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야, 자니? 산하작은아이들 39
이상교 지음 / 산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85 ― 사랑 잃고 돈 심은 자리에 시라는 씨앗 하나를
 : 이상교 동시모음, 《먼지야, 자니?》


- 책이름 : 먼지야, 자니?
- 글ㆍ그림 : 이상교
- 펴낸곳 : 산하 (2006.5.12.)
- 책값 : 9500원



 (1) 어린이를 보는 어른 삶


 옆지기가 아기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줍니다. 또는 아기한테 젖을 물린 채 노래를 불러 줍니다. 또는 아기를 눕힌 채 가슴을 살살 토닥이면서 노래를 불러 줍니다. 아기 얼굴에 잠이 가득한데 제대로 잠들지 못하면 저도 아기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줍니다. 아기가 잠에서 깨어 놀고 싶다고 할 때에도 아기를 어르거나 놀리거나 안으면서 노래를 불러 줍니다.

 다른 아기 어머니도, 또 아기 아버지도 이렇게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아기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기보다는 노래테이프를 돌리거나 노래시디를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나 아버지 목소리보다는 텔레비전 소리를, 또 셈틀 소리를, 또 손전화 소리를, 또 숱한 기계소리와 차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사〉

 “이거 너 줄까?”
 개울가에서 주운 거라며
 짝이 돌멩이 한 개를 내게 주었다.

 새알처럼 매끈매끈한
 돌멩이 한 개
 내 손에
 들어왔다.

 짝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쏙, 이사 들어왔다.


 지난날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 동시를 읽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동시 외우기 숙제가 꼭 있었고, 국어 시간에는 무서운 선생님이 시외우기를 한 사람씩 꼬박꼬박 시키곤 했습니다. 시 하나를 막힘없이 낱말 하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면 지나가지만, 낱말이나 토씨 하나라도 틀렸다가는 안경 낀 그 선생님 오른손에 들린 굵직한 몽둥이가 어느새 우리 머리통까지 날아와서 딱!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시를 싫어하지 않았고, 시 외우기가 그리 싫지는 않았지만, 빈틈없이 외워서 읊지 못하면 무시무시하게 내리치는 몽둥이 때문에 시를 가까이하고픈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습니다. 숙제로, 또 백일장 과제로 시를 깔짝깔짝 대기는 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나 꿈을 글 하나에 살뜰히 담아내는 일은 해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몽둥이찜질을 받으며 동시를 외우던 날이 스물 몇 해가 훌쩍 지나간 옛날 일이 됩니다. 우리 아기를 생각하면서 동시모음 하나 쥐어 봅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서 학교 갈 나이는 아직 멀었는데, 우리 아이도 학교에 다닐 무렵, 그 학교 교사는 우리 아이를 비롯해 숱한 아이들한테 시 외우기 숙제를 낼는지, 또 시 외우기를 못하는 아이한테 매질을 할는지, 시를 외우다가 토씨나 낱말 하나 틀리는 아이를 얼굴이 벌개지도록 나무라다고 손찌검을 할는지 궁금해집니다.


 〈책이 된 꽃〉

 꽃이 책이다.
 나비가 읽고 가는
 책.
 꽃내 스민 갈피 갈피를
 더듬이로 읽고 간다.

 꽃이 책이다.
 바람이 읽고 가는
 책.
 새로 돋은 침을 묻혀
 소슬랑소슬랑 넘겨 읽는다.

 꽃이 책이다.
 해님이 읽고 가는
 책.
 포시시 눈맞춤으로
 총총총 읽어 내린다.
 ……



 나이가 들어서 동시를 다시 읽고, 어린이시를 새로 읽습니다. 동시는 어른이 아이한테 베풀어 주는 선물이고, 어린이시는 어린이 스스로 즐기고자 쓰는 시이면서 어린이 동무한테 나누어 주는 선물인 한편, 우리 어른한테도 건네주는 선물입니다. 동시는 처음부터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쓰는 시이기에, 어른들이 동시를 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이 그대로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동시를 쓰는 어른들 마음결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마다 담긴 맛과 멋을 느낄 수 있고, 어린이와 함게 기뻐할 수 있어요.

 마음을 맑게 해 주는 동시가 아니라, 마음 맑은 어린이가 앞으로도 마음 맑은 어른으로 크고, 언제까지나 마음 맑은 사람이 되어서, 어린이 스스로와 어린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자연 목숨붙이와 삶터를 맑게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비손이 담긴 동시입니다. 마음이 맑은 어린이가 쓰는 어린이시가 아니라, 어린이 눈높이에서 꾸밈없이 쓰는 어린이시요,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 삶을 보여주는 어린이시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쓴 어린이시를 읽으면, 어린이 마음을 잃은 어른들이 미처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하는 잘잘못을 돌아볼 수 있는 가운데, 어린이가 무엇을 바라고 꿈꾸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한테 무슨 짓을 하는지, 또 무슨 사랑을 나누는지를 곱씹을 수 있습니다.


 〈먼지〉

 책장 앞턱에
 보얀 먼지.

 “먼지야, 자니?”

 손가락으로
 등을 콕 찔러도 잔다.
 찌른 자국이 났는데도
 잘도 잔다.



 아기는 저한테 장난을 치는 어른을 알아차립니다. 아기는 저한테 사랑을 쏟는 어른을 느낍니다. 아기는 저를 괴롭히는 어른을 알아봅니다. 아기는 저를 어루만져 주는 어른 손길을 압니다.

 아기는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할 줄 모르기에, 어설픈 어른들은 아기가 어른들 마음이나 뜻을 모르려니 잘못 짚곤 합니다. 그러나 말마디에 담기는 기운이 있고, 눈빛과 몸짓에 배인 낌새가 있습니다. 몸으로 살피는 아기이고, 마음으로 얘기 나누는 아기입니다. 참되게 기울여 주는 마음씀을 아는 아기이고, 사랑으로 다가와 주는 매무새를 느끼는 아기이며, 믿음으로 껴안으려는 손길을 붙잡는 아기입니다.

 우리들 어른은 정치를 하고 경제를 하고 문화를 하고 교육을 하고 과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한다고들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를 하는 동안 우리가 거쳐 왔던 어린 나날을 돌아보고, 지금 어린 나날을 보내는 아기를 둘러보며, 앞으로 태어나 자랄 아기를 톺아볼 수 있다면, 스스로 멈추어 고이는 일이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날을 못 보고 오늘날을 못 느끼며 앞날을 못 살피기에, 자꾸만 낡은 틀과 법과 테두리에 갇힌 채 얕은 셈속과 검은 돈과 먼지에 지나지 않는 끈만 부둥켜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매듭〉

 엄마를 좇아
 바느질을 한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맨다.

