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문학동네포에지 45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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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13.

노래책시렁 376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2.15.



  살아가는 ‘길’은 고스란히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가는 길을 그대로 담습니다. 걷는 사람은 걷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쇳덩이(자동차)에 몸을 싣는 사람은 쇳덩이 마음으로 흘러갑니다. 이곳으로 가기에 좋지 않고, 저곳으로 가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다 바꿀 수 있어요. 늘 쇳덩이를 몰더라도 언제나 반짝반짝 아름눈길일 수 있고, 쇳덩이를 조금 몰거나 탈 뿐이지만 길든 굴레나 수렁에 확 잠길 수 있어요. 언제 어디에서나 반짝이는 별빛이라는 길이라면, 별빛마음이에요. 그러나 둘레에 사로잡히거나 휩쓸리는 길이라면, ‘길들면서 길든 줄 모르는 넋잃는 마음’입니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읽으면, 노래님 스스로 얼마나 아픈가를 사뭇 느낄 만합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앓는 일은 안 나쁩니다. 우리는 아프거나 앓기에 알아갑니다. ‘아프다·앓다’하고 ‘알다·알·알차다’는 말밑이 같아요. 아프거나 앓지 않는 이는 알아가지 않아요. 아픈 적 없는 이는 알에서 안 깹니다. 흠씬 앓기에 온누리를 알아보는 눈을 새롭게 뜹니다. 허수경 님이 알에서 스스로 깨어나려고 앓던 길에, 조금씩 가장자리로 걸어갔다면, 모든 끝이란 늘 처음인 줄 알아차렸을 텐데 싶더군요.


ㅅㄴㄹ


장님인 시절 장님의 시절 술 마시는 곳 기웃거리며 술병 깨고 손에 피를 흘리며 여관에서 혼자 잠, 여관 들어선 자리 밑 미나리꽝 맑은 미나리순이 걸어들어와 저의 손으로 내 이마를 만지다. (아픔은 아픔을 몰아내고 기쁨은 기쁨을 밀어내지만/10쪽)


덜 자란 아이들은 언제나 덜 자라 이 거리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아이들의 가슴에 든 지폐는 영혼을 팔아 바다를 사고 적막한 눈을 감고 바다는 오 오 거리에서 팔던 오뎅국물처럼 졸아든다.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16쪽)


먼 곳에서 벌어진 전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 모깃불을 안고 퍼런 전파를 보다가 진짜 전장으로 가버린 남자들 / 남자들을 따라 전장으로 나간 여자들은 옷을 벗고 춤을 추었다 / 춤을 추다가 가끔 아편을 맞기도 했다 (검은 노래/47쪽)


+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


어느 날 죽은 이의 결혼식을 보러 갔지요

→ 어느 날 죽은 이 꽃잔치를 보러 갔지요

8쪽


자궁만이 튼튼한 신부는 신랑의 심장자리에 자신을 밀어넣었습니다

→ 아기집만이 튼튼한 각시는 곁님 가슴자리에 저를 밀어넣었습니다

→ 알집만이 튼튼한 꽃짝은 곁짝 마음자리에 저를 밀어넣었습니다

8쪽


새들은 아직 심장을 가지고 있나

→ 새는 아직 가슴이 있나

→ 새는 아직 마음이 있나

12쪽


날아오르는 것들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 날아오르는 모두를 믿을 수 없듯

→ 날아오르는 아이를 믿을 수 없듯

→ 날아오르는 빛을 믿을 수 없듯

12쪽


자전하는 지구에서 태어난 나

→ 맴도는 별에서 태어난 나

→ 쳇바퀴 별에서 태어난 나

→ 스스로도는 별에서 태어난 나

13쪽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 늙은 노래꾼은 나눔잔치 열고 자리에서

22쪽


미라들이 박물관 지하에 있다

→ 덧주검이 살림숲 땅밑에 있다

33쪽


집 앞에 고물상이 있네

→ 집 앞에 넝마집이 있네

→ 집 앞에 마병집이 있네

→ 집 앞에 헌살림집이 있네

41쪽


남자들을 따라 전장으로 나간 여자들은

→ 사내를 따라 싸움터로 나간 가시내는

→ 돌이를 따라 싸움판으로 나간 순이는

47쪽


나의 고아들은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잠이 들 것이다

→ 울 외톨박이는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 우리 외톨이는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잔다

57쪽


해초를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찬송가를 부른다

→ 미역을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기쁨노래 부른다

→ 바다풀을 다듬으며 조개를 까며 아이들은 꽃노래 부른다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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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창비시선 414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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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12.

노래책시렁 373


《하동》

 이시영

 창비

 2017.9.15.



