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인데, 10월 걸 쓰고 있다니...그때그때 써야지 한번 밀리니까 대책이 없네요ㅠ.ㅠ

 

 




<39계단 - 존 버컨>

무척 오래된 고전이 출간되었다. '쫓기는 사나이' 공식을 거의 최초로 확립시킨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스파이 스릴러의 원조격인 작품이다. 아주 예전에 삼중당이나 하서에서 세로줄로 우리나라에서도 출간이 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삼중당 판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읽기 편한 가로줄과 참신한 새 번역으로 보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작품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프리카에서 탄광 사업으로 재미를 본 영국인 리차드 해니. 그는 사교나 파티로 일관하는 따분한 런던 생활이 지겹기만 하다. 일주일 동안 기다려봐도 별 볼일이 없으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한 해니에게 낯선 미국인 기자가 접근한다. 기자는 블랙스톤이라는 비밀 조직이 세계 정계를 막후에서 조종하며, 그들이 영국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들려준다. 해니는 이 기자가 제대로 미쳤구나, 생각하며 무시하지만 며칠후 기자는 해니의 집에서 살해당하고 블랙스톤은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는 기자 살해의 누명을 벗고, 블랙스톤의 암살자들을 피하면서 영국 정부에 이 음모를 알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1915년에 첫 출간된 작품이지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오늘날 무척 유행하는 스릴러의 A부터 Z까지 모든 게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모험을 꿈꾸는 쾌활한 신사, 끝없는 도피와 추격, 납치와 탈출, 비밀 조직의 음모, 최후의 역전...여전히 셜록 홈스풍의 명탐정 추리소설이 인기 있던 그 시대에 이런 별종이 난데없이 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출간 당시 세계를 뒤흔들었던 1차대전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돈이나 명예를 위해 이웃 한두 명을 죽이는 시대가 아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미증유의 전쟁을 목도한 작가 존 버컨에게 기존의 추리소설이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오락물에 불과했을 터. 존 버컨은 암울한 시대에 국제 음모를 밝혀내는 한 사나이의 모험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데 성공했으며, 주인공 리처드 해니는 제임스 본드, 리차드 킴블(<도망자>), 제이슨 본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무래도 지금 보기엔 지나치게 고색창연하고 전개도 느리지만, 역사적 가치로 판단할 작품이다.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 -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로 나오키상, <아카쿠치바 전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쿠라바 가즈키는 라이트노벨에서 출발해 오늘의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인 작가다. 라이트노벨 초기작인 <고식> 시리즈가 가상의 유럽 왕국에서 펼쳐지는 소년소녀의 청소년용 모험담에 가깝다면,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는 비록 라이트노벨이지만 작가의 개성과 주제의식이 오롯해 오늘날 일류 작가로 부상한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형이 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등교거부에 히키코모리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여중생 나기사는 삶이 너무도 힘겹다. 그나마 엄마가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적은 돈을 책이나 애니메이션 DVD 등으로 펑펑 써버리는 오빠는 한마디로 집안의 원수. 나기사가 보기에 오빠가 심취해 있는 가상의 세계는 삶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무엇도 꿰뚫을 수 없는) '사탕과자 탄환'에 불과하다. 나기사는 얼른 성장해 돈을 벌어 현재의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실탄'을 얻고 싶어한다. 이 와중에 같은 반으로 전학온 유명 가수의 딸 모쿠즈는 자신을 인어라 생각하며 역시나 가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나기사가 보기엔 모쿠즈 또한 사탕과자 탄환. 나기사는 모쿠즈와 전혀 가까워질 마음이 없지만 가정 학대를 당하는 모쿠즈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를 도울 결심을 한다. 어울리지 않는 두 소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며 범죄와 맞닥뜨리는다는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과 거의 흡사한 내용이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주인공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현실적, 사회적 제약이 너무도 많다. 그들을 잡아끄는 현재의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어둡고 슬픈 이야기.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악몽 속에서 밤새도록 헤매는 기분이 소름 끼치도록 오래 남았다.

 

 



       
<살인방관자의 심리 - 요코야마 히데오>


일본 추리소설계 보증수표 중 한 명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2003년 단편집. 원제는 수록작 중 한 편의 제목을 그대로 담은 '진상'이다. 추리소설을 추리소설답게 만들어주는 트릭이나 반전도 빼어나지만 결말에 항상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그의 단편들은 무엇 하나 뺄 것 없이 모조리 뛰어나다. 기자 출신이라는 경력에 걸맞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소재로 취하는 그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두 마쓰모토 세이초의 직계 제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실력가. 먼 훗날 마쓰모토 세이초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들을 확률이 가장 높은 작가라 생각한다(그러려면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써야겠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한 사건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과연 다섯 편의 수록작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며 둔중한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감동과 씁쓸함이 가슴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지방의 실권을 좌지우지하는 면장 선거에 출마한 주인공이 선거라는 지옥을 겪으며 스스로 파멸해가는 '마음의 지옥', 명예퇴직을 당하고 삶의 희망을 잃은 중년남자가 살인 용의자의 목격자가 된다는 '살생부'를 꼭 추천하고 싶다. 대표작이라 불리는 2000년 단편집 <동기>만은 못하지만 어느 작품 하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단편들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역량이 그저 부러울 따름.

 






<고백 - 미나토 가나에>

 

2008년 일본 서점계를 휩쓸었던 작품. 판매만큼이나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받아 신인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 한 편으로 그야말로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어느 중학교에서 벌어진 몇 건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정말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인가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연작 단편집으로, 작가가 원래 공모전에 출품해 호평받은 첫 번째 단편 '성직자'의 뒷이야기를 이어서 쓴 것이라 한다. 비록 철없는 장난이었다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딸을 잃은 여교사가 범인인 중학생 제자들에게 사적인 응징을 가한다는 강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 국내에서는 찬반 양론도 제법 일고 있는 것 같다. 또 아무리 머리가 좋기로소니 중학생들이 학교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의 폭탄을 만든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하는 리얼리티 부족을 지적하는 독자도 있는 걸로 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소년범 문제를 지적하는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일종의 우화라 생각한다. 차디찬 복수가 더 끔찍한 복수를 낳는 끝없는 악순환의 연쇄와 '당신이 지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옥 역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식의, 한 번 범죄에 발을 담구면 그 범죄의 동기가 아무리 고상해도 결국 똑같은 범죄자에 다름 아니라는 걸 말하는 그런 우화가 아닐까. 우화니까 어느 정도 리얼리티의 부족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내 눈에는 응징자인 여교사가 아무리 본인의 행동을 포장하려 해도 사실은 그녀 역시 자신의 비뚤어진 제자들과 똑같이 악의로 충만한 괴물로만 보였다. 이런 복수와 악의로 가득찬 암흑 세계의 한 폭 지옥도를 기리노 나쓰오 식으로 그려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제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떠나서 일단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어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적 관점으로만 봐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언제나 차돌처럼 단단한 요코야마 히데오의 뛰어난 단편집이지만, 자주 봐왔던 스타일이고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들이 뛰어나다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서 더 논쟁적인 구석이 있는 <고백>을 이 달의 미스터리로 추천한다. 이런 논쟁이 더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추리소설 애호 풍토가 훨씬 조성될 테니까...

 

 

 

2009년 10월의 미스터리: <고백 - 미나토 가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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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일본 다카라지마 사에서 나오는 잡지로 전년도에 출간된 자국(일본)과 해외의 베스트 미스터리 10을 정하는 일종의 랭킹 매거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창간 이래, 2009년까지 20년 넘게 계속된 이 랭킹은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가운데 무엇이 읽을 만한가를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출간작 및 절판작, 출간 예정작은 제가 아는 대로 표기합니다. 이번에는 순위에 관한 제 나름의 코멘트도 짧게 넣어보겠습니다.


