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거미 -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박지형 지음 / 이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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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스피노자가 생물학에도 몸담았었던가? 제목을 보고 언뜻 든 생각이다. 철학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지만 생물학도 어려운 사람에겐 버거운 책 아닐까.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라는 부제 때문이다. 적자생존으로 이뤄진 진화의 세계에서 배울 수 있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저자는 자연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생태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자연을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전쟁터로 생각한다.……종과 개체의 차이에 따른 경쟁과 다툼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자연을 이상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자생존으로만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잘못된 편견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공존을 아우르는 제대로 된 생태학 지식이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p.11-12

 

저자는 자연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비교하는 동시에 근대사회의 기본 가정에 대해 살펴본다. 성장추구형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전제가 된 사상부터 검토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근대의 기본 사상을 주장한 철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사상적 한계를 벗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는 위기를 맞았다. 자연 상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작용할까. 책은 자연 상태의 다양한 종의 공존 방식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나갈 바를 제안한다.

 

「스피노자의 거미」는 생태학적 지식과 더불어 역사적 맥락, 철학사와 철학자의 사상을 아우르는 책이다. 이런 지식들을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문제에 대입한다. 경제학, 사회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통섭적인 지식을 한데 모으다 보니 다양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독자는 읽는 동안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학자로 자연스럽게 묶이는 홉스, 로크, 스피노자, 루소의 주장이 같고도 다른 지점을 있었다.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그들의 주장하는 바가 어떤 색깔인지 알 수 있었다. 미생물 배양 실험 결과 사진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치밀함에 두 손을 들었다. 모두 다 이해하기엔 벅차지만 저자의 노고엔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책이다.

 

책 내용 중 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근대가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고대사 관련 도서를 읽거나 고전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오래전에 이렇게 훌륭한 문명을 건설했던 인간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대지 많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원전후의 고전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각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인간은 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으며 동물의 상태에서 대단히 많이 벗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나의 막연한 생각을 저자의 손으로 정리한 것만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이성의 시대로 보기에 근대사는 너무나 많은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근대사의 전개를 계몽주의 이상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근대는 이성이 지배하기보다는 실제로 공포가 압도한 이율배반적 시대이다. pp.40-41

 

자연에서는 하나의 종이 다른 종을 억압하지 않는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여러 공생의 방법으로 함께 살아간다. 환경에 최적화된 종이 더 많이 살아남기도 하지만 그런 상태는 일시적이다. 약한 종들은 함께 모여 대항하기도 하고 이른바 틈새시장을 찾는 생존 전략을 구사해 살아남는다. 그리고 공존한다. 이런 자연의 전략은 집단의 장기적 존속에도 더 유리하다. 자연의 민주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소수 독점 체제와는 다르다.

 

바로 자연생태계에서 여러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종과 개체에 의해 오랫동안 독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 조건이 급변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원을 분할하여 사용하는 여러 종이 서식 환경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어울려 공존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생물 진화는 특정한 생태계의 환경 조건에 맞게 최대한 다양한 생물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다양성이 높은 군집은 끊임없는 환경 변화에도 군집 전체의 안정성이 잘 유지될 수 있다. pp.117-118

 

자본과 자원의 편중으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파괴적인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본을 독점하는 소수가 ‘보이지 않는 발’로 뛰어다니며 자유 시장의 원리를 침해하는 한 인간은 자연과 같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소수의 자본가의 보이지 않는 “사악한 정신의 손”을 제재할 ‘규범적 강제’가 필요하다. 우리들 다중은 서로의 공생, 공존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내가 이해한 저자의 결론이다. 구체적인 협력의 방식은 독자의 숙제로 남겨두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보장할 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자원 배분의 민주적 원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즉 공존의 원리로부터 자원 배분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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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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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의 원제 ‘The Pleasures of Leisure’에서 leisure는 ‘틈, 여가, 한가한 시간, 자유 시간’을 뜻한다. 게으름으로 검색되는 영어단어는 laziness, idleness 이다. 게으름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이라고 설명되어있고, 여가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라 나온다. 지은이 로버트 디세이가 예찬한 것은 ‘게으름’일까 ‘여가’일까? 또는 여가를 게으르게 보내는 것일까? 아무튼 ‘게으름’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불안감과 초조함’을 불러오는 죄의식에 시달리도록 교육받아온 이들에게 금기를 깨는 유혹적인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식탁에 오를 음식을 위해 밭에서 일하고, 동물을 도살하고, 또 그들의 위해 길을 놓고, 옷을 짓고, 집을 짓고, 군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그들의 글을 출판하기 위해 인쇄를 한다는 걸 그들이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 어쩔 수 없이 노동하면서 ‘바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해버린다는 건 너무 쉬운 일이 아닌가.

