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과거란 잊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오륙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승차사라고 손가락질하며 흉물스럽게 여기던 까마귀들도 본래의 평범한 새로 돌아가 있었고, 까마귀 날갯빛처럼 불길했던 검은 경찰 제복도, 시체를 쪼는 까마귀 부리 같던 제모의 에나멜 차양도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밀고자의 운명이었다.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헌신짝처럼 가차 없이 버림을 받는 것,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 현관문턱에서 구두나 고치면서 먹고살아라,가 전부였다.

그러나 죽음의 시절은 이제 일단락 났다. 그해 여름, 보리 풍작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휴전 소식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모든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휴전선이 획정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과연 그것을 입증하듯이 도두봉의 기총 사격도 그쳤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생활의 암담함을 일시에 걷어내준 것이 6학년 2학기 때 찾아온 휴전이었다. 휴전은 고달픈 삶의 한 세월을 과거지사로 돌려버리는 새로운 전기였다. 모든 것이 바쁘고 활기차게 흥청거렸는데,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바쁘게 돌아갔다. 수업 내용이 충실해졌고 아이들도 비로소 면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선생도 학생도 모두 수업에 열심이었다. 이제, 지식은 미심쩍은 것이 아닌, 출세의 확실한 수단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중1 시절은 완충기였던 것 같다. 그 시기는 여러 면에서 초등학교 6학년의 연장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나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그것의 한 분자였고, 또래집단에서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그 구성원이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속에서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예컨대 계절은 한창 여름인데, 백중이 지나면 귀뚜라미 울음과 함께 물이 차지면서 여름 속에 가을이 배태되듯이, 어린이의 무구한 몸과 정신 속에서 이차성징과 함께 폭풍의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쇠퇴와 맹아가 동시에 이뤄지는 이행기. 이제 그 어린이는 늙어버렸다. 그 무구한 혼과 육체는 소멸하고 그 대신에 무자비한 수컷이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병아리도 닭도 아닌, 어중간한 중성의 상태, 말하자면 멋대가리 없게 생긴 중병아리가 그때의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밑창이 터져 저승과 통한다는 용연의 그 푸른 심연에서도 저승 물이 아닌, 싱싱한 현실의 생수가 솟았다. 무진장의 생수가 거기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쳐올랐는데, 그래서 물빛이 더욱 푸르렀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밑 지하에서 솟구치는 생수의 양이 얼마나 엄청난지 썰물 때면 알 수 있었다. 썰물에 바닷물이 빠져나가 수위가 반쯤 줄어들면, 해수보다 생수가 훨씬 양이 많아져서, 그 넓은 용연 전체가 시리도록 물이 차가워지고, 물빛도 한결 푸르게 맑아지곤 했다. 정드르의 여러 동네 사람들이 길어다 먹는 샘물 통은 서편 물가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물도 역시 밀물이면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썰물이면 드러나는, 해수 속의 생수였다.

그렇다. 해수 속의 생수, 그것이야말로 용연이 보여준 최고의 압권이었다.

그리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용연의 신비로운 푸른빛은 이제 나의 내면으로 옮아와 하나의 상징, 하나의 생활지표로 바뀌어 자리 잡고 있다. 용이 잠자고 있는 그 심연의 파란 물빛이 문득 의식의 표면에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삭막함을 뚫고 희열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회색의 도시 공간 속에서 싱싱한 샘물이 솟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처녀·총각들의 혼사도 그해에 많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칠년 동안 거의 끊기다시피 했던 혼사들이 그해에 부쩍 성행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 많은 젊은이들이 귀향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대 갔던 사촌 형이 무사귀환하여 결혼식을 올린 것도 그해였다.

어쨌거나, 이제 죽음의 계절은 끝이 났다. 죽음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의 부활, 엄청난 수의 인명 파괴에 맞먹는 종족 번식의 대공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의 푸른 불씨를 일궈내어 마침내 초토의 검은 땅을 푸르게 덮어야 했다.

