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7
김바다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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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6.

노래책시렁 407


《싱글》

 김바다

 실천문학사

 2016.11.16.



  저는 어디를 가든 사람낯은 잘 안 쳐다보거나 아예 안 들여다봅니다. 이러다 보니 곧잘 만난 사람 얼굴이 안 떠오르거나 이름까지 잊기 일쑤입니다. 사람살이에서 얼굴을 잊거나 모른다면 참 허술한 셈일 텐데,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바깥에서도 으레 하늘부터 봅니다. 이다음에는 나무하고 풀꽃을 봅니다. 이러면서 새랑 풀벌레랑 벌나비를 보고, 바람에 햇살에 별을 보려고 합니다. 《싱글》을 가만히 읽다가 덮었습니다. 요새는 ‘싱글’ 같은 영어야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길든 말씨로는 스스로 새길을 호젓하게 나아가는 말길이나 글길하고는 좀 멀구나 싶어요. 우리말 ‘혼자’하고 ‘호젓’뿐 아니라, ‘홀가분(자유)’하고 ‘호미’가 서로 얽힌 줄 알아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빗물이 흐르는 ‘홈’하고 ‘혹’도 다 얽힌 낱말인 줄 얼마나 느낄까요. 한 사람은 ‘혼’이고, 다른 한 사람을 마주하면 ‘함’입니다. ‘한’하고 ‘함’은 길이 다르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모두 ‘하늘’을 품는 사랑입니다. 말 한 마디가 아무렇지 않을는지 모르나, 바로 이 수수한 말씨 하나를 고르게 여미면서 한참 마주할 적에는, 언제나 스스로 확 틔우는 글자락을 열리라 봅니다.


ㅅㄴㄹ


혼자 산다 /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싱글/12쪽)


아주 작은 구덩이에 다리 오그린 시를 눕힌다 / 이 끓는 시를 내린다 / 빈 젖 물고 숨이 멎은 / 시를 심는다 (은밀하게 위대하게/28쪽)


우리는 접시 위 덜 구운 스테이크를 향해 / 단정히 침을 뱉으며 팔리지 않을 시를 읽는다 / 시를 읽는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물병자리 우리는/101쪽)


+


《싱글》(김바다, 실천문학사, 2016)


유년(幼年)의 한낮

→ 어린 한낮

→ 어릴 적 한낮

11쪽


물이 나와 너를 고의적으로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굳이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일부러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애써 가르는 곳

12쪽


별들의 입은 재갈이 물려져 있다

→ 별은 입에 재갈이 물렸다

12쪽


한 장의 하늘 구름을 펼쳐놓았을 뿐

→ 한 자락 하늘 구름을 펼쳐놓았을 뿐

16쪽


각각의 얼굴 이두박근과 장딴지가 주목받는 동안

→ 딴 얼굴 위팔두갈랫살과 장딴지를 보는 동안

→ 다른 얼굴 위팔두살과 장딴지가 돋보이는 동안

22쪽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아무 상관없는 춤이 계속된다

→ 서로 헤아리지 않는 춤을 이어간다

→ 서로 들여다보지 않는 춤을 잇는다

→ 내내 서로 안 쳐다보며 춤춘다

34쪽


칼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 칼은 종이로 빚지 않았을까

→ 칼은 종이로 엮지 않았을까

41쪽


해부시간 팔딱거리던 개구리

→ 몸 째면 팔딱거리던 개구리

64쪽


이것은 인내심의 문제입니다

→ 참는 일입니다

→ 견디느냐입니다

86쪽


우리는 접시 위 덜 구운 스테이크를 향해 단정히 침을 뱉으며

→ 우리는 접시에 올린 덜 구은 두툼고기에 곱게 침을 뱉으며

→ 우리는 접시에 놓는 덜 구은 고기에 멋지게 침을 뱉으며

1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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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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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17.

노래책시렁 404

《겨를의 미들》
 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4.24.


  한밤에 마당에 서면 별자리를 읽습니다. 곧 봄빛이 퍼져 둘레가 따뜻하면 시골은 모를 내려고 못자리를 마련합니다. 하루하루 아이들하고 보금자리를 일구고, 우리 하루를 차분히 갈무리하면서 살림자리를 노래합니다. 어떤 사람은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용쓰는데, 즐겁게 일하면서 보람으로 삶을 빚는 일자리가 아니라면 부질없구나 싶어요. 《겨를의 미들》을 읽는 내내 말꼬리를 붙드는 올가미를 느꼈습니다. 오늘날 글자리란, “삶을 이루고 일구며 이으는 마음을 담은 말”을 글로 옮기는 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이름자리나 힘자리 같달까요. 지난날 중국을 섬기던 어리석은 사내들은 임금을 우러르면서 조아리는 한문을 끝없이 폈다면, 오늘날 문학은 삶자리에 발을 디디지 않으면서 꿈자리도 마음자리도 생각자리도 아닌, 서울자리에 스스로 갇히는구나 싶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글만 꿸 적에는 그릇이 아닌 굴레로 치닫습니다. 글 한 줄 없던 아스라이 먼 옛날에도,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만나서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숱한 이야기자리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헛바람을 걷어내어 노래자리라는 수수하면서 빛나는 길을 다시 찾아야 할 때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14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Open/49쪽)

