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작패 사진이다. 2002년, 2003년을 온통 보드게임으로 보낸 본인이 요즘 가장 배워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도박의 끝은 마작이라고...그만큼 운과 두뇌, 추리력, 계산 능력이 잘 어우러진 게임이라 그렇단다. 개인적으로 도박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별로 담대하지 못한 편이라, 포커를 쳐도 포커페이스 유지가 안 되고, 고스톱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스톱은 허리가 아프다. 밤새도록 쳐봐야 허리만 상하고 일당도 안 나오기 일쑤인데, 거기다 필연적으로 시비가 동반된다. 대학 다닐 때 친구 집에서 밤새 쳤는데, 대학생이라 밤새도록 쳐봐야 기껏 2만원 정도 오간다. 딴 돈이라고 해봐야 다같이 탕수육 시켜 먹고 땡이다. 그런데도 그나마 도박을 하면 성격이 나온다고, 삼수한 형이랑 애들이랑 심각한 고성이 오가고 멱살잡기 직전까지 간다. 그거보고 어찌나 웃기던지..^^;;

 

그러나 마작은 다르다. 중국 영화 같은 거 많이 봐서 알겠지만 테이블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눠며 패를 돌린다. 크~ 멋지다. 시쳇말로 간지 좔좔이라 이거다. 옛날 소설 읽어보거나,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작하다가 산 하나 날렸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이야기인데...그런데 날릴 산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_-;;

 

마작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됐지만 일본에서 붐이라고 한다. 동호회 인구가 30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용어가 중국어, 일본어가 혼재되어 있다. 내가 마작 사이트를 뒤져 대충 룰을 봤는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거의 '루미큐브'와 비슷했다. 그런데 용어가 '론', '쓰무', '역만', '하네만', '미엔쯔' 등 완전 국적 불명이라 헷갈린다. 솔직히 제대로 한 두판만 배우면 될 것 같은데, 주변에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혹시 이 서재에서 마작을 할 줄 아는 분이 들어오신다면 한 수 배우고 싶다. 거하게 대접할테니 꼭 연락 주시기 바란다. 모 보드게임 카페에서 토요일 강습회도 한다고 하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같이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드게임을 꽤 열심히 해서 해본 게임이 200개가 넘는다. 쓴 돈은 정말 200만원은 넘을 것 같다. 마작도 보드게임의 일종이라고 봤을 때 이제 그것만 정복하면 끝을 보는 것이다. 다음달 안에 꼭 배워서 평생동안 즐거운 취미거리를 만들고 싶다. 테이블과 마작패를 구입해서 친구들을 가르쳐 집에서 모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심한 도박성은 줄이고 건전한 취미로 말이다. 또 하나의 인생의 기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적으로 마작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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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겜으로 마작합니다^^:;;

jedai2000 2006-03-2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패를 돌려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요..^^;;

Koni 2006-03-2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인터넷으로는 가끔 봤는데, 실물 마작패를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일본만화에 보면 마작도 궁상스럽게 하려면 궁상스럽게 할 수 있던걸요.^^ 남자기숙사에서 상 앞에 모여앉아서 밤새워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jedai2000 2006-03-28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그러게요. 저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싸더라구요. 그럴 듯하게 할 수 있는 것도 2만원이나 3만원이면 산답니다. 물론 고급 패를 사면 끝이 없겠지만요. 일본만화에 나오는 궁상스럽게 마작 하는 거 저도 좀 압니다. 난닝구-_-;; 차림의 남자들이 쓰레기더미같은 방에서 줄담배를 피며 마작을 하죠.ㅋㅋ 확실히 여성 동지가 가세해야 좀 더 간지나는 마작이 가능한가 봅니다...^^;;
 

<눈먼 까마귀>는 심리학 교수이자 문학 평론가인 마키 다이스케의 <야호기野狐忌>라는 수필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작가 다나카 히데미쓰의 자살을 직접 눈으로 본 충격과 그 끔찍한 광경을 같이 본 사나에라는 여자와의 추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문학 평론가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어느날, 다나카 히데미쓰 전집의 해설을 부탁받고 자료 수집을 하다가 실종됩니다. 며칠 뒤, 그가 입고 있던 옷이 발견되는데 속주머니 안에는 그의 새끼손가락과 그의 유서로 짐작되는 '눈먼 까마귀'라는 구절이 담긴 종이 쪽지가 들어 있습니다. 새끼손가락의 생활 반응으로 봐서 그는 이미 죽은 걸로 밝혀집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왜 죽은 다음 새끼손가락을 잘랐을까, 눈먼 까마귀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확대됩니다. 마키가 실종되기 직전 마지막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는 마키의 제자였던 출판사 직원 미토 다이스케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청산가리로 살해됩니다. 그가 살해된 곳은 '호메로스'라는 다방입니다. 마침 손님으로 와 있던 치구사 검사는 미토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한 말을 듣습니다. '하얀 까마귀'라는 말이었습니다. 마키와 미토, 두 사람의 죽음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한 치구사 검사와 노모토를 비롯한 형사들은 수사에 나섭니다. 하지만 '눈먼 까마귀'와 '하얀 까마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요?

