다
그녀는 한비야와 비교되는 모양인데, 자신도 인정했지만 한 수 아래다
단순히 한비야 보다 늦게 시작해서가 아니라, 글 쓰는 수준이 낮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필력이 아주 딸린다거나

그렇지만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요즘 내가 관심 갖는 게 바로 트래킹인데, 이 책은 그 트래킹에 관한 보고서다
흙길을 밟으며 자연 속을 걸을 수 있는 기쁨!!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나도 요즘 부쩍 걷기에 흥미를 느끼는데 솔직히 도심을 떠날 용기는 없다
일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막상 떠나려고 해도 심리적 저항감이 크다
혼자 길을 걷다 지치면 내 삶마저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을까?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속담일 것이다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하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제일 두려운 것은 내가 왜 걷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일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야 상관없지만 문득문득 외로움이 밀려 올 때, 내가 왜 이 곳을 걷는지 의미가 모호해지면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 올 것 같다
이번에 아빠, 엄마와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만약 여기에 혼자 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벗이 옆에 있다는 것은 때로 불편하긴 하지만, 위안을 줄 때가 더 많다
금산사 계곡에 앉아 발을 담그고 책 읽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마음이 충만해지지는 않았다
자꾸 외롭고 쓸쓸할 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아직도 홀로 설 준비가 안 된 것일까?

그녀에게 제일 부러웠던 것은 터키 대사관에 다녀서 한 달씩이나 휴가를 낼 수 있었던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휴가 제도는 정말 환상적이다
한 달 씩 유급 휴가를 주다니, 참 대단하다
무급이라도 좋으니까 쉴 시간만 주면 좋겠다
(솔직히 무급이라면 생각을 많이 해 볼 것 같기는 하다)
한 달이나 휴가가 주어지면 학생들의 방학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해외로 떠나는 건 당연한 수순 같다
그래도 외국 여행은 혼자서 잘 할 자신이 있다
일단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라도 외로울 틈이 없고, 무엇보다 유럽은 미술관이 많으니까 절대 지겹지 않을 것 같다
이것도 내 환상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는 여행 작가라는 직업을 획득한 것 같다
오마이 뉴스에 여행기를 연재하면서 그 돈으로 여행을 한다
또 이 책 역시 꽤 많이 팔렸고 앞으로도 여행기를 계속 낼 것이므로 여행이 밥벌이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런 위치를 획득하는 건 아니다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경비를 쪼개고 쪼개 여행을 한다
즉 길바닥에 돈과 시간을 뿌리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행에서 많은 것을 기대한다
늘 그렇지만 관광이나 여행이 생각만큼 큰 깨달음을 주는 건 아니다
드 보통은 여행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여행의 기술" 에서 보여 준다
(정말 드 보통다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해외 여행, 그것도 가능하면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
현재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그림이기 때문에, 미술관을 맘껏 보고 싶다
런던이나 파리는 얼마나 문화의 도시인가!!
서양 문화에 대한 내 흥미를 충족시키고 싶다
아빠가 늘 말하는 그 인문학적인 여행을 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은 너무 멀리 있고 나는 늘 바쁘다
그래서 대신 우리나라 여행을 해 보면 어떨까 싶다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는, 기왕이면 직접 걸어서 가고 싶다
그게 또 여행의 진정한 재미이기도 하다

걷기 여행을 하면 제일 좋은 건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면서 밥 두 그릇은 기본으로 해치운다
사실 요즘처럼 먹을 게 넘쳐 나는 시대에, 먹지 못하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즉 몸매를 위해 식욕을 억제해야 하는 슬픔을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나 역시 식탐이 강한 편인데 요즘은 대단히 억제하고 있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건 아니고 나름대로 생활 원칙을 세워 음식을 가려 먹긴 하지만, 어쨌든 아빠 말마따나 먹는 재미가 없으면 인생의 낙도 반은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처럼 음식이 흔하고 또 맛있는 미각의 시대에 식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동차를 버리고 열심히 걷는 수 밖에 없다
칼로리 소비를 하지 않으면 입은 만족하더라도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남도를 걸으면서 싼값에 훌륭한 백반을 배부르게 먹는 장면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남도 백반이 얼마나 풍성하고 맛있는가!!
그 반찬과 밥을 안 남기고 싹쓰리 해도 충분히 열량을 소모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살이 하나도 안 빠졌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그 정도로 먹고 안 찌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요즘 나 같은 경우는 거의 절식에 가까울 정도로 식욕을 억제해도 충분히 배고프지 않고 살 만큼 현대인들의 칼로리 소비는 매우 낮다
그런데 배가 터지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시골 인심에 대한 그녀의 예찬은 상투적이고 표면적이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이 곳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즉 시골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면 나 역시 전형적인 생각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그들이 시골 인심이라고 말하는 부분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낯설음이 호감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본성은 엇비슷하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 표현형이 다를 뿐, 결국 본질은 다 거기서 거기다
시골이라고 뭔가 다르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길에서 잠깐 만나는 서울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후덕한 천사로 보이겠지만, 매일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들 역시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에 불과하다

