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참 재미있는 책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은 훨씬 더 실감있게 느껴진다
문화의 차이란 시간이 갈수록 거부할 수 없는 큰 힘인 것 같다

한국 남자란 어떤 종족인가?
한국 남자를 동양 남자라고 치환시킬 수 있을까?
저자의 분석을 빌리면 단순히 유교 문화에서 성장한 남자라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한 시점이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한자를 쓰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걸 보면 유럽과 미국을 단순히 서양이라고 분류하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분류인지 알 만 하다
민족성이란 이처럼 타자와 구분되는 거의 본질적인 특징 같다

나는 이 책의 저자와 세대가 다르다
그 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권위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 역시 권위주의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 아이들은 나 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클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와 평등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한 문제 같다
개개인은 수평적일지라도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원리가 아직은 권위주의이기 때문이다

"동굴 속의 황제"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윤리 교과서에서 인용한 베이컨의 이 철학 용어를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굴 속의 황제에 걸맞는 예시를 묻는 윤리 문제를 늘 틀렸던 것 같다
아마 단순히 우상이라고 외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의미는 몰랐다
우상이라니? 동굴 속의 황제 하고 우상하고 무슨 의미가 있어?
사실은 그 우상이란 뜻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우상이란 단어를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흔히 등장하는 우상은 늘 관념적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겠다
동굴 속의 황제 근성은 허위나 위선 의식과도 통한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화를 쉽게 내는 이유도 바로 이 황제 근성 때문이다
모든 일은 내 위주로 풀려야 하므로 장애물이 생기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내 의견은 무조건 옳기 때문에 타인의 비평을 비난과 동일시 여겨 견디지 못한다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것일 뿐 실상 내 마음에서는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지적 우상에 사로잡혀 내가 믿고 추구하는 것이 타인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만 옳다는 이 독선적이고 위험한 생각은, 실상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오직 하나의 진리 뿐이라는 이 명제가 곧 권위주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한국적이고 눈물겹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모성은 늘 신화로 덧칠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어머니란 거의 절대적인 존재다
권력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 전 삶을 던질 수 있을 만큼 희생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을 보인다는 얘기다
저자는 아들이 어머니를 성적으로 독차지 한다고 지적했다
다 커서도 여탕에 목욕을 시키러 다니는 아줌마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식이 태어나면 남편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리고 여자는 온갖 사랑과 정성을 아들에게 쏟는다
아들과 어머니의 이 밀착된 관계는 나이가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부 갈등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요즘은 여자들이 자아 찾기에 나서면서 자식에게 매달리는 면이 많이 줄긴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여자가 한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서 기를 펴는 것은 순전히 아들을 낳았을 때 뿐이다
그 집안의 대를 이었다는 명분과 함께 노후를 의탁할 근거가 마련된다
자신의 미래를 맡긴다는 의미에서 보면 어머니들의 딸 차별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식들은 더 이상 노후 보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여자들 역시 경제력이 생기면서 아들이나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있다
여전히 한국 어머니들은 자식의 출세를 자아 실현과 동일시 하긴 하지만, (그래서 그 출세 방편인 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이 분위기도 변하리라 기대해 본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불쌍한 양면적인 존재다
60년대는 특히 그랬겠지만, 부권이란 거의 절대적인 권위였다
저자의 고백처럼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성역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전적으로 가정 경졔를 도맡아 오기도 했고, 가문의 계승이라는 관념적인 측면에서도 그랬다
권위를 세우는 대신 자식과의 친밀함이 줄어 드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다
아버지는 워낙 높은 존재였기 때문에 가족에서 소외되어 갔다
오늘날 고개 숙인 남자들의 현실은 그들의 가엾은 처지를 잘 반영한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 내에서도 소외되는 이 땅의 가장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요즘 같은 탈권위 시대에 더 이상 가부장제는 의미가 없다
아버지, 혹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계속 매고 있어 봤자 알아 주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들이 평등한 관계로 내려서지 않으면 그들은 돈 버는 기계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권위주의의 대안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기득권층은 흔히 권위가 사라지면 무질서가 온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대신 쌍방간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일방적인 관계는 닫힌 사회의 특징이고 폭력성과 경직성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요즘 같은 개방화 시대에 권위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지배 원리다
과거 학교가 폭력의 온실이었다는 것은 권위주의와도 연관이 깊다
교사들에 의한 폭력 생산을 교육의 일부로 당연시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그런데 학생들끼리의 교내 폭력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말이 사실은 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적인 부분에만 신경쓰라는 의미임을 밣히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정말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한다면, 회사일을 위해 가정을 팽개치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공이 사를 완전히 대신하는 전체주의 사회였다
요즘은 사적 영역이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요원하다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열린 사회를 원하지만 과연 이러한 쌍방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언제쯤 제대로 시행될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일단 나부터 동굴 속의 황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지적 우상에 사로잡혀 무조건 내 의견만이 절대선이라 믿는 어리석음에서 탈피하자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자
가치 기준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나에게 옳은 것도 남에게는 그를 수 있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더불어 쌍방간의 수평 관계를 인정하자
우월 의식을 갖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므로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비평에 민감하다고 했는데, 내가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그만큼 포용력이 생길 것이다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 다양성의 원리를 가르치고 싶다
더불어 권위란 결국은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부모의 권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권위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회는 갈수록 탈권위화 되어 가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원한다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권위주의형 인간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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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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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읽은 책이다
세 시간 동안 300페이지를 읽었으니까 비교적 빨리 본 셈이다
일찍 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까페"처럼 내용이 아주 쉽거나, 아니면 이 책처럼 지루해서 대충 읽거나 둘 중 하나다
"동물원의 탄생"이 아니라 차라리 "칼 하겐베크 일대기"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낫겠다
동물원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겼는지, 서양에서 동물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실제 야생 동물을 포획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등등에 관해 알고 싶었는데 궁금증의 절반 밖에 못 푼 기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겐바크 얘기만 한다
물론 그가 근대 동물원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사실 동물원에 가면 이중적인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어쩌면 평생 못 보는 밀림 속의 동물들을 관람하는 신기한 감정과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동물들을 학대한다는 감정이 교차한다
사자나 기린, 침팬지, 하마 등등을 보는 건 좋은데 과연 동물원 환경이 그 안에 갇힌 동물들에게 우호적인가는 확신할 수 없다
우호적이라는 개념 자체도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므로 엄격한 의미로 따지자면 동물원은 아무리 미화를 해도 동물 학대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환경주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좀 더 나아졌다
이제 울타리에 가두기 보다는 해자를 판 후 보다 넓은 공간에서 동물들을 수용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부유한 국가의 대도시 동물원에나 해당되는 얘기지, 광주만 해도 여전히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동물들을 자연적으로 수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동물원은 인가를 안 내 준다면, 지방 사람들의 문화 체험을 박탈하는 것이 될 것이다
동물원에 가서 신기한 동물들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

