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차 오랜만에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포가 건드린 다양한 형태의 미스터리물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럴 땐 일차적으로 관련서를 모두 모아놓는 게 상투적으로 하는 일인데 '미국추리작가협회 지음'으로 돼 있는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모비딕, 2013)도 관련서의 하나다. 아직 '미스터리 걸작선'들에까지 손을 댄 건 아니지만 경험상 '작법'은 언제나 '독법'으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곧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은 거꾸로 <미스터리를 읽는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급수를 맞춘다고 할까. 추리소설 작가에게는 <현대범죄수사> 같은 범죄 수사 교과서나 <법의학, 병리학, 독극물학> 같은 법의학 교과서, 그리고 <범죄학 개론> 같은 경찰학 교과서들이 그것도 최신판으로 필요하다고 하는 대목에선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검색은 해봤다.

 

 

 

'교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한국의 CSI>(북라이프, 2011)가 많이 팔린 책이고, 전대양의 <범죄수사>(21세기사, 2013)는 거의 안 팔리는 책이지만 두툼한 대학 교재다. 경찰행정학과 같은 곳에서 교과서로 쓰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추리소설 작가들도 이런 류의 책들을 여럿 구비하고 있을 터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저자는 독일의 법의곤충학자이자 과학수사 전문가 마크 베네케인데, 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알마, 2008), <연쇄살인범의 고백>(알마, 2008), <살인본능>(알마, 2009) 등의 책이 눈에 띈다. 이 정도면 추리소설 작가뿐 아니라 독자들도 눈여겨볼 만한 것 같다.

 

 

국내 법의학자가 쓴 책으론 이윤성의 <법의학의 세계>(살림, 2003)이 소개서이고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의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죽을 뻔했다>(알마, 2011),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글로세움, 2012) 등이 읽어볼 만하겠다. 이 역시 독자들에게도.

 

 

범죄학 개론서는 국내서도 좀 나와 있는데, 번역서 가운데서는 Larry J. Siegel의 <범죄학>(Cengage Learning Korea, 2012)이 최신판이다. (그린, 2012)도 무게감이 있는 책인데, 책에 관한 정보는 올라와 있지 않다. 앨런 군의 <범죄수사를 위한 필수 법생물학>(월드사이언스, 2011)도 2판인 걸로 보아 이 분야에서는 읽히는 책인 모양이다. 

 

물론 미스터리를 위해서라면 그밖에 많은 미스터리물에 대한 독서도 필수이겠지만 이런 류의 참고도서도 기본적으로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 <미스터리 쓰는 방법>은 이런 충고까지 보탠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법률, 법의학, 탄도학, 지문과 음성인식 등 범죄와 관련된 분야를 다루는 정보가 엄청나게 많으며, 새로운 과학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항상 가까운 도서관에 가 필요한 책을 찾아보길 권한다.(10쪽)

우리의 '가까운 도서관'에 '필요한 책'이 꽂혀 있을지는 심히 의문스럽지만, 여하튼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도, 그리고 읽기 위해서도 우리는 항상 도서관을 애용하도록 해야겠다. 아, '범죄도서관'이라는 게 있다면 딱 좋을 듯하군...

 

13.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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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동성애'가 묶인 건 이번주에 나온 관심도서 두 권이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부키, 2013)과 기 오껭겜의 <동성애 욕망>(중원문화, 2013)이어서다. 무슨 관계가 있다거나 하는 보고는 접한 바 없다.

 

 

 

<채식의 배신> 원제는 <채식의 신화>다. '배신'이란 말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번에도 말은 된다. 부제대로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을 폭로하고 있는 책이라서.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20년간 극단적인 채식을 실천하던 비건(vegan) 출신의 저자가 채식주의의 주요 주장들이 무지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면에서 그 주장들을 논박하는 책이다. 저자는 채식주의가 생명 존중과 정의, 지속 가능한 사회 추구라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오해로 인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동물 권리주의, 농업의 파괴성, 기아의 해결책으로 곡물이 제시되는 것의 타당성 등 채식주의 진영의 가치들을 검증해 나간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월 터틀의 <월드피스 다이어트>(황소자리, 2013). 소개에 따르면, "'21세기형 영적 구루'라 칭송받는 저자 윌 터틀은 20세기 이후 세계 최고의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실은 기만적인 목축문화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목축’과 ‘사육’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하는 동물 노예화가 인간의 생래적 친절과 연민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가족 해체, 정신 병리, 탈감각화 등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를 양산한다고 말한다."