 “매듭을 지어 놓아야
 실이 풀리지 않는단다.”
 ……


 옆지기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나들이를 가서 열흘 남짓 머물고 있습니다. 아기한테 이모가 되는 처제는 바깥으로 볼일을 보러 나가거나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면서도 일산집에 머물고 있는 귀여운 아기가 생각이 나서 일찍일찍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인천과 일산을 오가면서 일을 하느라 고달프지만, 아기 기저귀를 빨거나 안고 어르며 노래를 불러 주거나 함께 놀 때에는 시름이 가십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어른 된 우리들이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는 매무새만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아이든 이웃 아이이든 살붙이 아이이든’ 둘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줄 알고 사랑할 줄 알며 껴안을 줄 아는데다가 돕고 함께할 줄 아는 몸짓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세상에는 따스함과 넉넉함이 좀더 넓고 깊이 자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배고파 칭얼대는 아기를 보면서 배고파 울고 있는 이웃을 보게 되고, 졸려서 잠들려는 아기를 보면서 잠잘 곳이 없이 한데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웃을 보게 되며, 신나게 엄마젖을 빠는 아기를 보면서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고단한 비정규직과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와 농사꾼과 낮은자리 일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큰이모부〉

 큰이모부는 착하다.
 나를 혼내지도 않고
 일찍 자라고 하지도 않는다.

 옷을 벗길 때는
 코나 귀가 뒤집히지 않게
 조심조심 벗겨 준다.
 코를 풀게 할 때도
 휴지로 코 밑을 세게 닦지 않는다.
 ……



 오늘도 인천으로 일하러 돌아오면서, 전철간에서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을 수없이 부대낍니다. 수없이 부대끼며 생각에 잠깁니다. 전철간 한쪽 구석에 서서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거나 거슬리지 않고자 있어도, 어김없이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책을 펼쳐 밑줄을 그어 가며 읽고 있는데 팔꿈치를 툭툭 치면서 미안하다 소리 한 마디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근 때라 미어터지는 전철 하나를 보내고 뒷차를 기다리며 맨 앞자리에 서 있는데, 어느새 제 앞으로 끼어들어 먼저 올라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그쪽을 쳐다보게 됩니다. 때때로 자기가 치고 지나간 사람 쪽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눈을 마주칩니다. 이때, 고개라도 살짝 숙여 준다면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가볍게나마 가라앉을 테지만, 똥씹은 얼굴이라든지 그예 메말라 비틀어진 얼굴로 콧방귀 뀌듯 잽싸게 돌려버리는 고갯짓을 볼 때면, 마음이 잔뜩 무거워집니다.

 이 나라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니된 지 오래되었고, ‘동방 예의지국’이란 웃기는 옛날이야기가 된 지도 오래되었지만, 낯모르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굴 수 있는 이 못나고 헐벗은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언제부터 이렇게 골고루 퍼져나갔을까 궁금합니다. ‘이웃사촌’ 사라진 지 까마득하다고 하지만, ‘이웃경쟁자’나 ‘이웃도둑’처럼 여기는 마음은 참으로 언제부터 우리 마음밭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강아지풀〉

 무릎에 올려
 안아 주고 싶다.
 강아지풀.
 ……



 돈만 버느라 마음이 돈다발처럼 차가워지고 말았는가요. 시 한 줄 읊을 줄 모르고, 아기한테 또 어린이한테 또 푸름이한테 또 젊은이한테 살가이 시 한 줄 읽고 나눌 줄 모르면서, 오로지 돈만 움켜쥐려고 하는 동안 가슴은 차갑게 식어 버리고 말았는가요.

 퀴즈대회에 나가서 ‘우리 말 달인’이나 ‘퀴즈 달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눌 아름다움은 하나도 모르는 바보가 되고 말았는지요. 대학 졸업장 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슬기와 가르침은 한줌도 챙기지 않는 얼간이가 되고 말았는지요.


 〈귀뚜라미〉

 밤길을 걸어 돌아오는데
 컴컴한 구석빼기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귀뚤귀뚤 귀뚜르르르

 귀뚜라미가 울자
 컴컴하던 그 구석빼기가 환해졌다.



 아기한테 동시 하나 읽어 주면서 제 마음속으로도 동시라는 씨앗 하나를 심습니다. 아기와 나란히 누운 옆지기한테 동시 하나 읊어 주면서 제 가슴속으로도 동시라는 새싹 하나를 보듬어 봅니다.


 (2) 동시모음 《먼지야, 자니?》


 1949년에 태어났으니 벌써 예순 나이가 된 이상교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먼지야, 자니?》를 읽습니다. 동시모음치고는 좀 두툼하고 책값이 센데, 시는 어렵지 않게, 또 금세 읽어 내립니다. 말끔하게 읽히고 깔끔하게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시와 함께 그림을 엮어 놓고 있어서, 시를 읽는 동안 말마디를 입에서 굴리고, 그림조각을 눈으로 담습니다.


 〈산새〉

 산새는
 노랫소리가 곱다.

 산에서 나는
 동그랗고
 예쁜 산열매를 따 먹고 살아
 노래가 동글동글 곱다.

 산새는
 날개 빛깔이 곱다.

 산에서 나는
 가지가지 빛깔
 산열매를 따 먹고 살아
 날개가 알록달록 곱다.



 드문드문 군더더기가 있네 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한 줄 또는 석 줄쯤 슬쩍 덜어내면 한결 매끄러우면서 깊이가 더해질 텐데 싶은 대목이 보입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도무지 겪어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쓴 대목이 보입니다.

 냇물이 말라 버린 대한민국이지만, 냇물이 남아나게 하지 않는 이 나라요, 그나마 냇물이 남아서 흐르는 곳에서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 주워 와 책상맡에 놓거나 동무한테 선물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겠습니까. 무시무시한 물길이 서울부터 부산까지, 또 서울에서 인천으로 난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품을 쓴다는데, 무슨 동시가 있고 어린이시가 있으며 어른시가 있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산에는 산새가 아닌 부동산투기만 있고, 그나마 남은 산에는 케이블카를 놓느니 구멍을 뚫어서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내느니 하고 시끌벅적한 이 나라입니다. 그나마 도시에서 참새나 비둘기를 구경하기도 수월하지 않을 뿐더러, 참새와 비둘기는 새로 여기지 않는 우리들이 되었는데, 그러면 ‘새’란 어떤 짐승을 가리키고, 새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는 좀처럼 생각해 내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부모님 자가용으로 학교에 갔다가, 노란 학원차를 타고 학원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오늘날 아이들인데,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도 이와 똑같은 굴레를 뒤집어써야 할는지, 앞으로는 달라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걸어서 학교에 가거나 자전거를 몰고 학교에 가거나 버스를 잡아타고 학교에 갈 아이들이 늘어날 수 있을는지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하고 골목길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도 골목길은 차츰차츰 사라질 뿐더러, 골목길이 고즈넉하게 남아 있는 우리 동네에서조차 아이들은 걷지를 않고 차를 탈 뿐입니다. 골목꽃과 골목빨래와 골목집과 골목사람 자취를 나누고 싶어도 학원에 매이고 시험교재와 학습지에 매이게 되는 아이들이니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섬돌 밑에 줄기를 밀어낸 길풀을 들여다보자고 할 수 없습니다.