●1988年 (창간)

1. 전설없는 땅 / 후나도 요이치 (출간)
2.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하라 료 (출간)
3. 황혼의 베를린 / 렌죠 미키히코
4. 베를린 비행 지령 / 사사키 조
5.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6. 그리고 문이 닫혔다 / 오카지마 후타리
7.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절판)
8. 밀폐 교실 / 노리츠키 린타로
9. 방황하는 뇌수 / 오사카 고
9. 더블 스틸 / 후지타 요시나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원년. 무려 20여 년 전이라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1위의 <전설없는 땅>이나 2위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 순위에 불만은 없다. 미타라이 시리즈 <이방의 기사>는 조만간 출간될 예정. 3, 4위가 다 제목에 베를린이 들어가 있어 흥미롭다. 소개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 꼭 보고 싶은 건 8위를 차지한 <밀폐 교실>!

●1989年  

1. 내가 죽인 소녀 / 하라 료 (출간)
2. 하늘 나는 말 / 기타무라 카오루
3. 기발한 생각, 하늘을 움직인다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4. 에토로후발 긴급전 / 사사키 조 (출간)
5. 클라인의 항아리 / 오카지마 후타리
6. 남자들은 북쪽으로 / 가자키 잇키
6. 깊은 밤, 다시 / 시미즈 타츠오
8.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출간)
9.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 / 류 케이이치로
10. 도착의 론도 / 오리하라 이치 (출간)

4편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1위 <내가 죽인 소녀>는 일본 하드보일드에서 손꼽히는 명작.  8위의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은 비록 하위권이지만 갈수록 평가가 높아져 지금은 일본 미스터리 사상 최고작이라는 영광스런 평가까지 받고 있다. 당시에 8위로 뽑은 사람들은 지금 약간 부끄러울 듯. 일상 미스터리의 효시로 알려진 2위의 <하늘 나는 말>이 가장 보고 싶다.  

●1991年 (1990년 작품)

1.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출간)
2. 밤의 매미 / 기타무라 카오루
3. 불길 흐르는 저 쪽 / 후나도 요이치
4. 아득한 신들의 자리 / 타니 코우슈
5. 천사들의 탐정 / 하라 료
6. 자, 돌아가자 / 시미즈 타츠오
7.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 아야쓰지 유키토 (출간)
8. 돌아오지 않는 사하라 / 후지타 요시나가
9.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출간)
10. 어두운 언덕의 식인 나무 / 시마다 소지

총3편이 소개되었다. 경찰소설, 하드보일드의 쾌작 <신주쿠 상어>가 1위를 차지했는데, 유독 일본에서 평가가 아주 높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7위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은 직접 편집한 책이라 괜히 반갑다. <밤의 매미>와 <천사들의 탐정>이 나왔으면 좋겠다.

●1992年 (1991년 작품)

1. 지나가는 길의 마을 / 시미즈 다쓰오
2. 독 원숭이 - 신주쿠 상어 (2) / 오사와 아리마사 (절판)
3. 다크・콜 / 이나미 이츠라
4. 용은 잠들다 / 미야베 미유키 (출간)
5. 수정 피라미드 / 시마다 소지
6.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출간)
7. 비스듬히 비친 그림자 아득한 나라 / 오사카 고
8. 신의 불 / 다카무라 카오루
9. 황금을 안고 튀어라 / 다카무라 카오루 (출간)
10. 우로보로스의 위서 / 다케모토 켄지 (출간 예정)

1991년 작품도 역시 3편이 출간. 1위 <지나가는 길의 마을>의 시미즈 다쓰오의 작품은 국내에 딱 한 편이 소개되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 어떤 작가인지 모르겠다. 2위를 차지한 <독 원숭이(신주쿠 상어2)>는 액션 하드보일드의 명편으로 박진감이 하늘을 꿰뚫을 지경. 절판된 게 너무 아쉽다. <다크 콜>의 이나미 이츠라도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데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어 아쉽다. <다크 콜> 내줄 출판사 어디 없나요?  

●1993年 (1992년 작품)

1. 모래의 크로니클 / 후나도 요이치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출간)
3. 철학자의 밀실 / 가사이 기요시
4. 블루스 / 하나무라 만게츠
5. 리비에라를 쏴라 / 다카무라 카오루
6. 쌍두의 악마 / 아리스가와 아리스 (출간 예정)
6. 누군가가 안에 있다・・・ / 이노우에 유메히토
8. 키드 피스톨즈의 모독 / 야마구치 마사야
9. 세번째 해협 / 하하키기 호세이
10. 내 손에 권총을 / 다카무라 카오루

이 해에는 웬일인지 <화차> 한 편만 출간되었군. 그러나 <화차>는 카드 대출을 소재로 오늘날 일본 사회의 명암을 파헤치는 현대적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이니 너무 아쉬워 하지 마시길. 모험소설의 제왕 후나도 요이치의 1위작 <모래의 크로니클>,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섭섭한 가사이 기요시의 <철학자의 밀실>을 보고 싶다. '학생 아리스' 제3작이자 본격 미스터리의 수작으로 평가가 높은 <쌍두의 악마>는 조만간 나올 예정.

●1994年 (1993년 작품)

1.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카오루 (재출간 예정)
2. 키드 피스톨즈의 망상 / 야마구치 마사야
3. 센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츠라
4. B・D・T [규칙의 거리] / 오사와 아리마사
5.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출간 예정)
6. 마법 비행 / 카노 토모코
6. 겨울의 오페라 / 기타무라 카오루
8. 환상의 제전 / 오사카 고
9. 이방인들의 관 / 오리하라 이치
10. 진원 / 신포 유이치

으헉. 구할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 하지만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 다카무라 카오루의 대작 <마크스의 산>이 조만간 재출간된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미스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역작이니 무조건 읽으시길. 그밖에 기상천외한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도 곧 출간된다니 기쁘기 한량없다.  

●1995年 (1994년 작품)

1. 미스터리즈 / 야마구치 마사야
2. 스톡홀름의 밀사 / 사사키 조
3. 석양에 빛나는 감 / 다카무라 카오루 (재출간 예정)
4. 웃는 야마자키 / 하나무라 만게츠
5. 사냥개 탐정 / 이나미 이츠라
5. 남자는 깃발 / 이나미 이츠라
7. 프리즌 호텔 가을 / 아사다 지로 (출간)
7.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출간)
9. 유성들의 연회 / 시라카와 토오루
10. 2의 비극 / 노리츠키 린타로

2권 소개. <프리즌 호텔 가을> 같은 경우 추리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공동 7위라니. 일본은 웬만하면 다 미스터리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할지어다. 교고쿠도가 첫 등장하는 <우부메의 여름>도 기묘한 맛이 살아 있는 골 때리는 미스터리다.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야마구치 마사야의 <미스터리즈>.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때는 박하게 평가하더니 이번엔 알아서 조심한 걸까? 2위 <스톡홀름의 밀사>는 <에토로후발 긴급전>에 이어지는 사사키 조 '전쟁 3부작'의 마지막 작품.

●1996年 (1995년 작품)

1. 화이트 아웃 / 신포 유이치 (출간)
2. 강철의 기사 / 후지타 요시나가
3. 에조치 별건 / 후나도 요이치
4. 망량의 상자 / 코고쿠 나츠히코 (출간)
5. 안녕, 긴 잠이여 / 하라 료
6.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 후지와라 이오리 (절판)
7. 스킵 / 기타무라 카오루 (출간)
8. 솔리톤의 악마 / 우메하라 카츠후미
9. 광골의 꿈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10. 패러사이트 이브 / 세나 히데아키 (절판)
10. 천사의 송곳니 / 오사와 아리마사

4편을 우리말로 만나볼 수 있다. 1위 <화이트 아웃>은 영화가 이미지를 버려놨지만, 책은 엄청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실거리는 모험물의 걸작이다. 그러나 4위에 랭크된 <망량의 상자>만은 못한 작품인 듯한데, 순위가 좀 높은 듯. 9위 <광골의 꿈>까지 교고쿠 나츠히코 작품이라 당시 불었던 교고쿠 신드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두꺼운 책들을 1년에 2권 썼다니 거참...