책 읽기는 우울한 나의 침묵에 잘 어울렸다. 나는 말을 잘 안하는 대신에 그 침묵을 책 읽기로 채웠다. 책을 읽고 나면, 좋은 말 상대를 만나 한참 다변스럽게 얘기를 주고받은 것 같은 흐뭇함이 느껴졌다. 책들은 나에게 까닭없는 슬픔, 이른바 ‘고독’이란 걸 가르쳐주기도 했다. 슬퍼할 일도 없는데 공연히 허무해져서 눈물을 글썽거릴 때가 종종 있었고, 그런 눈물일수록 감미롭게 느껴졌다. 나의 미래는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나의 우울이 그렇게 만들 것만 같았다. 가난한 글쟁이, 막연하지만 그것이 나의 미래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꼭 문학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한 영육의 불화·분리는 자연의 한 부속물이었던 내가 거기서 떨어져나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야만·무지·변경과 같은 말이었고,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래는 가난 때문에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있었다. 변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가난한 소년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꿈이었다. 고교 공부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저 수평선을 넘을 수 있을까? 나를 키운 모태인 바다가 도리어 비상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라는 뼈아픈 자각, 그랬다, 수평선은 내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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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다만 오늘의 태양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오늘의 밝은 태양보다 망각된 과거가 더 중요하다.

나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재미로 벌레를 죽이는 어린애가 어찌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그렇게 해방 삼년은 흉년, 역병, 흉년의 악순환이었다. 왜정 말기를 혹독한 고통 속에 보내고 해방을 맞았으나, 그 역시 진구렁 속의 삶이었다. 그러므로 섬사람들에게 해방은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니었다. 왜정 때의 그 악명 높던 곡식 공출이 여전히 존속되어 부족한 식량을 수탈해가는데 어찌 해방이며, 이민족들이 나라를 두동강 내고 점령하고 있는데 어찌 해방이라고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그 이듬해인 1947년 3월 1일, 읍내에 이만 군중이 모여든 대시위는 이렇게 극한상황에 몰린 민생의 피맺힌 절규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슬픔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집회에 무차별 총격으로 응답했으니, 여섯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학살이 집중적으로 자행되었던 그해 겨울과 초봄, 한라산 눈 속에서 동백꽃이 무수히 떨어졌다. 그래서 하늘도 산도 서럽다고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었을까. 항시 낮게 드리워 있던 음울한 구름 밑에서 바람까마귀떼의 광란의 춤과 함께 수만의 인명을 도륙 내는 대학살의 카니발이 연출되었다. 수만의 인간과 함께 수만의 가축들도 비명에 쓰러져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덜 서러워야 운다고, 덜 무서워야 운다고 했다. 사태 후에도 여전히 무서워 수십년 동안 맘 놓고 울어본 적이 없다는 그들, 사태의 참상을 말하려면 말이 너무 모자라 다 못한다고 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언어절(言語絶)의 참사

허리까지 잠기는 풀밭을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내 영혼에 예리하게 침투하는 야초의 독한 향내…… 거기에서 나는 내 존재에 대한 강렬한 의식과 함께 내 죽음 자체에도 관대해진다. 내 아버지, 내 조상들이 묻힌 곳, 그 초원은 모든 섬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어미의 자궁인 것이다. 그러나 피맺힌 한으로 해서 조금도 관대해질 수 없는 무자·기축년의 그 주검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도 거기로 돌아가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삭일 수 없는 여한은 어찌할 것인가.

물론 그 가혹한 시절은 어린 내 가슴에도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와 우울증을 심어놓은 게 사실이다. 그 우울증의 결과로 나는 오랫동안 말을 더듬었는데 그 흔적은 아직도 내 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신의 성장에 해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피해가게 마련이다. 슬픔, 외로움이야말로 성장에 유해한 물질이 아닌가. 몸 가벼운 만큼이나 마음 또한 가벼워 울다가도 금방 웃을 줄 아는 것이 아이들이니, 어떠한 슬픔에도 기쁨의 양지를 향하여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죽음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굶주림은 여전하여, 늘 기죽어 허리를 못 편 채 먹이를 찾아 불볕더위 속을 불개미처럼 뿔뿔 기어다니는 신세인데, 무슨 놀이가 따로 있고 무슨 오락이 따로 있겠는가. 그리하여 낮 동안 텅 비어 적막했던 우리 동네는, 어른들이 일터에서 돌아오는 저녁 시간이면 아연 활기를 띠어 이 집 저 집에서 욕질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매 맞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곤 했다. 가난한 그들에게 그것은 자식 교육이자 유일무이한 오락이었다.