하겐바크는 19세기 후반에 부업으로 동물 사업을 시작했는데,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독일에서 큰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겐바크가 운영한 동물 사업의 내용은 다양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동물을 잡아 전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서커스, 동물 도매업, 심지어 사람쇼까지 동물을 잡아서 돈 벌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어떻게 사람쇼 할 생각을 다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저 엽기라고 밖에 안 느껴지는데, 당시에는 인류학회의 지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19세기 말이면 독일이 한창 식민지를 늘려 갈 때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들을 문명화 시킨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사람쇼는 이것에 대한 증거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잡아다 유럽 동물원에 파는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하겐바크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놀랍게도 그것은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전시하는 것이었다
TV나 영화가 없던 시절에 이들의 삶은 대단히 이국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겐바크는 이들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유럽으로 옮겨 그저 관객에게 보여 줄 따름이라고 하면서, 절대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인류학적 연구를 한답시고 아무 꺼리낌없이 나체 사진을 찍어 대는 행위가 과연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까?
골반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생식기를 비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됐다
스튜디오에서 나체 사진을 찍는 원주민 여자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인류학자들은 직접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갈 필요없이 유럽으로 온 그들을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겐바크가 복잡한 일을 대신 해 주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를 치켜 세웠고, 그들의 권위를 이용해 하겐바크는 자기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인류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까지 가지고 자행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긴 그 전에는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는 처지였으니, 그나마 돈 주고 전시하는 건 좀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아프리카 동물들을 포획하는 과정은 야만 그 자체다
누가 그들을 문명인이라고 칭했던가?
새끼 코끼리 한 마리를 얻기 위해 어른 코끼리 수십 마리를 죽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다섯 마리의 새끼 코끼리를 잡으려고 60마리의 성인 코끼리를 죽이는 게 예사였다고 한다
그나마 절반 정도는 유럽까지 가다가 죽어 버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심지어 555마리의 코끼리를 죽인 사냥꾼도 있다고 한다
이 숫자를 부끄러워 하는 게 아니라 능력의 척도로 여긴다는 사실도 놀랍다
숌부르크라는 사냥꾼은 죽은 코끼리 시체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엽기적인 사진을 출판했다
죽은 어미 코끼리 옆에서 외로이 서 있는 아기 코끼리 점보의 사진도 사냥 능력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는 사냥꾼이야 말로 진정한 동물의 친구이고,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을 감상주의자로 몰아 세웠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논리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냥꾼들이 동물의 친구라고?
살인자를 친구라 명명하나 보지?