그녀가 소개하는 트래킹 코스들을 꼭 한 번 답사해 보고 싶다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일단 시도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생각이 바뀔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
책과 함께 여행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은 이상, 이제 정말 떠나 보고 싶다
흙길을 따라 걸으면서 풍경 좋은 곳에서 잠시 다리를 쉬고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는 소박한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
그런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
나만큼 책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기며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물론 그런 성향의 남자라면 사회적 성공도 포기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와 소박한 삶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해결책 같다
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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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1
조안리 지음 / 문예당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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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자서전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자랑을 듣는다는 건 때로 고역이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고 다양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성공에 지나치게 경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안 읽었는데, 문득 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생각나 그 대목을 보고 싶어 빌렸다
결국 못 찾았지만 한 편의 부러운 사랑 얘기는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또다른 에세이를 읽는다면 상당히 짜증이 날 것 같은데, 이 책은 남편과의 사랑 얘기만으로 일관되어 읽을 만 했다
솔직히 부럽다!!

사진으로 봐서는 예쁜 얼굴은 아니다
젊었을 적 사진을 봐도 오히려 촌스런 느낌이 난다
반면 남편 켄은 꽤 준수하다
미국인들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잘 짓는데, 켄 역시 웃는 표정이 일품이다
대체 그 미국인 사제는 조안의 어떤 면에 반한 것일까?
외모에 반하는 것은 가장 변덕스럽고 유효기간이 짧은 것이지만, 그래도 외모는 첫인상에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말하는 필이란 바로 외모를 일컫는 게 아닌가!!

책을 읽어 보니 정열적이고 지적인 면은 강한 듯 하다
공부도 잘 하고 독서열도 왕성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영어를 잘 했으니 미국인으로서는 호감이 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호감이었다면 켄이 50 평생을 부정하고 그녀에게 청혼했을까?
직접 만나 보면 뭔가 사람을 확 끄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정말 드라마틱한 사랑 얘기다

켄은 예수회 사제로써 서강대학교 초대 학장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꽤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교회 내에서도 높은 신망을 얻었다
60년대이니 미국인에 대한 우리의 호의도 그의 평판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스물 여섯이나 어린 여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천주님과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음을 나도 믿게 됐다

켄은 조안에게 영어 번역을, 조안은 켄에게 한국어 레슨을 해 주는 과정에서 그들은 매일 만나고 또 영화를 보고 등산을 가기도 한다
조안은 워낙 지적인 활동에만 몰두해서 또래 친구가 없었는데 켄이 그녀의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 준다
그런데 왜 하필 아버지 나이 뻘의, 그것도 신부였을까?
하긴 그가 신부였기 때문에, 또 워낙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우정이 지속됐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세상 사람들의 남의 일에 좀 더 관대해졌음 좋겠다
신부 교수와 여제자의 사랑이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 주면 안 될까?
권위주의 사회일수록 모든 것을 정해진 기준에만 맞추러 든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보수가 싫다
때론 숨이 막히려 든다

그녀가 당시 막 개교한 서강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꽤 공부를 잘했던 것 같은데 서울대를 놔 두고 굳이 서강대로 진학할 필요가 있었을까?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같은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켄과 그녀의 만남이 운명이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녀의 성격이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 같다
당시는 중고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갈 때인데, 전교 1등을 하던 조안이 경기여중 대신 새로 생긴 성신여중을 고집한 것도 참 특이하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운명의 남자인 켄을 만나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겠지만, 하여간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특한 여자임은 분명하다