●1997年 (1996년 작품)

1. 불야성 / 하세 세이슈 (절판)
2. 탈취 / 신포 유이치 (출간 예정)
3. 명탐정의 규칙 / 히가시노 게이고
4. 가모우 저택 사건 / 미야베 미유키 (출간)
5. 바다는 말라 있었다 / 시라카와 토오루
6. 창궁의 묘성 / 아사다 지로 (출간)
7. 텟소의 우리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예정)
8. 가족 사냥 / 텐도 아라타 (출간)
9. 눈반딧불이 / 오사와 아리마사
10. 인격 전이 살인 / 니시자와 야스히코

3편을 구할 수 있다. 1위 <불야성>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한 권인데, 현재는 구할 수가 없다.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불야성>의 세계는 모든 남자들이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싶다. 6위 <창궁의 묘성>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대를 그리는 역사소설인데 왜 미스터리 랭킹에...읽다가 곁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를 정도로 재미난 소설이니 꼭 읽어보시라.  

●1998年 (1997년 작품)

1. 아웃 / 기리노 나츠오 (출간)
2. 검은 집 / 기시 유스케 (출간)
3. 죽음의 샘 / 미나가와 히로코 (출간)
4. 무당거미의 이유 / 쿄고쿠 나츠히코
5. 진혼가 (레퀴엠) - 불야성2 / 하세 세이슈
6. 신들의 산봉우리 / 유메바쿠라 바쿠 (출간 예정)
7. 웃는 이에몬 / 쿄고쿠 나츠히쿄
8. 도망 / 하키기 호세이
9.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온다 리쿠 (출간)
10. 빙무 - 신주쿠 상어 (6) / 오사와 아리마사

4권을 만날 수 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이야 뭐 말하면 입 아픈 걸작이고, 2위 <검은 집>은 책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호러소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든 적이 있어 많이들 기억하실 듯. 3위 <죽음의 샘>이 또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읽지 못했다. 올해 출간된 따끈따끈한 새책이니 많은 관심 부탁. 5위를 차지한 <진혼가(불야성2)>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가 고른 과거 10년 베스트 10 (1998년 10주년 기념)

1.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출간)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출간)
3. 다크・콜 / 이나미 이츠라
4. 내가 죽인 소녀 / 하라 료 (출간)
5. 망량의 상자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6.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 / 류 케이이치로
7. 하늘 나는 말 / 기타무라 카오루
7. 철학자의 밀실 / 가사이 기요시
9.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10.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출간)

과거 베스트 10에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 1위다. 출간된 해는 8위 줬으면서ㅎㅎ 이중 읽어본 작품들에서 베스트를 꼽으라면 역시 <화차>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1999年 (1998년 작품)


1. 레이디 조커 / 다카무라 카오루
2. 불타는 땅의 끝에 / 오사카 고
3. 이유 / 미야베 미유키 (출간)
4. 시귀 / 오노 후유미 (절판)
5. 천사의 속삭임 / 기시 유스케 (출간)
6. 환상의 여자 / 카노 료이치
7. 그랜드 미스터리 / 오쿠이즈미 히카루
8. 야마타이코쿠는 어디입니까? / 쿠지라 토이치로
9. 비밀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9. 인랑성의 공포 제4부 완결편 / 니카이도 레이토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히가시노 게이고 비교적 한국 독서계에 뿌리를 내린 세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5위 <천사의 속삭임>은 호러에 가깝고, 9위 <비밀>도 판타지적인 설정이 강하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요즘은 뜸하지만 이 리스트에서 썼다 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가 오사카 고, 오사와 아리마사, 후나도 요이치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전부 남성적인 필치의 하드보일드 작가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순위 선정하는 사람들이 남자가 많아서 그런가? 1위에 오른 <레이디 조커>는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으로 이어지는 '고다 형사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역시 죽기 전에 보는 게 소원이다.  

●2000年 (1999년 작품)

1. 영원의 아이 / 텐도 아라타 (재출간 예정)
2. 백야행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3. 망국의 이지스 / 후쿠이 하루토시
4. 배틀 로얄 / 타카미 코슌 (절판)
5. 부드러운 볼 / 기리노 나츠오 (재출간 예정)
6. 보더 라인 / 신포 유이치
7. 최악 / 오쿠타 히데오 (출간)
8. 반상의 적 / 기타무라 카오루
9. 가위남 / 슈노 마사유키 (출간)
10. MISSING / 혼다 타카요시 (출간)

4권 출간. 1위 <영원의 아이>는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이고, <부드러운 볼>이나 <배틀 로얄> <백야행>을 더 높이 평가한다. 2위 <백야행>은 손예진 주연의 영화로 조만간 개봉 예정. 2000년대 들어 일본 추리소설계 제왕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히트작이다. 하위권의 두 작품 <가위남>과 <미싱>은 왜 이 정도밖에 못 올랐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나니 꼭 읽어보시길.

●2001年 (2000년 작품)

1. 기이한 능력의 탐정 소가 카죠 전집 / 아와사카 쓰마오
2. 동기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3. 독수리의 밤 / 오사카 고
4. 올팩트그램 / 이노우에 유메히토
5. 시조새 기(記) / 이지마 카즈이치
6. 코끼리와 귀울음  / 온다 리쿠 (출간)
6. 무지개 골짜기의 5월 / 후네도 요이치 (출간)
8. 의존 / 니시자와 야스히코
9. 증거 A / 타지마 토시유키
10. 강의 깊이는 / 후쿠이 하루토시  

3권 출간. 1위에 등극한 아와사카 쓰마오는 197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작년에 별세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2위 <동기>는 본인이 미래의 거장(아니, 이미 거장이다)으로 꼽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명단편집으로 그는 먼 훗날 마쓰모토 세이초 못지않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써야 하겠지만). 공동 6위 <코끼리의 귀울음>과 <무지개 골짜기의 5월> 모두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수준은 아니다.

●2002年 (2001년 작품)

1.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출간)
2. 방해자 / 오쿠다 히데오 (출간)
3. 미스터리 오페라 / 야마다 마사키 (출간 예정)
4. 스팀 타이거의 죽음의 질주 / 카스미 류이치
5. 초・살인 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6. 어둠 속 안내인 / 오사와 아리마사
7. 텐구미사키 살인 사건 / 야마다 후타로
8. 13계단 / 타카노 카즈아키 (출간)
8. 연기, 흙, 혹은 먹이 / 마이조 오타로 (출간)
10. 파트너를 조심하라 / 오사카 고

4편 출간. 1위와 2위가 바뀌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도 대단하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가 더 압도적이고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시덥잖은 중소기업의 방화 사건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묘사하는 <방해자>는 모든 페이지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공동 8위를 차지한 <13계단>과 <연기, 흙, 혹은 먹이>. 국내에서 꽤 인기를 모은 <13계단>도 상당히 잘 썼지만, 마이조 오타로의 현기증 날 정도로 도발적이고 강렬한 <연기, 흙, 혹은 먹이>를 더 좋아한다.  

●2003年 (2002년 작품)

1. 사라진 이틀 (*한오치)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2. GOTH / 오츠 이치 (출간)
3. 기이한 만남 / 야마구치 마사야
4. 모래의 사냥꾼 / 오사와 아리마사
5. 하얼빈·카페 / 우치우미 분조
6. 열여덟의 여름 / 미츠하라 유리 (출간)
7. 인간 동물원 / 렌죠 미키히코
8. 론도 / 카라사와 히토시
8. 그랑기뇰 성 / 아시베 타쿠
10. 오이디푸스 증후군 / 카사이 키요시  

3편 출간. 웬만해서는 남의 순위 같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만, <사라진 이틀>은 1위감이 아니다.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알지만, 억지 감동이 너무 심한 작품이라 읽고 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2위에 그친 <고쓰>가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고쓰>는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원...6위 <열여덟의 여름>은 렌조 미키히코의 걸작 단편집 <연문>의 분위기나 작법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참고한 듯해 좋아하지 않는다.  

