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상현에게는 소설을 쓴다는 것, 쓰는 행위 이상의 절실한 무엇과의 대결상태, 문학은 하나의 방패였었는지 모른다. 싸움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래도 좋은가, 이래도 좋은가,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낫질도 도끼질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내부,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대결은, 그러나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욕망과 갈등과 자포자기, 제약과 여건과 의무, 그 모든 것은 첩첩이 쌓인 가시덤불, 이동진의 아들이 일제하에서 어떻게 발붙일 것인가. 발붙일 곳도 없거니와 발을 붙여도 아니 된다. 그러면 어디로 가나 갈 곳이 없다.(7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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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돼지보다 죽지 뿌러진 한 마리의 송학이 초라한 것은 당연한 일이거니 용이가 초라하게 뵈는것도 당연하고, 조선의 백성이 다 같이 초라해 뵈는 것도 당연한 일이로다. 살찐 돼지는 옹졸하고 볼품 없는 발톱에 편자를 끼우고 먹새 좋고 더러운 주둥이에 포문을 물리면은 현인신인들 아니될까. 하여 유구한 문화에다 기원 이천육백 년의 대일본제국은 욱일승천이라, 우러러보게 훌륭한 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로다.(252/572) -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