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푸른 솔아 - 박영근 시선집
백무산.김선우 엮음 / 강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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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피어날 꽃들한테 한 마디
[시를 노래하는 시 13] 박영근, 《솔아 푸른 솔아》

 


- 책이름 : 솔아 푸른 솔아
- 글 : 박영근
- 펴낸곳 : 강 (2009.5.9.)
- 책값 : 7000원

 


 추운 겨울날 피어나는 겨울꽃이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는 가을에 피어나는 가을꽃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환하게 피어나는 여름꽃이 있습니다. 따스한 바람과 함께 따스한 빛깔과 내음 베푸는 봄꽃이 있습니다.

 

 꽃은 봄부터 피어납니다. 봄부터 피어나는 꽃은 겨울까지 핍니다. 추운 한겨울 동안 꽃은 조용히 시들거나 잠잡니다. 이듬해 봄에 다시금 피어날 꿈을 꾸면서 추위를 견딥니다. 아니, 추위를 받아들인다고 해야겠지요.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일을 / 뉘우치는 시간들 속에서 /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 시라고 쓰고 싶다 ..  (서시)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동백꽃은 거의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내가 구경하지 못했을 뿐 어느 골목집 마당 한켠에 곱게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한두 그루 있었으리라 봅니다. 전라남도 고흥이라든지 해남이라든지 강진이라든지 여수라면, 곳곳에 동백나무 흐드러지고 동백꽃 붉습니다. 경상남도 통영이나 진해에도 동백나무 동백꽃은 붉게 흐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천 골목동네를 두루 돌아다니며 능금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감나무 수수꽃다리 들을 골고루 구경했습니다. 때로는 석류나무를 보고 살구나무를 봅니다. 때로는 포도나무를 보고 앵두나무를 봅니다. 한 집에 온갖 나무 골고루 심어 돌보지는 못합니다. 조그마한 마당에 몇 가지 나무를 곱게 키우고 우람하게 보살핍니다. 사람 손길 안 닿는 데에서 높디높게 자라난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사람이 애써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립니다. 미루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멀리멀리 씨앗을 퍼뜨립니다. 이 가운데 어른나무로 튼튼히 뿌리내리는 씨앗은 몹시 드물지만, 이 골목 저 골목, 볕바르거나 그늘지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애씁니다.


.. 경님아, 밤기차 어둑한 창가에 기대어 / 서울 가던 날 / 손 한번 흔드시지 못하고 / 번지는 들판의 불빛들 속에서 어머니 / 손 한번 / 흔 드 시 지 못 하 고 ..  (서울 가는 길)


 어떤 분은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심어 돌보았겠지요. 어떤 분은 씨앗을 알뜰히 건사해서 작은 새싹부터 보살폈겠지요.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남짓 골목이웃하고 살아온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동안 꽃을 피운 나무를 마주합니다.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도록 살아온 나무가 맺는 열매를 고마이 나누어 먹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적지 않은 해를 보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얻기까지 꽤 긴 해를 보냅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키가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곤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꽃과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어떤 나무인가 알아차리지 못하곤 합니다. 아마,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겠지요. 다들 바쁘니까, 모두들 다른 데에 눈길을 두어야 하니까,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와 함초롬한 작은 새눈을 들여다보지 못하겠지요.


.. 그곳엔 비 내리는 판문점의 닳고 닳은 비애도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지에 오르는 / 지겨운 전쟁도 없지 ..  (천지를 생각하며)


 자동차 끝없이 오가는 찻길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나 방울나무는 해마다 가지가 잘립니다. 찻길 가장자리에서 배기가스 듬뿍 마시며 맑은 숨을 내뿜도록 들볶이는 나무는 얼마 살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들 가녀린 길가 나무들, 곧 ‘길나무’들은 사람보다 오래 삽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보다, 길나무 목숨이 훨씬 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은 으레 병원 문턱을 드나듭니다. 찻길에서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햇볕 한 조각 제대로 받기 힘들며 전깃줄에 등불에 밤낮으로 시달리는 길나무이지만, 이들 길나무는 병원 문턱을 밟지 않습니다. 이들 길나무 가운데 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녀석이 있다면 곧장 목이 잘릴 테니까요. 막바로 뿌리가 뽑히고 새 나무로 바뀔 테니까요. 도시에서는 나무이든 사람이든 목숨이든 흙이든 꽃이든 온통 돈으로만 재거나 따집니다.

 

 나무가 슬픕니다. 사람이 슬픕니다. 땅이 슬픕니다. 하늘이, 해가, 구름이, 바람이, 물이, 꽃이, 풀이, 모두모두 슬픕니다. 멧새가 다리쉼을 할 만큼 느긋한 나무를 찾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멧새 한 마리 한갓지게 둥지를 틀기 어렵다면, 착한 사람 하나 몸을 눕혀 쉴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들짐승 한 마리 곱게 깃들며 삶터를 얻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들짐승 한 마리 조그마한 굴조차 팔 수 없다면, 고운 사람 하나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펼 쉼터 하나 얻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자동차 대는 자리는 그렇게 많은데요. 돈을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돈을 안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도시에서는 어디에나 자동차를 대는걸요. 자동차는 그렇게 많고, 자동차 다닐 길은 그렇게 넓으며, 자동차 둘 자리는 그렇게 넓은데, 어이하여 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뿌리를 뻗을 땅뙈기란 없을까요. 사람 하나 보금자리 예쁘게 꾸며 나무와 풀과 꽃을 즐거이 누릴 땅뙈기란 없을까요. 물줄기 햇살 받으며 시원하게 흐를 땅뙈기란 없을까요.


.. 몇 번인가 이사를 할 때마다 / 그 비좁은 골목길은 리어카 한 대의 이사 보따리에도 땀을 흘렸다 ..  (그 방)


 눈이 내립니다. 겨울눈은 겨울을 살아내는 나무마다 소복하게 쌓입니다. 하얗게 쌓이던 눈은 햇살이 들면서 스르르 녹습니다. 스르르 녹은 물은 나뭇줄기를 타고 흙으로 흘러내립니다. 흙으로 흘러내린 물은 흙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이윽고 봄입니다. 언땅이 녹고 겨울눈이 껍질을 벗는 봄입니다. 뭇새들 홀가분하게 지저귀는 봄입니다. 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 알을 까고 볼볼 기어나옵니다. 볼볼 기어나오던 벌레들은 새들한테 먹이가 됩니다. 새들은 재재거리는 소리로 흙일꾼 새벽을 깨웁니다. 흙일꾼은 쟁기와 호미로 밭을 갈아엎습니다. 밭자락에는 새로운 씨앗이 깃들고, 새 씨앗을 품은 흙은 새 목숨을 보듬습니다. 새 목숨은 너른 사랑을 받으며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너른 사랑 받으며 흙 위로 고개를 내민 새싹은 따사로운 햇살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 닫힌 철문 앞에서 / 원직 복직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 / 희망이라도 불러도 좋은 것일까 ..  (희망에 대하여)


 봄빛이 환합니다. 봄빛은 누런 들판을 푸른 들판으로 천천히 바꾸면서 환한 기운 나눕니다. 봄내음이 그윽합니다. 봄내음은 온누리에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며 풀먹는 짐승이랑 사람을 살찌웁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노래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춤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사랑꾼입니다.

