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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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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스트라다무스를 생각하면 1999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는 지금의 마야력에 의한 2012년 종말론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왔고, 밀레니엄 버그와 엮이면서 공포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런 분위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였다. 영화나 책 등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서 조용히 사라지거나 예언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다른 이론이 등장했다. 이런 기억들은 사실 약간은 이 책의 내용에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선입견은 책을 읽으면서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작가는 세계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자이자 저술가라고 한다.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해석하기보다 사라진 예언 58개에 관심을 둔다. 이런 접근 방법은 이전 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오류들을 건너뛰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예언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거기에 이 예언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과정과 그 속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강한 개성과 흡입력으로 쉴 새 없이 달리게 만든다. 잊혀진 존재가 작가의 필력과 전문 지식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다. 

집시 바벨이 사라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존재를 광고하고, 이를 본 두 사람이 이것을 구매하려고 한다. 한 명은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자 에이커 베일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예언으로 돈을 벌려는 미국작가 사비르다. 베일은 공포를 불러오는 눈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에 흰자위가 없다. 이 눈을 본 사람은 공포를 느낀다. 바벨이 그에게 위험을 느끼고 달아난 것도 바로 이런 위협과 공포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금방 잡힌다. 고문을 당하는 중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놀라운 능력으로 자살은 한다. 그에게 잡히기 전 다른 구매자 사비르를 만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경찰과 베일에게 쫓긴다.

사비르가 바벨에게 들은 두 단어를 통해 집시들에게 가고,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 욜라를 만난다. 방송에서 살인 용의자로 나온 덕분에 집시들에게 죽을 위협에 처하지만 욜라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관습에 따라 욜라의 오빠가 되고, 그들 속에서 잠시 머문다. 하지만 그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 칼크의 추적과 베일의 위협과 예언에 대한 욕망 때문에 떠나게 된다. 그의 곁에 욜라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집시 알렉시가 함께 한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본 세 명의 여행자가 구성되고, 그들은 험난하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모험을 한다.

이후 구성은 쫓고 쫓기고, 위협을 받고, 한 발 앞서 예언의 단서를 찾고, 다시 쫓고 쫓기는 과정의 반복이다. 상당히 단순한 구성인데 이 속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강하고 독특한 개성과 활약이다. 사실 이 속에서 숨겨진 예언이 무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악한 베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리전과 추격전이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베일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 이야기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언제 그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피상적으로 혹은 왜곡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던 집시들이 사라진 소설 속 집시들 관습은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매혹적이다. 어느 부분에선 우리의 무당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 잠시 놀라기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아주 많다. 선과 악의 대결, 숨겨진 비밀, 곳곳에서 나오는 유머, 긴장감을 불러오는 스릴러, 호기심을 불러오는 예언 등. 이런 재료를 가지고 잘 섞고 잘 늘어놓았다. 제목에서 받은 느낌이 금방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재미난 소설이다. 끝으로 달려가면서 사람들의 집념과 욕망이 빚어내는 사건들이 더 가속화된다. 신비로운 체험과 예언은 살짝 그 실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만들지만 재미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댄 브라운의 흐름과 포사이스의 쟈칼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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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현상금 견인 도시 연대기 2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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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런던의 멸망 후 톰과 헤스터의 새로운 모험담이다. 이번엔 얼음썰매를 타고 움직이는 앵커리지란 도시가 무대다. 전작처럼 한 곳에 머물며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앵커리지란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시장 선출 제도가 아닌 왕위 세습제가 이어지는 곳이다. 이 도시의 여왕은 십 대인 프레야다. 병으로 부모들이 죽은 후 어린 나이에 일찍 여왕이 되었다. 그 도시는 전염병 덕분에 시민이 많지도 않다. 허울뿐인 여왕이다. 하지만 긴 세월을 이어온 제도와 관습과 예절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인구가 겨우 50명 정도인데도 말이다. 바로 여기서 재미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생긴다. 작가의 재미있고 기발한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다.

여왕 프레야. 그녀는 어리다. 허울뿐인 여왕이지만 한 도시를 책임져야 한다. 형식적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도시가 갈 곳을 정한다. 이 결정은 인구가 많지 않은 앵커리지를 새로운 모험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이 도시는 뛰어난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엔진과 오랜 세월 모아둔 부는 다른 약탈 도시들이 탐 낼만 하다. 그중 한 곳인 아크에인절은 앵커리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 정도다. 처음에 이곳을 방문한 주인공 둘은 이런 홍보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성장하는 그들과 외모에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헤스터가 있는 한은 말이다.