  그제 이른아침에 여수에서 시외버스를 내리는데, 늙수그레한 아재는 바로 앞에서 담배부터 꼬나물고서 불을 붙입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내 시끄럽게 전화를 하던 아재는 길에 하얗게 담배김을 피웁니다. 고흥 버스나루는 2023년에도 버스일꾼에 싸울아비(군인)에 할배에 아재가 담배굴을 이루고, 이따금 아가씨도 담배김을 피워요. 우리나라 버스나루 가운데 고흥처럼 마구 담배를 태우는 데를 못 봤으나, 여수도 비슷합니다. 《하동》을 읽었습니다만, 하동이란 고장이 어떤 빛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하동이라는 고장이 지나온 자취를 엿볼 수조차 없습니다. 어렵게 말하면 ‘관념 + 기교 + 문학수사 + 추억 + 연민 + 허세’일 테고, 쉽게 말하면 ‘삶이 없다’입니다. 글쓴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삶’이라기보다는 ‘허울’입니다.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삶’이라 하지 않습니다. 꿈을 사랑으로 그리지 않고서 쳇바퀴를 돌거나 이쁘장하게 치레하거나 꾸미거나 속이는 몸짓은 ‘허울’입니다. 할배 나이가 되어서까지, 어릴 적 옆집 ‘여고생 머리카락하고 몸에서 나던 향긋한 냄새’를 떠올리는 글이란, ‘고은 성추행 시’하고 뭐가 다를까요? 하나도 안 다르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글이 우리나라 ‘작가회의’요 ‘원로작가’ 민낯입니다.


ㅅㄴㄹ


어느 아랍의 국기 같은 초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저 달을 보며 길 떠나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있다 (극점/31쪽)


가방 들고 걷던 전주여고생. 3년 동안 이웃에 살면서도 단 한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나는 눈 감고도 누나가 지금쯤 어디를 지나는지 훤히 알 수 있었지 ……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가 그만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향긋한 머릿내였던가. 순간 시자 누나가 내 몸에 엎어지며 풍기던 뜨겁고 알싸한 그 내음새는. (시자 누나/50, 51쪽)


+


《하동》(이시영, 창비, 2017)


강변에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 냇가에 나무 두 그루가 섰다

→ 둔치에 나무 두 그루가 있다

11쪽


이호철 선생 댁 세배를 다녀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 이호철 님 집에 절을 다녀오던 길이다

→ 이호철 어른한테 절을 다녀오던 날이다

16쪽


고라니가 파놓은 흙 위에

→ 고라니가 파놓은 흙에

→ 고라니가 판 흙더미에

21쪽


뜨거운 눈 속을 뚫고 솟구쳐오른 파 대가리

→ 뜨거운 눈을 뚫고 솟구쳐오른 파 대가리

24쪽


초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눈썹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 웃는달이 부르르 하늘에 박혔다

31쪽


떠나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있다

→ 떠나는 누가 이곳에 있다

→ 떠나는 이가 여기에 있다

31쪽


설치류들의 핏빛 흔적이 자욱하다

→ 생쥐 핏빛이 자욱하다

→ 쥐가 남긴 핏빛이 자욱하다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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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5.

노래책시렁 174


《인부수첩》

 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9.30.



  글을 쓰려면 사랑글을 여밀 일입니다. 사랑이 아닌 짝짓기를 쓴다면 덧없습니다. 사랑을 등진 채 설레발을 쓴다면 엉성합니다.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서 꾸미기만 한다면 허울입니다. 글을 읽으려면 살림글을 살필 노릇입니다. 살림이 아닌 치레를 찾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살림을 잊은 채 돈바라기를 쓴다면 넋나갔습니다. 살림을 가꾸지 않고서 쳇바퀴를 둘러댄다면 숨빛을 잃습니다. 《인부수첩》을 서른 해 만에 되읽습니다. 섣부르거나 어설피 높이는 목소리가 곳곳에 있지만, 이 노래책을 이루는 바탕은 ‘설익되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라되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면서 헤매는 마음이 진득하게 흘러요. 그렇다면 왜 《인부수첩》은 ‘설익은 사랑’일까요? ‘땀흘리는 일’을 ‘집 바깥’에서만 찾거든요. 예나 이제나 우리네 일글(노동문학)은 ‘집 바깥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뚝딱거리는 모습을 옮겨야 한다고 여기는 틀에 갇힙니다. 생각해 봐요.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짓는 하루도 일(노동)입니다. 아이돌봄도 일(노동)입니다. 모름지기 ‘일글’이란, 살림빛과 사랑빛을 삶빛으로 녹여낼 적에 태어납니다. 우리나라 일글은 너무 오랫동안 ‘웃사내 바깥벌이’에 얽매인 채 사랑씨앗이 없이 목소리만 지나치게 앞섰어요.


