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노트 -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김익한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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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중요성은 다들 안다. 단, 어떻게 중요한지는 모른다. 기록에 관해, ‘남기는 것‘만 안다. 그래서 나의 기록은 남지 않는다, 늘. 늘 남는 기록을 위해 ‘어떻게‘ 중요한지 이야기하는....그런데 너무 오래 그 이야기만 하는. 부디, 실제를 달라. ‘거인의 노트‘에 ‘노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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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3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하지만 제가 책을 읽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책을 읽어보고자 뜻을 알고 싶은데,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제 해석과 맞는지 봐주세요!
기록의 중요성은 다들 안다 =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
어떻게 중요한지는 모른다 = 기록 방법
‘남기는 것‘ =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남겨진 글
기록 = 올바른 방법으로 남겨진 글
작가는 방법보다는 왜 기록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답글의 필자는 답답함을 느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젤소민아 2023-03-31 03:42   좋아요 1 | URL
명확한 쓰기를 하지 못했나 봅니다 ㅠㅠ
사과드리며, 풀어보겠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은 다들 안다. 단, 어떻게 중요한지는 모른다.
-->기록의 중요성은 알지만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잘 모른다.

기록에 관해, ‘남기는 것‘만 안다.
--->오로지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충족시키려는 이유만 안다.

그래서 나의 기록은 남지 않는다, 늘.
--->그래서 부지런히 메모하고 기록하지만 행동만 남을 뿐,
‘기록‘ 자체는 남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남기는 법을 모르므로)

늘 남는 기록을 위해 ‘어떻게‘ 중요한지 이야기하는....
----->늘 잘 남길 수 있는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그 이야기만 하는. 부디, 실제를 달라. ‘거인의 노트‘에 ‘노트‘는 없었다.
------>기록의 중요성에 관해 오래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how‘를 달라. 어떻게 남겨야 기록(note)이 남는지.

거인의 노트라면서....‘거인(기록에 관한 전문가적 지식)‘은 있는데
‘note‘(거인이 기록한 기록의 실제‘는 없다

--->첨언하자면, 조금은 ‘note‘의 실례가 있지만 적습니다....

ilikems 2023-04-01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기록에 관한 책인데 주구장창 서술만 하고 기록물 예시가 적은 것은 답답~보통 이런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떻게‘ 썼는지 실제 자료를 보기 위해서 인데요~ㅠ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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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해도 되는데, 진짜 좋은 소설 속 인물은 안 건드렸으면 참 좋겠는 게..


소설 속 인물은 소설이란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은 소설 속에서만 숨 쉴 수 있다.

밖으로 나오면 숨을 못 쉰다. 죽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의학적/사회학적/심리학적/사회심리학적 등등의 시도로


뫼르소는 감정이 거세된 사이코패스, 

라스콜리니코프는 충동조절장애, 

보봐리 부인은 연극성성격장애

바틀비는 사회성 제로의 아스퍼거...


이런 식으로 하는 규정의 시도가 소설 인물을 밖으로 끌고 나오는 행위에 속한다.


'이방인'을 끝까지 읽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무지 이해 안 가는 뫼르소지만 한 자락, 우리와 겹치는 빗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소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뫼르소에 붙게 될 라벨은 수두룩하다.


뫼르소는 소설 속에서만 뫼르소다.

소설 밖에서 그는 대번에 환자요, 살인범일 뿐이다.

소설 밖은 그런 곳이다.


상식과 비상식만 존재하는 곳.

그 사이의 분명한 선을 목숨을 지키려 하는 곳.

그 사이 모래알처럼 많은 가능성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는 곳.


소설 속에서 인물이 자유로운 이유는 

그 사이를 유영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살과 뼈를 깎아낸 노역 덕에...


MBTI라...


소설 속 인물에 그걸 매겨 뭘 어쩌자는 걸까.

'나'와 비슷하니 그 인물의 행위를 생활 속에서 참고하자는 걸까.


소설 속 인물은 그런 거 모른다.

그들에겐 획일화된 성격이란 없다(전근대 소설이라면 모르지만).


소설 속 인물에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는 그들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형(transform)되기 때문이다.


소설 처음의 인물은 결말의 인물과 다르다.


