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기타쿠니 고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서점에서 꽤 많이 만나볼 수 있는 일본산 일상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이다. 흔히 일상이라고 하면 날마다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들의 집합을 말할 텐데, 비일상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리하고 과연 합이 맞을까? 이 참신한 시도를 처음 해낸 사람이 80년대 말의 기타무라 가오루이다. 그는 데뷔작 <하늘을 나는 말>에서 평범한 여대생이 논리력과 추리력이 비범한 예능인 아재(?)와 일상 속에 숨은 미스터리들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을 써냈고, 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일약 '일상 미스터리'의 창시자가 되었다. 사실 영미권에서 그나마 일상 미스터리와 비슷하다고 할 만한 코지 미스터리도 분위기는 포근할지언정 살인이나 강력 범죄가 나오지 않는 경우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일상 미스터리는 홍차가게에서 여대생들이 홍차에 설탕을 일고여덟 스푼이나 때려넣는 이유를 밝힌다거나 초등학생이 읽지도 못하는 초대형 영어사전을 들고 학교에 간다거나 하는 그야말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기 때문에 확실히 일본에서만 존재하는 유니크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도 이러한 일상 미스터리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 전형적인 소도시를 배경으로 별 볼일 없는 변호사(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별 볼일이 없기가 힘들긴 하다만)와 그의 조수 격이지만 실제로는 탐정 역할을 도맡는 동생이 동네의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연작 단편집이다. 명색이 일상이라면서 탐정의 성격은 본격 추리소설처럼 광인에 가까운 괴짜 일색이라면 분위기가 맞지 않으니까 일상 미스터리의 탐정은 비교적 정상인(?)이나 건실한 생활인이 많다. 하지만 매일 지하철에서 만날 것 같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반드시 독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개성이나 특별한 추리 기법, 독특한 분위기 등이 있어야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터. 그래서 일상 미스터리의 탐정은 서점 직원이라서 서지학에 강하다거나 꽃집 주인이라서 꽃에 대해 잘 알아 그 전문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평범함의 함정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의 탐정 역인 동생은 동서고금의 명언 덕후라서 사건 해결 과정 곳곳에 명언을 쏟아놓는다. 그밖에 주인공들이 기거하는 카페에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고, 수천 권의 만화책이 있는 것 또한 독자의 호감을 사고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가의 유인책(?)이 아닐까 싶다.

 

다루는 사건은 일상 미스터리답게 강력범죄는 일절 없고 소소한 편이지만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는 크게 빠지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우리네 일상 속의 가벼운 미스터리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해도 추리소설은 추리소설다워야 한다. 한마디로 공정한 단서를 제공하고, 해답을 도출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치밀한 논리와 추리가 없다면 아무리 따뜻하고 편안한 이야기라도 추리소설로서는 실격이라는 말이다. 다행히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은 위에 언급한 공정한 단서와 논리의 견고성, 단숨에 정답으로 도약하는 추리의 탁월함이 만만치 않았다. 다른 일상 미스터리들과 비교해도 다소 가벼운 분위기에 별 기대없이 책장을 넘겼다가 의외로 추리 파트는 날카로워 읽는 맛이 있었다고 할까, 작가가 본격이나 하드보일드에도 손을 댄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추리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그 작품들도 괜찮은 완성도를 보이지 않을까 상상이 된다. 

 

