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꿈 트리플 16
양선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못 쓴 소설은 아니다. 분명 괜찮은 문장들인데 이상하게 집중이 되질 않았고 종국에는 지루해졌다. 뒤의 산문은 더했고. 앞으로 이 작가 못 읽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타와 버지니아 -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의 삶과 사랑
세라 그리스트우드 지음, 심혜경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올랜도』를, 『등대로』를, 『막간』을 읽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버지니아보다는 비타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첨벙(박솔뫼 외. 한겨레출판. 2014. 368쪽)

: '중독'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라는데 난 읽는 동안엔 몰랐다. 처음 몇 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주제가 '물'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물과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였고, 솔직히 중독은 더더욱 상관없어 보였다. 한 편 한 편 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 좋지도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박솔뫼와 백수린. 이주란도 좋았다.



2. 아찔한 비행(케리 그린우드, 한지원 역. 딜라일라. 2016. 280쪽)

: 프라이니 피셔 시리즈 2권. 프라이니에게 쇠약한 모습의 노부인이 찾아온다. 그 부인은 자신의 아들 빌이 아버지와 극심한 의견 충돌을 지속하고 있다며 빌이 아버지를 죽일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놓고, 프라이니는 빌이 운영하는 비행학교를 찾아 빌을 잘 달랜다. 그런데 빌의 아버지 맥노튼 씨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죽은 채 발견된다. 한편 빌의 동료 헨리의 딸이 납치되는데...


두 번째라서 내가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작가의 글솜씨가 나아진 건지, 1권보다 덜 산만하고 재밌었다. 역시 능력자 프라이니.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민감하고 그걸 제대로 해결해 내는 것도 맘에 든다. 주위의 여성 캐릭터들이 다 능력자들인 것도. 로맨스도 나쁘지 않다. 꽤 급진적이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3. 야간열차 살인 사건(케리 그린우드, 정미현 역. 딜라일라. 2016. 272쪽)

: 프라이니 피셔 시리즈 3권. 시골 밸러렛행 열차를 타고 가던 프라이니. 한밤중 숨쉬기가 힘들어 잠에서 깬 프라이니는 일등석 전체에 가스가 찬 것을 알아채고 창문을 깨 환기를 시킨 후 사람들을 깨워 대피시킨다. 그 와중에 건너편 객실에 있던 노부인이 사라지고, 노부인은 기차가 멈춰선 들판 한가운데에서 끔찍한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된다. 프라이니는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노부인의 딸 유니스의 의뢰를 받아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 주요 사건 외 또다른 사건이 하나 더 딸려온다. 바로 기억을 잃은 소녀 제인의 이야기. 아마도 작가는 이런 식으로 프라이니가 여성 문제에 적극적임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프라이니의 행보는 비록 소설이지만 꽤 훌륭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에의 위협은 여전하고, 이걸 프라이니같은 능력있는 개인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것과 별개로, 이야기는 재미는 있었다. 비록 추리에는 실패했지만. 



4. 조용한 흡혈마을(성요셉. 네오북스. 2023. 200쪽)

: 외할머니의 병실에까지 쫓아온 사채업자를 피해 희주는 철딱서니 고등학생 남동생 이루와 함께 엄마의 고향 자귀도로 향한다. 사실 자귀도는 130년 전 흡혈귀의 난 이후 흡혈인들이 조선 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 폐쇄적인 섬. 희주와 이루의 등장으로 섬의 생활은 흔들리고, 희주는 몰래 섬의 보물을 찾기 시작한다.


가볍게 집어들었고 기대는 충족됐다. 작가가 처음부터 해피엔딩 말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빌런도 별로 등장하지 않아서 편하게 읽었다.