이 점을 간파한 또 다른 작가와 사상가 집단은 빈둥거림이 이상적으로 어때야 하는가에 관해 더욱 적극적이고 조심스러운 관점을 취한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러셀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그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의 빈둥거림(아마도 나태함)을 혐오했던 반면 모든 사람의 목표로서 여가의 증대를 권장했다. pp.25~26

 

내게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의 차가 사실 등골 휘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건 물론 알고 있다. pp.69~70

 

‘남 보기에 흉하지 않고 순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려면 청소와 빨래, 요리, 정리 같은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작가와 사상가 집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나태하게 살아가면서 이를 알지 못한다. 「게으름 예찬」에서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누군가의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모든 사람의 여가’에서 ‘게으름’을 권장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오늘날 서구의 많은 나라와 일본에서는 일주일에 7일, 완전히 일에 소비되는 삶을 사는 방향으로 슬금슬금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확실히 아니지만, 나머지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바쁘다. 설사 바쁘지 않다고 해도 그 자신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바쁘다는 믿음을 심어주느라 바쁘다. ······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나머지 자유 시간까지 우리 대신 그 시간을 관리해줄 사람들을 두는 데 쓰는 경향이 점점 늘고 있다. 그만큼의 대가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관광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확실한 예이며, 그 저울에서 문화적으로 척박한 다른 쪽 끝에는, 심지어 나르시시즘을 동방의 영원한 영적 지혜로 포장해 파는 요가를 넘어서, 헬스 클럽이 있다. pp.220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줄어드는 반면 24시간 영업, 새벽배송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은 늘어가고 있다. 출근 전, 퇴근 후에도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업무를 본다. 정말 근로시간은 줄어드는 것일까? 여가라고 생각해왔던 관광, 요가, 헬스를 자유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관리하게 하여 ‘생산 네트워크’에 다시 통합시키는 것이라는 시각이 흥미롭다.

 

노는 것은 당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 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부자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사람이 뼈가 부서져라 일할 때, 그들은 자유롭게, 종종 목숨을 걸어가며 그들의 게임을 하며 놀 수 있었으니까. 일해야 할 의무가 대체 무엇이 “성스럽다”는 말인가? 이는 이제 우리가 드러내놓고 콧방귀를 뀌어야 할 허튼소리다. p.274

 

책을 다 읽고 난 후 ‘노동이 신성하다’는 지배계급의 주장에 콧방귀를 뀔 것인가, 「게으름 예찬」을 허튼소리라고 할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일할 것인가, 이제부터 어떻게 잘 놀 것인지 생각해볼 것인가? 선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누구의 게으름을 위한 것이고, 내가 즐기는 여가활동이 누구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지은이 로버트 디세이는 당신의 게으름과 당신의 주머니는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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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만들기 방해 작전 읽기의 즐거움 33
염연화 지음, 정소영 그림 / 개암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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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잘 먹고 젖 흥하게 점지해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긴 명을 서리담고 짧은 명은 이어 대서 수명 장소하게 점지하고,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생달에 달 붇듯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십시오. pp.37-38

 

아이 생일상에 읽는 축문이란다. 염연화 작가의「동생만들기 방해작전」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다. 아이의 생일에 삼신할머니들을 위한 미역국 상을 차리고 아이의 무탈함을 기도하는 축문을 읽는 일, 지금은 잊혀진 전통이 아닌가 싶다. 옛날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빌던 것과 같은 맥락의 행동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인 태윤이네는 화목한 다둥이 가족이다. 이름하여 ‘존엄브라더스’라고 불리는 4형제다. 고등학생 큰형, 초등학생이 둘, 유치원생까지 아이들이 올망졸망하다. 이런 태윤이네 부모님이 중대발표라며 태윤이가 펄쩍 뛸 말씀을 하신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막내를 갖기로 결정을 내렸다.“ p.28

 

동생 둘을 건사하기도 벅찬 태윤이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다. 엄마가 막내를 낳으면 동생들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 될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중대 사건인 것이다.