 

 노래를 실어나르는 봄꽃은 노랗게 물듭니다. 춤을 실어나르는 봄꽃은 발그스름하게 물듭니다. 사랑을 실어나르는 꽃은 하얗게 물듭니다.

 

 봄부터 할미꽃과 진달래뿐 아니라 수유와 살구와 수수꽃다리가, 또 원추리와 감자와 당근이, 또 숱한 들꽃과 풀꽃이 들판을 잔치판으로 이룹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아는 꽃은 이름을 아는 대로 참 곱구나 하고 쓰다듬습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꽃은 이름을 모르는 대로 참 예쁘구나 하고 어루만집니다. 패랭이꽃이든 해바라기꽃이든, 모두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애틋한 느낌을 살려 붙인 이름이겠지요. 봄까치이든 민들레이든 마을과 고을마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맑은 넋을 살려 붙인 이름일 테지요.


.. 내 안에도 / 나도 몰래 / 나를 키우고 / 나를 살리는 것 있다는데 ..  (눈물)


 봄에는 봄꽃이 노래를 부르며 시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봄에는 봄꽃이 춤을 추며 싯말이 하나들 퍼집니다. 봄에는 봄꽃이 사랑을 나누며 싯꿈과 싯무지개가 온누리를 빛냅니다.

 

 박영근 님 시집 《솔아 푸른 솔아》(강,2009)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하는 삶을 보낸 박영근 님 넋을 돌이키며 시집 여섯 권을 한 권으로 간추린 자그마한 시집을 읽습니다. 박영근 님이 쓴 시를 바탕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 한 가락 태어났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는 모릅니다. 그저 시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한 넋은 어떤 결이었을까 하고 헤아리며 시를 읽습니다.

 

 스스로를 살리고 동무를 살리며 온누리를 살리고프던 꿈을 시 한 자락으로 읽습니다.


.. 전철도 끊긴 동암역 근처 / 눈 쌓인 골목 미루나무 가지 끝 // 빈 새둥지 속에 / 뜨거운 별빛 한줄기 떨어진다 // 오랜 기다림도 그친 곳에 / 눈은 내려 쌓이리 ..  (동암역 근처)


 1958년에 태어나 2006년에 숨을 거둔 박영근 님은 쉰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쉰 해를 넘기지 못한 삶이란, 딱 마흔여덟아홉에서 멈춘 삶이란,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진 삶이란, 어떤 사랑이 담긴 이야기일까요.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져야 했을 때에, 박영근 님은 당신 나이를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

 

 박영근 님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몇 살까지 삶을 누렸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조금 더 길게 누리다가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 홑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  (길)


 내 무릎에 안긴 채 잠든 아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몇 해쯤 더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거나 스물다섯 살이 되어도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 둘 아버지인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아이들을 무릎에 안으며 무릎과 발목이 뻣뻣하게 저려도 싱긋 웃으면서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하루는 언제나 꽃밭입니다. 아이한테서 꽃내음을 맡고, 나한테서 꽃내음을 맡습니다. 아이한테서 꽃빛을 느끼고, 나한테서 꽃빛을 느낍니다. 서로서로 꽃과 같은 결과 무늬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포근하며 촉촉한 꽃잎처럼, 곱고 보드라운 꽃잎처럼, 향긋하고 어여쁜 꽃잎처럼, 환하고 맑은 꽃잎처럼, 하루하루 좋게 누리고 싶다고 꿈을 꿉니다.

 

 그리고, 박영근 님 시집에 나오는 〈꽃들〉을 읽습니다. “공장 담벼락을 타고 올라 / 녹슨 철조망에 / 모가지를 드리우고 망울을 터뜨리다 / 담장 넘어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 / 흐르는 바람에 / 햇살 속에(꽃들)” 하고 노래하는 〈꽃들〉을 읽습니다.

 

 참말 박영근 님 시에는 꽃이 자주 나옵니다. “카티자, 세상에 꽃이라니, 도대체 무슨 꽃들이 / 저렇게 빨갛고 노란 것일까 / 기억 속의 꽃들이 한꺼번에 말을 잃고 / 병원 계단을 오른다(임시 묘지의 시)” 하고 외치면서도, 참말 꽃이 자주 나옵니다. 웬 꽃이냐며 혀를 차지만, 어인 꽃이냐고 울부짖지만, 그래도 꽃을 말합니다. 꽃을 바라보고 꽃을 느끼며 꽃을 어루만집니다.


.. 계절이 골목길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 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  (이사)


 밀린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들입니다. 안 밀리고 그날그날 즐기는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먹습니다.

 

 빨래는 꽃내음을 먹으며 더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 넋은 꽃넋으로 거듭납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 이마에서 꽃방울 같은 땀방울이 떨어집니다.

 

 이제 봄이고, 이제부터 봄꽃이 피어납니다. 흙으로 돌아간 박영근 님은 좋은 거름이 되어 봄꽃이 흐드러지도록 돕는 작은 흙알갱이로 살아가겠지요.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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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동시 따 먹기
김미혜 지음, 김제곤 엮음, 장경혜 그림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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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
 [어린이책 읽는 삶 16] 김미혜, 《신나는 동시 따먹기》(창비,2011)

 


- 책이름 : 신나는 동시 따먹기
- 글 : 김미혜
- 그림 : 장경혜
- 펴낸곳 : 창비 (2011.6.20.)
- 책값 : 12000원

 


 온삶을 어린이를 생각하며 지낸 이오덕 님이 내놓은 책 가운데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가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초등학교 어린이와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당신이 하늘에서 받은 선물처럼 받아들이며 살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글쓰기’를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이 같은 기나긴 삶을 바탕으로 쓴 책이에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에 실린 아이들 글을 읽는다든지, 《일하는 아이들》이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 실린 아이들 글을 읽으면, 이 글은 모두 ‘시’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떠한 시 이론과 비평과 해설을 듣거나 배우거나 익히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고향마을에서 어버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돌이키며 글을 쓰고, 이렇게 쓴 글은 모두 시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막 국민학교에서 한글을 뗀 아이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거의 다 틀리는 비뚤비뚤한 글을 씁니다. 3학년이나 4학년쯤 되면 제법 가지런히 글을 씁니다. 5학년이나 6학년쯤 되면 아이 스스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제법 잘 맞춥니다. 그러니까, 아이들한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우기 마련이니까요.