붉은 머리띠의 상징은 이제 사라져버렸는가.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푸른 군복에 붉은 머리띠라니, 푸른 국방색과 붉은색은 서로 상극이 아니었던가. 고문자들은 벌거벗은 내 몸에 푸른 군복을 입혀놓고 매타작하면서, 군을 욕보였다고 나더러 빨갱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나에게서 발견한 붉은색이란 짓이겨진 중지 끝에 끈끈하게 엉긴 붉은 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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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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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옴팜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69/270


 현기영(玄基榮, 1941~ )의 단편소설집 <순이 삼촌>에는 10여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 이들은 모두 제주 4.3사건과 연결고리가 있으며, 이 사건이 모두에게 감히 언급되어서는 안 될 '금기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작품 속 화자들은 대체로 4.3사건을 전해 들은 간접경험자이거나 어린 시절 경험한 이들이다. 그렇지만, 직접 증언보다 흐릿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4.3사건이 생존자에게 남긴 상처를 독자들은 더 실감하게 된다.


 당신이 그전서부터 파출소를 피해 다니는 이상한 기피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일단 씌어진 누명을 벗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신은 1949년에 있었던 마을 소각 때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어, 불에 놀란 사람 부지깽이만 봐도 놀란다는 격으로 군인이나 순경을 먼빛으로만 봐도 질겁하고 지레 피하던 신경 증세가 진작부터 있어온 터였다. 하여간 당신은 그 콩두말 사건으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었던 모양으로 절간에서 두어달 정양까지 해야 했다. 그때부터 당신은 심한 결벽증에 사로잡혀 혹시 누가 뒤에서 흉보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붙잡혀 늘 전전긍긍하게 되고, 나중엔 환청 증세까지 겹쳐 하지 않은 말을 들었노라고 따지고 들곤 했다. 그리고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올 무렵에는 상군해녀이던 당신이 갑자기 물이 무서워서 물질마저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43/270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 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9/270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니 고향은 한마디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의 전부였고, 행복이나 출세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중호는 고향의 모든 것을 미워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6/270


 제주 4.3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 '빨갱이'가 된다는 사실은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이들에게 또다른 죽음의 공포였을 것이다. 이념과 사상을 채 알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초토화 작전과 무장대에 의해 학살을 당한 사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은 결국 '이데올로기'에 연유한다. <아내와 개오동>에서 묘사된 '개오동 나무'는 이데올로기의 은유로 표현된다. 온 집안을 가득 메운 오동나무와 이에 빌붙어 기생하는 벌레들. 온 나라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상황으로 밀어넣고 단물을 빨어먹는 집단의 은유 속에서 이를 쳐내버리고 싶어하는 화자의 마음은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의 공통된 억눌린 마음이 아닐까.


 이념과 명분은 오직 그들만의 독점물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아내와 개오동>, p139/270


 하여튼 나무는 집의 모든 것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거의 온 마당이 이 나무 그늘 밑에 들어갔다. 장독대를 뒤덮고 추녀 끝을 찌르고 역한 냄새 나는 가지 끝을 석규 방으로 빼짓이 들이밀기도 했다. 화단에도 그늘이 들어 분꽃도 백일홍도 맨드라미도 미처 끛을 피우지 못한 채 노랗게 이울어졌다 게다가 개털까지 날아들어 곰팡이처럼 화단을 허옇게 덮었다. 아내는 죽은 화단을 모조리 파헤쳐, 따낸 벌레 붙은 오동잎을 파묻었다.... 이제 와서 벌레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나무를 밑동에서 싺둑 베어 내버리는 것뿐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아내와 개오동>, p125/270


