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망초 책읽기



  우리 집 둘레에는 참새가 많다. 참새와 함께 딱새나 박새도 곧잘 찾아든다. 이 자그마한 새들은 사람이 사는 살림집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오지는 않으나, 겨울에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먹이를 얻을 수 있는 줄 잘 안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에도 자주 찾아오는데, 바로 이처럼 작은 텃새가 즐겨찾는 곳에서 쥐꼬리망초라는 들풀이 흔히 돋는다고 한다.


  작은 텃새는 쥐꼬리망초 열매를 좋아한단다. 쥐꼬리망초가 살그마니 꽃을 피운 십일월 저물녘을 지나 십이월로 접어들면 이 작은 들풀이 맺는 예쁘장한 열매를 볼 수 있을까. 차츰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즈음에 논둑 한쪽에서 돋는 쥐꼬리망초를 바라본다. 한동안 이 앞에 쪼그려앉아서 한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본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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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자운영 한 포기



  봄이 무르익을 무렵부터 벼베기를 하는 한가을까지 논이나 논둑에는 들풀이나 들꽃이 자랄 틈이 없다. 시골 일꾼이 바지런히 풀을 베거나 풀약을 치기 때문이다. 늦가을로 접어들어 아무도 논자락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들꽃이 이 자리에서 씩씩하게 자란다.


  늦가을에 꽃대를 올리고 꽃송이를 터뜨린 자운영을 바라본다. 논 귀퉁이에서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었네. 곁에는 토끼풀꽃이 함께 있네. 다른 들풀도 가을볕을 쬐면서 기운차게 오르려 하고, 겨우내 찬바람에도 당차게 꽃내음을 나누어 줄 테지. 오늘은 며칠 만에 비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려 하니, 늦가을 자운영꽃은 더 환하게 춤을 추리라.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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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핀 산국



  가을 논둑에 산국이 핀다. 드문드문 살금살금 고개를 내민다. 이 아이들은 가실을 마치고 나서 꽤 지난 늦가을에 피기 때문에 기계낫에 썰릴 일도 없고, 풀약에 꼬르륵 타죽을 일도 없다. 가을일을 모두 마친 논둑에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오늘날 시골살이를 잘 읽거나 헤아린 아이들이라고 할 만하다.


  산국이든 들국이든 무엇이든, 봄이나 여름에 논둑에 피면 곧 낫날에 스러진다. 그렇지만 다시 한 가지를 헤아려 본다. 풀베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시골에 아이들이 많고 젊은 사람도 많다면 섣불리 이 들꽃을 베거나 뽑지는 않으리라고. 아이들이 꽃을 보고 놀 수 있도록 꽃을 잘 살릴 테고, 젊은 사람도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일손을 쉴 만하다.


  바쁘게 몰아쳐야 하는 일손이 아니다. 일손을 놀리다가도 가만히 쉬면서 꽃내음을 맡을 노릇이다. 이런 들꽃도 피고 저런 풀꽃도 자라면서 싱그러운 숲내음을 맡을 시골노래이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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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꽃(부추꽃) 씨앗이 터질 무렵



  솔꽃 씨앗이 터질 무렵 찬바람이 분다. 솔꽃 씨주머니는 차츰 벌어지면서 새까만 알을 둘레로 퍼뜨린다. 몇 포기 솔이 자라던 텃밭은 해마다 차츰 솔포기가 늘어나고, 해마다 솔꽃이 더 하얗게 핀 뒤에는 솔씨가 더 까맣게 퍼진다. 작은 꽃송이가 동그마니 모여 하얀 잔치를 이루던 솔꽃은 이제 까만 씨앗이 빼곡하게 들어찬 누르스름한 씨주머니가 되고, 가을이 차츰 저무니 겨울을 기쁘게 맞이하라고 알려준다.


  이 겨울이 찾아와서 솔씨가 흙 품에 깃들어 긴 잠을 자고 나면, 새로 맞이하는 봄에 싱그러이 돋는 솔잎은 새삼스레 우리 집 밥상에 오를 테지. 올 한 해 고마웠어. 이듬해에도 상큼하고 짙푸른 숨결을 베풀어 주렴.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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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는 아직 꽃을 피우고 싶어



  겨울이 코앞이지만 고들빼기는 아직 더 꽃을 피우고 싶다. 꽃이 져서 씨앗이 터지기도 하지만, 새로 봉오리를 터뜨리고 싶은 아이들이 꽃대에 가득하다. 늦가을에도 첫겨울에도 볕이 따뜻하다면 고들빼기는 씩씩하게 꽃송이를 벌려서 꽃내음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 늦가을에도 벌과 나비를 부르고, 곧 다가올 첫겨울에도 노랑나비와 팔랑나비가 꽃가루를 먹도록 온몸을 활짝 벌리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지만 참말 나비가 날고, 아직 애벌레가 풀잎을 갉아먹는다.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더 꽃을 피우고 싶은 고들빼기가 있고, 새로 돋아서 새로 꽃을 피우려는 유채와 갓이 있으니, 나비도 벌도 애벌레도 해야 해야 나오렴 하고 노래하면서 함께 어우러지겠지.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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