평범한 갑남을녀인 우리의 인생에서는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 반대도 물론이고. 그런데 이 소설의 무대는 착한 사람과 좋은 일들과 고운 마음씨들만 있는 희귀한 마을로 보인다. 주인공에게는 사회생활에는 매우 서툴지만 무슨 사건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도라에몽(?) 같은 동생과 어렸을 때부터 별 볼일 없는 자신을 짝사랑해주는 아이돌 간호사, 룸살롱을 좋아하지만 때로 인생에 깊은 조언을 남겨주는 멘토 등 따뜻한 사람만 주변에 한가득이다. 심지어 가끔은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귀찮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그저 응원만 해주는 이모 내외랑 산다. 꼭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담은 쇼핑백을 보는 것 같은 판타지스러운 설정이라 오히려 웃음이 나오더라. 소소한 일상의 따뜻함과 행복을 전달해주는 것만이 일상 미스터리의 미덕은 아니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이웃의 사소한 악의를 목도하고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욕망이나 욕정에 결국 무너지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에 한숨 짓기도 하는 것도 분명한 우리의 '일상'이다. 책장을 다 덮고 나서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는 일상의 다른 면도 좀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팍팍하고 끔찍한 얘기는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데, 가끔은 이런 대책없이 낙관적이고 따뜻함 일변도에 푹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 없는 어떤 곳에 가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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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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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본산 추리소설을 별로 보지 않았다. 특히 신간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같이 예전부터 많이 읽어왔던 작가들은 왠지 신선하지 않고, 요즘 대세라는 라이트노벨풍 미스터리는 애정이 없어 구매를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는 출간 전부터 기대할 만하다는 소리를 이곳저곳에서 들은 터라 나오자마자 얼른 구해 읽어보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좀 짧기도 했지만) 내린 결론은 모처럼 나온 일본 추리소설의 수준작이라는 것이었다. 여기다 요약하기도 좀 뭣할 만큼 아주 엽기적인 사건이 연속되어 (좀 끔찍하긴 했지만) 독자의 눈을 계속 잡아끄는 효과가 확실했고, 세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 자신의 시점에서 줄거리를 진행시키는 구성이라 조금 질릴 만하면 화자가 계속 바뀌니 읽으면서 지루할 새가 없었다. 특히 수준급이라는 반전은 확실히 인상적이라 이 정도면 그간의 일본 추리소설 가뭄(?)을 확실히 해갈시켜줄 물건이라는 생각이다.

 

흔히 반전이 중요한 추리소설은 줄거리를 비롯해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읽는 게 가장 재미있는 법이라서 내용 설명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면, 우리나라의 일산 같이 애 키우기 좋은 신도시에서 유치원 남학생들이 연속해서 유괴되어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초비상 상태로 특히 난임으로 아주 어렵게(처절하리만큼 어렵게) 딸아이를 가진 한 엄마는 당연히 거의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엄마가 '주인공1'이고, 남아 연쇄유괴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두 남녀 형사가 '주인공2' 격이다. 마지막으로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적당히 잘하고 검도부로 활동하며 후배들도 잘 이끌어 학교에서 인기가 아주 높은 학생이 있다. 특기인 검도로 지역 어린이들에게 검도 가르치기 봉사활동도 하는 이 쿨한 학생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특정 아동에게 살인의 충동을 느끼면 멈출 수 없다는 것. 즉, 신도시를 공포에 물들게 한 이 사건의 범인이 분명한데 이 녀석이 바로 '주인공3'이다. 한마디로 사건의 관찰자, 수사관, 범인의 삼각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모든 세계가 뒤집힌다는) 마지막 20페이지에 하나로 합쳐진다.

 

책표지에 적혀 있는 모든 세계가 뒤집힌다는 반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책의 결정적인 홍보 포인트로 내세우는 부분이기도 해서 반전이 너무 궁금했다. 서둘러 뚜껑을 열어보니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부 두 개였다(독자에게 다가올 충격파의 비중으로만 보면 2:8 정도). 흥미롭게도 첫 번째 반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반전의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끝나기 60페이지 전쯤에서 나오는 첫 번째 반전이 공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반전으로 연결되는 구조인데 이런 방식은 별로 본 적이 없어 제법 신선했다. 나 같은 경우 첫 번째 반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막상 첫 번째 반전을 알게 되자 어렴풋이 최종 반전은 이렇지 않을까 짐작이 갔고, 그 짐작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대개 동의하겠지만 첫 번째 반전을 넣지 않고 독자들에게 범인과 관계되는 모종의 사실을 처음부터 오픈했더라면 분명 난이도가 많이 낮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고심 끝에 첫 번째 반전을 넣은 다음 책이 끝나기 직전에 터뜨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을 최대한 지연시켰다고 생각한다. 

