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자
임경선 지음 / 예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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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의 첫줄에서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는데, 이 말은 불륜에도 성립한다. 모든 불행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듯, 불륜에는 불륜을 야기시킨 불행이 뒤에 숨어있다. 이승우 작가가 사랑의 생애에서, 사랑이 그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사람의 몸에 그 자체로 생명을 틔어 기생하다가 숙주의 마음을 모두 빼앗아 고갈시키고 자신도 생명 현상을 모두 마친 다음에야 끝나는 것이라 했지만, 발화되는 순간의 시작은 그동안 쌓아온 결핍이 씨앗이 된 경우가 많다. 현재 배우자와의 충족되는 사랑 속에서 어떻게 불륜이라는 위험하고 금기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러니까 모든 불륜은 다 고만고만허지만 불륜의 기저에 쌓여온 결핍과 불행은 다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다. 

섹스리스 부부들의 일탈이 불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은데, 그것은 섹스를 거부당하는 자가 거부하는 쪽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동의하여 불륜을 저지른 쪽에게 면죄부를 주기 때문이다. 사랑과 섹스가 동일한 건 아니지만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 지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섹스가 결혼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아는 남자가 섹스를 두 사람의 기계적 동작으로 이해하고 서로 잘 안맞는 부품이라 선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응해주겠다고 했다면 교묘히 섹스리스의 문제를 회피하고 결혼도 지키면서 섹스에 대한 충성도를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심리전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걸로 충족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을 원할 때는 언제든 응해주겠다고 했지만, 또 말처럼 그렇게 언제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섹스가 가능한 사람과 함께 누워 자지만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은 결국 세사랑의 씨앗을 틔울 양분을 제공한다.

소설은 진부하다는 표현 자체도 아까울 만큼 뻔하다. 뻔한 얘기를 뻔하게 썼으면 교훈이라도 있던가, 심지어 작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할 상상력도 없고, 결말을 맺을 의지도 안보인다. 이북 평균 평점이 별 둘인데 내가 하나 더 준 이유는 각자 저마다의 불행을 설정하는 대목에서 사소해보이는 부부간의 섹스를 대하는 문제를 섬세하게 캐치해내었다고 판단해서지 소설 자체로서의 평점은 구렇지 않다. 훈하디 흔한 여성지 수기 코너에서도 이 보다는 상상력을 더 보여줄 것이다. 1인칭 시점에서 한 여자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해서 사랑의 어쩔수없음을 얘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만큼 절절하게 애달프고 마음이 와닿는 것도 아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상황극이라고 해야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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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정리의 힘 -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
윤선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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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형 마트가 없고, 개인 차도 없던 시절에는 부모님들이 소모품 같은 게 떨어지면 그 때 가서야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매일 시장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식거리들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식구가 많이 살아도 대형 냉장고가 필요없었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도 무언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서 쟁여놓기 때문에 냉장고와 부엌 수납공간은 꽉꽉 채워져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구석에 있어서 막상 사용하려면 찾지 못해 또사고, 또산 것들을 쟁겨놓다보면 그 구석에는 뭐가 들어있는지조차 모른다. 이건 부엌용품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옷이다. 계절이 뚜렷하다보니, 계절별로 입는 옷들이 다르고, 유행이 빠르게 지나다니니, 비싸게 사서 한두번밖에 입지 못했어도 입지 못한 옷들은 버리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에코는 <책의세상>이라는 책에서 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책 한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정확한 가격은 잊어버렸는데 엄청 비싸다는 말이다. 


사는 만큼 버려야.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물건이 계속 늘어나다 보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줄어들거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잡동사니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는데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가는 시간과 노력이다. 특히 큰맘 먹고 하는 대청소, 혹은 대정리는 전문가라도 몇일이 걸릴만큼 대대적인 작업이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옷정리를 하루 하면 온몸이 몸살이 날 정도인데, 입으려면 없던 옷들이 정리를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기어나온다. 현대 산업사회는 풍요로운 물질 생활을 가능하게 했지만 오히려 그 물질의 덫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이유는 갖고 싶은 욕망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필요 떄문이기도 하다. 한정된 공간에 새로운 물건을 사들일 때는, 오래된 물건 하나를 버리야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기본 하나만 지켜도 최소한 더는 집안이 복잡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리의 법칙들