이번 작품은 이 두 주인공들의 흔들리는 감정과 성장을 다룬다.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도시의 여왕인 프레야.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헤스터. 이 둘 사이에 잠시 방황하는 톰. 각자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이들의 오해와 욕망이 뒤섞이고, 분노와 질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질투와 소유욕에서 비롯한다. 톰을 자신의 남자로 다시 만들기 위해 헤스터는 앵커리지의 정보를 아크에인절에게 알려준다. 단순할 것 같은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한 번 꼬이기 시작한다.

전작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명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대한 은유와 풍자가 곳곳에 스며있고, 멸망 후 세계에 대한 거대한 상상력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엉클로 불리는 도둑들의 두목과 그가 다스리는 도시는 이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이 엉클은 훔친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탁월한 기술과 정보로 도시들의 부를 몰래 훔친다. 그의 명령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이고, 그의 명령을 받은 아이들은 잠수함 같은 것을 타고 도시에 몰래 붙어 물건을 훔친다. 앵커리지에 붙어 도둑질하던 카울이 세 남녀의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살짝 끼워들던 그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엔 허풍선이 교수가 한 명 등장한다. 님로드 페니로얄 교수다. 역사학자로 불리길 바라지만 그의 저작들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다.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그 시대에 소설 같은 재미를 주는 그의 작품과 명성에 매혹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 중 두 명이 바로 톰과 프레야다. 톰과 프레야는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매혹된다. 이 매혹은 앵커리지를 새로운 모험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 매혹의 중심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대륙이지만 다시 아메리카 대륙은 꿈과 희망이 살아있는 신대륙으로 변한다. 

전작에서 깔아놓은 이야기와 새로운 상황과 설정들이 엮이면서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하다. 시리즈 앞부분이라 궁금한 점이 많은데 다음 이야기를 벌써부터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엉클이 다스리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조그마한 사건은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고, 인간 속에 감춰진 사악한 욕망을 그대로 표출한다. 변함없이 살인에 주저함이 없고, 외면하고 있던 본성은 뒤로 가면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전작에서 낯선 세계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동화된다. 질투와 오해와 사랑으로 빚어진 사건은 두 갈래 진행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주고,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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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이야기 작가의 발견 3
김보영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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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의 초기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읽었고, 뒤에 쓴 글을 모은 <진화신화>보다 더 취향에 맞다. 이 단편집의 반은 이미 <누군가를 만났어>에서 읽은 것이지만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놓친 부분이나 그때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이 단편집에서 SF 거장들의 작품 흔적을 발견한 동시에 그녀의 대단함과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기작 같은 작품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데 현재 쓰고 있다는 장편은 어떨지 모르겠다.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촉각의 경험>에서 이전에 아주 흥분하면서 읽었던 중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 시리즈까지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미래로 가는 사람들>에서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떠오른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바탕을 둔 시간여행과 문명의 발전 때문이다. 마지막 <합>편은 <유년기의 끝>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이런 연상은 단순히 흔적일 뿐이다. 그녀는 시간여행자를 내세워 좀더 깊은 사유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우주와 인간의 삶을 상상이상의 것으로 확대했다. 개인적으로 한국SF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섯 번째 감각>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의 오마주 같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이 책이 사라진 세계를 다루었다면 김보영은 소리가 사라진 세계를 창조했다. 책이 모두 불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외워서 책을 전한 것처럼 이 단편에서 소리가 사라진 곳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처음엔 육감보다 낮은 숫자에 혼란이 왔지만 읽으면서 그 낯선 세계에 점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소리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면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초능력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처녀작 <촉각의 경험>은 클론을 등장시키고, 그의 꿈을 알고 싶어 하는 클론 주인의 욕망을 다룬다. 이 욕망이 클론과의 교류를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오는데 인간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녀의 전공이 작품 전반에 잘 살아 있다. <우수한 유전자>는 반전을 품고 있지만 입장에 따라 누가 더 행복한 지를 묻는다. 세상에서 행복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종의 기원> 연작은 독립적으로 읽어도 문제가 없겠지만 역시 앞의 이야기를 읽은 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사라진 후 인간이 만든 로봇만 살아남은 미래를 다룬다. 이들이 이룩한 세계는 너무나도 인간과 닮아 있다. 그들의 창조신화는 성경의 또 다른 버전이고, 이야기 속에서 다루는 창조론과 진화론은 현재에 대한 풍자이자 은유다. 교조적으로 변하고 도식화된 세계에서 새로운 학설과 인물의 등장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그대로 살아있고, 로봇의 행동 속에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이고 무조건적인 숭배와 신앙을 그래도 재현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한다. 다음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한다.

