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특집 추리 드라마 <극한추리 콜로세움>입니다. 1회당 30분씩 총 4회로 이뤄져 있어서 2시간만 가볍게 투자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어제 밤에 가벼운 기분으로 봤는데, 역시 가벼운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은 오카모토 코이치라는 처음 듣는 사람이고, 주연은 카시와바라 타카시, 여주인공은 아야세 하루카라고 하네요. 둘 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낯이 익더군요. 카시와바라 타카시는 그 유명한 이와이 슌지의 그 유명한 <러브레터>에서 소년 후지이 이츠키로 나왔던 인물입니다. 당시에도 샤방 냉미남이었는데 조금 나이를 먹은 요즘도 꽃미남이더군요. 사실 저도 꽃미남은 못 되도 꼰미남이기는 한데...(다리를 꼰 미남, 허리를 꼰 미남..-_-;;)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는 히가시노 게이고씨의 대표작 <백야행>에서 유키호 역을 맡았던 배우였습니다.

 

내용은 꼭 <튜브>를 연상케 합니다. 편의점에서 프리터로 근무하며 하루하루를 생각없이 보내는 화가지망생 남주인공, 어느날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기묘한 공간에 와 있습니다. 무지무지 더운 집에 자신을 포함한 일곱 명의 사람과 함께 머물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 역시 이 집에 와 있는 이유도 모른채 끌려왔고, 서로 안면도 없습니다. 그들은 컴퓨터를 발견하고, 주최자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당신들은 추리게임에 초대되어 왔다. 일곱 명의 사람 중 매일 밤 한 명씩 죽을 것인데 범인을 맞추기 전까지 살인은 계속된다. 범인을 맞춘 사람들에게는 각 1천만엔씩이 지급될 것이지만, 틀린 답을 입력할 경우에는 모두 죽게 된다. 현재 당신들이 머물고 있는 더운 집은 여름별장인데, 다른 곳에 겨울별장도 있다. 이 곳에도 일곱 명의 사람이 와 있고, 역시 매일 사람이 죽을 예정이다. 당신들은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의 살인자 두 명을 맞춰야 하는데, 범인을 늦게 맞추는 쪽 역시 전멸이다. 행운을빈다."

 

뭐 이런 식입니다. 여름별장의 사람들은 겨울별장의 사람들과 화상채팅을 통해 교신하게 되는데, 그쪽은 무지 추운 방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위를 싫어해서 저 같으면 여름별장으로 가겠습니다. 어쨌든 하룻밤이 지나고 여름과 겨울의 방에서 각각 한 명씩 죽어 나갑니다. 게임이 진짜였다는 걸 깨닫게 된 사람들은 전력으로 사건을 추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경쟁 체제에 돌입한 여름과 겨울의 방 사람들은 유일하게 정보를 교류해나가는 화상 채팅에서 서로 틀린 정보를 가르쳐주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듭니다. 과연 범인은누구일까요?

 

   이 작품의 재미는 특이한 설정에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한 명씩 죽어나가는 대강의 내용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류의 고전 추리물의 변주입니다. 무엇보다 여름과 겨울의 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 방보다 먼저 사건을 풀어야하기 때문에 틀린 정보를 비롯해 온갖 협잡이 난무합니다.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 머리를 살포시 굴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예요.

 

그러나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살짝 시시합니다. 진지하게 머리를 굴려 추리해보고 싶은 분도 계실텐데, 일본어 단어에 관한 일종의 암호풀이가 주된 트릭이기 때문에 일어를 못 하시는 분들은 맞출 수 없는 내용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단서는 우연에 의해 주어지고, 등장인물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도 걸립니다. 솔직히 한 방에 모여 있으면 아무도 안 죽을텐데,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데도 각방을 고집하는 등장인물을 보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러나 뭐 다 모여 있으면 이야기가 안되겠지요. 짧은 만큼 가볍게 볼 만한 작품이지만 별점을 주라면 두개, 많이 줘도 세개 정도에 그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한다는 메피스토 상 수상작 야노 류오 씨의 <극한추리 콜로세움>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원작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드라마보다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국내에 소개되긴 힘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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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5-1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추리를 좋아하시는군요!
전 김전일이 한계에요. 무서운건 절대 못봐요 ㅠ_ㅠ
기묘한 이야기도 어느 순간부터 손이 안가더라는;;
카시와바라군은 저도 좋아해요~ 꽃꽃꽃미남 ^^

