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아서 왕 연대기 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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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연대기 3부작 중 2부다. 이제까지 읽은 버나드 콘웰의 소설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조금 아쉽다.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아마 이전에 읽은 작품들로 인해 나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과 이 책 읽기 전 다른 버전의 아서 왕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다른 책들 속 이미지가 떠올랐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결말로 가기 위한 단계다 보니 이벤트도 조금 부족했고, 그 무엇보다 조금 늦은 출간으로 1부의 흥분이 많이 가셨다.

전작 <윈터 킹>이 탄탄한 구성으로 색다른 아서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그 아서가 새롭게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느 부분은 예전 스타워즈 초기 3부작 중 2부가 받은 평가가 연상되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끝없이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과정이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전편에서도 기존의 아서 왕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서약을 중시하고, 원칙을 따르며 평화를 바라는 그의 신념은 분명 시대를 초월했다. 그런데 이 초월이 문제다. 그 시대는 그가 외친 원칙과 서약과 왕의 질서로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기독교와의 충돌은 새로운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전작과 동일하게 데르벨의 회상 방식이다. 처참했던 러그 계곡 전투 이후부터 시작한다. 이 전투 후 데르벨의 지위는 높아지고 더욱 중요한 인물이 된다. 아서 왕 연대기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데르벨의 모험 이야기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서가 있다. 작가는 아서 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구성 대신 데르벨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아서의 중요성과 위대함은 기본으로 깔아놓고 그 주변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종합적으로 그려내었다. 데르벨과 만나는 아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읽고 본 아서와 다르고 이 다른 모습으로 인해 새로운 아서 왕 이야기가 가능하다. 

미신과 광기와 종교의 충돌이 발생하던 시기다. 특히 종교의 충돌은 이번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희미한 어릴 때 기억에 의하면 아서 왕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번 연대기에서 아서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그의 세력 속에 있는 기독교를 인정할 뿐이다. 이런 차이가 조금은 낯설지만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초기 기독교의 광신적인 모습은 아서의 정의롭고 냉철하고 관대한 지도력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관대함과 지독한 원칙주의는 그를 위험으로 몰아넣었고 너무나도 순수했던 사랑은 배신으로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게 만든다. 이 때문에 그렇게 바라던 아서 왕이 탄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도 아서 왕 전설 중 두 가지가 깨어진다. 그 하나는 그 유명한 원탁의 기사고, 다른 하나는 성배를 둘러싼 모험이다. 성배 전설은 드루이드의 솥과 연결되고, 이것을 찾기 위한 과정은 초반의 재미를 상당 부분 책임진다. 이 솥을 찾으러 가기 전 데르벨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이 낭만적인 사랑은 분명 그 시대에 맞지 않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시대를 뛰어넘은 사랑을 하는 두 남자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비록 이 두 남자의 사랑이 다른 모습과 결말로 이어지지만 말이다.

원탁의 기사. 성배보다 개인적으로 더 멋지고 낭만적인 이야기다. 전편에서 호수의 기사 란슬롯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다면 이번에는 원탁의 기사다. 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 앉을 탁자를 만들려면 엄청난 나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아서 왕 이후 각색된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란 말이 나올 때 아서는 왕도 아니었다. 물론 불분명한 아서 왕 기록을 참고한 것이다. 연대기 오기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캐멀롯이란 지명도 12세기 이후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서 왕 전설은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하다.

콘웰은 소설 속에서 아서의 입을 빌려서 정치와 역사 왜곡 가능성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어차피 왕이란 거짓말로 사는 존재가 아니더냐? 거짓말 없이 다스릴 수 있는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왕의 명성을 쌓는 초석이 거짓말이니 당연한 노릇이지. 시인들에게 돈을 주고 비루한 승리를 위대한 업적으로 만들면서도 결국 이따금 그들이 불러주는 거짓말을 믿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526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서 왕 전설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또 왕과 거짓말이란 부분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다른 것을 위해 그 거짓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그 누군가.

