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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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흥집회의 초점은 병 치료에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히는 질병에서 벗어나고 싶은 필요가 충천해 있는데,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상적인 시스템은 부재하니 대중신비가들이 그 자리를 채운 거죠. 대개 개신교 계통의 대중신비가들이 집회에서 성공했던 것 같아요.

부흥집회의 성격이 대단히 혼합주의적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서북지역에서 시작했던 근본주의 신앙은 토착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는데, 1950년대 중반 무렵부터 맹위를 떨친 대중신비주의 신앙은 근본주의적 신앙 요소를 지닌 동시에 혼합주의적인 성향도 내포하고 있었어요.

교회를 만들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이끌었던 나운몽과는 달리 조용기는 자기 부흥운동의 센터를 구축했고, 그곳을 거점 삼아 팽창을 거듭함으로써 권력화된 종교성을 발전시켰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결합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운몽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영혼의 구원에, 몸의 구원(건강)과 물질의 구원(풍요)을 결합한 ‘1+2’의 복음. 그것이 조용기의 저 유명한 ‘3박자 구원론’이에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결합한 기복적 신앙 양식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 신앙의 한 전형으로 발전했어요.

서북주의자들이 ‘파괴적 증오의 정치’를 통해 부상했다면, 조용기로 표상되는 부흥사들은 ‘생산적 증오의 전략’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에 대한 증오를 성공에 대한 욕구의 자양분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생산적 증오의 전략에서 유용한 도구가 혼합주의였어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종교심을 활용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종교성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실패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패와도 관련된 거예요. 이 사람들도 똑같이 한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이거든요. 1920년대 말에 나치즘과 파시즘이 등장한 게 이 사람들의 선택이었던 거죠.

박정희정권의 새마을운동이란 일종의 간증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정을 홍보하거나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일을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했는데, 카리스마적 1인 통치자를 중심으로 농촌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이었죠.

최태민은 기독교를 가지고 설명하기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태민은 1970년대 초부터 유사 종교인 영세교를 이끌다가, 그 유사 종교로는 박근혜를 세우고 자원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싶어서 1975년 목사로 옷을 갈아입어요. 그러면서 십자군 논리를 차용하죠. 최태민은 구국십자군을 만들었을 때 자기 스스로 총장을 맡았고, 단장을 강신명(姜信明) 목사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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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성경학을 공부하러 온 한 사나이가 있었네. 그는 예수의 생애도 모습도 성경에 쓰인 그대로라고 믿고 있었지, 그런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성경에 모시된 때수의 생애도 말씀도 사실이기보다 원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격화하여 지어낸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네 그는 후세의 신앙이 만들어 낸 성경의 예수상을 정중하게 옆으로 밀어놓았네"(p71)..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려졌다.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를 서서히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지만 도다도 나도 손에 거머쥔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 P73

‘그들은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무물한 취기를 느끼면서 확실하지않은 기억으로 예수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나한테는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징조와 기적이 필요한 속물이며 나약한 인간이다.
"나는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에게 기대했던 것이 기적뿐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한테서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현실적인 기적을 더 바라고  있었던 거지 절름발이를 고쳐 달라. 열병에 걸린 아이를  살려 달라, 눈먼 사람을 보게 해 달라.... 그 밖의 것은 예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네."  - P246

사나이의 얼굴에서 땀이 들렀다. 땀방울은 바라빠가 흘린 핏자국 위로 떨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는 곧 찾아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나타냈다. 이 사나이는 바라빠치럼 죽음을 피해 살 힘도 없이 도살되는 어린양처럼 따가몬 죽음에 겁먹고 떠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하게 해주시도록 그의 신에게 바짝 마른 입술로 탄원하고 있었다.  젊은이의 핏자국 위에 떨어지는 방울과 그 일술에서 새어 나오는 기도소리를 백인대장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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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 사회, 1997년과 2008년의 경제 대란을 겪은 이후의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그 어느 나라보다 난폭하게 포획된 상태가 되었잖아요. 그러한 삶의 공간 속에서 안전한 계층이 없어진 거죠. 중상류층조차 삶의 불안감 때문에 종교의 위로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거기에 웰빙교회가 자리를 잡지 않았나 합니다.