아직 나의 SF 내공이 부족하여 그녀의 작품을 해석한 사람들과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상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의 오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환상소설보다 하드SF 쪽에 더 많은 재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원작이나 역사 속 한 이야기를 진화시키는 그녀의 능력은 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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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서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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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편 한 편의 단편들이 재미있다.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은 앞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순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각각 다른 화자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 모든 화자들이 한 곳과 인연을 맺는다. 그곳이 바로 <사치코 서점>이다. 이 서점의 주인 영감은 인상이 조금 고약하다. 눈썹이 10시 10분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상당히 부드럽다. 외모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와 닮았고, 책 파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노인과 만나 이야기하고, 노인을 통해 이어지는 사연들은 섬뜩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일곱 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수국이 필 무렵>이다. 60년대 도쿄의 서민동네 아카시아 상점가를 소개하고, 사치코 서점과 주인 영감과의 첫 만남을 보여준다. 이 만남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동네 라면집 희락정 주인이 살해당한 일로 범인으로 오해받는다. 이 오해를 풀지만 그 과정에 드러나는 사연과 그가 라면집 앞에서 본 수상한 남자의 정체는 가슴 찡한 반전을 펼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잘 살아 있고, 반전 뒤에 드러나는 또 다른 사연과 반전은 즐거움을 가득 준다.

<여름날의 낙서>는 한 형제 이야기다. 형은 골목대장에 책도 많이 읽은 뛰어난 소년이고, 동생은 이런 형을 동경하지만 천식 등을 앓고 있다. 평소처럼 딱지놀이를 한 후 집으로 오는데 이상한 문구가 적힌 낙서가 전봇대에 붙어 있다. 이 낙서의 의미를 깨달은 형과 마냥 순진하기만 한 동생의 호기심이 마지막 장면에서 풀리는데 섬뜩하면서 아련하고 감동적이다. 이 낙서를 운용한 또 다른 낙서가 사치코 서점에 붙여지는데 뒷이야기에까지 이어진다.

<사랑의 책갈피>는 마지막 반전이 낯익다. 주류상점에서 가족을 도와주는 구니코의 사랑이야기다. 그 당시 유행하던 밴드를 닮은 청년을 몰래 사모하던 그녀가 배달 중 사치코 서점에서 책을 읽던 그를 발견한다. 그 책은 랭보에 대한 난해한 책이다. 그녀는 책에 관심이 없는데 단지 그 청년 때문에 그 헌책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책 속에 책갈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이후 이 책갈피는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로 발전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펼쳐진다. 이 반전은 그녀에게 젊은 날의 잊지 못한 멋진 추억을 남겨준다. 

과연 여자가 이런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 <여자의 마음>이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술집으로 피난 온 도요코 이야기다. 도요코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담 하츠에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약간 이상한 이 동네에서 또 하나의 괴담을 만드는데 그것은 도요코의 남편이 죽은 후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뒤표지에 나오는 대화가 바로 이 단편에 실린 것이다. 예상된 파국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빛나는 고양이>는 만화 지망생이 만난 고양이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에서 상경해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만화가가 되기 위한 그의 삶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파고든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도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데 얼마 후 고양이 영혼이 그를 찾아온다. 이 영혼과의 교감과 놀이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보다 만화가가 되길 염원하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지망생의 삶에 더 관심이 간다. 

<따오기의 징조>는 죽음의 징표를 보는 남자 이야기다. 물론 이 작품도 회상으로 펼쳐진다. 그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과거 아카시아 상점가에서 늘 똑같은 노래를 틀곤 했던 그 레코드 가게다. 원래 가게 주인은 죽었지만 사위인 그가 변하는 시대 속에서 오래된 레코드를 팔면서 그곳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어떻게 이 가게를 맡게 되었는지도 알려주는데 이것은 그가 따오기의 징조라고 부르는 죽음의 징표와 관계있다. 이 징조를 둘러싼 섬뜩하지만 약간은 두려워 보이는 사건들이 현재의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약간은 힘이 빠진다. 

