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손 안의 미술관 2
김영숙 지음 / 휴먼아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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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 휴가 때 오르세 미술관에 갈 예정이라 미리 읽게 됐다.

작은 판형이라 도판의 크기나 선명도가 다소 떨어져 아쉽지만 많이 알려진 그림들이라 감상에 큰 불편은 없었다.

좋아하는 그림들과 화가들

1) 드가. 사진의 한 장면처럼 어떤 부분을 뚝 잘라놓은 것 같은 독특한 시점과 구도가 인상적이다.

2) 마네. 강렬한 평면성과 색채가 마음에 든다. 특히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나 <발코니>를 보면 이 여류 화가의 우아함과 개성을 너무 잘 잡아냈다. 그가 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열광했는지 이해된다.

3) 휘슬러.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색채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가 매력적이다.

4) 세잔. 이 책에 소개된 <목맨 사람의 집>과 <목욕하는 사람들>의 단단한 양감이 색채감과 잘 어울어져 기억에 남는다.

5) 그리고 역시 고흐!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아름다운 밤 풍경! 고흐는 낭만주의자 같다.

역시 회화의 본질은 사물이나 선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곧 평면인 것 같다.

인상파 화가들이 우키요에를 봤을 때 의 충격과 열렬한 환호가 너무나 이해된다.

<세계미술관기행>의 오르세편에 선정된 그림과 거의 90% 이상 일치하고 거기서 따온 문맥도 많다.

본인이 연구자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서는 정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듯 하고 이런 것이 대중서 필자들의 한계인 것 같다.

이런 책들의 한계에 비하면 조용준씨의 <유럽도자기여행>이나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정말 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더욱 든다.

그리고 이 책의 도판이 너무 밝게 나와 <세계미술관기행>에 비해 색감 전달이 상당히 떨어진다.

이를테면 고갱의 <백마>에서 이 책의 설명에 나오는 푸른 색 말이 전혀 푸른 색으로 안 보여 의아했는데, <세계미술관기행>을 보니 정말 푸른 색으로 그려져 이해가 됐다.

색감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00p

후기로 갈수록 르누아르는 점점 더 인물화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전통 회화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 인상주의식의 그림은 어떤 장소를 스치게 되었을 때 한순간 받은 '인상'을 잡기에는 좋지만, 인물의 섬세한 표정이나 도드라지는 특징과 성품을 잡아내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데생', 죽 '선'을 중요시하는 라파엘로의 그림에 크게 매료되었고, 이후 살롱전에 다시 도전하면서 공공연하게 고전미술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곤 했다.

115p

드가의 참신함은 무엇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소소함'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세상 모든 것을 다 '볼거리'로 만들고, 그리하여 무심코 스쳤을 익숙한 장면을 경이롭게 만드는 힘에 있다. 

139p

세잔은 아내를 모델로 마흔 점이 넘는 유화 작품을 비롯해, 셀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데생과 수채화를 남겼다. 이는 그녀 말고는 누구도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야 하는 그의 모델 역할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린 <세잔 부인과 커피포트>에서는 오르탕스의 미화된 아름다움, 성품, 또는 그녀와 화가 사이의 친밀함 등 전통적인 초상화가 추구하는 그 어느 것도 발견할 수 없다

149p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론 강의 밤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고, 동생 테오에게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의 모습을 그리겠노라고 의욕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그 밤을 짙은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잡아냈다.

 고흐의 풍경화는 이처럼 자연과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대상의 풍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보이는 것 저 너머의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그린다기보다 자신의 삶을 따라다니는 고통, 격정, 분노 등을 모두 대상 속에 잔뜩 이입시킨 채 그렸다.

 그림과 관련하여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단순하게 하여 색채가 사물들에 더 많은 스타일을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그가 형태의 자연스러움이나 현실감이 돋보이는 공간의 조화보다는 색채들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에 집착했음을 보여준다.

