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너무나 많았다. 엄마가 나를 한글학교에 보낸 모든 세월을 생각했다. 엄마한테 딱 한 번만 학교를 빠지고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놀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갖다버린 돈과 시간도 전부 다. 한국어 공부를 지겹게 생각한 걸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엄마는 골백번도 넘게 말했다.
- P336

"할머니도 노상 그렇게 말했어." 이모가 말했다. "너랑 네 엄마똑같네."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항상 말도 못하게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토가, 엄마만의 독특한 양육법에서 나온 거라고 믿었다. 
- P337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 P338

강렬한 햇볕에 누렇게 타들어간 풀밭 위로 전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비죽비죽 지평선을 수놓고 있었다.
- P344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P345

한번 갈 때마다 본인부담금을 100달러씩 내고 있었으므로 그돈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50달러짜리 점심을 사 먹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상담을 취소하고 스스로를 돌볼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 P354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P372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 P372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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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칸놀이터, 소설을 읽어요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함께 읽은 책. 작가 클레이 키건이 작년에도 많은 찬사와 추천이 있었으나, 너무 메이저는 접근을 망설이는 경향에 이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를 이제야 느끼는중..

🍊 1940-60년대 펄롱이나, 내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부모들 모두 비슷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위대함을 느낀 소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연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낀 시간이었다.

🍊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돌이켜보며 심란해하기도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하는 펄롱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있는 어른 안의 아이 모습을 느끼게했다. 그렇게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펄롱이 다행이고 고마웠다. 수녀원에서 본 아이들과 미시즈 윌슨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서사가 무겁게 다가왔다.

🍊 세라는 어떻게 이곳에 온건지, 다른 아이들은 어떤건지. 가정과 수녀원에 부조리가 있는 건지 궁금해하며 읽었다. 뇌피셜로 이런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게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 된 건 아닌지, 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던 시간이었다.

🍊 수녀원에서는 묘사가 안되었지만, 펄롱은 수녀원을 나오기 전 세라의 젖이 새어 블라우스 얼룩지는 모습을 봤었고,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하니 펄롱이 왜 그리 죄책감을 느끼고 답답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펄롱이라 다행이다.

🍊 옮긴이의 말까지 완벽했다. 이 짧은 소설은 많은 사건을 담지 못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서사와 진심을 보여주고, 또한 독자에게 물어본다. 나는 아직은...감히 어떤 답도 다짐도 차마 못하고 용기내지 못한 채 현실을 두려워하며 외면하는 사람이지만...


🍊 남기고 싶은 문장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29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수 있다네.˝
54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55

🌱펄롱은 젊은 수녀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고 이제 수녀원장이 자기가 일어서길 바란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조금 전까지는 여기를 뜨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79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친절을 마주했을 때 그러듯이.
82

🌱거의 반 시간 정도, 어쩌면 더오래 그렇게 앉아서 여자가 한 말, 닮았다는 말을 곱씹어보며 생각 속에서 불을 지폈다. 생판 남을 통해서 알게 되다니.
98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99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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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엄마의 장례식을 오늘 치르지 않고 어제 치른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또 다른한편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나는 어차피 쉬게 되었을 것이다.
- P39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저녁때가 되자 마리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 P41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P45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P60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65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68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 P69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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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딧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8

그냥 이야기 속에서는 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인물이 연극 무대의 세찬 조명 아래서는 완전히 무너져 앉아버리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 P1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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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독서기록정리중
#책사는속도는읽는것보다빠르고
#기록은읽는것보다느리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은이) 엘릭시르 2021-07-26, 336쪽, 미스터리 소설

🍊 얼마 전 (이라기엔 조금 지난) 방영한 드라마 ‘유괴의 날‘이 인상적이라 (실제 제대로 드라마를 보진 않았으나) 찾아보니 원작소설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인스타에서 리뷰를 많이 보던 이 책과 같은 작가님이라는 걸 알게 되고 마침 도서관에 있어 읽게 되었다.

🍊 일단 책의 시작은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라는 문장으로 이미 한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파격적으로 시작한다. 물론 요즘 강렬한 시작이 많아 파격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작을 계속 긴장감 있게 계속 유지하는 건 역시 작가의 힘이다. 화자인 주인공에 서술에 의하면 주인공은 비록 다현을 호수에 버렸으나 죽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책에 니오는 누군가는 범인이고 범인은 주인공을,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에 스릴이 계속 느껴진다.

🍊 크게 이 소설은 세 가지 반전이 있는데, 추리소설을 많이읽어 본 사람이라면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진 못해도 막연히 이럴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다. 그러나 뻔하지만은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잠시 ‘혹시‘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빠른 전개에 잠시 가졌던 생각을 잊어버리고 작가에게 휘말렸다. 확실한 건 다 읽기 전까지 책을 덮기 어렸다. 덕분에 새벽 늦게 잤다. 소설을 구성한 전부라 할 수 있는 반전 세가지가 어디선가 느껴본듯한 것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 그리고 반전이나 추리가 전부가 아니다. 준후, 다현, 조미란, 은성, 영주, 황권중 전부 현실서 부담스럽고 위험한, 그리고 불쌍하고도 연약한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의 구성원들로 함께 있는 사람들. 나는 어떠한가.

🍊 마음에 더 남은 구절들

🌱아주 잠시, 준후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8

🌱
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269

🌱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조미란의 얼굴을 보며, 정은성은 조미란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슬프다는 얼굴을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를 실망시켜.˝
279

🌱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323

🌱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강치수가 답했다.
˝외로웠겠죠.˝
328

🌱
아무도 모른다.
그 냄새나는 차의 문을 닫을 때, 황권중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준후는 길고 긴 복도를 웃으며 걸었다.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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