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 한국대표시 다시찾기 101
신현림 엮음 / 사과꽃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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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289


《정선 아라리》

 신현림 엮음

 사과꽃

 2018.2.1.



  글이 없이 말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부르던 노래를 갈무리할 적에는, ‘글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뿐 아니라, 글이 없기에 다투거나 싸우거나 자랑하거나 우쭐대는 짓도 없구나’ 하고 깨달을 만합니다. 두고두고 새기려고 글을 그립니다만, 마음에 오롯이 담을 줄 알면, 언제라도 마음밭에서 꺼내어 두런두런 이야기씨앗을 심을 만합니다. 《정선 아라리》는 뜻깊게 나온 꾸러미라고 느끼되, 읽는 내내 아쉽더군요. 아라리를 부른 순이는 짝짓기(연애)만 바라지 않습니다. 짝짓기를 바랄 때도 있으나, 짝짓기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아라리를 그러모으며 바라보는 엮은이 눈길은 짝짓기에서 맴도는 듯싶습니다. 들숲내를 품으면서 돌보는 길, 아이하고 이 숲을 품고 가꾸는 길, 순이돌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짓는 길, 스스로 하늘이 되고 메가 되고 내가 되고 비가 되어 빛나는 길, 이런 뭇길하고는 어쩐지 멀어 보여요. 삶을 담은 노래란, 살림을 실은 노래이고, 사랑을 펴는 노래이며, 어린이 곁에서 온빛을 속삭이는 노래입니다. 그저 먼 옛날부터 흐르고 흘렀기에 값진 가락이지 않습니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 사이에 고이 흐르는 바람과 해와 별을 느끼고 읽을 때라야 비로소 노래일 텐데요?


ㅅㄴㄹ


89. 지게를 만들 때는 나무를 하자는 말이요 / 총각색씨 걸어갈 때는 정들자는 말이다. (21쪽)


511. 산천에 초목은 나날이 젊어 가는데 / 이팔청춘에 이내 몸들은 왜 늙어가나 (74쪽)


796. 여다지 쌍다지 미닫이 문을 / 가만살짝 드러닫어도 소리만 나네 (1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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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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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4.

노래책시렁 328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최명진

 걷는사람

 2023.1.25.



  한숨을 쉬다가 읽습니다. 읽다가 한숨을 쉽니다. 책을 내려놓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책을 잊고서 새노래에 풀노래를 귀담아듣습니다. 이윽고 햇빛이 반짝이고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듣고, 어느새 해가 지더니 별이 돋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쓰거나 읽을 수 있다면, 새하고 바람뿐 아니라 해하고 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뜻이라고 봅니다. 들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못 듣는다면 붓을 쥐지 않을 노릇이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잊는다면 책을 펴지 않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들숲바다 품에 안겨서 삶을 짓는 사람일 텐데, 무엇을 쓰고 읽는가요?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는 “슬픈 불”도 “슬픔불”도 아닌 “슬픔의 불”이라고 적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말을 읽을 수 있나요? “눈발이 짙다”라 하지 못 한다면, “빵을 굽지” 않는다면, “띠처럼 돋는” 모습을 못 본다면, “더운밤에 끌리지” 않으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슬픔도 기쁨도, 삶도 죽음도 손바닥 뒤집기예요. 얼핏 있는 듯 보이나 막상 없는 허울에 사로잡힐 적에는 으레 말을 꾸미더군요. 속이 있는 듯 꾸미는 풀포기는 쭉정이입니다. 속이 있어야 ‘알차다’라 합니다. 알이 차야 누런들입니다.



화를 참는 건 아내가 할 일 내가 측은해 보이는 것도 아내가 할 일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오르막 오를 때 비닐봉지 훅 털어 버리려고 발 휘두르지만 (비닐봉지/16쪽)


아내와 싸웠다 아내는 지쳤다 예민하다는 말에 예민해 주고받다 보면 왠지 내가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지만 잘못이 늘 그 잘못이지만 (마스크팩의 여유/34쪽)


+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최명진, 걷는사람, 2023)


눈발이 점점 성해지고 있다

→ 눈발이 더 짙다

→ 눈발이 차츰 너울거린다

→ 눈발이 자꾸 춤춘다

11쪽


정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참말 골똘히 생각한다

13쪽


재래시장 돌고 나와 신호등 건너

→ 저잣거리 돌고 나와 길불 건너

16쪽


아빠가 빵 만든다

→ 아빠가 빵 굽는다

28쪽


오른편에 띠 형태의 발진이 오르더니

→ 오른켠에 띠처럼 돋더니

→ 오른켠에 줄줄이 오르더니

40쪽


내가 출퇴근하는 그 시간에 바구닐 들고 서 있다

→ 내가 오가는 그즈음에 바구닐 들고 선다

→ 내가 오고가는 그때에 바구닐 들고 선다

47쪽


열대야는 취객들을 쉬이 이곳으로 불러온다

→ 더운밤에 술꾼은 쉬이 이곳으로 끌린다

→ 밤더위에 술고래는 쉬이 이곳으로 홀린다

75쪽


오물세가 또 어쩌고

→ 구정삯이 또 어쩌고

→ 더럼삯이 또 어쩌고

→ 치움삯이 또 어쩌고

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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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엄지척 문학동네 동시집 81
권오삼 지음, 이주희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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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4


《너도 나도 엄지척》

 권오삼

 문학동네

 2021.6.18.