167p

세뤼시에와 동료 화가들은 이 그림을 두고 "화가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베껴야 한다는 관념에 시달리게 되는데, 우리는 이 풍경화를 통해 그러한 모든 멍에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드니는 퐁타방 화가들의 이 혁신적인 화풍을 두고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체의 여인, 또는 개인적인 일화를 그리기 이전에 순수하게 근본적으로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오로지 형태와 색채의 조화로만 나아가는 추상화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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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장식미술 기행
최지혜 지음 / 호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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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드디어 서구 도서관에서 빌렸다.

제목만 보고 막연히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탐방기인 줄 알았는데, 영국의 여러 고저택들을 방문하여 건축이나 인테리어 양식 등을 논한 책이었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귀족들의 저택이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쇄원 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은 선비 문화 때문인지 장식이라는 문화 자체가 없는 것 같고 검박하고 단아한 멋을 추구하는데 서양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대변되는 화려함의 극치라 정말 두 문화가 다름을 느꼈다.

또 서양의 공예가들은 비록 순수 예술인 회화와 조각처럼 예술가로써 대접받지는 못한다 해도 제작자들의 이름이 남아 있는 반면 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청자 백자라 해도 그저 무명일 뿐이라는 게 안타깝다.

하다못해 일본만 해도 도공들의 이름이 면면히 전해져 오는데 과연 조선에서는 공예품이 사회적으로 전혀 대접받지 못한 천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수백 년 된 저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부럽다.

아쉬운 점은 도판!

황당할 정도로 도판의 질이 조악하다.

2013년에 책값 17000원이면 싼 가격도 아닌데, 출판사 측의 무성의가 아쉽다.


<오류>

155p

베스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자신의 딸을 메리 여왕의 남동생 찰스 스튜어트와 결혼시켰다.

->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태어난지 6일 만에 아버지가 죽었는데 왠 남동생인가 했다.

찰스 스튜어트는 메리의 남동생이 아니라 남편인 단리 경, 즉 헨리 스튜어트의 동생이다. 메리의 할머니 마거릿 튜더가 할아버지 제임스 4세와 사별한 후 재혼해서 낳은 손자가 헨리와 찰스이므로 할머니 쪽으로는 사촌이긴 하다.

305p

레드 하우스의 동쪽 정원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이 아름다운 우물은 애초부터 장식용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 낭만의 성지에 어울리는 트릭이다.

-> 찾아보니 이 우물은 장식을 위해 디자인 한 것이라 오해를 받지만 이 집에서 오래전부터 써 온 유서 깊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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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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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왔을 때 신청해 놓고 이제서야 읽게 됐다.

책 판형이 한 손에 들고 읽기 딱 좋은 사이즈고 디자인도 괜찮다.

한 쪽은 사진만 한 쪽에만 글이 실려 내용은 적은 편이다.

저자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 전체에 흐르는 굴절있는 삶에 대한 애환이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막연한 동경과 긍정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독재와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은 있으면서 왜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드문 걸까?

왜 공산주의는 평등을 말하면서 1인 독재와 1당 독재를 이어가는 걸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비판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 같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어떻게 다른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과연 다른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한 조르디 모란디 전시회를 우연히 보고 나서 이 화가의 정물화에 완전히 빠졌다.

모란디는 미술사에서 별로 언급도 안 되는 화가라 그 때 처음 알게 됐다.

이 책에도 모란디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미학적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화가가 평생 추구했던 본질을 느낌으로는 이해할 것 같다.

이탈리아 인문 기행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43p

반종교개혁의 시대, 로마라는 위험한 도시의 공기가 "기질적으로는 반역자였지만, 종교적 신조에서는 열광적인 정통파"였던 이 젊은 화가 카라바조를 혁명가로 키워낸 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그 잔학함과 어리석음까지 놓치지 않고 그려낼 수 있었던 혁명가로. 

124p

얀 판 에이크,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로베르 캉팽 등 플랑드르파 회화의 명품은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놀랄 만큼 생생하다. 어째서 14~15세기라는 시대에 이러한 명화가 집중적으로 탄생했던 걸까?