우연히 삼신할머니들을 만나게 된 태윤이는 엄마에게 아기를 주지 말라고 조른다. 할머니들은 태윤이를 힘든 상황을 이해해 주는 한편 형제들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형한테 치이고, 동생들 챙기느라 힘든 줄 우리도 잘 알제. 그래도 그렇게 복닥복닥 부대끼며 크다 보면 나중에는 서로 의지가 되고 힘도 되는 것이여.” p.72

 

삼신할머니들이 사는 장소에 대한 묘사와 아기꽃봉오리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아이들이 삼신할머니 전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상상력 넘치는 장면이다.

그때 어디에선가 꽃향기가 났다. 안개를 헤치자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꽃봉오리들이 보였다. 줄기도, 잎도 없이 꽃받침 아래 기다란 끈만 매달려 있었다. p.39

 

절로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동생이 많은 집 아이는 외동이를 부러워하고 외동이들은 언니, 오빠 또는 동생이 있는 집을 부러워했다. 요즘에는 아이가 많아야 둘 셋이지 네자녀가 있는 집은 드물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아이들이 많은 집은 눈길을 받곤 한다. 한 편으론 다복해서 좋겠다 싶고 한 편으론 고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부모 얼굴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이 많은 부모들의 얼굴은 평안하다. 힘듦이 있는 만큼 그 보다 큰 행복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다.

 

“더 이상의 동생은 안 돼”를 외쳤던 태윤이지만 삼신할머니들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 뒤 마음이 바뀐다. 자신의 동생이 튼튼하길 바란다. 태윤는 바란대로 예쁜 동생을 볼 수 있을까.

 

책은 다둥이 가족이 아웅다웅하며 지내는 순간들을 잘 담아냈다. 티격태격하다가도 뭉쳐야할 순간에는 서로의 편을 들며 힘을 발휘한다. 막내 동생을 둘러싼 여러 일들을 겪으며 태윤이는 부쩍 성장한다. 귀찮기만 했던 동생들을 보살피고 막내를 낳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도 알아준다.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따뜻한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느끼는 일이 어울림의 기본을 알게 되는 첫 단추다. 아이들이 가족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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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2 - 검은 땅의 주인 창비아동문고 305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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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일은 초원의 뜻이라고들 하지, 맞아, 그렇지만 어떻게 살지, 어떻게 죽을지 선택하는 건 우리 자신이야. 그게 진짜 초원의 왕이야. p.89

 

「푸른 사자 와니니 2」에는 ‘검은 땅의 주인’이라는 소제목이 달려있다. 「푸른 사자 와니니」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푸른 사자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뿐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의 이야기라 더 마음이 끌렸다.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살아가는 세렝게티 동물의 모습에서 삶의 근본을 보게 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천적을 피하며 동료들과 협력 또는 경쟁하면서 생계를 잇고 자손을 낳는 동물의 삶이 인간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은 자신들이 모든 존재 위에 서있다는 오만함에 가득차서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이 다를까.

 

모든 목숨은 초원에서 생겨나 초원으로 돌아간다. 한 목숨은 다른 목숨을 살리고 기른다. 그것이 초원의 법이다. pp.189-190

 

무리에서 쫓겨 난 사자들이 있다. 암컷 와니니, 말라이카와 수사자 잠보. 보통 사자는 여러마리 암사자들이 무리를 짓고 한 마리의 수사자가 끼어 있다. 새끼가 자라면 수사자는 무리를 떠나고 암사자들은 어미무리의 일원이 된다. 와니니 무리는 본래의 무리에서 말썽에 휘말려 떨려나온 참이다. 미처 다 자라지 않은 이들에겐 자신의 영역이 없다. 굶주리고 공격받기 십상이다. 하루 빨리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그 어떤 동물도 가볍게 목숨을 내놓지 않는 초원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질문만 되풀이 된다. 게다가 때는 온 생명이 시험대에 오르는 혹독한 건기이다.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을 가장 혹독하게 나는 것은 코끼리와 사자다. 초원에서 그 이름이 높을수록 대가를 크게 치른다. 제 몸집만큼 먹고 마셔야 하는 코끼리는 그만한 고통을 겪어야 하고, 가장 몸집이 큰 사냥꾼인 사자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을 보내는 동안 한 살이 안 되는 사자 열에 아홉이 목숨을 잃는다. p.98

 

와니니는 위태로운 자신의 처지에도 무리를 잃은 또 다른 어린 암컷 사자 마이샤를 받아준다. 또 자신을 엄마 무리에서 내쳐지게 만든 적의 아들 바라바라도 감싼다. 약자를 포용하는 마음에서 무리를 이끌 우두머리의 자질이 드러난다.