제일 인상깊은 대목은 자연적으로 꾸미는 현재의 동물원 역시 동물들에게는 절대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하겐바크를 비웃지만 도대체 우리가 그 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가?
20세기 사람들은 울타리를 거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치웠을 따름이다
즉 울타리에 가두나 해저를 파서 풀어 놓으나 갇혀 있는 동물들에게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의미다
요즘 유행하는 해양 동물 공원 역시 끔찍하게 남획되고 있다
열대어를 잡기 위해 필리핀의 한 바다에서는 독약을 살포하기까지 한다
관상용으로 즐기기 위해 그들을 멸종 위기로 몰아 넣어도 괜찮은 걸까?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워 육식을 거부하지만, 차라리 육식은 먹기 위해서라는 정당한 목적이 있는 행위다
타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눈으로 즐기기 위해 동물들을 이런 식으로 학살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릴 권리를 주었으나 그들을 보호하는 책임도 뒤따른다는 사실을 이제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사라져 가는 동물들을 더 이상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민족과 성별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듯, 이제 생명의 존엄성도 지구상에 숨쉬고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위대하다는 개체가 함께 사는 동료들을 이렇게 끔찍하게 학살할까?
동물들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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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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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읽은 책이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서 금방 읽었다
한겨례에서 펴낸 책답게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약간의 거부감도 있지만 아시아에 살면서 그들에게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반성도 든다

나는 현재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생각할 때마다 조선 시대의 명나라를 떠올린다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명을 떠받들었는데, 명이 망한 뒤에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자초할 정도로 의리를 지켰다
지금 눈으로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대주의였지만, 혹시 지금의 한국도 미국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지는 않는지 자기 검열을 해 본다
미국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앞서가는 것이며 심지어 가장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막연한 충성심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본다면 주체성을 상실한 어리석은 행동일까?
그렇다고 반미 정서 내지는 미 제국주의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다
일본 역시 세계적인 선진국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누구도 떠받들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든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데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 주게 높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 경험이 있었다지만 이렇게 높은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내제화 되버린 건 아닐까 걱정된다
미국을 배척하는 것은 곧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 흐름도 파악 못하고 멍청하게 미국을 쫒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평한 답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은 책과 언론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 간의 외교 문제는 결국 이기적이고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간의 관계와는 다르게 국가는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고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 후기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가?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이 있을 때만 우리의 우방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미국 외의 다른 나라, 특히 우리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여자의 지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선출되느냐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수록 일반 여성들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데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여성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들이 이해가 안 갔다
막연하게나마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 느낌이 맞았다
문득 박근혜가 생각난다
박근혜는 여자 당수이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등장한 정치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익 향상과는 실제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질까?
오히려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이 확고한 남자 정치인이 선출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현지 언론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 기자들이 그 나라들을 들여다 본 거라면 좁은 시야나 편견이 걱정될텐데, 그 나라 언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진단한 것이라 좀 더 믿음이 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가와티나 코리 아키노, 부토 등이 실은 가문의 후광으로 총리에 선출됐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우리 보다 훨씬 더 족벌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디에 대한 평가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간디처럼 완전무결의 성인으로 포장된 사람도 드물 거라는 인도 기자의 말이 이해된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책을 사실대로 말한다 해서 위인의 위대함이 퇴색되는 것도 아닌데, 언론은 좀 더 완벽한 그럴싸한 포장을 원한다
그래야 책도 팔리고 영화도 만들 수 있으니까
간디가 섹스를 혐오한 것은 성적 결벽성을 의미하지, 절대 그의 영혼이 고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국가의 통합을 위해 하층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인간이든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상업주의일 뿐이다