  잘할 수 있는 길이나 못하는 길은 없습니다. ‘잘하다·못하다’는 ‘잘생기다·못생기다’처럼, 사람들이 틀을 세워서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는 굴레나 수렁이에요. 누구를 뽑아서 일을 맡겨야 좋지 않아요. 누가 뽑혀서 어느 자리에 올랐기에 나쁘지 않아요. 해를 보고 별을 봐요. 새를 보고 비를 봐요. 들숲바다하고 풀꽃나무는 사람들이 어떤 씨앗을 심든 지켜봅니다. 누가 무엇을 하건 우리 스스로 마음에 사랑을 심고서 한 발짝씩 걸으면 됩니다. 누구를 뽑느냐가 아닌, 우리 스스로 어떤 터전을 일구려는 사랑을 서로 어깨동무로 나누려느냐 하는 마음일 노릇입니다. 《너도 나도 엄지척》을 읽었습니다. ‘엄지척’을 왜 해야 하는지 알쏭합니다. 잘했기에 엄지척인가요? 못했을 적에는요? 추킴말(칭찬)이 안 나쁘되, 섣불리 엄지척을 안 할 노릇입니다. 다독이고 달래고 함께 웃고 울며 도란도란한 길을 열어야지요. 오늘날 ‘어른 아닌 꼰대’인 분들은 ‘저쪽 놈들은 나빠!’ 하고 가르려고 하는데, 그런 말 한 마디가 바로 싸움(전쟁)입니다. 싸움말을 노래(동시)에까지 심으려 한다면,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비하고 바람이 왜 올까요? 말장난 아닌 삶읽기를 해야 하지 않나요? ‘착한마음’을 ‘훔쳐’서 주려 한다니, 너무 철없어요.



하늘에서 / 살수기 수억만 대가 / 물을 쏴아쏴아 // 선풍기 수억만 대가 / 바람을 쏴아쏴아 // 둘 다 고물인지 / 이리저리 / 제멋대로 뿌려 댄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25쪽)


양심이 없는 사람에겐 / 양심을 / 훔쳐서라도 주고 싶다 (어느 도둑 아저씨의 꿈/28쪽)


+


《너도 나도 엄지척》(권오삼, 문학동네, 2021)


다음은 제가 정한 제 동시나라 헌법입니다

→ 다음은 제가 잡은 노래나라 길입니다

→ 다음은 우리 노래나라 으뜸길입니다

4쪽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휙― 공중으로

→ 살짝 머뭇머뭇하다가 휙 하늘로

19쪽


기도할 때마다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야

→ 빌 때마다 비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 바랄 때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지는 않아

20쪽


이 어른 덕분에 모두 무사히 여름을 넘긴다

→ 이 어른 힘으로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 이 어른이 있어 모두 여름을 잘 넘긴다

76쪽


태극기들이 거리에서 국기게양대에서

→ 한나래가 거리에서 나래올림대에서

→ 한날개가 거리에서 나래걸대에서

8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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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바퀴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9
박설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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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7


《꽃은 바퀴다》

 박설희

 실천문학사

 2017.1.31.



  놀이하는 사람이 노래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놀이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놀이도 노래도 안 하는 듯싶습니다. 곰곰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말이 있기에,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우리말로 그리면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어린이가 아직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덜 익숙해서 비뚤비뚤 쓰더라도, 노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는 언제나 싱그럽습니다. 《꽃은 바퀴다》를 읽으며 새삼스레 ‘놀이·노래’하고 ‘시·문학’을 겹쳐서 봅니다. 자꾸 ‘시’를 쓰면서 ‘문학’을 하려고 들면 딱딱하게 굳다가 담벼락을 세웁니다. 이 딱딱한 담벼락은 지난 총칼사슬(일제강점기)부터 흘러온 일본스런 한자말씨입니다. 그리고 조선 오백 해를 가로지른 중국스런 한자말씨예요. 글이 아닌 말로 살림을 짓고 살아온 수수한 사람들은 ‘한문글’은 어림도 없었고 ‘우리글(훈민정음)’조차 쓴 일이 없지만, 입으로 늘 노래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이끌었어요. 오늘 우리가 쓸 글이라면 ‘놀이·노래’여야지 싶습니다. 즐겁게 하루를 일하면서 노래하면 됩니다. 즐겁게 어린이 곁에 서서 노래하면 됩니다. 걸으면서, 버스를 타면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면서, 잠자리에 누우면서, 별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노래하는 삶이면 됩니다.



