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처음 소개되는 저자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이주의 발견'으로 묶어놓는다('이주의 뉴페이스'라고 할까. 카테고리는 '로쟈의 전투'다). 지난주에는 생각만 품고 있다가 미처 실행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시 생각난 김에 바로 적는다. 물론 눈길을 끄는 책이 있어서다. 카렌 호의 <호모 인베스투스>(이매진, 2013).

 

 

저자나 제목(원제)가 드러나지 않아서, 좀 궁리를 했는데 외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조합해본 'Karen Ho'가 저자의 이름이라서. '미네소타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라고만 소개된다.

 

 

<호모 인베스투스>라는 제목보다는 '투자하는 인간, 신자유주의와 월스트리트의 인류학'라는 부제, 특히 '월스트리트의 인류학'이란 말이 책의 내용을 잘 집약해준다. 소개는 이렇다.

천문학적인 연봉과 말쑥한 정장, 주당 110시간 고된 노동과 해고 뒤 15분 내 책상 빼기. <호모 인베스투스>는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 직원들의 이런 모순된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해 세계 금융 시장의 호황과 불황이 생산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캐런 호는 1997년부터 3년 동안 정장 한 벌로 지하철 에프선을 타고 다니며 인류학의 불모지인 투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화이트칼라 착취 공장과 투자 은행 직원의 채용과 해고, 노동 조건과 보수 체계, 위계적인 공간과 옷차림 등을 분석했고, 정리 해고를 이윤 증대와 동일시하는 주주 가치가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역사와 이 과정에 월스트리트가 기여한 방식을 정리했다.

 

원제는 청산하다는 뜻의 'Liquidated'. 번역본이 제목으로 '호모 인베스투스'란 신조어를 고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엔 'Homo investus'를 검색했다). 역자는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유강은 씨.(알라딘엔 '유강'이라고 오기됐다). 

 

 

 

한편, '월스트리로 간 인류학자'라는 설정 때문에 떠올리게 된 책은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김영사, 2009)이다. 도시 빈곤층에 대한 연구를 위해 현장조사를 하다가 갱단에까지 들어가게 된 사회학자의 경험담을 그리고 있는 책.  

수디르 벤카테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실상 주류 사회로부터 분리된 책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최하층 도시 거주지역의 축도인 시카고의 공영 주택단지로 들어갔다. 그후 10년 동안 마약판매 갱단과 함께, 매일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연구를 한다.

이름으로 봐서는 미국사회 비주류 학자가 학계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몸으로 때우는 거' 아닌가란 인상도 들게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흥미로운 인류학/사회학 보고서를 읽을 수 있다면 독자로선 나쁠게 없는 일이다. 벤카테시의 책 가운데는 도시 빈민의 지하경제를 다룬 것도 눈길을 끈다.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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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들에 대한 압박(과부하)에 시달리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페이퍼를 적는다. 뭔가 '주제'가 있는 것 같은 제목이지만, 실상은 건국대 몸문화연구소라는 곳에서 연이어 펴낸 세 권의 책을 나열했을 뿐이다.

 

 

<폭력의 얼굴들>(쿠북, 2013), <포르노 이슈>(그린비, 2013), <권태>(자음과모음, 2013)가 그것이다. '폭력'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폭력의 얼굴들>을 구하고 나니 나머지 책들도 자동적으로 관심도서가 돼버렸다. 대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은 보통 특정 주제의 학술대회를 열고 거기서 발표된 논문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들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특이한 것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출간됐다는 점. 무슨 학술총서 개념이 아닌 것이다.

 

<폭력의 얼굴들>을 펴낸 '쿠북'은 건국대출판부의 자매 브랜드이기에 이상할 게 없지만(이 연구소의 책은 대부분 쿠북에서 나왔다), <포르노 이슈>나 <권태>는 일반 출판사에서 나왔고 그건 최소한의 대중성은 자신한다는 뜻도 된다(소위 '먹힐 수 있다'고 본 것이겠다). 실제로 <포르노 이슈>나 <권태>는 목차만 보더라도 <폭력의 얼굴들>보다는 좀더 구미가 당긴다.