●2004年 (2003년 작품)

1.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출간)
2. 종전의 로렐라이 / 후쿠이 하루토시
3. 중력 삐에로 / 이사카 코타로 (출간)
4. 제3의 시효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5. 그로테스크 / 키리노 나츠오 (출간)
6.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코타로 (출간)
7. 클라이머즈 하이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8. 달의 문 / 이시모치 아사미 (출간)
9. 별똥별과 놀던 무렵 / 렌죠 미키히코
10. 와일드 소울 / 카키네 료스케 (출간)

이 해에는 무슨 일이...8편이나 출간되었다. 깜찍한 서술 트릭이 인상 깊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1위다. 처음 만나본 서술 트릭이라 얼마나 무릎을 치며 웃었는지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3위 <중력 삐에로>는 이사카 코타로의 방방 뛰는 재기가 느껴지고, 4위 <제3의 시효>도 요코야마 히데오 경찰소설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알게 해주는 수작. 5위 <그로테스크>는 요사스런 분위기와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보고 나서 한 달간은 찝찝해지는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다. 최근 출간된 8위 <달의 문>도 두 손가락을 전부 치켜들 순 없지만 볼 만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많아 괜히 반갑군.

●2005年 (2004년 작품)

1. 방금 베어낸 목에게 물어봐 / 노리츠키 린타로 (출간 예정)
2.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코타로 (출간)
3. 아마기 하지메의 밀실 범죄학 과정 / 아마기 하지메
4. THE WRONG GODDBYE / 하야기 토시히코
5. 은륜의 패자 / 사이토 쥰
6. 유리 망치 / 기시 유스케 (출간)
7. 암흑관의 살인 / 아야쓰지 유키토 (출간)
8. 범인에게 고한다 / 시즈쿠이 슈스케 (출간)
9.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10. 홍루몽 살인사건 / 아시베 타쿠 (출간)

6권 출간. 1위에 오른 노리즈키 린타로 작품은 바로 다음 달에 만나볼 수 있으니 패스. 6위와 7위, <유리 망치>와 <암흑관의 살인>이 죄다 아쉬운 구석들이 많은 작품들이라 2004년은 좀 흉작이었던 것 같다. 고전 <홍루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10위 <홍루몽 살인사건>은 즐거웠으나 패러디에 가까워 이 책 자체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차라리 8위 <범인에게 고한다>가 시원한 맛과 더불어 집중력이 있었던 것 같다.

●2006年 (2005년 작품)

1.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2.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출간)
3. 진도0 / 요코야마 히데오
4. 어리석은 놈은 죽어야 한다 / 하라 료
5. 신 게임 / 마야 유타카
6. 시리우스의 길 / 후지와라 이오리
7. 벨카, 짖지 않는가 / 후루카와 히데오 (출간)
8. 개는 어디야 / 요네자와 호노부
8. 시마자키 경부의 알리바이 사건부 / 아마기 하지메
10. 노래하는 경관 / 사사키 죠
10. 마지막 소원 / 미츠하라 유리  

3권 출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슈퍼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이 1위다. 게이고 본인으로서는 나오키 상도 타고, 영화화 되면서 판권 수익도 쏠쏠하게 벌어준 잊지 못할 작품이 될 터. 2위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하게 한 천재가 살인 사건을 은폐하면 다른 천재가 그걸 파헤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솔직히 말해 1, 2위 작품 둘다 아쉬운 구석이 제법 있다.  

●2007年 (2006년 작품)

1.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 (출간)
2. 제복수사 / 사사키 조
3. 섀도우 / 미치오 슈스케 (출간)
4. 낭화 - 신주쿠 상어 (9) - 오사와 아리마사
5. 총과 초콜릿 / 오츠 이치
6. 이름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출간)
7. 제물의 야회 / 가노 료이치 (출간)
8. 괴도 그리핀 절체절명 / 노리즈키 린타로
9.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10.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출간)
10. 데드 라인 / 타데쿠라 케이스케

6권 출간. 내가 진짜 웬만하면 남의 순위 가지고 시비 안 걸지만 2007년이 최악인 것 같다. 1위를 차지한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과대평가 중에서도 최고를 달린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은 아니고, 엽기 잔혹동화에 가까운데 뭐가 뛰어난지 아무리 봐도 도통 모르겠다. 작품의 수위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이 책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그보다는 뒤가 뻔히 짐작되는 기계적인 진행과 평범한 상상력이 문제다. 이 작가에게서는 전혀 반짝이는 걸 찾을 수 없다. 미치오 슈스케의 3위 <섀도우>보다는 최근 읽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더 좋은 작품인 듯하고, <제물의 야회>도 그저 그랬다. 10위에 턱걸이한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을 가장 재미나게 읽은 내가 이상한가...

●2008年 (2007년 작품)

1. 경관의 피 / 사사키 조 (출간)
2. 아카쿠치바 전설 / 사쿠라바 가즈키 (출간)
3. 여왕국의 성 / 아리스가와 아리스
4. 과단 / 곤노 빈
5. 잘린 머리와 같은 재앙 / 미쓰다 신조 (출간 예정)
6. 떠나간 집 / 야마자와 하루오
7. 새크리파이스 / 곤도 후미에 (출간)
8. 낙원 / 미야베 미유키 (출간)
9. 석양은 돌아온다 / 가스미 류이치
10.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출간)
10. X교 부근 / 高城 高

5권 출간. 1위 <경관의 피>는 장쾌하게 시작한 데 비해 뒤로 갈수록 흥이 떨어진다. 1940년대부터 현대까지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일본인들에게 먹혔을 뿐, 우리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은 아니다. 추리소설은 아니라지만 만장일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2위 <아카쿠치바 전설>은 아직 못 봤다. 어서 읽어야 할 텐데...3위에 오른 '학생 아리스 시리즈' 제4작 <여왕국의 성>과 4위 <과단>이 가장 궁금하다. <과단>의 전편 <은폐수사>는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7위 <새크리파이스>와 공동 10위 중 한 작품인 <인사이트 밀>도 재미 보장한다.

●2009年 (2008년 작품)

1. 골든 슬럼버 / 이사카 고타로 (출간)
2. 조커 게임 / 야나기 코지
3. 완전연애 / 마키 사츠지
4. 고백 / 미나토 가나에 (출간)
5. 신세계에서 / 기시 유스케 (출간)
6. 까마귀의 엄지손가락 / 미치오 슈스케
7. 흑백합 / 다지마 도시유키 (출간 예정)
8. 산마와 같이 비웃는 것 / 미쓰다 신조
9. 디스코 탐정 수요일 / 마이조 오타로
10. 래트맨 / 미치오 슈스케

3권 출간. 작년에 평이 대대적으로 좋았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가 1위다. 아직 안 읽은 게 원통할 뿐이다. 4위 <고백>이 최근 국내 서점가에서 돌풍을 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탁월한 재미를 높이 산다. 메시지나 사회파적 장치 운운하면서 굳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 의견에는 반대다. 철저한 장르소설로서 '단지' 재미만 있었다. 3위 <완전 연애>가 꼭 보고 싶고, 은근히 편애하는 마이조 오타로의 작품도 마찬가지. 두 작품이나 랭크시킨 미치오 슈스케도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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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1-2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주쿠 상어'를 작년말 일미문 모임에 책나누기 하러 가져갔는데, 표지가 그래서인지, 아무도 안 가져가더라는;; 마지막에 떨이로 누가 마지못해 가져갔지 말입니다. ㅎ

jedai2000 2009-11-2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새로 나온 책 말씀이세요? 아니면 구판? 둘다 표지가 선뜻 손에 잡기에는 초큼 그렇죠ㅎㅎ 비록 떨이로 가져가셨지만 분명 재미있게 보셨을 겁니다^^