 〈봄눈〉

 보풀보풀 눈송이 속에
 풀씨.

 보풀보풀 눈송이 속에
 풀꽃씨.

 흙에 발이 닿자마자
 풀씨, 풀꽃씨 내려놓고
 보풀보풀 봄눈 숨지고 만다.

 숨진 자리마다
 풀은 돋아 자라고
 눈송이만 한 풀꽃을 매단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굴리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눈놀이를 즐기는 우리들이 아니라, 찻길에서 차가 못 다닐까 근심스러워 염화칼슘 뿌려대는 어른이 되고 만 우리들입니다. 고작 차유리에 내려앉은 얇은 눈더미를 긁어서 대충 뭉쳐서 던지고 끝납니다.

 사랑을 잃은 어른이라 사랑을 못 얻는 아이들이 되어 가는구나 싶습니다. 사랑 잃거나 버린 자리에 돈을 끼워넣었으니, 돈은 넘치고 쎄서 모자람 없이 장난감을 사고 엠피쓰리를 들으며 알록달록 새옷을 차려입는 아이들이 되어 가는구나 싶습니다.

 동시가 박제가 되고, 어린이시가 논술지옥이 되는 때입니다. 《먼지야, 자니?》라는 동시모음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쓰다듬습니다. (4341.12.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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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문학의전당 시인선 32
김정희 지음 / 문학의전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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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83 ― 시로 가고, 사람으로 가다, 사랑으로 가는 길
 : 김정희 시,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 책이름 :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 시 : 김정희
- 펴낸곳 : 문학의전당 (2007.4.30.)
- 책값 : 7000원



 (1) 시로 가는 길


 시인 한 사람 알고 지내면서 틈틈이 만나게 되면, 만날 때마다 시집 한 권 읽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인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시인한테 몇 마디 듣고 이야기를 들어도, 또 물끄러미 시인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시집 한 권 읽는다고 느낍니다.

 그냥저냥 책만 읽고 살다가, 이냥저냥 책쟁이들만 만나고 살다가, 뜻하지 않게 시인과 어우러지는 자리에 끼게 되면,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말없이 찻잔이나 술잔을 들거나 말없이 사진기만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 거나해진 아버지
 자전거 뒤꽁무니에 나를 앉히며 말했다
 기왕에 가는 거
 저놈에 달도 태우고 가자꾸나

 아버지 등과
 내 배 사이에
 대소쿠리만 한 달이 끼어 앉았다
 셋이서
 창영동 고갯마루 길을
 달려 올랐다  (보름달 속으로 난 길)



 지난 7월 26일, 동네 헌책방 아주머니가 손수 나무질을 하여 마련해 놓은 조촐한 ‘시 다락방’에서 시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제 목소리를 제 빠르기에 맞추어 읽어 나가는 자리였는데, 이런 시읽기를 마친 뒤에 퍽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막걸리집으로 옮겨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멀거니 떨어져서 사진만 찍었고, 어느 만큼 거리를 지키면서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시인은 여느 사람하고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이었고, 시인을 둘러싼 사람도 시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시를 쓰고, 다른 사람은 시를 즐길 뿐이었지요.


 고양이 한 마리
 사차선 도로를 횡단 중이다
 화적 떼처럼 달겨드는 불빛파도를 헤치며
 이리저리 발을 놓는
 아찔한 곡예
 귀가를 서두르는 차들은 좀체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놈은 흰 차선을 보루 삼아 가까스로 生을 지켜내고 있다
 이승과 저승이 한 線 위에서 흔들린다
 놈은
 목숨줄을 당겨 잡고 힘껏 뛴다 그러나
 어느 자동차 속도의 칼날에 가차 없이 끊어져버리는
 줄.

 순식간에 바닥이 되어버린 놈을
 上弦이 내려다본다
 끝내
 이르지 못한 길의
 광고탑에 내 걸린 교통상해보험 현수막이
 한 옥타브 높게 울어댄다
 초저녁이다  (닿지 못한 길)



 오늘 저녁,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당신 손주 돌잔치를 하는데, 저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해 옵니다. 그러마 하고, 얼마든지 찍어 드립지요, 하는데, 같이 잔치자리에 가자면서, ‘우리 아저씨 오늘은 (택시) 운전 안 하고 술 드신다고 했는데, 술 드시지 말고 운전하라고 해야겠다’고 하시기에, ‘오늘 같은 날은 (택시기사인 분도 다른 사람이 모는) 택시 타고 가야지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일삯을 안 받고 찍어 주는 돌잔치 사진이요 혼례잔치 사진이며 시읽는잔치 사진입니다. 벌써 석 달이 훌쩍 지나간 7월 끝무렵 시인 한 사람을 만나 찍던 사진도, 그저 부탁을 받으면서 찍는, 그러나 부탁만으로는 찍지 않고 나 스스로 그 시인을 마음에 담고 또 사진으로도 담고 싶어서 찍는 사진이었기에 늘 마음이 벅찹니다. 부풀어오릅니다.

 시인은 시를 쓰고, 읽는이는 시를 소리내어 읊고, 사진쟁이는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사진기 단추 소리와 시 읊는 소리가 하나로 엮이고, 시인이 또박또박 적어내려간 글줄이 사진 한 장 두 장 올올이 새겨집니다.


 반세기 동안이나 吳氏네 식구들을 품어온 집이
 포클레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기왓장들 밑에 엎드려 있던 침묵과
 거기 기대어 허공 바라기 하던 담쟁이덩굴
 담벼락의 소변금지와
 밤 청춘들의 입맞춤을 눈감아주던 능소화가
 일순 세상 바깥으로 쓸려나간다

 길은 희미하다
 먼지로 돌아가는 것들의 비명이
 마을을 흔들어댄다
 ……  (다녀가다)



 시란 무엇일까, 사진이란 무엇일까, 글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문화란 무엇일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가운데, 시읽는잔치 사진은 이백 장 가까이 찍게 되고, 저녁나절 시디 한 장에 구워서 이튿날 우편으로 시인한테 부칩니다. 시인은 사진을 찍어 주기만 해도 고마웠다며 당신이 손으로 이름을 적은 시집을 한 권 내어줍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제 주머니에서 돈 칠천 원을 꺼내어 당신 시집을 사서 미리 읽었는데.

 손때 타며 읽은 시집은 한쪽에 꽂고, 손때 안 탄 말끔한 시집은 옆에 나란히 놓습니다.





 (2) 사람으로 가는 길


 제 일터인 도서관에 오늘 찾아온 손님은 둘. 한 분은 “도서관 맞지요? 그런데 여기가 책을 파는 곳입니까, 보러 오는 곳입니까?” 하고 묻기에, “네, 여기는 책을 보는 곳입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네, 잘 알겠습니다.” 하고는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돌아갑니다. 처음 들어서면서 “도서관 맞지요?” 하고 물었으면서, 왜 “책을 파는 곳입니까?” 하고 물었는지 궁금하지만, 그분한테는 당신 주머니를 털어서 책을 사는 일만 즐겁고, 걸상에 앉아서 가만히 책을 읽고 돌아가는 일은 즐겁지 않으신 듯합니다.