저자가 충고하는 말 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 중 하나는 제목처럼 매일 15분씩 정리하라는 거다. 매일 정리하는 것은 대대적으로 날을 잡아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15분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는 않지만, 힘들지 않다. 만일 사무실 정리의 예를 든다면 오늘은 맨 윗서람, 내일은 두번째 서랍, 그다음날은 서류함, 그 다음은 책들과 같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작업을 분산하고 그것을 매일 실행하라는 것이다. 대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사실 대부분 어느 정도는 그렇게들 하고 살지 않나. 간이 옷걸이에 너무 많이 옷이 걸려 있어서 넘어가게 생기면, 안입는 것 몇개 꺼내 옷장에 넣지, 넘어질때까지 내버려두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종류의 정리를 매일 조금씩 요기 조기 15분씩 습관적으로 한다면 한결 정리가 쉬워질 거 같다. 


정리할 대상은 물건 뿐만 아니다. 우리는 때로 스마트폰 주소록 정리, 시간 정리, 인맥 정리 등도 필요하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인맥도 정리해야 하고, 불필요한 일에 낭비하는 시간도 버려야 한다. 하지만 물건 정리와는 달리 실제 생활에서 이러한 일들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인맥이 사회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생성하고 지켜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저자 나름의 충고가 있는데, SNS를 활용하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고, 모임도 만들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인맥은 끊어버리고 등등의 이런 방법들이 실제로 인맥 형성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고, 단지 저자의 경우 그렇게 했다 라고 참조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정리력 카페에서 회원들과 교류하며 정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매일 한가지씩 버리기, 혹은 하루씩 쇼핑 안하고 지나가기 등등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실천하면 훨씬 실행력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긴 한데, 본인이 운영하는 정리력 컨설턴트에 대한 홍보성 이야기가 너무 많고, 또한 정리력 컨설턴트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교육 사업까지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자칫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을 현혹하는 말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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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 인간 -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로 보는 미생물의 과학
앨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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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퍼센트가 인간이라면 나머지 90퍼센트는 무엇일까?  바로 미생물이다. 인간은 인간 이전, 포유류 이전의 까마득히 오래 전 진화 과정에서 미생물과 나란히 진화했다. 미생물에게 동물의 몸은 단순한 서식지일뿐만 아니라  '세계'이며 '기회의 땅'이다.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온갖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체 역시 호르몬의 밀물과 썰물의 화학적 기후를 형성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복잡하게 달라지는 지형을 형성해 간다.(p26)'.


다윈 이후로 100년 동안 충수는  흔적기관이었다. 기능은 맹장염.  무용지물 기관이었다. 훗날 밝혀진 진실은 그 안에 특수화된 면역세포와 미생물을 보관한다는 것이다. 식중독이나 장염이 휩쓸고 가면 소화 효소를 돕고 몸의 기능을 함께하게 될 미생물들이 사라지고 텅 빈게 되면, 충수에 보관되어 있던  미생물이 채워지고 공장은 다시 굴러간다.  함부로 몸의 일부를 잘라 내면 안된다. 의사들이 예전에 충수며, 자궁이며, 전두엽이며 편도선이며 치료의 한 방편으로 잘라내던 것들의 중요성을 훗날 밝혀냈듯이, 현재 행하고 있는 각종 현대적 시술들, 검사들, 치료들 역시 훗날 다른 진실이 드러날 지도 모를일이다. 


지구가 다양한 풍경을 가진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각종 미생물로 가득차 있다. 몸속 거주자들의 구체적 신상명세는 개인별로 다양해서 지문만큼이나 각각의 인간은 고유한 미생물 집단을 가진다. 장애 서식하는 미생물은 필수 비타민을 합성하고 식물성 섬유질을 분해 하는 등 인체를 위해  몇 가지 일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1990 년대 후반 분자생물학 기술을 이용하여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대표적 예로,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들이 우리가 음식에서 추출하는 에너지 수준을 결정한다. 또한 체내 미생물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 유전자의 발현을 조정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특정 미생물의 부족과 과잉으로 설명되는 다양한 질병들의 사례를 통해 미생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전달한다. 이제껏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자(혹은 유전자 조합)를 찾아내려고 세계 각지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연구했지만 그다지 큰 결실을 볼 수 없었던 21세기형 질병들, 비만, 자폐증, 자가면역질환, 알러지 등이 몸속 미생물의 작용으로 설명되는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성격까지도 미생물 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예를 톡소플라소마라는 기생충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톡소플라스마는 집고양이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는데, 고양이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쥐들은 대범해졌다. 인간의 경우에서 남녀가 약간 다른 양상을 띠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해진다는 것이다. 


