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내버려 둬 - 제7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초등 개정교과서 국어 5-1(가) 수록 미래의 고전 12
양인자 외 7인 지음 / 푸른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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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에 비해 단편집은 읽는 횟수도 적고 발행 종수도 훨씬 낮지만 나름의 장점과 재미를 갖고 있다. 자칫 스토리 전개가 엉성하다거나 허무하게 끝맺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동 중에 읽기에도 좋고 스피디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 좋다.

<날 좀 내버려 둬>는 표지의 그림이나 제목이 조금 묵직하고 깊은 우울감이 느껴진다.

이전의 ‘푸른문학상’의 수상작들을 보면 밝고 유쾌한 작품보다는 우울한 작품이 많아서 불만이었는데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우울하지 않다. 엥~ 그런데 표지는 뭐야, 좀 더 밝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 표현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어쨌든 신인작가들의 작품이라니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한 소재의 작품을 기대하게 되나, 대부분의 소재는 생활동화에서 자주 읽어왔던 패턴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또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 아니야? 하고 읽게 되니 말이다.

독자의 입장에선 언제나 다른 이야기를 찾게 되기는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는 가장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하게 울궈먹을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소재란 것을 안다. 그러나 신인이기 때문에 참신함을 바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ㅎㅎ

그래도 엄마가 골프장 도우미로 등장하는 동화는 처음이라 그야말로 신선했다.(다미의 굿 샷)

아홉 편의 동화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을 끄집어 낸 것들이 많았다.

재혼 가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점을 다룬 <꼬마 괴물 푸슝>, 치매 노인에 대한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지폐, 수의를 입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초원을 찾아서> 등 동화가 아니면 평소에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를 것을 책을 통해 내 주위의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하지 않나 하는 점이야 말로 책이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그리고 뒤쪽에 실린 작품 해설 란에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황수대님의 평에서

‘아무리 좋은 내용일지라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줄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요’라는 이 말은 평소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책을 고르는 기준의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재미’일 때가 가장 많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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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엄마 팥쥐딸 미래아이문고 10
박현숙 지음, 이승현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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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고 웃지는 않더라도 빙긋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 좋다.

부모의 이혼으로 새엄마를 맞이하는 소재는 지난 10년간 어린이 동화에서 가장 많이 우려먹을 수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책들이 지겨워 지고 뻔한 스토리로, 그것도 결국은 새엄마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피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혼가정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재혼과 같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늘어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새엄마=팥쥐 엄마‘란 공식처럼 머릿속에 콕 박힌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이로 인해 아이들의 스트레스나 불안 등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탈선이나 고약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그래서 대부분 동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이 콩쥐 엄마, 팥쥐 딸로 설정되고 있다. 그것을 제목으로 끄집어 내어 전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기가 쉬웠다.

대부분의 이혼가정에서 부부 사이가 나빠졌을 때 아이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의사표현도 하지 못한 채, 부모의 결정에 의해 한쪽 부모와 살게 되다가 재혼이라도 할라치면 아이는 삐딱선을 탈 수 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껏 자신을 낳아 키워준 부모이고 자기가 싫어서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결정권도 갖지 못한 아이한테 어른들이 더 많이 감싸 안아주어야 하는데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나중엔 화를 낸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대로 서럽고 그런 부모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러니 새 엄마 혹은 새 아빠가 좋아 질 리가 없다. 이런 뻔한 갈등 구도 속에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새 엄마(아빠)와 화해의 손을 잡는다거나 친밀한 관계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 꼭 등장하는 어른답지 못한 행동과 말을 하는 어른들이 빠지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동화를 읽었다면 이런 아이들을 보는 우리의 눈에 편견이란 색안경을 쓰진 않았으면 하고 스스로 되내어 본다. 부모의 이혼만으로도 충분히 맘 아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 새엄마란 편견도 이제는 깨져야 한다.

콩쥐처럼 훌쩍거리는 아이가 아니라서 좋고 신데렐라처럼 약한 척하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는 새엄마의 말대로 주인공이 할 말도 하지 못한채 가슴에만 쌓아두면 책을 읽으면서 훨씬 마음 아팠을 것이다. 씩씩한 은하수와 못지않게 씩씩한 새엄마, 이들 가정은 어떤 가족보다 단단히 행복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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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시장에 가면 경제가 보여요 책보퉁이 2
양대승 지음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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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장에 가면 경제가 보인다는 제목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경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것을 출판사가 놓치지 않고 잘 캐치한 것 같은데 경제의 전반적인 내용을 시장을 통해 확산시켜가며 전부다 설명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양도 방대하고 쉽게 풀어 썼다. 그런데 미안스럽게도 내게는 내용 정리가 덜 된 듯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로 복잡한 상태에서 책을 읽어서 일까....