킬링 필드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접할 수 있었다
킬링 필드라면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크메르루주의 학살 전에 미군의 대학살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5년 동안 200만명을 학살했는데 이 중 절반은 미군에 의해서였다는 진실을 우리는 왜 외면하려고 들까?
이 사실을 들춰 내면 크레르루주의 잔혹함을 덮는 것이라고 공격받는다

1980년 5월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다면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에도 5월은 있었다
못 사는 나라일수록 군사 정권이 지배하는데 정치 상황이 아마 60년대 박정희 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박정희는 근대화라도 달성했는데 그 나라 지배자들은 독재 정권을 휘두를 뿐 아니라 무능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마치 전두환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 위치에 서게 된 게 자랑스럽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내전을 빨리 끝내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해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끼리 교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혈통 순결주의라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미국 가면 유색인종이라 차별 받으면서도 흑인들을 똑같이 차별하고 그래도 흑인보다는 낫다는 어처구니 없는 우월감을 갖는 게 우리 나라 사람들이다
LA 폭동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천시한다
세계화란 단순히 영어를 배우고 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을 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지구촌이라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하려면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결혼도 적극 권장할 사항이다
해외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 교류가 있어야 상대에 대한 마음도 열린다

버마의 니옹왕의 수기는 인상적이었다
의사 출신인 니옹왕은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밀림 지역에서 무장 독립 운동을 전개한다
군사 정권에 반대하여 정부의 세력이 닿지 않는 밀림으로 들어 간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학생들의 집합체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지식인이겠지만, 니옹왕이 그래도 제일 지식인층에 속한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 수준이 그 집단에서는 최고 엘리트라는 얘기다
수기를 읽다 보면 그가 의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닥터 니옹왕이라는 걸 강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의사라는 게 혁명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별 대단한 존재는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쑨원도 의사였고 체 게바라도 의사였다
일단 사회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득권층인데도 그것을 버리고 혁명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긴 하다
그러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의사라는 이유가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의사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해 달라는 의견 때문이었다
세계화란 국경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이념을 실현하는 정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버마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항쟁도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혹시 김대중 대통령도 그런 의미에서 아태 재단을 설립한 건가?
그는 아태 재단에 초대를 받은 후 우리의 민주화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경제 발전도 많이 부러워 했다
더불어 세계화의 시각에서 버마의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무장 투쟁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자각하고 정치적 투쟁도 병행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깨달음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앞으로 버마 사태가 보도되면 관심있게 지켜 볼 것 같다
더불어 니옹왕의 역할도 기대해 볼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시아를 돌아 볼 때 제 1순위로 떠오르는 문제다
솔직히 중동 평화와 이스라엘 얘기가 나오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기독교와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는 은연 중에 이스라엘 편을 든다
특히 교회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종말론을 부르짖는 교회일수록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당연시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 구원의 신비를 확신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서 뻔뻔스럽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예언의 실현이라고 설교하는 걸 보면 화가 나고 부끄럽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은 둘째 치고라도 어쩜 그렇게 잔인하고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중동 평화를 깬 사람은 명백히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적어도 개인 간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서 기쁘다
유럽만이 문명의 전부인양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지엽적이고 편협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아시아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여행도 해 보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를 탈피해야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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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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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참 잘 쓴다
"로마인 이야기"의 명성이 그냥 쌓인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유명한 책을 아직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그녀의 또다른 역작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읽으면서 필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적으로 잘 쓴 건 아니지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참 편안하게 르네상스를 설명해 준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 제국 흥망사"는 그녀의 책 보다 10배는 더 재밌다고 하니, 갑자기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대화체로 쉽게 쓰여진 이 책은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녀가 정의하는 르네상스란 호기심과 탐구심이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천년 동안 인간은 의문을 품으면 안 됐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져 보지 않고도 믿는, 그 절대성이지 않는가?
그런데 자꾸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면 올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이 라틴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 조차 막았던 모양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리인지 의심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권위는 떨어질 테니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고의 르네상스인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왕성한 호기심에 있다
다 빈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했다
그가 그린 해부도를 보면 오늘날의 인체 해부도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
얼마나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으면 시체 해부를 할 생각까지 했을까?
천재란 한 분야에만 몰두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에는 워낙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되어 양쪽에 발을 걸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그에게 어떤 작업도 요구하지 않고 후원해 준 프랑수아 1세는 이 천재에게 완전히 반했음이 틀림없다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옆에 있어만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예술가를 후원한다는 것 만으로도 영광일테니까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인 라파엘로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가 그린 자화상을 보면 무척 아름답고 예민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작업하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공방을 차려 거대 기업처럼 운영했다고 하는데, 넘치는 창작욕과 함께 머리 회전도 빨랐나 보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아 죽은 후에도 신들이 묻히는 팡데옹 신전으로 갔다고 하니, 교황이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알 만 하다