 

 아이들한테 영어나 한자를 굳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마땅히 써야 하는 영어나 한자라면, 어른들부터 여느 삶 여느 자리에서 영어나 한자를 쓸 테고, 여느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쓰는 영어와 한자는 아이들 여느 삶으로 시나브로 녹아들어요.

 

 가르침도 배움도 저절로 녹아들 때에 가르침이요 배움입니다. 따로 교육과정을 짜거나 교과서를 읽히거나 시험을 치러야 가르침이자 배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재와 참고서를 외우도록 시켜야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디디는 땅을 온몸으로 옳게 부대끼며 착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을 때에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아이들은 제 옷과 밥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깨닫고, 흙은 햇살과 비와 바람을 먹으며 기름지는 줄 깨달을 때에 바야흐로 씩씩한 일꾼으로 거듭납니다.

 

 동시를 쓴다는 김미혜 님이 엮은 《신나는 동시 따먹기》(창비,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김미혜 님은 머리말에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시의 맛을 알게 되고, 시를 어떻게 감상하는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밝힙니다.

 

 나는 이 머리말을 읽다가, 이 머리말부터 이 책은 ‘시를 읽는 맛’을 지우고 마는 슬픈 책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떠한 ‘동시 읽기 길잡이책’도 동시이든 시이든 읽으며 누리는 깊고 달콤하며 즐거운 맛을 느끼도록 돕지 않아요. 시를 읽어야 시맛을 느껴요. ‘시 해설’과 ‘시 설명’을 읽는다 해서 시맛을 느끼지 않아요.

 

 동시를 더 재미나게 읽는 길은 없습니다. 동시를 더 재미없게 읽는 길도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동시 읽기 길잡이책’을 낸다면, 이러한 책은 아이나 어른이나 동시를 읽는 맛을 못 느끼거나 엉뚱하게 생각하도록 잘못 이끄는구나 싶어요.


.. 고깔제비꽃 알록제비꽃 태백제비꽃 왜제비꽃 / 제비꽃 이름 무어 그리 복잡할까 ..  (김미혜-그냥 제비꽃)


 《신나는 동시 따먹기》 첫머리에는 엮은이 김미혜 님 동시를 넣습니다. 엮은이 김미혜 님은 〈그냥 제비꽃〉이라는 동시에서 “제비꽃 이름 무어 그리 복잡할까” 하고 말하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어른 생각’을 들려주는 일은 아이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이런 어른 생각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을 불러일으킬까 궁금합니다.

 

 제비꽃 이름이 뭐가 어지러운가요? 똑같은 제비꽃은 하나도 없으니 다 다른 이름이 붙어요. 똑같은 어린이는 하나도 없기에, 어린이마다 이름이 모두 달라요. 똑같은 어른 또한 아무도 없으니, 어른마다 이름이 서로 다릅니다.

 

 아이를 앞에 두고 “응, 넌 그냥 아이야.”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앞에 두고 “응, 당신은 그냥 어른이야.”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러다 보니, 김미혜 님은 동시 끝에 붙이는 풀이글에 더 슬픈 이야기를 달고야 맙니다.


.. 자, 그럼 나무도감을 보고 마음에 드는 나무 이름을 외워 볼까? 10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 적어 보자 ..  (25쪽)


 도감을 읽으며 나무 이름을 외우는 일은 나무를 얼마나 잘 알거나 나무와 얼마나 살가이 사귀는 일이 될는지요. 출석부를 보고 아이들 이름을 외우면 아이들을 잘 아는 교사가 되는가요. 전화번호부를 펼쳐 사람들 이름을 외우면 내 이웃들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될까요.

 

 이름을 모른다 해서 나쁠 일이 없습니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이름을 몰라 “참 예쁜 꽃이로구나.” 할 수 있어요. 내 가슴속으로 이 어여쁜 꽃을 바라볼 수 있으면 돼요. 내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내가 사랑스레 느낀 결 그대로 내 나름대로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시는 이렇게 태어나요. 내 가슴속에서 사랑이 샘솟을 때에 시가 태어나요. 나는 제비꽃이라는 꽃을 바라보며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모르기에 ‘나비꽃’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나비꽃이라는 시를 내 가슴으로 쓸 수 있어요. ‘무지개꽃’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시를 쓸 수 있겠지요. ‘내 동생 손톱처럼 앙증맞은 꽃’이라고 말을 걸며 시를 쓸 수 있어요.

 

 밤나무 참나무 벚나무 뽕나무 하고 이름을 외운들 무슨 나무 사랑이 되고 어떤 시 사랑이 될 수 있을까요. 막상 뽕나무 줄기를 쓰다듬어 보지 않고 이름만 달달 외운다면, 뽕나무 잎사귀와 꽃잎을 어루만지지 않고 이름만 줄줄 꿴다면, 이러한 지식으로 어떤 시를 쓰는가요. 이렇게 지식만 쌓은 머리로 시를 어떻게 즐기거나 맛보는가요.


.. 좋은 시를 흉내내 ‘모방 시’를 쓰는 것은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이란다. 주위를 살펴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생각해 본 다음 〈개구쟁이 산복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시를 써 보자 ..  (29쪽)


 김미혜 님은 아이들더러 ‘시 흉내내기’를 하라고 시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인데, 시인더러 시를 흉내내라고 시킵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요, 어린이로 살며 어른이 된 사람들 누구나 시인이기에, 굳이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다니지 않아도 시를 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베끼듯 흉내내라니요.

 

 다른 사람이 쓴 시는 내 가슴으로 읽으며 사랑을 느껴야 할 뿐입니다. 내가 쓰려는 시에는 내 온 사랑을 담아야 할 뿐입니다.

 

 베껴쓰기 숙제를 내듯 흉내내기 시를 쓰도록 하는 어른이라면, 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시를 이야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시를 쓸 수도 없습니다. 베끼고 흉내내면서 어떤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흉내내기를 한다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흉내내기가 아니에요. 어른이 바라보기에는 ‘흉내’이지만, 아이들로서는 ‘온몸을 움직여 삶을 다스리는 일’이에요.


