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앨범 - 성장그림책 사계절 성장 그림책
울리케 볼얀 그림, 실비아 다이네르트.티네 크리그 글, 엄혜숙 옮김 / 사계절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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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산에서 인질 사건이 있었다.

사건 피의자는 둘째딸을 성추행하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을 주었다.

피의자 아내말로는 둘째딸이 4학년 때부터 성폭력을 했다고 하니 그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큰 고통과 불안 속에 살았을지 끔찍하다.

전문가가 말하길 성폭력 사건은 위 사건처럼 아주 가까운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도 그 점을 주지시켜준다.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이다.

이런 교육을 할 때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하는데 이 그림책도 다음 번에 읽어줘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동물이 등장하여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가족앨범"하면 가족과의 즐거운 추억과 더불어 행복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의 겉표지를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앨범 속에 단비가 인형을 안고 있다.

단비의 모습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약간 슬픈 표정이고, 꼬리 부분은 붕대로 꽁꽁 싸매져 있다.

도대체 단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단비네 가족은 소파 밑에서 살고 있다.

아빠는 파이프를 태우시며 커피를 마시고, 엄마는 요리를 하고, 막둥이 삼촌은 신문을 보고, 소라는 즐겁게 놀고 있다.

단비는 어디에 있을까?


단비는 삼촌이 준 인형과 함께 소파에 앉아 가족앨범을 보고 있다.


어느 날, 소라와 단비가 삼촌이 준 인형을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인형이 고장나고 만다.

단비는 인형을 고쳐주라고 막둥이 삼촌에게 가져간다.


삼촌은 친절하게 인형을 고쳐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웬지 삼촌의 웃음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한편 불청객 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온다.

이제 단비가 좋아하는 소파에 함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잘못하다간 고양이한테 잡힐 수도 있으니까.


인형을 고쳐주겠다는 삼촌은

단비와 단둘이 있게되자

이상한 짓(?)을 한다.

자신의 꼬리를 만져보라고 시키는 것이다.

그림책에서는 꼬리라고 순화시켜 놨지만 그림에서 삼촌의 앞 단추가 풀어진 걸 보면 꼬리가 성기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몹쓸 삼촌 같으니라고!

단비는 꼬리를 만지는 것도 삼촌에게 뽀뽀를 하는 것도 너무 싫지만

싫다고 말할 수가 없다.

삼촌이 단비에게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 네가 우리 비밀을 말하면, 천둥번개가 치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 앨범은 찢어지고 말 거야"

단비는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 앨범이 찢어질까 무섭고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단비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삼촌은 단비의 연약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


한편 고양이는 덫을 이용해 쥐사냥을 해보기로 한다.

바야흐로 단비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삼촌을 피해 소파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는 고양이가 놓은 쥐덫에 누가 걸릴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소파를 가장 애용하던 단비가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생긴다.

그렇지 않아도 삼촌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단비가 가여운데

쥐덫까지 걸리는 건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 


쥐덫을 놓은 고양이도

친절하게 다가와 단비에게 인형을 줬던 막둥이 삼촌도

단비에게 다같이 무서운 존재임에 틀림 없다.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가족인데도 단비에게 몹쓸 짓을 하는 막둥이 삼촌이 더 나쁘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번 학교에 성폭력 상담 전문가가 오셔서 연수를 해 주셨는데 가족에 의한 성폭력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까운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도움 되는 내용이 아주 많았다.

20년 동안 성폭력 관련 상담을 해오셨다고 한다.

우리가 요즘 들어 성폭력 사건이 많아진다고 느끼는 것은(나도 그랬다)

실제로 사건 수가 많아진 것이기보다는

성폭력 피해자가 드디어 신고를 하기 시작해서 통계가 높아진 것이란다.

전에는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지금도 남자 피해자들은 속으로만 끙끙 앓지 신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계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사님이 들려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뒷이야기는 우리나라 법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듯해 너무 씁쓸하였다.

성폭행 가해자들은 가벼운 벌을 받고 풀려나와 각자 생활을 잘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는 여러 가지 알바를 전전한 끝에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행방조차 묘연하다고 한다.

가해자는 일상을 살고, 피해자는 일상을 잃어버리고...

이런 부정의가 판을 치는 나라라면 어떻게 국민이 나라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간혹 부모님 중에 세상의 어두운 면을 굳이 아이에게 읽어주고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있다.

내 개인적 생각은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이렇게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나누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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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살이 2015-01-1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네요. 동화를 읽어주다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거 같아요.