미켈란젤로는 좀 더 고독하고 괴팍해 보인다
세 천재 중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조각가가 생각해서, 조각을 하지 않을 때만 다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업이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나 건축 같은 엄청난 일이었으니, 과연 그도 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 하다
로마에 갔을 때 그 유명한 "천지창조"를 보긴 봤는데 너무 높아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햇빛을 차단해 어두워서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지금 같으면 최소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도 찾으려고 애쓸텐데 말이다
사진 찍지 말라는 감시원의 눈을 피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한 도시라 우피치 미술관에는 엄청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피렌체가 일정에 없어서 못 갔던 게 너무 아쉽다
솔직히 로마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도 워낙 그림들이 자잘해서 큰 감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루브르나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들은 큼직하게 전시가 됐는데, 로마의 미술관은 그림 규모도 작고 르네상스 이전 시대부터 그림이 많아 너무 전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 보면 아마 달리 보일 것 같다
피렌체도 꼭 가 보고 싶다
책에서 본 그림들을 직접 접하면 얼마나 감동하게 될까!!
런던이나 파리, 혹은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인류 최고의 문화 유산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을까?

신을 대한 세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아예 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테오,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믿는 크레덴테, 마지막으로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라이코다
이 라이코가 중요한 개념인데, 신을 믿지만 과학이나 정치 등 다른 분야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 태도가 바로 르네상스인들의 특징이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현대인 대부분이 라이코에 속할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신의 섭리는 근본적으로는 같더라도 세세한 면까지 다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학 이외의 학문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중세는 오직 신학만이 발달했던 어둠의 시대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현실 세계에 적용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종말론을 주장한다
진화론이 신의 섭리와 배척되지 않는다는 것은, 갈릴레이가 독실한 신자이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프란채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를 꼽는다
이들은 13세기 초의 인물들인데,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직전에 여명기를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역사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학문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오노 나나미는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에게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명예를 수여한다

프란체스코는 청빈을 주창하며 수도회를 이끈 사람이다
십일조를 비롯해 온갖 부를 축적하던 당시 교회로서는, 가난을 강조한 프란체스코를 이단으로 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새 시대의 기운임을 감지한 현명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그의 수도회를 인정해 준다
교황이 비록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역행하는 수구 반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교황은 현명하게도 교회의 취약점을 살리기 위해 프란체스코를 인정해 준다
교황은 교회의 대표이므로 화려하고 권위를 갖지만, 그를 수행하는 가장 아래 계층인 수도사들은 청빈을 지향함으로써 균형을 맞춘 것이다