+

《겨를의 미들》(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

기다림의 속도는 마지막에 빨라질까
→ 마지막에는 빨리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얼른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바로 기다릴까
9쪽

벌레의 이동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길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 나들이를 흙과 바람이 돕고
13쪽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 두루뭉술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 어정쩡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14쪽

애초부터 잘못된 지적도地籍圖 위에
→ 처음부터 잘못인 길짜임에
→ 워낙 잘못 담은 판짜임에
→ 이미 잘못 빚은 땅그림에
22쪽

나의 어린이 친구와 노인 친구와 먼저 사계절 친구가 되어야
→ 어린 동무와 늙은 동무와 먼저 줄곧 동무여야
→ 어린 벗과 늙은 벗과 먼저 늘 동무로 지내야
25쪽

넓어지려는 마음에는
→ 넓히려는 마음에는
30쪽

오프너를 찾는 사람 하려는 것들의 시작
→ 병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 몸짓
→ 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걸음
48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 익은 땅감이 너무 익듯 답치기로 무르는 몸 이야기 단단한 이 밤에 잠재우려고 해
49쪽

측은한 언사가 곱다면 인사의 기원부터 읽기로 하자
→ 가엾은 말이 곱다면 고갯짓 뿌리부터 읽기로 하자
→ 딱한 말곁이 곱다면 절하는 밑동부터 읽기로 하자
82쪽

7일간의 잠을 휴식이라고 한다면
→ 이레를 자며 쉰다고 한다면
→ 이레를 자는데 쉰다고 한다면
110쪽

안녕, 초로初老를 향해가는 어린이들 몇 번씩 죽으며 전진하고
→ 반가워, 늙어가는 어린이들 몇 판씩 죽으며 나아가고
126쪽

수치羞恥의 진가를 가늠하라고 했다
→ 얼마나 창피한가 가늠하라고 했다
→ 부끄러운 값을 가늠하라고 했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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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창비시선 158
이대흠 지음 / 창비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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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17.

노래책시렁 406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이대흠

 창작과비평사

 1997.2.1.



  내가 바라보는 곳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붉구슬 같은 열매를 주먹만 하게 맺는 나무를 바라볼 적에는 손끝과 눈길을 거쳐 불길 닮은 이슬이 스밉니다. 새끼손톱보다 작고 보랏빛은 봄까지꽃을 땅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마주하면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피어나는 숨소리가 퍼집니다. 왁자지껄한 서울 한복판에서 걸쭉한 말잔치에 끼면, 왁자지껄하고 걸쭉한 입심에 물들어요.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가 태어난 1997년 겨울을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저는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삽으로 눈을 푸다가 맨손으로 와락 씹었습니다. 키높이로 쌓이는 눈은 그칠 날이 없고, 배곪는 싸울아비는 함박눈을 뭉쳐서 밥을 삼았습니다. 나라에 왜 싸울아비가 있어야 하는지 곱씹어 보았지요. 땅을 갈아 기름진 논밭으로 일굴 사내를 바보짓으로 길들여 눈먼 바보로 뒹굴리려는 속뜻 같습니다. 글밭도 비슷합니다. 비슷비슷 구순하게 손을 내밀고 살을 섞고 몸을 비벼야 비로소 ‘서정문학’이라는 일본스런 이름을 붙이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참답게 ‘삶내음’이 흐르는 글자락이라면, 오순도순 부엌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돌보면서 벌나비랑 흙빛으로 어울리는 곳에서 고즈넉이 태어나리라 봅니다. 응큼스러이 불끈거리는 글치레는 낡았습니다.