만화도 적절히 안배하였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용어도 잘 정리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리뷰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시장에 가면 경제가 보여요>에서는 경제학자 애덤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으로 자유 경제시장의 수요공급이 이뤄지면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이론을 포함하여 시장의 형성되고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 외국과의 무역 시장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경제의 총체적 지식을 쉽게 이야기를 하듯 들려준다.

시장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옛 재래시장을 떠올리는데 대형마트와 백화점, 인터넷을 통한 쇼핑몰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져있어 이에 대한 부분도 자세히 기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외환시장이나 주식 시장과 같은 절대적으로 경제 지식을 알려주는 곳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문방구나 동네 구멍가게, 미용실 등도 시장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른인 나조차도 시장이란 개념의 밖에서 떠돌고 있었을 것을 확 끌어서 시장 속으로 넣어준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책이 그렇게 허술하거나 완성도 낮은 건 아닐 진데 아무래도 내가 설렁설렁 읽었던 탓 일 게다.

어린이 경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어렵지 않게 풀어 쓰려한 노력이 보이는 이 책이 전체적인 경제를 훑어보기에 적당하다. 예전 같았으면 애들이 뭘 어린나이에 경제책이니 경제 교육이니 하겠지만 올바른 소비습관이나 용돈 관리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더구나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좋아질지 모르고 이러한 침체기가 쭈욱 될 것을 예상되기 때문에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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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숙의 그림책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1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엄혜숙       
 
돋보이는 우리 창작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운율감을 살린 글,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정성껏 그린 그림, 단정한 책꾸밈 등이 돋보이는 우리 창작 그림책이다. 그림책이 많이 나오지만, 이만큼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개성이 돋보 이는 창작 그림책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운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표지 그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는 ‘손 큰 할머니’와 아이 동물들, 어른 동물들이 등장하여 다같이 만두를 빚고, 만두를 찌고, 만두를 나눠먹으면서 새해 첫날을 맞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민담의 세계, 마을 사람들이 하 나가 되어 일을 하고, 그 결과를 향유하는 공동체의 생활상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마을 공동체 모 습도 떠오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식들과 놀이들이 잔뜩 등장하는 백석의 시 <여우난골族>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앞서 말한 미덕만큼이나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사건이 모두 ‘손 큰 할머 니’의 성격과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인 ‘손 큰 할머니’는 아이들이 동일시하기보다는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대상인데, 이 때문에 아이들은 책 속에 흠씬 빠져들기가 어렵다.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면서도 그림의 비중과 역할이 너무 작아,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도 아쉽다. 또 시간적 배경이 명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새롭다기보다는 상투적이라는 점도 눈에 뜨인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지만, 여러 번 이 책을 읽다 보니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한 번 정리해 보 았다.
 
인물의 성격
 
그림책을 볼 때 사람마다 유심히 보는 점이 다를 것이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에 관심이 많다. 주인공의 성격과 역할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제각기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도 우선 주인 공 할머니의 성격에 관심이 갔다.
이 그림책에서 ‘손 큰 할머니’는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처럼 맘껏 힘을 휘두르는 존재다. ‘손 큰 할머니’가 일을 벌이면, 모두들 할머니를 따라간다. 즉, ‘손 큰 할머니’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모든 사건은 ‘손 큰 할머니’를 축으로 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무엇이든지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이다. 그러기에 설날을 맞아 만두를 빚을 때도 엄청 많이 준비를 한다. 아이 동물들은 만두 빚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본다. 할머니가 만두 빚을 채비를 하는 것을 기웃기웃 기대하며 보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 동물들은 어떤가? 잔뜩 준비한 만두소를 보고는 그만 ‘입이 떠억 벌어지는’ 것이다. 그 많은 만두를 빚을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손 큰 할머니’는 이렇게 만두 빚을 밀가루 반죽과 만두소를 엄청 많이 마련해 놓고는, 막상 만두 빚을 때가 되자 ‘누가 열심히 하나?’ 망원경으로 감시를 한다. 넉넉하게 음식을 마련하는 맘씨 좋은 할머니에서 갑자기 누가 열심히 일하나 안 하나 감시하는 감시자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크고, 멋진 만두를 빚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림 1> 할머니는 망원경으로 누가 열심히 일하나 감시를 한다.
 