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간다
더구나 망해 버린 집안의 공부 잘 하는 큰 딸이었으니, 그녀 부모님의 실망은 얼마나 컸을까?
만약 우리 아빠였다면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결국은 승낙했겠지만 자기 또래의 늙은 남자에게 시집 가겠다는 딸을 바라 보는 아버지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인지 책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그다지 많지 않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애착 관계가 많이 희석됐기 때문일 것이다

켄은 참 매력적인 남자로 나온다
스물 여섯이나 많은 더구나 교수님이에다 신부였으니 조안이 얼마나 우러러 봤을지는 상상이 간다
아마 모든 것이 다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비록 살을 섞고 살았지만 이미 남편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만 보이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켄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참으로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성관계만 해도 그렇다
켄은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녀와 동침하려 들지 않는다
정상적인 성욕을 가진 남자였지만 신앙적인 허락 없이는 절제하려고 애쓴다
책에서 그 부분을 일부러 누락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켄과 조안의 관계는 결혼 전까지는 명백한 플라토닉 러브였다

천주님과 당신이 내 안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게 공존하는데, 왜 세상에서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이 발언은 분명히 조안에 대한 육체적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 욕구가 강했다면 50세까지 신부로 생활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흔히 성욕을 본능이라고 하고 섹스가 사랑에 필수라고 하지만 (더 나아가 사랑하면 섹스해 달라고 하지만) 나는 명백히 자신의 욕구 충족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녀가 모두 성관계에 동의하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에게 요구되는 성관계는 명백히 이기적인 욕구일 뿐이다
켄과 조안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서 플라토닉 러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영원히 그러라는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는 서로에게 순결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다
순결이 한쪽에게만 강요되는 이중잣대가 아니라면, 지켜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피임할 필요도 없고 유산시킬 필요도 없고 모텔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하여튼 정말 부럽다
이런 운명의 남자를 만날 수 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뀔 것 같다
조안은 역시 똑똑한 여자라 미국에서도 로비스트로 성공한다
아마 그 성공기가 2부에 펼쳐질 모양이다
그녀가 49세 때 쓴 책이라면 켄은 75세인데, 일찍 죽은 것 같다
190cm의 거한으로 건강했을 것 같은데 왜 빨리 죽었을까?
사고일까?
하여튼 그녀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애틋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딸 둘을 낳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 주고 간 최고의 선물이니 외롭지 않겠지
나중에 출간된 책을 보니까 그녀 역시 아픈 것 같다
암인가?
그렇지만 뒷 얘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를 재밌게 읽은 후 후속편으로 나오는 김영희의 에세이 마다 동어 반복에 실망을 해서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방학 때 읽을 도서 목록을 정한 뒤 모두 읽어 치운 그녀의 독서열이다
사실 대학 초년생 수준에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녀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이 도서관에 출근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도서관에 책을 읽는 그 열정이 정말 부럽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내게 허락된 여유 시간 동안 무섭게 읽고 싶다
오늘 아침에 벌써 한 권을 읽었다
독서에 대한 열정은 나와 같은 것 같다
그런데 "이방인" 이 권태에 대한 항거인가?
이건 좀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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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전작보다는 좀 떨어지는 책이다
사랑, 혹은 남녀 관계에 대한 그의 뛰어난 성찰이 돋보이는 두 권의 책들보다는 실망스럽다
그래도 평작은 된다
작가의 필력이 워낙 상당하니까
그는 여행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들을 유명한 사람들의 기행문과 섞어서 글을 전개키신다
그래서 다소 산만한 면도 있다
아무래도 철학을 공부해서인지 위인들의 저술에 관심이 많고 또 그들을 신뢰하는 것 같다

그는 특히 플로베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 에서도 "보봐리 부인" 에 관해서 긴 글을 썼는데 여기서도 플로베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플로베르는 특이하게도 프랑스 사회를 혐오하고 이집트를 동경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이집트도 동양으로  불린다
그러니 우리나라나 일본을 극동이라 하겠지
어쨌든 미개하다고 알려진 19세기의 이집트를 동경해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평생을 두고 그리워 한다
플로베르가 혐오하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은 부르주아의 위선이었다
있는 척, 고상한 척 하는 허위 의식에 염증을 내면서 차라리 이집트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순박함을 편하게 느꼈다
정작 본인도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 부르주아 계급에 합류했으면서도 말이다