 

 

 

채식주의에 대한 강력한 옹호인 셈인데, 균형잡힌 독서를 위해서 같이 읽어봄직하다. 월 터틀과 같은 계열로는 존 로빈스의 '혁명 3부작'도 있다. 모두 육식 문명의 문제점에 대해 재고해보도록 촉구한다. '육식'은 야만이고 '채식'은 배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궁금하다... 

 

 

<동성애 욕망>에 대해선 알라딘에 책소개가 떠 있지 않아 찾아보니 1972년에 나온 것이다. 영어판은 1978년에 나오고 1993년에 재판이 나왔다.  

 

1972년에 당시 25살의 젊은 철학자가 <동성애 욕망>이라는 떠들썩한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영향 아래 쓰였고 프랑스에서 68년 5월의 반란에 뒤이은 정치적이고 지적인 격앙에 의해 깊게 특징지어진 이 저작은, 1969년 뉴욕에서 스톤월의 동성애자 시위의 항적 속에 그리고 미국에서 전복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사회를 혁명하려는 게이레즈비언 운동의 출현의 항적 속에 새겨져 있다. 출판 이후 거의 30년 만에 기 오껭겜의 책은 정말 우리가 읽어야 할 어떤 것이 되었다. 이 책은 반동성애 편집증(호모포비아)이라고 부른 것을 인식하도록 우리를 도우며 동시에 게이레즈비언 요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출판 이후 거의 30년 만에 기 오껭겜의 책은 정말 우리가 읽어야 할 어떤 것이 되었다"는 건 2000년에 새로 나온 프랑스어판 서문에 들어가 있는 말인 듯하다. 우리에겐 40년만에 번역된 책이다. 여하튼 아직 생명력이 있는 책이라면 읽어볼 만하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 동성애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김혜나의 소설 <정크>(민음사, 2012)에 해설을 붙인 인연도 있어서 관심이 간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아래의 책들도 참고할 수 있다(기독교와 동성애를 다룬 책들도 여럿 출간돼 있다)...

 

 

13.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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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거창하지만 이번주에 나온 <서양고대철학1>(길, 2013)을 보면서 이정우의 <세계철학사1>이 떠올라 붙였을 뿐이다(<세계철학사>도 올해는 2권이 나올 수 있을까?). '서양고전학 연구총서'의 첫 권으로 나온 <서양고대철학1> 국내 서양고전학 연구진들의 역량을 한데 모은 책으로 '철학의 탄생부터 플라톤까지'가 부제이고 다루는 범위다.

 

 

 

관련기사를 보니 두 권짜리로 기획돼 있고, 2권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을 다룰 계획이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철학사1>과 얼추 범위가 겹칠 듯하다. 철학의 탄생에 대해서는 작년에 다시 나온 콘스탄틴 밤바카스의 <철학의 탄생>(알마, 2012)과 나란히 읽어도 좋겠고.

 

 

엊그제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이번주엔 천병희 선생이 옮긴 <국가>(숲, 2013)도 출간됐기에 '서양 고대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조건은 충분하다.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숲, 2012) 등의 대화편도 정암학당 판들과 비교해서 읽어볼 수 있다(정암학당판으로는 아직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서양고대철학1>의 마지막 장은 '플라톤의 에술철학'에 할애돼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미학,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에 대해서는 존 깁슨 워리의 <그리스 미학>(그린비, 2012)도 작년말에 나온 읽을 거리다. 다른 분야도 이 정도 읽을 거리가 갖춰지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13.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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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나온 책들 가운데 말리노프스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전남대출판부, 2013)이 가장 놀라운 책이라고 어제 적었는데, 그 다음으로 꼽을 만한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텍스트, 2013)다.

 

 

아렌트가 야스퍼스의 지도 하에 쓴 박사학위논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을 영어판 단행본으로 펴낸 게 원저다. 아렌트의 책이 대부분 번역되었기에(유고들도 번역되고 있다) 이 초기 저작이 소개된 게 크게 놀랍진 않지만, 여하튼 '여기까지 왔구나'란 생각은 갖게 한다. 난이도의 문제를 제쳐놓는다면 아렌트의 거의 모든 책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는 셈.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문학과지성사, 1983) 이후로 치면 30년만이다.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렌트 입문서로도, 그리고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 입문서로 읽을 수 있을 듯싶은데, 안 그래도 작년에 피터 브라운의 평전 <아우구스티누스>(새물결, 2012)가 출간돼 아우그스티누스 읽기도 좀 평탄해진 터이다. 에티엔느 질송의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성균관대출판부, 2010)와 이석우의 <아우구스티누스>(민음사, 1995/2005)까지 길잡이로 삼는다면 최소한 중급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엄두는 못 내고 있지만 목표치는 그 정도이다.