 마음에 담는 책이기에 내 물건으로 삼지 못한다고 해도, 찬찬히 책장을 넘겨 읽는 동안 가슴이 꽉 차 오른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런 생각은 제 섣부르면서 짧은 생각이었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윽고 다른 손님 한 분 찾아옵니다. 조용히 책을 둘러보고, 이곳저곳 쌓여 있기도 한 책을 살며시 집어서 웃음 띤 얼굴로 펼쳐봅니다. 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제 일을 하다가, 매실을 탄 찬물과 찐고구마 하나를 내어드립니다. 손님은 발소리를 죽인 걸음으로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한 권씩 끄집어내어 읽은 다음 제자리에 꽂아 놓습니다.

 책을 그 모습 그대로 즐겨 주는 모습이 고마워, 그동안 찍어 놓았던 골목길 사진 묶음을 슬쩍 건네며, “마음에 드시는 사진 있으시면 한 장 가지셔도 돼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도서관 빨랫줄에 줄줄이 걸어 두어도 괜찮지만, 반가운 손님한테 한 장씩 나누어 주어도 좋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서관 책들을 바깥으로 빌려 주지는 않아도, 애타게 찾거나 바라는 분이 있으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그 책을 찾아내어 선물해 드리기도 합니다. 때때로.


 三伏고개 무사히 넘긴
 똥개 한 마리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실려 십정동을 떠난다
 누렁이는
   미안허다 미안허다아
 중얼대며 손 흔드는 노파의 가슴에다
 눈빛을 박은 채
 철창바닥에 엎드려 간다
 매일 핥던 밥그릇과 잔등에 머물던 주인의 손길
 누비고 다니던 골목의 냄새와
 사나운 기억들을 끌고
 아구탕 집 아리랑모텔을 지나
 중국식품점 모퉁이를 돌아
 간다
 ……  (십정동―이별)



 골목길을 찍은 사진은 골목길에서 골목사람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발자국입니다. 내 모습, 여기에 이웃 모습, 그리고 우리 모습을 꾸밈없이 담아 보고자 합니다. 잘나지 않았으나 못나지도 않은 모습입니다. 남다르지 않으며 저마다 제 깜냥과 그릇에 따라서 채워 가는 모습입니다. 어여쁘거나 아름답다고 추켜세우지 않는 모습이나 꾀죄죄하거나 지저분한 모습도 아닙니다. 낡은 옷을 입었어도 옷이요, 오래된 신을 신었어도 신이며, 나이먹은 사람도 사람입니다. 나이가 먹었으니 빨리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며, 오래된 책이라 해서 케케묵은 책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책은 책입니다. 사진 또한 예술 사진도 다큐 사진도 아닌 그저 사진입니다. 사람을 찍어도 사진, 자연을 찍어도 사진입니다.


 해가 서쪽 하늘에 누운 한여름날
 볼일 보고 돌아오는 골목길에
 거친 숨소리 흩어진다
 고개 돌려보니
 한 사내
 홀로
 황홀해하고 있는 중이다 한창
 부끄럼도 없이
 노을보다
 붉은 얼굴로  (십정동―바바리맨)


 처음 사진을 찍던 때부터, 제 사진은 이웃들한테 나누어 주었습니다. 바라는 사람마다 한 장씩, 또는 여러 장씩 찾아 주었습니다. 그러느라 필름값보다 더 많은 돈을 쓰면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제 사진기에 찍히는 사람들은 자기한테 돌아오는 열매(사진)를 보면서, 하루이틀 지나는 동안 제가 사진기를 들고 앞에서 깝죽거려도 스스럼없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렇습니다. 시인을 둘러싼 사람들이 시인하고 꼭 같은 매무새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시인이 제 삶과 살을 바쳐서 이루어 낸 열매인 시를 스스럼없이 누구한테나 나누어 주었기에, 시 하나 받아먹은 이웃사람들도 꼭 같은 시마음이 되는 한편, 당신 스스로도 시인한테 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곁지기가 되지 않느냐 싶어요.


 한길에서
 차에 치어죽은 쥐를 보았다
 죽음이란 저리도 납작한 것이던가

 광고지가 차 바람에 날려가
 놈의 허리께를 덮었다
 놈은 그 순간
 “싼 이자로 돈 빌려드립니다”가 되었다  (변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함께 쓰고 즐기는 시입니다. 함께 찍고 나누는 사진입니다. 그림그리기도, 글쓰기도, 다른 모든 문화와 예술도 서로 어깨동무를 겯으며 합니다. 망치를 들건 호미를 들건 우리들은 서로서로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땀꽃을 맺습니다.

 이야기꽃은 서로서로 마음으로 파고들며 일하는 고단함을 잊도록 합니다. 땀꽃은 땅으로 스며들며 우리한테 고마운 밥거리를 선물해 줍니다.





 (3) 사랑으로 가는 길


 시집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나서 석 달에 걸쳐 되읽고 새로 읽습니다. 금세 읽을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시였고, 두고두고 또 읽을 만큼 가슴을 적시는 시입니다.

 시란 이렇구나, 이래서 시를 쓰네, 이러니 시집을 사서 품에 안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는 꿈을 꿀 테지, 하는 생각이 몽글몽글 이어집니다. 그러나 시집 끝자락에 붙은 어느 문학평론가 풀이말은 영 와닿지 않습니다. 시면 시지, 시를 도마에 올려놓은 물고기로 아나 싶은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문학을 배우거나 가르칠 때에 모두 이렇게 배우거나 가르치니까 다들 시를 재미없어 하겠다는 생각이 잇따릅니다. 시를 시 그대로 껴안도록 하지 못하고 울타리를 쌓으려고 하니 시를 쓰는 사람 스스로도 사람들하고 금을 긋고서 고개가 빳빳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시를 시 모습으로 받아먹으면서 자기 몸을 시하고 맞추지 못하는 글로 시를 말하니, 시를 말하는 사람 스스로 참살길을 헤아리는 슬기가 아닌 밥벌이 노릇 하는 평단과 강단에만 서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는
 365일 전경들의 경호를 받는다
 총부리 치켜들고 인천 항구를 밟은 뒤
 반세기가 넘도록
 제가 건너 온 바다만 바라보고 서있는 異國사내
 그의 발밑은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지뢰밭이다
 충돌한다 충돌한다
 빨강과 파랑이, 꽃과 돌멩이가,
 그 틈에서
 조선의 아들들 고추바람 뚫고 밥을 먹는다
 거대한 제국의 채찍을 막느라
 더글라스 맥아더 저
 구리인간의 옆구리를 지키며
 엄동설한 한데 밥을 먹는다

 어디서 보았는가
 들었는가
 이런 광경을
 참으로 기이해서
 눈물이 다 나는  (작은 전설―자유공원의)



 히유, 한숨 짧게 내뱉고 옥상마당으로 올라가 기저귀 빨래를 걷습니다. 오늘은 옆지기가 2/3쯤을 빨고 저는 1/3만 빨았습니다. 그러나 빨고 나면 새 빨래가 나오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 개면 앞서 빨아 널은 빨래가 마릅니다. 하루 내 기저귀 스무 장 남짓이 돌고 돌아 아기 사타구니에 대여지고 대야에 담가지고 두 손에 빨려지고 햇볕에 말려지고 다시 두 손에 개어집니다.