수퍼남매맘 2015-01-19 18:25   좋아요 0 | URL
네~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알아둘 이야기인 듯해요.

꼬마요정 2015-01-1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픕니다ㅜㅜ 점점 인식이 바뀌어 신고도 하고 가해자도 벌 받고 피해지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퍼남매맘 2015-01-19 18: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성폭력 피해자가 이제 서서히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죠.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벼운 것도 문제인 듯합니다.

2015-01-20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0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4세와 타우타우씨
우메다 순사쿠 & 우메다 요시코 지음, 조세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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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타 순사쿠의 전작<모르는 척>을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로 우메타 순사쿠는 눈여겨 보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이번에 그가 그린 그림책 <14세와 타우타우씨>또한 <모르는 척>과 일관되게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학교 폭력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백화점 고객이 판매원과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더 이상 뉴스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이유는

폭력이 더 이상 놀라운 기사 거리가 아니기는 하지만 근절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시오는 너무나 무섭다는 그 존재, 14세 즉 중2다.

우스개 소리로 외계인이 중2 때문에 지구를 못 쳐들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시오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돌연히 잠적하기 전까지 요시오는 그냥저냥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잠적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

우선 집 분위기가 싸해졌다.

학교에서 이케지 패거리가 요시오를 타켓으로 삼은 것도 그즈음이다.

요시오는 칠판에 자신과 부모님에 관한 몹쓸 낙서를 해 놓은 것을 발견하고 

그 동안 억눌렀던 마그마가 폭발하고 만다.

대걸레를 들고 유리창을 박살낸 것이다.

학교 샘들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누가 원인 제공을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한순간에 요시오는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겉돌게 된다.


유리창을 박살내고 쓰러진 요시오가 얼마간의 요양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맞아줬다면 좋았을텐데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히틀러"라 불리는 학교 주임 샘의 가혹한 폭력을 끝으로 요시오는 학교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다.

학교는 요시오에게 오히려 상처만 준 곳이었다.


하지만

갈팡질팡,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요시오를 붙잡아 주는 존재도 있었다.

바로 요시오의 할아버지이다.

요시오가 폭력에 연루되었을 때, 자퇴를 결심했을 때 모두 요시오 편에서 손자를 이해해주는 멋진 할아버지이다.

" 할아버지처럼 칠십 년 넘게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이삼년쯤 늦는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된단다." 이렇게 말해준다.

"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다보면 생각도 자유로와지고 마음도 튼튼해질 수 있거든"


요시오를 다독여주는 또 한 사람이 바로 타우타우씨이다.

타우타우씨는 독특한 사람이다.

아이처럼 순진하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거지 같기도 하고....

그 타우타우씨가 갈 곳 없는 요시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결정적으로 요시오가 폭력배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타우타우씨가 온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준 사건을 계기로 더욱 마음 속으로 타우타우씨를 아끼게 된다.

타우타우씨 덕분에 위험에서 빠져나온 요시오는

후에 타우타우씨가 누군가에게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통쾌하게 복수를 해 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쫓겨나 일순간에 문제아가 되어버린 14세 소년 요시오와

겨우 이름만 알 뿐 하는 행동을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한 타우타우씨의 이야기는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우메타 순사쿠의 그림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학교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시오의 폭력 사건만 봐도 문제 제공은 이케지 패거리가 제공한 것인데도 결과만 놓고 요시오만 추궁하고, 벌을 준다.

게다가 히틀러 샘이 요시오에게 한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런 모습이 아직도 학교에 존재하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해결책이 있는 법.

 

요시오가 초등학생 때이다.

이케지 패거리의 대장 이케지 엄마는

폭력 문제  때문에 이케지를 벌주려고 하자 학교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한다.

"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주 깍듯하고 배려심도 많은 아이라구요. 아무 부족함 없이, 구김살 없이 키웠어요.

다소 사소한 문제가 있다손 쳐도, 그건 아이 나름의 개성 아닌가요?"

어떤 것이 부모로서 정말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인지 다함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이 때 엄마가 이케지를 다른 식으로 훈육하였다면 이케지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엄마의 변호로 인해 처벌받지 않은 이케지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초등 때 요시오의 담임이었던 "곰보" 선생은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책을 읽어주곤 하였단다.

책을 읽어줄 당시는 아이의 마음이 순화된 듯하였지만 아이들은 이케지 패거리가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이케지를 비롯한 아이들은 약한 아이를 괴롭혔고 결국 한 아이가 교실을 떠났다고 한다.