동충하초에 감염되면 개미는 좀비로 변한다. 좀비로 변한 개미는 나무 위로 올러가 북쪽을 향해 달려있는 잎을 골라 뒷면의 옆맥애 턱을 깊숙하 박아 넣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동충하초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동충하초는 개미의 몸 속 양분으로 자라면서 개미의 목숨을 빼앗아간다. 개미의 몸속에서 뻗어나와 방출된  동충하초 포자는 낙엽더미를 뒤덮으며 새로운 개미 군단을 감염시킨다 .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미생물은 많다  광견병은 광견병 바이러스로 가득한 침을 문채 사납게 물어뜯게 만든다.톡소 플라스마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빛울 두려워하지 안ㄹ도 연가시에 감염된 곤충은 물애 빠져 자살한다.


자폐아의 경우에서 연구된 미생물과 자폐아와의 관계가 흥미로왔다. 사실 자폐아와 특정 박테리아와의 관계는 한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 알렌 볼트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어릴 때는 정상이었던 아이가 귀에 물이나와 병원에서 주는 온갖 종류의 항생제를 먹고 난 후 자폐아가 되었다고 판단한, 전직 프로그래머인 엄마는 평생을 아이의 자폐의 원인과 항생제의 사용에 관한 관계를 연구하였고 그 연관성에 대한 가설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인간승리 스토리가 나와있는데, 이 작용을 일반인이 이해하려면 몇가지 난해한 용어들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정리를 해봤다. 이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 다른 모든 질병, 온갖 종류의 알러지와 루프스와 제1형 당뇨 등을 비롯하여 불치병으로 알려진 온갖 종류의 자가면역이 체내 미생물총과 갖는 관계를 대략 그려볼 수 있다. 


트립토판

살아있는 박테리아가 장에 들어오면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 수치가 높아진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 분비를 높인다.  장내 미생물이 직접 트립토판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면역계를 조정해서 체내의 트립토판을 파괴시키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트립토판을 파괴하는 면역계의 화학 물질은 사이토카인이다.


사이토카인

인체가 침입을 감지하면 사이토카인이라는 화학전달물질이 체내를 돌아다니며 제 역할을 한다. 사이토카인은 적을 공격할 준비가 된 흥분한 병사들과 같은 상태인데 이것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싸울 적을 만나지 못하면 인체를 공격한다. 우울증 과잉행동장애 조현증 치매까지도 면역의 과잉 반응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폐증에서도 '면역계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이토카인을 공격적인 수준으로 뿜어내고 있다(178).'


클로스트리듐

자폐아동의 경우 장내 박테리아의 균형이 정상인과 다른데 그 중 클로스트리듐 속 박테리아가 많다. 자폐아들은 빵을 좋아한다. 


피로피온산

장내미생물이 소장까지 소화되지 못한 음식 찌꺼기를 분해할때 생기는 짧은사슬지방산(SCFA)의 일종이다. 인체에 중요헌 물질이지만 (자폐아들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때 방부제로도 쓰인다. 클로스트리듐 박테리아들이 프로피온산을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맥파비 박사는 동물(쥐) 실험에서 피로피온산을 주입하면 쥐들이 자폐증세를 보였다. 사망한 자폐 환자를 부검했을 때 면역 세포로 가득차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박사는 과다한 프로피온산이 아이들의 뇌 발달 과정에서 시냅스를 연결하고 끊는능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생가설이라는 게 있다. 한마디로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는 면역이 극도로 민감해진다는 가설이다. 1989년 영국 의사 스트라찬은 알레르기는 감염이 너무 모자라서 생기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알레르기가 급증한 시기와 공중위생이 개선된 시점도 맞아떨어진다. 면역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임에도  빠르게 인정을 받았다. 이 가설은 직관적인 호소력을 가졌지만 감염과 알레르기의 실질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했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은 감염병의 발생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생물총의 정상적인 증식까지 막았다. 이 오래된 친구들은 진화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했고 그 과벙에서 면역계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스트라찬의 위생가설은 돌연변이룰 겪어 올드 프랜드 가설로 진화되었다. 221


Tregs(티렉스) 면역세포 조절T세포로설명되는 올드 프렌드 가설은 보다 선명하게 면역계의 작용을 설명한다. 티렉스는 전반적인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군대의 준장과 같아서, 공격적인 면역세포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티렉스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은 인간 세포가 아니라 미생물총이다. '미생물총은 티렉스를 앞잡이로 삼아 명령을 하달하여 면역 반응을 주도하고 진압에 투입되는 사병의 수를 조절함으로꺼 자신이 살 길을 도모한다.(223)'는 가설이다.


