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떼를 보면서



  작은아이하고 들길을 걷는 동안 까마귀떼를 본다. 까마귀떼는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다가 우리가 바로 밑으로 지나갈 적마다 하늘을 가득 채우며 옆으로 옮긴다. 또 옆으로 옮기고 다시 옆으로 옮긴다. 이러다가 비로소 들 한복판으로 날아간다. 이 많은 까마귀는 그동안 어디에 어떻게 흩어져서 살다가 이 한겨울에 우리 마을에 모일까. 따스한 봄날이 되면 이 까마귀떼는 또 저마다 뿔뿔이 흩어질 테지. 434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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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코스모스는 씨앗을 남기고



  시든 코스모스를 본다. 아직 꽃잎이 떨어지지 못한 코스모스도 이 겨울까지 버티면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바싹 야윈다.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데 아직 꽃잎을 떨구지 않았을까. 한겨울에도 볕이 포근한 고흥이기에 이곳에서 더 해바라기를 하면서 꽃내음을 나누어 주고 싶었을까. 아직 꽃잎이 아슬아슬 매달린 코스모스 꽃송이 곁에 있는 씨앗을 손바닥에 훑는다. 아이들한테 코스모스 씨앗을 나누어 준다. 우리 집 둘레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린다.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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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다시 만나는 봄까지꽃



  봄까지꽃이 다시 핀다. 바야흐로 겨울이 무르익는다는 뜻이다. 봄까지꽃이 피려면 반드시 찬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러면서 따사로운 햇볕이 있어야 한다. 봄까지꽃 같은 새봄맞이 들꽃은 찬바람하고 따순볕 두 가지가 어우러져야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면서 웃는다. 바람만 차거나 볕만 뜨거우면 이 새봄맞이 들꽃은 피어나지 못한다. 달리 말하자면, 새봄맞이 들꽃이 싱그러운 숨결로 깨어나서 노래할 수 있는 터전이란, 고단한 길에서도 꿈을 품는 의젓한 숨결이 흐르는 터전이라고 할까. 힘든 나날에도 새로운 사랑을 그리는 씩씩한 넋이 일어서는 터전이라고 할까. 봄꽃은 봄에 만나지만, 새봄맞이 들꽃은 봄이 오기 앞서 겨울에 만난다. 이 겨울 들꽃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춥거나 모진 겨울이라 하더라도 새삼스레 기운을 차리면서 살림을 짓자고 거듭 다짐할 만하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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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나물 씨앗을



  취나물 씨앗을 손에 쥔다. 바람처럼 가벼워서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 온누리 어디에나 살포시 깃들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취나물 씨앗을 손에 쥔다. 풀씨란 이렇게 보드랍고 가벼우면서 사랑스럽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아니, 풀씨는 사람들 마음씨처럼, 싱그러운 아이들 말씨처럼, 따사로운 어른들 솜씨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서 새로 피어나려고 하는 숨결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4348.12.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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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2-22 03:33   좋아요 0 | URL
탐나는 씨앗입니다

숲노래 2015-12-22 08:03   좋아요 0 | URL
네, 취나물이 아주 맛있어요. 이 씨앗이 바람을 타고 하늘바람님 계신 데까지 훨훨 날아가기를 빌어요 ^^
 

전남 고흥은 겨울에도 제비꽃



  전남 고흥은 아주 재미난 고장이다. 한겨울에도 제비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십이월 한복판이지만 볕이 아침저녁으로 곱게 스미는 처마 밑에서 제비꽃이 피고 지면서 씨앗을 톡톡 터뜨린다. 이 제비꽃 무더기를 살며시 들추면 아래쪽에 개미가 바글거린다. 개미는 제비꽃 씨앗을 물어 가느라 부산하기도 하고, 제비꽃이 피는 언저리가 언제나 따스하니까 이곳에서 땅밑으로 깊게 파들어 가면서 집을 지어서 살는지 모른다. 이리하여 나는 우리 집에 ‘한겨울 제비꽃집’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여 본다. 포근하면서 사랑스러운 집이라는 뜻이다. 4348.12.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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