5. 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테일러 젠킨스 리드, 박미경 역. 베리북. 2023. 544쪽)

: 이혼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쓰고자 하는 소설도 잘 안 풀리고, 다니고 있는 잡지사에서도 아직 1년차 신참인 모니크. 할리우드 대스타 에블린 휴고가 자신의 드레스를 경매에 부쳐 유방암 치료 재단을 위한 자선 기금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독보적인 섹시스타이자 7번의 결혼으로 늘 관심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녀가 모니크를 지목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지만 뜻밖에도 깊이 아파하며 읽었다. 사람들이 쉽게 가쉽거리로 취급하는 연예인의 쉬운 결혼과 이혼의 이면에는 그녀만의 치열한, 살아남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숨어 있었다. 그걸로 그녀는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선 이겼다. 모든 싸움이 다 슬프지만 사랑을 위한 투쟁은 특히 더 슬프다. 에블린이 이젠 편히 쉬기를. 



6. 술과 농담(편혜영, 조해진, 이주란 외. 시간의흐름. 2021. 200쪽)

: 에세이 앤솔러지. 주제가 맘에 들어서 집어들었는데 김나영 빼고 다 재밌었다. 김나영은, 아무리 작가 본인이 농담을 못하는 성격이라 할 지라도, 그렇게 성의없이 글을 쓰다니. 마치 논술고사 모범 답안 같았고, 그나마도 창의성 점수는 못 받을 듯. 


이런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 자신의 술버릇이나 음주 생활 등을 알게 되는 게 독자로서 매우 흥미진진했다. 



7. 화성과 나(배명훈. 래빗홀. 2023. 304쪽)

: 화성 이주 연작들. 저자 특유의 위트는 강화되었고 감성은 감소되었다. 난 이 작가의 감성적인 부분이 좋았는데. 어디서나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얘기하면서도 (저자가 상상한) 화성만의 특징도 놓치지 않았다. 근데 내 취향은 아니었어서, 조금 슬펐다. 그래도 좋았던 건 「붉은 행성의 방식」. '가장 중요한 건 회복력'이라는 희나의 말이 좋았다.



8. 한 사람을 더하면(은모든. 문학동네. 2023. 340쪽)

: 급격한 기후 변화와 몇 차례의 팬데믹, 고령화 사회 확정으로 국가에서는 '독신세'를 어마어마하게 물리는 가까운 미래. 화자 이심은 가정의로 일하며 혼자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이제는 흔해진 집합가족이 되고자 '무도회장'을 방문한다. 그중 맘에 드는 가족은 집에 무려 '샴푸의 요정'이 있는, 형제와 중년 여성, 노년 여성 그리고 어린 남매가 있는 집이다. 


그동안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은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만큼 무시무시한 공포를 주는 소설은 못 읽은 듯. 단순히 독신세라든가 전통 가족의 해체로 인한 사회 질서의 개편이 문제가 아니라 의료 민영화로 인해 높아진 의료 수가가 감당이 안 되어 생기는 여러 문제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와중에 높아진 기술력과 터무니없이 떨어진 윤리의식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내용 중에 녹아있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다. 가장 무서운 건,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소설 속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 그나마 소설 속 결말은 약간의 희망을 보여주지만,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9.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정보라 외. 안온북스. 2023. 314쪽)

: 유사과학 앤솔러지. 유사과학이 소재이거나 아니면 진짜 유사과학을 세계관으로 해서 쓰거나. 정보라 때문에 집어들었는데 정작 정보라는 좀 평이했다. 그래도 대체로 재미있었다. 홍지운은 지루했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건 문이소의 「정기유의 화양연화」. 전헤진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아」도 좋았다.



10. 페로몬 부티크(강지영. 씨네21북스. 2018. 412쪽)

: 표적수사대 민재경. 9년 전 같이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던 남자친구가 살해당하기 직전 남자친구의 집으로 가는 계단에서 범인과 마주쳤던 순간으로 최면을 통해 되돌아가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끝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주로 공시생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범인을 잡기 위해 표적수사대 팀장 두현은 희미한 냄새만으로도 모든 걸 유추해내는 타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역시나 저자만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범인은 추리하기 힘들었고 밝혀졌을 때에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거야 내가 범인이랑 너무 공감하면 그것도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고. 재밌긴 했지만 로맨스적인 요소가 너무 강했고,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좀 힘이 빠진 거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이 작가가 정말 좋다. 