방 안에서 아무 짓도 안했다 하더라도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닌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자.


소설의 처음과 끝만큼의 시간 동안, 소설 밖의 당신이여.

그리 변한 적이 있던가.

변해 낸 적이 있던가 말이다.


소설 속...

특히 명작소설 속 인물은 제발 뭘로 좀, 뭘로도 규정하지 말고 내버려 두길.


감동에....명작에서 얻는 드문 감동에

방해받는단 말이다. 


뭐, 흥미를 끌 수는 있겠다.

재미도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걸 감동과는 결코 바꾸고 싶진 않단 말이다.

(정말이지, 목차만 읽는데도 가슴 한쪽 감동저장고에 구멍난 느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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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0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밖에 있는 우리도 경험이 쌓여서 천천히 변하는 경우도 있고 극적인 사건을 겪으며 변하기에 MBTI는 그 검사를 하는 시기에만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타인이 보는 ‘나‘를 투영하여 답할 수 있기에 재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하물며 소설 속의 인물은 언제 어떤 상황에 그 소설을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에 유형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너무 거칠게 판단하는 것 같아 젤소민아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젤소민아 2023-03-03 09:26   좋아요 1 | URL
답변 감사해요 DYDADDY님~. 언젠가 친구 하나가 자기는 소설을 못읽겠다며 그 이유를...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괴퍅하고 가난하고 나약하고 정신이상자 같다고요. 소설 인물을 유형화하는 순간 소설에서 멀어진다는 걸 그때 절감했죠. 소설을 쓰고 또 읽는 사람으로서 소설에서 멀어지는 마음이 하나라도 더 생길까 우려됐나 봅니다.

물론, 이 책으로 소설에 없던 관심이 생긴다면 박수칠 일이고요~.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소설 속 인물은 언제 어떤 상황의 독서인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2023-03-03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sona 2023-03-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뫼르소가 싸패고 바틀비가 아스퍼거라고요??? 헐.
심리학이든 문학이든 어느 한쪽이 잘 안된 상태에서 글 쓰신 건가 싶어질 정도네요;;

젤소민아 2023-03-03 12:15   좋아요 1 | URL
앗, 제가 그런 게 아닌데요 ;;; 인용한 거랍니다.

북클럽이나 소설 토론 같을 걸 하다 보면 그렇게 의견을 내는 ‘전문가‘분들이 있습니다. 의학 쪽이나 심리 쪽 분야 공부하신 분도 그렇고, 그런 전공자가 아닌 분들도 이해가 잘 안가는 인물들이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죠.
그럴 때 좀 설전이 붙고요.
소설 속 인물을 그렇게 라벨링하는 건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일견, 그런 해석을 흥미로워하는 시선도 있고요.

저같은 경우는 세상의 어떤 잣대나 표식으로 소설 속 인물을 재단한다고 할까요..
그럴 때 뭔가 막연히 그 인물에 품던 동경이랄까, 의문이랄까(좋은 의미로요)..
그런게 김빠지는 느낌이 드는 편이라서요.

뫼르소가 싸패고 바틀비가 아스퍼거니 하고 보는 시각을
제가 불편해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리 본다는 게 아니고요~~;;

저 책에서 그리 말한 것도 아니고요. 소설 밖에서 그리 말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자꾸 소설 밖에서 인물을 끌어내려 하는 시도들...소설이란 프레임을 나오는 순간, 소설의 텍스트가 정교하게 직조한 소설적구도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데 말이죠...

persona 2023-03-03 12:28   좋아요 0 | URL
저도 젤소민아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걸로 읽지 않았어요. ㅎㅎㅎ 저 책이 그렇게 쓰였다는 건줄 알기는 했는데 아니군요. ^^;; 그런 시각이 저도 이상하다는데 동의합니다.

젤소민아 2023-03-03 12:36   좋아요 1 | URL
ㅎㅎㅎ 뭐여요..저, 요새 왜 독해력이 떨어지죠..ㅠㅠ

요즘 MBTI가 극성이라 저한테도 제 유형이 뭔 거 같다..이러믄서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고요. 왜들 그리 규정짓지 못해 안달일까요, persona님..

저만 해도 저안에 유형 디기 많아요...하나 아니던데요.