드 보통은 특정한 문화권이 마음에 드는 이유를 자신의 기질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동의하는 바다
이국적인 정서가 호기심을 끌고 특정 문화권의 가치 체계와 내 기질과 일치하다고 느끼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더욱 염증을 느끼면서 타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커져 갈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은 얻기 어려울 것 같다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싫다고 호주나 미국 등지로 이민간 사람들이 거기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60년대처럼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릴 때라면 몰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엇비슷 할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리는 타 문화권에 대한 환상이 강하다는 얘기다
플루베르 역시 이집트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면 프랑스 못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에 부딪칠 것이다
여행과 거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자연이 주는 숭고미를 여행의 의미 중 하나로 꼽는다
이 번역된 단어가 올바른 느낌을 전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랜드 케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의 대자연 앞에 서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단순히 볼거리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관광" 이라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울 때는 오히려 고속도로의 휴게소 같은 쓸쓸한 장소로 떠나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에 동의한다
원래 군중 속의 고독 같은 상대적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나 뿐만 아니라 타인도 혼자 있다면 내가 겪는 외로움은 평범한 것이 된다
그렇지만 다들 즐겁게 어울리는데 나만 소외되어 있다면 나는 훨씬 더 큰 외로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모텔이나 주유소 그림 등을 통해 보여 주는 이러한 충고는 참으로 적절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순간 현대인의 고독 같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는데, 남들도 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우리는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단지 사진 속에 풍경을 가두는 것만으로는 자연을 보고 느낀 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러스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로 묘사하라고 권한다
그는 데생이 외국어나 수학처럼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고 누구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직접 묘사하면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관찰력도 향상될 수 밖에 없다
즉 사진을 찍는 것은 자연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지만 (셔터만 누르면 되니까), 직접 그린다고 생각하면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까지도 주의깊게 보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것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겠지만 데생하면서 자연을 보다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 특징을 잡아 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나는 이미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자신있는 것은 글로 묘사하는 것이다
여지껏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저 감탄할 줄 밖에 몰랐는데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해 보도록 애쓰겠다
기행문이란 단순히 여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행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자세히 서술하는 과정임을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고흐가 살았던 프로방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팡세는 풍경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그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감탄한다고 비웃었지만, 화가란 자연을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저자는 반론을 편다
즉 화가는 자연을 똑같이 묘사할 필요가 없다
그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또 그 감정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흐일 것이다
(현대 추상 미술은 제쳐 두고)
고흐는 프로방스의 자연을 그릴 때 강렬한 원색을 썼다
말하자면 그는 프로방스의 밀밭이나 교회 등을 볼 때 격렬하고 화려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프로방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호기심일 것이다
훔볼트는 아메리카 적도 지역을 여행한 후 자연 생태계 보고서를 쓴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의 마드리드 여행과 훔볼트의 아메리카 여행을 비교하면서 호기심이 여행의 질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설명한다
훔볼트는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자연 환경과 인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끝없는 관심을 표한다
저자는 마드리드의 문화에 대해 별 흥미가 없다
그의 스페인 여행이 지루한 것은 당연하다
반면 훔볼트는 여행지의 모든 풍경에 대한 관심이 왕성하다
그가 흥분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것도 당연하다
저자는 훔볼트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마드리드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여행을 시작한다
예술품처럼 여행도 심미안이 있어야 진짜 맛을 알게 되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내용은 여행에 대한 기대 부분이었다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역시 드 보통이군,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여행지로 떠난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환경은 며칠만 머물러도 금방 식상해진다
우리의 감각은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적응한다고 해야 하나?
기대감이 사라지면 일상의 불편함을 더욱 분명히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지루하고 식상하긴 하지만, 적응된 곳이다
여행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한 곳이다
여행지의 기대감이 사라지면, 즉 실체를 접하고 나면 결국 집 떠나온 불편함만 남을 것이다
익숙한 곳으로의 회귀라고 할까?