항생제와 항균제

지구 생태계에 다양한 생물체가 서로 공공의 이익을 향해 진화하여 조화를 이루지만 급작스런 산림의 파괴와 환경의 변화, 외래종의 수입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듯이, 인간의 진화와 함께 공생해온 미생물총의 구성에 변화가 오면 인간의 몸은 진화가 적응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항생제와 항균제의 남용, 서구화된 생활방식은 미생물총의 다양성을 감소시킨다.


가축들을 살찌우게 하는 성장촉진제가 실제로 무엇일까. 바로 항생제다. 항생제는 저체중의 신생아들에게도 체중 증가를 목적으로 처방된다. 질병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오레오마이신)를 투여한 미 해군들은 플라시보 알약을  처방받은 신병에 비해 현저하게 몸무게가 증가하였다. 항생제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시기인 1944년과 비만 , 제1형 당뇨, 다발성경화증을 비롯한 각종 면역질환이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치한다.


항균제로 많이 쓰이는 트라이클로산은 유익균을 몰살시키고 상수원을 오염시켜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원흉이다. 트라이클로산과 알레르기 수준 사이에는 명백한 상관관계 존재한다. 아이의 식탁을 항균 물티슈로 씻는 행위는  실제로 감염률을 높인다는 증거도 발견되었다.  우리에게는 옥시 데톨이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항균 비누가 생각난다.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가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옥시를 비롯해서 항균 제품의 배후에 숨은 항균제들의 파괴력은 유익균을 몰살시킴으로써 죽음의 사자와 같은 유해균이 독보적으로 군림하게 하는 데 있다.


체내 미생물은 인체에 필수적이다. 정상쥐와 무균쥐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무균쥐의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두 배 높게 나타났다. 성인 쥐에게는 박테리아를 주입해도 호르몬 농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없지만 어린 쥐는 한 종의 박테리아만 주입해도 스트레스 수치가 정상으로 나타난다. 장내 미생물은 신체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았다눈 증거였다.


항생제 등으로 인해 미생물총의 생태계에 생긴 변화를 되돌리고 유익균을 다시 불러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대개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생각할테지만, 이것이 생각만큼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듯하다. 대양의 화학 조성을 변경하기 위해 생수 한통씩 매일 들이붓는다고 대양의 농도가 묽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래도 꾸준히 먹으면 안먹은 것보다는 낫겠다. 비만을 물리치고 각종 면역세포를 진정시키도록 미생물 조성을 바꾸는데 좋은 방법은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고기를 좋아하는 미생물 조성이 높아지고, 식물성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면 그것들을 분해해서 먹고 사는 미생물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대변이식인듯하다. 앞서 언급했던 클로스트리듐 속의 박테리아인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는 항생제 복용으로 초토화된 장 속에서 유익균이 없는 틈을 타 잡초처럼 장 전체를 장악하여 시디프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페기는 다리 수술 후 복용한 항생제로 이 병에 걸려 의사도 포기했는데, 남편의 대변을 이식해서 살아났다. 장내 미생물총을 다스리는 것은 직접 미생물을 장 속에 주입하는 방법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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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한 게 물이다. 뭘 막 쓰면 물쓰듯 쓴다고 말한다. 돈을 물쓰듯 쓴다. 전기를 물쓰듯 쓴다. 그런데 물이라는 게 H2O 분자가 지구 내에서 계속 순환하는데 부족해진다고 하는 건 왜일까. 흔하디 흔한 건 그냥 물, 지구 표면의 2/3를 덮고 있는(맞나) 바닷물을 포함해서 강과 호수 지하수 꾸정물까지 모두 포함해서 물이지만, 생존에 필요한 건 생존에 적합한 ˝깨끗한˝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업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물은 구하기 쉬웠다. 