 

역자후기를 읽어보니 일본에서 언페어 논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 번째 반전 쪽에서 독자들이 눈치챌 만한 공정한 단서가 좀 부족해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단서가 아예 없지는 않다). 참고로 두 번째 반전에서는 별로 걸리는 구석이 없었다. 작가는 우타노 쇼고의 팬이라고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히트를 쳤던 모 작품의 핵심 트릭과 닮았다. 다만 우타노 쇼고의 그 작품이 무리수에 가까운 트릭이라도 대단히 교묘하게 설계해서 결국 독자들을 굴복시켰다면, <성모>는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 닳고 닳은 추리소설 독자들의 입조차도 싹 다물게 만들 만한 교묘함이 아주 조금 부족했다고나 할까. 물론 80년대에 데뷔해 수십 편의 추리소설을 쓴 노장과 이제 서너 편을 쓴 신예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테고, 리카코 작가도 매우 선전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본격 추리소설을 보면 고래로 세상에 안 나온 트릭이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면서 트릭에는 힘을 덜 기울이고, 드라마적인 완성도나 힐링 요소 등의 분위기로 때우는 경향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성모>와 아키요시 리카코 작가는 본격 추리소설의 재미는 역시 세상이 뒤집히는 트릭과 반전에서 나온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밀어붙여 그럴싸한 성과를 거두었다. 신예의 인상적인 활약에 앞으로도 나를 비롯한 추리소설 팬들의 주머니가 좀 더 엷어질 것 같다는 기분 좋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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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연재 재개를...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다음 편이 끝이다ㅠ.ㅠ

 

 

 

Queen - 퀸

 

선정작 - <그리스 관 미스터리> by 엘러리 퀸

 

 

 

 

 

 

 

 

 

 

 

 

 

 

최종 후보작 - <열흘간의 불가사의> by 엘러리 퀸

 

 

 

 

 

 

 

 

 

 

 

 

 

 

'퀸'이라고 해서 여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비록 사촌형제(남자) 두 명의 합작 필명이지만 엘러리 퀸이 추리소설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여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특히 퍼즐풀이 본격 추리소설에서 40편이 넘는 왕성한 활동을 보였는데, 희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만 세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흔히 퀸과 함께 퍼즐 미스터리 3대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동시대의 라이벌 중 존 딕슨 카가 주로 밀실의 기발함을 내세우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의외의 범인과 수준 높은 트릭이 돋보인다면 엘러리 퀸에게도 필살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논리'로써, 사건에 휘말린 탐정이 그간 수집한 단서를 토대로 무수한 용의자들을 논리적으로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마침내 단 하나의 진범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그려낸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어느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손님과 함께 있다가 그에게 살해당한 남자가 있다고 하자.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뚜껑이 올려져 있다. 보통 남자가 소변을 볼 때 변기 뚜껑을 올리니 용의자 중 여자는 전부 제외. 방 안의 텔레비전이나 오디오의 볼륨이 피해자가 평소 듣던 것보다 훨씬 큰 걸로 짐작컨대 범인은 청력이 시원찮거나 노인일 확률이 높다. 이로써 귀가 멀쩡하고 젊은 남자는 전부 제외. 이런 식으로 용의자의 갯수를 줄여 나가다 마침내 범인만 남기는 것인데, 이게 논리학에서 말하는 '소거법'이다. 나야 아주 시시하고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작가와 동명의 탐정 엘러리 퀸은 이 논리와 소거법의 명수이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한 사건들도 척척 잘도 해결한다. 작가 엘러리 퀸 형제는 본격 추리소설 전성기였던 1930년대에 선배 추리작가인 반 다인의 대성공에 자극받아 <로마 모자의 비밀>로 데뷔했고, 작품 제목에 전부 나라 이름을 넣은 '국명 시리즈'와 <X의 비극>, <Y의 비극> 등 'XYZ'로 이어지는 '비극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중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사고, 좋아하는 작품이 <그리스 관 미스터리>이다. 논리에 살고 논리에 죽는 엘러리 퀸 스타일의 정점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한편 최종 후보작인 <열흘간의 불가사의>도 그 못지않은 작품인데, 이 소설은 30년대식 과장된 명탐정 캐릭터였던 엘러리 퀸을 전후인 1950년대의 무겁고 사색적인 분위기에 맞춰 진지하게 변모시킨 '라이츠빌 시리즈'에 속한다. 입만 열면 지식 자랑에 평범한 경찰들을 빈정대던 천재형의 엘러리 퀸이 부쩍 진지해진 모습으로 변신해 근친상간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인간적인 비극 앞에 침몰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흥미롭게도 집필에 거의 20년의 간극이 있는 <그리스 관 미스터리>와 <열흘간의 불가사의>의 플롯에는 강력한 유사점이 있는데, 이는 읽어보면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Reverse - 도서(倒敍)