ㅅㄴㄹ


손가락을 깨물고 싶다 / 혈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 갖은 이 설움의 깊이를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 수없이 갈아온 / 증오의 칼날을 가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부수첩 30 시들지 않은 사랑으로/74쪽)


사랑을 위하여 / 술을 끊기로 했다 / 환장하게 그리운 사랑아 / 이렇게 뜨거운 우리들 그리움에서 / 쓰디쓴 술냄새가 난다면 / 말도 안도니다 / 긴 밤을 박꽃처럼 지새운 / 그대 순결한 기다림의 가슴에 / 돌아가야 할 우리 / 펄펄 끓어야 할 젊은 심장에서 / 식어버린 술냄새가 난다면 / 말도 안된다 (술을 끊기로 했다/116쪽)


+


《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


혈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 핏글을 쓸 뜻이 아니라

74쪽


휭허니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 휭허니 타고 서울까지 가서

82쪽


나의 시는 그러한 나의 비겁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내 노래는 그러한 꼼수를 둘러댈 뿐이다

→ 내 노래는 그러한 굽신질을 감쌀 뿐이다

→ 내 노래는 그러한 더럼짓을 꾸밀 뿐이다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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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의 이름은 창비시선 269
최영숙 지음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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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5.

노래책시렁 278


《모든 여자의 이름은》

 최영숙

 창비

 2006.10.29.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픈 몸을 모릅니다. 배곯지 않은 사람은 배곯는 하루를 모릅니다. 앓아눕지 않은 사람은 앓아눕는 나날을 모릅니다. 가난해서 돈을 빌리는 살림이 아닌 사람은 가난살림을 모릅니다. 눈힘(시력)이 좋은 사람은 장님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이름난 사람은 이름 안 난 사람을 모릅니다. 모르니까 모르고, 어깨동무를 하니까 압니다. 그리고 어린이 곁에 서지 않는 사람은 어린이하고 나누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바꿀 말길하고 글길을 모릅니다. 《모든 여자의 이름은》을 쟁이고서 몇 해를 묵혔습니다. 노래님은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갔고, 이이가 남길 노래는 더는 없습니다. 한 꼭지를 읽고서 한 달을 보냈고, 다음 꼭지를 읽고서 두 달을 흘렸고, 한 꼭지를 더 읽고서 몇 달을 슥 지나갔습니다. 한때 권정생 님 글도 처음부터 아주 천천히 되읽은 적 있습니다. 이오덕 님 글은 진작에 모두 서른∼일흔 벌씩 되읽었지만, 천천히 곱새기며 새록새록 읽기도 했습니다. 이미 떠난 님이 남긴 글이기에 더 아름답지 않아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왜 되읽을 만하냐면, 스스로 노래하는 살림빛을 영글어서 얹거든요.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사람을 보고도 걸음을 안 늦추고 나란히 안 걷는다면, 그이는 이웃이나 벗이 아니겠지요.


ㅅㄴㄹ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세살 난 딸아이는 이렇게 말하지 / “누구 강아지?” “엄마 강아지” / “누구 딸?” “엄마 딸” / “누구 닮았지?” “엄마 닳았지” (잠든 아이의 배꼽을 보면/50쪽)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다 여기는 영혼이 몸을 가두는 곳, 낮과 밤도 없다 까마귀떼처럼 24시간 두 눈을 쪼아대는 형광 불빛 아래 몸은 잠들지 못한다 무덤 속이 이렇게 환하다면 사실은 아마 마음놓고 썩지도 못할 것이다 (응급실의 밤/64쪽)


+


집안의 슬픈 소사(小史)

→ 집안 슬픈 작은길

9쪽


이상한 서기(瑞氣)가 있다고

→ 다른 빛줄기가 있다고

→ 유난한 빛살이 있다고

12쪽


주일날 아이를 데리고

→ 해날 아이를 데리고

→ 쉬는날 아이를 데리고

19쪽


마음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여기서 본다

→ 마음구슬을 여기서 본다

→ 참된 마음구슬을 여기서 본다

35쪽


이제는 육탈해 거기 아니 계시겠지

→ 이제는 놓고 거기 아니 계시겠지

→ 이제는 벗고 거기 아니 계시겠지

41쪽


점심에는 식사 저녁에는 호프를 파는

→ 낮에는 밥 저녁에는 보리술을 파는

42쪽


어쩐지 말이 없는 그녀는

→ 어쩐지 말이 없는 그이는

→ 어쩐지 말이 없는 그분은

47쪽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 이제 막 말을 배우는

50쪽


할머니의 나들이는 흰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 할머니 나들이는 흰 고무신부터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는다

→ 할머니는 흰 고무신부터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으며 나들이를 연다

76쪽


불꽃의 시절이었지

→ 불꽃같은 날이었지

→ 불꽃같았지

→ 불꽃나날이었지

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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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행 창비시선 12
이성부 지음 / 창비 / 197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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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5.