 2022년 제주 4.3 사건 74주년을 맞아 <순이 삼촌>을 다시 꺼내 읽었다. '삼촌' 이라는 어감에 '순이 삼촌'을 언뜻 남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순이 삼촌은 여자다. 제주지역에서는 삼촌을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하기에  낯설게 느껴지는 '순이 삼촌'이라는 단어. 그리고, 작은 단어 하나에서 느껴지는 제주도민과 외지인 사이의 거리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선 이데올로기와 1948년 5.10 총선거를 전후한 분단 체제가 가져온 제주의 비극. 


 다음부터는 모일 때마다 각자 사례를 한가지씩 취재해 가지고 나오도록 하면 어떨까? 각자 가슴속에 묵혀둔 피해의식을 떳떳한 증오로 바꾸기 위해서, 그리나 증오가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9/270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희생자와 이들이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때문에, 사건의 남긴 집단의 기억은 잘 전달되지만, 사건의 의미는 온전히 독자들에게 넘겨진다. <해룡 이야기>에서처럼 4.3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사건을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복이 아닌 용서를 위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서청이 와 부모형제들 니북에 놔둔 채 월남해왔가서? 하도 뻘갱이 등쌀에 못 니겨서 삼팔선을 넘은 거이야. 우린 뻘갱이라문 무조건 이를 갈았디. 서청의 존재 이유는 앳세 반공이 아니가서. 우리레 무데기로 엘에스티(LST)타구 입도한 건 남로당 청지인 이 섬에 반공전선을 구축하재는 목적이었는디.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59/270

뒤늦게 초토작전을 반성하게 된 전투사령부는 선무공작을 펴서 한라산 밑 동굴에 숨은 도피자들을 상당수 귀순시켰는데 현모 형도 그중에 끼여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6.25가 터져 해병대 모병이 있자 이 귀순자들은 너도나도 입대를 자원했다. 그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멋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눌러 있다간 언제 개죽음당할지도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고향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묭맹을 떨쳤던 초창기 해병대는 이렇게 이 섬 출신 청년 삼만명을 주축으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따지고 보면 결국 반대급부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6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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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04-04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4.3에서 자유롭지 않더래요. 할아버지 아니면, 외할아버지, 아니면 그 형제들. 그리고 연좌제. 90년대말 학번까지 빨갱이 손자로 피해를 봤다면 당사자말고 믿는 사람이 없을 거에요. 이제라도 널리 알려지니 참 기쁘고 다행일 따름입니다-.

겨울호랑이 2022-04-04 10:52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섬 전체 인구의 10%가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한 엄청난 일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도 못한 채 침묵을 강요당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저도 대학교 가서야 제주출신 친구에게 4.3사건을 겨우 들었으니까요.... 모든 이들이 마음 깊이 새기고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주 관광 전에 4.3평화공원을 먼저 방문해서 아름다운 자연 뒤에 숨겨진 슬픈 역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7 20:5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좋은 5월 보내세요! ^^:)

러블리땡 2022-05-08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겨울호랑이 2022-05-08 09:46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께서도 행복한 어버이날 가족과 함께 보내시길 바랍니다! ^^:)

얄라알라 2022-05-08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 호랑이님!
5월 가정의 달 첫주 바쁘실 텐데, 축하인사 받으시느라 더욱 바빠지셨죠?
기쁜 일로 바쁘신거니 좋습니다!