 하위장아의 <중세의 가을>에 따르면, 그것은 페스트의 대유행, 유대인 학살, 백년전쟁, 십자군, 끊임없이 반복되던 기근처럼 혹독하고 무참한 사건으로 뒤덮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재앙과 빈곤이 누그러질 날이 없었다. 역겨우리만큼 가혹했다. 영예와 부를 열심히 바라며 탐욕에 사로잡혔던 것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하기 그지없던 가난으로 인해 그 차이가 명예와 불명예의 대조처럼 너무나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처형을 비롯한 법의 집행, 큰 소리로 떠드는 행상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을 알리는 행렬 뒤로 고함소리, 애도하는 울음, 그리고 음악이 따라왔다."

 이런 혼란한 시대가 역설적이게도 보석과도 같은 플랑드르파의 그림을 낳았던 셈이다. 하위징아의 저 묘사도,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르네상스 시대의 '극단적이기까지 한 양면성'은 아니었을까.

293p

미술은 태생 자체가 권력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이 있기 때문에 권력과는 항상 위태로운 관계를 맺어왔다. 피카소 같은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켜내는 일은 예술가에게 숙명적 난제다. 최대의 패트런인 권력자는 힘과 재력을 무기 삼아 예술가에게 기념할 만한 대작을 제작해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경우는 기뻐하며 예술가는 그 요구에 응한다.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만들고 싶다'는 제작 욕구처럼 제어하기 힘든 욕망을 충족해야만 하는 예술 행위 특유의 함정이 늘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325p

하지만 미켈란젤로에 대한 하니 고로의 관점은 오늘날 '이상화, 단순화'된 의견으로 여겨진다. 원래 당시 '시민'이란 오늘날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시민'과는 달리 "옛 귀족층으로부터 도시 권력을 탈취한 부유한 상인이나 은행가를 중심으로 한 신흥 시민 계층"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아래 계급인 중소시민 상공업자나 하층 노동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했던 공화주의 체제는 한정된 귀족적 공화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근대적인 민주 공화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334p

미켈란젤로가 눈앞의 수입이나 영달을 위해 일했다면 이 같은 삶을 완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강인하고 대적할 자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닌 채 소심하게 자기보신을 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 속에서 끓어오르는 창조의 욕구에 충실했다. 언제나 더 멀리 내다보고 더 높은 곳을 우러렀다. 미켈란젤로가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은 권력자가 원했던 바를 훌쩍 뛰어넘는 곳에 있었다. 그가 펼쳐난 창조의 힘은 500년 후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이다. 마리오 시로니나 후지타 쓰구하루와는 역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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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최혜진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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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미술관 여행, 그림 감상하고 여행하면서 에세이를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삶.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이런 에세이스트로 쉽게 전환하는 것 같다.

부러우면서도 책 읽는 독자로서 냉정히 말하자면 훌륭한 에세이스트, 혹은 전문적인 필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독자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던지 혹은 수필로서 읽을 만한 글을 쓰던지 둘 중 하나가 되야 하는데 전공자가 아닌 경우 문필가로서 읽을 만한 책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살다 보니 블로그나 1인 미디어에 올릴 만한 잡스런 수준의 글도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와 양서를 고르는 게 오히려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

항상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자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도 감정의 과잉이 넘쳐나 만연체의 긴 글들이 가독성을 방해한다.

어쩌면 이런 예민한 감성들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만든 원동력이었겠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많이 불편했다.

책의 주제와는 관계없이 페미니즘과 여성의 전통적 역할, 피해의식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저자는 가부장제의 기억이 남아 있는 여성으로서 여전히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공감이 어렵다.

나도 한때는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여성할당제에 공감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 특히 차별받는 여성, 약자로서의 여성이라는 범주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교육과 경제력이다.

사회적 약자에서 벗어나려면 많이 배우고 경제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북유럽 여성 화가들도 작품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역사에 남겼다.

관심있던 스카겐 화파들의 그림이 소개되어 반갑다.

어찌 보면 세계 미술계를 선도하는 서유럽 회화에 비해 옛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느낌도 들지만 인간 본연의 따뜻하고 외로운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그림들이라 마음이 간다.

