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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평점 :
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참 잘 쓴다
"로마인 이야기"의 명성이 그냥 쌓인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유명한 책을 아직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그녀의 또다른 역작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읽으면서 필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적으로 잘 쓴 건 아니지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참 편안하게 르네상스를 설명해 준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 제국 흥망사"는 그녀의 책 보다 10배는 더 재밌다고 하니, 갑자기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대화체로 쉽게 쓰여진 이 책은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녀가 정의하는 르네상스란 호기심과 탐구심이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천년 동안 인간은 의문을 품으면 안 됐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져 보지 않고도 믿는, 그 절대성이지 않는가?
그런데 자꾸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면 올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이 라틴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 조차 막았던 모양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리인지 의심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권위는 떨어질 테니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고의 르네상스인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왕성한 호기심에 있다
다 빈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했다
그가 그린 해부도를 보면 오늘날의 인체 해부도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
얼마나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으면 시체 해부를 할 생각까지 했을까?
천재란 한 분야에만 몰두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에는 워낙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되어 양쪽에 발을 걸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그에게 어떤 작업도 요구하지 않고 후원해 준 프랑수아 1세는 이 천재에게 완전히 반했음이 틀림없다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옆에 있어만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예술가를 후원한다는 것 만으로도 영광일테니까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인 라파엘로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가 그린 자화상을 보면 무척 아름답고 예민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작업하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공방을 차려 거대 기업처럼 운영했다고 하는데, 넘치는 창작욕과 함께 머리 회전도 빨랐나 보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아 죽은 후에도 신들이 묻히는 팡데옹 신전으로 갔다고 하니, 교황이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알 만 하다
미켈란젤로는 좀 더 고독하고 괴팍해 보인다
세 천재 중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조각가가 생각해서, 조각을 하지 않을 때만 다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업이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나 건축 같은 엄청난 일이었으니, 과연 그도 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 하다
로마에 갔을 때 그 유명한 "천지창조"를 보긴 봤는데 너무 높아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햇빛을 차단해 어두워서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지금 같으면 최소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도 찾으려고 애쓸텐데 말이다
사진 찍지 말라는 감시원의 눈을 피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한 도시라 우피치 미술관에는 엄청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피렌체가 일정에 없어서 못 갔던 게 너무 아쉽다
솔직히 로마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도 워낙 그림들이 자잘해서 큰 감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루브르나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들은 큼직하게 전시가 됐는데, 로마의 미술관은 그림 규모도 작고 르네상스 이전 시대부터 그림이 많아 너무 전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 보면 아마 달리 보일 것 같다
피렌체도 꼭 가 보고 싶다
책에서 본 그림들을 직접 접하면 얼마나 감동하게 될까!!
런던이나 파리, 혹은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인류 최고의 문화 유산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을까?
신을 대한 세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아예 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테오,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믿는 크레덴테, 마지막으로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라이코다
이 라이코가 중요한 개념인데, 신을 믿지만 과학이나 정치 등 다른 분야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 태도가 바로 르네상스인들의 특징이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현대인 대부분이 라이코에 속할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신의 섭리는 근본적으로는 같더라도 세세한 면까지 다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학 이외의 학문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중세는 오직 신학만이 발달했던 어둠의 시대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현실 세계에 적용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종말론을 주장한다
진화론이 신의 섭리와 배척되지 않는다는 것은, 갈릴레이가 독실한 신자이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프란채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를 꼽는다
이들은 13세기 초의 인물들인데,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직전에 여명기를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역사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학문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오노 나나미는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에게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명예를 수여한다
프란체스코는 청빈을 주창하며 수도회를 이끈 사람이다
십일조를 비롯해 온갖 부를 축적하던 당시 교회로서는, 가난을 강조한 프란체스코를 이단으로 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새 시대의 기운임을 감지한 현명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그의 수도회를 인정해 준다
교황이 비록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역행하는 수구 반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교황은 현명하게도 교회의 취약점을 살리기 위해 프란체스코를 인정해 준다
교황은 교회의 대표이므로 화려하고 권위를 갖지만, 그를 수행하는 가장 아래 계층인 수도사들은 청빈을 지향함으로써 균형을 맞춘 것이다
이 프란체스코도 매우 똑똑한 사람인데, 그는 현실 감각과 관용을 두루 갖추었다
보통 이상주의자들은 독선에 빠지기 쉬운 법이지만,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제 3계급이라는 것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기도하러 온 사람이나 매일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나 그 믿음은 다 똑같다고 인정해 준다
평생 수도원에 몸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주일에만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즉 믿는 방식은 개인의 자유라고 인정해 준다
오히려 그는 생업에 종사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장려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번창한 이유는 바로 이 관용의 정신에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는 학문을 장려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 하기도 한다
또 십자군 원정 때도 이슬람의 술탄과 화친을 맺기도 한다
훌륭한 사람이란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리 고귀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라 할지랄도 그것 외에는 다 틀리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유명한 가문 메디치 이야기도 재밌었다
메디치 가문은 참주 수준으로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라면 예술가들의 후원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피렌체나 베네치아 등은 도시 국가 수준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능력있는 가문이 정권을 장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실 민주 정치를 실시하는 요즘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시민 의식이라는 게 없었던 중세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페리클래스가 통치하는 30년 동안 그리스 민주 정치가 꽃피웠다고 하지만, 실상은 1인 독재와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페리클래스가 패각 제도 때문에 잠시 아테네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옆에 그림이 실려서 더 재밌다
책 크기도 읽기 편하게 작은 싸이즈라 마음에 든다
더더욱 좋은 건 훌륭하고 매끄러운 번역이다
나머지 부분을 겨우 읽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방금 몇 분 만에 읽어 버렸다
작가가 책을 쓸 때도 가능하면 단기간에 써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듯, 독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시 책은 한 번에 쭉 읽어야 한다
아니면 하루에 읽을 분량을 정해서 며칠에 걸쳐 나눠 읽든지
("달의 궁전" 을 이렇게 읽어서 아주 좋았다)
르네상스가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비기독교 문화권인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사실 이것이 단지 서구 역사에 지나지 않다면 르네상스를 연구하는 게 우리와 무슨 상관 있겠는가?
저자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심안, 즉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과 극기, 즉 현실을 이겨내는 정신력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의 그림을 볼 때는 해설서에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젊은 천재가 되서 감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진정한 독서가이자 감상자임이 분명하다
또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고 애쓴 르네상스인들의 시대 정신에 초점을 맞춘 것도 마음에 든다
콜롬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미지의 바다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고귀한 탐험심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황금에 눈이 멀어, 혹은 인디언 문화의 파괴자들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르네상스 탐험가들의 정신을 무시하는 부당한 발언들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 안에 선악이 함께 존재한다고 믿고 악을 이기기 위해 애쓴다
그야말로 다원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선악으로 정확히 분리되는 평면적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 다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르네상스 문화가 꽃 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재밌고 유익하며 또 읽기 쉬운 책이었다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한 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 수년 동안 공부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