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숨결



  뒤꼍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가 가지도 조금 꺾고 만다. 가지를 끊어서 감나무한테 미안하다. 그래서 가지가 달린 채 밥상에 함께 올려 본다. 알맞게 익어서 맛나게 먹을 감알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비로소 물에 헹구어 칼로 석석 자른다. 자, 우리 집 맛이야, 아이들아. 자, 우리 몸을 새롭게 살리는 숨결이야, 아이들아. 한 조각씩 천천히 맛을 느끼고 우리 몸이 새롭게 깨어나는 숨결을 느껴 보자.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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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꽃(강냉이꽃)을



  늦옥수수(늦강냉이)에 이삭이 팬 지 며칠 되지 않아 꽃이 핀다. 위쪽으로는 수꽃이 피고 아래쪽으로는 암꽃이 핀다. 마을에서 벌을 키우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나, 늦가을을 앞둔 이즈음에도 벌이 제법 우리 집을 드나든다. 우리 집에는 여러 가지 들꽃이 저마다 제 깜냥껏 곳곳에서 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날마다 신나게 훑는 까마중도 늦가을에 이르도록 꽃을 새로 피우고 열매도 새로 맺는다. 옥수수 수꽃에도 벌이 곧잘 매달리면서 꽃가루를 얻어 간다.


  집에 마당이 있고, 마당에 흙이 있으며, 이 흙에서 씨앗이 깨어나 잎이 돋고 꽃이 필 수 있기에, 사람이 사는 자리에 삶이 흐를 수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밥을 지어서 먹는 삶이란, 늘 씨앗하고 꽃하고 열매를 함께 누리는 삶이라고 깨닫는다. 씨앗이 바로 꽃이고, 꽃이 바로 씨앗이면서 열매이고, 열매이자 씨앗이며 꽃인 숨결이 언제나 밥이면서, 이 밥을 먹는 사람은 꽃내음으로 몸을 살찌운다.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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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이삭이 팰 무렵



  지난 팔월 십오일 언저리에 옥수수알을 몇 훑어서 물에 불려 싹을 틔웠고, 이 알을 텃밭에 심었다. 너무 늦은 때에 심었다고 할 테지만, 옥수수를 노래하는 큰아이한테 이 가을에도 옥수수가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늦옥수수라 할 텐데, 두 달이 지나니 꽃대가 쑥 오르면서 이삭이 팬다. 한가을에도 낮에는 볕이 좋으니 이만큼 자라 줄 만하구나 싶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주어도, 조금만 손길을 뻗어 주어도, 사람이 심는 씨앗은 이 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기운차게 잎사귀를 내놓는다. 먼 옛날부터 이 같은 숨결이 곱게 흘렀을 테지.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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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



  저녁에 마당에서 살림을 건사하려는데 돌울타리 쪽부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목에 노란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얘, 너 어디에서 그런 노란 비닐봉지를 목에 꿰고 말았니? 집고양이가 아닌 마을고양이인 터라 사람 손길을 타려 하지 않으니 어찌할 길이 없다. 이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먹고살 뿐 아니라 바로 코앞에까지 오락가락할 수 있기는 하되 손타기는 도무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든, 내가 마당에 빨래를 널거나 걷든, 이 고양이들은 서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런 일이 생겨도 손을 쓰지를 못 한다. 부디 나뭇가지나 풀포기에 걸려서 비닐봉지가 찢어져 주기를 바랄밖에 없다. 고양이가 스스로 비닐봉지를 뜯어서 뗄 수 있을까? 이튿날 아침에는 저 성가신 비닐봉지가 사라질 수 있기를, 비닐봉지 안 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애타게 빈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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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씨는 언제 보아도



  단풍씨는 언제 보아도 곱다. 아홉 살이던가 열 살이던 해부터 단풍씨를 날리며 놀았지 싶지만, 더 어릴 적부터 단풍씨를 날리며 놀았을 수 있다. 아무튼, 그무렵부터 늘 단풍씨는 내 마음에 새겨졌고, 이 가을에 단풍씨를 보면서 ‘요 예쁜 아이를 하나 톡 따서 날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단풍잎 못지않게 단풍씨가 더없이 곱다. 4348.10.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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