.. 청소도 숙제도 미루고 공기놀이에 푹 빠져 버렸네. 놀이, 게임, 영화, 책 ……. 무언가에 몰입하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지. 공기놀이가 끝나면 몇 시쯤 될까? 어쩌다 한 번씩은 할 일 다 미루고 이렇게 마냥 놀면 참 좋을 거야 ..  (31쪽)


 문득 생각합니다. 《신나는 동시 따먹기》라고 하는 책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동시를 배울 때에 ‘초등학교 논술 공부 더 잘 하라’는 뜻에서 엮은 책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점수따기 하는 아이들이 시험성적 더 잘 거두도록 일찍부터 이끄는 책이 아니겠느냐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야 안 해도 되고 미루어도 됩니다. 그러나, 밥을 안 먹거나 집 안팎을 쓸고닦으며 치우거나 몸을 씻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일은 안 하거나 미룰 수 없습니다. 빨래를 안 해도 될까요. 설거지를 안 해도 되나요.

 

 우리가 먹는 밥은 어디에서 나지요. 공장에서 만든다는 과자나 햄 같은 가공식품이라 하더라도 이 가공식품 밑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쌀이 없어도 쌀과자가 태어나고, 밀이 없어도 빵이 태어나는가요. 감자가 없어도 포테이토칩을 만들고, 양파가 없어도 양파깡을 만드는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이 없으면 가공식품조차 없지 않나요. 시골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이 없다면, 소와 돼지한테 먹을 밥이 되는 곡식을 일구는 사람들이 없다면, 어떠한 밥을 도시사람이 먹을 수 있나요.


.. 시인이 도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만큼 농촌의 현실이 힘들기 때문이야. 우리가 쌀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농촌 사람들도 힘이 날 거야. 엄마 아빠와 함께 농촌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많이 들어간 식단을 짜 보자 ..  (103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 눈으로는 “우리가 쌀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농촌 사람들도 힘이 날 거야” 하고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참말 시골사람이 힘이 날 만한가 모르겠습니다. 그저 쌀을 사다 먹으면 되고, 푸성귀를 사다 먹으면 일이 다 풀리는가 모르겠습니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기찻길과 고속도로를 내고, 온 멧자락에 구멍을 내며 고속철도를 놓는 마당에, 시골사람이 두 다리 뻗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4대강 삽질 하는 데에 퍼붓는 어마어마한 돈은 시골자락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 일이 되나요. 시골마을이 왜 힘이 드는가요. 사람들은 왜 시골을 떠나 도시로만 몰리나요. 왜 아이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빠져나가나요.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시골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나요.

 

 굳이 아이들한테 자유무역협정이나 물질문명을 낱낱이 이야기해야 하지는 않다 할는지 모르나, 아이들이 삶과 삶터와 삶자락을 올바로 깨달으며 생각하도록 돕는 어버이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 시인의 눈길이 복숭아 장수 아저씨에게로 향했어. 복숭아 장수 아저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앵앵거리는 파리일까, 후끈한 열기일까? 아니면 쏟아지는 졸음일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시 쓰기의 첫걸음이란다 ..  (71쪽)


 시를 쓰는 사람은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둘레를 잘 살피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때에 시를 쓰는 넋이 아름다이 거듭납니다. 삶을 착하고 참다이 일굴 때에 시를 읽는 눈이 곱게 태어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않는대서 시를 쓸 수 있지 않습니다. 내 가슴을 활짝 여는 착한 매무새일 때에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대서 시로 쓸 만한 이야기를 얻지 않습니다.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내 하루를 올바로 가꿀 때에 시나브로 시가 샘솟습니다.

 

 이리하여, 이오덕 님이 이야기하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는 말을 가슴으로 아로새길 수 있어요. 어린이는 날마다 흙을 밟고 신나게 놀면서 삶을 즐기니까 연필 한 자루를 쥐면 시를 술술 씁니다. 어린이는 날마다 햇살을 먹으며 마음껏 놀고 제 어버이하고 논일 밭일 집일 함께 하니까, 구슬땀 흘리는 손으로 붓을 쥐어 그림을 슥슥 그립니다.

 

 아이들한테는 시를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삶을 착하고 밝고 예쁘게 꾸리는 몸짓일 때에, 아이들은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삶을 배웁니다. 삶을 배우는 아이들은 시를 배우는 셈입니다. 삶을 느끼고 사랑을 깨닫는 아이들은 시를 느끼고 시를 깨닫는 아이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한테는 ‘삶’이라고 하는 시집을 선물하면 넉넉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사랑’이라는 노래책을 선물하면 흐뭇합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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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92
김남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흙과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삶
[시를 노래하는 시 11]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 책이름 : 나의 칼 나의 피
- 글 : 김남주
- 펴낸곳 : 실천문학사 (1987.11.15.)
- 책값 : 5000원

 


 겨울도 한철, 추위에 오슬오슬 떨며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지만, 머잖아 한 겹 두 겹 훌훌 털어낼 봄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춥기 마련입니다. 겨울이니 추위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추운 겨울 따스히 나고자 여러모로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지난밤, 물을 졸졸 틀어놓습니다. 따스한 남녘땅에서 물이 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칫 물이 얼면 어찌 손쓸 길이 없으니 졸졸 틀어놓습니다. 방 온도가 14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에는 물을 틉니다. 지난 12월과 올 1월 2월 석 달에 걸쳐 오늘로 세 번째 14도 밑으로 온도가 내려갑니다.

 

 마당에는 흰눈이 쌓였습니다. 지난 석 달에 걸쳐 마당에 눈이 쌓이기로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내리는 듯 마는 듯하던 눈이요, 내리면 곧 녹는 눈이었는데, 간밤에는 아이 새끼손톱보다 조금 얕게 쌓입니다. 첫째 아이와 둘이서 뒤꼍으로 나가 한참 발자국놀이를 했습니다.


.. 그들은 척척박사이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묻겠다 / …… / 팔레비와 소모사와 이 아무개와 박아무개가 / 제 스스로 물러났던가 ..  (나 자신을 노래한다)


 모처럼 얼어붙는 남녘땅 겨울날 새벽나절, 나는 부시시 일어나 빨래를 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널더라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기저귀 빨래는 처음에는 얼다가도 이내 녹으면서 마르지만, 여느 옷가지는 얼어붙기만 할 뿐 마르지 않아요.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는 빨래를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앞에 한 빨래가 마를 만하다 싶으면 걷어서 방바닥에 펼쳐 바싹 말립니다. 뒤이어 새 빨래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면 말리기 수월찮으니 알맞게 나누어 빨래를 합니다. 이럭저럭 하루이틀 보내면 밀리는 빨래 없이 옷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 빨래를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옆지기 옷가지는 내 옷가지처럼 커다랗습니다. 두 아이 옷가지는 참말 작습니다. 아이들 바지나 웃도리 길이는 나와 옆지기 웃도리 소매 길이만큼 되지도 않습니다. 참 작고 짧아요. 이 작고 짧은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아이들 또한 나와 옆지기하고 똑같은 넋이 깃든 목숨이 펄떡펄떡 숨쉽니다.