이 프란체스코도 매우 똑똑한 사람인데, 그는 현실 감각과 관용을 두루 갖추었다
보통 이상주의자들은 독선에 빠지기 쉬운 법이지만,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제 3계급이라는 것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기도하러 온 사람이나 매일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나 그 믿음은 다 똑같다고 인정해 준다
평생 수도원에 몸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주일에만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즉 믿는 방식은 개인의 자유라고 인정해 준다
오히려 그는 생업에 종사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장려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번창한 이유는 바로 이 관용의 정신에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는 학문을 장려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 하기도 한다
또 십자군 원정 때도 이슬람의 술탄과 화친을 맺기도 한다
훌륭한 사람이란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리 고귀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라 할지랄도 그것 외에는 다 틀리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유명한 가문 메디치 이야기도 재밌었다
메디치 가문은 참주 수준으로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라면 예술가들의 후원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피렌체나 베네치아 등은 도시 국가 수준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능력있는 가문이 정권을 장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실 민주 정치를 실시하는 요즘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시민 의식이라는 게 없었던 중세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페리클래스가 통치하는 30년 동안 그리스 민주 정치가 꽃피웠다고 하지만, 실상은 1인 독재와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페리클래스가 패각 제도 때문에 잠시 아테네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옆에 그림이 실려서 더 재밌다
책 크기도 읽기 편하게 작은 싸이즈라 마음에 든다
더더욱 좋은 건 훌륭하고 매끄러운 번역이다

나머지 부분을 겨우 읽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방금 몇 분 만에 읽어 버렸다
작가가 책을 쓸 때도 가능하면 단기간에 써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듯, 독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시 책은 한 번에 쭉 읽어야 한다
아니면 하루에 읽을 분량을 정해서 며칠에 걸쳐 나눠 읽든지
("달의 궁전" 을 이렇게 읽어서 아주 좋았다)

르네상스가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비기독교 문화권인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사실 이것이 단지 서구 역사에 지나지 않다면 르네상스를 연구하는 게 우리와 무슨 상관 있겠는가?
저자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심안, 즉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과 극기, 즉 현실을 이겨내는 정신력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의 그림을 볼 때는 해설서에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젊은 천재가 되서 감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진정한 독서가이자 감상자임이 분명하다

또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고 애쓴 르네상스인들의 시대 정신에 초점을 맞춘 것도 마음에 든다
콜롬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미지의 바다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고귀한 탐험심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황금에 눈이 멀어, 혹은 인디언 문화의 파괴자들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르네상스 탐험가들의 정신을 무시하는 부당한 발언들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 안에 선악이 함께 존재한다고 믿고 악을 이기기 위해 애쓴다
그야말로 다원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선악으로 정확히 분리되는 평면적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 다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르네상스 문화가 꽃 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재밌고 유익하며 또 읽기 쉬운 책이었다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한 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 수년 동안 공부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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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의 꽃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 읽고 싶던 책이었다
알라딘에서 처음 발견하고 꼭 사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있길래 어찌나 반갑던지...
불행히도 신간 도서라 대출이 안 되서 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읽는다
머리 식히기에 딱 좋은 책이다
궁녀라는 소재 자체가 가볍지만, 서술도 아주 쉽게 됐다
신명호가 쓴 "조선의 왕"은 왕이라서 그런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많았는데, 궁녀들은 원래 천한 계급이고 자료가 많이 않아서 아주 쉽게 쓰여졌다