 

선정작 - <제1의 대죄> by 로렌스 샌더스

 

 

 

 

 

 

 

 

 

 

 

 

 

 

 

최종 후보작 - <후루하타 닌자부로> by 미타니 고키

 

 

추리소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라면 도서 추리소설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터이다. 도서라는 말은 '도치서술'의 줄임말이니 도서 추리소설은 일반적인 추리소설, 즉 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뒤에 범인을 잡는 구조를 뒤집는(reverse) 형태의 추리소설을 뜻한다. 한마디로 책 도입부부터 범인임이 분명한 인물이 떡하니 등장해 범행을 벌이는 장면이 상세히 나오는 것이다. 천재적인 범인이 공들여 짠 살인계획이 처음부터 제시되고, 그보다 더 천재적인 탐정이 그 음모를 하나하나 분쇄해 나간다. 마치 공정한 규칙 아래 한 수, 한 수 체스를 두는 듯한 두 천재 간의 짜릿한 이 두뇌대결이 도서 추리소설의 진정한 흥미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도서 추리소설을 쓴 사람은 과학자 탐정 손다이크 박사로 유명한 오스틴 프리먼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1900년대초 불세출의 셜록 홈스로 촉발된 추리소설의 1차 중흥기 때 이 신선한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탐정이 온갖 고생 끝에 범인 잡는 걸 보는 낙으로 읽는 게 추리소설일진대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가 나온다고? 얼핏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도서 추리소설을 프리먼은 왜 시도했을까. 아마도 당시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다시피 한 홈스의 아류작들에 자기까지 하나 더 추가하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픈 작가의식의 발로였으리라. 아무튼 프리먼 이후 도서 추리소설은 퍼즐파의 주류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간간히 좋은 작품들이 나와 흔히 3대 도서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살의>, <백모 살인사건>, <크로이든발 12시 30분> 같은 작품들이 유명하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도 그렇고, 역시 추리소설은 결말에 의외의 범인에게 뒤통수를 맞는 맛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적인 인기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에, 그것도 쓰는 것마다 베스트셀러라서 별명도 '미스터 베스트셀러'였던 로렌스 샌더스가 왜 하필 <제1의 대죄>에서 이미 주류에서 밀려난 지 오래인 도서 추리소설을 들고 나왔을까. 게다가 막상 작품을 읽어보면 구시대 도서 추리소설의 핵심이었던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범인은 오히려 범죄지능이 떨어지는 편에 가깝고. 샌더스가 걸작 중의 걸작인 <제1의 대죄>에서 범인을 첫머리에 등장시킨 이유는 좀 극단적이긴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범인이 연쇄살인에 빠지는 심리를 시작부터 냉철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였다. 즉, <제1의 대죄>가 도서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유는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어 분투하는 에드워드 델러니 지서장만큼이나 살인범이 아무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구체적인 심리를 보여주는 데 있어 이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샌더스의 의도는 멋지게 맞아떨어져 <제1의 대죄>는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인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탄생을 예고했으며, 범죄심리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 등을 고발하는 심리 스릴러로로써, 또한 엄청나게 정교한 경찰 수사물로도 1급인 완벽한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위에서 도서 추리소설의 대중적인 인기가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썼는데 한 가지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형사 콜롬보> 드라마가 바로 대표적인 도서 추리물이 아닌가. 다만 <형사 콜롬보>가 너무 오래되어 보기 싫다는 사람을 위해 일본판 콜롬보인 <후루하타 닌자부로>를 추천한다. 메이저리거 이치로, 아카시야 산마, 스맙, 야마구치 토모코 등 일본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해 범인 역할을 맡아 보는 맛이 쏠쏠할 것이다.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왜 도서 추리물의 규칙을 차용했을까. <제1의 대죄> 같은 거창한 목적성보다는 기왕에 슈퍼스타들이 출연하는데 중간부터 나오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범인으로 등장해 충격을 주면서 오래오래 나오는 게 시청률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지.