 

 

'권태'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따로 생각나는 인문서가 별로 없지만(물론 소설들은 좀 된다) '포르노' 혹은 '포르노그라피'는 한때 유행을 타는 듯했던 주제였다.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책세상, 1996),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동문선, 1996), 캐서린 매키넌의 <포르노에 도전한다>(개마고원, 1997) 등이 나오던 때다.

 

 

이후 국내 학자들의 다소간 학술적인 책들도 보태졌는데, 윤혜준의 <포르노에도 텍스트가 있는가>(나남, 2001), 박종성의 <포르노는 없다>(인간사랑, 2003), 연동원의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연경문화사, 2006) 등이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포르노에 관한 책들을 사람들이 포르노만큼 즐기는 건 아니어서 크게 이슈화 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프로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부제로 한 <포르노 이슈>는 포르노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의 '발제문' 역할은 해줄 수 있을 듯하다...

 

13.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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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라캉 정신분석에 관한 책이 나왔다. 대니 노부스의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문학과지성사, 2013). 말 그대로 '라캉 용어사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겠다.

 

 

'대니 노부스'란 이름이 입에 익어서 검색해보니 '대니 노부스'로는 뜨지 않는다. 예전에 나온 <라깡 <라깡과 프로이트의 임상정신분석>(하나의학사, 2002)의 저자가 'Dany Nobus'로 표기됐기 때문이다.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의 저자 소개에 "벨기에의 헨트 대학에서 '인문자원관리부장'을 지내다가 1996년 영국 브루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리학 전임강사를 거쳐 2006년 심리학ㆍ정신분석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새로 설립된 사회과학부의 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전략ㆍ발전ㆍ대외관계' 부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자크 라캉과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적 실천>, <아무것도 모르기, 어리석게 남기>(공저)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자크 라캉과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적 실천>이 바로 <라깡과 프로이트의 임상정신분석>을 가리킨다. <아무것도 모르기, 어리석게 남기>(2005) 이후에도 노부스의 공저에는 <성도착>(2006)이 있다. 라캉 관련서들도 이 참에 모아놓아야겠다...

 

 

13.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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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은 김학준의 <혁명가들>(문학과지성사, 2013)의 부제다. 더 정확하게는 앞에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가 더 붙어 있다. '덩샤오핑 이후 현대중국정치의 견인차들'이란 장에서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리커창을 다루고 있어서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란 말도 붙은 듯한데, 중국 공산당의 네 실력자가 모두 생존해 있으니 '세계공산주의자의 삶과 죽음'이란 부제에는 맞지 않는다. 특히나 공산주의자들이 맞았던 죽음의 특이성에 주목하고자("그들은 대체로 암살됐거나 처형됐고 옥사했거나 의문 속에 변사했다") 한 저자의 의도에 비추어서도 그렇다.   

 

 

 

<혁명가들>은 저자가 전작인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의 발자취>(동아일보사, 1997)와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이상>(동아일보사, 1998)을 한데 묶으면서 부분적으로 개정, 보완한 것이다. 서구와 동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 인명사전이라고 할까. 유럽 좌파의 역사를 다룬 제프 일리의 <더 레프트 1848-2000>(뿌리와이파리, 2008)와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여러 직함을 갖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김학준 교수는 러시아 정치 전공자이자 <러시아혁명사>(문학과지성사, 개정판1999)의 저자다. 1990년대 초반 학부시절 이인호 교수의 러시아 지성사 연구서들과 함께 러시아사에 관한 기본 문헌이었다. 어즈버 20년도 더 됐나 보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반공주의자이다. 책의 집필과 편찬 의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저자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폭력적 사회주의, 곧 볼셰비즘이 성장하거나 심지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오늘날의 북한 현실을 보면 '폭력적 사회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파괴하고 나라를 황폐하게 하며 국제평화를 위협하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뜻에서, 저자는 이 책을 수정, 보완해 펴내고자 하는 것이다.(15쪽)

특이한 것은 그럼에도 향후 유럽의 민주사회주의 운동가들에 관한 책과 제3세계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관한 책을 펴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세계마르크스주의혁명가 열전' 집필이 대학생부터의 꿈이었다고. 

