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콩꽃 조용히



  돌콩꽃은 그야말로 조용히 핀다. 사람이 손수 심지 않아도 스스로 꽃을 터뜨리고 열매를 맺는 돌콩은 참으로 조용히 넝쿨줄기를 뻗어서 잎을 벌리고 햇볕을 쬐려 한다. 다른 콩처럼 굵은 알이 맺지 않으니 낫질에 쉬 베인다. 낫으로 돌콩 줄기를 서걱서걱 끊어도 어느새 새로운 줄기가 뻗으며 새로운 꽃을 터뜨린다. 씩씩하지 않고서야 가을날 꽃을 피우지 못할 테고,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할 테지. 들에서 제힘으로 꿋꿋하게 자라는 돌콩은 새까맣고 야무진 알을 으레 사람들한테 베풀지만, 밭자락에서 자라면 사랑받지 못한다.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길가나 숲에서 자라야 비로소 사랑받는다. 그런데 가만히 헤아려 보면, 돌콩은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 사는 터’ 가까이에서 자랐을 테지. 손길을 타며 사랑받는 돌콩이요, 눈길을 받으며 더욱 고운 돌콩꽃이며, 밥상에 오르며 한결 고소한 돌콩알이다.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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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왜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는 가지가 잘려도 이윽고 새 가지를 낸다. 나무는 나뭇잎을 떨구어도 머잖아 새 잎을 틔운다. 나무는 언제나 새로운 숨결을 스스로 빚어서 자라려 한다. 나무는 저를 비추는 해님을 사랑하고, 저를 적시는 비님을 사랑하며, 저를 간질이면서 어루만지는 바람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저를 붙들어 주는 흙님하고 풀님을 사랑하지. 나도 이 아왜나무와 함께 이 땅에서 사는 넋으로서 생각한다. 해님하고 비님하고 바람님하고 흙님하고 풀님을 사랑하자고 생각한다. 여기에 나무님하고 숲님도 나란히 사랑하는 ‘사람님’으로 살자고 꿈을 꾼다. 4358.10.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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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가 있던 자리에



  고흥읍 한쪽에 냇물이 흐르고, 냇가를 따라 크고작은 나무가 많았다. 짧은 다리 한쪽에는 꽤 우람한 멀구슬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군청에서는 나무가 우거졌던 자리를 밀어서 시멘트를 덮더니, 다시 시멘트로 기둥을 받치면서 주차장을 마련했다. 그런데 주차장을 마련한 지 한 해 즈음 된 얼마 앞서 ‘멀구슬나무가 있던 자리’에 꽃밭을 마련해 놓았다.


  무슨 짓일까? 주차장으로 바꾸었으면 그냥 주차장으로 두든지, 꽃 한 송이나 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도 없어서 메말라 보인다면 처음부터 우람한 나무를 함부로 베지 말든지. 도무지 한치 앞조차 내다보지 못하거나 않는 행정이라면, 이러한 행정은 앞으로 또 무슨 짓을 벌일까.


  나무를 그대로 두고, 풀밭을 그대로 두며, 냇물을 그대로 두는 길이 바로 ‘가장 잘하는 정책이자 행정’이다. 도랑에 시멘트를 퍼붓지 말고, 논둑을 시멘트로 바꾸지 않는 길이 바로 ‘가장 잘하는 정책이자 행정’이다. 4348.10.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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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번데기가 벽에 붙나



  자전거를 세우는 바깥벽에 작은 번데기가 하나 생겼다. 이 아이는 언제 잠에서 깨어날까 궁금해서 늘 들여다보는데, 꽤 오래 걸리는 듯하다. 어떤 나비일까. 어떤 나비가 나뭇가지도 풀줄기도 아닌 벽에다가 번데기를 틀었을까. 어제오늘 비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는데 잘 있으려나. 이동안 어느새 번데기에서 깨어나 날아갔을까. 부디 번데기에서 깨어나서 날개를 활짝 펴는 모습을 우리한테 보여주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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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알아차린 취나물꽃



  우리 집 뒤꼍 감나무 둘레에서 돋는 맛난 풀이 있다. 참으로 맛난 풀이라서 봄이면 이 풀을 신나게 뜯어서 먹는다. 다만 여태껏 이름을 몰랐다. 이 가을에 뒤꼍에서 ‘떨감(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감)’을 줍다가 하얗고 조그맣게 피어난 앙증맞은 꽃을 본다. 아니, 이곳에 웬 꽃이람, 하면서 깜짝 놀란다. 며칠 동안 이 꽃을 보면서 여기에 왜 이 꽃이 있는지 생각조차 못 한다.


  오늘 비로소 이 꽃이 어떤 꽃인지 깨닫는다. 이 시골마을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꽃이었고 풀이었으며 나물이었다. 바로 ‘취나물꽃’이다. 취나물 가운데 ‘참취나물꽃’이다.


  군대에서 늘 뜯던 풀 가운데 하나인데 그 풀이 이 풀인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며 다섯 해를 살았네. 군대에서는 아주 넓적한 잎으로 자랄 적에만 뜯느라 우리 집 들나물하고 그 옛날 뜯던 참취하고 같은 풀인지도 모르고 살았네. 하기는. 군대에서는 간부들이 억지로 일을 시켜서 자루와 상자에 가득가득 눌러담도록 했지. 군대에서는 간부들이 사병을 시켜서 푼돈 좀 벌겠다며 취나물을 잔뜩 뜯도록 했지. 그무렵 군 간부들은 우리를 시켜서 자루와 상자에 그득그득 눌러담은 취나물을 얼마에 내다 팔았을까.


  우리 집 취나물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윽하게 바라본다. 네가 봄철 내내 우리한테 맛난 풀을 베푼 멋진 아이로구나. 아무쪼록 씨앗을 널리 퍼뜨리렴. 우리 집 뒤꼍에 온통 취나물밭이 되도록 해 주렴. 고마워. 너를 사랑한다. 4348.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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