항상 치우치지 않은, 차분한 어조로 중대한 사안을 다뤄주시는 그 방식을 몰래 배워가며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8 21:14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웃분님들께서 축하해주시는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어버이날 잘 보내셨는지요? 활기찬 한 주 여시기 바랍니다! ^^:)

그레이스 2022-05-08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도 당선되셨군요
며칠 바빴던니 놓친게 많네요
축하드려요 ~

겨울호랑이 2022-05-08 21:1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는 운이 좋네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강나루 2022-05-08 1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5-08 21:15   좋아요 2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모처럼 내린 비로 촉촉해졌습니다. 다음 한 주 상쾌하게 여세요! ^^:)
 

 서희가 노발대발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희는 양현의 졸업을 고대했으며 진주에 돌아올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윤국이와 결혼시키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서희 꿈의 완성인지 모를 일이다. 이상현과 봉순의 딸 이양현과 최서희와 김길상의 아들 윤국이의 결합은. _ 박경리, <토지 18> , p367/672


<토지 독서챌린지> 36주차. 이번 주 독서챌린지 주제는 : '5부 3권에서 내가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은?'이다. <토지 18>의 인물 중 베스트를 선정하는 것이 주제인데,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토지>의 작품세계 특성상 되도록 폭넓은 인재 등용이 중요하겠지만, 이번에 읽은 18권에서는 모처럼 '최서희'가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주인공 서희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서희의 어느 부분이 인상적이었을까?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토지 18>에서 서희는 봉순(기화)의 딸 양현과 자신의 아들 윤국을 부부로 맺으려 한다. 오랜 기간을 한 가족처럼 지낸 양현과 윤국은 물론 남편 길상마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혼인(婚姻). 그렇지만, 서희는 주위 사람들의 감정과 혼란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이를 밀어붙인다.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서희의 모습에서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남매 사이로 그냥 두시오. 순리를 어기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오. 양현이는 당신 딸이 아니었소?"(p394)... "최서희는 이상현과 이루지 못한 연분을 윤국이 양현이 그 아이들을 통하여 이루려고 하는 거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소! 진정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말이오!" "여보!" "나는 빈껍데기를 데리고 산 게요. 구천에 사무치는 한이오. 내 인생이 아니었소." 하는데 갑자기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길상의 모습이 남루한 몰골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도 어느덧 구천으로 변해 있었다.(p395)... "나는 최가가 아니오! 나는 김가요! 내 자식들은 최가가 아니오!" 안개같이 사라지면서 음성만이 울려왔다. _ 박경리, <토지 18> , p396/672


 <토지 1>에서 딸 서희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인물로 그려지는 아버지 최치수. 어머니를 잃은 어린 딸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딸과 거리를 둔 치수의 모습은 어린 서희에게 권위였고, 거스를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권위는 세월이 지나 자녀가 성장하면서 낮아지면서 거리를 좁혀가게 되지만, 치수는 이런 거리를 채 좁히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갈기갈기 갈라진 여러 개의 쇠가 서로 부딪칠 때 나는 것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음산했다. 그는 서희의 공포심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없는 싸늘하고 비정한 눈이 서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희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만 하면 당장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질 것처럼 애처롭게 그를 마주 본 채 고개를 저었다. 치수는 웃었다. 그 웃음은 도리어 서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_ 박경리, <토지 1>, p60/638


 서희로부터 시선을 돌린 치수는 서안 위에 펼쳐놓은 책의 갈피를 넘긴다. 허약한 체질에 비하면 뼈마디는 굵은 편이었다. 그러나 가엾을 만큼 여위고 창백한 그의 손이 책갈피를 누르면서 눈은 글자를 더듬어 내려간다. 손뿐인가, 뜰 아래 물기 잃은 목련의 앙상한 가지처럼, 그러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비참한 느낌이기보다 도리어 상대에게 견딜 수 없는, 숨이 막히게, 견딜 수 없어 결국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강한 분위기를 그는 내어뿜고 있었다. 어떤 일에도 감동되지 않을 눈빛, 철저하게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 인간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눈빛, 눈빛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뼈만 남은 몸 전체가 거부로써 남을 학대하는 분위기의 응결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 p61/638


 <토지 18>에서 이제는 집안의 어른이 된 서희. 그렇지만, 서희는 어린 시절 자신이 공포를 느꼈던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지 못했고,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외롭게 살아야 했으며 조준구에 의해 간도지방으로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 분리불안의 감정을 느꼈을 서희. 그러나, 어린 서희는 이러한 불안감을 생전 아버지 앞에서 드러낼 수도 없었고, 혼자가 된 후에는 더욱 나타낼 수 없지 않았을까. 서희의 불안은 이렇게 억압되고 무의식 아래에 봉인된 채 서희는 자랐을 것이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지혜를 가진 어른으로.