 

공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환상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많은 시간을 그 연구와 집필에 바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드문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세계공산주의자 인명사전으로는 더없이 유익하기에(이만한 규모의 책을 쓸 저자도 국내에는 드물 듯하고) '세계마르크스주의혁명가 열전'이 완간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13.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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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을 한권 읽으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이 정도로는 뭔가 빈둥거렸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데(더구나 강의도 없는 날이라면!) 만회하는 의미에서 페이퍼 하나를 적는다. 요근래 생물학 책들에 대해 자주 언급한 김에 신간들 가운데 도널드 프로세로의 <공룡 이후>(뿌리와이파리, 2013)를 골랐다. 출판사의 이름을 딴 '뿌리와이파리 오파비니아' 시리즈의 열번째 책이다.

 

 

 

'오파비니아'는 눈 다섯에 머리 앞쪽에 소화기처럼 기다란 노즐이 달린 마치 외계생명체처럼 보이는 고생대 생물이다. 아래 같은 이미지다.

 

 

'우주의 진화, 지구의 진화, 인간의 진화'를 다시 짚어보는 게 시리즈의 취지인데, '오파비니아'를 상징으로 가져온 것은 "오파비니아의 다섯 개의 눈과 기상천외한 입을 빌려 우리의 오늘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에 더해 열린 사고와 상상력까지 담아내고자" 하는 뜻이라고. 그냥 단순하게는 지질학과 고생물학 관련서들이 시리즈의 목록을 구성하고 있다.

 

지질학 시대 구분은 좀 복잡하지만 그냥 큰 덩어리로 고생대-중생대-신생대라고 하면 <공룡 이후>는 신생대를 다룬 책이다(오파비니아 시리즈에서 공룡 시대는 스콧 샘슨의 <공룡 오디세이>에서 다룬다. 덧붙여 피터 워드의 <진화의 키, 산소 농도>는 '공룡은 왜 진화했고, 또 어떻게 1억 5,000만 년이나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란 질문에 답한다). '신생대 6500만년, 포유류 진화의 역사'란 부제가 말해주는 대로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다. 공룡의 시대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시대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포유류의 시대는 중생대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뿔이 없는 거대 코뿔소, 검치호, 마스토돈트와 매머드, 그 밖의 수천 종의 환상적인 포유류(우리의 조상도 포함된다)가 숨 가쁘게 진화해온 신생대의 이야기도 대단히 경이롭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구의 기후변화라는 더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경이로운 이야기'이니 만큼 아무 때나 읽을 순 없고,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나 벗어나고 싶을 때 읽음직하다. 고생물학 책을 읽는 건 그 자체로 우리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휴가'다.

 

 

 

오파비니아 시리즈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건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다. 그리고 내내 욕심을 내다가 오늘 주문해서 받은 책은 리처드 포티의 <삼엽충>(뿌리와이파리, 2007)과 앤드루 파커의 <눈의 탄생>(뿌리와이파리, 2007)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20, 30대 때 '방학'이나 '휴가'는 내게 언제나 교양과학서를 떠올려주었다. 모름지기 그런 기간엔 평소에 안 읽는 책, 혹은  일상과는 가장 거리가 먼 시공간을 다룬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적어놓고 보니 별로 이상한 생각은 아니군). 방학이나 휴가라고 해서 멀리 갈일이 없는 처지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멀리 가봐야 또 얼마나 가겠는가. 천문학이나 고생물학 책이 보여주는 시공간에 비하면 말이다.   

 

하여 입에 잘 붙지도 않는 고대 생물들의 이름을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건 나름 호사다. 메소니키드-파키케투스-암블로케투스-달라니스테스-로드호케투스 등으로 쭉 이어지는 고대고래의 계통도가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기에 호사도 제값의 호사다. 당장은 그런 호사를 누릴 만한 형편은 아니어서, 봄밤에 잠시 기분만 내보다가(책을 쓰다듬어보다가) 내려놓는다. 지질학적 시간이 언제나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바이지만, 인생, 너무 짧다...

 

13.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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