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에는 빼놓았지만 이주에 나온 '서프라이즈'는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시공사, 2012)이다. 브로흐의 작품으론 대표작 <몽유병자들>(열린책들, 2009)이 번역돼 있는데(초역은 1992년에 현대소설사에서 나왔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말로만 전해지던 또 다른 대표작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물론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다. 간략한 작품소개는 이렇다.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과 더불어 20세기 유럽 문학을 선도한 작가로 평가받는 헤르만 블로흐의 대표작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삶과 죽음, 예술과 인생의 관계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황제의 생일 축연을 위해 그리스로 향했던 여행을 접고 항구도시 브룬디시움으로 돌아온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대표작이자 로마 그 자체라 평가되는 <아이네이스>를 불태울 것을 결심한다. 아니, 그래야 함을 깨닫는다. 동료 시인 루키우스와 프로티우스는 작품의 탁월함을 들어 이를 제지하려 하고,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 상징하는 인간의 과업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라며 반대 의견을 펼친다. 그들과의 논쟁을 통해, 이 로마의 대시인은 죽어 사라지고 마는 인간이 과연 창조라는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지상에서의 삶과 인식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되짚어 나간다.

소개를 보니,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한 차례 번역된 적이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범한출판사, 1984)으로 나왔고 독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김주연 교수가 옮긴 것이었다. 이번에 제자인 신혜양 교수와 함께 다시 번역해 펴낸 것. 여하튼 미뤄놓은 <아이네이스>의 독서까지 자극하는 출간이다. '세트'로 묶어서 읽어도 좋겠다(내년에 강의 목록에도 넣어봐야겠다). 오늘 책을 주문하면서 영역본도 같이 주문했다(영역본 <몽유병자들>까지 포함해서).

 

 

참고로 브로흐의 <몽유병자들>과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비평은 블랑쇼의 <도래할 책>(그린비, 2011)에서 읽을 수 있다...

 

12.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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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시몬느 베이유)의 책이 오랜만에 나왔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리즈앤북, 2012). 원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소개를 보니 편집된 책 같기도 하다(원저가 편집된 책인가?). 소개는 이렇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시몬 베유의 삶과 현실>에서는 T. S. 엘리엇과 체슬라브 밀로스의 글을 통해 시몬 베유의 짧은 생애를 이해해 보고자 했고, 지인들과 부모에게 보내는 시몬 베유의 편지들을 통해 그녀가 겪었던 현실의 순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제2부 <시몬 베유의 작품과 이상>에서는 시몬 베유의 사후에 발표된 여러 글들을 편집하여 실음으로써 그녀의 사상이 어떻게 글로 표현되었으며, 그 사상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했다.

아무튼 <중력과 은총>(이제이북스, 2008)과 합본으로 나온 <중력과 은총/철학강의/신을 기다리며>(동서문화사, 2011) 이후에 다시금 관심을 돋구는 책이다. 시몬 베유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강의를 하느라 자료를 꽤 모은 기억도 있다. 지금은 자료도, 기억도 다 흩어진 상태지만, <중력과 은총>의 한 구절 정도는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은 우리들의 비참함을 말해주는 표시이다. 신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것만을 사랑할 수 있다."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다.

 

 

그럼 아감벤은 뭔가? 엉뚱한 연상은 아니고, 아감벤의 학위논문 주제가 베유의 정치사상이었다. 하이데거나 벤야민만 아감벤의 '소스'는 아니었던 셈. 한겨레의 '진보 지식인 시리즈'에 소개된 대목이다.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간행된 발터 베냐민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를 지낸 뒤 베로나대학과 유럽·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건축대의 철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이후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1998), <예외 상태>(2002), <군림과 영광>(2007)을 거치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한겨레)

 

안 그래도 이번 여름에 아감벤을 읽을 일이 있는데, 시몬 베유가 같이 읽어보면 뭔가 새로운 접속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유의 책 가운데에서도 <중력과 은총> 외에 <전쟁과 일리아스>, <억압과 자유>, <뿌리 내리기> 등이 관심도서다. <억압과 자유>나 <뿌리 내리기>는 예전에 일부를 복사해둔 것 같기도 하다(번역도 됐을 것이다. 완역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감벤의 경우에도 <아감벤 사전>을 비롯해서 탐나는 신간들이 몇 권 된다. 번역까지 기다리기 어려워서 조만간 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신앙이 없는 이에겐 '신을 기다리며'를 대신하는 것이 '책을 기다리며'이다...