11. 작가와 연인들(릴리 킹, 정연희 역. 문학동네. 2023. 404쪽)

: 1997년, 작가 지망생 케이시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하지만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옛 연인의 배신이 때때로 떠오르며, 학자금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빚에 짓눌린다. 이 와중에 성공한 소설가 오스카와 만남을 가지게 되는 한편, 역시 작가 지망생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일러스와도 만나게 된다.


사랑 이야기이면서 성장 소설이기도 하지만, 이거저거 따질 것 없이 그냥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제목이 제목이라 오스카와 사일러스와 캐이시의 이야기에 눈길이 가긴 하지만, 그래서 케이시의 선택이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기도 하지만 난 케이시가 과거에서 벗어나 서서히 혼자 힘으로 비상할 수 있게 되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았다. 이야기 자체는 잔잔히 전개되지만, 케이시가 레스토랑으로 일하러 가면서 마주치는 기러기 떼처럼 그냥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었다. 



12. 위그드라실의 여신들(해도연. 안전가옥. 2023. 232쪽)

: 3편의 SF. 표제작이 가장 좋았고 이어지는 「여담, 혹은 이어지는 이야기」도 좋았다. 첫번째 작품은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평이한 느낌. 각주가 나처럼 SF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는 진입장벽일 수도 있겠으나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작품을 느끼는 데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표제작이 주는 여운은 깊고 길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순수하게 이타적일 수 있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13. 너무 친절한 거짓말(제럴딘 매코크런, 오현주 역. 빚은책들. 2023. 544쪽)

: 아팔리아의 수도 프래스토. 식탁 용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이 모여 있고, 아팔리아를 통치하는 총리 관저가 있다. 2개월이 넘도록 내내 내리는 비로 도시는 엉망진창이고 비상대책회의가 총리 저택에서 열린다. 총리는 기상학자를 불러 날씨 예보를 듣고자 하는데, 기상학자들이 제출한 예보를 멋대로 바꾸어 공표한다. 그날밤 총리는 북부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는데 총리 저택의 하녀 글로리아와 리트리버 데이지는 탑승을 거부당한다. 총리의 남편 티미는 데이지를 데리러 내렸다가 기차에 타지 못하고, 티미는 열 일곱 살 하녀 글로리아를 총리 대역으로 내세운다.


동화같은 이야기인 줄 알고 - 표지에 '총리가 된 하녀'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읽기 시작했으나 뜻밖에도 현실적이었다.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했고 설정을 단순화하긴 했지만 자연재해 앞의 무력한 인간 모습과 위정자들의 무능력, 재해 앞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가짜 뉴스의 만연, 가장 힘없는 계층의 희생과 이를 당연시하는 소위 상류층의 행태 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선한 마음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도. 꽤 조마조마해 하며 읽었다. 재미있었고, 생각도 오래오래 하게 했다.



14. 풀업(강화길. 현대문학. 128쪽)

: 전세사기를 당하고 엄마 집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화자는 밤마다 악몽을 꾼다. 격렬하게 싸우다 잠에서 깨면 새벽이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어딘가로 바쁘게 가는 여성을 창밖으로 발견하고 무작정 따라가 헬스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앞의 여성이 멋지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덜컥 등록한다.


서로를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오해는 있을 수 있다. 아니 가족이라서 더 오해가 깊어진다. 터놓고 얘기하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덮자니 내 속이 문드러지고. 난 철저히 화자의 입장이어서 중반까지 꽤 속터져하며 읽었지만, 엄마와 동생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작품의 주제('운동의 순기능')만 생각하면 꽤나 교훈적이지만 작가만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관계성 묘사가 인상깊었다.



