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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1월
평점 :
수운이 한글가사를 쓴 것은 우발적으로 흥에 겨워 쓴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한글가사를 집필하여 남겨야겠다는 아주 명백한 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p35)... 그런데 수운은 왜 한글가사를 그토록 열심히 썼을까? 그 이유인즉슨 매우 단순하다. ˝한글˝은 민중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한글가사는 수운이 애초로부터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양식이다. 이러한 수운의 깨인 의식은 동학을 민중의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35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 1948 ~ )의 <용담유사 龍潭遺詞>는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의 한글가사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한글로 쓰여진 작품을 한글역주한다는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리지만, 작품에 쓰여진 단어와 의미안에 수운의 삶과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어 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용담유사>를 <동경대전>과 연관지어 풀이한다. <동경대전>에 담긴 수운의 사상은 <용담유사>를 통해 민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동경대전>이 포도나무라면, <용담유사>는 가지라 볼 수 있을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동학의 경전이기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떠올리게 된다.
수운이 상제와 만나 대답하는 광경은 인격신적인 관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무극대도의 출발점이 인격신과의 해후였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신유학의 리기론적 사유체계와 또다른 차원의 어드벤쳐로서의 동학의 성격을 규정 짓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95
수운은 항상 하느님을 만난다. 그의 하느님은 인격체로서 수운에게 말을 건다. 수운은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은 그에게 명령을 하달하기도 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그의 몸의 생성체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현상이다. 혹자는 수운을 무병으로 신음하는 무당으로 볼지도 모른다. 수운에게는 분명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태극의 배면에 무극이 배접되어 있는 것처럼.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29
<용담유사> 안에는 수운이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이 드러나며, 그의 인간적인 면이 잘 드러난다. 또한, 민중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표현되며 그의 사상이 담겨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 <시편>에 드러난 다윗의 비탄과 환희, <코헬렛>에 표현된 솔로몬의 깨달음을 우리는 작품 안에서 만나게 된다. <동경대전>이 종교창시자 자신이 직접 쓴 복음이자 서간이라 한다면, 이들 작품 전체를 통해 천도교의 교리인 무극대도(無極大道)에 다가가는 것이 바른 이해를 위한 순서가 아닐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유튜브 채널 <도올TV>에서 저자 직강이 진행되고 있기에 이 정도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용담유사>는 수운이라는 한 인간의 발가벗은 실존의 모습니다. 그것은 투정이요 원망이요 권유요 효유요 꾸짖음이요 천명의 고백이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감정의 기복을 통관하는 것은 대인의 우환이요, 다시개벽에 대한 희망이요, 삶과 죽음의 초월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47
수운의 신관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노이무공 勞而無功˝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주의 생성 밖에서 그 과정을 주관하거나 컨트롤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천지의 생성과 더불어 노력하여 공을 이루는 과정 process적 인사이더인 것이다. 수운의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생성과 더불어 실패하고 좌절하는 하느님, 기氣에 대하여 이상적인 리理만을 제공하는 하는님의 아닌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76
하느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역시 수운의 의식의 정직함이다. 불우한 자신의 처지,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사회 활동에 대한 당혹감,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적 성과가 없는 상태의 초라함, 엉망인 가정살림 등등의 현실現實과 무극대도라는 엄청난 깨달음이 부과하는 이상理想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야말로 실존적으로 극복키 어려운 과제상황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