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비 문학과지성 시인선 627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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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삶은 그로테스크해서 슬픈 지도 모른다. 아니, 슬퍼서 그로테스크한 지도. 나는 슬픔이 슬프기 전에 우선, 두렵다. 두려움과 무서움과 그로테스크는 한 줄에 서 있다. 슬픔이 두려워 그로테스크해지는 백은선의 시들. 내게는 그랬다. 두렵지만 슬퍼서 울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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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세世
이피 지음, 정새벽 옮김 / 난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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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쓸 수 없는 책을 좋아한다. 그런 책에는 쉽게 말해지지 않는 진심, 단단하게 눌러 쓴 문장의 온도 같은 게 있다. 한국인 최초로 뭐뭐뭐하는 저자의 이력보다 눈에 띈 건, ‘변방에서‘란 단어. 아무나 쓸 수 없는 책을 쓰기에 너무나 최적인 장소, 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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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살벌하고 웃기는 - 우리 곁의 그리스 여신들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 돌고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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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보다 번역자 이름 보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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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페이퍼를 간략하게 썼다. 그 책의 저자가 60세에 인생을 다시 살기로 작심하고

70세에 졸혼하고 88세에 독서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쇼킹하고 감동적인 배경이 있어서.


근데 책 제목이 어디선가 자꾸 기시감이 드는 거다.

제인 오스틴이야 다룬 워낙 많으니 뭐. 


제인 오스틴 소설 말고, 다른 사람이 제인 오스틴을 모티프로 쓴 책.

대충 봐도 이 정도. (바로 아래에 사진이 안 붙어 아쉽)


아무튼 다시 찬찬히 돌이켜 보니, 이 책이 떠올랐다!


리리딩(Re-reading)

다시 읽기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제인 오스틴'에 관해 본 것 같아서.


오스틴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오만과 편견'에도 다시 읽기의 힘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상사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시의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상했던 엘리자베스 베넷은 그가 해명 편지를 보내자 처음에는 격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편지를 되풀이해 읽게 된다.

-71p


이 장면은 독자의 사회적, 도덕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으로, 다시 읽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에마'를 처음 읽는 독자는 그저 에마의 대사가 웃기고 재미있으며, 지나치게 말이 많은 베이츠 양이 그 정도는 당해도 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오스틴이 놓은 덫에 걸려들어 베이츠 양의 수다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76p


'리리딩'에서 추구하는 바는 말 그대로 책, 특히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다.


다시 읽기를 통해 우리는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애써 무언가를 발견하려 하지 않아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이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특정 단어나 문구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쯤 가면 이런 문장도 나온다.


다시 읽기는 우리가 지금은 무엇을 찾고 있으며,

과거에는 무엇을 찾아 헤맸는 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다.

-279p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지만.

저자가 '선언하듯', 혹은 '단정하듯' 말하고 있어도 독자인 우리는 그게 모두 가설이고 가정임을 안다. 책 어디에도 진실은 확정되지 않는다. 진실만은 말하는 책은 이 지구상에 단 한권도 없다.


팩트와 진술이 버무려져 있다. 다만, 독자인 우리는 그 팩트와 진술을 낱낱이 세고 앉아 있지 않고 그 책을 읽을 때만큼 저자에게 머리를 기댄다.(이것 역시 팩트 아니고 진술)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 많이 기댔다.

저자가 하는 말이 거의 팩트 같고, 아니, 전부 팩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다.

내가 책을 다시 읽을 때, 최소한 할일 없다거나 무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의심을 사서 하고 싶진 않아서다. '다시 읽기'의 효용을 믿고 싶어서다.


저자에 의하면 '다시 읽기'란 이런 것 같다. 


어차피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읽고 싶은 것만 본다.


한 권의 책에 쓰인 그 전부의 내용을 다 읽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남는 건, 기억되는 건 일부다.

내가 보고 싶고, 읽고 싶었던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

찾아 헤매는 것과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단히 높다.


책을 한 번, 두 번 더 읽는 가벼운 수고로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안 할 게 뭔가.

나는 이 책부터 다시 읽을 셈이다.


이 책, 다시 읽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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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12-0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기에 관한 문구를 읽으니 문득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이란 에세이가 떠오르네요.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도 다시 읽기를 시작하며 썼다고도 하던데…저는 청춘의 독서를 오디오로 다시 듣고 있는데 완전 새롭게 들려서 이게 읽었던 책 맞나? 싶더군요.ㅋㅋㅋ
대가들도 저렇게 재독을 하고 있는데…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워낙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있으니….ㅜ.ㅜ

그래도 제인 오스틴 다시 읽기는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안 읽었는데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고전소설들도 넘 많아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입니다만…이것도 읽고 나면 또 잊어먹겠지? 그런 슬픈 예감이 듭니다만..
그래도 읽어봐야겠죠.
시간이 허락되면 엠마 먼저 읽고(제가 아직 엠마를 안 읽었더라구요.) 올려주신 책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제인 오스틴 만세입니다.ㅋㅋㅋ

젤소민아 2025-12-08 11:31   좋아요 1 | URL
[끝나지 않은 일] 있는데 아직 못읽었어요~. 오늘 책나무님과 댓글놀이중~~^^
제인 오스틴 작품은 솔직히 전 왜 이리 인기인가...왜 이리도 유명한가..잘 모르겠더라고요. 매번 거기서 거기인 듯한 ‘작은 아씨들‘의 ‘조‘같은 여자 주인공의 남편감 찾기...

