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큰 축복 - 성석제 짧은 소설
성석제 지음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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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기사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이제 학생은 지금까지의 나하고 같은 운을 갖게 된 거야.... 자연스럽게 학생도 여러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귀신처럼 재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겠지. 마치 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그런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 나 또한 그런 운수를 믿고 내 일을 게을리 해서 여직 평범한 삶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_ 성석제,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p68

성석제의 <내 생애 가장 축복>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길지 않은 분량의 각 이야기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내용이기에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읽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운(運) 좋게 끝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는 운 나쁘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모두 삶을 송두리째 바꿀 극적인 이야기들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삶 속에서 있으면 좋을 행운, 없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운들은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앞서 택시 기사가 놓쳐버린 일상의 깨달음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얻는 깨달음이 어떤 운보다 더 소중한 것임을<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통해 배워 간다...

같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닮아간다.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무언의 대화 상대가 되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준다. 삶에서 얼마 되지 않을 ‘개좋은‘ 만남을 놓치지 말고 누리라는 것을,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사랑하라는 것을, 길드는 게 길들이는 것임을. 산소(개 이름)를 만나기 전까지, 진정 난 그걸 몰랐었다. _ 성석제,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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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이같이 직업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고 지식의 형성 과정도 다르지만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 있었다. 공통된 것이라기보다 운명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하는 편이 옳다. 그것은 물론 부모대에서 또는 조부대에서 시작된 것이며 시세에 따라 부침하고 성쇠를 거듭한 최참판댁 명운과 무관하지 않고 일본의 침략으로 파생되는 사건과도 연관된다.(p355/478) - P355

제국주의 일본의 동물적 탐욕은 그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들의 운명을 바꾸어왔는가. 두메산골, 골짝골짝마다 핏줄같이 시내 흐르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민이 되어 떠도는 이 그 얼마인가. 만주로가고 중국으로 가고 연해주로 가고 하와이 일본으로, 피 값도 안 되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건만 도시에는 여전히 거지들이 떼지어 다니고 지게 하나에 목숨을 건 사대육부 멀쩡한 사내들이 정거장마다 부둣가마다 허기진 눈빛으로 짐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 바로 이들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방 안에 앉은 사내들 부모들이었다. 정면돌파를 했든 측면 지원을 했든지 간에 그들의 유대는 동지로서 깊고 강한 것이었다.(p357/478)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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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되고 접어서 봉사가 되었겄소, 누가 되고 접어서 비부리 (벙어리)가 되었겄소. 보고 듣고, 복 많은 년놈들, 앞 못 본다고 속이묵고 뺏아묵고, 말 못한다고 속이 묵고 뺏아묵고, 세상이 그런 거라요. 심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옆어놓고 등짝 밟는 기이 예사,"(p17/594)
- P17

"경거망동, 그게 민족주의가 가진 취약점이다. 민족주의만 내세우면 어떤 범죄도 합리화하는, 나는 오늘날 식민지정책을 강행하는 나라에 대해 민족주의보다 국가주의, 그러니까 그건 제국주의지만 그들 스스로는 모두 민족주의자지."(p194/594) - P194

"만보산사건의 진상은 몰랐다 하더라도 그 곳에 있던 놈이면 그곳 실정쯤 파악하고 있어야지. 일본 기관에서 고의적으로 틀린 오보를 판단 없이 송고해? 의도적이 아니 었다 하더라도 「조선일보 」 는 어용지 「경성일보」와 함께 일본의 계락을 도운 셈이야. 함정에 빠진 거라 해도 좋고."(p195/594)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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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생명을 이루게 하는 것이요, 부부의 근원은 생명을 탄생하게 하고 그 생명을 이루게 함이니 미세한 벌레도 생명을 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곳에 알을 까고 초목도 열매를 맺기 위하여 꽃을 피우며 나비를 부를 뿐만 이니라 땅속의 진기를 숨가쁘게 빨아올려 열매를 이루게 함이니 만물의 생사는  더불어 있는 것, 더불어 있다 함은 정으로 엮어졌다. 정이 물(物)을 다스리고 정이 물로 향할 때 무에도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나 물이 정을 침범하고 다스리려  적에는 생명이 깨어져, 만물의 특성이 깨어지고 인성도 깨어지고 더불어있을 수도 없거니와 천지만물은 서로 떠나서 나도 없게 되고 천지만물도 없게 되는 것,  좁게 보고 좁게 생각지 마시오. (p508/762) - P508

우리가 말하는 한에는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한이 된다, 한이 맺혔다, 할 때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빼앗겼든 당초 주어지지 않았는지  간에 결핍을 뜻하고, 한을 풀었다,  할 때는  채워  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해서 결핍은 존재할 수 없는  방향으로, 채워졌음은 존재하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그것은 생명 자체에  관한 것이에요. 한은 생명과 더불어 왔다 할 수 있겠어요. 한의 근원은 생명에 있다 할 수도 있겠어요.(p572/762)
- P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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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로운 업종은 어디서 왔는가. 누가 들여왔고 누구의 손에서 경영이 되는가. 일본에서 건너왔고 일본인 그들에 의해 주로 경영이 된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한 적개심이나 거부의 감정을 쉽사리 지적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한편 유교사상에 길들여진 조선 백성들의 잠재된 의식 속에는 예절과 검소 그 격조 높은 선비정신의 잔영이 있었을 것이요, 생락할 수 있는 데까지 생락하는 세련된 미의식, 수천 년 몸에 배고 마음 깊이 배어 있는 안목에서 본다면 서양 것은 요란해 뵈었을 것이고 일본 것은 저속하고 지졸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양 것 일본 것이 혼합된 그 같은 새로운 업종을 이용하고 거래하면서도 못마땅했을 것이며 보수파들은 더더구나 모멸하고 혐오하기도 했을 것이다.(p17/596)
- P17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일본의 옷이나 색채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합니다. 특히 색채는 불투명하고 부피를 느끼지요. 감색, 검정, 갈색, 붉은빛 그런 것이 주조인데 기타 빛깔도 순수한 색채는 없지요. 옷 형태에 있어서도 율동이 없습니다. 그들의 옷의 신은 거의 고정돼 있지요. 겨우 좀 흔들리는 소매는 흔들리는 거지 율동은 아니거든요. 그들의 앞머리는 밀어붙여 뒷머리만 모아서 뒤꼭지 폭에 마게를 만드는데 맨들맨들한 앞머리는 불모의 산같이 역시 고정돼 있는 느낌입니다.(p246/596)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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