 

“사냥은 원래 그런 거야. 실수는 크고 행운은 작아. 실패하는 날이 더 많이 이제부터 배우면 돼. 그보다, 너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너도 이제 와니니 무리야.” p.186

 

건기의 초원을 떠돌며 무리가 마음놓고 사냥할 수 있는 땅을 찾는 모험 속에 초원의 동물들과 얽히는 이야기, 인간과의 조우가 펼쳐진다. 해탈한 신선같은 언행의 코끼리, 사자와 타조가 함께 한 사상 초유의 타조 짝짓기 춤은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치게 만든다.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세렝게티를 다녀왔다는 작가의 노력이 만든 장면들이다. 동물들의 습성이나 생김새를 캐릭터의 성격에 잘 버무려 넣어 마치 동물 다큐멘터리 한 장면이 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세렝게티의 동물들이 사람을 이르는 말은 ‘걷는 자들’이다. 그들은 불을 만들 줄 알 만큼 영리하지만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물에 독을 타고 범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초원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다. 천둥소리를 내는 막대기로 저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죽인다. 걷는 자들의 일원으로 허구의 이야기만이 아닌 사실에 안쓰러울 뿐이다.

 

간간히 끼어드는 삽화들이 동물들의 생기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여름 막바지에 매력적인 동물들과 세렝게티의 건기와 우기를 한꺼번에 통과하는 기분 좋은 독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기에 전에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푸른 사자’일까였다. 와니니의 털에는 푸른 기가 도는 걸까? 아니면 황토빛 건기를 지나 푸르른 우기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무리의 창창한 미래를 짊어질 사자여서 ‘푸르’다고 불러주고 싶었을까. 하지만 2권인 이 책에 답은 없었다. 앞서 출판된 「푸른 사자 와니니」를 읽어야 궁금증을 풀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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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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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는 충청남도 교육청 평생 교육원에서 진행한 ‘세대 공감 인생 레시피’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된 책이라 한다. 한글을 배우시는 할머니들께서 요리법을 쓰시고, 청소년들이 그림을 그리고, 봉사자와 사서들이 채록을 하였다.

 

1부 김치와 장아찌, 2부 국, 찌개와 반찬, 3부 요리, 4부 간식으로 소개된 요리들은 익숙한 미역국부터 생소한 올망개묵까지 다채롭다. 즉석식품과 냉동식품으로 맛이 규격화되고 유명 요리연구가와 방송인의 레시피로 조리법이 통일되는 요즘, 눈대중과 감으로 하는 할머님들의 요리는 제각기 다른 할머님들의 손글씨처럼 읽는 것만으로 특별한 맛이 느껴진다.

 

할머님들과 젊은 세대가 질문하고 답하는 책 말미의 ‘할머니 요리어 사전’에서 자연스럽게 세대 간 소통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청소년, 장년, 중년, 노년에 걸친 여러 세대가 참여하여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의 재능을 함께 나눈 것이 이 책이 특별한 이유라 생각된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함께 한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할머님들의 맛깔스러운 손맛 이야기만큼이나 한평생 이야기도 담담하게 씌었지만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전쟁과 궁핍한 시대를 살아내신 생생한 교훈이기 때문에 울림이 있다.

 

나이 먹고 아프고 나서야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나를 위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위해 살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p.140)

 

잘은 몰러두 식당서 손님들 반찬으로 호박지짐이 내놨을 때 많이 없어지면 맛있는 거여.(p.169)

 

보행기 끌고서 둑방 길 따라 꽃도 보고, 바람도 쐬며 신나게 다닌다. 이제는 책도 읽고 마음속에 담은 말을 글로 쓸 줄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 가끔 상도 타는데 그러면 기분이 좋아서 대문 앞에 들어서면서부터 자랑한다. 나는 선생님, 자식들에게 편지도 쓸 줄 아는 멋쟁이 엄마다.(p.172)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고 아픈 곳이 많아서 침도 맞고 주사도 맞고 병원도 다니지만 막내딸이 사 준 유모차를 끌고서 학교는 꼭 나온다. 시험을 봐서 빵점을 맞아도 공부하러 오면 즐겁다. 인생길 걸어 보니 첫째 중요한 것이 건강이고, 둘째 중요한 것이 공부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다.(p.198)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은 아니지만 정철임 할머님만의 음식 평가는 재미있고 믿음이 간다. ‘빵점을 맞아도 공부하러 오면 즐겁다’는 우종순 할머님의 말씀이 어쩌면 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33년생 87세 우종순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영원히 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공부와 학교를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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