마지막으로 "자기 방으로의 여행" 에 대해 언급하겠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한데, 자신의 주변 환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들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익숙한 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끔 새로운 시각으로 주위를 둘러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얼마나 호기심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활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또 워낙 바빠서 띄엄띄엄 읽어 산만했다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제목 그대로 여행에 대한 새 기술을 습득한 기분이다
풍경을 그림이나 글로 묘사하라던가,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으면 다르게 보인다는 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가까운 곳을 여행하더라도 반드시 기행문, 혹은 감상문을 쓰겠다
그래야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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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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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 하다
책이라고는 자기 계발서 밖에 안 읽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앤서니 라빈스 책도 퍽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은 한 수 위다
가히 자기계발서 중에서 최고라 할 만 하다
아니, 이건 자기 계발서도 아니다
심리학 책이다
칙센트마하이의 책은 "몰입의 기술" 을 처음 접했는데 솔직히 그 때는 별 감동이 없었다
연구 결과가 너무 많아 평범한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린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번 책은 나 같이 결론만 필요한 독자들을 위해 복잡한 데이터는 다 빼고 간단히 결론만 언급하고 있어서 정말 읽기 편하다
그 사이 책을 많이 써서 쓰는 기술이 늘었나?
아니면 번역을 잘 해서인가?
이런 교수에게 사사받으면 존경심이 장난 아닐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 꼭 읽히고 싶은 너무 멋진 책이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인생의 행복을 알려 주는 비서라고 할까?

자기 통제감에 관한 욕구는 무척 컸지만 제대로 되지도 않았고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완벽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히 나 자신에게 적용할 생각은 못하고 이상적인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상상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나 자신의 완벽함을 상상했다면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될텐데, 아쉽다
늘 내가 아닌 보다 완벽한 나의 대리인이 세상과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니 나는 더욱 작아서 그 대리인 뒤에 숨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몇 년 동안 이상향과 현실의 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 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일하면서 제일 괴로웠던 것은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내 감정과 욕구들을 전혀 다스릴 수가 없었다
몸은 그렇다 쳐도 최소한 기분 정도는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일도 힘들고 생활이 엉망이 되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 쉬려고 했던 것도 나 자신을 추스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쉬면서 완벽해지기 위한 연습을 하리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자기 통제란 가능하며 또 필수적이다는 걸 알았다
즉 완벽해지기 위해 애쓸 게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통제와 완벽함은 다르다
완벽은 이룰 수 없는 집착이지만 자기 통제는 누구나 노력해야 할 덕목이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요즘은 그 행복한 느낌을 찾기 위해 애쓴다
행복과 불행은 독립적인 것이라 행복하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책을 읽을 때 내 지식이 넓어지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때다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나면 평생 책만 읽으면서 살아도 될 것 같다
독서는 가장 일반적이고 또 중요한 플로우의 일종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독서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 즐거움을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 현실은 늘 극복하고 탈출해야 하는 감옥이었으므로 도망칠 방법만 연구했다
바보같이 자기계발서만 붙들고 늘어진 것이다
독서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지, 시간이 가니까 나중에는 어려운 책은 아예 읽지를 못했다
한글로 쓰여졌다고 다 책을 읽는 건 아니라는 김영하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요즘 같아서는 평생 책만 읽고 살아도 만족감에 빠져 살 것 같다

제목을 참 기가 막히게 지었다
번역서들 보면 제목이 원작 보다 훨씬 세련되고 자극적이다
아마 이 책의 원저는 "Flow" 가 아니었을까 싶다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정말 환상이다
플로우의 원리를 깨닫고 내적 가치로 자신을 판단한다면 정말 매일 매일이 미치도록 행복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플로우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을까?
저자는 외과 의사의 수술을 예로 든다 자신이 수술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 즉 집도의가 되고 수술방 안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말을 따르고 수술의 전 과정이 완전히 숙련된 상태라면 그는 플로우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환자 상태가 안 좋고 수술이 서투르고 무엇보다 자신이 총책임자가 아닌, 단지 보조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면 플로우를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수술방의 긴장감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집도의 역시 환자 상황이 나빠지면 몹시 예민해진다
아마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자 당황해서일 것이다