이 일은 담임이었던 곰보 선생에게도 목격자였던 요시오에게도 잊혀지지 않고 하나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곰보 선생이 느꼈을 절망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요시오의 담임이자 곰보 선생의 후배인 마릴린은 이렇게 표현한다.

" 부모들은 자기 자식 성적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고등학교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거지.

학생들은 어린애나 다름없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떼쓰는 철부지 어린애들 말이야.

그리고 우리 교사들은 이상과 현실이 점점 더 어긋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그렇다. 어쩌면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과 이리도 똑같은지...

학교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헤매고 헐뜯고 있는 사이 교육은 정말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의 무력감, 절망감만 심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이케지와 요시오 같은 아이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요시오는 자신을 버린 학교에서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참 씁쓸하지만 밖에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 곰보 선생, 자신이 짝사랑하던 선배 누나, 그리고 무엇보다 타우타우씨가 해답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

그가 찾은 해답은 무엇일까?

요시오의 초6담임이었던 공보 선생이 이런 말을 남긴다.

" 도망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불안을 자신이 끌어안아야 한다"

어쩌면 이 말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시오는 비록 학교를 스스로 나왔지만 결코 실패자가 아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2-3년 뒤진다고 인생에서 뒤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증거로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기억해냈고 다시 하게 되었으며

초등학교 이후 쓰지 않던 일기를 쓰게 되었다는 걸로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잠적으로 인해

유리창 박살 사건으로 인해

학교 자퇴로 인해

아니 질풍노도 14세에 벌어진 일련의 모든 일을 통해

요시오의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요시오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고, 남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들려 주고 싶다.

요시오의 할머니가 마릴린 샘에게 하신 말씀이다.

" 싹이 금세 트는 게 있는가 하면, 천천히 느긋하게 올라오는 것도 있지요.

아무리 마음을 졸여도 필요한 시간을 채워야 싹이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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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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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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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 베틀북 그림책 67
바버러 쿠니 그림, 글로리아 휴스턴 글,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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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이브다. 여느 해 같으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방학 때 보내는데 올해는 방학이 늦어져 학기 중에 맞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크리스마스는 어떤지 알려줄 겸 <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그림책을 읽어줬다. 제법 글밥이 많아 혼자 읽기 힘들어 할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부모가 자녀를 무릎이나 곁에 앉히고 읽어줘도 좋을 책이다. 바바라 쿠니의 그림인만큼 소장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그림책이다.

 

  루시는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 살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는 루시 가족이 준비하여 교회에 헌납하게 되어 있다. 루시 마을에서는 해마다 돌아가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교회에 헌납하는 게 풍습이란다. 그리고 트리를 담당한 가정의 아이가 크리스마스 연극의 천사를 맡게 된단다. 아빠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미리 골라놔야 한다고 한다. 이제 겨우 봄인데도 말이다. 아빠가 고른 나무는 용감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에 자라는 발삼 전나무이다. 루시와 아빠는 발삼 전나무에 표시를 하기 위해 말을 타고 길을 나선다. 아빠 말대로 발삼 전나무는 바위산 높은 곳에 혼자 우뚝 서 있었다. 아빠는 루시의 빨간 머리 리본을 풀어 전나무 꼭대기에 묶어 표시를 했다.

 

  여름 즈음에 아빠는 군대에 가게 된다. 바다 건너 세계1차대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에게서 소포 하나가 온다. 엄마를 위한 검정 실크 스타킹, 루시를 위한 파란색 리본이었다. 선물과 편지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났어도 아빠는 감감무소식이다. 전쟁은 끝났다고 하는데 왜 안 돌아오시는 걸까.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고, 급기야 목사님이 찾아온다. 목사님은 다른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는 게 어떻겠는지 의견을 내놓지만 엄마는 약속을 꼭 지킬거라  힘주어 말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엄마는 잠든 루시를 깨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 모녀는 깜깜한 밤, 발삼 전나무를 구해 오기 위해 눈썰매를 끌고 출발한다. 아빠도 없이 엄마와 딸이 그 험한 산을 밤중에 그것도 말에 커다란 썰매를 매달아 끌면서 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 수 있다. 겨우 발삼 전나무를 발견한 엄마와 루시는 먼저 도끼로 내리친 다음, 힘을 합해 톱질을 한다. 영차영차 톱질하세.  쓰러진 나무를 커다란 썰매에 싣고 교회 종탑 앞에 갖다 놓으니 다음 날 아침이다. 약속을 지키려는 루시 모녀의 노력이 정말 눈물 겹고 감동적이다. 한편 루시는 천사역을 맡게 되었지만 아빠가 안 계셔 돈이 없는고로 예쁜 천사옷을 살 형편이 안 된다. 루시는 잠들기 전 매일 밤 기도를 한다. " 아빠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 예쁜 크림색 천사옷과 인형을 갖게 해 주세요" 라고 말이다. 산타 틀로스는 루시의 기도를 들어줄까. 나무를 구하느라 지쳐 쓰러진 루시와 달리 엄마는 난롯불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루시에게 있어서 가장 쓸쓸하고 허전한 크리스마스인 듯한데 어떤  뒷이야기가 기다리고 있길래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되는 걸까. 그건 비~  밀!!!