15.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부스 타킹턴, 구원 역. 코호북스. 2023. 348쪽)

: 전쟁(1차대전) 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미국의 한 도시. 앨리스 애덤스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병석에 있고 가세는 기울어가는 중이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그 사업'을 해야 한다고 닥달하고, 남동생은 밖으로만 돈다. 한때 미모로 타운 전체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앨리스는 이제 나이도 찼고 집안 때문에도 댄스파티의 파트너는커녕 친구조차 없다. 어느날 타운에 아서 러셀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앨리스의 성장기이다. 첫부분에 지팡이를 들고 외출을 하던 앨리스의 당당함이 좋았는데 곧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초라함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들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앨리스는 결국 성장한다. 그리고 그건 누구의 도움이나 자극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그게 정말 좋았다.



16. AI 미제 사건 전담반(조 캘러헌, 정은 역. 북플라자. 2023. 448쪽)

: 남편을 암으로 잃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남편의 죽음과 사춘기로 점점 멀어지는 걸 느끼는 캣 프랭크 형사. AI를 기존 미제 사건에 활용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AI수사관 록과 함께 여러 실종 사건들 중 의미 있어보이는 것들을 선별하여 조사에 들어가는데, 원래부터 AI에 호의적이지 않던, 직감을 중시하는 캣과 록은 처음부터 삐걱댄다.


난 AI에 중립적인데 아무래도 이 작품은 캣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서 록이 마땅치않았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도 한 군데씩 맘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있고 그게 꽤 커서 읽는 내내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도 결말 부분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는 꽤 시원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나와도 읽을 거 같진 않다.



17.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문학동네. 2023. 296쪽)

: 역사 추리소설. 시리즈이고 최소 3권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개에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읽기 시작했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 당나라에 유학갔던 설자은은 귀국하는 배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맞닥뜨린다. 얼결에 사건을 맡아 해결한 자은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백제 출신 목인곤을 집의 식객으로 들이게 되고, 금성의 여러 사건들을 의뢰받는다.


자은의 비밀은 금세 드러난다. 넉살좋게 들러붙는 목인곤과의 관계도 관심을 끌었지만 당대의 여성들의 미묘한 지위 - 조선시대보다 나았으리라 짐작했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다 - 라든가, 통일은 했지만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이 꽤 노골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그리고 그 유명한 골품제 등이 흥미진진했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심윤경의 『서라벌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해서 머릿속으로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얼른 다음 권이 출간됐으면.



18. 안진 : 세 번의 봄(강화길. 안전가옥. 2023. 118쪽)

: 세 편의 가족 이야기. 연작처럼 읽히기도 하고, 각각의 이야기만 생각하며 읽어도 무방하다. 읽고 나서 새삼 '세 번의 봄'이라는 부제를 돌아보았다. 그래, 봄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지. 품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겨울 북풍 못지않다. 가장 좋았던 건 「비망」이지만 여운은 「산책」이 깊었다.



19. 템스강의 작은 서점(프리다 쉬베크, 심연희 역. 열림원. 2023. 624쪽)

: 어쩌면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근데 난 읽으면서 꽤 열받았다. 스웨덴에서 화장품 회사를 창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샬로테. 들어본 적도 없는 이모가 자신에게 런던의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산을 처리하기 위해 런던으로 온다. 막상 와서 보니 서점의 재정상태는 물론 운영도 엉망이다. 빨리 건물 전체를 팔아치우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려는데, 서점 위층 사라 이모의 아파트에서 낯익은 느낌의 남자 사진과 자신의 엄마에게 쓴 편지들을 발견한다.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따뜻한 느낌은 남을 거라고 생각해 읽었는데, 뜻밖의 복병때문에 열받았다. 현재의 이야기는 내 기대대로 흘러갔다. 과거 이야기가 날 화나게 했지. 그래도 책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수다라든지 진상 고객들 이야기 때문에 빵 터지기도 했다. 판타지같은 결말 부분도, 나쁘지는 않았다. 