그런데 그 시대 배경상을 보고 제인 오스틴이 얼마나 걸출한 선구자였는지 알겠더라고요. 지금에 보니, 그런 이야기가 좀 촌스럽기도 하고,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 시대로선 여자가 직접 사랑을 쟁취하려 한다는 자체가 놀라움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정말, 다시 읽고 싶은 작가. 제 오해를 좀 풀기 위해서도요.
한 번 읽을 때는 아무래도 줄거리가 꽂히고, 두번, 세번 읽을 땐 의미라든가 숨은 묘미가 보이지요. 지금 프레드 울먼의 ‘동급생‘을 재재재재독 중인데 뭐가 또 보이듯이요~^^

‘동급생‘은 제가 소설강독하는 책이라 오독이 뭡니까...십독은 한 것 같아요. ㅎㅎ
 














책과 관련해서 좀 이상한 마음이 있다, 내게는.

남들이 다 좋다 하면 읽기 주저되는.

읽으려고 하다가도 말고,

읽고 있다가도 중단하는.


거 참, 묘한 심리로다.


예를 들어, '혼모노'가 그렇다.

나오자마자 샀는데, 요즘 핫한 배우님이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소설 읽으면 되는데'하면서,

뭐, 안 그래도 좋은 작품이니 그렇겠지만,

엄청나게 화제가 되면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제치고 막막 치고나가면서,


읽기가 싫어졌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도 그랬다.


글쓰는 사람들 만나면 이 책 이야기를 미리 짠 것처럼 했다.

사놓고 모셔두고 있을 때였다.

더 빨리 읽어야 숙제같은 책들이 많아서.


그런데 시간이 나도 자꾸 뒷순위로 밀리는 거다.


주변에서 하도 좋다 하니까.


무슨 가방도 아니고, '책'이라면 좋다고 하면 좋은 건데...


아무튼 드디어 펼쳤다.

3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아 짜증...


이 좋은 걸 이제야 읽다니. 

이제부터는 남들이 좋다하면 무조건 그것부터 읽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좋다고 할 땐 다 이유가 있는 거다~~~.


30페이지밖에 안 읽었는데 큰 걸 배웠다.


거리두기-.


저자는 글 쓸 때, 압도적으로 유용한 자세에 대해 설파한다.

그게 '거리두기'이다.


누구와 거리두기? 쓰는 자와.

뭔 말이람? 쓰는 사람이 엄연히 '나'인데 쓰는 자와 거리를 두라니.


여기에 '내포작가'를 개입해 보면 어떨까 한다.

지금 소설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에세이 이야기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소설과 달리, 무조건 '화자'가 된다.

에세이의 화자는 무조건 '나'니까.


그런데 비비언 고닉은 바로 그 '나'와 거리두기를 하라는 거다.

이건 또 뭔 말이람?


그렇게 계속 질문하며 이어 읽었다.


애컬리(에세이 작가)가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목소리를 명료히 하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거리 두기를 성취하고,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신뢰할 만한 서술자가 되는데 30년이 걸린 것이다. 


그는 누구였는가? 나는 누구였는가? 왜 우리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을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그는 깨달았다. 난 언제나 아버지가 나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아버지를 알고 싶지 않았던 거구나. 그러고는 또 깨달았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구나.


서술자는 분노를 기록하지만, 글은 분노로 미쳐 날뛰지 않는다. 서술자는 제국 통치를 증오하지만, 이 증오를 통제하고 있다. 

저자는 에세이에서-나는 여기에 소설도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상황과 이야기를 구분할 것을 권한다.


애컬리는 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3년이 아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들려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이다. 꺼내놓는 데 30년이 걸린 것은 이야기였다.


읽는데 진심, 소름이 돋았다.

상황과 이야기.

어려운 것 같지만 몇 개 되지 않는 문장으로 그 '느낌'까지 소상히 전해준다.

기가 막힌 작가다, 비비언 고닉은.


소설에서 상황과 이야기를 구분하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필시 대단히 유용할 것이다.


에세이와 소설에서 상황과 이야기를 구분해 보려 하는 작은 노력만으로

그 독서의 질은 대단히 달라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P.S. 


나는 책 갖고 장난을 잘 친다. 책하고 친하고 싶어서다. 책을 자꾸 들쳐보게 되는 방법을 생각해 내려 애쓴다. 예를 들어, 이런 장난이다. 이 책 속에서 인용하는 영국인 에세이스트 애컬리(J.R. Ackerley)의 책 <My Father and Myself>. '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인데 국내엔 번역서가 없다. 

아마존에서 원서 표지를 찾아 프린트해서 그 책이 소개된 면에 갖다 붙였다.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이런 하이퍼텍스트성 텍스트를 나는 사랑해마지 않는다. 더 읽고 또 리뷰 써야지.






(알라딘 서재에 왜 요즘 사진이 안 올라는지 ㅠㅠ. 책에다 표지 갖다 붙인 사진을 올렸는데 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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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12-08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저도 비비언 고닉 작가 참 좋아합니다.
이 책도 참 좋다. 그러면서 읽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기억이 또 희미하네요.
재독해야 할 책인 것 같아요.^^

젤소민아 2025-12-08 10:58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오늘 제가 ‘리리딩‘ 리뷰 올렸어요~~‘재독‘이란 단어가 보여서 반갑네요~. 좋은 책은 재독, 삼독해야 할듯요. ‘리리딩‘ 꼭 읽어보세요~. 들러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