 

도처에서 까마귀가 날아드는 이 흥미로운 작품은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하는 본격 추리소설입니다. 초반엔 '호메로스' 다방에서 벌어진 미토의 청산가리 살해의 트릭을 벗겨내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후반에는 범인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철벽같은 알리바이 허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트릭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읽고 나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며 절망하게 됩니다. 치구사 검사의 날카로운 추리력과 발로 뛰며 증거를 모으는 노모토 형사의 콤비 플레이가 멋지게 그려지며, 문단의 이면을 그리는 작품이니만큼 다양한 시와 작가들의 이야기가 작품에 품격을 높입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 트릭이 모두 기발하고 그럴듯해 한 작품에서 독살 트릭과 알리바이 깨기라는 두 가지 맛을 골고루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네요. 치구사 검사는 탐정 역으로 특히 매력있는 인물로 괴벽이 없는 건실한 가장입니다. 마지막 트릭은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힌트를 얻어 해결해내는데, 요즘 탐정들이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하는 인물이 거의 없어 오히려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사건이 다 해결되도 안타까운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상당한 수준작입니다. 독살 트릭에서는 요란한 기계적 트릭이 아닌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을 이용했고, 알리바이 트릭에서는 단순하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멋진 트릭이었습니다. 작가 쓰치야 다카오가 트릭 제조에 상당한 역량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워낙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라 더 이상의 정보는 없지만 날렵하면서도 기품이 배인 문장과 효과적인 트릭을 만드는 능력으로 봤을 때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작가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나 89년 작품이니만큼 번역은 좋지 않고, 오타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습니다. 보면서 나름대로 교정을 보며 읽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워낙 구하기 힘든 작품을 읽은 데 만족했네요. 더구나 어렵게 발품 팔아 구한 책들이 사실 기대한 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120% 대만족을 시켜준 작품이어서 좋았습니다. 추리소설, 특히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실망할 수가 없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발견하는 즉시 구입하시길...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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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고 안 읽은 책입니다 ㅠ.ㅠ

jedai2000 2006-03-2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물만두님께서는 역시 없는 책이 없으시군요..^^;;
저는 헌책을 많이 수집하시는 분께 다행히 선물로 받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번역, 교정, 교열 최악이지만 트릭의 재미로만 봐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약속 드릴 수 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3-2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역시 레어본이죠? ^^;

jedai2000 2006-03-2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하기 어려운 책일 겁니다. ^^;;
 

-루스 렌델 여사

<뮤즈의 홀>의 원제는 'From Doon with Death'로 무려 루스 렌델 여사의 데뷔작입니다. 현일사라는 출판사에서 91년에 출간됐네요. 예전에 우연히 입수해 아주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인데 분량도 적어 주말을 맞아 가볍게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루스 렌델 여사다운 재미있는 작품으로 레지널드 웩스포드 경감이 등장하는 첫 작품입니다.

영국의 킹즈마크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마가렛 파슨스라는 여자가 실종됩니다. 다음 날 그녀가 킹즈마크햄과 조금 떨어진 농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웩스포드 경감과 부관인 버덴이 사건의 조사에 나섭니다. 살해된 마가렛은 두 사람이 보기엔 촌스러운 시골 여자에 다름 아니었지만, 그녀의 남편에게는 재치있고 편안한 살림꾼이었고,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전 국민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발견된 편지에서 그녀를 민나라고 부르며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둔'이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등장합니다. 둔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며 미치도록 그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얼굴을 가진 마가렛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웩스포드 경감의 추리가 펼쳐진다는 내용입니다.