제일 재밌는 이야기는 세종 때의 신빈 김씨였다
소헌왕후의 지밀 내인인데 승은을 입었으니, 얼핏 생각하면 왕비의 심한 질투를 받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왕비가 무척 신임하여 막내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겼다고 하는 걸 보면, 사이가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소헌 왕후는 시아버지에 의해 친정 가문이 몰락하고 어머니는 제주의 노비로 있었던 불행한 왕비다
그런데도 세종의 사랑을 받아 10명의 아이를 낳고, 그것도 아들만 여덟을 낳았던 다복한 여인이다
친정의 몰락 때문에 몸을 낮췄던 것일까?
아니면 아들도 워낙 많고 남편의 사랑이 극진해 여유가 있었을까?
하여간 참 대단한 왕비다
이런 왕비 밑에서 후궁 노릇 하기는 좀 편했을 것 같다
세종은 정치만 잘한 줄 알았더니 집안 단속도 아주 잘 했던 것 같다
신빈 김씨도 신실한 여자 같다
세종이 죽은 후 정업원에 들어가 남편의 명복을 빌며 스님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아들이 여섯이나 있었던 그녀에게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궁녀에 관한 시각은 "대장금"에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 전에는 평생 시집도 못 가는 불행한 여자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대장금"을 통해 그녀들이 조선 시대의 유일한 여자 전문가였다는 걸 알게 됐다
수랏간 음식을 다룬다는 그 자부심과 전문가 정신이 그녀들의 위상을 높혀 줬다
실제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12시간 일하고 36시간을 쉬었을 뿐더러, 월급도 상당히 많았다
생산량이 극히 적었던 조선 시대에 밥 굶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월급을 받았으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성적 측면만 잘 해결된다면 크게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궁궐이라 풍랑도 많고 세력 다툼도 심했겠지만 말이다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는 신빈 김씨 보다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아닐까 싶다
무수리라면 나인들의 심부름꾼인 물 긷는 종인데, 감히 임금의 아이를 배다니 놀랍다!!
그것도 그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만약 숙빈이 오래 살았다면 최고의 효도를 받았을텐데 고생을 너무 해서 그랬나?
일찍 죽은 것 같다

궁녀들이 4살 때 입궁했다고 하는 건, 작가의 시각으로 보면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4살짜리는 먹이고 입히고 대소변도 받아줘야 할 나인인데 이렇게 이른 나이에 데리고 와서 챙겨 줬을 리 만무하다
기본적으로 궁녀들이 궁궐의 노동력을 담당해야 하는데 어린 애들을 키울 여력이 있었을까?
헌종비의 경우 처럼 애 못 낳은 대비나 중전이 수양딸 삼아 데려다 키운 거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입궁 나이는 아니었을 것 같다
실제로 빨라도 7세는 넘고, 10여 세는 되야 뭘 가르치고 일을 시킬 것 아닌가?

세조의 후궁 중 덕중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사저에서 아들을 낳아 소용에 봉해졌으나, 그 아들이 죽는 바람에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조의 조카인 귀성군 이준을 만난 뒤 마음을 뺏겨 그에게 연애 편지를 쓴다
참으로 대단한 여자가 아닌가!!
왕의 후궁이면서 그 조카에게 연애 편지 쓸 생각을 다 하다니...
아들이 죽지 않았으면 좀 참을 수 있으련만 남편 사랑도 못 받고 자식도 없으니 자기 감정에 더욱 솔직해진 모양이다
귀성군은 당시 제일 잘 나가는 젊은이로 궁녀들의 연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연애 편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칫 죽음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그의 아버지가 현명하게 일처리를 한다
편지를 즉시 세조에게 바친 것이다

그래도 세조는 대범하게 행동한다
처음에는 덕중의 일을 그럴 수도 있다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정말로 화가 나 덕중을 사형시키고 편지를 전달한 내시들은 때려 죽인다
덕중은 어쩌자고 세 번씩이나 세조를 화나게 했을까?
사랑하는 마음이란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대단한 것일까?
왕의 아들까지 낳은 사람의 운명 치고는 참으로 기구하다 할 수 있겠다

궁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자의 성욕도 의외로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나 같으면 그깟 섹스가 뭐 그리 대단하랴 싶은데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나 보다
목숨을 담보로 내시나 별감과 사랑을 나누고 심지어 동성애까지 손대는 과감한 궁녀들이 의외로 많았다
성욕이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상궁 계환의 이야기는 참 안타까웠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형까지 가능했던 조선 시대에는 정국 안정이 목숨 부지에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광해군과 인조 시대를 산 계환은 부침을 거듭 하다가 결국 옥사하고 만다
기옥이라는 상궁도 마찬가지다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까지 간 계환은 결국 모시던 주인이 사약을 받는 바람에 옥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만약 그녀가 주인을 밀고했다면 살았을까?
솔직히 암투가 심한 구중궁궐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버티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엾은 궁녀들...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어떤 독자는 신명호답지 않게 수준이 떨어지는 책이라고 비판하지만, 역사에 근거한 괜찮은 에세이다
밝혀지지 않은 재밌는 주제들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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