 

 

 

Spy - 스파이

 

선정작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by 존 르 카레

 

 

 

 

 

 

 

 

 

 

 

 

 

 

 

최종 후보작 - <디미트리오스의 관> by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이 인기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해서가 아닐까 싶다. 왜 누군가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겉으로는 귀를 막으면서도 속으로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지 않나. 이것은 어쩌면 옆집 사는 누군가, 혹은 추리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팍팍 죽어 나가지만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나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끼며 일종의 비열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때문이리라. 꼭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한 추리소설은 대개 독자들의 공포심을 잘 이끌어내는 게 많은 것 같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추리소설 중에 공포스럽지 않은 게 없다. 유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버림받은 애인이 버린 애인을 죽이고...뭐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게 무서운 일인 건 당연하겠지만, 예를 든 것처럼 예전 추리소설에서의 범죄는 확실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게 많았다. 가족, 친구, 친척, 그것도 아니면 한동네 이웃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추리소설 역시 당당한 문학으로써 명실공히 시대를 반영한다.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 안에서의 좁은 인간관계가 전부였던 과거와는 달리 양차대전 이후 세계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확대되었고, 당연히 공포의 대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 고작(?) 한두 사람 죽이는 범죄자와 달리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죽는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스파이야말로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겐 호환, 마마보다 공포스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파이소설은 바로 이런 시류에서 출발했다. 양차대전을 전후해 수많은 인기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설 주인공 중 하나도 포함되어 있다. 숫자 세 개로 표기하는 유명인사 말이다. 냉전시대가 저문 요즘은 스파이소설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진 느낌이지만, 2016년 현재 여든다섯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파이소설의 거장이 한 분 계시니 그 이름도 찬란한 존 르 카레이다. 실제 영국정보부 소속이었던 그는 이번에 소개할 스파이 추리소설의 역대 최고 걸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저자로서 이 작품으로 영국과 미국의 양대 추리소설상을 석권했으며 평생공로상 격인 그랜드마스터도 아울러 받았다. 사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지난 50년 동안 나온 추리소설 중 최고로까지 평가받고 있는데 나 또한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서독과 동독을 가른 냉전시대의 상징 베를린장벽이 건재했던 1963년을 배경으로 영국과 독일 첩보부의 숨막히는 암투가 실감나게 그려지며, 강철 기계 같은 국가 조직의 냉정한 논리에 희롱당하는 장기말 신세의 첩보원이 결국 가닿을 수밖에 없는 허망한 최후가 절로 비애감을 불러일으킨다. 추리소설적인 절묘한 플롯과 놀라운 반전, 첩보 세계의 리얼리티, 휴머니즘과 연민, 애절한 사랑 등 훌륭한 문학이 담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이 들어 있다...한편 스파이 추리소설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가가 아닌 문인들도 많이 손을 댔다. 적국을 속이기 위해 늘 정체를 숨기고 거짓말을 일삼는 스파이들이 크게 보면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팔리기도 잘 팔리고, 잘만 하면 문학적 야심을 실현시킬 수도 있는 장르에 솜씨 좋은 문학가들이 뛰어들지 않는 게 이상하렷다. 우리가 익히 아는 조셉 콘라드, 서머싯 몸, 그레이엄 그린 등의 이른바 문호들이 스파이소설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미트리오스의 관>을 쓴 에릭 앰블러 역시 비슷한 동기로 스파이소설에 천착한 작가로 당시 유행했던 스파이소설의 외피를 쓴 모험물과 달리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 <디미트리오스의 관> 같은 그의 작품들은 스파이 세계의 비정함, 스파이들의 고뇌와 비애 등 문학적인 여운이 훨씬 짙다. 그중 단지 호기심 하나로 국제적인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의 기묘한 삶을 재구성하는 평범한 작가가 엄청난 위기를 겪는다는 <디미트리오스의 관>은 언급한 문학성뿐 아니라 줄거리도 흥미로우니 일독의 가치가 크다.