20. 있을 법한 모든 것(구병모. 문학동네. 2023. 268쪽)

: 환상의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현실. 배경은 어쩌면 가상의, 어쩌면 미래의 세계이지만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결코 멀지 않다. 다만 각 작품들의 서술이 묘하게 알랭 보통 느낌이어서 내 취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작가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묘한 폭력을 놓치지 않는다. 이게 이 작가의 장점인데, 이전 작품들은 이런 문제제기를 정말 맛있는 당의정에 잘 싸서 독자에게 건네줬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냥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그게 좀 아쉬웠다.



21. 나는 그녀를 모른다(로지 월쉬, 신혜연 역. 문학사상. 2023. 480쪽)

: 신문사 부고기자인 레오. 아내 엠마는 해양생태학자이자 과거의 방송 경력으로 유명인이다. 엠마의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불안하던 어느날, 레오는 엠마의 부고 기사를 자신이 써두리고 결심하는데 문득 자신이 엠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팩트 체크를 하기 시작하지만 엠마의 이야기와 어긋나는 부분들이 발견된다. 설상가상으로 엠마는 낯선 이와 문자까지 주고받는데...


사실 엠마의 비밀이 좀더 거창한 거라고 짐작했었다. 개인적인 것보단 뭔가 국가적인 거.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한 건 아니지만, 레오와 엠마가 서로에게 더 솔직하고 서로를 덜 사랑했다면 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거 같다. 드러난 진실이 생각보다 작다는 얘기.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걸 이렇게 발전시켰다고? 재밌게 읽긴 했는데 다음번에 이 작가를 또 읽을지는 모르겠다.



22. 별일은 없고요?(이주란. 한겨레출판. 2023. 280쪽)

: 잔잔하게 마음 아프지만 또 잔잔하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 주인공들은 모두 위로가 필요하지만 정말 힘든 일은 이미 지나간 뒤여서 이제는 조용히 회복하기만 하면 되는 상태이다. 그래서, 마치 나도 그들 곁에서 가만가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산산조각난 나 자신을 아주 조금씩 다시 붙이는 기분으로 읽었다. 다 좋았는데 그래도 더 좋았던 건 「여름밤」.



23. 톨락의 아내(토레 렌베르그, 손화수 역. 작가정신. 2022. 264쪽)

: 사랑하는 아내 잉에보르그를 잃고 혼자, 아니 오도와 함께 살고 있는 나이든 톨락. 친딸 힐레비는 잉에보르그가 죽은 후 거의 발길을 끊었고 아들 얀 비다르만 간간이 들여다 볼 뿐이다. 목수인 톨락은 평생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만이 옳다고 믿으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를 거부하며 가부장적으로, 독선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적장애아인 오도를 데려다 키울 때만큼은 아니었다.


이 남자를 어쩌면 좋지? 처음엔 그냥 우직한 아내 바보인 줄 알았고 조금 더 읽고는 표현이 서툴러 오해받는 옛날 아버지라고도 생각했지만 진실을 알고 나니... 톨락의 목소리만 들리는, 길지 않은 이 책에서도 잉에보르그의 힘듦과 힐레비의 상처와 얀 비다르의 인내가 보인다. 가장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오도만이 톨락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아이러니. 


톨락의 무지와 독단, 새 것을 거부하는 고집스러움은 답답하고, 잉에보르그를 떠나보낸 이기심과 폭력성은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게 만들지만 아무도 그의 곁에 없음을 생각하면 잉에보르그가 없는 이 현실이 이미 그에겐 지옥이었다는 걸, 그러므로 죽음은 차라리 그에게 축복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4. 빅 도어 프라이즈(M. O. 월시,송섬별 역. 작가정신. 2023. 512쪽)

: 중년의 셰릴린은 동네 식료품점에 들어온 기계 '디엔에이믹스'를 재미삼아 사용해 보았다가 그 결과 때문에 심란하다. DNA를 분석해서 될 수도 있었던 신분을 알려주는 이 기계에서 토해낸 결과는 셰릴린이 '왕족'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역사 교사인 남편 더글러스와 무난하고 꽤 다정한 결혼 생활을 이어온 셰릴린은 이제 모든 게 다 답답할 뿐이다. 더글러스는 얼마 전 마흔 살 생일에 자신을 위해 트럼본을 샀고, 무탈하게 굴러가는 생활에 불만은 없지만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마을 주민들이 그 기계 사용 후 이상하게 행동하는 게 못마땅하다. 한편 쌍둥이 형 토비가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고등학생 제이컵은 형의 여친 트리나가 자꾸만 접근하는 게 부담스럽고, 트리나의 삼촌인 피트 신부는 트리나가 걱정스럽다.


