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소설가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풀어낸 오토픽션이다.
오토픽션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 독후감은 '질투'다.
질투가 났다.
진짜로 겪은 일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아니 에르노가 진짜로 겪은 일은 유부남과의 연애다.
유부남과의 연애를 겪으며 감정과 행위를 자세히 묘사했다.
응당 그래야 하지만, 내 질투의 대상은 유부남과의 연애가 아니다.
내 질투의 대상은 '이래도 돼?"에 있다.
아니, 노벨문학상이 인정한 작가라 이래도 되나?
일기같은, 에세이같은, 혼자 알고 있어도 아무 문제 없는,
아니, 혼자 알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물며 소설로 이렇게 써도 돼?
더구나 '외설'에 습자지 한 장 차이로 접근한....
흠.
'단순한 열정'같은 오토픽션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1991년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
마광수란 천재작가에 의해.
그 시도의 결과는 어땠나?
소설가도, 그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도 잡혀갔다.
실제로 옥고를 치렀다.
'외설'도 사치스러운 용어라며,
무려, '음란물'이라며.
이후 소설가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출판사 대표는 가정까지 풍비박산 났다.
소설가는 몇 년 전, 자택 베란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그러니 질투를 안 느끼고 배길쏘냐.
이 안타까움을 어쩔 거냐고.
이래도 되냐고.
프랑스는 이래도 되냐고.
그리고 프랑스니까, 노벨문학상이니까 이래도 되냐고.
'즐거운 사라'는 성애묘사가 너무 지나쳤다고?
허, '단순한 열정'은 그 열정의 상대가 유부남인 것을...
한 술 더 떠...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 에르노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당장 편지를 쓴 필립 빌랭.
무려 33세 연하다. 그로부터 5년 간 둘은 연애하고 이 소설은 그 연애담이다.
그런 면에서 내 보기에,
'포옹'은 '단순한 열정'보다 더 열정적이다.
얼마나 열정적이면 33세 연상인 생면부지의 여인을 소설 한 편 읽고 반하겠는가.
더구나 그 여인이 다른 남자(유부남)와 연애한 소설을 읽고...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막 쓴다. 소설로.
스펙트럼.
소설을 쓸 수 있고, 소설로 써도 되는 스펙트럼.
이들은 어디까지 그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가 말이다.
대한민국은 1991년, 천재 작가를 외면하고 끝내 살려내지 못하고
2016년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아니, 그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성애' 소설만이 소설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분명 큰 역량이다.
소설은 인간을 다룬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그런데 한국소설은 그 본성에서 '성욕'만큼은 어떻게든 걸러내려 한다.
엄숙주의, 경건주의.
문학은 엄숙하고 경건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 작가의 소설을 읽고 엄숙과 경건을 잠시나마 잊는다.
이 연애담이 유부남과의 연애임을 접어준다.
하긴, 그게 접어질 정도로 아니 에르노의 필력과 감성은 탁월하다.
그 자신이 불륜 같은 건 단 한 순간도 개의치 않는다.
그 턱없는 당당함에 읽는 이도 개의치 않게 된다.
지독하게, '단순한' 열정에 가려서.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67p)
공감한다.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 저택도 손에 넣긴 힘들지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대부분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꼈다가(그것도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고) 3년 정도면 열정이 꺼진다.
그게 본성이다.
그러므로 그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사치 맞다.
그 사치를 한 번 못 부리고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죽는 순간에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 저택을 손에 못 넣었다고 우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한 남자,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못 느껴봤다고 우는 사람은 있을 거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그 울음의 이유를 가르쳐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단순한 열정을 꿈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