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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이별: 서로 갈리어 떨어짐.
푸가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쫓아가는 악곡 형식
제목을 사전적 뜻으로 풀어 보자면 ‘이별의 푸가’는 이별에 따르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 책이다. 독일에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다루는 이별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추상적인 대상과의 이별일지 사회적 대상과의 이별일지 아니면 이성간의 이별일지. 서술의 방법도 궁금했다. 얼마나 철학적인 서사로 다룰 것인가.
저자는 책에서 사랑했던 이성간의 이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공허한지를 말이다. 저자가 이별한 대상이 이성연인이 아닌 상징적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읽기엔 절절히 사랑한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당신이 남긴 부재의 공간도 밝은 방이다. 당신이 없는, 당신의 순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떠난 당신이 매번 수없이 다시 태어나 내게로 돌아로는 방……어떻게 내가 그 부재의 방을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p.143
책은 헤어진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별한 연인 중 한쪽이 사랑을 만난 순간을 회상한다. 그리고 연인과의 기억, 그 충만함, 이별의 기미, 떠남의 고통, 부재의 공허함, 추억의 의미 등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일어나는 마음의 거의 모든 동요를 잡아낸다. 그것도 대단히 시적인 언어로. 이 책은 산문이라기 보다는 시편에 가까웠다.
나는 나처럼 외로운 너를, 내가 만든 너를 꼭 껴안는다. 내가 만든 너도 나를 꼭 안아준다. 그렇게 너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네가 떠난 뒤에는……p.50
이별을 말하는 저자의 언어는 시다. 아주 아름다운 시어다.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 저자가 궁금해졌다.「이별의 푸가」를 통해 고 김진영 교수를 저자로서 처음 만났다. 대학에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낸 분이었다. 이력만으로는 딱딱하거나 논리적인 글을 쓸 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이별을 아는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흡수될 순도를 가진 것들이다. 이별한 자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뿐더러 그 느낌을 더더욱 정확한 표현으로 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간결하게. 이런 저자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김진영 교수는 작년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쉽고도 아쉽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를 남기는 일을 주저했다고 한다. 덕분에 학문적 성과와 번역서 이외의 책이라고는 「이별의 푸가」외에 산문집「아침의 피아노」 한 권뿐이다. 이 저자의 문장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권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사랑은 끝나도 그 사람의 오지 않아도, 이별의 계절은 다시 온다. p.62
이 책의 묘미가 감성의 흔드는 문장만은 아니다. 약력에서 알수있듯이 저자는 철학과 미학의 전문가다. 책에는 이별의 감정들을 설명하기 위한 인용들이 산재해 있다. 쿤데라에서 시작한 인용은 프루스트, 바르트, 테네시 윌리엄스, 아도르노, 버지니아 울프, 파스칼, 페터 한트케, 앙드레 지드, 정지상, 파스테르나크, 토마스 만 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거장들이 말하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단상들이 저자의 문장을 통해 저자의 이별을 설명한다. 마치 세상 모든 이별의 감정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당신은 떠났다.
그러나 조지프 콘래드: “보라,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지 않는가.”
농담은 진실이 되어 ‘사람의 골짜기를 걸어도’여전히 죽지 않고 사는 걸까. p.222
「어둠의 핵심」「시편」「애도일기」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의 일부를 인정하게 됐다. 언젠가의 이별은 나를 성장하지 않는 아이로 만들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덮어버리고 싶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나는 보채고 있었던 거다. 실현을 기대한 게 아니라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이별의 주체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마지막까지 아이의 주체로 남는다. 보고 싶어요, 다시 만나고 싶어요, 라는 보챔은 실현되지는 못해도 중지되는 건 아니니까. p.95-96
소설가 김연수는 이 책을 “저 먼 이별의 끝에서 뒤늦게 도착한, 길고도 다정한 별사(別辭)”라고 했지만 내게는 충분히 길지 못했다. 이 다정한 별사가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고 바랬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별가로 내안의 부재를 채울때까지 말이다. 고인이 된 저자에게 더 긴 이야기를 청할 기회는 없다. 남은 길은 전작「아침의 피아노」를 읽는 일뿐이다.
이 부재는 당신의 없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주관적이며 상상적인 부재이다. 나의 욕망과 애착이 만들어놓은, 그러나 채울 수 없으므로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결핍으로 존재하는 부재.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