 불안은 억압에서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억 이미지와 일치하도록 정서적인 상태로 복제된 것이다... 정서 상태는 애초에 겪은 외상성 경험의 잔존물로서 마음에 새겨져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기억 상징들처럼 되살아난다. _ 지크문트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 p153/277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 p329/638


 처음에는 아버지에 의해, 나중에는 스스로에 의해 봉인된 서희의 불안함이 양현과 윤국을 맺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훗날 연결된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있다는 외로움으로 타향살이를 했던 서희에게는 '가족'이 무엇보다도 소중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 이런 감정에 더해진 봉선에 대한 부채의식 - 자신을 돌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 길상을 빼앗을 것에 대한 미안함, 기화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등 - 이 '혼인강행'이라는 무리한 행동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니었을까. 서희 자신에게는 이런 자신의 행동이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이었겠지만, 주의의 사람들에게 강박증의 표현으로 비춰줬던 것은 아닐런지. 


 불안은 위험 상황에 대한 반응이며, 자아가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또는 그 상황으로부터 물러나기 위해 어떤 일을 함으로써 미연에 방지된다. 불안이 생겨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상이 형성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 그보다는 불안이 생겨남으로써 나타나는 위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증상이 형성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강박 신경증의 경우 나중에 생겨난 모든 증상 형성의 주요 원인은 분명히 초자아에 대한 자아의 두려움이고, 자아가 반드시 벗어나야만 하는 위험 상황은 초자아의 적개심이다. 여기에는 투사의 흔적은 없으며 위험은 완전히 내향화된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 p183/277


 자아가 그 일을 하는 데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억압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쟁의 진행 방식이 양적인 관계에 의존할 수는 있다. 몇몇 사례들에서 우리는 그 결과가 강요된 것이라는, 즉 억압된 이드가 발휘하는 억압적 견인력과 억압력이 너무 커서 새로운 충동은 반복 강박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사례들에서는 힘의 또 다른 작용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를 알아냈다. 즉 억압된 이드가 발휘하는 견인력은 현실적인 삶의 어려움으로부터 오는반발로 강화되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본능 충동이 취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길이 막혀 버린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불안과 억압> , p203/277


 이는 서희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계속 물음표를 던지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쉽게 답을 못하는 서희도 불행하지만, 윤국과 양현 역시 이로부터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또 다른 불행이 싹튼다. 어제까지 자신의 피붙이로 느끼고 지내왔는데, 혼인을 통해 남매에서 부부로 바뀌는 관계 속에서 이들은 일종의 '근친상간'의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내 마음속에 정말 그이가 말했듯이 이루지 못한 연분에 대한 한이 남아 있었더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아. 결코 그렇지는 않아. 나는 양현을 전생의 인연으로 생각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원하는 마음에는 추호도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이제 와서 날더러 어떻게, 내가 뭘 어떻게 잘못했는가.'(p400)... '욕망이란 했었지, 욕망, 그렇다면 그 욕망이란 바로 이상현 그 사람을 집착한다 그런 뜻이었던가.' _ 박경리, <토지 18> , p401/672


 어쩌면 양현을 누이 아닌 한 여자로 의식했을 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그 순간부터 윤국은 내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란 괴로운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도 양현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수없이 생각하곤 했었다. 어머니한테서 양현과의 혼인 얘기를 들었을 때 전신에서 피가 끓는 것을 느꼈고 또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환희인 동시 일종의 공포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양현은 늘 그의 마음속에서 피안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정체 모를 불안이 있었다. 양현이 사랑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에 대해서는 상상의 문에다가 자물쇠를 걸어놓고 굳게 밀폐해버렸던 것이다. 스스로 망상이라 생각했으며 터무니없는 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것은 늘 꿈틀거렸고 숨통을 막는 것만 같았다. _ 박경리, <토지 18> , p437/672


