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종류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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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는 조르주 페렉이 그렇다.

내가 천재가 아니니 천재를 알아볼 길은 없다.

뭐가 천재인 지도 잘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천재' 같다.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천재 같은 느낌을 주는...


옛 저택에서는 계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오늘날의 건물들에서는 그보다 더 더럽고, 더 춥고, 

더 적대적이고, 더 인색한 것이 없다.


우리는 계단에서 더 많이 생활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문장을 보면 감응된다.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무지 좋다.


책장을 넘기지 않고 글자를 노려보고 있게 된다.

거꾸로 읽어도 보고, 다시 돌아가 읽어도 보고, 

매직아이 그림 보듯 책장을 뚫고 그 너머도 보게 된다.


천재가 쓴 글인데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좋다.

대개, 천재들은 너무 난해하게 쓰는데.

페렉의 글도 난해하다.


이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짜증이 안 난다. 


먼저, 우리는 우편배달부와 함께 학교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앞도 뒤도 없이 이 맥락없는 문장이 이상하게 좋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우편배달부와 함께 학교에 가기.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을 거침없이, 뜬금없이 떠드는데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조르주 페렉과 같이 이상해지고 싶다, 차라리.

그럼 뭔가 굉장히 쓸데없는데,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고,

알고 보면 굉장히 괜찮은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의 천재에게 기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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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베끼기 - 자기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에 관하여
아일린 마일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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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깨끗하게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다.

대개는 밑줄을 긋기 위해 손에 연필을 그러쥐고 책을 읽는다.

그래서 읽은 책은 대개 '걸레'가 된다.

메모도 숱하고 하고 뭘 그렇게 덕지덕지 붙이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새책과 진배 없다.


밑줄을 하나도 긋지 못했다.

밑줄 그을 곳이 없다.


어쩌다 그을 뻔했다. 연필을 갖다 대고 잠시 있었다.

그런데 긋지 못했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밑줄긋기에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밑줄을 부르는 건 도드라진 문장이다.

독자적인 문장인 경우가 많다.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바로 앞 혹은 뒷문장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밑줄을 그으려고 할 때, 왜 하필 거기서부터일까?


그건, 그 문장을 따로 떼어놔도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뒤 문장과의 긴밀성이 끈끈하지 않을 때.

그냥 그 문장만으로도 말이 될 때.


"아니. 그냥."


이런 문장에 밑줄 긋는 사람은 별로 없다.

뭐가 '아니, 그냥'인지 앞뒤 문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는, '아니, 그냥' 자체보다는 '아니, 그냥'의 이유가 되는

다른 문장에 밑줄을 그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 책에 밑줄을 긋지 못한 건...


독립적으로 따로 떼어놓기엔 앞뒤 문장과 맥을 끊을 수가 없어서다.

어디서부터 밑줄을 그어야 할지, 시작점과 끝점을 찾지 못했다.


그냥 한 페이지를 다 그어야 한달까.


그건 밑줄답지 않다.

밑줄은 어쩌다 그어야 밑줄답다.


한 페이지를 다 그어야 한다면 그냥 줄을 치는 것이지, '밑줄'이라 할 수 없다.


도드라져서 밑줄로 떼놓을 문장은 없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가 끈끈해서 한 챕터가 한 문장처럼 느껴지는 책.


그게 이 책이다. 


낭비와 베끼기.


이 책은 줄곧 낭비와 베끼기에 관해서 말한다.

그런데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는 낭비하거나 베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글쓰기를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일린 마일스가 '낭비하고 베낀' 글을 읽는 재미가 컸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 건데.

이런 게 문장이란 건데.


다음으로 읽을 책이 정해졌다.

아일린 마일스의 또다른 책은 번역본이 없다.

원서로 읽어야겠다.


설레라.


Chelsea Girls: A Novel


The Importance of Being Iceland: Travel Essays in Art (Semiotext(e) / Active Ag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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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과 기억
윤미애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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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벤야민은 글을 너무 못쓴다고. 하나도 알아먹지 못하겠다고. 자고로, 글은 이해되어야 한다고. 과연, 그게 벤야민 탓일까.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결심하게 만든 분. 독일어 정복에 실패했으니 그를 읽기 위해 이 책에 기대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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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궁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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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되는 이들의 필독서. 우리는 무지한 스승을 욕해서는 안 된다. 무지한 스승의 ‘빈곳‘에서 배울 때, 준비되지 않은 ‘진짜‘ 배움이 가능하다. 스승이여, 다 아는척 설명하지 말길! 학생을 해방시킬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스승이다. 가르치지 말고 끌어달라! 그렇게 스승은 무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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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까?
케일럽 에버렛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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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로 먼저 읽었는데, 엄청 재미있다. 내용도 재미있고 쓰는 방식도 소설같이 재미있다. 언어가 다른 곳에 살다 보니, 언어가 다르면 생각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더 배운다. 생각은 똑같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생각하는 <순서>는 다르더라 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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