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딱새는 무엇을 볼까



  동이 트면 깨어나서 날갯짓을 하는 새는 하루 내내 무엇을 볼까. 먹이를 찾으면서 날아다닐 때가 아니라면, 새는 하루 내내 무엇을 볼까. 저녁에 둥지로 돌아가서 고요히 잠들 무렵까지 새는 하루 내내 무엇을 볼까.


  나뭇가지나 전깃줄이나 지붕이나 풀줄기에 앉아서 바람을 쐬는 작은 새는 무엇을 볼까. 공원 한쪽에 가만히 서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유리딱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지나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저 보고픈 무엇’을 보는 조그마한 새, 그러니까 사람이 보기에 조그마한 새인 유리딱새 암컷은 무엇을 보면서 이 가을볕을 쬘까.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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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리밭



  고마리가 아주 잘 자란 물가를 걷는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흐르는 골짝길 한쪽인데, 이 자리를 건드린 공무원이 없어서 아주 고맙게 수풀이 올망졸망 예쁘다. 우리 집 둘레에서 고마리를 보았으면 ‘아이 참 통통하니 맛있게 생겼네.’ 하면서 톡 따서 바로 먹었을 텐데, 골짝물이 흐르는 한쪽에서 만나는 고마리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코로 살갗으로 바람을 마시며 기뻐하기로 한다. 다음에 고흥에서 고마리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까지 고마리가 씨앗을 퍼뜨려서 함께 살 수 있으면, 그때에는 고마리 잎이며 꽃도 밥상에 올리고 싶다.


  생각해 보면, 풀밭은 풀내음이랑 풀바람을 늘 베푼다. 풀은 함부로 벨 일이 아니다. 풀밭은 풀짐승 밥상이기에 풀짐승을 헤아려서 고이 아낄 수 있어야 한다. 먹을 만큼 훑고, 쓸 만큼 베는 데에서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오늘날에는 풀짐승한테 풀이 아닌 화학사료만 먹이다시피 하니까 풀밭을 어찌해야 할는지 모를 테지. 오늘날에는 시골에서 풀밭을 신나게 헤치며 놀 아이들이 없으니까 풀밭에 함부로 농약을 마구 뿌릴 테지.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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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먹은 가을잎



  발그스름하게 물드는 가을잎이 참 곱네 싶어 고개를 든다. 벌레먹은 잎이 먼저 보인다. 아니, 벌레먹은 잎이 반갑다. 이곳에도 벌레먹은 잎이 있구나. 그리 나쁘지는 않네. 깊은 숲이라면 벌레먹은 잎이 마땅히 있을 테지만 서울 한복판이나 공원 같은 데는 아주 쉽게 농약을 치니까 벌레가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지만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벌레가 있어서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구나.


  벌레 네가 있어서 흙이 싱그럽다. 벌레 네가 있어서 새 흙이 깨어난다. 벌레 네가 있어서 숲에서 푸른 바람이 분다. 벌레 네가 있어서 새가 노래한다. 벌레 네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 별에서 오순도순 어우러진다. 참말로, 벌레먹은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라면, 벌레가 한 마리도 깃들지 못하는 나무만 있는 공원이라면, 그런 곳은 얼마나 메마르면서 괴괴할까.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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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지키기’와 ‘사람 지키기’



  공원이라고 하는 곳마다 ‘잔디 밟지 마시오’ 같은 푯말이 선다. 잔디를 밟으라고 하는 공원은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운동선수가 되어 운동장을 뛰거나 달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잔디를 밟거나 뒹굴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축구장이나 야구장에는 왜 잔디를 깔까? 잔디를 깔아야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적에 덜 다치거나 안 다치기 때문이다. 잔디를 깔아야 운동장에서 뛰거나 달릴 적에 땅이 덜 패이거나 안 패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어떤 구실을 하는 곳일까. 사람들이 쉬도록 마련하는 곳이다. 그러면 공원 잔디밭은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시골이라면 어디에서나 풀밭을 밟을 만하니까 굳이 공원이 없어도 되지만, 도시에서 애써 큰돈을 들여 공원을 짓고 잔디밭을 두는 까닭은 ‘흙과 풀을 밟을 땅’이 없기 때문이다.


  공원이라는 데는 모름지기 ‘사람 지키기’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잔디 지키기’는 애써 안 해도 된다. 잔디가 얼마나 대단한 풀인데, 사람들이 밟는대서 사라지겠나? 사람들이 엄청나게 드나들어서 엄청나게 밟아댄다면? 그러면 공원지기가 잔디를 새로 심거나 더 심으면 되지. 잔디 말고 다른 들풀도 마음껏 돋도록 보살피면 되지.


  공원지기가 할 몫은 ‘사람들이 잔디를 못 밟도록 하는 일’이 아니다. 공원지기가 할 몫은 바로 ‘사람들이 언제나 즐겁게 잔디나 들풀을 밟으면서 쉬고 웃고 노래하면서 어우러지는 공원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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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앞에 있는 전깃줄 친친 감긴 나무



  서울에서 북한산이 아주 잘 보인다고 하는 ㄷ대학교 앞에 가 보았다. 이 ㄷ대학교 앞으로는 냇물이 흐른다. 냇물길을 거닐면서 풀바람을 쐬거나 가을바람을 맡을 젊은 이웃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학교 앞에 냇물이 흐를 뿐 아니라, 코앞으로 멋진 멧자락이 펼쳐지는 모습은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느낀다. 그런데 ㄷ대학교 어귀에 선 제법 우람한 나무는 전깃줄로 친친 감겼다. 아무래도 해마다 끝무렵에 성탄절 언저리가 되면 이 우람한 나무에 전깃줄을 감아서 반짝반짝 불을 밝히는구나 싶다.


  나뭇가지에 전깃줄을 감아서 불을 밝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일이 나무한테 얼마나 몹쓸 짓인가 하는 대목을 모른다. 몹쓸 짓인 줄 알면 안 하겠지. 그러니까, 몹쓸 짓인 줄 모르며 나무를 괴롭히기에, 성탄절이 지나고 뭐가 지나가서 더는 불을 반짝반짝 밝히지 않아도 될 만한 때가 되면 ‘전깃줄 치우기’를 안 한다. 그냥 둔다. 나무는 전깃줄에 감긴 채 괴롭게 한 해를 살아야 한다. 새로 한 해 끝무렵이 되면 새 전깃줄을 감으려 하면서 헌 전깃줄을 풀거나 잘라 줄까? 헌 전깃줄을 풀거나 자를 적에 말끔히 풀거나 자를까?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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