 

 작은 사람은 작은 기운을 내겠지요. 작은 사람은 큰 사람처럼 큰 기운을 낼 수 없겠지요. 큰 사람은 짐을 많이 짊어지면서 작은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있다지만, 작은 사람은 짐을 짊어지기에도 벅차고 큰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없겠지요.


..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 …… / 제 자신을 속이고서 ..  (자유)


 돈이 넉넉한 사람이 돈이 없거나 모자란 사람한테 돈을 나누는 일은 참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먹을거리 푸짐하게 갖춘 사람이 배고프거나 배곯는 이하고 밥을 나누는 일은 더없이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똑똑하거나 슬기로운 사람이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은 사람하고 앎·넋·꿈을 나누는 일은 몹시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더 갖춘 앎이 있으면 나눕니다. 내가 더 읽은 책이 있거나 내가 더 생각하는 꿈이 있거나 내가 더 깨달은 이야기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글을 써서 나눕니다.

 

 누군가는 나처럼 글을 쓸 테고, 누군가는 글솜씨 없다며 입으로 알콩달콩 말잔치를 베풀겠지요. 누군가는 그림을 그릴 테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을 테며, 누군가는 춤과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누군가는 맛난 밥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빨래를 합니다. 누군가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하고, 누군가는 괭이질을 하며, 누군가는 삽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그물을 던지고, 누군가는 도끼를 찍으며, 누군가는 나물을 다듬습니다.


.. 셋이라면 더욱 좋고 / 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 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 열이면 열 사람 천이면 천 사람 어깨동무하고 가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눈이 덮인 마을은 고요합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발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멧새도 들새도 어디에선가 따사로이 잠을 잘 테고, 멀찍이 떨어진 한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자는 밤나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큰보름이 지났으나 달빛은 아주 밝습니다. 다른 철에는 보름이 지나면 달빛이 이내 사그라들지만, 큰보름 앞뒤로는 보름달 아니어도 달빛이 몹시 밝아요. 마을 곳곳 어두운 데 없이 환하게 비춥니다.


..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놓았느냐 ..  (학살 2)


 구름이 지나갑니다. 구름이 달을 가립니다. 구름이 걷힙니다. 달이 다시 환합니다. 구름은 또 흐릅니다. 달빛은 살짝 가리고, 달빛이 살짝 가린다지만 보름달 빛살은 온누리 골고루 퍼집니다.

 

 달빛이 맑고 밝은 밤에는 그림자가 매우 짙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그림자는 등불이 만드는 그림자와 견줄 수 없이 매우 짙습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달그림자하고 나란히 서지 못합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조금만 떨어져도 아스라히 사라지고, 달그림자는 내가 어디에 서든,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떻게 몸짓을 하든, 내 모든 결과 무늬에 따라 그림자를 빚습니다.

 

 아이를 안고 고샅을 걸으면 아이를 안은 내 모습이 논자락에 펼쳐집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마당을 노닐면 아이 손을 잡은 내 모습이 후박나무 그림자와 함께 마당을 가득 채웁니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 외적의 앞잡이이고 /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곳 / 그곳은 어디인가 ..  (살아 남은 자들이 있어야 할 곳)


 달이 있고 별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흙이 있고 풀이 있는 땅을 내려다봅니다. 하늘은 까만 빛깔에서 노랗게 보랗게 발갛게 물들다가는 파아랗게 물들며 아침이 찾아옵니다. 겨우내 땅은 누렇다가 하얗다가 다시 누렇게 바뀌다가는 금세 푸르게 물들며 따스한 기운 가득합니다.

 

 내 마음속에 봄을 그리는 꿈이 있기에 봄이 찾아옵니다. 한여름 무더위, 내 마음속에 겨울을 그리는 꿈이 있어서 겨울이 찾아옵니다.

 

 사람들 따스한 사랑이 하나둘 모여 따순 날씨가 됩니다. 사람들 차디찬 미움과 시샘과 꾐수가 얼크러져 차디찬 날씨가 됩니다.

 

 그냥 더운 날이나 그냥 추운 날은 없다고 느껴요. 마음이 차가울 때에 차가운 날씨요,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날씨예요.

 

 내 삶에 따라 달라지는 날씨입니다. 내 넋을 돌보는 삶에 따라 바뀌는 날씨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무새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날씨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널뛰는 날씨입니다.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 지는 달과 함께 자며 /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날씨라서 사랑을 한결 짙게 느낀다고도 하지만, 내 가슴에 사랑꽃이 흐드러질 때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이라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구름이 끼든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 메말라붙어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빈터라면, 해가 나든 해가 기울든 비가 오든 비가 멎든 메말라붙거나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날씨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삶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삶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사람이고 마을이며 보금자리예요.


..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우리 농민들에게 소중했던 것 / 그것은 / 돌이었다 낫이었다 창이었다 ..  (돌과 낫과 창과)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 마음은 혼자 배부르려는 마음일 수 없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나누며 같이 흐뭇한 삶을 꿈꾸는 마음입니다.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한테까지 돈을 심으려 하는 등쌀 때문에, 흙일꾼들은 그만 풀약을 쓰고 비료를 쓰며 항생제를 씁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느끼는 흙일꾼들부터 ‘유전자 건드린 씨앗’을 돈을 치러 사서 쓰고 맙니다. 곡식과 열매를 거둔 다음, 이 곡식과 열매 가운데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새로 심지 못하고 말아요. 볍씨를 갈무리하더라도 모판에 비료를 쳐서 빽빽하게 자라도록 한 다음 기계에 앉혀 논바닥에 기계로 밀 뿐입니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어떻게 간수하며 보살펴야 하는가를 그만 흙일꾼 스스로 잊고 맙니다.