64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국내에 나온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본격 추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후계자로 불리우는 그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1부에서는 현재 마가렛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2부에서는 그녀의 과거를 찾고, 3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살해당한 사람의 됨됨이를 다른 이의 회상으로 재구성해 짜릿한 재미를 안겨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데뷔작답게 웩스포드 경감이 진범을 알게 되는 과정이 조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녀의 문장력이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1930년생인 루스 렌델 여사는 원래 기자 출신으로 데뷔작 <뮤즈의 홀>에서 등장시킨 웩스포드 경감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다수 썼습니다. 이 시리즈는 작년에도 출간되는 등 여전히 진행 중인 시리즈입니다. 그 외에도 <내 눈에 비친 악마>나 <유니스의 비밀>같은 독립된 작품들을 꽤 많이 남겼구요. 놀랍게도 바바라 바인이라는 이름으로 또 걸작들을 다수 출간합니다. 가히 현대 추리소설계의 신화적 존재 중의 한 명입니다. 작품의 질과 양, 추리문학상 수상작들의 수를 세어보아도 그녀와 대적할만한 추리소설가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내 눈에 비친 악마>와 , 바바라 바인 명의의 로 영국의 골드대거상을 탔고, 역시 바바라 바인 명의로 쓴 로 미국의 에드거상을 수상했습니다. 모쪼록 제가 적은 이 작품들 만이라도 국내에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만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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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2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지고만 있고 그냥 있다는 사실에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읽어야 하는데요 ㅠ.ㅠ

jedai2000 2006-03-1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물만두님 쵝오! 없는 책이 없으시군요.^^;;
솔직히 옛날 책이라 번역은 별로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단숨에 읽을 만큼 흡인력이 있어요. 어차피 집에 있는 책, 없어질 것도 아니고 천천히 시간날 때 보세요..^^;;

상복의랑데뷰 2006-03-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책들일수록 점점 더 안 읽게 되지요 ^^

jedai2000 2006-03-28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헌책을 구해놓긴 하지만 새책에는 순위가 밀리는 법이죠. 웬지 낡고 지저분해 보여 손도 안 가고...^^;;
 



하염없이 웹서핑을 하다 문득 <소나기>의 황순원 작가님의 젊었을 적 사진을 발견하고 퍼와봤다. 옛날에는 문인들도 얼굴 보고 뽑았는지 거의 원빈을 방불케 하는 꽃미남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소나기>를 패러디한 인연(ㅋㅋ)도 있고 해서 웬지 낯설지 않은 작가님이시다.

 

<소나기>가 중학교 교과서인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건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 명단편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해지는 사춘기 때 본 책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멜로 영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데는 <소나기>가 마음 속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서일 거라고 믿는다. (필자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 김용의 작품에 빠져 살아서 지금도 협사(俠士)를 꿈꾼다...^^;;)

 

그런데 <소나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황순원 선생님께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을 때 제자분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있다. 그분은 황순원 작가님의 <소나기> 육필 초교를 보셨는데...그동안 소년, 소녀의 완전 순백한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소나기>에는 사실 약간의 스킨쉽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리기만 하던 소년이 소녀로 인해 성적인 야릇한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키스를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교과서에 실리는 과정에서 그런 장면들을 개정해 달라고 요청을 받게 되고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지금 작품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초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설마 황 선생님이 <소나기>에서 지저분한 느낌이 나는 장면을 넣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소년이 몸과 마음의 사랑에 다 눈뜨게 되는 성장소설의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추측만 해본다. 선생님은 2000년인가 돌아가셨는데, 자제분이신 황동규 시인 역시 <즐거운 편지>같은 명시를 다수 남겼다. 어제 드라마 <봄의 왈츠>를 보는데, 소년소녀 배우들이 원두막에서 비를 긋는 장면이 나오길래 자연스레 <소나기>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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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03-1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류소설가 황순원이 떠오르는군요;;;

jedai2000 2006-03-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류소설가 황순원..ㅋㅋ
유명한 이야기죠. 소변인님의 저서에 익히 나오는..^^;;
 


어제부터 새로 시작한 드라마 <봄의 왈츠>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오래전부터 윤석호 감독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계절 연작 중 마지막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호 감독님과 같은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일이 있는데 그때 팬입니다, 하며 사인 한 장 받아둘 걸 하며 늘 후회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완전히 철지난 소재인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계절 풍경에 담아내 서정성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력을 보여주는 윤감독님은 영원한 사랑을 믿는 피터팬 같은 분이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계절 연작의 순위는 <여름향기>-<가을동화>-<겨울연가>순인데, 아무래도 당시 주연인 손예진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여름향기>가 조금 미화된 경향이 있다...ㅋㅋ

 

드라마 완성도나 최루성에서는 <가을동화>가 가장 뛰어난 것 같다. 계절 연작을 거쳐간 스타는 송승헌, 송혜교, 원빈, 한채영, 배용준, 최지우, 박용하, 박솔미, 손예진, 류진, 한지혜, 신애 등이 있다.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은 역시 욘사마님과 지우히메님이실테고, 얼굴에 비해 유독 뜨지 못했던 원빈도 팔자를 고쳤다.