옛날에는 시내물과 강물을 먹을 수 있었다. 농약이 없었고, 영양이 풍부한 분변물은 농사에 이용했으므로 물에서 똥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자연적 물들을 맘껏 마실수 있었던 이유는 흐르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서 물고기가 방귀를 뀌고 똥을 눈다 해도, 거기에 섞여 있는 오염성분들은 산소와 반응해서 자연적으로 정화가 된다. 그것이 왜 현대에는 불가능할까.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아 너무 많은 오물이 나오면서 그것과 섞이는 깨끗한 물의 양보다 오물수가 더 많아져 산소가 부족해지고 자정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렇다. 


화학반응에는 전자 수용체인 산화제가 필요하다. 산소가 전자를 흡수하여 물로 바뀌면서 산화제의 역할을 한다. 물에 녹는 염류중 가장 흔한 것이 황산염인데 하수에 산소가 없을 때는 황산염이 산화제가 되어 황화수소로 바뀐다. 이 황화수소가 하수 악취의 대표자다. 대장에도 산소가 없으므로 세균들은 대사과정에서 황산염을 황화수소로 바꾼다. 황화수소는 악취의 원인이다. 방귀 냄새의 주된 성분도 황화수소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나온 오수에서 산소가 모두 소진되면 황화수소가 많아진다. 따라서 적은 양의 하수가 산소가 풍부한 하천에 유입되었을 때는 자정작용을 통호 악취가 제거되지만 방류 지점이나 대도시의 처리되지 않은 대량의 하수는 산소 부족으로 황산염의 산화로 인해 악취가 심하게 된다. 


다시 물부족 문제로 돌아오면, 물의 양은 여전히 지구 대기권 내에서 똑같은데 더러운 물은 많고 깨끗한 물은 모자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을 말할 때는 상수와 하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물의 필요와 처리를 고대 로마 시대 중력을 이용한 물 분배 시스템을 1.0으로 하고, 시대를 거쳐 세균을 이용한 정화 및 염소 처리 등의 혁신적 방법이 사용되는 시기를 나누어 2.0과 3.0 시대를 거쳐 물부족에 직면한 현재와 미래를 워터 4.0의 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물의 정수 및 하수 처리의 공학적 / 제도적 역사를 탐구한다. 딱딱하다. 논문같다. 그러나 부족함 없이 상세하고, 성실하게 쓰여졌다. 버릴 구석이 조금도 없다. 그동안 물에 대해 궁금하던 부분이 말끔히 풀린 느낌이다. 


19세기를 지나며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자 유럽과 미국 등의 각 도시는 도시인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데 많은 문제가 생겼다. 앞서 말했다시피 물은 중력에 의해 밑으로 스며 지하수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데, 도시가 커지면서 인구집단이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하수가 상수와 섞이는 문제가 생긴다. 정수와 하수는 함께 변화해간다.  도시가 강으로 쏟아내는 오수가 강물을 만나 한 도시를 지나 다른 도시로 흐르는 동안 정수가 되지만, 도시가 커지면 오수의 양이 너무 많아져 자연 정화능력을 상실한다.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하고, 오수를 배출하는 강물 주변의 주민들은 악취를 견디지 못한다. 세균을 이용한 하수 처리 방법의 발견은 워터 2.0시대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물을 정화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이 임호프Imhoff 탱크다. 하수의 악취와 고형 오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분변물이 섞인 오수에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사는 혐기성 세균을 이용한다 (사진 110 삽입 예정, 지금 책 없음). 장치의 밑에 가라앉은 부유물에서 세균이 황산염을 모두 소비하고 나면 탄산가스를 취하는 세균이 많아지게 된다 이런 미생물은 유기물이 풍부한 고형물을 분해하면서 메탄울 발생시킨다. 임호프 탱크는 20세가 초에 20년동안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에 건설되었다.


염소 딜레마

염소는 하천과 호수의 병원균과 정수 처리 이후 상수도 망을 통해 침입하는 세균으로부터 물을 보호한다. 그러나 발암성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과학계 를 놀라게 한 것은 클로로포름이 당초 우려했던 산업 폐수가 아니라 부패하는 식물과 조류에서 나오는 물질과 염소의 화학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듯했다는 것이었다.136


음용수의 화학 물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문제는 미지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아무도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138