ㅅㄴㄹ


그리운 것은 내 안으로 떠나는 것이다 // 다만 나는 / 내 속을 보지 못한다 (鵲枕/9쪽)


늙은 여자가 / 앞에 서 있는데 / 자리를 양보하기 싫습니다 차창 밖은 검은 세상 … 일곱 박스의 귤을 팔았습니다 / 리어카 끌고 셋방 갑니다 / 귤 껍질 벗기듯 마누라 벗기고 / 달콤하고 신맛도 좀 있는 밤 / 그런 귤쪽같이 붉은 시월입니다 (자화상/18쪽)


사랑이란 머릿속의 포르노 테이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 /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 나는 그다지 타락한 것 같지 않은데 / 너를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32쪽)


아침 일곱시 무렵에 전철을 탄다 / 허벅지가 드러난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어 있는 여자 순간 나는 / 본능만의 성교를 꿈꾼다 강간이나 / 추행이라는 무서운 말들이 / 내 안에 있구나 불현듯 / 아버지를 죽인 한 아들이 신문 속에서 / 내 마음과 함께 구겨지고 (전철은 나를 수행자로 만든다/42쪽)


저리도 많은 젖가슴 달고 / 정신이여 // 평생에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 풀로 돋아 //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 호랑나비는 하늘을 찢지 않으며 날아간다 (4·19 묘지에서/83쪽)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 창작과비평사, 1997)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 내가 없을 때 온누리는 짐승판이었다

→ 내가 없던 때는 온통 짐승나라였다

12쪽


이따금 하자 보수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고쳐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손봐야 할 때도 있지만

→ 이따금 기워야 할 때도 있지만

12쪽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 그리움이란 발딱질 다른 이름

→ 그리움이란 불끈질 다른 이름

32쪽


너를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 너를 만나면 몸섞고 싶다

→ 너를 만나면 살섞고 싶다

→ 너를 만나면 뒹굴고 싶다

32쪽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어 있는 여자 순간 나는 본능만의 성교를 꿈꾼다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은 가시내 갑자기 나는 몸을 섞고 싶다

→ 치마를 입고 내 앞에 붙은 가시내 문득 나는 부둥켜안고 싶다

42쪽


철든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노여움으로부터

→ 철들기란 둘레를 미워하는 마음부터

→ 철들려면 바깥에 발끈하는 마음부터

46쪽


평생에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풀로 돋아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 내내 풀어내지 못한 말이 풀로 돋아 젖내음 같은 바람 불고

8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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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교실 사계절 동시집 8
백창우 외 52인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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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398


《날아라, 교실》

 백창우 외 52사람 글

 김유대 그림

 사계절

 2015.12.22.



  시골에서 살아가며 둘레를 보면, 갈수록 새노래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이따금 마실을 가면, 새바라기를 하는 이웃이 조금 늘어난 듯 보여도, 막상 새터를 사람들이 모조리 빼앗거나 짓밟는 줄 못 느끼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아이도 서울아이도 둘레를 헤아리는 눈망울이 차츰 사라지고, 시골어른도 서울어른도 ‘어른’이란 이름이 안 어울리는 꼰대가 부쩍 늡니다. 《날아라, 교실》은 쉰두 사람이 쓴 글을 싣는데, 쉰두 사람 어느 누구도 시골아이 마음이나 삶에 다가서려는 줄거리를 엮지 않았습니다. 모두 서울아이 쳇바퀴와 수렁에 맞추어 줄거리를 엮는군요. 그야말로 이제는 서울도 시골도 온통 쳇바퀴에 수렁이니까, 이 쳇바퀴에 수렁을 다루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스스로 꿈을 그리도록 곁에서 이야기를 지필 줄 알아야 어른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어진 마음하고 먼 채 말장난으로 그친다면, 글이 아닌 그저 노리개일 테지요. 어린이는 배움터를 꼭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모든 곳을 놀이터에 배움터에 만남터에 쉼터에 마실터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놓친 채 글만 만지작거린다면 아이들도 글장난에 허울스런 말치레에 갇힐 뿐입니다.


ㅅㄴㄹ


풀꽃을 좋아하는 아빠가 / 양재천 둑에서 제비꽃을 캐다가 /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제비꽃 납치 사건-신형건/12쪽)


저 자동차들은 어쩌면 / 백 년 묵은 여우인지도 몰라요. / 꼬리를 감추고 사람들을 꼬드기는, / 백 년 묵은 여우, / 천 년 묵은 여우 (꼬리 달린 자동차-김철순/18쪽)


책 속에 사는 / 책벌레들아, 큰일 났어! / 아기돼지 삼형제랑 / 손오공이랑 / 백설공주가 / 만나서 뭘 했는지 알아야 해! / 난 책 안 읽었으니까 / 너희가 도와줘! (SOS!-이옥용/50쪽)


도둑님 도둑님 좀도둑님 / 우리 집 좀, 좀 훔쳐 가세요. / 우리 엄마의 좀 / 우리 아빠의 좀 / 까칠쟁이 누나의 좀 / 하나도 남김없이 / 모조리 좀 훔쳐 가세요. (좀도둑님께-박방희/69쪽)