하물며 소설 속 인물을 하나의 MBTI로 묶어두려 하다뇨...I
산티아고의 MBTI가 뭐다..하고 목차에 있던데요.
우리 할아버지한테 누가 뭐라한 듯 왜 불끈, 억울하기까지 하냐 이거여요 ㅎㅎ
나쁜 소리한 것도 아닌데요.

persona님 생각이 더 궁금해요~


persona 2023-03-03 12:48   좋아요 0 | URL
성격은 이 성격과 저 성격이 불연속적인 게 아니라 연속선상의 어느 축에서 경향성이 강하고 덜한 걸로 측정이 되는 거니깐 아무래도 엠비티아이가 같아도 완전히 동일한 성격은 아니죠. 그리고 엠비티아이에서 재는 성격 축 자체가 orthogonal하지가 않아요. 이거랑 저 축이 막 겹쳐요. 그리고 성격의 정의 자체가 개인이 일관되게 가지는 영속적인 특성을 말하는 건데 엠비티아이가 바뀌고 여러개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성격이 아니라 취향이나 행동변화를 더 재고 있는 듯 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는 mbti가 뭐야 하며 서로 공유하는 건 외로워서 아닐까요. 아이스브레이킹도 되고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걸어가는데 깜깜하고 무서우니까 나랑 비슷한 성향의 누군가는 이런 성격으로 이렇게 대처하며 삶을 살았다, 이렇게 보면 더 동질감도 느끼고 안심도 되니까요. 애니어그램이 작가님들 사이에 한동안 유행했던 것 보다도 더욱 명료하게 분석이 되는 거 같아서 쉽게 빠져들기 좋은 거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어설프게 소설속 인물에게 정신장애나 성격장애로 라벨링 하는 건 별로이지만, 등장인물이 이런 MBTI같다고 쓴 책은 적어도 추후에 내 성격과 비슷한 책은 찾아읽을 사람들이 늘어나니 괜찮은 거 같기도 해요.
근데 사실 막상 찾아보면 등장인물이든 현실속 지인이든 같은 엠비티아이라도 또 저랑 많이 다르죠. ㅎㅎㅎ

젤소민아 2023-03-03 13:05   좋아요 1 | URL
[등장인물이 이런 MBTI같다고 쓴 책은 적어도 추후에 내 성격과 비슷한 책은 찾아읽을 사람들이 늘어나니 괜찮은 거 같기도 해요.]--->저도 요건 기대해요~. 찌찌뽕.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걸어가는데 깜깜하고 무서우니까 나랑 비슷한 성향의 누군가는 이런 성격으로 이렇게 대처하며 삶을 살았다, 이렇게 보면 더 동질감도 느끼고 안심도 되니까요.]--->바로, 이 점 때문에 소설 속 인물에 MBTI의 부여는 찬동할 수 없다는 쪽이에요, persona님. 소설 속 인물은 ‘성격‘이나 ‘유형‘으로 삶을 대처하는 게 아니잖아요...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소설 속 인물은 성격/유형이 fixed up된 존재로 바라봐지기보다는, 소설의 ‘플롯‘에 수동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캐릭터가 build up되는 존재니까요. 그래서 소설 속 인물에 사회심리학/인지심리학적 차원의 라벨링도 문제지만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시키는 건, 조금 쎄게 이야기하면..그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지기도 해요. 물론, 긍정적으로 본다면 소설 속 인물과의 동일시가 쉬워지긴 하겠죠. 그러나 그 동일시도 개인적 체험으로서의 ‘독서‘에서 얻어져야 한다는 생각요.