jedai2000 2006-05-1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 좋아하죠. ^^;; 키티님도 더 많이 읽어보세요. 분명히 매력을 발견하실 겁니다.
<극한추리 콜로세움>은 별로 무섭진 않아요. 김전일보다 덜 무서울 것 같은데요.
<기묘한 이야기>에 무서운 이야기도 있나 보죠. 전 극장판 DVD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안 봤거든요. 친구가 그 중 한 이야기가 엄청 무섭다고 하대요. 카시와바라 군을 좋아하시는군요. 역시 미녀는 꽃미남을 좋아하나 봅니다~ ^^;;
 



지구촌이라더니 정말 요즘은 도처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교통과 기술이 발전하니 세계가 한마을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화 흐름에 발맞추어 절친한 친구 한놈이 국제 연애를 하고 있다. 중국 유학중에 만난 여자와 1년 넘게 교제를 계속하고 있는데, 주로 화상채팅을 통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단다.

 

그런데 어제 마침내 그의 중국인 여자친구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 녀석이 어찌나 보고 싶었던지 오전11시부터 전화해서 나오라고 성화다. 친구 여자친구와 처음 상견례하는 자리니 나가야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준비하고 나가서 동인천에 있는 인천 제2국제 여객터미널로 나갔다.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배의 승객들을 통관시키는 곳이었다.

 

몇 시에 오냐고 물었더니 오후 2시 배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 왜 이렇게 일찍 불렀냐고 했더니, 집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화를 낼 기력도 없어진다. 우리는 3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 미셀 위가 골프 홀을 도는 모습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니 힘이 축축 빠진다. 멍하니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 지치게 하는 일이 없다. 담배를 한갑은 피웠나보다.

 

터미널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려오길래 그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중국 여인 두 명과 한국 남자 네 명이 있었다. 솔직히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국 남자들이 중국 여자 한 명을 잡아 끌며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다른 중국 여인은 끌려가는 중국 여인을 보며 애타게 무언가 말한다. 그러자 한국 남자 중 한 명이 '괜찮아. 괜찮아.' 하며 억지로 데려간다.

 

나는 원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 뻔한 상상 밖에 하지 못한다. 돈을 벌러 온 중국 여자 두 명중 한 명밖에 필요가 없어 한 명은 내버려두고 가는 모양으로 보았다. 두 여자의 관계는 자매, 아니면 친구쯤 될 것이다. 한국 남자들이 데려가는 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술집? 아니면 더 이상한 곳?

 

이별을 맞은 두 중국 여자는 구슬프게 울었다. 끌려가는 여자는 한참 멀리 사라지면서도 고개를 돌려 남은 여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남은 여자의 두 눈에도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마침내 저 멀리까지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갈 때가지 끌려가는 여자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마치 눈 속에 영원히 헤어진 자매 혹은 친구를 담아 두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남은 여자의 눈물은 강물을 넘어 바다가 되었다. 오래된 옛시구절이 떠올랐다.

 

雨歇長提草色多     비 갠 강둑에 풀잎이 이들이들,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 임 보내니 슬픈 노래 북받치네.

大洞江水何時盡     어느 제 마르오리 대동강 푸른 물,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저 강물에 이별 눈물 더 보태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오고 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크나큰 슬픔 역시 세계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일본의 슬픔, 중국의 슬픔, 미국의 슬픔, 태국의 슬픔 등이 들어와 떠돌고 있다. 슬픔만은 수출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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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5-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상의 시인가요?