성적을올리자 / 실적을높이자 / 목적을달성하자 // 왜 항상 내 주위에는 / 적이 많을까? // 아, 적적하다. (적-박정섭/79쪽)


아빠의 자동차는 크고 낡아서 / 소리가 요란합니다 (꿈나라 가는 길-윤제림/90쪽)


+


《날아라, 교실》(백창우 외 52사람, 사계절, 2015)


휴일이라 집에 놀러 온

→ 쉬느라 집에 놀러 온

12쪽


이웃 아파트 담장으로

→ 이웃 잿집 담으로

22쪽


먹이를 물고 재잘재잘대는데

→ 먹이를 물고 재잘대는데

24쪽


아무나 다 되는 건 아니래

→ 아무나 다 되진 않는대

36쪽


왜 항상 내 주위에는

→ 왜 늘 내 곁에는

79쪽


아, 적적하다

→ 아, 심심하다

→ 아, 따분하다

79쪽


별의별 모자 가운데

→ 온갖 쓰개 가운데

→ 갖가지 갓 가운데

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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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시선(솔의 시인) 4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402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허만하

 솔

 2002.12.10.



  우리 곁에 아이가 있으면 언제나 아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말빛을 펴게 마련입니다. 우리 곁에 아이가 없으면 아이하고 나눌 말씨를 잊게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곳에서 말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마음을 소리로 옮깁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에는 ‘문학이라는 시를 엮느라 흘리는 땀방울’이 가득합니다. 땀냄새 나는 글을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서 두바퀴를 달려 멧골을 오르내리거나 바닷가를 돌거나 들판을 가를 적이면, 머리부터 샘솟는 땀이 볼을 타고서 길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등판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핍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안 힘들어?” 하고 묻고,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 주면 언제나 즐겁지.”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은 수레에 앉아 노래하다가 잠들고, 아이들이 잠들면 이 두바퀴를 달리면서 숨이 가쁘더라도 찬찬히 고르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허만하 님은 ‘알뜰히 짜고 엮은 글’을 남깁니다. 다만, 아이한테 남겨 줄 만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짜는 꾸밈새’만으로는 빛이 나지 않고, 씨앗으로 싹트지 않거든요. 모든 새는 다 다르게 노래하는데, 다 다른 새소리를 글로 옮기려 한다면 ‘머리로 짜낼’ 수 있지 않겠지요.


ㅅㄴㄹ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높이뛰기 선수가 뛰어오른 하늘에서 잠시 머무는 것과 같다. (물결에 대해서/35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곰소 포구 지나 선운사 감나무 추운 가지 끝 노을 머금은 까치밥 찾는 길에 개펄빛 물결이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선운사 감나무/47쪽)


+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마음길을

15쪽


겨울나무의 혼은 오히려 건조하다

→ 겨울나무 넋은 오히려 딱딱하다

→ 겨울나무 숨은 오히려 깡마르다

16쪽


앞뒤로 겹치는 능선의 선율

→ 앞뒤로 겹치는 등성이를

→ 앞뒤로 겹치는 멧줄기를

19쪽


적설층의 시린 무게를 안고 빙하는 협곡을 서서히 흐른다

→ 시린 눈켜 무게를 안고 얼음은 고랑을 천천히 흐른다

→ 시린 눈더미를 안고 얼음장은 골을 넌지시 흐른다

→ 시린 눈밭을 안고 얼음더미는 골짜기를 가만히 흐른다

24쪽


낯선 지형이 풍경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곳이 그림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땅이 보일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31쪽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 물결은 무너지려고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무너지기 앞서 살짝 숨을 죽인다

35쪽


잔모래 풀풀 날리는 모래사장에 내려서서

→ 잔모래 풀풀 날리는 땅에 내려서서

→ 풀풀 날리는 모래밭에 내려서서

40쪽


다른 별의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투명한 표면장력

→ 다른 별 하늘에 뜬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볼록뜨기

→ 다른 별 하늘에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겉뜨기

46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 물결은 스스로 풀어낼 때까지 넌출진 첫물을 몸으로 밝힌다

→ 물결은 스스로 풀 때까지 뒤엉킨 첫날을 몸으로 털어놓는다

47쪽


인적 없는 해안선 물가를 걷고 있는 지금

→ 발길 없는 바닷가를 걷는 오늘

→ 조용한 바닷가를 걷는데

→ 허전한 바닷가를 걷는 이때

60쪽


아득한 탄생의 중심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남색 엷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첫복판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엷고 검파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처음마당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쪽빛 엷은 껍질을 찢고

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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