 

12.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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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러리사 할로>(지만지, 2012)가 번역돼 나와 이언 와트의 <소설의 발생>(강, 2009)과 같이 묶어서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 18세기 영국소설의 고전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첫 번역은 아니지만 헨리 필딩의 <톰 존스의 모험>(동서문화사, 2012)과 로렌스 스턴의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을유문화사, 2012)다. 

 

 

각각 <톰 존스1,2>(삼우반, 2007)와 <트리스트램 샌디1,2>(문학과지성사, 2001)로 한번 출간됐던 작품들이다. <톰 존스의 모험>은 먼저 나온 <톰 존스1>이 품절로 뜨기에 마침 요긴하게 나왔다. 새로 번역돼 나오니 독서욕 또한 새롭게 자극한다.

 

 

이번에 확인해보니 동시대 작가이지만 헨리 필딩(1707-1754)이 로렌스 스턴(1713-1768)보다 조금 연배가 앞선다. 이들은 각각 어떤 문제작을 쓴 것인가. 필딩의 <톰 존스>는 알다시피 서머싯 모옴이 '세계 10대 소설'이 주저 없이 포함시킨 작품이고, <트리스트램 샌디> 또한 러시아의 문학이론가 슈클로프스키가 '기법으로서의 예술'에서 '낯설게 하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한 소설이다.   

 

 

 

 

둘다 만만찮은 두께인지라 완독에는 꽤 공을 들여야 하지만, 요즘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터라 내친 김에 '서사적 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연이어 읽어보려 한다(예전엔 완독하지 않기도 했고). 아, 원서도 구해놓아야겠다!..

 

 

12.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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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에서 엮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사월의책, 2012)이다. '사회비판총서'라고 새로 기획된 시리즈의 첫 권으로 <포스트모던의 테제들>(사월의책, 2012)과 같이 나왔다. 시리즈 책이란 점 때문에 같이 주문하긴 했는데, 사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만 나왔더라면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같은 제목의 책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옹기장이, 2012)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문하기 전에도 두 책이 거의 '같은' 책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2년만에 같은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다는 게 특이해서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같은 제목으로 검색은 되지만 두 책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책소개에 들어있지 않다(어떻게 해서 책을 다시 내게 됐다는 식의 얘기가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출판계약은 5년인 경우가 많은데, 계약이 파기된 것인지? 분명 먼저 책을 낸 출판사로선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일 텐데, 양측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인지? 그런 사소한 흥미다.  

 

사소하지 않은 건 같은 콘텐츠의 책이 서로 다른 두 출판사에서 출간돼 동시에 판매된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공지되지 않은 일이다. 표지만 바뀌었을 뿐(거기에 편집 스타일만 바뀌었다) 내용은 거의 100% 동일한 책이 가격은 꽤 차이가 나는 이유가 순전히 '하드카바'이기 때문이라면 그 또한 허탈한 일이다. 흠, 자세히 보니 그밖의 차이도 없지는 않다. 가령 옹기장이판의 편집자 서문은 '사회 비판과 대안 모색의 이념'이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월의책판에서는 그게 부제로 돌려지고 새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적 전통'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아니, 그런데 순서만 보면 놀랍게도 이게 '새' 제목이 아니라 '옛날' 제목이다. 편집자 서문이 쓰인 날짜가 '2009년 9월 15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옹기장이판에서는 '2010년 1월 15일'로 돼 있다. 내용은 똑같은 서문인데, 나중에 나온 책 서문이 전에 나온 것보다 먼저 쓰였다는 것도 미스터리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이 아니라 '비밀들'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론 허버트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에 대한 강의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해 상기하고 예전에 사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도 다시 떠올리게 됐다(마르쿠제의 주저는 <이성과 혁명>, <에로스와 문명>, <일차원적 인간> 등이다). 그러다 결국 같은 콘텐츠의 책을 두 권 갖게 됐는데, 새로 나온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희한한 일이어서 몇자 적었다. 딴은 두 권이 같은 내용의 책이란 걸 독자는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12. 04. 07.