 

 흙일꾼한테 돈마음을 심은 도시사람은 스스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스스로 흙을 밟지 않으니, 볍씨가 무엇이고 볏모를 어떻게 나도록 하며 볏모를 어떻게 논에 심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볍씨와 볏모와 볏가리를 살피지 못해요. 오직 돈으로 쌀을 돌아봅니다. 값이 싼가 비싼가, 유기농인가 아닌가, 저농약인가 아닌가, 친환경인가 아닌가, 이런저런 대목은 살피지만, 막상 볍씨일 때부터 얼마나 어떻게 사랑받은 씨앗이요, 이 씨앗에 어떤 땀과 삶과 꿈을 담아 논바닥에 심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나는 자유의 편에 서 있다고 / 나는 불의에는 반대한다고 / 입을 열어 한번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 쥐꼬리만한 봉투 때문에 / 보잘것없는 지위 때문에 ..  (지위)


 돈 때문에 풀약을 칩니다. 돈 때문에 비료를 뿌립니다. 돈 때문에 항생제를 씁니다. 돈 때문에 씨앗 유전자를 과학자들이 건드리고 농협에서 이 씨앗을 사고팝니다.

 

 돈 때문에 모내기와 모심기와 벼베기를 도시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하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회사나 공공기관 일을 쉬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전철이나 버스를 멈추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4대강 삽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수출과 수입이 끊이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자동차를 만들고, 돈 때문에 손전화기 만들며, 돈 때문에 공장을 세우고 고속도로를 닦습니다.

 

 오직 돈 때문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관광산업을 말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대학교로 보내려 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오직 돈 때문에 정치가 갈리고, 신문사와 방송사가 들썩입니다.

 

 그런데, 참말 돈 때문이라면, 참다운 돈을 찾거나 밝히거나 나누는 길을 가야 할 텐데요. 참말 돈 때문이라면, 옳게 벌고 옳게 쓸 돈을 제대로 깨달아 착한 일자리 바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 텐데요.


.. 감옥들은 부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 그리고 이들은 감옥을 채우기 위해 경찰과 검사를 만들었으며 ..  (사실)


 지난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 따라 시골마을로 흙일을 하러 갔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할까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수행평가나 자원봉사 같은 점수따기를 하고자 시골마을 흙일 봉사활동을 하기는 하나요.

 

 지난주 면내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찾아가니, 면내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겨울방학 봉사활동 점수를 따려고 찾아와서는 우체국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끔찍하구나 싶어 차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청소가 무슨 봉사활동이라고요. 청소는 집에서 늘 제 어버이와 함께 즐기는 삶이어야지요. 시골마을 아이들이라면 시골마을 아이들다이 제대로 봉사활동을 해야지요. 아니, 시골마을 아이들이니 시골마을 어버이와 이웃들이 날마다 늘 하는 일을 곁에서 거들며 배워야지요. 바닷가에서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과 함께 매생이를 거두고 굴을 까야지요. 물고기를 다듬고 그물을 꿰어야지요. 곡식을 갈무리하고 된장을 뜨고 새끼를 꼬아 매달아야지요. 참말 일다운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면서 삶을 배워야지요. 점수를 따지 말고 사랑을 나누어야지요. 학교에서 시키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꿈을 키워야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도시 아이들 모두 시골마을로 철 따라 이레씩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철 따라 이레씩 시골에서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모를 심으러, 김을 매러, 벼를 베러, 곡식을 갈무리하러, 철마다 이레쯤 스스로 땀흘리는 일과 삶과 사랑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이 나라가 아름다이 거듭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형제여 내 바라나니 서재에서 자유를 노래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학교에서 진리를 구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교회에서 예수를 찾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법정에서 정의를 구하지 말라 ..  (희망에 대하여 2)


 아이가 태어나면 시골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나, 이제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사랑스레 기리거나 아끼거나 보살피자면, 이 아이들 모두 시골로 보내고, 아이들 어버이 또한 시골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휴직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육아휴직이 아닌 시골살이를 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흙을 밟도록 하고, 어버이 또한 흙을 밟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이 베푸는 선물을 물려받고, 햇살과 바람과 눈비와 푸나무가 베푸는 선물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베푸는 선물을 함께 받아먹으면서 아이들 마음밭 사랑씨앗이 무럭무럭 크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는 동안 아이들 어버이는 이제껏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던 참사랑과 참삶을 시나브로 알 수 있겠지요.


.. 올라가고 / 내려오지 않는다 /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고 /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여기서 저기까지 / 밭둑에서 논둑까지는 / 성한 다리 성한 팔은 하나도 없다 ..  (고향 3)


 아이들 이끌고 읍내마실을 하다 보면, 옆지기랑 아이들 다 함께 면내마실을 하거나 마을돌기를 하다 보면, 네 식구 즐거이 흙을 밟고 거닐 만한 데가 없다고 곧 깨닫습니다. 흙 있는 자리는 논이나 밭인데, 다른 사람 땅인 논밭을 함부로 밟기 어렵습니다.

 

 싱그러이 숨쉬는 흙을 밟고 살가이 풀이 자라는 흙을 느끼지 못하고서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공장에서 밥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 주거나 집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산품 먹을거리가 넘친다지만, 어떠한 공산품이라 하더라도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이 없고서야 어떠한 공산품도 태어날 수 없어요.

 

 흙에서 거두고서야 비로소 공장이 움직입니다. 흙에서 일구어 얻은 다음에야 비로소 도시가 섭니다. 흙에서 가꾼 사랑이 있기에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어요.


.. 그리하여 우리네 들판으로 하여금 / 더 이상 도시의 곡물지대가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마을로 하여금 더 / 더 이상 도시의 상품시장이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아들딸로 하여금 / 이 세상 잘난 놈들의 값진 고용살이 되도록 하지 말자 ..  (농부의 일)


 김남주 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실천문학사,1987)를 읽습니다. 사람들은 김남주 시인을 일컬어 으레 ‘혁명전사’라 말하지만, 나는 김남주 시인은 혁명전사라 말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혁명전사이기는 혁명전사입니다.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는 혁명전사’입니다. 김남주 시인부터 스스로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살림을 꾸리는 흙일꾼이 되는 혁명전사예요.


.. 흔해빠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도 / 내가 없으면, 일분 일초도 없으면 / 세상은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 나는 농민이다 ..  (농민)


 김남주 시인한테 ‘농민시인’이라는 이름도 걸맞지 않습니다. 애써 이름을 붙이려면 ‘혁명전사’가 맞습니다만,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 혁명전사인가 하고 따지면, 바로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살붙이들과 땅을 일구는 흙빛 눈물이랑 흙내음 웃음 꽃피우는 혁명전사 시인이에요.

 

 흙을 노래하기에 낫을 듭니다. 흙을 꿈꾸기에 쟁기를 듭니다. 흙을 부여잡고 디디기에 혁명을 외칩니다. 흙하고 한몸뚱이가 되어 얼크러지기에 전사로 거듭나요. 흙에 입맞추고 흙에 몸을 누이기에 어여쁜 사람입니다.