이렇게 할머니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이야기의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다같이 만두를 만들어 나누어 먹자.’는 게 이 그림책의 주제겠지만, 다같이 만드는 것이 즐거운 게 아니라 지루하고 힘든 노동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손 큰 할머니’와 숲속 동물들이 만두 빚는 과정을 보자. 처음에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만두를 빚는다. 여우는 여우 모양의 만두를, 호랑이 는 호랑이 모양의 만두를 빚는다. 자기 생긴 대로 개성대로 빚는 것이다. 이렇게 한참이나 만두를 빚는다. 그러다가 점점 크게 만두를 빚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만두소는 줄지를 않는다.
급기야 만두 빚던 동물들은 나가떨어지고, 그제서야 할머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 하나를 빚자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인데, 이 만두를 아주 큰 가마솥에 밤새도록 쪄서 새해 첫날 아침에 나눠먹는다. 그리고 모두들 나이도 한 살 더 먹는 것이다.
 
 
<그림 2> 엄청나게 커다란 가마솥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만두가 익어간다.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익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노동 끝에 만든 만두를, 다함께 쪄서 맛있게 먹고는 즐겁게 새날을 맞는다는 대목에서 웬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안이하게 마무리한 게 아닐까. 또 엄청나게 많이 만두 빚을 준비를 하고, 며칠이고 만두를 빚다가 아무리 빚어도 다 빚을 수 없으니까, 그냥 큰 만두 한 개를 빚자는 발상은 용두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커다란 만두를 빚을 수는 없었을까?
 
상투적인 반복과 예기치 않은 사건이 주는 효과
 
이렇게 할머니의 역할은 변하지만, 할머니의 성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분이 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것들--엄청 많은 밀가루 반죽, 엄청 큰 함지박, 엄청 많은 만두소, 엄청 큰 바늘과 가마솥--을 보면, 반복되기 때문에 재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상투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할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 큰 할머니’이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성격이 일관되게 나타나면서도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줄 수는 없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꺼내서 다시 읽어보았다.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표지 그림
 
이 그림책에 나오는 구리와 구라는 들쥐 형제인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음식 만들기와 먹기’이다. 구리와 구라는 숲속에 가서 도토리와 밤을 줍다가 예기치 않게 커다란 알을 발견하고, 이 알로 커다란 빵을 만들어 숲속 친구들하고 나눠먹는다. 같은 주제지만, 이 편이 더 즐겁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구리와 구라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음식 만들 기와 먹기’라는 일관된 성격으로 등장하면서도, 예기치 않게 커다란 알을 발견하는 놀라움, ‘이 알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커 다란 빵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아이다운 발상이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구리와 구라가 빵 냄새를 맡고 하나둘씩 나타난 동물들과 욕심내지 않고 빵을 나누어먹는 모습은 정말로 귀엽고 천진스럽다.
 
 
<그림 3> 구리와 구라가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가다가 커다란 알을 발견한다. 둘은 이 알로 무엇을 만들까 한참이나 생각한다.
 
 
<그림 4> 구리와 구라는 숲에서 발견한 커다란 알로 커다란 빵을 만들어 숲속 동물들과 나눠먹는다. 그런데 둘이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음식 만들기와 먹기이다.
 
이에 비해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는 ‘손 큰 할머니’의 ‘엄청 크게, 엄청 많이’ 하는 습관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만두 빚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말이다. 하지만 동물들은 힘겨워하면서도 아무도 할머니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두를 만든다. 해마다 엄청 많이 만두를 만드는 할머니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이렇게 휘둘려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과정은 다 잊고, 나중에 만두를 쪄서 먹고는 모두 즐거워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민담의 세계가 재현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사람 --그것도 ‘손 큰 할머니’ --중심으로만 그 세계가 펼 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할머니가 즐겁게 엄청 많이 만든 만두를, 다른 동물들이 신나게 먹는 그런 세계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와 동물들이 모두 즐겁게 만두를 만들고 즐겁게 나눠먹는 그런 세계는 그릴 수 없는 것일까?
 
