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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 Jean ㅣ 푸른도서관 48
문부일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8월
평점 :
젊음 내지는 자유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청바지와 찢어라는 단어의 조합은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으로 들렸다.
청소년들은 공부라는, 학교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리가 드러나는 판타스틱한 멋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 쌓아둔 다른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청소년 대상의 책의 단편은 그리 쉽게 접하지 못하는데 푸른책들에서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단편을 또 만나는 것은 행운일까? 아님 단점일가?^^
한가지, <살리에르, 웃다>와 <한파주의보>, <6시 59분>은 다른 책에서 읽었음에도 역시 좋았따.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들이 청소년 책을 보는 이유는 재미도 있겠지만 책 속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심리나 생각을 엿보기 위함이 더 크다. 그런 이해가 바탕이 없다면 내 아이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수 없을테니.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녀석은 알바를 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전단지를 돌리는 것이라도. 자신이 벌어 엄마의 눈치나 간섭없이 마음껏(대체적으로는 피씨방비로) 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알바학 개론>을 읽을 때는 풋! 웃음이 났다.
대한민국은 학생들에게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한다. 분명 타고난 재능과 적성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교육의 최종 목적은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라게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자신의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 옳은 일일진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모두 공부로 몰고 있다. 절대 다른 길을 열어주려하지 않는다. 공부=성공이라는 공식이 당연하다는 듯. 그렇기에 <살리에르 웃다>에서 수혁이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이 쓴 것인 냥 백일장에 제출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결국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인정 받는 분위기가 아이들을 그렇게 몰고 간 것이다.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타인과 비교만 하지 않더라도 훨씬 행복할텐데.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지옥을 경험한다고 말한 사르트르 말이 떠로른다. 좀더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찢어, Jean>은 청바지를 찢어 입느냐 마느냐 보다는 교복을 얼마나 더 줄여 짧게 혹은 슬림하게 입느냐로 마찰을 빚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제 많은 부모들은 아예 첨부터 줄여 주기도 한다. 마뜩치는 않지만.
한울이의 엄마 아빠는 고교 중퇴 커플로 한때 껌 좀 씹고 놀았고 사고쳐서 학교도 잘리고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낳고서야 정신차리고 검정고시를 보고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엄하디 엄한 훈장님으로 바뀌었다. 자식한테 그러한 사실을 속이고 숨통을 죄이게 아이를 닥달한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결국 엄마와 한울은 혈맹을 맺고 운명에 저항을 하려한다. 이건 반란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 반란이 성공해야만 엄마는 평생 아빠한테 잡혀 살지 않을 수 있고 자신도 파파보이로 살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다행히 반란은 성공이란 놈이 미소를 보였다.ㅋㅋ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어 저녁 준비도 늦춰가며 아이들의 배고프단 소리도 무시했다. 미안하다, 애들아^^
<이토록 사소한 장난>은 왕따 문제가 학교라는 집단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군 내에서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 문제는 그것을 교묘히 은폐하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은유 이야기는 꺼내지 마. 교문 앞에 기자들이 얼쩡거릴 거야. 물어도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리고 은우는 왕따 안 당했지?"
"은우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누가 때린 건 아니지?"
"사건을 조사하러 장학사랑 형사들이 올 거야. 아까 말한 것 처럼 말해. 다들 하교 잘 다니는데 혼자서 왜...."
욕지기가 나온다.
주인공 노준 역시 석철이나 다른 친구들과 다름없이 은우를 괴롭히고 삥을 뜯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은우가 자살의 결정적일 이유인 팬티까지 벗고 춤을 추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일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장난? 장난에 누군가는 죽어. 어디서든 보통만 하라고 하찮아. 그 보통이 어려운 사람도 있어. 그 친구도 그랬을 거야."라고 했던 의경인 형도 결국은 왕따와 구타로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얼마전 해병대 내의 기수열외에 의한 총기 사고로 인해 전국이 시끌시끌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병들어 있는 것일까. 너무 우울하다.
<고소 취하>편에서는 부모의 이혼에 관련된 얘기가 펼쳐진다. 부모의 이혼이 불가피하다면 자식이 입게 될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상처가 없을 수는 없지만 서로 헐뜯고 싸우고 그로인해 자식을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하는 등의 일은 없어야 하지 않냔 말이다.
청소년기의 반항이든 일탈이든 부모의 믿음은 아이를 제자리로 돌릴 힘이 있다. 그렇지만 쌩쌩불던 바람도 봄의 살랑거림에 눈이 녹듯 그들의 마음도 그렇게 사르르 녹았으면 좋겠다.
유쾌한 이야기도 우울한 주제와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 <찢어, Jean>의 문부일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