 

 

 

Train - 열차

 

선정작 - <점과 선> by 마쓰모토 세이초

 

 

 

 

 

 

 

 

 

 

 

 

 

 

 

최종 후보작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by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인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을 꼽으라면 다양한 답이 나올 테지만 열차와 철도도 누군가는 꼭 지적할 것이다. 열차의 발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으니 노동시장과 산업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긴 셈이다. 전쟁을 할 때도 예전처럼 말을 타고 세월아, 네월아 쳐들어 가는 게 아니라 열차를 타고 수만 명의 병력이 단숨에 적진을 향해 들이칠 수 있게 되었으니 전쟁사에서도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심지어 우주선으로 달나라까지 가는 오늘날에도 그 잘난 우주선을 운반할 다른 방법이 없어 철도 크기에 맞춰 제작한다고 하니 가히 열차만큼 현대 사회를 일궈낸 게 또 있을까 싶다. 새로운 문명이기가 출현하면 즉시 이걸로 트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만 고민하는 추리소설가들이 열차를 놓칠 리 만무하다. 당연히 비교적 이른 추리소설의 여명기부터 열차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이다. 그는 대표작 <통>과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등을 통해 열차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전매특허로 내세웠다. 열차와 다른 열차의 환승시간이나 열차가 쉬는 잠시의 빈틈 등을 교묘히 이용해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열차 트릭은 실제로 열차가 운영되는 방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감이 넘쳤으며, 작중에 제시되는 온갖 열차시간표를 일일이 대조해가며 추리하는 식이라 꼼꼼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향의 추리소설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만 크로프츠는 무려 1879년 태생, <통> 역시 1920년작으로 요즘 보면 어쩔 수 없이 읽기 버겁다. 그런 이유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을 추천한다. 물론 <점과 선>도 1957년 작품이라 다소 낡은 감은 있지만 철도부터 비행기, 여객선 등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거의 완성된 시대라서 요즘 읽어도 거의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 최남단의 규슈에서 발견된 두 남녀의 시체, 하지만 용의자는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열차로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는 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철벽의 알리바이가 무너지는 짜릿함을 결코 놓치지 마시라.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태평양전쟁 전 대인기를 끌었던 에도가와 란포풍의 괴기, 엽기 추리소설에서 탈피해 당대의 일본 사회를 반영하는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추리소설을 주창했으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퀸, 카, 크리스티의 3대 작가처럼 일본 추리소설가 중에서도 세 명을 꼽으라면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그리고 세이초를 들 수 있겠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계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자면 셋 중 세이초를 가장 높이 치는데, 원래 순문예를 지향한 덕분에 작품의 문학성이 높아 추리소설을 어른들의 엔터테인먼트로 격상시킨 공로가 크며, 1,000여 편에 달하는 저작으로 추리소설의 상업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킨 점에서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대로를 거의 혼자 닦았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계 마지막 천황이다...열차의 발명으로 달라진 또 하나의 풍경은 낯선 사람과의 빈번한 대면일 터. 열차 이전 시대에는 한동네 사람 말고 전혀 낯선 사람을 볼 기회가 극히 적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열차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열차 옆자리나 앞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열차를 타지만 역에서 내리면 다시는 안 볼 이방인들. 누구도 의미를 두지 않을 이 찰나의 만남에서 교환살인의 씨앗이 싹튼다면? 열차에서 우연히 알게 된 두 사람이 상대방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을 각자 제거해준다. 친구도 뭣도 아닌 단 한 번의 만남이니 경찰도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탄생한 심리 서스펜스이다.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쥐락펴락 하는 데는 따라올 자 없는 대가인 하이스미스의 날카로운 필치에 절로 손에 땀이 쥐어지는 탁월한 작품.

 

 

 

Underdog - 약자

 

선정작 - <죽음의 전주곡> by 나이오 마시

 

 

 

 

 

 

 

 

 

 

 

 

 

 

최종 후보작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by 패트릭 퀜틴

 

 

 

 

 

 

 

 

 

 

 

 

 

