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 p346/384

24시간 편의점. 하루 온종일 영업을 하는 편의점이지만, 편의점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매우 짧고 일시적이다. 담배, 맥주, 컵라면 등 일회성 소비품을 찾는 손님과 아르바이트 점원, 프랜차이즈 대리점 사장님.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이와는 달리 순간에 불과하다.

원플러스원 상품, 4묶음 만원 맥주에 따라 자신의 기호를 바꿔야 하는 손님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한 수단으로 일하는 점원과 가게의 모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점주는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교류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려워도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상대를 보며 선뜻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작품 속의 인물에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어제부로 이 상품 다시...... 원 플러스 원 됐으니까, 오늘은 아버지가 사 가시면...... 되고, 내일부턴 딸들보고...... 사러 오라고 하세요.˝ 경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본 사내는 헛웃음을 한번 짓더니 계산대 바닥을 통통 두드렸다. 경만은 코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사내에게 목례를 한 뒤 지갑을 열어 카드를 집어넣었다. 지갑 속에서 딸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웃고 있었다. 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 p189/384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 p378/384

그렇지만, 동시에 이러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우리 사회의 단절을 합리화하는 다른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상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자신 역시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절의 모습을 낳은 것은 아닐런지. 24시간동안 운영되는 편의점이 12시간 동안 운영되는 동네슈퍼보다 더 적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효율‘과 ‘효과‘를 가져온 소통의 부재임을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그제야 선숙은 자신이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만 바랐지, 모범생으로 잘 지내던 아들이 어떤 고민과 곤란함으로 어머니가 깔아놓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 p154/384

PS. 항상 편의점이 ‘인간들의 주유소‘인 것은 아니다. 늦은 밤에도 많은 이들이 편의점으로 모여드는 시간대가 있는데,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십중팔구 편의점마다 2개씩 들어오는 ‘포켓몬 빵‘이 들어오는 시간대만큼은 조금이나마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2015년의 허니버터칩 때도 비슷했었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4-01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포켓몬....저도 지난 주말에 포켓몬 순례^^;;;

소설 [편의점 인간]은 읽은 후, 기분 축축 처지는 작품이었는데 [불편한 편의점]은 좀 다른 톤으로 사회 비판적인 소설인가보네요^^

겨울호랑이 2022-04-01 08:06   좋아요 1 | URL
포켓몬 구하기 참 힘들지요... 저도 점심시간에는 회사 근처 편의점, 저녁에는 집 근처를 배회하는데 참 쉽질 않네요... ㅜㅜ 하나 구하기도 이렇게 힘든데, 포켓몬 씰 종류가 150종라니 ㅠㅠ ... 또 이번엔 용케 넘겨도 머지 않은 미래에는 아이돌 콘서트 예약하기 위해 광클릭을 할 듯 합니다...

<편의점 인간>은 아직 못 읽어서 분위기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를 조금 내려놓는 대신 인간애를 진열한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나름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얄라얄라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베텔게우스 2022-04-02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점포에 포켓몬빵 도착하는 시간이 대략 오후 열시 전후더라구요. 물류차가 도착하기까지 30분간 매장에서 기다리는 모자도 보았습니다. 저는 편의점 알바 (누적) 2년 1개월차 입니다. 쓰신 리뷰를 보니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소설입니다.^^ 여담으로 띠부띠부실은 피카츄 외 열 장 모았습니다.ㅋㅋ

겨울호랑이 2022-04-02 07:12   좋아요 1 | URL
하나 보기도 힘든 피카츄를.... 베텔게우스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백화점 명품을 구입하려는 줄 못지 않게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베텔게우스님께서는 더 공감하시면서 읽으실 책이라 여겨지네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

베텔게우스 2022-04-02 19:45   좋아요 1 | URL
아아, 아닙니다. 피카츄가 한 장, 다른 포켓몬이 열 장입니다.^^ 그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합니다. 알바인데도 자주 못 사고 기회가 와도 정도껏 하나씩 사고 있습니다.ㅋㅋ
아무튼 겹치는 종류가 없는 것만으로 복인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4-02 21:19   좋아요 1 | URL
에고... 베텔게우스님 너무 부지런하시면 근처에 계신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ㅋㅋ 저는 봉지도 구경 못했는걸요.. ㅜㅜ 공정한 포켓몬 구매를 위해 대충 구입해 주세요. ㅋㅋ 오늘 하루 잘 마무리 하시구요^^:)
 