이런 책의 소용이랄까, 쓰임이랄까....그걸 모르는 바는 아닌데요...
시대의 요구란 생각은 들어요. 다만, 개인적으로 지나치기가 힘들어서 그렇죠~ㅎㅎ

persona님 이야기는 자꾸 듣고 싶어요. 댓글 자체가 인문학이다 보니~ㅎㅎ
감사해요, 늘 유익한 댓글요!

persona 2023-03-03 13:35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님 말씀이 맞죠.
시대가 요구하니까 책이 나오는 거요. 그게 요즘은 정말 MBTI인 거 같아요.
제가 그래서 한동안 힐링 책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퇴사랑 번아웃 책이요. 퇴사하고 여행다녀오는 것도요.
자기가 저지른 문제 해결 안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많아지는 이유가 그런 베스트셀러들과 그런 컨셉의 유튜브 같은 거 때문이 아닐까 싶어져서요. 점심시간 문자 퇴사에 분노도 하고요.
사주 공부할 때도 그래요. 명리공부는 오히려 더 풍부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공부하다보면 저사란 사주는 저러니까 더이상 알아보지도 않는다거나 단식사주로 어설프게 다 때려맞추려는 완장 찬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일단 점사도 아닌데 말투부터 무당처럼 단호하게 다 안다는 듯이 그러고.
그 사람 단식 사주는 그게 아닌데 주변 글자들이 그사람 특성처럼 보여서 쉽게 단식으로 너 ㅇㅇ일주지? 이런식으로 후려치는 거를 참 많이 보고 거부감 느꼈었는데요. 그게 맞을 거라고 완벽한 타인이 확신까지 하는것도요.

소설에서 정신병 찾기와 성격갈라치는 것도 좀 그런 행동들처럼 보이죠.
소설은 공부하고 읽는 거 자체가 한줄요약에 퉁쳐지기 어려운 맥락을 구구절절히 구태여 설명하고 있는 장르인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얜 이렇다 라는 결과론적인 말을 하면 그 책에서 읽어낼 수 없는 다른 걸 많이 놓치고 말죠. 그래서 저도 공대에서 문학수업 들을 때 힘들었긴 했어요. 한시간 내내 뭐가 되든 좋을 이야기로 서로 토론하고 추측하고 싸우는게요. ^^;;
사람들이 많이 아는 MBTI로 공감을 유도하는 책이 나오는 거는 일단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MBTI광풍 좀 지겹죠. 맨날 너 엠비티아이 TJ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 듣는 것도 그렇고요. ㅋㅋㅋ 근데 또 그런 게 과도하게 만능인 거처럼 다루어지는 거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것도 좋아요. 더 많이 나와야죠.
이거 지나가면 또 뭔가 비슷한 광풍이 불겠지만요. 저도 좋은 인사이트 감사해요. 젤소민아님. ^^

젤소민아 2023-03-03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persona님하고 수다떨면서 밤새고 싶어지네요~(미국 사는 거 티났네요 ㅋㅋ)

[소설은 공부하고 읽는 거 자체가 한줄요약에 퉁쳐지기 어려운 맥락을 구구절절히 구태여 설명하고 있는 장르인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얜 이렇다 라는 결과론적인 말을 하면 그 책에서 읽어낼 수 없는 다른 걸 많이 놓치고 말죠]. ===>이 말씀 넘 좋아요. 소설 쓸 때 꼭 참고할게요.

이제 광풍은 ChatGPT가 몰고 오겠죠? ㅎㅎ
광풍에 쓸려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그쵸? 좋은 하루, 이틀, 사흘...내내 되세요!

persona 2023-03-03 13:44   좋아요 1 | URL
이미 많은 걸 응용하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머리쓰기 싫을 때 chatGPT가 참 유용한 것 같아요. ㅎㅎㅎ
미국 사셨군요. ㅎㅎㅎ 좋은 밤 되세요!^^
 
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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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앤 책의 ‘부문‘이 아니라 저자의 ‘이름‘으로 비운 책꽂이 칸이 있다. 김진영, 남경태, 박이문이 그런 이름이다. 그 이름 옆으로 또다른 책을 꽂을 수 있다니.‘김진영‘이란 소중한 이름을 집으로 초대하는 기분. 봄이 오는 길목에 꼭 어울릴, 설렘과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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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2-23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에 ˝박이문˝ 칸이 있다니, 아, 좋습니다.

젤소민아 2023-02-23 10:37   좋아요 0 | URL
네~골드문트님. 괄호열고 (박인희).
허연 시인님 에세이에 보니 박이문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요양시설에 계셨나봅니다. 그때 누가 저렇게 책을 많이 갖고 들어오나...그랬다죠. ㅠㅠ
 
사연 있는 그림 - 고통과 환희를 넘나든 예술가 32인의 이야기
이은화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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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재밌을 거다. 근데 난 그림의 ‘사연‘엔 긍정적이지 않다. 사연은 그림에 배어있다. 그 사연은 부분이나마 그림이 말한다. 사연을 알고 보는 그림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과 차 마시는 기분. 생소하지 않아 좋지만 괜히 다 알 것 같은 느낌. ‘익히 들어‘ 아는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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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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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풀어낸 오토픽션이다.