카스피 2009-11-21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내요^^ 감사합니다.

jedai2000 2009-11-2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님...조만간 해외편도 올릴 거랍니다^^
 

오늘 날짜는 10월 30일인데 9월달 걸 쓰고 있네요. 저번 달의 미스터리로 제목을 바꿔야 할까요-_-;;

  




 

 

 

 

 

 <몽키스 레인코트 - 로버트 크레이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사립탐정 콤비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유쾌한 재담꾼 엘비스의 자잘한 유머와 과묵하지만 속정 깊은 조의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이 어우러지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실패한 할리우드 에이전트 남편의 실종을 조사해달라는 아내의 평범한 의뢰의 배후에 지하 세계의 거물이 있다는 플롯은 닳고 닳은 감이 있을 정도로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1987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미국 미스터리 스릴러들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주인공이 베트남전 경험자가 많고, 가라테나 태극권, 태권도 등 동양무술을 제법 할 줄 안다는 것도 그렇다. 이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당시의 탐정은 범인을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부 적들을 직접 때려눕히는 액션의 대가들이다. 폭력적인 탐정을 등장시켜 큰 성공을 거둔 미키 스필레인을 벤치마킹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영화판에서 거액의 판권을 얻어내기 위해서? 흥행 영화는 아무래도 액션을 중시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몽키스 레인코트>가 <람보>풍의 무뇌아 액션 스릴러에 그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쎌 웨폰> 1편을 떠올리게 하는 화끈한 액션이 있지만 탐정 엘비스 콜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사건을 술술 풀어가는 재미도 충분하다. 볼 만한 작품.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쓰하라 야스미>

사립 루피너스 학원에 재학중인 4명의 남녀 학생이 난해한 살인사건을 잇달아 해결하는 <루피너스 탐정단의 당혹>의 속편이다. 전편을 처음 읽어 내려갈 때 등장인물의 면면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마치 순정만화나 소녀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갈수록 아, 이거 장난이 아닌데 했다. 생각보다 기발한 트릭과 독특한 맛이 있는 뛰어난 단편 추리소설집이었던 것이다. 비범한 추리력으로 경찰 언니를 도와(대부분 자의는 아니지만) 많은 사건을 해결한 아오우 사이코, 짧은 머리에 선머슴 같은 성격의 키리에, 요즘 말로 하면 된장녀라 할 만한 미소녀 마야, 그리고 아오우가 짝사랑하는 화석 마니아 샌님 시지마가 루피너스 탐정단으로 뭉쳐 3개의 사건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는 건 무척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 같은 독자가 많아서일까. 작가는 전편 출간 이후 10년도 더 지난 2007년에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라는 속편을 써냈다. 놀랍게도 시작부터 루피너스 탐정단의 멤버 한 명이 사망한다. 졸업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던 탐정단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모여, 그가 남긴 마지막 비밀을 풀기로 한다. 모두 네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전편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만 영원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한 루피너스 탐정단이 모두 성인이 되어 느끼는 소회, 그리고 그중 한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등이 아프게 그려져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루피너스 탐정단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숫제 펑펑 울었다. 루피너스 시리즈에서는 순정만화 같은 작풍을 선보였지만 실제로 작가 쓰하라 야스미는 징그러운 남자고, 특유의 탐미주의 스타일이 인상 깊은 환상소설, 호러소설 계열의 1인자다. 루피너스 시리즈도 꼭 만나보시길.
 



 

 

 

 

 

 

<항설백물어 - 교고쿠 나츠히코>

'교고쿠도 시리즈'로 유명한 교고쿠 나츠히코의 연작 단편집이다. <항설백물어>라는 다소 어려운 원제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풀어보면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고 한다. 시리즈화를 즐기는 작가답게 <항설백물어>도 <속 항설백물어>, <후 항설백물어>라는 속편들이 나왔고, 이중 <후 항설백물어>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교고쿠 나츠히코는 일본 전통 요괴를 소재로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무수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다만 이 작품의 주제는 '이 세상에 진정 이상한 일은 없다'는 것이기에, 진짜 요괴는 나오지 않고 요괴보다 더 무섭고 어두운 인간의 마음에 포커스를 맞췄다. 스님으로 둔갑해 50년 동안 사람을 속인 여우, 주인에게 잡아먹히고 매일같이 집을 찾는 말의 영혼 등 예부터 일본에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인 맛을 가미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기묘한 사건의 뒤에 늘 에도시대판 해결사들이 숨어 있고, 그들이 가짜 요괴를 동원해 진짜 악인을 파멸시킨다는 대강의 내용이 대동소이해 읽다 보면 금방 질리는 단점이 있다. 적어도 교고쿠 나츠히코 풍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수상한 사람들 - 히가시노 게이고>

매달 쏟아져 나오지만 안 보면 왠지 섭섭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게이고는 25년 경력의 작가생활 동안 거의 70편에 달하는 소설을 쓴 책공장이라 작품의 편차가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로는 어느 정도 진지한 작가 이미지도 굳히고 퀄리티 관리도 좀 하는 모양인지, 특별히 수준 미달의 작품은 없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의 작풍이 완성되기 전인 초년병 시절의 작품들은 이미 게이고의 손을 떠난 화살. 그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이다. 일본처럼 그의 작품을 데뷔작부터 순차적으로 감상한 경우라면, 이 작가가 점점 성장하는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겠지만, 1980년대부터 2009년까지의 작품이 순서없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실정은 온전한 게이고 읽기에 약간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초기에 쓴 몇몇 졸작을 읽고 현재의 작품까지 무시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작가는 언제나 가장 최근에 쓴 소설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예전에 좋은 작품을 썼다고 지금의 형편없는 작품도 옹호해줘서는 곤란하듯이, 과거에 쓴 몇몇 졸작 때문에 더 발전한 현재의 수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지만 <수상한 사람들>은 초기의 형편없는 작품군에 들어간다. 

 


 

 

 

 

 

 

 

<12인 12색 - 신재형 外>

함부로 평가하기 난감한 한국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기획에 참여해 한국 추리소설의 질적 저하에 기여한 전과가 있기에 특히 그렇다.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참여한 단편집의 판매 수치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 우리 독자들은 여전히 우리 작가가 쓴 추리소설을 기다리고 있구나, 수준 높은 작품만 나오면 언제든 책을 사줄 용의가 있구나 하는 기분 좋은 확신을 얻었다. 감히 <12인 12색>의 작가들도 이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기억하고 더 정진해 좋은 작품으로 두루 사랑받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굳이 말해 이 작품집에서 읽기 괜찮았던 작품들은, '마지막 장난', '안락사', '글월비자', '반지하', '의식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도를 꼽고 싶다. 그렇지 않은 작품들까지 거론해 열심히 노력한 작가분들을 신경질나게 하는 건 원치 않는다. '마지막 장난'은 장난에 목숨거는 세 대학생이 끔찍한 결과에 맞닥뜨린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운데 비해 세세한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점(잠겨 있을 게 분명한 시체 보관실과 별장가의 빈집은 어떻게 들어갔는가 하는 등의 설명이 없다)에서 머리로만 쓴 느낌을 받았고, '안락사'는 무난하지만 쉽게 짐작 가능한 결말이 아쉽다. '글월비자'의 산뜻한 결말은 높이 평가할 만한데,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단순하다. '반지하'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잘쓴 환상소설에 가깝고, 알프레드 베스터의 초능력 SF를 연상케 하는 '의식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을 좀더 다듬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자기 머리도 못 깎으면서 남의 머리를 지나치게 지적한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다. 참여한 모든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하며 이만 마무리하는 수밖에.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가가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뛰어난 추리력 못지않게 인간적인 성품이 매력적인 가가 형사 시리즈는 현재까지 총 7편이 나왔고, 올해 국내에서도 모두 완간되어 추리소설 팬에겐 큰 기쁨이 되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대학 졸업반인 가가 교이치로가 단짝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졸업>부터,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민완 형사로 활약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최신작 <붉은 손가락>까지 작가와 함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게이고의 대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 코넌 도일에게 홈스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말이다.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타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듬해 내놓은 작품이니 게이고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어느 정도는 걱정했을 텐데, 전작보다 훨씬 뛰어난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기에 괜한 걱정에 불과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초기 스타일인 학원물+물리트릭의 공식을 아예 극한까지 밀어붙여 대성공을 이룬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는 잠긴 문의 열쇠 트릭과 '설월화'라는 복잡한 일본 다도의 법칙을 이용한 독살 트릭 두 가지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첨단 신소재에 대한 지식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알 길이 없는데다, 좀 황당하다. 그러나 20장 가까운 설명 그림까지 동원하는 두 번째 독살 트릭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냈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니 꼭 직접 확인해보시길. 트릭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수많은 그림을 비롯해 상황 설명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꼼꼼하게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코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남겨진 자들 - 제프리 디버>