글과 그림의 역할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의 글과 그림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아무래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이에 어울리는 그림이 담긴 그림이야기책이다. 그만큼 그림보다는 글이 이야기 전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성이 강한 그림책의 경우, 말 곧 문장이 이야기 전개를 주도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점차로 삽화가 들어 있는 그림이야기책으로 옮겨가기가 쉽다. (마쓰모토 다케시의 <그림책론> 참조) 그런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도 그림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 되기 보다는 글과 그림이 동시성을 지니고 전개되면서 그림이야기책으로 옮겨가는 게 아닌가 한다.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다시 그림으로 표현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림책을 본다’고 할 때는 그림을 보고, 글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그림책에서는 그림과 글이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라도 없으면, 완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림이 없더라도 내용 전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책의 매력은 반감되겠지만 말이다. 그림책의 글로서는 아쉬운 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야기책이라면 아주 수준 높은 그림이 들어 있 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리듬감이 아닐까 한다. 소리내어 읽다 보면, 판소리의 글처럼 운율 이 저절로 붙으면서 흥겨운 느낌이 드니 말이다. 게다가 들 속에 가끔 등장하는 노래는, 옛날에 일을 하면서 불렀던 노래도 연상되고 해서 흥겨 운 느낌을 한껏 살려준다.
‘손 큰 할머니’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자.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이다. 큼직한 털쉐타를 입고, 퍼머머리까지 한 할머니 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나타난 할머니는 보통 할머니가 아니다. 동물들을 좌지우지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할머니다. 큰 산만큼 만두소를 만 들고, 마당을 지나 소나무 숲까지 가도록 밀가루 반죽을 하는 할머니다. 그뿐인가? 이렇게 엄청 크게 만든 만두를 찔 커다란 가마솥까지도 갖고 있는 할머니다.
이런 할머니라면, ‘할머니 손이라도 크게 그려졌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손이 크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고, 안다고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재해석해서 그렸더라면 즐거운 기분이 더 커졌으리라. 사족이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손 큰 할머니라고 하면 서 왜 손이 크게 그려져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른인데도 ‘손이 크다.’는 말의 함축된 의미를 몰랐다는 것이다.
글이 주도성을 갖더라도 그림 나름대로 자유로운 영역이 있었더라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컸을 게다. 만약에 밀가루 반죽이 마당을 넘어서 소나 무 숲까지 갈 때에도, 그냥 넘치고 넘치는 밀가루 반죽뿐 아니라, 그 반죽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길 가던 동물이나 새가 화들짝 놀란다든가 , 나무가 그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진다든가--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림 5> 밀가루 반죽은 마당을 지나 저기 저 소나무 숲까지 닿았다. 이 정도 만두를 빚으려면, ‘참, 할일이 엄청나다!’
 
글이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을 다시 상상하고 해석해서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일, 그것이 어린이책에서 그림이 할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그림책을 기다리며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그러기에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해도, 결국은 독자인 어린 이들이 즐겁게 책을 보고, 그 속에서 뛰놀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어린이책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말을 거는 형태’ 라고 생각한다. 즉 어린이와 즐겁게 대화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떻게 말을 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네, 아니오’ 밖에 나올 수 없는 말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만큼 발랄하고 즐거운 대화가 될 것인지는 말을 거는 어른 편의 역할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볼 때마다 이 책을 만든 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을 유심히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어린이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기쁘다. 미래를 향해 열린 어린이들과 같은 책을 보면서, 같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어린이 같은 마 음이 되어 볼 수 있어 기쁘다.
자꾸만 보아도 즐거운 글, 자꾸만 보아도 또 보고 싶은 그림, 그런 어린이책을 기다리며 소박한 생각과 글을 마칠까 한다.
 
출처 : <꿀밤나무> 제1호 (1999. 1. 1)
 
이 글을 쓴 엄혜숙은 아동 도서 편집자이자 번역자이다. 책읽기와 영화보기, 술이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기가 취미이다. 지금은 인하대학교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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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사다리 - 사라가 만난 세계 5대 종교 이야기
빅토리아 크라베 지음, 콘스탄체 구르 그림, 김지선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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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움을 경험하는 사라는 세계 5대 종교라 할 그리스도교, 유태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에 대해 할머니의 친구들을 통해 하나씩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동안 종교에 관련된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이 가장 편안하게 읽혔다.

그 이유가 이전엔 종교가 없었고 몇 달 전부터 교리수업을 받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나 일단은 할머니의 죽음이란 설정이 종교와 연결고리를 찾는데 가장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종교에 입문하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공통적인 것 중 하나가 ‘어느 누구에게도 악행을 저지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라’와 같은 가르침인데 이것만 놓고 보자면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모두 선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럴듯한 말과는 다른 행동들, 이율배반적인 것에 회의를 느껴 계속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보면 이런 종교가 요즘 청소년들의 탈선이나 범죄를 막는데 종교가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인간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지켜야 할 도덕성이 땅에 떨어져 있는 시점에 학교 교육은 오로지 입시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아이들이 그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발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교육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종교가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우리 아이들도 아직 나처럼 종교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지금이라도 빠질 수 있기만을 바라는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 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종교는 조금씩 다른 신, 또는 무이한 신이라고 하더라도 종교로서 평안을 얻고 신에게 나아가는 다양한 길이 있는 것이지, 좋고 나쁘고가 아니므로 다른 종교도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교 간의 갈등이 전쟁을 불사 하고 있는데, 독일의 학자인 한스 큉이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한 말은 종교인들이 한번쯤 새겨야 할 말인 것 같다. 같은 종교인들만 보듬으려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내 이웃의 종교도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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