책을 사고 컴퓨터를 사고 여행을 사고 / 사고 사고 또 사는 동안 / 난 살아 있다 // 사는동안 애인 / 사는동안 죽음 // 그러나 / 부동산을 사는 동안 / 애인을 사는 동안 / 죽음을 사는 동안 (사는 동안/34쪽)


+


《꽃은 바퀴다》(박설희, 실천문학사, 2017)


울울창창 무리 지어서

→ 들빛으로 무리지어서

→ 빽빽하게 무리지어서

→ 푸르게 무리지어서

11쪽


발에 새겨진 유전의 흔적은

→ 발에 새긴 씨앗은

→ 발에 새긴 자취는

12쪽


방목의 세월 푸르게 기다려

→ 놓아준 나날 푸르게 기다려

→ 풀려난 삶 푸르게 기다려

19쪽


나뭇가지처럼 중력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닌 걸

→ 나뭇가지처럼 끌힘을 이길 수 있지도 않은걸

→ 나뭇가지처럼 당겨도 이길 수 있지도 않은걸

20쪽


발화하고서야 수정하는 추신으로 이루어진 생

→ 터뜨리고서야 손질하며 덧붙는 삶

→ 피우고서야 꽃가루를 새로 맞는 삶

→ 말하고서야 덧보태는 살림

25쪽


내생을 기약하며 숨을 놓던 순간들

→ 다음을 기다리며 숨을 놓던 때

→ 뒷날을 그리며 숨을 놓던 무렵

48쪽


만장(挽章)이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 나래가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 날개가 지느러미처럼 너울거리고

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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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하늘 한 하늘 창비시선 75
문익환 지음 / 창비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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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0.13.

노래책시렁 368


《두 하늘 한 하늘》

 문익환

 창작과비평사

 1989.6.15.



  1989년을 떠올립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꼭두각시가 아닌, 옆집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높녘에 맨몸으로 걸어갈 수 있던 몸짓이 놀라웠습니다. 한겨레가 한나라로 어깨동무하면서 모든 싸움붙이(전쟁무기)를 녹여내는 길에 마음을 쏟는 할배라면,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거니 여겼고, 드디어 사슬 같은 배움터(의무교육 열두 해)를 1994년에 마치는데, 이해 1월에 늦봄 문익환 님이 숨을 거둡니다. 《두 하늘 한 하늘》을 틈틈이 되읽곤 했습니다. 2023년에도 새삼스레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잠꼬대’로는 꿈을 이루지 않아요. 그저 ‘잠’으로 꿈을 이룹니다. 애벌레가 고치에 깃들 적에 ‘잠’이라 합니다. 나비로 깨어나려고 오래도록 ‘잠들’어요. 워낙 사납고 캄캄한 사슬나라(군사독재)인 이 땅이었으니,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 노래할밖에 없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어깨동무는 나라(정부)가 해주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스스럼없이 숲살림에 들살림을 짓는 사이에 어느새 이루는 아름길입니다. 풀꽃나무는 서둘러 자라지 않아요. 모두 느긋이 찬찬히 자랍니다. 한겨레 한나라도 느긋이 빗물처럼 냇물처럼 바닷물처럼 나아갑니다. 너울만 치거나 눈보라만 일면 꽃이 못 피고 싹이 안 터요. 살림꾼으로 살아야 사랑입니다.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잠꼬대 아닌 잠꼬대/3쪽)


형님 형님 문석이형님 / 역사라는 게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 천년을 하루같이 느긋이 기다리는 면도 있어 / 그런대로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 구들장이 들썩들썩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 화끈하게 아궁이 군불 지피고 (문석이형님/96쪽)


+


《두 하늘 한 하늘》(문익환, 창작과비평사, 1989)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 난 올해에 평양으로 갈래

→ 난 올해에는 평양으로 가

→ 난 올해까지 평양으로 가겠어

3쪽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 난 꼭두각시라고 부르지 않아

→ 난 앞잡이라고 부르지 않아

→ 난 끄나풀이라고 부르지 않아

3쪽


갓 푸르른 모란꽃 망울

→ 갓 푸른 모란꽃 망울

14쪽


따다 남은 연시 하나

→ 따다 남은 붉감 하나

→ 따다 남은 감 하나

17쪽


흰 눈 위에 제 속살 다 비우고

→ 흰눈에 제 속살 다 비우고

17쪽


그대들의 진군 앞에서 혼란의 절벽 무너지고

→ 그대들이 밀려들어 어지러운 벼랑 무너지고

→ 그대들이 나아가니 어수선한 고개 무너지고

40쪽


망막 째지는 새 날

→ 눈그물 째지는 새날

4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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