스릴러의 장인, 제프리 디버가 오랜만에 시리즈 외의 작품으로 돌아왔다. 최근 몇 년 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법과학자 링컨 라임 시리즈와, 용의자가 무심코 한 동작을 읽어내 그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채는 심리분석 전문가 캐서린 댄스 시리즈만을 번갈아 집필하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시리즈물은 매력적인 주인공을 계속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를 위해 주인공이 어떠한 위기에 빠져도 결코 죽을 리 없으니 그만큼 긴장감이 덜하다는 단점도 아울러 있는 것 같다. 디버도 이 함정을 생각하고 간만에 새로운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써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한 게 아닐까. 끝간 데 없이 광활한 숲이 계속되는 위스콘신의 별장지대. 어느 부부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의 별장을 찾는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총을 든 두 명의 킬러가 별장에 찾아왔고 부부는 킬러들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러나 부부는 죽기 전에 911에 신고 전화를 걸어둔 상태. 확인 차원에서 별장을 방문한 지역의 여경 브린은 끔찍한 살해 현장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킬러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본 브린을 살려둘 수 없었으니, 이리하여 생사를 건 추적 게임이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두 킬러와, 브린 그리고 킬러들의 손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부부의 친구가 2대2로 편을 이뤄 거대한 숲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킬러들이 머리를 짜내 브린 일행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는 챕터가 끝나면, 바로 다음 장에서 기발한 방법으로 반격을 가하는 브린 일행의 모습이 이어지는 식이다. 체스 게임처럼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지략을 겨루는 흥미로운 협동 플레이라고 할까. 이번엔 디버가 전형적인 Cat & Mouse Game을 썼구나, 생각할 때쯤, 전매특허인 반전이 등장한다. 아아, 이번에도 당했구나, 무릎을 칠 새도 없이 연속으로 터지는 반전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페이지의 끝이었다. 이번 핵심 반전의 특징은 'how'나 'what'이 아닌 'why'라는 것을 힌트로 염두해두시길. 핵심 반전이 나오고도 페이지가 150쪽 이상 이어져 힘이 떨어지지 않겠나 싶었지만, 악한인 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선인이었다는 식의 디버가 자주 구사하는 자잘한 반전들과 함께 이 범행을 왜(why) 했나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이어져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제프리 디버, 이쯤 되면 진짜 신들린 반전 제조기라고 불러주고 싶다.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의 샘을 자랑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스릴러 마스터의 작품을 9월의 미스터리로 선정한다.  




20009년 9월의 미스터리: <남겨진 자들 - 제프리 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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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도 반이 지났는데 8월 걸 쓰고 앉아 있네요 -_-;;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신본격 추리소설의 1세대 작가로 꼽히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월광 게임> <외딴섬 퍼즐> 등의 작품에서 탐정으로 활약하는 대학생 에가미 지로 시리즈와 본서 <46번째 밀실> <달리의 고치> 등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범죄심리학자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를 동시에 쓰고 있다. 두 시리즈에서 탐정의 보조 역할이자, 작품의 화자를 맡은 인물들이 바로 작가와 같은 이름의 아리스가와 아리스. 에가미 지로 시리즈는 주인공들이 대학생이다 보니 어딘가 풋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면, 주인공들이 성인이고 직업상 범죄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은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는 더 전문적이고 냉철한 탐정소설의 흔적이 묻어난다. <46번째 밀실>에서 히무라와 아리스는 45가지 밀실 트릭을 선보여 '일본의 존 딕슨 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노 추리소설가의 집을 방문한다. 궁극의 추리소설을 구상해냈다는 그 추리소설가는 그날 밤 밀실에서 얼굴이 불에 탄 채 발견된다. 궁극의 46번째 밀실 트릭에 그 자신이 당한 것일까? 비교적 소품이지만, 다른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처럼 역시나 깔끔한 맛이 있다. 다만 핵심 트릭이 중동을 배경으로 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 작품과 굉장히 유사해 보이고, 커다란 반전이나 추리소설 독자들이 헉하고 놀랄 의외의 결말이 없어 조금 심심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아리스가와 아리스 추리소설은 모든 단서를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시하고, 그 주어진 단서만을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해 진상에 접근하는 페어플레이 게임이라 여러 번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다른 신본격 추리소설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무엇보다 이 작가 작품의 최대 매력은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호감가게 그려진다는데 있는데, 시크하지만 은근히 속정이 깊은 히무라 히데오와 잘난 친구에 경탄하다가도 가끔 한번씩 툴툴대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콤비가 보여주는 귀여운 우정에 기분 좋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2 - 에도가와 란포>

우리나라에서 출간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한량 없었던 에도가와 란포의 전단편집이 마침내 완간되었다. 1, 2권은 '본격추리', 3권은 '기괴환상'이라는 주제로 분류되었는데, 일본 추리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단편집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에 경도된 일본인 하라이 타로가 포를 연상시키는 필명을 사용한 것인데, 그는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의 천황 격인 존재. 1923년에 암호 미스터리인 '2전 동화'로 데뷔한 그는 1965년에 타계하기까지 수십 종의 추리소설을 남겼고, 일본탐정작가클럽을 창설해 에도가와 란포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의 시상식을 주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의 발전에는 란포의 그림자가 짙겨 드리워져 있는 셈인데, 그는 관음증이나 사드-매저키즘 등의 이상 심리를 소재로 한 일종의 '변격' 추리소설로 일가를 이뤘다. 작가 본인은 본격추리소설을 더 선호했지만, 독자들이 변태, 괴물들이 등장하는 기괴한 추리소설만을 원하는 데서 나오는 괴리감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개인적으로도 란포의 참맛은 3권 '기괴환상' 편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본격추리도 요즘 보기엔 어쩔 수 없이 트릭이 좀 단순한 감은 있지만 꽤 볼 만한 편이다. 무엇보다 맨 뒤 작가 코멘트 읽는 맛이 쏠쏠한데, "한번 인기를 끌었던 1인2역 트릭을 또 사용해 부끄럽다.", "딕슨 카의 트릭을 차용했다." 등등 굉장히 솔직한 편이라 거장 란포의 창작 비결을 듣는 재미가 컸다. 2권에서는 '호반정 사건', '나는 누구인가', '음울한 짐승' 정도를 추천하고 싶다.
 