염소 소독 물을 마신 사람들이 방광암 및 직장암  발생률이 증가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20세기 이후 사용하게 된 수많은 화학물질들 사이에서 염소와 반응을 일으켜 발암성 물질을 생성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그것을 발견하는 과학적 공학적 과정은 이랬다.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 암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염소 처리된 상수에서 수많은 화학약품질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무엇인지를 어떻게 찾겠는가. 이럴 때는 성실한 과학자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과학자가 필요하다. 생물학자 에임스는 세포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유발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론했다. 그가 이용한 것은 트립토판을 만드는 능력이 없는 변종 세균이었다. 변종 세균을 화학물질에 노출시키고 아미노산 생산 능력을 다시 찾는 세균이 발생하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 트립토판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영양소가 풍부한 환경에 이 트립토판무생성 세균 수십억 마리를 배양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화학물질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발견된 염소 처리된 물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고, 독성이 높은 원인 화학물질들을 탐지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MX라고 명명된 매우 독성이 강한 화합물이 돌연변이 유발원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후 세균번식 억제를 위한 법적 기준치의 염소 소독과 암발생 억제를 위한 염소부산물 최소화 요구를 맞추는 실용적 대안으로 오존처리 방법이 도입된다. 그러나 향후 오존 역시 천연수에 포함된 브롬화물이 산화할 때 생기는 브론산염이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수처리시스템

현재 하수 처리 시스템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통합하수시스템방식이고 또 하나는 위생하수도다.  통합처리하수시스템의 문제는 집중호우에 처리되지 않은 하수와 빗물이 섞여 오버플로우 하수관을 통해 배출되는 데 있다. 이 때 처리되지 않은 하수는 집중 후우와 함께 그대로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가서 상수에 유입될 수 있다. 위생 하수도는 가정과 산업체의 하수만을 하수처리정으로 이송하고 빗물운 개울과 하천으로 직접 배수한다. 미국은 위생 하수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위생 시스템 역시 환경적 문제를 안고 있다 . 포장 도로의 빗물이 파이프를 통해 하천으로 유입되면 빗물이 토양과   얕은  지하수층을 통과하는 긴 여정동안 식물에 흡수되거나 지하수를 보충할 기회를 잃고 개울로 흐르는 양이 2~5배 증가한다. 범람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홍수에 취약한 주민의 재산 보호를 위해 수로를 직선화하는데 그러면 또다시 유속이 빨라지고 하천의 퇴적물이 쓸려나가 어류의 먹이가 되는 바닥 곤충과 생물이 사라지고 조류까지 피해를 입게되는 연쇄적 파괴가 일어나게 되는 한편  치뫽으로 인한 환경적 재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워터 3.0인데, 워터 4.0의 대안으로 지붕에 식물을 심는 녹색 지붕, 빗물정원, 식생 수로,생물침윤시스템, 인공 침윤시스템 등을 설명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다공성 재질이나 가운데 구멍이 있는 콘크리트 블록의 사용으루 제시한다


하수처리장의 미생물이 미량의 약품과 인공 화학 물질을 제거하는 능력은 세균이 다양한 화학 물질을 공격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효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210


주방세제나 세탁용 세제의 생분해성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병 속의 화학물질은 미생물이 천연 유기물을 쉽게 부술 수 있는 결합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211


많은 인공합성물질이 천연 유기물과 같이 제거되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하수처리장을 통과한다. 인공감미료는 사람의 소화기관의 있는 효소가 부수기 어려운 결합을 가지고 있다. 인공감미료 이외에도 x 선 촬영 조영제, 수수의 약품 등은 하수처리장을 통과하는 동안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들은 정수를 거쳐도 상수에 남는다. 이런 것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많은 방법들이 빽빽히 설명되고 있다. 


워터 4.0의 시대는, 환경적인 관점에서 물을 이용하는 방법들, 제도들을 들이다본다. 이미 물부족 사태는 미국의 서부와 남부 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다른 지역의 물을 끌어다 쓰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여러 사막 주에서는 물을 물쓰듯 쓰지 않고 전기쓰듯 쓰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할 듯하다. 오수의 재사용과 바닷물을 이용하는 방법등 다양한 방법과 함께 이들 몇몇 대안들이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한 사례와 성공한 사례들을 매우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수도 기반 시설의 노후에 따르는 교체비용의 부담 문제와 같이 정치적인 사안들도 다룬다. 