그냥 가벼운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다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음을 누구나 알지만 그걸 염두에 두며 남을 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작은 마을 디어필드의 상당수 주민들의 행동은 그 기계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인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설명되지 않지. 기계의 비밀은 내가 중반부터 짐작한 대로였고, 그래서 난 계속 이들의 변화하는 관계에 집중하며 읽어나갔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귀에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만 해도 방향을 휙 바꿔 달려가는 인간 관계. 그 약하디 약한 실낱을 부여잡는 건 각자의 몫이다. 



25.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조용호. 민음사. 2022. 204쪽)

: 1980년대 야학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구속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나'는 어느날 우연히 그녀와 닮은 여성을 만난다. 아무리 보아도 30여년 전의 그녀의 모습 그대로인 희연을. 희연에게 다가가 그녀와의 관계를 물었으나 부모를 모르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30여년 전 탄압을 피해 자신과 바닷가 마을에 숨어있다 자신이 잡혀가 버린 후 그저 '증발'해버린 하원의 흔적을 함께 찾아 나선다.


저자 특유의 차분한 슬픔이 이 소설에서는 깊은 회한과 함께 진하게 배어나온다. 그녀를 보내주기 위해 끝없이 떠도는 화자와 희연. 중간중간 인용되는 과거사 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과거사 바로잡기가 탁상행정에 불과하며 얼마나 성의가 없는지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고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화자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하고픈(parrhesia), 그러나 알 수 없으므로 말할 수 없고 보내줄 수도 없는 슬픔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후일담 소설'이라는 용어에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이런 후일담을 계속 읽는 나같은 독자가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26. 사라진 지구를 걷다(에린 스완, 김소정 역. 아르테. 2023. 536쪽)

: 2073년, 일삼촌, 이삼촌과 함께 황량한 붉은 땅 위를 걷고 있는 소녀 달. 저 앞에 돔이 보인다. 이제 이 곳에서 살 수 있다. 바깥과 공기도 다르고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감자도 먹으면서 적응해야 하지만, 이제는 이곳이 집이다. 삼촌들은 달에게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1975년 어린 소녀 '비'는 가정집에서 먹을 걸 훔치다가 잡혀서 병원에 보내지는데, 열 두어 살의 나이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만삭에다가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약스포)

지구가 모두 물에 잠겨버린 미래를 배경으로 200여년 동안 7대의 이야기를 한다. 차분한 문체로 그저 현재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삶을. '비'는 거인을 낳고 그 거인은 '비'가 꿈으로 보여준 메시지를 따라 붉은 별을 좇는다. 후손들에게 차례로 전달되는 꿈. 그리고 그 꿈을 통해 만들어질 문명. 하지만 난, '비'가 어머니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는. 그래서 달의 선택이 기뻤다. 마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달에게 마음으로 전달했던 메시지가 닿은 것처럼. 지구를 망쳐버린 문명 따위. 그러나 어디서든 삶을 계속되겠지. 책을 덮은 직후에는 그저 담담했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저 달의 행복을 바라는 맘 뿐이다.



27. 새벽 2시의 코인 세탁소(박현주. 엘릭시르. 2023. 468쪽)

: '나의 오컬트한 일상' 시리즈. 화자는 여전히 오컬트 컬럼을 쓰고 있는데, 얼마 전 신축 빌라로 이사를 했다. 이 빌라 1층에는 코인 세탁소가 있는데 밤에는 빌라 내부로 통하는 문만 열려 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새벽 2시에 세탁소에 내려간 화자는 땅에서 솟은 듯 나타난 러시아 여성과 맞닥뜨리게 되고, 빌라 주인의 소개에 따라 그녀에게 타로점을 본다.