 햇살을 받으며 빨래를 다 걷고 나서 잠깐 뒤로 돌아서 지붕 낮은 골목집 동네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고작 4층 옥상집이지만, 동네를 훤하게 내려다보게 됩니다. 4층만 해도 대단히 높은 층입니다. 2층만 되어도 이웃집을 건너다볼 수 있으니까요.

 나도 시를 쓸까, 내가 시를 쓰면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내가 쓰는 시는 누구한테 즐겁게 읽힐 삶자락으로 다가갈까.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에 앞서, 내가 찍는 사진 하나가 바로 시요, 내가 좋아하면서 손에 살며시 집어드는 책 하나가 시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
 편지를 읽는 사이
 마음에 켜진 등불로 한껏 밝아진 나는
 종일 어두워지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별들을 헤치고
 내 안으로 든 기린이
 나를
 詩의 門으로 데리고 들어가
 목을 축여주었다
 오랜만에 단잠 이뤘다  (나뭇잎 편지)



 옆지기는 옛동무한테 손으로 편지를 한 장 써서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옵니다. 저도 며칠 사이로 우리 아버지한테 편지를 한 장 써서 부쳐야겠습니다. 곧 아기 돌도 다가오니, 돌잔치를 할 때 놀러오시라고 편지를 띄워야겠습니다. 우리 아기 돌잔치에는 뷔페니 뭐니 하나도 안 하고, 동네 헌책방골목 ‘시 다락방’에서 우리 아기와 우리 두 가시버시가 이 땅에서 씩씩하고 꿋꿋하고 튼튼하고 싱그럽게 살아갈 힘을 내도록 이끌어 주는 시를 열 꼭지건 스무 꼭지건 골라서 나누어 읽는 자리로 마련하려 하니, 아버지도 시 하나 읽어 주어 우리를 축복해 주십사 하고 편지를 띄워야겠습니다. (4341.10.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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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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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만에 다시 읽고, 다시 쓰는 소개글입니다 ^^;;;; 예전 글은 너무 부끄러워서~~)


-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 우리 삶을 옥죄는 비바람은 무엇일까
 [말을 붙잡는 시 5]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1〉 어떤 끝을 볼 수 있을까


 엊저녁, 잠깐 밤마실을 나옵니다. 언제 사 두었는지 알 길이 없는 김빠진 맥주 하나가 냉장고에 있더군요. 날이 차츰 쌀쌀해지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냉장고 돼지코를 뽑을 생각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냉장고를 돌렸지만, 추운 겨울에는 냉장고를 쓰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다치지 않아요. 마음 같아서는 여름에도 냉장고를 끄고 싶으나,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무튼, 냉장고에 들어 있던 맥주를 치워내야 하기에, 안주거리 될 만한 과자부스러기라도 살 생각으로 동네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여덟 시만 되어도 가게문은 거의 다 내리고 조용해지는 배다리 골목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쉬는 날
 저녁시장에 갔던
 아내가 내온 방울토마토
 웬 방울토마토?
 퉁명한 내 말에
 요즘 시장에서 제일 싼 게
 방울토마토라 한다
 …  〈방울토마토〉



  사람도 뜸하고 차도 뜸한 길을 설렁설렁 걸어갑니다. 얼마 앞서 다시 연 ‘24시간 불가마 찜질방’을 왼쪽으로 끼고 걷습니다. 저 찜질방은 이 동네에서 얼마나 장사가 되려나. 예전에 장사가 안 되어서 문을 닫았을 텐데.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산업도로를 닦는다며 파헤쳐 놓은 길 옆을 지납니다. 그나마 마을 분들이 힘을 모아서 이 공사를 멈추게 했지만, 개발업자는 언제 다시 삽날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라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요, 어처구니없는 막공사입니다. 동네사람들도 참 어리석었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개발업자와 인천시 담당공무원 들은 ‘여느 길 하나 닦는다’는 거짓말로 동네사람들을 속였더군요. 아무렴. 컨테이너차나 덤프가 씽씽 내달리는 산업도로를 닦는다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어느 누가 도장을 찍어 주었을까요.


 양손에 수갑차고
 끌려가지 않아도
 감방에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리들 생존의 벌판
 깊숙이 파고든 손길

 노동자 관리리스트
 A, B, C 등급
  A : 특별 관리대상
  B : 잡무 우선배치
  C : 특근 잔업 전혀 없음
 … 〈구속 2〉



 할배와 할매가 번갈아 지키는 구멍가게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셔요” 하고 고개숙여 꾸벅 인사를 합니다. “어!” 하고 인사를 받는 할배는 가게 불을 켭니다. 손님이 들어올 때에만 가게 안쪽 불을 켭니다. 할배는 텔레비전 역사연속극을 보고 있습니다.

 과자부스러기 몇 점을 집다가, 막걸리도 한 병 집습니다. 늘 마시던 소성막걸리는 다 떨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누룽지막걸리를 집습니다.

 우리가 고른 물건이 셈대 위에 놓이니, 할배는 뒤쪽에서 주판을 꺼내어 톡톡톡 알을 놓습니다. 속으로, ‘아이고, 사진기 가지고 나올걸. 잠깐 나온다며 사진기를 괜히 놓고 왔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할배가 한 마디 건넵니다. “옥상에 있는 꽃 사진으로 찍지 않을래?”


 일요일 한 번 쉬어 보는
 절실한 노동자들
 다 버려 두고

 통념도 상식도 다 무시하고

 공공부문
 몇 천 명 사업장
 먼저 쉬어야 하는가

 공익 위해서라도
 공공부문 사업장보다
 선방공 용접공 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노동강도를 따져 보아도
 근무조건 열악한
 작은 공장 노동자들
 먼저 쉬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몇 천 명 쉬는 것보다
 몇 명 쉬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주 5일 근무 2〉



 할배는, 셈을 마친 뒤 가게문을 잠깐 내리고 우리를 이끌며 가게 옥상이 올려다보이는 골목 안쪽으로 갑니다. “저기 하얀 꽃 보이지? 희귀한 꽃이라는데 참 예쁘게 잘 피었어.” “그러네요. 지금은 어두워서 찍을 수 없고, 내일 아침이나 낮에 다시 올게요.” “그래, 아침에는 내가 없을지 모르지만,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사진으로 찍어.”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할배네 옥상에 온갖 꽃이 가득하던데. 석류도 있고. 그 꽃들을 혼자서만 즐기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셨을까. 보기 좋은 꽃이라면 이웃들한테도 내보이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을까. 골목길 바깥쪽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내놓고 키우는 모든 살림집 어르신들 마음도 이와 같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도화동 어느 집 감나무를 구경하면서 나무가 참 좋다고 말하니 그곳 집임자가 웃으면서 좋아했는데.’