 

  꽤 글밥이 많은 그림책인데 지루해 하지 않고 잘 들었다. 읽어주기 전,  잘 듣고 퀴즈를 맞추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고 미리 말해 줬던 탓인지 메모하면서 듣는 아이도 여럿 있었다. 우리나라 크리스마스와 사뭇 다른 풍경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족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한다는 것과 그 가정의 아이가 천사 역을 한다는 것,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트리 장식을 한다는 것. 성 니콜라스 할아버지가 나쁜 짓을 한 아이에게는 버드나무 가지와 석탄 한 덩어리를 선물로 준다는 것 등 크리스마스 문화가 우리와 참 많이 다르다. 루시 마을의 크리스마스는 한마디로 낭만적이다. 게다가 초입에도 말했듯이 바바라 쿠니의 그림은 언제봐도 아름답다. 그러니 아이가 귀 쫑긋, 눈 반짝 하고 들을 수밖에 없다.

 

  전에는 새벽송이라고 해서 새벽에 삼삼오오 다니면서 캐롤도 부르고 그랬는데... 그런 일은 요즘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요즘 그랬다가는 신고 들어갈 게다. 교회 문화 속에서 자란 덕에 크리스마스에 얽힌 추억이 꽤 많은데 수퍼남매와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 수퍼남매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냈을 뿐이지 교회에서 연극을 하거나 루시처럼 마을 전체가 축제로 즐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면 너무 이야기가 빈약할 듯하다. 난 가진 추억이 참 많은데..... 초2 때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마리아 역을 맡은 적도 있고, 중학교 때는 크리스마스 축제 사회를 본 적도 있고, 친구들과 올나잇을 한 적도 여러 번이고,  새벽송을 돈 적도 많고... 전보다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도 듣기 힘들어지고, 새벽송은 아예 들리지도 않고, 트리는 지저분하다고 올해는 아예 꺼내 놓지도 않았다. 수퍼남매에게도 루시처럼 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어줘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 추억이 많아야 부자인데 말이다. 수퍼남매가 최고로 여길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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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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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6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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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맥스 베틀북 그림책 105
데이비드 위즈너 글.그림, 김상미 옮김 / 베틀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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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딸이 친구2명과 함께 직업 체험을 하기 위해서 우리 교실을 방문하였다. 말이 직업 체험이지 중간 고사 보는 2,3학년 선배들 방해할까 봐 학교 밖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미션을 줬다. 딸이 읽어준 책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아트 & 맥스>이다. 딸이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수확이었다. 그림책도 한 번 보고나서 덮어두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어야 이렇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된다.

 

일단 글씨가 아주 적다. 책과 별로 가깝지 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하다. 좋은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이 그림책이야말로 그렇다. 굳이 글씨를 읽지 않아도 이해가 쏙쏙 잘 된다. 그림으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번 그림은 3D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하다. 동물들의 익살 맞은 표정 또한 그림책에 빨려들게 한다.

 