오토픽션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 독후감은 '질투'다.


질투가 났다.

진짜로 겪은 일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아니 에르노가 진짜로 겪은 일은 유부남과의 연애다.


유부남과의 연애를 겪으며 감정과 행위를 자세히 묘사했다.

응당 그래야 하지만, 내 질투의 대상은 유부남과의 연애가 아니다.


내 질투의 대상은 '이래도 돼?"에 있다.


아니, 노벨문학상이 인정한 작가라 이래도 되나?


일기같은, 에세이같은, 혼자 알고 있어도 아무 문제 없는,

아니, 혼자 알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물며 소설로 이렇게 써도 돼?


더구나 '외설'에 습자지 한 장 차이로 접근한....


흠.


'단순한 열정'같은 오토픽션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1991년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

마광수란 천재작가에 의해.


그 시도의 결과는 어땠나?


소설가도, 그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도 잡혀갔다.

실제로 옥고를 치렀다. 


'외설'도 사치스러운 용어라며,

무려, '음란물'이라며.


이후 소설가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출판사 대표는 가정까지 풍비박산 났다.

소설가는 몇 년 전, 자택 베란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그러니 질투를 안 느끼고 배길쏘냐.

이 안타까움을 어쩔 거냐고.


이래도 되냐고.


프랑스는 이래도 되냐고.

그리고 프랑스니까, 노벨문학상이니까 이래도 되냐고.


'즐거운 사라'는 성애묘사가 너무 지나쳤다고?

허, '단순한 열정'은 그 열정의 상대가 유부남인 것을...


한 술 더 떠...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 에르노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당장 편지를 쓴 필립 빌랭.

무려 33세 연하다. 그로부터 5년 간 둘은 연애하고 이 소설은 그 연애담이다.


그런 면에서 내 보기에,

'포옹'은 '단순한 열정'보다 더 열정적이다.


얼마나 열정적이면 33세 연상인 생면부지의 여인을 소설 한 편 읽고 반하겠는가.

더구나 그 여인이 다른 남자(유부남)와 연애한 소설을 읽고...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막 쓴다. 소설로.


스펙트럼.


소설을 쓸 수 있고, 소설로 써도 되는 스펙트럼.


이들은 어디까지 그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가 말이다.


대한민국은 1991년, 천재 작가를 외면하고 끝내 살려내지 못하고

2016년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아니, 그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성애' 소설만이 소설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분명 큰 역량이다. 


소설은 인간을 다룬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그런데 한국소설은 그 본성에서 '성욕'만큼은 어떻게든 걸러내려 한다.


엄숙주의, 경건주의.

문학은 엄숙하고 경건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 작가의 소설을 읽고 엄숙과 경건을 잠시나마 잊는다.


이 연애담이 유부남과의 연애임을 접어준다.


하긴, 그게 접어질 정도로 아니 에르노의 필력과 감성은 탁월하다.

그 자신이 불륜 같은 건 단 한 순간도 개의치 않는다.

그 턱없는 당당함에 읽는 이도 개의치 않게 된다.


지독하게, '단순한' 열정에 가려서.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67p)


공감한다.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 저택도 손에 넣긴 힘들지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대부분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꼈다가(그것도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고) 3년 정도면 열정이 꺼진다.


그게 본성이다. 


그러므로 그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사치 맞다.


그 사치를 한 번 못 부리고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죽는 순간에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 저택을 손에 못 넣었다고 우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한 남자,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못 느껴봤다고 우는 사람은 있을 거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그 울음의 이유를 가르쳐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단순한 열정을 꿈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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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2-1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해요. 한국에선 밑바닥까지 쓰는 게 어렵지 않나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 해서 작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보이콧 할 때도 정말 많고요.