 …
 담배 한 갑에도
 소주 한 잔에도
 온갖 세금들이 다 떨어지고
 의무만 존재할 뿐
 …  〈이민을 꿈꾸는 것은〉



 집에 닿아 먹자판을 벌여 놓고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영화를 찍는다는 대학교 아이들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어제부터 무언가를 찍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른저녁부터 동틀녘까지 퍽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주려나? 동네길에서 밤늦게까지 영화를 찍는다고 부산을 떠니, 그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옵니다. 그나저나 저 젊은 아이들이 찍는 영화는 무엇을 주제로 삼고 있을까. 무슨 줄거리를 찍기에, 꼭 헌책방에 와서 찍어야만 했을까. 저 젊은 아이들한테 헌책방이란 어떤 곳일까. 저 젊은 아이들은 영화를 찍기 앞서, 그리고 영화를 찍은 다음에, 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자기 마음밭을 일굴 책을 차분히 즐길 수 있을까.


 아이들 학원비며
 집장만하며 낸 대출금이자
 각종 공과금
 들어갈 건 많고
 손에 묻은 밥풀 같은 월급 쪼개어도
 생활비는 늘 모자란다
 …  〈금 닷돈〉



 남쪽 바다에는 태풍이 찾아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동네에도 거센 바람이 씽씽 붑니다. 아직 비바람으로 몰아치지는 않습니다. 낮에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더니, 매지구름도 보이고 먹구름도 드문드문 보이던데. 문득, 볕드는 날이 줄고 비가 잦은 올해 날씨는,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먼지띠를 많이 씻어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먼지띠는 고스란히 바다로, 땅속 깊이 스며들었을 테지요. 덕분에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햇볕 맑게 내리쬐는 날, 가끔이나마 눈이 살짝 부실 만큼 빛살이 좋고 하늘이 파랗기도 했어요.


 정규직은
 아예 모집하지 않는다

 정규직을 모집한다 해도
 젊은 사람 오지 않는 공장

 비정규직 라인에 붙이건만
 점심시간 되기도 전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아서 일하고 있는 공장  〈3D 공장〉



 막걸리를 마시다가 다 마시지 못하고 1/3쯤 남깁니다. 늘 마시던 막걸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속에서 잘 안 받습니다. 마개를 꾹 닫고 자리를 치웁니다. 셈틀을 잠깐 켜고 버마사람들 소식을 살핍니다. 이제서야 이 나라 적지 않은 사람들도 ‘미얀마’가 아닌 ‘버마’임을 조금씩 느끼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로 이 땅을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고향나라에서 민주주의 되찾는 싸움을 하다가 쫓겨나고 내팽개쳐진 ‘망명가’임을 차츰 깨닫고 있을까요. 글쎄, 글쎄. 글쎄, 모르겠습니다.


 …
 축배를 들며
 아이엠에프를 극복했다
 야단이면 무엇 하나

 늘 우리는
 하루 해가 길기만 하다  〈땜방〉



 어제는 도원역 건너편에 있는 닭집에 들렀습니다. 닭집에 앉아서 옆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닭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야 하는데, 아직 못 뽑아서 이렇게 힘들어요.” 하고 말하는 두 분. 아주머니는 쉴 틈 없이 닭을 굽고, 아저씨는 숨돌릴 겨를이 없이 배달을 나가고.

 사람들이 집에 앉아 전화기 단추만 꾹꾹 눌러서 시켜먹기만 하는구나 싶은 한편으로, 이런 밥집이나 술집 일거리조차 안 찾는구나 싶은 생각.

 낮에는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머리에 지식만 쌓아 놓고 있는 사람들은 헌책방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무식한 사람들이나 헌책방 장사를 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고. 가슴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네들은 헌책방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큰놈 작은놈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갔다가
 체육공원 잔디밭 간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는 일요일도
 공장에 일하러 간 날들을 헤아려본다
 …  〈일요일 2〉



 저녁 열한 시 넘어까지 다니는 버스. 열두 시 넘어까지 오가는 전철. 버스 소리와 전철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눕습니다. 때때로 짐기차가 지나갈 때면 건물이 웅웅웅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립니다. 우리가 깃든 이 집은 1958년에 지은 집. 어느덧 쉰 해 동안 온갖 소리를 받아들이고 온갖 흔들림에 익숙해졌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세월을 온갖 소리와 흔들림을 껴안으며 이 자리에서 꼿꼿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영화 찍는 젊은이들은 아직도 부산한가 봅니다. 오늘까지만 찍고 내일은 안 올까. 내일도 영화를 찍으러 올까.


 〈2〉 시집 하나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가
 갑자기, 직책이 뭐냐
 직장생활 십 년 넘도록 했으모
 무슨 직책이 있을 거 아니냐고 묻는다

 평생을 다녀도
 직책 같은 것 없이
 급수만 올라간다고 했건만

 직책이 없다는 말에
 마냥 섭섭해 하신다  〈직책〉



 시집 하나를 다 읽어냅니다. 네 해 앞서 한 번 읽고, 사이에 한 번 잠깐 들추었다가 책꽂이에 꽂아 두고는 잊었는데, 보름께 앞서부터 다시 생각이 나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읽어냅니다.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그대로이고, 시집을 써낸 사람도 그대로일 테며, 시집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대로일까요. 지난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까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묵은 잡지, 1990년대 첫머리에 나온 어느 잡지를 보니, ‘미술경매 문제 있다’는 특집 꼭지가 있습니다. 특집 꼭지는 ‘1990년대 첫머리 그때뿐 아니라 열 해 앞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뒤로 열 몇 해가 흐른 요즈음은 어떠할까요.

 노동자 전태일 님이 죽은 1970년과, 노동자 배달호 님이 죽은 2003년은, 이 땅에서 노동자들한테 어떤 해였을까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정부단체 광고로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2007년 오늘날, ‘경제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정책’을 바라기는,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이 쓰면서 살 수 있는 세상보다는 적게 벌어도 걱정없이 살 수 있고 푸대접을 안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일이란 헛꿈이나 헛생각일까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도 일자리를 넉넉히 얻을 수 있는 한편 따돌림을 안 받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조금 더 일삯을 받을 수 있으며, 주5일 노동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먼저 하면서 이 사업장 살림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경제 움직임이란 바랄 수 없는 일인지. 그치지 않는 먹구름뿐이고, 쉴 사이 없이 찾아드는 비바람뿐인지. (4340.10.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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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편지 - 농부시인 류기봉의 포도밭에서 꽃피운 인생 이야기
류기봉 지음, 김현호 사진 / 예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포도밭 편지
- 글쓴이 : 류기봉 / 사진 : 김현호
- 펴낸곳 : 예담(2006.8.28.)
- 책값 : 9800원


 이 책 하나 10 - 포도밭 편지
 : 한국땅에서 농사꾼은 쓸모없는 사람?