BRINY 2006-05-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상의 送人이군요.

jedai2000 2006-05-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맞습니다. 슬픔만은 수출하지 않는 세계화였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상복의 랑데뷰님...밑의 브리니님께서 정확하게 설명해주셨네요.

브리니님...예. 제가 참 좋아하는 한시입니다. 읽어보다가 소름을 느꼈을 정도예요. ^^;;
 

어제 오전 11시에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동안의 혹사에 불만을 품은 컴퓨터는 치밀하게 사보타쥬를 준비하고는, 제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순간에 결국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구사대를 보내 반란을 초동 진압하려 했으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는 뜨거운 맹세를 한 컴퓨터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반란의 결과로 현재 컴퓨터는 수리점에서 그토록 원하던 2일간의 휴식을 얻어낼 수 있었고, 저는 겜방으로 긴급 피신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컴퓨터 관리 잘 하세요...

 

아무튼 게임방에서 노닥거리다 예전에 쓴 파일이 보이길래 옮겨 놓습니다. 패션 잡지 <보그걸>에서 마니아 추천 비스무리하게 일본 미스터리 5편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짧은 내용이라 쓰기 힘들었는데 그냥 재미삼아 한 번 보세요.

 

 



  1. 벚
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2003)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역 / 한스미디어 출판사 


추리소설은 간단히 말해 온갖 트릭을 이용해 독자를 속이려는 작가와 안 속으려고 버티는 독자 사이의 두뇌싸움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상 최강의 반전으로 방심하고 있던 독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트릭의 놀라운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역작이다.

 

 

 

2. 검은 집 (1997)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역 / 창해 출판사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 신지는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부부를 조사한다. 부부가 사는 검은 집을 방문한 순간, 신지는 심장이 얼어붙는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받을만큼 압도적인 공포와 음산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탔다.

 

 

 

3. 망량의 상자 上,下 (1995)

- 교고쿠 나츠히코 / 김소연/ 손안의 책 출판사


임신한 여자가 20개월째 해산을 못한다거나, 온 몸의 뼈가 부서져 병원에 누워있던 소녀가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가운데 연기처럼 사라지는 등 기묘한 사건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음양사 탐정 교고쿠도의 활약을 그리는 ‘교고쿠도 시리즈’ 제2작. 일본의 전통 요괴를 모티브로 삼은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했고,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4. 인생을 훔친 여자 (1992)

- 미야베 미유키 / 박영난 역/ 시아 출판사


일본 추리소설의 전통은 크게 수수께끼의 해결에 집중하는 본격 추리소설과 범죄 이야기로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양대 갈래로 나눠진다. 이 작품은 그런 사회파의 정수를 담고 있는데, 카드빚으로 고통 받는 여자의 애절한 인생 비극을 그린다. 무분별한 카드 사용으로 많은 신용 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도 꼭 맞는 작품.

 

 

 

 

5. 레몬 (1993)

- 히가시노 게이고 / 권일영 역 / 노블하우스 출판사


작년에 나오키 상을 탄 일본 최고의 대중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일본 추리소설 초심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가인데, 60편이라는 많은 작품이 매번 다른 소재와 변치 않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레몬>은 황우석 교수 사태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간 복제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메디컬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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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4-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추천 고맙습니다.

jedai2000 2006-04-2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야 취향에 따라 좀 가벼워보일수도 있는 작가지만 재미만큼은 보장하는 작가죠. 물론 <백야행>같이 묵직한 것도 있지만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저 역시 추천 감사드려요. ^^;;
 


 

우연히 보고 나서 완전 사랑에 빠져 버린 드라마가 있다. 월화, 밤 10시에 방영하는 <연애시대>가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때 열렬히 빠져 있던 손예진이 오랜만에 TV에 나오는 작품이라 주목은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1회를 놓치고 2회부터 보게 되었다. 2회를 보고 난 소감은 간만에 물건 하나 나왔네, 였다. 흥미로운 상황 설정에서 감칠 맛 나는 대사, 배꼽을 살살 간지르는 유머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수작이었다.

