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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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전체를 "수양"이라고 하는, 실천의 관점으로 일관되게 정리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시도는, 신화적/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얽혀있는 고대철학의 특성상 신비주의와 영성이라는 (아주 왜곡된) 시선을 드러낼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함정을 아주 절묘하게 피해가면서, 고대철학자들의 말이 어떤 실천적 지침을 제공할 의도로 쓰였는지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의 수양 개념은, 글로 쓰고 보면 대단할 것은 없다. 말과 행동을 같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선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말로 내뱉고, 그 가르침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조금 더 고양된 자신의 몸 전체로써 세계에 스스로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스토아 철학자들도, 에피쿠로스학파도, 회의주의자들도, 나아가 이 세계에 "철학자"로서 존재했던 모든 개인들도 바로 이런 "수양"을 목표로 살았기에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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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박승찬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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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신학자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다. 마음같아선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으나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아 개설서를 읽어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카톨릭 방송에서 진행된 평신도 대상 강연을 옮긴 책으로,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철학의 눈으로 신앙에 접근하다보면 벽에 부딪힌다. 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 이 단계에서 믿음의 논증을 비철학적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대체로 무신론자들이고, 나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가 "철학적으로" 무례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거나 없다는 믿음은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있다면 왜 있는지, 없다면 왜 없는지 주장하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발상이 진짜 철학적 문제다. 신학을 공부하는 건 그래서 신앙인에게도, 비신앙인에게도 의미있는 일이다.


신이라는 무게와 더불어,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건질 수 있는 주제와 신기한 발상은 다음의 개념들과 연관된다: 존재, 자아, 시간, 자연재해를 수용하는 태도, 도덕적 악의 기원, 자유의지의 본질, 전쟁의 정당성, 역사의 의미.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이들 개념에 관한 그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가 우리에게 준 영향력 때문이고, 독창적으로 느껴진다면 그의 사상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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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 미국의 뉴딜 연합 (1928~36년) 정당론 클래식 3
크리스티 앤더슨 지음, 이철희 옮김 / 후마니타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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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선거와 관련된 장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1930년대 뉴딜 시기 민주당의 우위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분석하는 책이다.


제1당이 되려면 표를 많이 얻어야 한다. 표를 많이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당 표를 빼앗아오거나(전향), 새롭게 유권자가 되거나 투표를 안하던 사람이 우리 당을 찍게 만드는 것이다(동원). 이 책은 이전까지 공화당이 쥐고 있던 미국 정치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간 이유가 동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 선거제도의 변경으로 유권자의 숫자가 기존의 선거 구도를 흔들 만큼 충분히 폭증했고, 첫 투표의 성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바로 이 "폭증한 유권자"들이 첫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었기 때문이다. 즉, 승리하는 정당이 되려면 동원에 중점을 두고 선거 전략을 짜야한다는 주장이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만 선거 데이터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어떤 선거전략과 어떤 이슈가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분석엔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 또한, 유권자의 숫자가 더 이상 폭증하지 않고 또한 적극적으로 동원 전략에 포섭되길 거부하는 유권자층이 상당히 두터운 2019년 우리나라에서 유효한 이론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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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 상 - 고대와 중세 서양 철학사 - 상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지음, 강성위 옮김 / 이문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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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중에 나와있는 철학사 책 중에 여러 가지 의미로 가장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철학의 본령으로서의 형이상학 부분에 충실하다는 점은 다른 어떤 철학사 책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철학 안에서도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많은 설명이 필요한 역설적 분과가 바로 형이상학인데, 그 부분을 이만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세철학의 현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신"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형이상학이라는 분야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형이상학에 충실한 이 책의 성향과 잘 들어맞는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철학적 "활동"이 과거의 철학자들이 남긴 유산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빚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변용)됐는지를 강조하는 철학"사"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철학적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왜 반드시 철학의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아주 길고 상세한 답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장점을 뛰어넘는 단점이 있다면, 어렵고 낡았고 무성의하다는 것. 원본 독일어 초판이 1948년(...)에 나왔고 첫 번역은 1983년(...), 물론 분야 특성상 오래 읽히면 일단 클래식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는 책이긴 한데... 흠.


형이상학에 치중하는 서술 스타일 또한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거대한 장벽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기에서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라질텐데, 좋아하는 사람은 무척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철학에 질려서 다시는 안보게 만들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성의 문제. 번역의 개정판은 1999년인데 대체 뭘 개정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타, 오역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문장들, 일어번역본을 베낀 것이 거의 확실한 이상한 표기법 등등 완성도 측면에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인데, 앞으로 사람들에게 계속 읽히려면 언젠간 통으로 새로 번역/출판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안 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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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2.0 - 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조지프 히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이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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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요 의제는, 책에서 인용하듯 "제정신(sanity)을 차리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정신이란 합리적 사고 능력이다. 특히 이 제정신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은 정치와 사회, 즉 집단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다.


단, 18세기 계몽주의자(주로 프랑스 계몽주의)나 19세기 혁명가들이 꿈꿨던 것처럼 명민한 개인(들)의 계획에 따라 바닥에서부터 모든 걸 다시 "이성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200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현대 심리학의 여러 실험을 통해서, 인간은 그 정도로 "이성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고전적 계몽주의의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점진적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느린 정치(slow politics)"를 제안한다. 상품 구매를 유혹하는 광고마냥 모든 것을 즉각 판단하게 만드는 의사결정 패턴을 정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빠른(fast)" 문화에 대한 반대인 것이다.


다만 이 "제정신" 개념을 이성과 연결짓는 탓에, 이 책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른바 "비-이성적"이라고 불리는 정치운동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점은 지적할만하다. 물론 저자는 (미국 기준) 현재 공화당의 정치행태 비판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전략을 세워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너선 하이트나 조지 레이코프같은 학자들, 정체성의 정치와 탈근대적 정치 주체를 옹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 운동 또한 이 책에서는 "비-이성적" 정치운동으로 분류된다. 음... 글쎄, 그렇게 싸잡아서 매도할 일인가? 이건 잘 모르겠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교수가 글을 이렇게 쉽고 깔끔하게 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주 탁월하다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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