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새로 시작한 드라마 <봄의 왈츠>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오래전부터 윤석호 감독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계절 연작 중 마지막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호 감독님과 같은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일이 있는데 그때 팬입니다, 하며 사인 한 장 받아둘 걸 하며 늘 후회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완전히 철지난 소재인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계절 풍경에 담아내 서정성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력을 보여주는 윤감독님은 영원한 사랑을 믿는 피터팬 같은 분이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계절 연작의 순위는 <여름향기>-<가을동화>-<겨울연가>순인데, 아무래도 당시 주연인 손예진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여름향기>가 조금 미화된 경향이 있다...ㅋㅋ
드라마 완성도나 최루성에서는 <가을동화>가 가장 뛰어난 것 같다. 계절 연작을 거쳐간 스타는 송승헌, 송혜교, 원빈, 한채영, 배용준, 최지우, 박용하, 박솔미, 손예진, 류진, 한지혜, 신애 등이 있다.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은 역시 욘사마님과 지우히메님이실테고, 얼굴에 비해 유독 뜨지 못했던 원빈도 팔자를 고쳤다.
원빈의 명대사 '얼마면 돼? 사랑 이제 돈으로 사겠어."가 떠오른다. 이걸 본인이 한 번 술김에 여후배에게 해봤는데 그녀가 바로 '얼마 줄 수 있는데요. 저 돈 많이 필요해요.'라는 대사를 촉촉한 눈으로 날리더라.ㅋㅋ 참고로 나도 물론 원빈의 발톱에도 따라갈 수 없는 외모지만, 그 아이도 송혜교와는 눈썹 하나 닮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세월은 이토록 흘러 계절 시리즈의 약발도 다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래서 캐스팅도 한효주, 서도영, 이소연, 다니엘 헤니라는 신진급들로 채워졌다. 우려를 했는데 어제 첫 회를 보니 다행히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향기>에서 손예진이 등장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는 것과는 달리, 한효주는 미모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선한 느낌이 좋다.
계절 연작의 최대 장점은 바로 극중에서 등장하는 장소로 바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것. <겨울연가>의 남이섬이나 <여름향기>의 보성 녹차밭은 지금 완전히 관광지가 되었잖은가. 이 작품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눈풍경과 푸르른 완도의 풀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솔직히 영상면에서는 윤감독이 독보적이다. 물론 드라마는 그림 엽서가 아니니까 내용도 신경써야겠지만...
의붓남매간의 사랑, 기억상실증, 심장이식 등 어떤 주제를 다뤄도 계절 연작의 주제는 운명적인 사랑이다. <봄의 왈츠> 역시 마찬가지로, 한 입양아가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나기 전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여자아이와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1,2회는 재미있었지만 시청률은 10%초반이다.
이제 이런 내용은 시효를 다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삶을 세밀하게 그린다거나, 진보적인 정치 메시지를 담는 드라마도 좋고, 영원한 사랑을 그리는 동화같은 드라마도 필요한 것이다. "뻑이 갑니다, 뻑이 가." 같은 대사도 명대사지만 "무지개 너머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우주로 날아갑니다." 같은 <봄의 왈츠>식 대사도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여름향기> 방영 당시, 친구들과 보성 녹차밭을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소개한다. 절묘하게 <여름향기>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다른 게 있다면 <여름향기>는 선남선녀지만, 저희는 남남커플이라는 것...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