<산 자의 땅 - 니키 프렌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잘만 사용하면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게 없는 듯하다. 어릴 적에 아동용 축약본으로 읽었던 윌리엄 아이리시의 <공포의 검은 커튼>도 기억이 사라진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내용이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부적인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날 정도니까. <산 자의 땅> 역시 기억상실과 납치가 중요 소재로 등장한다. 20대 여성인 주인공이 눈을 떠보니, 외딴 창고에 온몸이 묶여 있는데 이 일을 저지른 복면 남자가 하루에 한번씩 찾아와 물과 약간의 먹을 걸 주며 그녀를 사육한다. 복면 남자가 자신을 죽이기 직전에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한 주인공은 병원에 입원하고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상실에 빠져 핵심적인 사항을 거의 떠올려내지 못한다. 더구나 주인공은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받은 전적이 있어, 경찰과 의료진의 결론은 아무래도 이 여자가 쇼를 하는 것 같다, 로 내려진다. 혹시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복면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노리는데, 주변의 어떤 사람도 주인공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시작부터 강렬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납치된 순간부터 탈출 과정을 그린 초반 80페이지는 순전히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는데,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안타까운 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바쁜 일을 하던 도중이었지만 한번 잡고 그대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다 읽고 내린 결론은 중반부까지의 놀라운 재미에 비해 결말이 조금 아쉽다는 것.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복면 남자에 맞서 오히려 그의 정체를 먼저 찾아내 역습을 가한다는 대강의 플롯은 좋은데, 범인을 발견하는 과정이 좀 쉽고 단선적이라 맥이 좀 빠지는 걸 느꼈다. 작가들이 흔히 소재 자체가 너무 매혹적이라면 결말까지 탄탄하게 구상해놓지 않고 집필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역시 그런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히트작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지막까지 1위를 다투던 작품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우고 있다. 사실이라면 꽤 흥미로운데, 두 작품이 은근히 유사한 데가 많기 때문이다. 둘다 범인의 범행 과정이 처음부터 제시되는 도서추리소설이라는 점과 사건을 저지르고 은폐하는 자와 그 범행에 감춰진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두 천재의 지략 대결이 핵심이다. 추리소설을 범인을 알고 보면 무슨 재미? 하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잘쓴 도서추리소설의 재미는 본격추리소설 못지않다. 범인과 범행 수법이 처음부터 제시되니, 핵심인 탐정이 '어떻게' 범인의 철벽 같은 트릭을 깨부수는지를 차근차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탐정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사건의 행방을 미궁으로 유지하려는 범인의 처절한 노력과, 범인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단서를 모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탐정의 활약, 그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마치 탁구 경기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게 도서추리소설을 즐기는 가장 큰 포인트. 이시모치 아사미는 촉망받는 신예 추리소설가로 과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도 산뜻한 맛과 더불어 상당한 몰입감이 있었다. 다만 범인의 지력이 탐정보다 한 수가 아닌 두세 수 이상 떨어져, 이 점에서는 <용의자 X의 헌신>만 못한 것 같다. 대체 범인이 왜 그렇게 뻔한 실수를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면 나중에 곤란할 텐데,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정말로 뒤에 가서 다 범인의 발목을 잡더라. 무엇보다 최고의 패착은 동기가 너무 허황되다는 점. 해설을 쓴 미쓰하라 유리도 그 점을 지적했지만, 나도 거기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핵심과 아예 무관해서 따로 노는 동기(시마다 소지의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등)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이 책의 핵심 미스터리인 왜 범인은 살인 현장의 문을 그토록 오래 닿아두려 했는가, 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더 보아넘기기가 곤란했다. 그래도 모처럼 기대해볼 만한 작가가 나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다른 작품들도 계속 출간됐으면 좋겠다.
 




      
<페이드 어웨이 - 할런 코벤>

전직 NBA 선수 출신이자, 현재는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는 마이런 볼리타의 세 번째 이야기. 시리즈 제1편 <위험한 계약>에 이어, 2권은 건너뛰고 3권 <페이드 어웨이>가 먼저 나왔다. 이번 편에서 마이런은 NBA팀 뉴저지 드래건스(실제로 뉴저지의 팀은 넷츠Nets다)의 간판 스타 그렉이 실종된 사건을 맡게 된다. 마이런과 그렉은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지만, 마이런이 그렉의 여자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적이 있어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기에 사건을 맡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시 선수로 복귀해 팀원들 사이에서 나도는 소문들을 바탕으로 서서히 그렉에게 접근해가는 마이런. 사건의 배후에 감춰진 진짜 실종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소설도 좋아하지만, TV의 스포츠 중계도 놓칠 수 없다는 사람이 마땅히 봐야 할 책이 할런 코벤의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다. 이번 작품에서 마이런은 NBA 선수로 활약하는 한편 탐정으로서의 업무도 게을리하지 않는데,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화려하게만 보이는 NBA 스타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라커룸의 풍경, 들뜬 경기장 분위기 등등이 낱낱이 스케치되어 있어 NBA 팬으로서 너무 재미있었다(실제 선수들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을 모티브로 한 선수들은 여럿 발견된다). 더구나 할런 코벤은 제프리 디버 못지않은 반전의 제왕이니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그가 쓰는 다른 스탠드얼론 스릴러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유쾌한 재담꾼 마이런 볼리타의 농담 한 마디 한 마디는 배꼽을 간질이고, 독자들의 짐작을 철저히 배반하는 결말도 한 방 제대로 뒤통수를 때린다.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할 대작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달에 본 작품들이 어딘가 한 군데씩 아쉬운 데가 있어 개중 가장 나은 이 작품을 이 달의 미스터리로 결정했다. 

 



2009년 8월의 미스터리: <페이드 어웨이 - 할런 코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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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09-2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게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밖에 없는데,
정말 범인이 탐정보다 두세 수 떨어지는 게 아쉽더라구요.
뭐 그래도 나름 몰입감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아요 ㅎㅎ
조만간 <귀를 막고 밤을 달린다>도 읽어보려구요~


카스피 2009-09-23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워낙 많은 추리소설들이 나와서 다 보질 못하겠네요.저는 46번째 밀실을 읽었는데 그닥 재미가 덜하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4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란포 2를 읽어야 하는데.. 아 요즘 하도 쏟아져서 저도 밀려있네요 --;;

쥬베이 2009-09-2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이시모치 아사미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읽었는데,
정말 최악이었어요. 감히 리뷰조차 쓸 수 없는 지경. 썼단 출판사에서 찾아올까봐요ㅋㅋ
그런데 저 작품은 괜찮나 보네요^^
제다이님 이시모치 아사미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jedai2000 2009-09-26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이런저런 결점이 있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범행 상황을 사이에 둔 두 적수의 대결이라는 주제를 한눈 팔지 않고 집중력 있게 몰고 가니, 나름대로 힘이 나오더라구요. 저도 사실 상당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린다>는 밑의 쥬베이님이 악평을 하셨네요 -_-;;

카스피님...그러게 말입니다. 도저히 소화하려야 할 수가 없네요. 다 사는 건 고사하고 반도 못 읽을 판이어요. <46번째 밀실>은 깔끔하지만 소품 정도라 좀 아쉽죠^^

FTA반대휘모리님...요즘 안 밀린 사람이 어디 있나요ㅠ.ㅠ 그래도 책이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찬찬히 보세용~

쥬베이님...정말 최악이라니 일단 장바구니에서 뺐습니다. 초기작인 <아일랜드의 장미> <달의 문> 등은 평이 좋은데,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는 그렇게 별루였군요. 사실 내용 소개만 보고도 그닥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은 안 왔는데 과연...전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만 봐서는 아쉬움이 좀 있지만 그래도 기대해볼 만한 신인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편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쥬베이님 말씀대로라면 좀 실망이네요. 작품마다 편차가 이리 커서야...
 