조금 불평을 하기 위해 일부러 '언더독' 항목을 만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 등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 4대 여왕으로 꼽히는 나이오 마시가 왜 약자냐고? 한국 추리소설 시장에서는 당연히 약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30편이 넘는 마시의 작품 중 국내에 출간된 게 <죽음의 전주곡> 딱 하나이다. 크리스티와 더불어 콜린즈 출판사의 간판으로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거의 매년 추리소설을 냈던 스타 추리소설가의 출간작이 단 한 권이라니 참으로 비극이다. 이것도 그나마 다행인 게 크리스티도 즐겨 읽는다고 고백했던 마저리 앨링엄은 국내 출간작이 전무하다. 크리스티와 비슷하게 정통적인 후던잇 미스터리를 발전시킨 두 작가가 한국에서 이리 홀대받는 까닭은 무엇일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긴 딕슨 카나 로스 맥도널드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별로 출간되지 않는 작가가 어디 한둘이겠냐만 크리스티가 인기 있는 나라에서 그녀와 유사한 마시와 앨링엄이 전혀 나오지 않는 건 도통 설명이 되지 않아 몇 마디 불평을 남겨보았다. 뉴질랜드에 살았던 나이오 마시의 <죽음의 전주곡>은 크리스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영국 시골 미스터리로 미스 마플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크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엘러리 퀸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두 남자의 합작(웹&휠러)으로 비슷한 퍼즐 미스터리를 냈던 패트릭 퀜틴 역시 국내 추리소설계의 홀대라면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다. 퀜틴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처럼 <배우를 위한 퍼즐>, <친구를 위한 퍼즐>, <바보를 위한 퍼즐> 등 제목에 항상 '퍼즐'이 들어가는 시리즈도 썼으며 출간작도 40편이 넘는다. 흔히 본격 추리소설하면 영국만 떠올리고 미국 본격파하면 퀸이나 반 다인 등만 소소하게 맞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패트릭 퀜틴 또한 당당히 미국 본격파를 대표하는 작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또 하나의 불평을 하자면 지금 소개하는 퀜틴을 비롯해 크레이그 라이스, 렉스 스타우트, 샬롯 암스트롱 등 미국 본격파 작가들의 출간도 너무 적은 것 같다. 물론 요즘 시대에 황금기(1930~40년) 작가들을 소개해봐야 얼마나 팔릴까도 싶지만 추리소설 애호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울 따름이다. <두 아내를 가진 남자>는 퀜틴의 후기작으로 전처와 현재 아내 사이에서 방황하던 남편이 몇 번의 사소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불륜과 치정 등 멜로드라마 같은 전개와 공감 가는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다 마지막에 의외의 범인과 진상이 밝혀지는데, 전혀 본격 추리소설 같지 않게 펼쳐지던 이야기가 결국 본격으로 멋지게 끝나는 걸 보고 퀜틴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대표작들도 좀 만나볼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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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찌는 듯한 늦더위 힘드시죠? 여름 배경의 재미난 소설 한 권 보면서 더위를 이겨내시라고 책 팔러 왔어요^^;; 그전 책들이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아저씨들이 죽고 죽이는 얘기라면, 이번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은 풋풋한 대학생들이 주인공인 라이트노벨풍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들이 대학생이다 보니 당연히 대학 다니면서 가장 열심히 해야 할 공부 얘기는 거의 안 나오고ㅎㅎ, 연애나 음주가무 등 주로 노는 얘기들이 많아요. 물론 장르가 '미스터리'이다 보니 가끔 미스터리도 해결해야죠^^ 아무튼 부족한 책이나마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언제 와도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이웃님들 막바지 늦더위 조심하셔요. 꼭 이번 책이 아니더라도 가끔 리뷰 올릴 때마다 외면하지 않아주시는 것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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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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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찾아오는 반가운 선물, 도진기 작가의 추리소설 신작이다. 검색해보니 201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작품을 냈는데, 현직 판사로서 업무량이 만만찮을 텐데도 이처럼 왕성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게 참으로 놀랍고 반갑다. 좋은 작품을 내놓고도 후속작에 3-4년씩 걸려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작가가 많은 게 늘 아쉬웠던 판에 도진기 작가의 꾸준한 행보는 한마디로 만점이다. 열혈팬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응원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를 읽어보고 또 한 번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도진기 작가에게 가장 기대했던 장르를 마침내 그가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법정 추리소설. 직업적인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법정물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라고 늘 생각해왔기에 시리즈 탐정 고진이 드디어 법정에 입성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예전의 존 그리샴이나 스콧 터로, 다카기 아키미쓰 등을 비롯해 장르소설 강국들은 유독 법정물이 인기가 많다. 법정을 다룬 영화도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온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법정이라는 곳이 법지식이나 논리 등 고도의 전문적인 무기를 가진 법조인들의 진검승부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배자도 나오는 지적 유희의 콜로세움이랄까. 맨날 주먹으로 치고 받는 악다구니 싸움만 보다가 가끔씩 논리와 증거로만 싸우는 두뇌 대결을 보면 머리가 다 시원해진다. 특히 거대 세력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외로이 분투하던 법조인이 기발한 한 수로 다 진 재판을 역전시키는 장면이 나오는 법정물이라면 짜릿함의 강도가 몇 배는 커진다. 지적 쾌감, 논리와 말의 향연, 게다가 일발 역전의 흥분까지 갖춘 장르가 성공하지 않는 게 차라리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는 창작 법정물을 우리나라에서 별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좀 안 된 얘기지만 굴곡진 현대사의 영향으로 인해 법조계가 비교적 투명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서양처럼 칼 같은 공정함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의를 부르짖어봐야 그전의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이었달까. 또한 법정물은 고도의 법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작가가 몇 달 공부해서는 그럴싸한 현실감을 줄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할 대목이다. 하긴 전국에서 날고 기는 사람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법시험이니 일반 작가들이 손쉽게 접근하기 힘든 게 당연할 수밖에... 그렇다면 '법잘알'인 법조인들이 직접 써보면 좋지 않을까? 잘 알겠지만 그 양반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 않나. 존 그리샴처럼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한낱 소설을 그 잘나가는 분들이 쓰신다고? 더구나 법을 잘 안다고 해서 소설까지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요구되는 능력, 즉 법논리의 엄정한 냉철함과 창작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완전한 평행선에 가깝다. 거의 만날 수 없는 두 선이라 할 것이다.