"나무묘호렌게쿄[南無地法蓮華經] 나무묘호렌게쿄, 나무모호렌게쿄!" 소위 일련종(日宗)의 삼대비법(三大法)의 하나를 외면서  왜중은  지나갔다. 그것 역시 기분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환국이 자신은 불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절과는 친숙해져 있었고 이번에는 더군따나 부친의 관음탱화를 보고 머릿속이 씻긴 듯 맑아 있었는데 진주거리에서, 그것도 재판소 앞에서, 죄수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왜중을 만났다는 것이 기이했고 거부반응이 심하게 발동했다. 긴 작대기가 순식간에 나기나타로 변하며 벤케이에 의해 창시된 일련종 자체도 결코 조선인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 었다. 법화경에 의거한 것이지만 타종(他宗)에 대하여 가장 공격적이며 전투적인 일련은 이른바
국난내습을 외치면서 입정안국론을 주장했는데 후일 일련은 국수주의의 고리로서 정한론자 군국주의자들이 곧잘 치켜들고 나오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운이 한글가사를 쓴 것은 우발적으로 흥에 겨워 쓴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한글가사를 집필하여 남겨야겠다는 아주 명백한 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p35)... 그런데 수운은 왜 한글가사를 그토록 열심히 썼을까? 그 이유인즉슨 매우 단순하다. ˝한글˝은 민중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한글가사는 수운이 애초로부터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양식이다. 이러한 수운의 깨인 의식은 동학을 민중의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35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 1948 ~ )의 <용담유사 龍潭遺詞>는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의 한글가사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한글로 쓰여진 작품을 한글역주한다는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리지만, 작품에 쓰여진 단어와 의미안에 수운의 삶과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어 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용담유사>를 <동경대전>과 연관지어 풀이한다. <동경대전>에 담긴 수운의 사상은 <용담유사>를 통해 민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동경대전>이 포도나무라면, <용담유사>는 가지라 볼 수 있을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동학의 경전이기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떠올리게 된다.

수운이 상제와 만나 대답하는 광경은 인격신적인 관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무극대도의 출발점이 인격신과의 해후였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신유학의 리기론적 사유체계와 또다른 차원의 어드벤쳐로서의 동학의 성격을 규정 짓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95

수운은 항상 하느님을 만난다. 그의 하느님은 인격체로서 수운에게 말을 건다. 수운은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은 그에게 명령을 하달하기도 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그의 몸의 생성체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현상이다. 혹자는 수운을 무병으로 신음하는 무당으로 볼지도 모른다. 수운에게는 분명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태극의 배면에 무극이 배접되어 있는 것처럼.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29

<용담유사> 안에는 수운이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이 드러나며, 그의 인간적인 면이 잘 드러난다. 또한, 민중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표현되며 그의 사상이 담겨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 <시편>에 드러난 다윗의 비탄과 환희, <코헬렛>에 표현된 솔로몬의 깨달음을 우리는 작품 안에서 만나게 된다. <동경대전>이 종교창시자 자신이 직접 쓴 복음이자 서간이라 한다면, 이들 작품 전체를 통해 천도교의 교리인 무극대도(無極大道)에 다가가는 것이 바른 이해를 위한 순서가 아닐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유튜브 채널 <도올TV>에서 저자 직강이 진행되고 있기에 이 정도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용담유사>는 수운이라는 한 인간의 발가벗은 실존의 모습니다. 그것은 투정이요 원망이요 권유요 효유요 꾸짖음이요 천명의 고백이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감정의 기복을 통관하는 것은 대인의 우환이요, 다시개벽에 대한 희망이요, 삶과 죽음의 초월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47

수운의 신관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노이무공 勞而無功˝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주의 생성 밖에서 그 과정을 주관하거나 컨트롤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천지의 생성과 더불어 노력하여 공을 이루는 과정 process적 인사이더인 것이다. 수운의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생성과 더불어 실패하고 좌절하는 하느님, 기氣에 대하여 이상적인 리理만을 제공하는 하는님의 아닌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76

하느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역시 수운의 의식의 정직함이다. 불우한 자신의 처지,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사회 활동에 대한 당혹감,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적 성과가 없는 상태의 초라함, 엉망인 가정살림 등등의 현실現實과 무극대도라는 엄청난 깨달음이 부과하는 이상理想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야말로 실존적으로 극복키 어려운 과제상황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운이 생각하는 "다시 개벽" 은 대단한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말랑말랑하고 깨인 의식을 지닌 민중의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글가사는 수운이 애초로부터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양식이다. 이러한 수운의 깨인  의식은  동학을 민중의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90년대 동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전국적 저력의 원천은『동경대전』이라기보다는 『용담유사』라고 보아야 한다.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려 두 시간은 기다렸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고문이다. 사랑방의 공간은 최서희의 무시무시한 힘의 팽창이었고, 시간은 사멸되어가는 화석의 기나긴 깊이였다. 조준구는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계속하여 흘렀다. 입속은 가뭄날의 점토(土)처럼 바짝바싹 말라서 굳어진다. 그러나 차 한 잔 내오질 않는다. _p220/580 - P220

조준구는 얼굴의 땀을 또 닦는다. 지폐에 손이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쫓아 나와자신을 결박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돈을 보고 손을 뻗칠 수 없다. 상체는 앞으로 기우는데 팔은 천 근 같아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전신을 누르는 중량을 들어올려야 한다. 조준구는 드디어 팔을 뻗어 지폐를 집어든다. 서희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모른다. 미소는 크게 확대되어 갔다. 하얀 이빨이 드러나면서 흔들린다. 웃음소리가 일정한 굴곡을 이루며, 톱날같이 조준구 마음을 썰어댄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_ p225/580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