사실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아트처럼 맥스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얀 캔버스를 마주한다. 하얀 캔버스를 본 아트는 그 순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졌다. 가끔 그리기 시간에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맥스처럼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그려야할지 몰라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는 아이를 보곤 한다. 아이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처럼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은 하얀 종이가 너무 두려운 존재다. 맥스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맥스의 실수로 친구 아트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친구를 예전처럼 되돌리기 위해서 맥스는 실로 아트의 몸을 만들어야 하고, 색을 입혀야 한다. 아까 하얀 캔버스 위에 아무 것도 그리지 못했던 맥스이건만 친구를 살리기 위해선 더 이상 주저할 수가 없다. 맥스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아트의 형체를 만들고 색을 입힌다. 무엇을 그려야할까 고민하던 맥스는 사라지고 없다. 오직 친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일념이 맥스를 예술가로 만든 기적 같은 순간인 셈이다. 맥스의 예술 행위로 재탄생한 아트도 전과 달라졌다. 아트의 그림이 그 증거다. 아트 역시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던 그림에서 진일보하여 창의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친구란 아트와 맥스 같은 사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친구 뿐만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스승-제자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만나 상대가 업그레이드 되고, 나 또한 상대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라면 정말 좋겠다.  아트가 맥스를 만나 그림을 좀더 창의적으로 그리게 되고,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맥스가 아트를 만나 그림에 눈 뜨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모름지기 아트와 맥스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외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니더라도 좋다. 내가 그를 만나, 그가 나를 만나 어제보다 오늘 좀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 네"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 내 짝이, 모둠 친구가 나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 고 힘 주어 말해줬다. 

 

아트의 그림이 달라졌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 것은 딸이었다.  딸이 말해주기 전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사실 이 그림책을 3-4번은 읽었는데 말이다. 전에는 이 그림책이 우정을 다룬 그저 재밌는 그림책으로만 느껴졌는데 이번에 읽고나서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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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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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8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da 2016-03-2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에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챈 따님이 대단하네요. 책 다시 봐야겠어요. 아이들이 더 깊은 눈으로, 마음으로 책을 보나봅니다.

수퍼남매맘 2016-03-24 10:45   좋아요 0 | URL
어른은 문자에 집중하는 반면, 아이들은 그림에 집중해서
어른이 보지 못한 부분을 잘 찾아내더라고요.
반갑습니다.
 

목요일은 너무 힘들다.

요즘은 더 그렇다.

온이가 계속 새벽에 밥 달라고 울어서 잠을 깨곤한다.

갓난 아기 키우는 거랑 똑같다.

푹 잠을 못 자니 피로가 누적된다.

게다가 목요일은 격주로 동아리 활동이 있어서 6교시까지 수업을 해야 한다.

동아리가 있는 날은 심리적으로 더 힘들다.

지난 번에는 독서부 아이들이 교실에서 폭력 행사까지 하여 책을 덮고, 일장 훈계를 늘어놨다.

그 덕분인지 아님 내가 너무 불쌍해서인지

오늘 동아리 시간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줬다.

폭력을 주고받던 두 아이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기까지 해줬다.

마지막 갈 때는

말 잘 듣지 않았냐면서 나에게 사탕을 요구해온다. 헐~~

당연히 폭력을 해서는 안 되고, 독서부에 와서 책을 읽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말이다.

어처구니 없었지만 다음에는 사탕을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동아리 시간에 편두통이 와서 가벼운 그림책을 한 권 골랐다.

교실에 내내 있었던 모양인데 한번도 내 레이다에 들어오지 않더니 오늘 불쑥 제목이 클로즈업되었다.

<글짓기 시간>이라는 그림책이다.

요즘 읽고 있는 <고종석의 문장>과 비슷해서 골랐는데

내용과 주제가 전혀 달랐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은 생일 선물로 고무 축구공을 받아 적잖이 실망한다.

가죽 축구공을 원했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키는 작지만 몸이 날래 축구를 잘하는 소년은 언젠가는 진짜 축구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친구 아버지가 "반독재"를 찬성하였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10살 소년은 그런 이유로 군인들이 아저씨를 잡아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 뿐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군인이 교실에 들어오더니 갑자기 글짓기를 하라고 한다.

글짓기 내용은 다름 아니라

밤에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자세히 쓰는 거란다.

이건 또 뭐야?

 

그렇다.

독재 정권은 아이의 글짓기를 통해 반독재에 찬성하는 부모를 색출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음흉한 의도를 모르는 아이는 글짓기를 잘하면 원하는 상품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글짓기 장원을 하면 진짜 축구공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는 생각한다. 요즘 부모님이 밤마다 뭐 하시지?

주인공의 부모님은 밤마다 "반독재"를 외치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심지어 엄마는 울기까지 했다.

이걸 솔직하게 다 써? 말어?

 

나의 예상과는 완전 다르게

<글짓기 시간>은 독재 정권 하에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소년이 사실대로 쓸 것인지 아님 거짓말로 쓸 것인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사실대로 쓰면 부모가 잡혀갈 것이요

거짓말로 쓰면 축구공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소년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겉표지를 보라.

총을 든 네 명의 군인 앞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칠레처럼 한국도 독재를 경험한 나라이다.

독재 아래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살벌한 일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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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6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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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6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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