마지막 단편 <마른 잎 천사>에서 사치코 서점 주인 영감의 과거가 드러난다. 화자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남편을 둔 구미코다. 그녀는 서점 영감이 매일 방문하는 절과 그의 기이한 행동을 유심히 쳐다본다. 남편은 불평불만으로 작가들을 비판하지만 한 여류 시인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구미코의 행적은 그 동네의 바뀐 모습과 현재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만난 한 어린 소녀는 다시 앞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사랑과 용서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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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언제까지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
가와카미 겐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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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장르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스포츠, 성장, 청춘 소설들이 하나로 엮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대적 배경이 현대가 아닌 과거란 점이다. 그것도 비틀즈의 <플리즈 플리즈 미>가 나왔던 그 때다. 왜 비틀즈 노래를 말하느냐고?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노래이자 변화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현재보다 그 시절이 좀더 순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몇 번의 클릭이면 볼 수 있는 것을 그 당시엔 상상력과 사진 등으로 채워야 했고, 아직 어른들의 권위와 폭력이 노골적으로 성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인공 가미야마의 학교생활과 야구부 활동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가미야마가 도와다 호수에 가서 겪게 되는 첫사랑과 조그마한 모험들이다. 개인적으로 전반부는 분노하면서 읽었고, 뒷부분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기자기하면서 파릇파릇한 사랑 이야기로 즐거웠다. 왜 앞부분에 분노했냐면 학교와 선생들의 횡포 때문이다. 물론 중3 남학생들의 어설프고 열정 가득한 시간들이 주는 재미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짓밟는 학교의 행동은 최근에 학교와 선생을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느낀 점을 그대로 표현했기에 더 분노했다.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앞의 말을 뒤집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용기 내어 이 부당한 행위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열정을 부르짖는 가미야마 등의 행동을 보면서 속으로 박수를 쳤다. <부디 부디 나>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질 때는 헐크처럼 변하는 그를 기대하게 만든다.

<부디 부디 나>는 <플리즈 플리즈 미>를 가미야마가 번역한 것이다. 그는 3루수로 공은 잘 잡지만 불안감 때문에 송구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소심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미군 방송에서 흘러나온 비틀즈의 이 노래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변한다. 늘 주눅 들어 있던 그가 친구 앞에서 이 노래를 자신 있게 부르고, 마음속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 용기가 샘솟는다. 마을에서 처음 그 노래의 가치를 깨닫지만 이미 세상은 비틀즈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소심함이 사라진 그는 주전으로 성장하고, 팀은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교사들의 부당한 행위가 이어지고, 이에 학생들은 조그마한 반항을 한다. 전반부 마지막에 이 노래는 다시 자유를 표출된다.

도와다 호수로 가미야마가 간 것은 아주 불순한 의도다. 친구가 그곳에서 여자들이 가장 많이 처녀를 버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중3 학생이 혹시 자신도 섹스를 할 기회를 누릴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간 것이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거의 노숙을 하면서 그런 기회를 노리지만 작고 멋없는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없다. 그러다 새벽에 호수에서 나체로 수영하던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가 바로 사이토 다에다. 전학생이고, 음악 시간에 노래도 부르지 않고, 영어 점수도 나쁘고, 얼굴에 조그마한 흉터가 있는 소심한 그녀 말이다. 그녀는 호숫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이 만남은 성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그를 순수한 첫사랑의 길로 인도한다. 만나고 헤어지면서 두근거리고, 상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순간들과 사랑의 고백하고, 상대를 지켜주기 위해 용기를 내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소년은 자라고 성장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가끔 이 성장을 앞당기고 싶다. 무리하게 앞당기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놓아두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학창시절. 친구들. 선생들. 즐겁고 재미있고 웃겼던 일들. 슬프고 무섭고 분노하고 괴로웠던 일들. 첫사랑의 열정과 순수함. 이별의 아픔과 또 다른 만남. 이런 기억과 추억 속에서 뽑아내고 엮어낸 이야기는 작가의 손길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좋은 작가를 만났다. 약간 전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재미나 가치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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