 줄리엣 미첼 (Juliet Mitchell, 1940~)은 <동기간 : 성과 폭력 Siblings : Sex and Violence>에서 동기(同氣, 형제자매)간 문제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친밀한 형제자매 사이에 얽혀있는 관계에서 일부는 '근친상간'이라는 금지된 행동을 막기위한 터부로 죽음, 상실과 같은 이미지도 있지만, 이면에 있는 사랑, 생명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첼의 분석이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서희의 행동은 '생명으로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역진(逆進)적인 것이다.


 근친상간은 경계의 횡단이며, 또는 그것의 동기적 기반을 생각해볼 때 경계의 부재다. 그것이 비행을 가리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타자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 감정, 자리에 대한 그 어떤 인정도 없다. 아무런 책임도 없으며, 오로지 삼투적인 유혹의 빨아들임만 있다. _ 줄리엣 미첼, <동기간> , p116


 동기적 성과 죽음은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자기로서의-타자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사랑은 또 다른 자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깨닫게 되면 살의 속에서 폭발한다. 하지만 일단 살인에 저항하면, 새로운 형태로 사랑이 돌아온다. 유일무이한 자기는 애도될 수 있으며, 바로 여기서 모든 충동들이 자신들의 표상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상실이 느껴지게 된다. 나르시시즘적 자기 사랑은 다만 거울 이미지만을 갖는다. 웅대하고 유일무이한 자기의 상실에 의존하는 새로운 자기존중은 표상을 -자기자신의 주체임(subjecthood)의 상징적 판본을 - 갖는다. 금지된 것은 네가 사랑해야 하는자를 죽이는 것이다 - 너 자신의 삶은 그 터부를 존중하는 것에 의해 보장된다 : 너 자신을 네 이웃을 사랑하듯 사랑하라. 젠더들이 상이한 역할을 하더라도, 동기간 성은 성적 차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_ 줄리엣 미첼, <동기간> , p68


 이러한 책 내용에 비춰볼 때, <토지 18>에서 서희의 행동은 자신의 아들과 딸들을 오히려 죽음과도 같은 공포로 밀어 넣는 것으로 생각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 따르면 윤국은 양현과 함께 지내면서 이성의 감정을 느꼈고, 이로부터 막 벗어났을 것이다. 그런 윤국을 '혼인'이라는 사건을 통해 극복한 옛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극심한 혼란과 공포를 그에게 주지 않았을까.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았지만, 양현 또한 마찬가지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토지 18>에서 서희 자신은 결코 원치 않았겠지만, 어린 서희가 아버지 치수에게 느꼈던 공포감과 상실감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말았다. 아버지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서희. 이런 서희의 모습은 자아(Ego)로 태어나 결국은 초자아(Super Ego)의 일부가 되는 우리의 모습처럼 인상깊게 다가온다. 또한, 이런 서희의 모습 속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성장하면서 부모를 닮은 자식의 모습을 생각하면서이번 독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통상 남성은 사랑의 대상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기까지는 자기 어머니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는데, 때로는 자기 누이까지도 그렇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장벽 때문에 남성의 애정은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기울였던 두 대상으로부터 그 두 대상과 유사한 외부의 대상에게로 옮겨간다. _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 p37/379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라면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가 있다. 생각보다 나의 근심 걱정이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 혹은 자기관리가 그런 일들 속에서는 가능하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_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 p88/530


 PS. 줄리엣 미첼은 영국의 사학자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1938 ~ )의 전 부인이다.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이후 페리 앤더슨의 책들을 리뷰할 계획이었는데, 언급된 김에 미리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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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옴팡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당신이 딸네 모르게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온 것도 당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옴팡밭을 팽개쳐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평소의 지병인 신경쇠약이 원인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신경쇠약은 왜 갑자기 악화되었을까? 거기에는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삼촌을 죽음의 궁지로까지 몰아붙였나? 혹시 항상 원만치 못했던 일년 동안의 서울 우리 집 생활에서 병이 악화된 게 아닐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여기 내려와서 무슨 충격적인 일을 당해도 당했을 테지. 그런데 친척 어른들의 얘기는 고향에 내려와서는 이렇다 할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울 우리 집에서 내려온 지 한달도 채 못되어 일어난 일이고…… 가책과 후회의 감정으로 나는 가슴이 오그라붙는 듯했다.