노래책시렁 277


《百濟行》

 이성부

 창작과비평사

 1977.7.10.



  지나온 나날을 거슬러서 글을 읽노라면 뜻밖이거나 뜬금없구나 싶은 줄거리를 곧잘 봅니다. 그때에는 으레 그랬거니 하고 여길 줄거리가 아닌, 그때부터 이렇게 높낮이가 갈렸구나 하고 느낄 대목입니다. 그때부터 이런 글줄을 나무라거나 타박하지 않고서 버젓이 실으면서 ‘시’요 ‘문학’이라고 치켜세웠으니, 우리 글밭이며 책밭이 오늘날 같을 만하구나 싶어요. 《百濟行》을 모처럼 되읽다가 툭하면 술판을 벌인 글바치 뒷모습을 엿보고, 집안일을 않는 웃사내 몸짓을 느끼고, ‘시를 쓴다면서 밥어미를 거느리던 살림’일 수 있나 아리송하며, ‘철도 예순 돌’을 기린다는 글줄에 “어린 날 마신 술”을 읊조리는 이 터무니없이 철없는 사람들이 여태 뭘 해왔나 하고 곱씹습니다. 그들은 무슨 돈으로 술을 펐을까요? 그들은 어떤 술집을 드나들었을까요? 그들이 벌인 술자리에는 옆에 누구를 앉혔을까요? ‘백제길’처럼 적지도 못하고 ‘百濟行’으로 적으면서 한자 솜씨를 자랑하는 글은 낡아도 한참 낡았습니다. “내 革命도 짓밟아버린 지 오래면서 / 지 섹스도 가두어둔 지 오래면서”처럼 이녁 곁님을 깔보고 노리개처럼 바라보는 글자락이란 얼마나 안쓰러운지요. 그러나 그때에나 이때에나 이런 글이 아직도 시에 문학이라고 합니다.


ㅅㄴㄹ


우리나라는 왜 이다지도 / 노여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으냐. / 마련된 칼로 저마다의 가슴만을 찌르며 / 왜 이다지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냐. (밤샘을 하며/7쪽)


만나면 우리 / 왜 술만 마시며 / 저를 썩히는가. / 저질러 버리는가. // 좋은 계절에도 / 변함없는 사랑에도 / 안으로 문닫는 / 가슴이 되고 말았는가. (만날 때마다/34쪽)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면서 / 식구가 늘었으니 식모 없이도 된다면서 / 아내가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핀다. / 내 革命도 짓밟아버린 지 오래면서 / 지 섹스도 가두어둔 지 오래면서 / 조심스레 조심스레 / 나를 살핀다. (新生/48쪽)


미처 늦어버린 세월에도 / 自由에도 絶望에도 / 늠름한 勝利처럼 / 거만한 詩처럼 // 열차는 달려온다. / 어린 날 마신 술의 / 저 언덕 넘어서…… (列車, 철도창설 68주년 기념일에/105쪽)


+


《百濟行》(이성부, 창작과비평사, 1977)


깊은 밤 渾身의 힘으로써 간추린 이 한마디 말들을, 멈춘 시간의, 캄캄함 속을 빠지고 빠지다가

→ 깊은 밤 안간힘으로써 간추린 이 한 마디 말을, 멈춘 하루에, 캄캄한 곳을 빠지고 빠지다가

6쪽


더 큰 海溢을 거느리고 사랑을 거느리고

→ 더 큰 너울을 거느리고 사랑을 거느리고

17쪽


식구가 늘었으니 식모 없이도 된다면서

→ 손이 늘었으니 밥지기 없어도 된다면서

→ 사람이 늘었으니 드난이 없어도 된다며

48쪽


지 섹스도 가두어둔 지 오래면서 조심스레 조심스레 나를 살핀다

→ 지 살곶이도 가두어둔 지 오래면서 살살 슬슬 나를 본다

→ 지 밤일도 가두어둔지 오래면서 살그머니 슬그머니 나를 본다

→ 지 밤놀이도 가두어둔지 오래면서 나를 살펴본다

48쪽


어린 날 마신 술의 저 언덕 넘어서

→ 어린 날 술 마신 저 언덕 넘어서

10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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