 그끄제 시골집에 와서 오늘로 나흘째. 나흘 동안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시골집으로 오는 길에 택배기사와 전화로 이야기 나누었을 때를 빼고는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얼굴 마주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딱히 연락해 올 사람이 없고, 저도 굳이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테지요.


.. 체험농장의 포도나무들이 획일적으로 똑같은 모양을 하고서 같은 방법으로 열매를 맺고 가지를 뻗으면 아이들의 상상력도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아버지는 그것을 이미 30여 년 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포도나무를 야생의 숲처럼 자연스럽게 가꾸면 아버지 당신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풍부한 상상력을 심어 주리라는 것을 ..  〈161쪽〉


 그제는 밥할 물을 길러 윗마을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윗마을 개는 강아지일 때부터 봐 왔건만 제가 물을 다 긷고 내려갈 때까지 거칠게 짖어댑니다. 못 올 사람이 왔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반갑다고 짖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쓰는 물은 다 얼어붙어서 언제 녹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올겨울에는 두 번이나 녹은 적 있습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인데, 두 번째로 녹고 다시 얼어붙은 뒤로는 아직 안 녹네요. 아마 봄까지는 이렇게 될 듯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 포노나무가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농부의 게으름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획일적이려면 개성을 억눌러야 한다. 억누르면 그만큼 자연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포도나무에 스트레스가 많으면 포도 맛이 시어진다. 스트레스 없이 자란 포도가 빛깔과 향기가 좋고 맛도 훨씬 달다 ..  〈133쪽〉


 다음주쯤 다시 서울 나들이를 할까, 다다음주쯤 서울 나들이를 할까 헤아려 보고 있습니다. 국도에서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찍었다는 분 작품이 1월 30일에 선보인답니다(영화이름은 〈어느 날 그 길에서〉, 보여주는 곳은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 영상미디어센트 미디액트 대강의실. 저녁 19시 30분). 그때 가 볼까 싶기는 한데, 시골에서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가 없어 퍽 고달픕니다. 뭐, 시골에는 도서관도 없고 변변한 책방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시골에 영화 볼 곳이 없고 책 볼 곳이 없다고 해서 메마르거나 팍팍한 삶터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극장과 책방이 없어도 논과 밭이 있고 산과 내가 있으니까요. 차소리 적거나 없고 멧새소리를 반갑게 들을 수 있습니다. 달과 별도 가득가득 올려다볼 수 있고, 밤마다 느끼는 달빛도 참 좋아요. 다만, 요새는 시골마다 흐르던 조그마한 도랑을 다 시멘트로 발라내어 가재도 사라지고 도랑물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도랑에서 노는 아이 또한 없어요. 어쩌면 도랑에서 놀 아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시멘트로 물골을 새로 트는지 모릅니다.


.. 아버지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온힘을 다해서 이주한 땅을 개간했으나 이 땅도 얼마 못 가 다른 사람 명의로 넘어가 버렸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개간비도 못 받고, 아버지 소유의 포도나무까지 다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 주고서야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었다 ..  〈31쪽〉


 요즈음 시골 읍내나 면내, 또는 살림집 모여 있는 마을 다리께나 네거리께에는 노란 깃발이 펄럭입니다(도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깃발이 없는 곳도 있지만, 깃발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한미 FTA 저지” 또는 “한미 FTA 반대”. 한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을 맺으면, 도시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고 하듯이 ‘한국 농촌은 싸그리 무너집’니다. 하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고 있는 지금이라고 더 낫지 않아요. 벌써 여러 열 해 동안 시골사람들은 도무지 사람답게 살 수 없을 만큼 형편이 나빠졌거든요. 시골에서 살 만하다면 왜 도시로 떠날까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넉넉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다면 왜 농사짓기를 그만둘까요. 스스로 농사꾼이 되겠다고 하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있나요. 도시에서 그럭저럭 돈벌며 살다가 시골에 땅 사고 집 사고 ‘귀농’한다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일을 이어받아 농사꾼이 되려는 이도, 스스로 처음부터 소작농부터 해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이도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몇 사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무슨 협정을 맺고 안 맺고하고는 거의 인연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얼거리가 이렇게 뒤틀려 있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명절때와 김장철에만 곡식과 채소와 열매 값이 조금 오릅니다. 그러나 그런 때가 지난 뒤에는 어떻지요? 스무 해 앞선 때하고 지금하고 곡식 값이 얼마나 달라졌는가요. 그동안 물건값이 얼만큼 올랐고, 배며 능금이며 귤이며 무며 배추며 감자며, 값이 어떻게 되어 있나요. 적어도 1997년에는 도시 저잣거리에서 애호박 하나 값하고 전철삯하고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애호박 하나 값과 전철삯은 얼마나 벌어졌나요. 더욱이 애호박 값이라 해도 도소매상을 거쳐 우리들이 저잣거리에서 사는 값이지, 농사꾼들이 받는 값이 아닙니다.


.. 직업란에는 ‘농업’이라고도 써 넣었다. 그러자 딸내미가 “아빠, 창피해! 아빠 직업을 농업이라고 쓰지 말아요” 하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농업이란 글씨를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웠다. “그럼 여기다 뭘 써 넣어야 하니?” 하고 내가 묻자, 바로 “시인, 시인은 농부보다 덜 창피하잖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65쪽〉


 저는 시골에 살지만 농사는 안 짓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없지만 농사짓는 재주도 없고, 다른 할일이 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농사짓는 분들은 늘 옆에서 지켜보고 농사꾼들 이야기도 늘 듣습니다. 뭐, 시골에서 시골사람들 이야기 말고 무슨 이야기를 듣겠어요.

 아무튼. 시골에서 지내면서 주소를 바꾸고 무슨 서류를 떼고 하면서 ‘직업’ 적는 자리를 보노라면, 어디에서든 ‘농사꾼’이나 ‘고기잡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디에도 농사꾼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고기잡이를 하는 분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피라도 뽑을라치면, 딱히 동그라미 그릴 자리가 없어서 ‘무직’이나 ‘기타’나 ‘자유업’ 따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합니다. 적어도 ‘농수산업’이라는 직업 칸도 하나 마련해 놓아야지 싶은데. 어쩌면, 이 나라에는 농수산업에 몸바쳐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 따위도 함부로 맺는지 모릅니다.