내게 고향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었다. 관광지니 어쩌니 하지만 그것도 지역 나름이어서 나의 향리인 서촌은 이렇다 할 관광자원도 없고 하늬바람이 몰아쳐 귤농사도 안되는 한촌(寒村)이었다.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 나의 향리는 예나 이제나 죽은 마을이었다. 말하자면 삼십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외면하여 살아오길 팔년, 그 유맹(流氓)의 십년 전으로 되찾아가려면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야 하리라. 기차를 타도 완행을 타서 반도 끝까지 가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밤을 지새우며 밤 항해를 해야 하는 수륙 천오백리 길. 차멀미, 뱃멀미에 시달리며 소주에 젖고 팔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 생각에 젖어서 허위허위 찾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이것이 내가 평소에 고향을 지척에다 두고서도 지구 끝처럼 아득하게 여기던 이유였다.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海龍)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을까?

이념과 명분은 오직 그들만의 독점물이었다. 석규가 먼저 일어나 술값을 치르고 나와버렸다. 완혁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넌 학교 선생 하는 여편네라도 있지만, 우리 식군 나 아니면 굶어 죽어.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 부모가 시골에 있고 앞으로도 이년 동안 더 학비를 대줘야 할 대학 다니는 여동생도 있어. 석규는 양품점에 들러 피 묻은 와이셔츠를 벗고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아저씨, 아저씨, 혹시 거기서 새살 돋아나오려는 거 아녜요? 봄 되니깐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 트려고 가려울 거예요, 아저씨. 너는 굴다리 밖으로 나오면서 올봄에는 저 아저씨에게 미끈한 종아리가 진짜로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나도 약방에 들러야겠다. 그 의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면 테라마이신을 사 먹으라고 했다. 어서 빨리 새살이 돋아나야지.

산불이 타고 있었다. 그것은 굴뚝도깨비를 만난 요전날 밤에 깜깜한 문밖 어둠속에 담뱃불똥처럼 찍혀 있던 붉은 점이었다. 이번에는 붉은 점이 자란다고 할까. 아니, 자란다기보다도 그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옴같이 번져갔다. 불은 이틀 사이 손바닥 크기로 넓어졌다. 큰 산불이었다. 산은 하도 멀어서 푸른 이끼로 덮인 바위처럼 보였는데, 그 뽀송뽀송한 표면에 불이 댕겨진 것이다. (그 이끼 같은 게 사실은 참나무 밀림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밤에 나는 댓돌을 타고 앉아 산불이 옴의 번식력으로 번져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산불은 끈기 있게 먹어들며 거침없이 붉은 자기 터전을 넓혔다. 뻘갱이 산폭도들이 습격해온단다. 낮에도 산불이 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은 온통 타버린 잿더미였는데 그 운동장만이 햇볕에 내다 넌 넓은 광목천같이 희게 표백되어 있었다. 잔모래알들이 햇살을 받자마자 낱낱이 수직으로 되쏘아서 해가 번들거리는 중천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었을까? 뜨겁고 바람기 한점 없는 정오. 고막에 달라붙은 매미 울음소리. 그림자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사물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시간. 그런데 운동장의 넓은 백색은 조용히 유동하며 복판의 흑점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것은 불에 타 죽은 산폭도라고 했다. 미친 짓, 개죽음이라고 했다. 맹목적인 정열이라고 했다. 맹목적으로 타올랐던 끔찍한 불꽃, 그러나 이제 그는 검게 타버린 나뭇등걸처럼 꺼버덩 나둥그러져 있었다. 타버린 숯이었다. 그냥 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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