.. 암흑의 / 시대의 / 시인의 일 그것은 무엇일까 / 침묵일까 / 관망일까 / 도피일까 / 밑 모를 한(恨)의 바다 넋두리일까 ..  (시인이여)


 해마다 한 차례쯤 김남주 시인 시집을 새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직 도시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그야말로 머리로만 김남주 님 시를 읽으려고만 했다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마을로 살림을 옮겨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조금씩 머리 아닌 몸으로, 생각 아닌 손발로 김남주 님 시를 만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내 삶터는 시골마을이나, 내 몸뚱이는 아직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날마다 기쁘게 밟을 흙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어요.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며 부여잡을 흙땅을 넉넉히 건사하지 못했어요.

 

 이제 나는 어떻게든 오천 평을 마련하자고, 오백 평이나 쉰 평이라도 먼저 마련하자고, 우리들부터 예쁘게 살아갈 좋은 흙집과 흙땅과 흙터로 흙누리를 이루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흙꿈을 꾸는 흙사랑을 시나브로 이룬다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언젠가 흙사람이 되어 흙빛 고이 감도는 흙이야기인 《나의 칼 나의 피》를 참다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사랑만이 / 겨울을 이기고 / 봄을 기다릴 줄 안다 ..  (사랑 1)


 그러니까, 김남주 님한테 당신 칼은 당신 낫이며 쟁기요 호미입니다. 김남주 님한테 당신 피는 당신 흙이며 햇살이고 눈비입니다.

 

 썩썩 베는 낫질이 시로 태어납니다. 쿡쿡 엎는 쟁기질이 시로 거듭납니다. 콕콕 쪼는 호미질이 시라는 숨결을 얻습니다.

 

 칼춤이란 호미춤입니다. 칼노래란 낫노래입니다. 칼바람이란 쟁기바람입니다.

 

 고운 햇살 받아먹은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어 먹는 사람은 새로 태어납니다. 싱그러운 목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빛나는 몸뚱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빛나는 몸뚱이는 빛나는 넋입니다. 빛나는 넋은 빛나는 말입니다.

 

 그예 김남주 님은 차갑고 어두우며 풀포기 하나 없는 감방에 갇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꿈을 잊지 않았기에 시를 썼어요. 메말라붙은 시멘트바닥이 동서남북 꽁꽁 둘러싸고 쇠사슬과 쇠몽둥이와 쇠창살로 얽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사랑을 언제나 되새겼기에 시를 남겼어요.


.. 내가 손을 내밀면 /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 내가 볼을 내밀면 /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 자꾸자꾸 자라나 /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 내 목에 와서 감기면 /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 옛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창살에 햇살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칼을 쥐고 싶습니다. 나는 내 피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4345.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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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9 10:13   좋아요 0 | URL
언젠가 김남주 시인 육성으로 녹음된 시를 들었어요. 시는 제목도 잊어버렸는데 그 목소리는 기억나요. 카랑카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였죠.

오옷! 이것이 1000번째 느낌글인가요!

오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쓰셨을까요! 처음에 산들보라 똥기저귀며 식구들 빨래거리를 일일이 손빨래 하시는 보고 모니터 이 편에서 얼마나 놀랐게요. 하긴 그땐 님 서재에 와선 그런 인사치레도 남길 수 없었죠. 왠지 맞춤법이나 낱말을 한 톨도 틀리지 않고 맞게 써야 할 것 같아서..ㅎㅎ 서재 마실 다니시는 된장 님을 보면 이제 이 동네 주민 다 되셨구나 싶어요^^ 주민이 뭐예요? 터줏대감이신걸요.<--악..터줏대감도 '임자'로 벼루어야 하나요?(터줏대감이 일본식 말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숲노래 2012-02-09 10:17   좋아요 0 | URL
저한테도 김남주 육성 시낭송 테이프 있었는데,
어느 날 누가 훔쳐갔어요 ㅠ.ㅜ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시읽기가 한결 달라졌어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 대목은 또 어떻게 읽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었거든요~~ ^^

 
너를 부른다 창비아동문고 63
이원수 지음, 이상권 그림 / 창비 / 197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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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누릴 문학과 삶
[시를 사랑하는 시 8] 이원수,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

 


- 책이름 : 너를 부른다
- 글 : 이원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9.4.25.)
- 책값 : 8500원

 


 국민학교 다니면서 ‘동시 쓰기 숙제’가 참 힘들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분들은 ‘동시 쓰기 숙제’를 내면서 글잣수 맞추는 운율에서 어긋나면 안 될 뿐 아니라 생각힘을 뽐내어 새로운 말을 만들라고 했어요. 아이들한테 글잣수 맞추어 동시를 쓰라 하는 일이란 너무 벅찹니다. 기껏 말놀이나 말재주는 될 수 있어도, 막상 즐거이 읽고 사랑스레 나눌 동시를 쓸 수는 없어요.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이면서 동시를 쓰셨습니다. 아버지 책꽂이에는 다른 어른들 동시책이 꽤 꽂혔어요. 학교에서 ‘동시 쓰기 숙제’가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동시책을 뒤졌습니다. 학교 교사들 가운데 누가 알겠느냐고, 교과서에 실린 동시 말고는 읽은 적 없을 어른들이 아버지 책꽂이에 있는 동시책에 실린 동시 여러 가지를 이래저래 짜깁기한들 알아챌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동무들도 나처럼 동시책에서 뭔가 그럴듯한 꾸밈말을 베끼고 짜깁기해서 동시 숙제를 냅니다. 그런데, 다른 동무들은 짜깁기 동시로 곧잘 상을 받는데, 나는 이렇게 짜깁기한 동시로 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때, 내 생각은 오직 하나, ‘뭐야, 나도 저 애들하고 똑같이 짜깁기 했는데, 나만 왜 상을 못 받아? 쳇!’이었습니다.


.. 눈 얼음에 덮였던 북향 뜨락에서 / 겨울을 난 개나리 가지에 / 꽃봉오리 일제히 트는 것은 / 우리 눈을 즐겁게 하려는 / 그런 뜻에서가 아니었다. // 봄마다 우린 너를 반겨했지만 / 개나리 네 가슴엔 / 더 큰 벅찬 것이 있었던 것을……. // 그 모진 추위 / 더구나 찬 밤 얼음 속에 서서 / 너는 불 켜진 따순 방 유리창을 바라보며 / 이를 악물고 울었을 게다. / “살자, 살자, 살자!”고 / 마음속에 힘주어 다짐하면서 ..  (개나리 꽃봉오리 피는 것은)


 국민학교 다니며 국어를 배우는 때가 되면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혀짤배기인 탓에 교사들이 바라듯 ‘교과서를 빨리 읽’으려고 하려면 으레 혀가 꼬입니다. ㄹ 글자는 소리 내기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한 낱말은 ‘우리’였는데, 교과서에는 툭하면 ‘우리’가 튀어나옵니다. 우리 형,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학교 …… 아아, 번호 차례나 책상 차례에 따라 내가 읽을 대목이 어디인가를 어림해서 먼저 후다닥 속으로 소리내어 읽습니다. 내가 읽을 대목에 ‘우리’가 몇 차례 나오는가 셉니다. 다른 ㄹ 들어간 글자가 몇 있나 훑습니다. 부디 틀리게 읽지 말자고 다짐하면 수없이 되읽고 욉니다.