 

  옆 사진의 손예진과 감우성이 주연을 맡았다. 청순계 지존이라 불리우는 손예진과 <왕의 남자>로 1,200만 배우가 되버린 감우성이라는 스타 캐스팅이다. 두 사람은 이혼한 부부다. 이혼하면 다신 안 보는 웬수가 되는게 예전의 모습이라면, 이 드라마에서는 세태를 반영하듯 이혼후에도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며 관심을 갖는 따뜻한 이혼부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서로의 연애 상대까지 골라주게 된다. 예전의 미운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웬지 두 사람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남녀에게 점점 끌리는 상대의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일까. 당사자도 알 수 없는 두 이혼부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절묘하다.

 

 이 드라마의 잔잔한 분위기가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알아봤더니, 원작이 일본 소설이란다. 요즘 다운로드로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게 유행이라 원작자를 알 것이다. 노자와 히사시라는 일본의 드라마 작가인데 소설도 쓰고, 각본도 쓰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치다 작년에 자살했다고 한다. 데뷔작으로 그해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을 쓴 신인 작가에 수여하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탄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잠자는 숲>이나 <얼음의 세계>같은 작품들은 미스터리 색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단다. 그러면서도 부부의 문제에 굉장히 천착한다고 하는데, <연애시대>를 보니 과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리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원작자의 취향에 맞춰 미스터리 기법을 일정 부분 차용하고 있다. 작품 초반에 감우성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 공형진의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분만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고, 특히 아이를 받지 못하는 특이한 의사다. 무엇보다 그는 생업을 팽개칠 정도로 감우성, 손예진 부부의 재결합에 열중인데 이것도 좀 이상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감우성, 손예진 부부의 아기를 받아내다 실수로 죽인 것 같다. 그래서 아기를 받지 못하는 공포증에 걸린 것이고, 자신의 실수로 부부 관계가 파탄이 났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재결합에 열심인 것이다. 중요한 비밀을 초반에 밝히지 않고, 복선만 깔아주다 나중에 그 비밀이 풀릴 때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한 재미를 주는 것이다. 영락없는 미스터리 기법이다.

 

이 작품에는 이런 기법를 제외하더라도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좀 다른 면이 많다. 시종일관 잔잔한 분위기와 뭔가 있어 보이는 내레이션, 대폭소가 아닌 자잘자잘한 유머 등이 영락없는 일본 드라마 풍이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이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이 낮은 것 같다. 톱스타들이 출연함에도 14%라는 낮은 시청률에 머무는 것은 작품이 그만큼 우리 시청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잔잔한 분위기가 가장 큰 약점인 것 같다. 나와 드라마를 같이 보는 엄마는 이 작품이 시작됨과 동시에 주무시고 만다...-_-;;

 