회사에 머물며 노동하는 시간도 길지만, 정보 시스템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퇴근하고 나서 하는 외국어 공부, 컴퓨터 프로그램 공부를 비롯해 접대 마케팅, 인맥 만들기를 위한 각종 사적 활동까지 포함하면 실제 노동시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죠. 노동의 연장으로서 술을 마시며 몸이 축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그런 것이 피로사회에 나타나는 ‘번아웃’(burnout)형 질병, 즉 소진성 질병의 배경이 되어서 당뇨라든가 혈관계·순환계 질환, 정신적 질환이 만연하게 됩니다. 그런 질병이 건강 염려증을 낳고, 건강 염려증을 시장화하는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 속에서 더 많은 병이 발굴되고요. 꼭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병까지 치료하게 되는 시스템이 건강을 위기에 빠지게 하는 거죠. 그런 사회에 한국이 진입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배타성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요. 저는 그들끼리 나누는 문화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배타성을 우려합니다. 그 배타성은 전형적인 ‘부드러운 야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도 노골적인 배타성으로 보이지 않고 집단 구성원들도 스스로 배타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상 배타성이 작동하는 문화가 있죠. 그 구성원들은 모임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편견을 은연중 갖게 돼요. ‘부드러운 야만’이란 누군가를 우리의 기억에서 삭제해가는 일을 가리킵니다. 생각을 하면 호혜를 베풀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죠. 그렇게 기억에서 삭제된 이들에 대한 몰이해가 발생하고, 이는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종교시장에서 개신교가 엄청난 힘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교육 인프라를 상당 부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초·중·고등학교 가운데에서도 미션스쿨 계열이 많고, 대학은 70퍼센트 이상이 사립대학인데 그중 가장 많은 것이 기독교계입니다. 그런 곳에 교직원으로 채용되려면 세례증명서, 담임목사 추천서까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가르칠 사람이 아닌 일반 과목을 가르칠 사람이나 일반 직원을 뽑을 때도요. 학생들에게는 채플 수업을 강요하고요. 신학교가 아닌 이상 이런 것은 일반 교육 부문인데 일반인에게 특정 종교의 소속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죠.

가끔씩 강제송환을 앞둔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이 교회에서 농성을 하며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는 경찰이 들어오지 못하니까요. 목사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국가 앞에서 그들의 입장을 변호하며 보호해주는데,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올바른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이야기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사회의 희생물이 되어야 할 외부자에게 무조건 자비를 베푸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일체의 사회 안전망이 없는 세상에서 교회가 그걸 제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한국인들은 사실 종교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상당히 갖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세기 들어 조선왕조가 노쇠하고 자생력을 잃어가자,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 속에서 불안감이 심해졌고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종교가 많이 태어났죠. 한편으로는 서학(西學)이 들어왔고요. 천주교가 탄압받았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종교로서 탄압받았다기보다는 외국과의 연결이나 간첩 문제로서 탄압받았던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801년 황사영(黃嗣永) 백서의 경우 프랑스 군대를 불러들이려 했던 것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중대한 외환죄(外患罪)에 해당하는 일 아닙니까. 중국의 가톨릭 주교에게 ‘여기를 좀 쳐주시오’라고 보낸 편지였으니까, 지배층 입장에서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겠죠.