 

원빈의 명대사 '얼마면 돼? 사랑 이제 돈으로 사겠어."가 떠오른다. 이걸 본인이 한 번 술김에 여후배에게 해봤는데 그녀가 바로 '얼마 줄 수 있는데요. 저 돈 많이 필요해요.'라는 대사를 촉촉한 눈으로 날리더라.ㅋㅋ 참고로 나도 물론 원빈의 발톱에도 따라갈 수 없는 외모지만, 그 아이도 송혜교와는 눈썹 하나 닮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세월은 이토록 흘러 계절 시리즈의 약발도 다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래서 캐스팅도 한효주, 서도영, 이소연, 다니엘 헤니라는 신진급들로 채워졌다. 우려를 했는데 어제 첫 회를 보니 다행히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향기>에서 손예진이 등장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는 것과는 달리, 한효주는 미모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선한 느낌이 좋다.

 

계절 연작의 최대 장점은 바로 극중에서 등장하는 장소로 바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것. <겨울연가>의 남이섬이나 <여름향기>의 보성 녹차밭은 지금 완전히 관광지가 되었잖은가. 이 작품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눈풍경과 푸르른 완도의 풀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솔직히 영상면에서는 윤감독이 독보적이다. 물론 드라마는 그림 엽서가 아니니까 내용도 신경써야겠지만...

 

의붓남매간의 사랑, 기억상실증, 심장이식 등 어떤 주제를 다뤄도 계절 연작의 주제는 운명적인 사랑이다. <봄의 왈츠> 역시 마찬가지로, 한 입양아가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나기 전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여자아이와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1,2회는 재미있었지만 시청률은 10%초반이다.

 

이제 이런 내용은 시효를 다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삶을 세밀하게 그린다거나, 진보적인 정치 메시지를 담는 드라마도 좋고, 영원한 사랑을 그리는 동화같은 드라마도 필요한 것이다. "뻑이 갑니다, 뻑이 가." 같은 대사도 명대사지만 "무지개 너머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우주로 날아갑니다." 같은 <봄의 왈츠>식 대사도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여름향기> 방영 당시, 친구들과 보성 녹차밭을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소개한다. 절묘하게 <여름향기>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다른 게 있다면 <여름향기>는 선남선녀지만, 저희는 남남커플이라는 것...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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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3-0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남남커플 좋아요.
전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는 단열군때문에 보는데 어제 앞에를 놓쳤더니 아그들만 나오더군요.ㅠㅠ

nemuko 2006-03-0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첫회 잠깐 보는데 누가 누군지 헷갈리지 뭐예요. 전 그 여자애 둘을 임은경이랑 채정안이 얼굴 고치고 나온 줄 알았어요. 궁금해서 인터넷 찾아 봤더니.... (이럴때 나이들었단 생각이 파바박... ㅠ.ㅜ)

물만두 2006-03-0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단열군이 누군가요?

paviana 2006-03-0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언냐..그 유명한 단열군..다니엘 헤니 군을 모르신단말입니까? 마냐님 페이퍼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시조의 주인공을....언냐 세상 잘못 살고 있는거야요.=3=3=3

jedai2000 2006-03-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단열군을 좋아하시는군요. 이번 드라마에서 한층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던걸요. 아그들 나오는 이야기도 서정적이고 좋던데요. 이번 <봄의 왈츠>는 꽤 매력적인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

네무코님...한효주가 채정안을 닮았죠. 물론 채정안처럼 인형같이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귀엽고 산뜻하니 좋더군요.

물만두님..파비아나님께서 친절하게 달아 주셨네요. 다니엘 헤니입니다. <삼순이>로 벼락스타가 됐던...

물만두 2006-03-08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열군이 다니엘 헤니군요 ㅠ.ㅠ 음,.. 신군은 알겠는데 율군은 누군지도 좀
3=3=3

상복의랑데뷰 2006-03-0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군은 궁에 나오는 율인가요? ㅎㅎ

jedai2000 2006-03-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율군은 2인조 그룹 UN의 보컬 출신인 김정훈입니다.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 이신의 사촌인 이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율이라 율군이지요..^^;;

상복의 랑데뷰님...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