젤소민아 2023-02-10 21:33   좋아요 1 | URL
페르소나님, 공감 감사합니다. 소설쓰는 사람으로 큰 격려가 돼요. 우리나라에서 ‘단순한 열정‘이나 ‘포옹‘ 같은 소설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고요...두 작가 모두 매장, 아닐지요. 평단과 독자들의 악플 공세에 목숨이나 보전됐을지요. 그런데 프랑스, 노벨문학상의 아우라를 업고 ‘유부남을 사랑한 성애소설‘이 묵인, 공감, 용서...다 가능하지요.

부럽고도, 씁쓸한 일입니다.


혹자는 비교할 수 없다고 성토할 지 모르지만,
비교가 안 될 이유도 모르겠는,
마광수 작가님의 명복을 다시...안타깝게 빌어요. 감사합니다.

persona 2023-02-10 22:47   좋아요 1 | URL
매장이죠. GL, BL, TL, 어덜트, 하렘이니 역하렘이니 소비하면서, 로맨스 읽고 무협 웹소설 읽으면서 저급, 고급 문화 나누는 것도 웃기지만, 저는 저희가 독자로서 읽을 때 포퓰리즘과 반달리즘도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보고요. 이게 다른 종교 예술품과 사적지를 파괴하는 과격 근본주의 종교단체랑 다를 게 뭔가 싶습니다. 문화사대주의도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 웨이”읽고 모닝페이지 쓰면서 저는 제가 글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든 게 정말로 남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소설에서 왜 외설을 나누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게 외국소설에선 이미 나오는 흔해빠진 장면을 정작 우리끼리는 용서하지 않고 배제시키는 게 정말 씹선비스럽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마광수 교수님 글들 중 감당 안되는 거 많긴 한데, 그 글들이 재판장이 아닌 토론장으로 갔었다면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보장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저 스스로를 리버럴리스트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선 자유주의자 성향이 강해서 제가 선호하는 작가들이 좌파, 사회주의 작가들도 있지만, 극우라고 작품 평가가 보류되고 보이콧되고 매도되는 분들도 많아요. 물론 좌파라고 배제되고 감옥가고 고생했던 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그분들 작품은 평가절하 되진 않았던 거 같고요. 정치적인 성향은 빼고 작품이 작품으로서 평가되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도덕적 잣대가 제일 심하죠. 노벨상 후보로 다들 거론했던 시인을 높이 평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한국 문학계가 많이 기형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요. 그 사람이 좋다던 사람들 다 어디갔는지. 과대평가 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 해서 다 파묻어버리면 그게 반달리즘이 아니고 뭔가 싶거든요. 친일문학이라고 버리고 마초문학이라고 버리면 뭐가 남을까 그런 생각 자주 해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다 완벽하고 대단한 정신적 지도자일 필요도 없고 그저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인 건데, 독자들이 유독 너무 기준이 높고 엄격한 거 같기도 하고요. 무조건 축출하고 버리고 우상화할 게 아니라 계속 도마에 놓고 다양한 논의를 하면 좋겠어요.

인간적으로만 보자면, 저는 사실 아니 에르노에게 매력을 전혀 못 느껴요. 진짜 실망스럽죠. 너무 완벽하지 않고 아집과 자격지심과 부도덕한 면을 보여주니까요. 저는 “빈 옷장”밖에 못 읽었지만, 자기 팔자 자기가 꼬았는데 고생해서 고등교육 시켜준 부모에 대해 쪽팔림과 자격지심 갖고 있는 게 너무 보기 싫었어요. 하지만 너무너무 글을 잘 쓰더라고요. 정말 다 꺼내서 보여주더라고요. 그게 또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아니 에르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고요.