미움이라는 마음작용이 적대적 테러 행위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남한의 경찰기구나 미군정 정보기관이 그 장치를 마련해준 거죠. 이렇게 해서 테러 행위에 참여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지고요. 그런 점에서 이는 ‘수행적 적대’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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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지 독서 챌린지를 마무리한 후 오늘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토지독서챌린지를 주관했던 토지문화재단에서 수료증과 함께 박경리 선생의 친필, 작품 등이 새겨진 여러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독서챌린지를 통해 <토지>를 부족하나마 훑어볼 수 있었던 소득과 함께 의미있는 선물도 함께 받으니 참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사진 촬영 후 수료증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내와 딸아이 몫이 되었다는 점이... 그렇지만, 제게는 <토지>가 있으니 괜찮습니다...ㅜㅜ


 독서챌린지를 통해 <토지>를 읽는다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합니다. 때로는 한 곳에 머무르며 감동을 더 느끼고 싶은 지점에서도 주어진 일정에 따라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던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있어야 일정관리가 되겠지만요. 제 경우에는 <토지 8>의 월선의 죽음 부분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월선의 죽음을 뒤로 하고 다음 진도를 나갈 때 마치 용이처럼 발걸음을 떼기 힘들더군요. 


 패키지 관광과 자유배낭여행의 차이 정도라 여겨집니다. 때로는 미술관의 작품 하나에 방해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개인여행의 장점이라면, 전체적인 도시의 인상을 느끼는 것은 패키지 관광이 더 나은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독서챌린지를 마무리하면서 2기, 3기와 다른 독서챌린지 일정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챌린지 도중 전문가들의 해설 프로그램도 진행되기에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는 부분은 챌린지가 가진 다른 하나의 장점이라 여겨지네요. 


 <토지>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프로그램이었고 좋은 경험이었기에 이웃분들과 나누고 싶어 글을 올려봅니다.  <토지>를 읽고 싶으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칩니다...


관련 페이지 : 박경리 작가의 소설, 시집, 산문집 챌린지


https://korearf.kpipa.or.kr/uss/ion/evt/EgovEventRceptRegist.do?eventId=EVENT_00000000000391&applcntId=&searchSe=01&menuNo=100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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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5-06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의미 있는 일을 하셨군요. 좋은 경험을 하셨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6 23:31   좋아요 2 | URL
네 페크님 말씀처럼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독서‘가 반드시 외롭게 이루어지는 책과의 대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

희선 2022-05-06 2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수료증을 받다니 좋은 경험이네요 그렇게 한번 읽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언젠가 혼자 보실지도 모르겠네요

겨울호랑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2-05-06 23:39   좋아요 2 | URL
네, 혼자서 읽을 때는 일정 관리가 어려운데 독서 챌린지와 같은 프로그램을 유용하게 활용하면 전체적으로 작품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가끔 머물고 싶은 곳에 가서 사건, 장소 또는 인물을 따라가는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희선님께서도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

바람돌이 2022-05-06 2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드디어 끝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다른 책도 아니고 토지를 끝내고 받는 거잖아요. 의미가 진짜 남다를듯.... 그동안 겨울호랑이님이 토지와 함께 생각할거리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저는 아 토지에서 생각해볼수 있는게 이렇게 많구나하고 생갇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20대때 읽었던 토지와 지금 읽는 토지는 완전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어쨌든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가족분들에게 멋진 선물도 줄수 있었으니 더 좋은 독서였잖아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5-07 08:33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일단 독서챌린지는 마쳤지만, 읽으면서 놓치는 부분도 많이 느꼈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려 했는데 지난 페이퍼들을 보니 제 독서의 한계도 명확했습니다. 작가나 작품 자체로도 의미있는 내용 또는 작가 삶과의 연계 등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네요... 작은 성취와 큰 과제를 부여받은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바람돌이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

파이버 2022-05-07 1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긴 시간동안 꾸준히 달리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7 11:42   좋아요 3 | URL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여러 번 마음만 가졌다가 겨우 일독했네요. 이제 출발선에 선 듯 합니다. 파이버님 좋은 하루 되세요! ^^:)

mini74 2022-05-07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열심히 호랑이님 글 읽은 독자로서 ㅎㅎ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 선물도 예쁩니디 ~

겨울호랑이 2022-05-07 20:51   좋아요 1 | URL
미니님 부족한 글을 꾸준히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더 깊은 생각이 배어날 수 있도록 공부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