전작들은 너무 기대를 하고 읽어서인지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은 반대로 기대를 내려 놓아서인가 재미있었다. 사실 전작들에선 오컬트 현상들을 굳이 설명하려고 해서 재미없었는데 여기선 각 에피소드들을 그냥 열어두었다. 그리고 화자의 로맨스가 진전되는 걸 보는 맛도 있고. 참고로 난 그 보험조사원은 반댈세. 또,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조사도 나름 충실한 것도 좋았다. 이 시리즈 계속됐음 좋겠다.



28. 레니와 마고의 백 년(매리언 크로닌,조경실 역. 해피북스투유. 2022. 500쪽)

: 시한부 병동에 있는 열 일곱 레니. 조용한 곳을 찾아 병원 성당으로 간다. 나이든 아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의문("저는 왜 죽어가는 거죠?")은 해소되지 않는다. 병원을 돌아다니던 레니는 미술치료실이 곧 오픈한다는 걸 알게 된다. 또래들이 모이는 시간에 가보지만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시간에 가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고 마음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여든 셋 마고 곁에 앉게 된 레니는 마고의 과거 한 시점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둘이 합쳐 백 살인 이들은 각자의 의미있었던 1년을 한 장씩 그려 백 년을 채우기로 한다.


슬프지만 각오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눈물 쫙쫙 뽑아내는 신파는 아니라는 얘기다. 레니와 마고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둘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둘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 아직도 살아가는 것임을, 죽음 뒤에도 많은 것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고.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백 번째 그 그림 덕분에 나도 많이 슬프지 않을 수 있었다. 



29.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정세진. 고즈넉이엔티. 2023. 280쪽)

: 표제작 외에는 다 약간의 공포를 담고 있는 환상 소설들. 표제작은 너무 무난하고 뻔했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소재가 독특하고 아이디어가 좋아서 재미는 있었다. 다만 이 작가는 문장이 너무 정리가 안 된다. 작가 뿐 아니라 편집자도 기억해 두고 싶을 만큼. 문장에 비문도 많고 한 문장 안에서 중복되는 단어도 너무 많다(비슷한 형용사 세 개를 연이어 쓴 경우도 봤다). 작품 내용에만 집중해서 읽으려 해도 문장이 거슬려서 다음 번에는 이 작가도 이 출판사도 피할 거 같다.



30. 토끼귀 살인사건(안티 투오마이넨,김지원 역. 은행나무. 2023. 464쪽)

: 보험계리사인 '나'는 늘 정확한 수학적 계산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 하지만 회사는 점점 놀이터처럼 변하고,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힘든 '나'에게 상사는 해고를 통보한다. 곧 변호사에게서 연락을 받는데, 하나뿐인 가족인 형이 죽었고 그에게 놀이공원을 상속했다는 걸 알게 된다. 놀이공원에 가보니 겉으로는 잘 운영이 되고있는 듯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대출이 있는데...


살인사건이긴 하지만 범인을 찾는 수사물은 아니다. '누아르'라고 장르를 규정했던데, 어둠의 세계와 긴밀하게 얽힌 이야기이니 누아르가 맞기는 하다. 근데, 사실 이건 사랑 이야기이다. 어쩌면 화자 헨리의 성장기일 수도 있고. 대체 헨리와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건지, 놀이공원은 무사히 운영될 수 있을지, 손을 뻗는 어둠의 세력들에게선 벗어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봤다. 다만 주인공의 성향이 나와는 너무 달라서, 블랙 코미디라고 하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 지는 모르겠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토끼 귀 살인사건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건 사랑 이야기이다. 어쩌면 화자 헨리의 성장기일 수도 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재가 독특하고 아이디어가 좋아서 재미는 있었다. 다만 이 작가는 문장이 너무 정리가 안 된다. 작가 뿐 아니라 편집자도 기억해 두고 싶을 만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