 

 

 

 

 

 

 

<범인 없는 살인의 밤 - 히가시노 게이고>

 

1990년에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초기 단편집. 게이고는 긴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매만지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보통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더 실력 발휘를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탐정 갈릴레오>나 <예지몽> 등의 연작 단편집을 제외하고는 그간 국내에 일반 단편집이 소개된 적이 없기도 했다. 이 타고난 스토리텔러가 단편은 어찌 쓸까 궁금하던 차에 읽어봤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물론 아무래도 20년 가까운 시차가 있으니 어느 정도 낡은 느낌도 들고, 이거다 하고 서슴없이 내세울 만한 걸작 단편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심심할 때 읽으면 딱 좋은 전형적인 히가시노 게이고 표 미스터리로 큰 부족함은 없는 듯. 수록작 중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는 초기 게이고의 작풍을 대변하는 물리트릭+학원물의 공식을 사용해서 반가웠지만 2프로의 아쉬움이 남고, 표제작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작가가 잘 구사하지 않았던(그래서 이건 못하겠지 했던) 서술트릭을 표방한 작품이라 트릭에 대한 게이고의 천착에는 한계가 없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러나 내 기준에는 사회파에 가까운 '춤추는 아이'의 안타까운 결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제일 훌륭한 작품으로 보인다. 각 단편들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으면서도 어느 선 이상의 재미는 항상 보장하므로 초보 미스터리 독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표지에 '출간 2주만에 3만부 돌파'라는 스티커를 붙였던데, 솔직히 믿을 수도 없는데다 벗겨버리면 그만인 띠지도 아닌 스티커를 표지에 붙여 표지 디자인을 망치는 행위가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 

 

 



 

 

 

 

 

 

<뒤마 클럽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불리우는(본인만 그렇게 주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레베르테의 팩션 스릴러. 어떤 고서든 찾아주는 책 사냥꾼 코르소가 악마를 불러낼 수 있다는 <아홉 개의 문>이라는 고서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한편 코르소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의 육필 원고의 진위를 밝혀내라는 의뢰도 받고 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삼총사>의 악역인 로쉬포르 백작을 연상시키는 인물이 나타나 살인을 일삼는다. 우리가 흔히 알지 못하는 고서 수집, 복원, 감정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차용하고 있기에 비교적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간략히 줄거리를 설명한 대로 크게 <아홉 개의 문>과 악마 루시퍼, 그리고 <삼총사>와 뒤마에 관한 이야기의 두 흐름으로 진행되는데, 두번째 이야기인 <삼총사>와 뒤마에 관한 결말은 독서가들(특히 추리소설 독서가들)이 저지르는 본능적인 실수와 오류를 파고들어 아주 기발했고 크게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다만 전 세계에 세 권만이 남아 있다는 <아홉 개의 문>에 관한 이야기는, 책에 있는 악마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타로카드를 닮은 9장의 그림들이 실제로 그려져 있다)들의 차이점을 조목조목 비교, 분석하는 등 초반에는 무척 흥미로웠으나 결말에 이르러 대충 끝맺었다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여운이나 독자에게 결론을 맡기는 식의 문학적 테크닉이 아니라, 단순히 작가가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 끝낸 느낌이었다는 말씀. 책을 다 읽어도 시원하게 해결되는 맛이 없다. 개인적으로 반은 재미있고, 반은 허접한 이런 류의 책이 참 추천하기 난감하다. 조니 뎁이 코르소로 나오고,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한 <나인스 게이트>라는 영화로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백기도연대 雨 - 교고쿠 나츠히코>

 

2006년에 <광골의 꿈>이 나온 이래 3년간 소식이 없는 '교고쿠도 시리즈'를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스핀오프격인 <백기도연대 雨>를 먼저 읽기로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헌책방 주인이자 음양사, 더구나 아웃사이더를 방불케 하는 속사포 수다쟁이 교고쿠도와 그의 친구인 염세주의 소설가 세키구치, 타인의 기억이 보이는 미중년 탐정 에노키즈 등의 교고쿠도 패밀리가 협력해 좌충우돌 온갖 괴사건을 해결하는 게 원래 시리즈라면,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비교적 조역에 가까웠던 에노키즈가 전면에 나서는 연작 단편집이다. 교고쿠도 시리즈에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기묘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총출동하는데(그래서 이 시리즈를 캐릭터성을 중시하는 라이트노벨의 원조격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에노키즈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엽기 탐정이다. 본인을 신으로 생각하는 방약무인함과 절대 추리를 하지 않는 기기묘묘한 탐정질(살해 장면이 머릿속으로 보이는데 왜 추리를 하겠는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우왕좌왕하다 끝에 가서는 결국 사건이 해결되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화자의 선택에 있었다.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나'라는 1인칭 화자는 우연히 에노키즈에게 사건을 맡긴 다음부터 교고쿠도 패밀리를 접하게 되는데, 세상에 이런 잡놈들이 어디 다 숨어 있다 이제 나타났나 싶을 정도라 가치관에 혼란을 겪게 된다. 이제 충분히 시달렸다 싶지만,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에노키즈와 교고쿠도 친구들을 찾는 '나'. 이는 아마 이 시리즈를 접한 독자의 마음이 아닐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런 괴물들에게 질렸다 싶으면서도 어느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독자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절묘하게 공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창조한 이 인물들에게서 당신들은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의 강한 자신감과 이 시리즈를 그토록 사랑해준 독자들까지 작품에 참여시키고야 마는 팬서비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설없는 땅 - 후나도 요이치>

 

매년 그해 출간되는 일본 미스터리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발표될 때마다 일본 미스터리 애호가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랭킹이다. 1989년에 시작된 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최초 1위작은 바로 지금 소개하는 후나도 요이치의 <전설 없는 땅>. 욕망으로 꿈틀대는 남미를 배경으로 일군의 거친 사나이들이 거액의 돈과 천연자원을 놓고 격돌하는 일종의 모험소설로서, 작가인 후나도 요이치는 국제모험소설이라 불리는 이 장르의 장인이다. 어떻게 보면 펄프작가 이원호의 <황금의 땅>을 연상시키는 테스토스테론 과다분비 액션활극이라 할 수도 있지만, 30년 넘게 남미와 동남아를 누비며 직접 취재를 하고 당대 제3세계의 현실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책 속에 담아내는 후나도 요이치의 작품은 한 편의 인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으니 말초적인 재미에만 치중하는 여타의 활극과는 분명히 그 궤를 달리한다. 무척 좋아하는 개빈 라이얼의 <미드나이트 플러스 원>을 연상시키는 고독하고 허무한 남자들과 피를 뿜는 총격전. 한마디로 남성들이 즐길 요소가 가득하다. 참고로 후나도 요이치의 작품은 휴양지로 유명한 필리핀 세부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이 번역되어 있으며, 그 외에 이 작품이 유일하게 소개되었다. 개인적으로 후나도 요이치 또 하나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작인 1992년작 <모래의 크로니클>과 일본모험소설협회 대상<거친 방주> 정도는 더 보고 싶은데, 과연 나와줄런지...

 

 

 

2009년 7월의 미스터리: <전설없는 땅 - 후나도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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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9-08-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마클럽은 몇년전에 봣는데, 나인스게이츠를 먼저 보고 봣었는데도 영화보다 소설이 별로 였던 느낌이었어요.ㅠ ㅠ 사실 너무 지루해서 죽을뻔....;; 지금은 얘기조차 기억 안나네요.ㅠ ㅠ
그나저나 제다이님 오랜만입니다.^^

paviana 2009-08-1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제다이님 오래간만이세요.
백기도연대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ㅎㅎ

jedai2000 2009-08-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플님...저는 영화는 못 보고, 소설만 읽었는데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다 막판의 허무한 결말을 보고 급분노를-_-;; 영화를 나중에 봐야겠습니다 ^^ 정말루 너무 오랜만이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파비아나님...파비아나님도 진짜 완전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백기도연대 풍>은 아직 안 봤는데 어서 읽어야겠어요. 무더운 여름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어요. 건강 관리 잘 하세요^^


쥬베이 2009-09-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누나도 완전히 히가시노 게이고에 빠졌어요
저는 별론데, 좋아하더라고요ㅋㅋ
<범인 없는 살인의 밤>, 띠지인지 알았는데 아니어서 황당했었는데
제다이님도 그러셨네요^^

jedai2000 2009-09-1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은 난이도도 비교적 쉽고, 스토리가 흡입력이 아주 강해서 미스터리 초보 독자들에게 아주 잘 맞죠. 저도 그래서 추리소설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늘 게이고를 추천합니다 ㅎㅎ 이런 홍보 스티커는 최악이예요. 애써서 표지 디자인 잘 해놓고 상품 광고로 가려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