마지막에 실린 뭉크 그림은 여전히 가슴이 뛴다.

실제로 감상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뭉크 그림에서도 새삼 느낀다.

왜 뭉크가 유명한지 공감을 못했는데 한가람 미술관에서 뭉크 전시회를 본 후 완전히 빠져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작품들이 참 많이 왔던 것 같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왜 뭉크가 유명한지 전혀 몰랐을 것 같다.

유명하지 않은, 그렇지만 자꾸 보고 싶어지는 19세기 북유럽 회화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인상깊은 구절>

187p

독실한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에게는 '광활한 자연경관'이 신비이고 경이였다. 자연이 곧 신의 뜻이라고 믿었다. 안개나 노을, 눈, 깊고 어두운 나무 숲 등을 통해 아득한 무한의 세계를 전달하려 했다. 장대하고 적막한 풍경 안에 고독한 사람을 놓거나 수도원, 공동묘지 등을 폐허로 그려서 신 앞에 선 인간의 무력감과 불완전성을 표현하길 즐겼다. 덕분에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라는 평을 들었다.

259p

"우리가 절망이라 명명하는 한계 상황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바로 그 한계의 돌파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강자'의 징표다. 강한 자는 병에 걸리지 않거나 죽음을 초월한 자들이 아니라 병을 건강으로 가치 변환시키는 자들, 한계에 맞닥뜨렸을 때 그 한계에서 다시 시작하는 자들이다. 뭉크는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강자였다."

-에드바르 뭉크, 세기말 영혼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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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름다움 - 고미술에 매혹된 경제학자의 컬렉션 이야기
김치호 지음 / 아트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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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컬렉터가 쓴 에세이다.

수집욕은 없지만 미술, 특히 도자기나 서화 등 고미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됐다.

책 디자인도 잘 되어 있고 내용도 괜찮았다.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 다소 사변적이고 당위적인 예찬론이 많아 뒤로 갈수록 지루하긴 했지만,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본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의 수집품을 소개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어떤 작품을 모으는지, 왜 그 작품을 사랑하는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없어 아쉽다.

특히 전시 공간을 갖기 힘든 일반 컬렉터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어떤 식으로 보관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소유보다는 감상 쪽이지만 본질적으로 미에 대한 욕구는 같기 때문에 많이 공감했다.

특히 무라카미 류의 말을 빌려, 취미만으로는 큰 성취감을 얻기 힘들고 일로 접근할 때 비로소 몰두하여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돈을 들여 수집을 하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생산성이 없는 단순한 취미는 그저 가볍게 즐길 뿐 깊이 몰두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만족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관심이 가는 분야는 역시 서화이고, 그 외 도자기도 좋지만 나도 저자처럼 목가구나 토기가 참 좋다.

사방탁자 같은 목가구의 공간미, 비례미도 좋고 도자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삼국시대 토기에 마음이 끌린다.

저자도 삼국시대 토기가 제 값어치를 못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분청사기의 현대적인 조형미도 좋지만, 흙이 주는 투박함, 특히 수천 년 전의 기물이라는 긴 시간의 깊이까지 더해져 기회가 된다면 토기는 한 번 소장해 보고 싶다.

가격도 좋은 것이 백만원 수준인라니 초심자들이 관심가져 볼만 하겠다.



<인상깊은 구절>

미술품의 창작과 거래, 컬렉션 문화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국가든 개인이든 축적된 자본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풍요를 토대로 꽃을 피우고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높에 평가받는 고급한 미술품을 비롯해서 세계가 찬탄하는 문화유산들은 대개가 절대왕조시대,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상류층의 후원과 주문으로 만들어지고 수집 보존되어온 결과임을 상기하자.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일반 시민계급으로 분산되는 가운데 컬렉션 문화는 사회 저변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역사적 뿌리가 오래된 부(경제력)와 미술품 컬렉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별 변함이 없다. 미술품 수요는 본질적으로 '소득'보다는 '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45p

우현 고유섭 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한국 미술은 신앙과 삶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즉 '생활 자체의 본연적 양식화'라는 점에서 민예적 성격을 갖는다."