흥미 있고 재밌는 소설로 읽어도 좋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준다. 왕과 서약, 새로운 민족과의 투쟁, 고대 종교인 드루이드교와 기독교의 충돌, 수백 년이 흘러도 그 위대함이 변치 않는 로마의 건축물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개인, 미신과 저주와 마법의 세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피 튀는 전투와 사실적인 묘사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재미있고 만족스럽다. 이제 마지막 3부에서 왕으로 변한 아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데르벨의 손은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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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고 좀비 -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백상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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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사실 소설에서 좀비는 좀 낯설다. 그 낯설음은 좀비가 하나의 단위로 등장할 때 그 위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무리를 지어 덤빈다면 다르다. 대부분 좀비 영화나 소설이 종말론적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과 달리 좀비들이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더 많은 지역 때로는 전 세계로 확산된다. 살아있는 시체에 집중하는 작품도 보이지만 그 원인을 바이러스 때문으로 돌리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도 하나의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작품이 실려 있지는 않다. 모두 다섯 편이다. 대상작인 <섬>은 읽으면서 강풀의 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전개도 분명 다르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공간과 좀비라는 존재가 순간적으로 그 작품을 떠올렸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갇힌 아파트는 섬과 같다.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먹을 것을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거리를 걷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좀비처럼 분장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공포적인 분위기보다 왠지 모르게 경쾌한 느낌이 더 난다. 

<어둠의 맛>은 풍자적이다. 첫 좀비가 나오는 공간을 용산으로 잡았다. 세입자 중 한 사람이 시발점인데 그 시작이 가슴 아리다.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현실을 넘은 후 다시 현실 문제로 돌아온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종말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조금은 색다른 좀비가 등장하면서 강한 블랙코미디를 보여준다. 특히 좀비의 장점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살짝 끌린다. 역시 이 작품도 공포보다는 유쾌한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아픈 현실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잿빛 도시를 걷다>는 재미나 구성면에서 가장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외톨이로 살고 있던 그녀가 세상 변화를 모르는 것은 좋은데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왠지 앞부분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모성애와 새로운 좀비헌터들의 등장이 공포와 액션 모두 부족하게 느끼게 만든다. 잿빛 도시의 회색 빛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않으면서 공중에 그냥 뜬 듯하다. 예상하는 결말을 뒤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 오히려 그것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 예상하는 결말은 나의 예상이다.

<도도 사피엔스>는 영화 이미지가 가득하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문용어를 비롯한 과학지식을 잘 녹여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점에 비해 아쉬운 것은 역시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긴장감 부족이다.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너무 무난한 전개다. 분량에 비해 이벤트가 부족한 것도 역시 아쉽다. 하지만 역시 잘만 다듬는다면 매끈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정 부분 할리우드의 분위기가 풍길 수 있지만 말이다. 진행의 가속도를 빠르게 올리고 공포를 더 강화한다면 장편으로 바뀌어도 부족함이 없다.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은 어느 날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을 노래한다. 읽으면서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녀와 같은 강력한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생존자들의 노력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도 역시 생존의 제일 요건으로 즉각적인 살해로 규정하고 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기본 전제 조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공존이 아닌 파괴라는 전개가 왠지 조금은 씁쓸하다. 

제목은 종말을 맞이했을 때 소수자가 된 인간이 섬과 같은 곳에 갇히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섬은 또 성이자 유일한 생존의 터전이다. 이곳을 벗어났을 때 미래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희귀동물들을 격리 보호하는 것처럼 종말의 세계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가둔다. 아직 초기에 있는 한국 좀비 문학이다 보니 해외 작품과 비슷한 모습과 인용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공포 쪽에서도 분명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작가들이 나온다면 가장 한국적인 좀비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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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베일에 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알려진 바가 없는 포의 영국 체류 시절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은 작가가 수집한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각종 범죄가 판치던 19세기 초 런던 뒷골목을 배경으로, 물질주의에 물들어 도덕을 버리고 욕망에 허덕이던 영국 상류층의 이면을 고발한다.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엘리스 피터스 히스토리컬 대거 상 수상작. 

느리다는 평도 있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라면 그냥 지나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끈다.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 작가 정유정의 장편소설. 수상 이후 오랜 시간 준비하여 야심 차게 내놓는 소설로, 치밀한 사전 조사와 압도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이다. 7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난 슬프고 신비로우며 통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을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매력있는 평이 있다. 강렬한 필력을 이미 전작에서 보았는데 이번엔 또 어떤 재미와 즐거움을 줄지 기대된다. 