마교수님은 진짜 오해와 편견과 차별 속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싶어요. 그걸 다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문득 떠오르는 건 소설 강매 사건인데요.
자기 소설 강매했다는 둥 이야기가 많은데, 그때 당시 실러버스에 아예 교재가 교수님 책이었어요. 대부분 학생들은 그 상황을 부당하다고 생각 안 했고요. 저자 앞에서 복사본도 되냐고 묻는 게 더 무례한 건데, 기사는 마교수님을 비판하더라고요? 과목 자체가 ‘문학과 에로티시즘’이었는지 ‘에로티시즘 문학’이고 그걸 잘 설명해주는 국내문학 책이 마교수님 책 뿐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웹소설도 엄연히 소설이고 갈라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웹소설식 클리셰를 가르치려던 것도 아니고 본인이 에로티시즘 연구자고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고 생각하는 본인 작품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거 찾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본인 글이니 본인이 가장 잘 가르치겠지 싶고요. 강의명 그대로 문학속에서 에로티시즘을 논의하고 모색하는 수업이었으니까요.
선생님만큼 비아냥과 욕을 많이 먹은 작가는 한국사에 없을 것 같아요. 하다못해 미투 가해자들도 마교수님만큼은 마음고생 안하셨을 거 같고요.
교수님 책에는 물론 감당 안되는 묘사나 독자에게 배려없어서 읽기 힘든 부분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아니 에르노에게서 감당 안되는 부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요. 약간 촌스럽고 예스러운 문장들은 제가 90년대 이전에 나온 글을 읽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거든요. 만약 똑같이 이름 가리고 영어로 읽으면 저는 마교수님이나 에르노나 되게 솔직한 인간들이다;; 하고 생각하고 말 것 같아요.
생전에 뒤에선 교수님과 교수님을 둘러싼 소문을 가지고 희화화하던 어느 학생의 부탁과 질문을 너무나 성의있고 진지하게 받아주던 교수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즐거운 사라 때문에 결과적으로 연금도 충분히 못 받게 됐고,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매장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다음 생에서는 다른 사람들 발걸음 만큼만 앞서나가셔서 덜 상처받길 바라요.

작가님들께서, 남 눈치 보느라 세상에 꼭 나와야 할 귀중한 소설들을 없애시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백기행이 시를 쓰고 아궁이에 태워버리는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 세상엔 그런 글들이 많겠죠? 자기검열이든 사회검열이든… 에구.
젤소민아님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젤소민아 2023-02-11 10:49   좋아요 1 | URL
ㄴㄴ 페르소나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정말 좋네요~. 귀한 의견/사유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어떤 개인적 배경과 무관하게 말씀대로, ‘다 드러냄‘이 통한 것 같아요. 맞어, 맞어. 딱 그런 건데 말로 표현하기 참 뭣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고 할까요. 내 속에 있는 게 분명한데 그 결을 벗겨내지 못하던 어떤 감정들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게 불륜이든 부정이든 객기이건 스노비즘이건 뭐건 간에요. 문학에선, 특히 소설에선, 뭐 하나 이뤄내주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마광수 작가님도 확실히 이루셨죠.
다만 그분의 작품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라‘같은 작품과 ‘야함‘의 수준이랄까..그런 게 갈린다고 대중이 판단하는 이유는, ‘지성‘이 가려져 있어서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인민을...‘도 분명 ‘야하지만‘ 그 목표의 꼭대기에는 ‘사상‘이나 ‘반항‘ 같은 게 있으니까요. 마작가님은 순수하게 ‘성‘을 향한 인간 본성을 치려 했던 것 같은 반면요. 숨막혔겠죠. 한국문학의 누린내날 정도로 폐쇄적인 엄숙주의가...

무조건적인 탄압과 비난보다는 내놓고 이야기를 해야한다...정말 공감합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도 말이죠. 소설엔 작가가 반영/투영될 수밖에 없지만 부분일 뿐이죠. 오히려 소설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돼죠. ‘자아‘란 렌즈를 갖다대긴 하지만 모든 걸 그 렌즈 안에서 풀어내지지는 않는 건데요. 자생력/자발력을 가진 남의 이야기는 알아서 렌즈 밖으로 튕겨 나갑니다.

자기 눈이 닫혀 있으니 소설(문학)도 닫은 방에서 보는 자세...
그걸 분간하려면 독자의 눈도 열려 넓고 깊어져야 할 것 같아요.
이젠 초연결세대라...좀 달라질 거란 기대는 듭니다. 목소리 큰 소수의 비평가 정도가 그 작품을 난도질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고...위로해 봅니다.



persona 2023-02-11 12:28   좋아요 1 | URL
점점 세상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작가도 독자들도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해서 겪는 좌충우돌이 지금인자도 모르겠어요.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모두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