다만 세상일에 '절대'라는 게 없듯이 가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능 몇 가지를 동시에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데, 도진기 작가가 딱 그런 경우인 것 같다. 뭐 법조인으로서의 활약은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추리소설에서의 탁월한 창작력은 이미 여러번 보여주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서 마침내 전문가의 손에 의해 정확하게 쓰여진 법정 추리소설을 만나게 되어 흥분한 나머지 잡설이 좀 많아지는 느낌이니 후다닥 작품을 들여다보자.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분량의 70-80퍼센트 정도가 법정에서만 진행되며, '어둠의 변호사'라지만 절대 법정에 서지 않는 고진이'슈퍼 페리 메이슨'이 되어 미모의 중년 여성의 남편 살해 혐의를 벗겨주기 위해 대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아, 고진이 꼭 사건 의뢰인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해야지만 사건을 맡는 사람이 아니란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시리즈를 이쯤 읽었으면 그 사람, 성격 비딱한 걸 모를 리가 없을 터. 그러므로 의뢰인이 무조건 누명을 썼다고 확신하지는 마시길.



법정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고진과 적대하는 카운터파트너도 출현한다. 조현철 검사라는 영감님(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예전에는 검사를 보통 이렇게 불렀다고)인데, 한 번 기소하면 반드시 유죄를 먹이는 일종의 법조계 독사이다. 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의 핵심 기조는 누가 뭐래도 알리바이 트릭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고진과 조현철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벌이는 책략 대결도 주목할 부분이다. 역시나 법조인 작가다운 리얼리티와 기발함이 철철 넘친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에서 작가가 법정물로서의 정체성을 제외하고 가장 공들인 부분은 역시 사건의 동기와 감동으로 보인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 무려 5각관계에서 파생된 범죄의 진짜 동기, 그리고 그 저류에 흐르는 애틋한 사랑이 밝혀질 때의 감동은 그전의 도진기 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트릭과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대히트했던 일본의 모 추리소설의 정서가 특히 생각나는데, 성공한 작품의 성공 요인을 냉철히 분석해서 본인 작품에 접목시키는 태도는 전반적인 한국 추리소설의 낮은 시장성을 생각해볼 때 반드시 칭찬받아 마땅하다. 장르 특성상 일발 역전의 쾌감을 위해 고진이 더욱 입조심을 한 관계로 전편에서 왓슨 역할을 맡았던 이유현 경감은 이번 작품에서는 독자와 같은 관찰자의 역할로 강등되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러시아로 같이 조사여행도 떠나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된다. 알리바이 트릭은 여태까지 도진기 작품 중 가장 단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케일은 가장 커졌다. 법정물이라고 추리소설 마니아가 실망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법정물로서의 탄탄함과 추리소설의 기발한 트릭, 게다가 감동과 애절함까지 갖춰 내 생각에 지금까지 도진기 작품 중 가장 잘 팔릴 듯하다. 전문 장르에서 기대했던 완성도를 보여준 도진기 작가의 내년 신작이 벌써부터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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