 

 

P.S. 마르쿠제에 대한 소개로 가장 간명한 것은 손철성 교수의 <허버트 마르쿠제>(살림, 2005)이다(<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의 마르쿠제 편도 손 교수의 글이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적잖게 나와 있었지만 마르쿠제의 책들은 현재 주저 몇 권만 남아있는 상태다. 얇은 책으론 <해방론>(울력, 2004) 정도.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동녘, 2000)는 두어 차례 나왔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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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도서이지만 일부러 독서를 미뤄놓는 책들이 있는데 이언 와트의 <소설의 발생>(강, 2009)과 린 헌트의 <인권의 발명>(돌베개, 2009) 같은 책이 그렇다. 이유는 비슷하다. 저자들이 중요한 전거로 삼고 있는 작품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거. 어떤 작품들인가.

 

 

 

'디포우, 리처드슨, 필딩 연구'란 부제를 갖고 있는 <소설의 발생>에서는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 <몰 플랜더즈>, 그리고 리처드슨의 <파멜라>와 <클래리사>, 필딩의 <톰 존스>가 주된 분석 소재다. <톰 존스>(삼우반, 2007)와 <파멜라>(문학과지성사, 2008)가 번역된 이후에도 <몰 플랜더즈>, 더 결정적으로는 <클래리사>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게 핑계가 됐다.

 

하지만 이번주에 예기치 않게도 <클래리사>가 <클러리사 할로>(지만지, 2012)란 제목으로, 무려 8권짜리 책으로 번역돼 나왔다(책값만 20만원이 넘어간다. 소설 한 작품에!). 일단은 2권까지만 구입했는데, 비록 <몰 플랜더즈>는 아직 소식이 없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완비가 된 상황이니 '시간 부족' 말고는 더이상은 핑계가 안 통하게 됐다. <소설의 발생>을 어디에 두었는지 하는 수 없이 주말에 찾아볼 예정(오래전에 구입한 원서도 갖고 있긴 하다).

 

 

 

다시 정리하면, <소설의 발생>을 읽기 위해서 미리 읽거나 같이 읽어야 할 책으로 먼저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가 있다. 세계문학판 번역본들이 나와서 이 책은 독서여건이 아주 좋다.

 

 

 

그리고 필딩의 <톰 존스>와 리처드슨의 <파멜라>. 분량이 만만찮지만 소설사뿐 아니라 18세기 문화사에 관심이 있다면 책장에 구비해놓을 만하다.

 

 

 

거기에 <클러리사 할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맞먹을 만한 분량이다(책값은 능가한다!). 영어본으로도 보통은 축약본이 나와 있을 정도. <인권의 발명>을 읽기 위해선 <클러리사 할로>에다가 루소의 <신엘로이즈>(한길사, 2008)를 더 얹으면 된다. '소설'이 아니라 '고전 명저'로 번역돼 고급양장본이고 가격도 세다(이런 건 문고판 영역본들이 부럽다).

 

 

 

흠, 찾아놓고 보니 <소설의 발생>과 <인권의 탄생>을 읽는 건만 해도 몇십 만원 비용에 몇 개월짜리 프로젝트다. 이런 건 '독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전투'다...

 

12.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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