.. 포도농사를 짓는 내가 보기에 제일 미운 사람은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만 쏙 빼먹는 사람이다. 나는 포도를 맛있게 먹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포도를 팔고 싶지 않다. 내 포도밭에 와서 알만 쏙 빼먹고 껍질을 밭에 버리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포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포도를 대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농사를 지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  〈92쪽〉


 저는 바깥밥을 사먹을 때곤, 누구네 집에 놀러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을 때곤, 밥그릇을 깨끗이 비웁니다. 차려 놓은 반찬도 되도록 남김없이 먹습니다. 어릴 적부터 밥버릇을 그렇게 들였거든요. 바깥밥을 사먹거나 술안주를 먹다가 남으면, 가방에 미리 챙겨놓고 있는 반찬통이나 비닐봉지에 고이 담아서 집으로 가져갑니다. 찌개나 비빔밥을 먹을 때 함께 넣고 먹습니다. 서른세 해 살아오며 몸에 밴 이런 밥버릇을 따로 돌아보지는 않았어요. 으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농사꾼들이 당신들 삶을 돌아보며 적바림한 글을 몇 꼭지 읽으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나 아버지나 농사꾼 딸아들입니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저한테 가르친 밥버릇이란 농사꾼 밥버릇일 테지요. 밥알 하나도 소중히 여기라는 밥버릇, 반찬 한 점도 고맙게 여기라는 밥버릇, 그런 밥버릇이었을 테지요.

 요새는 농약이다 뭐다 하고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능금 한 알, 배 한 알 먹을 때에도 껍질을 두껍게 잘라내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맷부리나 수건으로 쓱쓱 먼지만 닦아낸 뒤 껍질째 다 먹습니다. 농약이 묻었다면 껍질에만 묻겠어요. 속알까지 배어들지. 껍질에 농약성분이 더 많다고 하는데, 껍질을 안 먹어도 도심지 자동차 배기가스 마시는 일을 생각하면 쌤쌤입니다. 정수기 물을 마시고 먹는샘물 사마신다고 더 깨끗한 물일까요.


.. 메뉴판을 펼쳤다.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커피 한 잔에 1만 5000원. 맥주 한 병도 1만 5000원이었다. 순간 나는 빠르게 셈을 했다. 포도가 얼마인가. 한 송이에 1000원이다. 도매시장에서는 500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포도 열다섯 송이와 커피 한 잔 값이……. 아내도 입이 딱 벌어져 있었다. 잠시 열애 분위기에 젖어 있던 우리 부부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 윤시내의 열애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 다방에 있느냐, 카페에 있느냐에 따라서 커피 값을 달리하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갤러리에 있으면 예술작품이 되는 것처럼 커피 한 잔을 고급 카페에서 마시면 문화가 되는 것이다 ..  〈156쪽〉


 요즘은 새벽 두어 시까지 글을 씁니다. 깊은새벽에 일을 마치고 불을 끄면 창밖이 환하게 느껴집니다. 요 며칠 내린 눈 덕분에, 또 반달이 된 달빛으로. 며칠 더 있으면 보름달이 되어 더 환해질 테지요. 그때까지 눈이 안 녹고 있으면 훨씬 환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하니,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저 같은 사람보다 도시사람들이 애써 찾아가서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저야 늘 보는 주검이고 늘 안타까이 생각하는 주검이니까요. 그런데 도시사람들이 이런 영화가 하는 줄이나 알는지. 또, 이런 영화가 한다고 할 때 몸소 찾아가서 보려고 할는지. 이 영화를 본다 한들 무엇을 느끼고 자기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보려고 애쓰기나 할는지. (4340.1.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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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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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쓴이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시모음은 예나 이제나 썩 널리 읽히지 못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다룬 책보다는 많이 읽힙니다. 우리 말을 알맞고 올바르게 쓰도록 이끌어 주는 책보다도 많이 읽히고요. 시모음이 널리 읽히지 않는다는 말은 `그럭저럭 읽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넉넉하고 푸진 마음으로 살뜰히 읽지는 못한다'는 소리일 테지요.

 시가 제대로 안 읽히는 까닭은 여럿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뽑아 보겠습니다. 첫째, 시쟁이들이 저희끼리만 쑥덕거리는 시만 나불거린다. 뭐, 알아먹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어려운 모습을 빗대어 써 제끼니, 누가 이런 시를 읽겠습니까. 게다가 시 쓰는 분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며 부대끼는 현실은 웬만해서는 안 다룹니다. 사회 일에 너무 어둡습니다. 시를 즐겁게 쓰지 못해요. 웃음이 나는 시, 눈물이 나는 시, 가슴이 찡하는 시, 머리를 내리칠 만큼 깨우치는 시는 못 씁니다. 글감이 고작 사랑 타령, 자연 타령입니다. 사랑도 사랑 나름이고 자연도 자연 나름인데, 둘 모두 우리가 가멸차게 부대끼는 이 땅, 이 터전, 이 사람, 이 나라와는 사뭇 동떨어진 타령이기 일쑤입니다. 둘째, 사람들 삶이 시를 읽기 어렵도록 팍팍하고 돈만 밝힌다. 돈바라기, 이름바라기, 힘바라기로 흐르는 이 사회는 다른 책도 제대로 안 읽힙니다만 시모음은 더더욱 안 읽힙니다. `그런 거(시모음)야, 한갓지게 놀고먹는 사람들이나 쓰고 읽는 거지' 하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을 다스리며 머리를 일깨우고 머리를 보듬는 책 가운데 맨 첫머리를 연다고 할 만한 시와 자꾸 멀어지는 사회 얼개입니다. 학교교육도 그렇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부모도 그래요. 부모가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누구나 시를 즐길 수 있어야 해요.


놀이동산 가자며
매달리는 아이
억지로 떼어놓고
특근하던 날

갑갑한 마음 통했던 걸까
박형이 가져온 소주 한 병

점심시간 동료들 불러모아
작업장 구석에 쪼그리고 마시는
깡소주 한 잔 꿀맛이다

낮술 한 잔에
붉다거리 빛깔 좋은데
관리자들 볼세라
속이 찌리찌리하다  〈특근하던 날〉


 공장에서 일하는 정은호 님은 자기가 일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을 있는 그대로 시로 담아냅니다. 말을 너무 줄인 듯한 느낌도 들고(좀더 길게 써도 좋은데 너무 짧게 쓴), 말을 너무 늘인 듯한 느낌도 들어(좀더 짧게 쓰면 좋은데 몇 마디 늘어진) 몇 대목에서는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는 가운데 `시를 쓴 사람이 느끼고 바라보며 나누려는 마음'을 즐길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시를 쓴 사람 삶은 없이 책상머리에서 펜대로만 굴린 느낌과 생각은 썩 내키지 않아요. 괜히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읽기에도 팍팍하고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참으로 좋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작품마다 `아, 이 시는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지' 하는 느낌이 들어야 더 좋다고 믿습니다.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 시를 읽으며 나도 시를 내 삶을 시로 담고 싶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고 믿습니다. 정은호 님 시를 읽으면, `나도 시를 쓰고 싶구나.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도 느끼고 나도 시로 펼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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