95p

과학기술의 수준이 낮고 더욱이 그 진보가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던 근대 이전, 풍토와 마을이 인간의 미술활동을 비롯해 삶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경제력 향상과 물적 풍요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이 시대에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던 시대와는 달리 자연환경과 마을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과학기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명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요소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107p

당시만 하더라도 이 분야 연구 성과가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이 분야와 관련이 없는 농림학교 졸업 학력의 일본인이 이 정도의 연구보고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이링 아닐 수 없다. 다쿠미의 그런 업적에 대해 나는 오직 조선 도자와 민예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114p

그 추도 호에서 1920년대에 이미 천재 도예가로 명성을 떨쳤던 가와이 긴지로는 다음과 같은 헌사를 남겼다.

"한일합방 이래 조선에 건너간 일본인들이 그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던가에 생각이 미치면 지금도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 아시카와 씨 등이 매사에 그에 대한 속죄를 하시던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복자가 저지른 과오. 그런 야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당신이야말로 인간의 무지에 빛을 비추어준 분이었습니다."

 아사카와 노리다카, 그는 조선 도자기를 조선 사람보다 더 깊이 탐구하고 수많은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아우 다쿠미와 더불어 조선의 도자문화와 민예를, 그리고 조선미술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몇 안 되는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39p

"인생에서 살아갈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153p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회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김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 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무라카미 류는 '취미'와 '일'에서 비롯하는 감흥이나 성취감의 정도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오직 일을 통해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저 좋아서 하는 순수한 취미는 생산성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심전력하면서 몰두하지 않는다. no pain, no gain 은 성취감에도 해당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므로 너무나 소중하고 사명감을 갖게 만든다)

162p

예를 들어, '완물상지'를 경계하는 유교적 시대정신이 미술창작이나 수집 감상 활동을 억제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유교정신에 충실한 사대부들이 지배하던 조선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리 있는 지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나는 조선시대의 나라 형편이 미술활동을 후원하고 고급 골동서화를 즐겨 소장할 수 있을 정도로 물적 경제적 토대가 충분치 않았다고 보는 관점에 더 점수를 주고 있다.

165p

시대적으로 대략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서화를 수집하고 완상하는 취미는 권력과 경제력을 갖춘 왕실이나 종친, 또는 사대부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하고 아취있는 생활의 한 방편이었다. 적어도 중인이나 상민의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화폐경제가 확산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조류를 앞서 인식하고 전문기술 직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이 새로운 서화 수집과 감상층으로 가세한 것이다. 중인계층 가운데서도 특히 경제력이 확대된 의관이나 역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당시 문화 선진국인 청나라를 왕래하며 새로운 사상사조인 북학을 받아들이면서 시대변화를 앞서 읽었고, 한편으로는 서화 컬렉션을 통해 사대부 영역으로의 진입을 꿈꾸기도 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듯이 나도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문화를 선양하여 태평시대를 수놓음으로써 300년 조선의 풍속을 바꾸어놓은 일은 먼 훗날 알아주는 이가 나타날 것이다."

206p

마지막 세 번째 삶은 문화예술을 통한 삶이다. 문화예술의 세계에서는 1000년 단위로 흥망성쇠와 순환 질서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 세계의 힘(삶)은 질기고 그 영향(생명력)은 오래간다는 말이다. 인간의 인식체계로는 영원의 삶, 내세의 삶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에 내재된 흥망성쇠와 순환 질서는 100년을 살기 힘든 인간의 안목이 아닌 역사의 안목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256p

우리 사회에서 고미술품 딜러나 컬렉터들이 문화계를 이끄는 지성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신뢰를 토대로 하는 거래문화의 정착은 결국 고미술계 사람들의 양식과 모럴에 달려 있다는 보편적 인식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질 때, 그 둘의 어긋남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류>

136p

도판의 주인공은 메디치가를 세운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가 아니라 훗날 공작 가문을 연 후손인 코시모 1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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