일에서 플로우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워커 홀릭 수준일 것이다
저자는 워커 홀릭과 플로우는 다르다고 말한다
워커 홀릭은 일을 안 하면 불안해지고 강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플로우를 경험하는 사람은 일하고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고 일을 쉰다고 해서 초조해 하지 않는다
즉 플로우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일단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주어진 과제와 자신이 가진 기술이 조화를 이룰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과제가 내 능력 이상이면 불안감을 느끼고, 능력 이하면 지루함을 느낀다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권태감 말이다
그런데 기술과 과제의 난이도가 일치하더라도 낮은 수준 보다는 높은 수준에서 더 큰 플로우를 느낀다고 한다
즉 인간은 좀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하긴 취직 시험 합격하는 것과 기말고사 잘 보는 것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목표가 주어지면 기술을 연마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수다
피드백이 없다면 잘 진행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목표 달성에 흥미를 잃게 된다
비록 중요한 목표라 할지라도 싫증을 내게 된다
피드백은 우리 몸의 호르몬이 작용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스템이다
이 피드백을 잘 활용하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목표도 지겨워 하지 않고 잘 달성할 것 같다
피드백을 달리 말하면 상벌 체계, 즉 보상과도 같다
그런데 보상이 즉시 주어져야 효과과 있지, 행동과 보상 사이의 간격이 길면 뇌에서 둘과의 관계를 인지하기 어려워진다
원하는 행동을 하면 즉시 자신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실은 뭘 보상으로 줘야 할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에게는 신경쓰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인데, 이 책에서 그 해결책을 얻었다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주위로 돌리라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 나에 대한 걱정을 잊게 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엔트로피, 즉 무질서 상태라고 규정한다
사실 그렇다
마음이란 것에 얼마나 많은 상념과 감정들이 떠다니는가?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고 또 생각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는 말이 딱 맞다
그러므로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차라리 나를 잊고 내 주변 환경에 주의를 돌리면 마음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서를 갖게 된다
어차피 크고 작은 고민들은 인생을 살면서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차라리 잊어 버리는 게 편하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다
걱정을 잊으려면 주의를 딴 데 돌리는 수 밖에 없다
즉 내 주위 환경으로 말이다

주위에 관심을 돌리면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외롭다는 느낌을 갖기 전에 할 일을 만든다
주의를 한 군데 집중하면 외로운 감정을 잊는다
사실 일할 때 보다 특별한 일이 없는 여가 시간에 더욱 권태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휴일에 약속이 없으면 더 그렇다
그러므로 노는 것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가족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정말 소중했다
가족이란 공통의 목표가 있는 집단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배우자의 목표를 중요시 하고, 내 습관을 영구적으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같이 사는데도 그의 목표에 무관심 하고 혼자 살 때처럼 내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들면 그 관계는 파탄나고 말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높은 이혼률을 당연하게 본다
생산력이 부족할 때야 경제 활동은 남자가, 양육은 여자가 하는 식으로 서로 의존했지만 요즘은 굳이 먹고 살기 위해 결혼할 필요가 없다
하긴 일부일처제가 만고의 진리는 아니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일부 다체제가 당연시 되어 왔다
배우자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그만두기 쉬워진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커플은 그만큼 서로의 관계에 많은 투자를 하는 바람직한 커플이란 결론이 난다

솔직히 나는 많은 반성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계급간의 결합이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경제적, 사회적 안정의 수단으로 결혼을 고려했다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결혼 정보 회사 내지는 마담뚜 아닌가?
그렇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배우자 결정에 많은 고민을 하고 신중해야 함을 알았다
단순지 사회적 조건만 보고 결혼한다면 그 인생은 너무나 불행할 것이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가정을 이룰 수는 없다
저자가 이상적으로 보는 부부는 서로의 목표를 격려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습관을 바꿀 의지가 있는 경우다
저자는 습관을 대대적으로 또 영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아직 결혼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또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도 이 공통의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애를 안 키울 생각이지만 저자의 양육 방식에는 적극 동의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 것 같다
특히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가족 보다는 또래 집단의 가치를 내제화 시킬 때, 즉 반항이 시작될 때 더욱 유용하다
자녀에게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따라 할 모델이 생길 테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배우자가 생겼을 때처럼 자신의 삶을 변형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만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부모의 대리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공통의 목표가 생기고 이것을 위해 각 구성원이 노력할 때 비로소 함께 사는 의미가 생긴다
가족 관계 역시 혈연으로 그냥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여가를 즐기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예술 활동을 직접 하는 것이다
단순히 관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서 대신 글쓰기, 음악 감상 대신 직접 연주하기, 전시회장에 가는 대신 직접 그리기 등등
즉 수동성 대신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가장 큰 기쁨을 얻는다
취미 역시 기술 연마를 필요로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스포츠 중계 방송에 열내는 것 보다 직접 공을 들고 뛰는 길거리 농구가 훨씬 낫다

이 책의 결론은 뭐든지 주체성을 가지고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몰입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삶은 도전이라고 했던가?
당연한 관계라 생각했던 우정이나 가족 관계, 감정의 조절 등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다
내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책이다
두고두고 탐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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