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속의 진실은 실제 사건의 나열로 얻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당면한 경험을 마주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독자가 믿게 될 때 진실이 얻어진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 P107

현대의 회고록은 자신의 삶을 일정한 모양으로 빚은 글이 무관심한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작품으로 다가가려면 극적인 각색을 거치고, ‘되어가는‘ 경험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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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온의 글쓰기를 구성하는 원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불안이다. 이로부터 디디온은 재능을 멋지게 떠받쳐주는 우울하고 흔들리는 페르소나를 창조해냈고, 적어도 한 편의 불후의 소설 (『모든 것은 순리대로 Play it as it lays』)과 미국 문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에세이 몇 편을 남겼다. 
- P45

에세이 「나는 왜 내가 사는 곳에 사는가>에서는 대리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이용하여 ‘고향‘에 대한 지독한 양가감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심리의 치명적 급소를 탐구하기도 한다. 
- P51

끝이다. 이게 전부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 P62

「미국의 아들의 기록」과 「코끼리를 쏘다」 모두 지독하리만치 깊숙한 자아 탐구가 글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자전적 이야기를 에세이에서 회고록으로 인도하는 것은 탐구의 깊이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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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 P269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조미란의 얼굴을 보며, 정은성은 조미란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슬프다는 얼굴을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를 실망시켜."
- P279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 P323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강치수가 답했다.
"외로웠겠죠."
- P328

아무도 모른다.
그 냄새나는 차의 문을 닫을 때, 황권중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준후는 길고 긴 복도를 웃으며 걸었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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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 P7

아주 잠시, 준후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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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 P9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 P10

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 P14

대신 두 분이 그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 고리 모양의 달콤한 짱구 과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흔들어대던 모습, 한국 포도를 먹을 때 껍질에서 알맹이만 쪽 빨아먹고 씨를 훅 뱉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던 모습을.
- P23

엄마는 2014년 10월 18일에 눈을 감으셨는데 나는 매번 이날짜를 잊어버린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함께 견뎌낸 어마어마한 시간에 비하면 정확한 사망일 따위는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인지. 
- P24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 P60

당시에는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지금처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는 어마어마한 상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자기 엄마에게서 떨어져 지낸 그 모든 세월에 대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죄책감도 생각하지 못했다. 
- P64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 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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