2011년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각종 문학상의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미치오 슈스케. 미치오 슈스케는 2009년 140회부터 2011년 144회에 이르기까지 총 5번에 걸쳐 나오키상 후보에 올라 마침내 5번째 노미네이트 만에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모두 휩쓰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것도 눈길을 끌지만 역시 작가에 먼저 눈길이 간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세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적 동요가 따뜻하고 내밀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선셋 대로](1950)가 영화가 아닌 소설로 각색되었다.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였으나 은퇴하고 은둔하고 있는 노마 데스먼드를 통해 헛된 욕망과 좌절된 꿈을 보여준 이 영화는 제23회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그중 미술상과 음악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제8회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작가 켄 브루언은 이 탁월한 고전의 인물관계와 주제 의식에 21세기적 감성과 스케일을 입혀 <런던 대로>라는 색다른 누아르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영화가 몰락한 시나리오 작가와 늙은 여배우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보여주었다면, <런던 대로>는 조직을 이탈한 갱과 은퇴한 여배우라는 캐릭터의 조합을 통해 도덕적 타락, 인간에의 환멸 등 보다 하드보일드적인 색채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지막 반전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존 트라볼타 주연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장군의 딸]의 동명 원작소설 작가 넬슨 드밀의 '존 코리 시리즈'. '존 코리 시리즈'는 <플럼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세균 바이러스 전쟁, 중동 테러, 항공기 폭발 등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대테러 전쟁을 다루고 있다. <라이언스 게임>은 국내 출간되는 '존 코리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첫 권도 재미있게 읽었다. 전작도 분량이 상당했는데 이번에는 더 무시무시한 분량이다. 856쪽이라니... 한 권으로 나온 것도 신기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이 단숨에 읽힌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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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활동 종료 페이퍼

이전보다 책 권수가 줄어서 조금 부담이 덜 했습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 생각보다 충실한 독서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 신간 평가단하면서 좋았던 책 베스트 3  

기묘한 이야기 속에 담긴 블랙 유머와 깊은 사색이 아주 재미있게 풀려나왔다. 유럽 소설이 지닌 지루함을 뛰어넘는 이야기 방식도 역시 매력적이다. 

 

 

 

카렐 차페크의 명성은 이미 들었지만 이 한 권으로 충분히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풍부한 풍자와 은유는 나의 지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예상 외의 즐거움과 재미를 누리게 한다.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나 <보이지 않는>보다 속도감 있고 재미나지는 않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읽고 난 후 여운이 강하게 남는다. 서평에 나온 몇 가지 글 때문에 출판사의 정정 요청이 들어온 것도 색다른 부분이었다. 

 

2. 건의 하고 싶은 것은 매달 장르를 정해서 그 분야 책을 선택하면 어떨까 합니다. 

선택된 책들이 너무 무거워 약간 버거운 달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조금을 덜어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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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4-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달 장르... 이건 운영상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ㅜㅜ 책 선정하는 과정에서 경중을 좀 조절해보도록 할게요. 좋은 활동 감사드려요!!! :) 고생 많으셨습니다~
 
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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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 명품이란 단어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제품 한두 개 정도 가지는 것이 여자들의 로망이 되었다. 남자도 물론 무시할 수 없지만 주 구매고객은 여자들이다. 여자의 로망이란 단어도 사실 나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치품이란 단어로 말해지던 것이 명품이란 마케팅 용어로 둔갑하면서 거부감이 사라졌다. 여기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한국인의 평등의식이다. 최근에 읽은 강준만의 책에서 이 의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강하다고 한다. 럭셔리 시장에서 이 의식은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평등의식 즉 너도 사면 나도 살 수 있다는 말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개성 없는 따라하기다. 

개인적으로 명품이란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책 저자처럼 그냥 럭셔리란 단어를 사용한다. 사치품이란 단어를 어지간히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면 충돌이 있기에 그냥 영어를 사용한다. 가끔은 브랜드라는 단어를 쓸 때도 많다. 이런 용어가 뭐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이 힘은 아주 거대하다. 저자도 주장했듯이 이 용어가 사용되면서 거부감이 사라지고, 광고는 환상을 키우기 시작했다. 백화점 럭셔리 매장은 언제부터인가 줄은 세워 입장시키고 사람들은 그 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린다. 럭셔리 매장 밖으로 진열된 몇 개의 상품은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환상을 키운다.