 

 

지난주에 같이 나온 책은 아렌트 전공자인 홍원표 교수의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인간사랑, 2013)인데, 입문서인 <아렌트>(한길사, 2011)에 이어서 읽는 게 좋겠다(아렌트의 입장을 고려하면 '反정치철학'이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모음집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인간사랑, 2009)는 아렌트 수용의 시각과 수준을 일별하게 해준다.

 

 

돌이켜보니 본격적으로 아렌트를 읽게 된 건 역시나 아렌트 전공자인 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책세상, 2001)을 읽으면서부터다(김비환, 서유경 교수 등도 아렌트 전공자다). '본격적'이라고 해서 머리띠를 둘러매고 읽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관련서를 사들이고 종종 원서도 같이 읽어보고 했다는 뜻이다. <인간의 조건> 같은 책은 러시아어판으로도 갖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애독자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관심사 중의 하나는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관계,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철학적 대응관계인데, 이에 관한 책들도 여럿 모은 적이 있어서 여건이 된다면 한번 검토해보고 싶다.

 

 

 

아렌트의 전기로는 영 브륄의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이 결정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고, 거기에 버금갈 만한 하이데거의 전기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가 가진 걸로는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전기(영역본)가 가장 최근판이었다. 자프란스키는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쇼펜하우어에 대한 전기를 갖고 있는데, 그중 니체만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13.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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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주의 정신분석 저널 엄브라(Umbra)가 또 한 권 번역돼 나왔다. <검은 신>(인간사랑, 2013)으로 연간지인 이 잡지의 2005년호를 옮긴 책이다. 앞서 2003년호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인간사랑, 2008)와 2004년호 <전쟁은 없다>(인간사랑, 2011)가 번역됐기에 이번이 세번째 책이다(조금 속도를 내면 번역본도 연간지가 될 듯하다). 4호가 나온다면 2006년호 <불치(Incurable)>가 번역될 차례다. 한국어본의 특징은 1인 번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인 번역 잡지라고 할까.

 

 

Umbr(a)란 잡지는 조운 콥젝의 편집으로 1996년에 창간호를 냈고 2012년호로 '테크놀로지', 2013년호로 '대상, 외부, 타자'가 근간 예정이다. 마저 나오면 18호까지 나오는 셈이 된다. 엄브라 홈피(http://www.umbrajournal.org/)에서는 기간호에 대해서 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번역본 가운데는 <전쟁은 없다>만 유료 서비스다. 각호의 표지는 아래와 같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전쟁은 없다>

 

 

<검은 신>

 

 

<검은 신>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옮긴이와 편집자(앤드류 스콤라)의 글을 참조할 수 있는데, 이렇게 소개된다.

프로이트는 어떤 행위가 종교적이려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종교적 행위나 믿음이란 없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면 정신분석에서는 대문자 타자이며 그것의 욕망이다. 라깡은 이를 “검은 신”이라고 부른다. 이번 호의 제목은 라깡에서 빌려 온 것이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선언에서처럼 대타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든 것의 기원은 결여이다. 인간은 신의 기원과 욕망을 알고 따르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내리신 계명들의 언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신분석은 실증주의적 과학과는 달리, 종교적 문제, 즉 기원과, 신, 창조의 문제를 사유한다. 특히 근대 주체구성의 과정에 개입해있는 일신교에 천착한다.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실증주의처럼 종교를 허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 될 수 없다. 창조, 주체의 기원, 믿음, 소외, 희생과 봉사, 예외, 신성성, 사랑 등 종교가 전유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이며 철학적 사유에서 피해갈 수 없다. 기왕의 종교비판이나 분석이 혐오와 경외 양극단의 대립을 상정했다면 정신분석은 신이 부재한 자리를 사유한다.

편집자 외 7명의 필자 가운데 국내에도 소개된 저자는 로렌죠 키에자 정도다. 로렌초 키에자란 이름으로 <주체성과 타자성>(난장, 2012)이 번역된 바 있다.

 

 

기독교 신에 대한 라캉주의적 접근과 관련해서는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도 참고할 수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는 지젝이 공저한 <고통받는 신>(2012)도 있다. 앞으로 관련서들이 더 소개될 것으로 안다...

 

13.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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