연방의 지원금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지역사회가 경제적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224


현대적 월 시스템을 보유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상당한 수준을 수도요금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지난 5년동안 해마다 거의 두 배로 수도요금인상 되었다)


통상적으로 정수장을 떠난 수돗물의 10~20%가 사용 되기 전에 누수로 없어진다 233


책이 좀 딱딱했지만 이제껏 물에 대해 궁금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많이 풀렸다. 생명은 순환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물에서 더욱 명료하게 설명되었고, 특히나 바로 얼마전에 읽은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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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바닥에도 질서가 있고 하수구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애초 축축하고 더러운 밑바닥 하수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쓰레기 인생은 추락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없는 오늘을 마비된 시간들 속에 던져버린채 시대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인간 내면의 추악한 골만을 찾아 흐르는 사람들. 그 타락하고 비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자체가 영화에서 보여주던 장면의 충격과 어떤 선정적인 이미지가 이끄는 힘 때문이었다.  영화는 한 두 장면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어떤 강렬함이 원작으로 끌리게 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책에 비해 선정성과 충격을 많이 중화시키고 영화적 해석이 휴머니즘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여졌다.  원작의 근본적인 철학과는 상이하다고 할 수 있으나, 영화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극적으로 밀어붙인 매우 영리하고 훌륭한 각색이었다. 영화에도 역시 만점의 별점을 주고 싶다. 책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중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각 작품의 인물들이 다른 작품속에서 재등장한다. 영화는 이 작품속 인물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퍼즐을 완성했다. 책 속의 모든 작품은 한치의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기대하는 휴머니즘적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차용한 영화는 작품이 가진 비정한 분위기를 그대로 영화에 흡수했으면서도 감독의 해석 내에 어떤 작은 감동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 <트랄랄라>에서 나서부터 창녀인 트랄랄라는 희망 없는 삶에 대한 자각도, 소외된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도 없다. <여왕은 죽었다>에서 트렌스젠더 조제트는 도시의 쓰레기 중 쓰레기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약만이 그녀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듯하다. <파업>에서 해리는 그나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일하게 직장을 가진 기계공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의 임원이지만 그가 관심있는 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조의 돈과  놀고먹는 것이다.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희망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거르고 걸러 남겨진 , 도무지 정화 불가능한 더럽고 악취 풍기는 시궁창 쓰레기 더미에 삶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을 믿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게 하는 건 중독에 마비된 영혼들이 저지르는 약탈과 폭력과 섹스와 그 속에서 멈추어진 시간 뿐이다. 화려한 아메리카 드림의 외진 곳에서, 걸러내고 남겨진 악취나는 쓰레기들의 뭉치들이 하루살이 처럼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트랄랄라 115 쪽 인용 참조). 이것이 트랄랄라의 삶이다. 어쩌면 이 버러지같은 삶은 그녀에게 오히려 편안한 일상이고 나름의 정돈된 질서였는지 모른다 . 장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랄랄라에게 3일간의 의도치 않은 환한 세상 밖 구경은 스스로 구더기를 파게 만든다. 이미 바닥이어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어둠속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스민다. 한국전쟁으로 내몰린 젊은 장교는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옷을 사러 다닌다. 바에서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젖가슴을 흔들어 유혹하고 몸을 팔고 돈을 훔치고 개새끼라고 욕하며, 그걸 또 동네 건달들과 나누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 장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집단 강간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장교가 남겨주고 떠난 편지의 구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영화에서 벌거벗겨진 그녀를, 그녀를 사랑했던 소년이 자신의 옷으로 벗어 덮어주고 함께 울어준다. 책에서 그녀는 이빨이 계속 나가고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한 상태로 너덜거리는 그 몸둥이가 시체처럼 널부러진 채, 담뱃불이 비벼지고, 막대기가 꽂힌채로 그대로 길거리에 방치된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야만적이고도 비정한 채로 막을 내린다. 장교가 떠나면서 돈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장교를 뒤로 하고 개새끼라고 욕을 하고 편지를 찢어버린 그녀가 경험한 세계. 그것은 아마도 혼동의 세계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옷을 사준 남자, 처음으로 함께 걷고 함께 자고 함께 얘기하고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다시 또 거리로 내몰려, 다시 또 몸팔고 돈을 훔치는 생활을 계속하지만 문학 작품 속 그녀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술 한두잔 값으로 몸을 팔기 위해 바를 전전하는 일로 보인다. 집단 강간이 시작되고 사내들이 더러운 땀과 체액들을 흘리며 줄을 서서 그녀를 강간하는 동안 트랄랄라는 여전히 자신이, 자신의 몸이 창녀로서 남자에게 쓸모있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인생에게는 마땅치 않았던 지나간 3일의 경험을 씻어내고자 자신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부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런 생각조차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충격과 슬픔에 압도되어 책을 더 읽을 수도 안읽을 수도 없는 상태로 주말을 지냈다. 

