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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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 줄 알았다. 


논픽션이라더니, 주인공이 있지 않나 말이다.


데이비드 조던.

뉴욕주 북부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 1851년,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시간에 태어난 사람. 

별에 몰두하는 사람. 


가을 저녁 옥수수 껍질을 벗기던 중 천체의 이름과 의미에 관해 호기심이 생겼다.


누구는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낭만을 이야기할 때,

그는 별들에게서 혼란스럽게 흩어진 혼돈을 보았고

그만, 질서를 부여하고 싶다는 열망에 빠진다.


밤하늘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데 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Star'를 욱여 넣는다.


그가 어떻게 5년 만에 천체에 질서를 부여했는지는 안 나온다.

몹시 궁금하구마는...


그 엄청난 절차를 훌쩍 건너 뛰고 그는 지상으로 내려온다.


독실한 청교도인 홀다와 히람(부모)은 그가 열성을 보이던 지도를 죄 없애 버린다. 


이미 지도가 존재하는 땅들의 지도를 만든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경거망동이자 하루의 쓸모에 대한 모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한편, 듣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이후, 데이비드는 꽃에 관심을 갖는다.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무미건조하고 못생긴 꽃들.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것들.


여기까지 '미리 보기'로 읽고 책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저런 책 소개나 요란한 북튜버들의 찬사는 가급적 피했다.


이 책은 논픽션이지만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고

그렇다면 스포일러는 피해야 하니까.


소설의 형태를 빌렸다면,

시작의 작은 일렁임이 후반에 가서 걷잡을 수 없는 돌풍이 되게 마련.


그 돌풍을 온전히 맞으려면 모른 채 읽어야 하리라.


그래서 리뷰도 여기까지.


다 읽고 나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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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에디터스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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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당이 강요하는 세계관을 가장 훌륭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당이 그들에게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현실과 어긋나는 주장을 주입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주장인지 그들이 결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가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차릴 만큼 시사 문제에 관심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이해가 부족한 덕분에 그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냥 받아들여 꿀꺽 삼켰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곡식 한 알이 새의 몸속에서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 소화관을 통과하듯이, 당이 강요한 주장이 그들에게 아무런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었다.(238p)


누군가의 어떤 말을 가장 훌륭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쩌면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정말로, 진실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의문을 가져야 옳다.


이해하면 의문을 가져야 옳다.


이해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옳다'는 것은 별개일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이 '옳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그 간극에 질문이 남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것에라도 질문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타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공감일 지 모르나

'공중'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의문이다. 


소화되지 않은 찌꺼기에 대한, 응시다.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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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에디터스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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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소설에서.


소설의 첫문장은 저 혼자 빛날 수 없다.

소설의 첫문장 역시, 콘텍스트의 어울림으로 그 가치가 매겨진다.


화창하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 시계가 13시를 치고 있었다.


[1984]의 첫문장이다.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아직은 오지 않은 봄, 4월.

볕은 좋은데 쌀쌀한 날

시계는 '재수 옴 붙은' 숫자, '13'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또...


지독한 바람

빅토리 맨션

유리문

흙먼지

소용돌이


소설이 시작되고 단 네 줄만에 조지 오웰은 [1984]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콘텍스트고 뭐고 다 필요없어진 첫문장. 


그 뒤를 바짝 쫓아 한 겹 입혀지는 채색. 


삶은 양배추 냄새


삶아져 '풋기'마저 제거된, 

무색, 무미, 무취의 양배추. 


그리고...


텔레스크린


1948년에 내다 본 1984년이란 미래.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 


조지 오웰은 어떻게 알았을까?


2022년이면 우리 인류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텔레스크린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어디선가 삶은 양배추 냄새가 나고,

시계는 13시에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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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시간표 전쟁 -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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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지도 모른다. 역사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다가서는 것일 지도. 기차 시간표 따위가 대수였겠겠는가. 기차가 출발하기 전,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에서 출발해 보자는 취지. 기꺼이 그 기차에 올라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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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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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봤는데...

어째서 이리도 뭉클한가.


p87-88

고통을 느꼈다.
슬픔을 느꼈다.
죽고 싶었다.
이렇게 소설은 끝나지만 인물에게는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고려하지 않고 한순간의 감정과 감각에만 몰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아픈데, 어떻게, 얼마나 아프냐면 말이야, 묘사하고 보여 주는 것보다는, 어찌하여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인과, 고통의 전후, 슬픔의 전후에 대해 생각했고 소설이 끝난 이후 계속 살아 낼 그의 삶을 고민했다.


독자로 소설을 읽고 책장을 덮을 때는 인물의 미래가 있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는 내것이었다.

내 마음대로 상상해도 되었으니까.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부터는 정작, 

원고 마지막에 제목과 더불어 '끝'이라고 단어를 박으면서

인물의 미래에 미처 닿지 못했던 것 같다.


'끝'에 집중했다.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소설이 끝난 이후 계속 살아 낼 그의 삶을 고민했다.



오늘부로, 나의 소설은 달라질 것 같다.

조금은 소설다워질 것 같다.


아, 독자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살아내는 인물이라...


소설가가 '끝'을 적어 넣고 나서도 계속 살아내는 인물이라...


그들은 급기야 소설 밖으로 걸어 나오고 말리라. 

몸을 얻어,

우리와 함께 걸어가리라. 


한때 소설 속에서 살았음을 자신도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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