 우리 드라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연애시대>답게 신선한 배우도 등장한다. 좋은 드라마는 늘 좋은 배우를 배출하는 법. 이 드라마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주연 손예진, 감우성이 아닌 이하나라는 신인 배우다. 손예진의 동생으로 나와 기상천외한 세계관과 엉뚱한 행동들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데, 그녀와 공형진의 러브 모드가 어떻게 진행될가 하는 것이 팬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하나에게서 데뷔 초기 손예진이나 김하늘 같은 풋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신인임에도 자연스러운 연기와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한 아름다움에서 TOP이 될 만한 배우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영화감독 한지승 씨와 영화음악가 노영심 씨의 참여 등으로 인해 드라마 때깔도 참 좋다. 여러모로 웰메이드를 자랑하는 드라마로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놓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새로운 기운을 일본 작가가 아닌 우리 작가가 불어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4회가 끝났을 뿐이니 처음에 놓치신 분들도 부담없이 보기 바란다. 내용의 곡절보다는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관건인 작품이니 그 점에 유의해서 보시면 즐거운 드라마로 남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참고로 원작도 출간되어 있으니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2권이 안 나와서 한꺼번에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노자와 히사시 씨의 미스터리 작품이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나왔으면 좋겠고, 그의 아까운 죽음에도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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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서울역을 갔었다. 옛날가수 예민씨의 노래 중에 <서울역>이라는 명곡이 있는데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에 간 이유는 BOOK-OFF라는 일본 헌책방 체인점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는 굉장히 지점이 많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1호점이란다. 뭐 일본인들이 워낙 책을 많이 보고 또 책도 깨끗이 봐서 헌책방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다고 한다. 이 점은 우리나라와 비교되는데, 절판된 추리소설을 구하기 위해 국내 헌책방도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좁고 더럽고 영세하고 낙후된 곳 천지다. 특히 대부분의 운영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하시는데 살 책이 마땅한 것이 없어 그냥 나오려 하면 그순간부터 갑자기 밭은 기침을 컬럭컬럭 하신다. 여기서는 냉혈한이 아닌 이상에야 그냥 나올 수 없다. -_-;; 일종의 세련된 강매라고나 할까...

 

이렇게 낙후된 한국 헌책방과 비교해 보면 일본 BOOK-OFF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한국 헌책방도 나름의 정서와 정감이 있지만 값싸고 깔끔하며 정리 정돈까지 잘되어 있는 BOOK-OFF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건 인지상정이리라. 아무튼 세계 최고의 질과 양을 자랑하는 일본추리소설을 기념삼아 몇 권 집어오려고 간 것이다. 물론 본인은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공부하고 있는 생초짜에 불과하다. 그나마 꼬부랑꼬부랑 비슷하게 생긴 글씨 때문에 맨날 까먹기 일쑤다. 하지만 평소의 지론,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으면 일단 사고 봐라, 그러면 나중에 사놓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공부하게 될 것이다를 실현하기 위해서 무조건 책을 사고 봤다.

 

사진을 작게 줄여 거의 알아보기 힘들텐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츠사마' 츠츠이 야스타카 옹의 대표작 <부호형사>다. 여형사가 사실 어마어마한 재벌의 후계자라 돈을 쳐발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위트와 재미가 만점인 작품이란다. 알만한 분은 다 아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놀라운 재미를 생각해 보면 기대가 커진다...하지만 언제 읽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른 작품은 다카하시 카즈히코의 <용의 상자>라는 제목. 굉장히 유명한 작가지만 국내에는 단편집 하나만 나왔다. 이건 그냥 기념으로..  ^^;; 여기까지가 6,500원이었다. 책 상태도 좋은데 저렴하기도 하지...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한 편인 <불야성 Sleepless Town>이다. 하세 세이슈라는 작가가 썼는데 표지에서 알 수 있듯 금성무 주연으로 영화화된 적도 있다. 스트리트 크라임 노벨이라는 별명을 내 멋대로 붙여준 작품으로 암흑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혼혈아 류젠이의 악몽같은 3일을 그리고 있다. 빠르고 박력 넘치고 한계를 넘는 강렬함으로 도배된 소설이다. 반드시 읽어보시길...

 

 