럭셔리 제품을 사는 사람들이 흔히 한 번 사면 오랫동안 입는다고 가지고 다닌다고 말하는데 현실에서 그들은 곧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카드로 결제한다. 한두 개 정도 남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경제 능력을 능가하는 구매를 하는 사람도 많다. 심한 경우 중독되어 사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한 번 이런 럭셔리 제품을 사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만족하는데 심한 사람은 다음 날이면 그 만족감이 사라진다고 한다. 월급의 대부분이 이런 제품을 사기 위해 투입되고, 이런 세계를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더 많은 욕심이 생긴다. 나 자신도 책을 사기 시작하고 더 많은 작가를 만나면서 얼마나 무식하게 책을 샀던가. 그들의 구매 욕구에 공감한다.

원래 이 책의 가제는 <샤넬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샤넬은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샤넬보다 일명 코코 샤넬로 불린 그녀의 디자인 정신에 더 가깝다. 저자는 모두 다섯 개의 키워드로 럭셔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처음이 모더니즘이고 그것을 실현한 사람이 샤넬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끊임없이 샤넬을 외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녀가 시대가 바라는 바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하는 바가 바로 시대가 바라는 바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점점 천연재료가 사라지면서 에코 디자인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럭셔리에 대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정보를 수집 정리했다. 이 풍성한 자료를 읽으면서 어느 부분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샤넬의 위대함은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재 럭셔리 브랜드들이 어떻게 기사회생하게 되었는지, 장인이 점점 사라지고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알게 된다. 자신들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매출의 10% 이상 광고비로 지출하고, 단순히 옷에서 액세서리 쪽으로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현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저자도 말했듯이 옷이 너무 고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액세서리의 매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실 나에게 럭셔리를 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가방인데 아마도 이런 영향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더니즘의 실용성을 지나면 오트 쿠튀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문자 그대로는 높은 수준의 바느질이라는 의미인데 최고급의 맞춤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오트 쿠튀르는 럭셔리 브랜드가 쉽게 포기하기 힘든 것이다. 물론 포기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고급으로 놓아둔 채 상대적으로 저렴한(그래도 아직 아주 고가다) 브랜드를 개발했다. 우리에게 명품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오트 쿠튀르라는 것인데 실제 생산 공장이 동남아와 중국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앞으로 구매자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다. 뭐 브랜드 충성도가 현재 워낙 강하니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한국인의 유별난 평등의식을 앞에서 말했는데 이것은 럭셔리의 본고장인 프랑스나 기타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의 계급의식은 노동자가 이것을 사는 것을 원치 않다고 할 정도다. 계급적 자의식이 강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그들의 소득수준이 우리보다 높고 우리보다 좀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도 럭셔리 브랜드를 애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이것을 합리성과 개성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샤넬 스타일에 열광한 역사를 생각하면 좀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샤넬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 파이브다. 향수에 무지한 나도 어릴 때부터 이 이름은 알고 있었다. 샤넬하면 어릴 때 향수가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샤넬이 추구했던 것은 바로 토털패션이다. 향수도 그 하나고, 가방도 그렇다. 첫 시작이 모자였고, 옷이었던 것에서 몸에 걸치고 치장하는 모든 것으로 변한 것이다. 재미난 변화이지만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이제 사람들이 플라스틱에 브랜드 상징만 붙여 놓아도 몇 만원을 가볍게 지출하게 된 것이다. 액세서리 가격이 일반 의류매장의 옷 한 벌을 넘어갈 정도니 이 토털패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루이비통과 베네통을 구분하지 못해 여자들에게 욕을 먹고, 샤넬과 구찌의 브랜드 상징이 뭔지도 몰랐다. 가격을 언론을 통해 들으면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여자들이 주변에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는 남자들이 30대 초반에 럭셔리 브랜드를 너무 잘 아는 것도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모르냐고 말하는 여자가 더 많다. 처음에는 가격을 듣고 놀랐는데 지금은 1-2백만 정도 한다고 하면 얼마 하지 않네 하고 말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고르면 백만 원이 그냥 훌쩍 넘어가는 현실이니 어쩌면 나의 돈 감각이 무디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바라는 대로 앞으로 에코 스타일이 점점 더 많아지겠지만 과연 럭셔리 브랜드 파워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하고, 묘한 구매 충동을 유발하는 마케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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