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알을 따는 철



  바야흐로 유자알을 따는 철이 돌아온다. 우리 집 뒤꼍에 있는 유자나무에도 유자알이 주렁주렁 맺혔다. 늦가을에 샛노랗게 익으면서 눈부신 유자알은 온 집안을 향긋하게 보듬는다. 나무 곁에 서도, 나무를 바라보아도, 그냥 집에 있어도 유자내음은 살짝살짝 흐른다.


  지난해에는 우리 집 유자를 모두 두 할머니 댁으로 보냈지만, 올해에는 우리 집에서 유자알을 손질해서 유자차로 담가 놓으려 한다.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이 일을 해야지. 두 아이를 불러서 함께 유자알을 따고, 이 유자알을 함께 손질해서, 차곡차곡 유리병에 담아서 재워야지.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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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라지게 하얀 자작나무



  울긋불긋 잎빛이 바뀌는 가을에 자작나무는 일찌감치 잎을 떨구고 하얀 줄기를 드러낸다. 온갖 빛깔이 춤추는 곳에서 자작나무는 고요하게 하얀 빛깔로 선다. 구름빛처럼 하얗다. 꽃밭에서 춤추는 나비처럼 하얗다. 푸른 잎이 가득한 풀밭에서 홀로 하얀 민들레처럼 눈부시다. 자전거를 달려서 면소재지를 오갈 적에 으레 자작나무 앞에서 멈춘다. 그저 그대로 그곳에 있을 뿐인 자작나무는 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한 번 더 바라보도록 이끈다. 4348.11.1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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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아, 얼른 들어가렴



  자전거마실을 다니다가 논둑길에서 으레 뱀을 본다. 이때에 뱀더러 “얘, 얘, 너 추워서 이리 나왔나 본데,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몸을 덥히려고 하면 차에 깔려 죽는다. 얼른 길섶으로 가.” 하고 슥슥 민다. 몸이 얼었는지 제대로 기지 못하는 뱀은 억새줄기로 슥슥 미니 슥슥 밀려서 길섶으로 자리가 바뀐다. 부디 그 자리에서 더 길 쪽으로 나오지 말기를 빈다. 너희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서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너희가 이 풀숲과 시골에서 마음껏 기어다니면서 알도 낳고 쥐도 잡고 즐겁게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 4348.11.1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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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고이 자는 들꽃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지면 들꽃도 코 잔다. 어떻게 들꽃이 코 자느냐 하고 궁금하다면, 들꽃을 들여다보면 된다. 들꽃은 날씨를 살펴서 봉오리를 벌리거나 옹크린다. 햇볕이 없으면 봉오리를 벌리지 않는다. 따스한 볕이 찾아들고 바람이 포근하게 불면, 들꽃은 비로소 봉오리를 가만히 벌린다. 추운 밤에 고운 꿈을 꾸면서 잠들고, 새롭게 밝는 아침에 기지개를 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들꽃을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도, 또 나랑 곁님도, 해 떨어진 밤에 즐겁게 잠들어야지. 그리고 해 뜨는 아침에 기쁘게 일어나야지.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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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국, 들국 (들국화/노들꽃)



  논둑에서 ‘산국’이라는 꽃을 본다. 이 산국은 누가 따로 심지 않는다. 바람에 씨앗이 날려서 논둑에 떨어져서 핀다. 아무도 산국 씨앗을 받아서 논둑에 뿌리지 않는다. 게다가 논둑은 오늘날 시골마을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대고 틈틈이 기계낫으로 베니까, 산국이든 들국이든 이 자리에서 피어나기는 몹시 어렵다.


  그렇지만, 산국도 들국도, 아니 이런 이름이 굳이 없어도 되는 이 조그맣고 상냥한 노란 멧꽃이나 들꽃은, 참으로 씩씩하면서 곱다. 이 노란 멧꽃이나 들꽃은 볕이 잘 들고 바람이 포근하며 물길이 알맞게 흐르는 자리에서 해맑게 피어난다. 마치 해님과 같은 꽃이라고 할까.


  아주 조그마한 꽃이지만, 무리를 지은 노란 멧꽃이나 들꽃이 아닌 한 송이만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온몸으로 꽃내음이 확 퍼진다. 그래, 그러니까 먼먼 옛날부터 이 노란 멧꽃이나 들꽃을 잘 말려서 차로 마셨고, 부침개에도 얹어서 먹었구나.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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