  이 사람이 바로 작가인 하세 세이슈다. 하세 세이슈는 한자로 '馳星周'라고 쓰는데 읽어보면 '치성주'이다.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그렇다. 이 작가는 주성치를 너무 좋아해 필명을 주성치를 거꾸로 해서 붙였단다. 이 사람 어떤 사람일지 감이 팍 오지 않나? 아주 쌈마이 정서가 생활화된 사람인 것이다. <불야성>에도 정상적인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 류젠이는 17세에 사람을 죽이고 남자를 강간한 엽기적인 인물이다. 이런 정 안가는 인물을 갖고 그토록 뛰어난 소설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웹서핑하다 발견한 사진인데, 작가 하세 세이슈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성치를 만나 파안대소하는 장면이란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폭력적이고 막 나가는 사람은 전혀 아닌데, 이상하게 하세 세이슈는 마음에 든다. 인간 세상을 정글에 비유해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세계관도 좋고, 섭씨 2만도는 될듯한 들끓는 열기로 가득찬 작품의 분위기도 좋다. 한 마디로 좋아하는 독자는 아주 미칠 지경이고, 싫어하는 작가는 거품을 물고 씹는 그런 작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자랑질이다. 어제 무심코 집은 <불야성> 문고본에 하세 세이슈의 친필 사인이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를 보니 1999년 7월 25일에 00씨에게 드린 책 같은데, 이 정신병자 같은 인간이 헌책방에 팔아버린 것 같다. 나 같으면 가문의 무한한 영광일텐데 팔아 버리다니 배짱도 좋다. 어쩌면 무심코 읽어보고 작품에 등장한 폭력신, 섹스신에 넌더리가 나서 팔아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어떻게 돌고돌아 한국에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세 세이슈의 진가를 너무도 잘 아는, 친필 사인을 너무너무 받고 싶은, <불야성>같은 명작을 쓰고 싶은 본인에게 온 것은 일종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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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어도 읽으시는구요. 흑! 부럽습니다 ㅠ.ㅠ

jedai2000 2006-04-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_-;; 저 하나도 못 읽어요. 언젠가 일어공부를 해서 읽으려고 그냥 사둔 거예요..^^;;

nemuko 2006-04-2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저도 북오프에서 불야성 샀는데 잘 뒤졌으면 사인본 가졌을텐데..으흑...
그래도 팬인 제다이님 손에 들어간 게 훨씬 다행이예요. 저라면 낙서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jedai2000 2006-04-2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하하 운이 좋았죠. 같이 가신 분도 내노라하는 하세 세이슈 팬인데 제가 먼저 챙기게 되었습니다. 네무코님이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는데 읽어볼 만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음에는 하세 세이슈 사인을 직접 받는 걸 목표로 정진하겠습니다..^^;;

oldhand 2006-04-2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공척씨의 女女탕탕과 크리스티의 공포의 肉女도 꼭 한번 보고 싶은 책입니다. ㅋㅋ

jedai2000 2006-04-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그날 이야기 나온 얼 스탠리 가드너 원작, 사공척 번역, 제목 <女女탕탕>이군요. 완전 코미디네요..ㅋㅋ 삼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져요..^^;;

panda78 2006-04-2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호형사 드라마는 별로던데, 원작은 재밌을 것같아요. ^^ 츠츠이 야스타카라니, 드라마의 인상만으론 무지 의왼데요? ^^;
저도 북 오프 가서 만화책이랑 쉬운 책 한두권 사 오고 싶네요. 요 며칠, 네무코님이 주신 호숫가 살인사건 원서를 보고 있는데, 하루에 두세 페이지가 한계군요. - _ -;;

jedai2000 2006-04-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은 아주 유명합니다.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들어갈 정도로 평이 좋아요. 츠츠이 선생이야 워낙 천재적인 작가니 뭘 써도 기본 재미 보증이니까요. ^^;; 북오프 한 번 놀러가세요. 2,000원 코너에서 잘 고르면 10,000원이면 다섯 권! ^^;;

BRINY 2006-05-0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호형사 드라마에서만 부호의 손녀딸인 여자 형사지, 원작은 본인이 부호인 남자 형사가 주인공이랍니다. 하세 세이슈의 친필 사인이 있는 책이라니, 부럽네요.

jedai2000 2006-05-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아직 일본어를 못해 원작을 못 읽어봐서 그냥 드라마 내용이랑 비슷하겠거니 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언제 읽어볼 수 있을지 암담하네요. 하세 세이슈 친필 사인은 가끔 혼자 꺼내보면 실실 웃곤 합니다.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