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개인의 운명과 동시대인들의 일반적 운명 사이에 은밀한 유사성 내지는 일치하는 점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예술작품에 명성을 부여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중략)

그들이 찬사를 보내는 진정한 이유는 

눈금으로 잴 수 없는 어떤 것, 바로 공감 때문이다.



그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재능에는 품위를 향한 자연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천부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작가적 발전은 회의와 반어라는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품위를 향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반항적으로 기어오르는 상승의 도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431p)

베니스에서의 죽음.


규율과 품위의 수호가 창조의 근간이었던 아센바흐는 소년을 연모하면서 규율과 품위를 스스로 깨뜨리는 인물로 변모한다

그가 베니스로 떠나면서 품었던

자신의 창조에 결핍되었다고 느낀 것이 결국은 탈도덕이었던 걸까.


아니, 

그 어떤 가시적인 탈선이나 일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 단 한 마디, 말도 걸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탈도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규율이나 품위를 저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소년에 품는 연정이 없는 상태로

창조란 게 가능은 한 걸까.


그에게 소년은 아름다웠을 뿐이다.

'美'소년이었을 뿐이다.


창조는 죽었다 깨도 부인 못한다.


'아름다움()'을 좇는 작업임을.


그 가시적 형태가 협소한 인간의 눈에 

실제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아센바흐는,

'가련한 사람'이란 소설을 저렇게 쓰고

자신이 '가련한 사람'이 되었다.


무기력과 패덕 때문에, 그리고 윤리적인 불신 때문에 

자기 아내를 애송이의 품속으로 떠다밀고,

마음속 깊숙이에서 비열한 행동을 저질러도 된다고 믿으면서

자시느이 유별난 운명을 만들어가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건달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 되기.


어쩌면 작가의 출발점이 도착점이 그곳일 지도.

그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재능에는 품위를 향한 자연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천부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작가적 발전은 회의와 반어라는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품위를 향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반항적으로 기어오르는 상승의 도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4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코의 위대한 강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가능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히,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욕망이 닿지 않게, 일은 다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좌절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숙명에 전율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을 이제껏 한 사람이 없어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


소설은 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좌절을 연습하는 공간이다.


나는,

좌절다운 좌절을 언제 했던가.


오늘 내가 한 좌절은 좌절다운 것인가.

그렇다면 소설을 눈여겨 보리라.


누군가의 소설에 그 좌절이 등장할 테니.


그런 좌절만 할 수 있다면

나의 매일이 좌절이라 해도 웃으며 좌절하리.


전율할... 나의 숙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의 아버지는 남편에 비하면 늘 헐렁했다.

누군가가 생각해서 챙겨주더라도 

헐렁한 옷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버리는 그런 헐렁한 사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자는 

아버지가 던져준 헐렁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부터 여자는 어떤 끈이든 단단하게 조이는 버릇이 생겼다.

풀려 있거나 느쓴해진 끈만 보면 꽉 조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여자를 짓누르고 있었던 헐렁한 삶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은 

바로 속싸개로 아기를 친친 동여매었을 때였다. 


-왜 이렇게 옷이 헐렁하다니, 얘야.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이 시시하고 헐렁한 농담 같았다.


아버지의 수의를 꼭 조였을 때, 그제야 여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했다.


여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헐렁함'과 '조임'이란,

너무 흔해 빠진,

단 두 개의 심상만으로 빚어낸 현실.


움직임 없는 텍스트가 

유독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소설가가 있기 때문이다.


박성원.


내 주위에 숱하게 널린 것들에서  

그의 눈에 뜨인 것들을 조각으로 꿰면,

내가 거한 작은 우주가 손에 만져질 것 같다.


내 눈에도 보이도록.


나는 무엇이 헐렁한가.

나는 무엇을 조여야 내 결핍의 민낯을 조우할 것인가.


아버지의 수의를 꼭 조여야만 하기 전에,

조일 것을 찾아내고자.


땡큐.


 

여자가 간선도로를 빠져나온 시각은 오후 세 시 십구 분이었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그럴 줄 알았다. ‘사물‘에 삶이 있을 줄 진즉 알아봤다. ‘정보‘를 지향했다. 정보가 많으면 유복할 줄 알았다. 정보의 즉각성과 휘발성은, 못본 체했다. 정보에 의해 사물이 소멸되는 중이다. 사물이 품은 실재와 시간이 아울러 소멸되는 중이다. 잊지 말자. 정보보다, 사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 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그보다 더한 일은 없을 테니까.


버스 정류장 근처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섭섭지 않게 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10p, 여름방학 중에서)


아버지가 목을 냈고 그 끈을 잘랐는데

퇴직을 했고

그 때문에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다...


완전히 상관없는 사건들의 혼재가 덩어리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둔 의식이 자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그 돌연함에 신기하게도 어긋남이 없다.


잘 섞인다.


윤성희, 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