<여왕은 죽었다>는 조제타는 비니를 사랑한다. 그렇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 우리, 그러니까 수십년 후 반대쪽 땅에서 반대쪽 땅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 읽고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 우리가 사서 먹고 바르는 음식물과 화장품과 세제에 어떤 화학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가끔 따져보고 공기중 떠도는 미세먼지의 농도를 걱정해 마스크를 구비하고, 조금이라도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피하고자 알고자 하는 그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밑바닥 인생의 쾌락과 무감각 증오 약탈의 세계에서, 약물로서 스스로를 마비시키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폭력과 섹스에 만연된 사람들도, 그들도 사랑을 하는 거였다. 악랄하고 야비하기 그지 없는 동네 깡패 비니와 연인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조제트는 온전히 서로를 위해서 있고 싶다. 조제트는 그가 상상하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오로지 약물의 힘으로만 재현 가능하다. 


그릭스와 월리스바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공간배경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매춘을 하고 서로를 패고 찌르면서 킬킬거린다. 항구 근처에는 해군들과 육군들이 드나들고, 동네에는 큰 공장이 있다.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루는 <파업> 역시 파업이라는 상황 속에서 추악한 본능만이 지배하는 비열한 상황을 다룬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의 열의, 이어지는 무료한 경찰과의 대치 사항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패악들, 노조 임원과 노조 집행부들의 부조리들 역시 파업 주도원 해리의 추악한 욕망과 내적 변화를 통해 빠지지 않고 낱낱이 해부된다. 파업이 길어짐에 따라 변화되는 양측의 심리변화도, 파업 도중 지급되는 식표품 배급과 같은 당시 풍속 등도 흥미로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렇게 쇼킹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영화는 해피 앤딩을 맞는 듯 보인다. 노조는 타협을 하고 토니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신부와 결혼을 한다.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 듯하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무리 역시 숭고한 승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사회가 배출한 쓰레기들은 하수구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제 트랄랄라는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온전한 사랑의 상실감만으로 영혼을 적실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사무실 아는 안을 바삐 움직이던 허리도 점차 행동이 느려졌다(중략) 태도나 행동에 절박함이 전혀 없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니 그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무임금 노동에 불과했다. 경쾌했던 분위기는 피켓시위가 시작된지 일주일 만에 시들기 시작하더니 토요일마다  식량 배급 줄이 생기고 남자들이 10달러 치의 식료품을 들고 집에 돌아가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198

피켓 시위를 할 시작할 때만 해도 남자들은 출근하는 회사 중역들을 보면 농담도 하고 간혹 야유와 조롱을 섞어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낮이든 밤이든 그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중략) 하루하루 같은 날이 계속 됐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201

식량배급 줄을 서며 보낸 지난 몇 개월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는 꺾인 희망이 마침내 출구를 찾아 분출했다. 드디어 주먹을 휘두를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지겹게서 있기만 했던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203

남자와 여자로서 아니면 같은 남자로서 친구도 연인도 아닌 서로 사랑하는 두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세상에서 함께하는 3분... 손님도, 버러지 같은 놈도, 부치 여왕도, 아서에 대한 기억도 없는 세상에서 함께 한 3분.. 사랑이 가득한 이 순간..( 여왕은 죽었다 62)

그녀는 원하는 걸 얻었다 그저 몸만 내주면 됐다 재미도 있었다 가끔은 재미없으면 또 어때 상관 없었다 그냥 등을 대고 눕거나 쓰레기통 위에 엎드리면 끝이었다. 일하는 것보다 낫잖아. 게다가 재미도 있고. 잠깐이지만. 하지만 항상 시간은 흐른다. 그들도 나이를 먹었다. 친구한테서 푼돈 뜯어내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왜 취한 놈이 뻗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기다렸다가는 놈들이 빈털터리가 되고 말텐데. 턴 놈들은 군부대로 돌아가는 길가에 내다 버렸다. 밤마다 그릭스 맞은편 술집 윌리스에서 수십명이 나왔다.(중략) 덩치가 크거나 정신이 말짱한 놈들은 벽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만만치 않은 놈의 경우엔 하나가 붙잡고 여럿이 덮쳤다. (중략) 축 늘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 완전 신나. 그러고는 피자와 맥주를 먹으로 갔다. 트랄랄라도 같이. 그녀는 어김없이 거기 있었다. (트랄랄라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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