 

 어느 날에는 서너 줄밖에 안 되는 글월에 ‘우리’가 자그마치 일곱 차례 나옵니다. 나는 이날 이 교과서 읽기가 너무나 끔찍해서 여태 잊지 못합니다. 고작 서너 줄 읽으며 그만 혀가 꼬여 더는 읽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교사는 못 읽은 만큼 몽둥이로 때립니다. 동무들은 혀짤배기 꼬이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 호호 웃고, 나는 어디 숨을 구석이 없어 쪼그라듭니다.

 

 내 어릴 적 국어 배우는 날은 아주 싫고 슬프며 미웠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교과서 읽기를 숙제로 내거나 시험으로 칠 때면 아주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 마룻바닥에. // 코끝에 땀이 송송 / 더우신가봐. / 부채질 해드릴까. / 그러다 잠 깨실라. //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 콧잔등에 잔주름 / 그도 예뻐요. // 부채질 가만가만 해드립니다 ..  (우리 어머니)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힘들던 국어였는데, 중학교로 가니 교과서 읽기를 따로 시키지 않습니다. 교과서 읽기를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우며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엉키고 설키며 꼬인 실타래가 차츰 풀립니다. 이제 비로소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교과서로 읽는 시는 영 못마땅합니다. 자연을 노래하고 꿈을 그린다고 하는 시라지만, 가슴에 촉촉히 젖어들지 않습니다. 뜬구름을 잡을 뿐 아니라, 글쓴이 이름을 가리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쓴 시인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시가 싫었습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리고도, 이 시를 읽으며, 아하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쓴 시로구나, 하고 느낄 만해야 글이 아닌가, 시가 아닌가, 삶을 나누는 사랑이 꽃피는 문학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마땅하게 교과서 문학은 읽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안 실린 사람들 시를 찾아서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고 책방에 갑니다. 낯선 이름 낯선 시집을 들춥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고 내 마음을 두들기는 글과 꿈을 찾습니다.


.. 봄비는 은실로 내리면서 / 흙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네. / 정다운 얘기하며 땅에 스미네. // 젖은 흙에서 싹이 나오네. / 비는 위에서 내려오고 / 싹은 아래서 올라오네. // 봄비는 남몰래 흙 밑에서 / 어린 씨앗 속에 스며들었네. / 가슴 부풀려 싹을 틔웠네. // 비는 위에서 내려와도 / 싹에 얼려 한몸 되어 다시 오르네 ..  (봄비)


 문득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어린 날 교과서 읽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교과서 읽기가 몹시 못마땅하며 괴롭고 싫었으나, 이 끔찍한 일을 치르면서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오래도록 갈고닦은 셈입니다. 내 혀가 짧지 않다면, 내 혀가 다른 여느 동무하고 비슷한 길이라 혀짤배기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게다가 내 코가 다른 여느 동무와 같다면, 코막힌 킁킁 소리가 내 말소리에 섞이지 않는다면, 이때에 내 글읽기나 책읽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내 몸이요 삶이라면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하지 않았을는지 모르며, 글을 재빨리 읽어내는 버릇을 들이지 못했겠지요.

 

 동시 베끼기 숙제를 여섯 해에 걸쳐 하는 동안, 어느 동시책을 들추어 동시를 베끼든 어슷비슷한 줄 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 와 돌이키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할 만합니다. 예나 이제나 적잖은 ‘동시인 어른’은 말놀이와 말재주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귀염둥이로만 바라보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많습니다. 어린이 삶으로 녹아들며 어린이와 어깨동무하려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적습니다. 어린이가 맑고 밝으며 착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나날을 함께 일구려는 동시인 어른이 참 드뭅니다.

 

 파란 빛깔 하늘과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언제 어디에서 부나요. 파란 빛깔 하늘을 노래하자면, 글로만 노래하면 되나요. 자동차 넘치며 배기가스 매캐한 이 나라에 어디 파란 빛깔 하늘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팍팍하거나 고단한 살림을 이어야 하는 이웃이 있거나 내 집안이 팍팍하거나 고단하다 할 때에, 이와 같은 팍팍함과 고단함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풀어야 하는가 하는 실타래를 살피지 않고 예쁜 말만 만들면 동시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일본 오끼나와의 어린 아이들은 / 남의 나라 뺏으려는 도둑질 전쟁 끝에 / 악마 같은 명령을 좇아 / 폭탄을 지니고 연합군의 진지로 / 죽음의 진지로 / 가엾이 뛰어들어 무참히도 죽어 갔다. // 5학년의 어린 아이도 있었단다. / 너와 같은 열두 살짜리도 있었단다. / 백성들을 죽여서까지도 / 저희들만 잘 되려는 / 나쁜 사람들의 정부 밑에 살았기 때문에 / 커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간 어린이들. // 우리는 그 흉악한 나라에서 빠져나왔지만, 독립만세 부르며 기뻐 뛰는 가운데서도 / 가엾이 죽어 간 / 오끼나와의 어린 동무들을 생각하자. // 다 같이 잘 살 줄 모르는 / 욕심장이들을 없애지 않고는 / 즐거운 나라는 될 수 없단다 ..  (오끼나와의 어린이들)


 이원수 님 동시책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를 내 손으로 쥐어 처음 읽은 날은 2000년 10월 21일입니다. 나는 스물여섯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원수 님 동시책을 ‘책으로’ 처음 읽습니다. 스물여섯 해를 살기까지 국민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이원수 동시’를 옳게 말하거나 제대로 들려주는 둘레 어른이나 동무는 없습니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나 스스로 찾을 생각을 못 합니다. 그저 ‘이원수 = 고향의 봄’으로 끝납니다. 가끔 ‘이원수 = 겨울나무’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같은 싯말을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적 없습니다.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하는 싯말을 읊던 어른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처럼 시를 노래하는 어른을 만날 수 없습니다.

 

 꼭 한 번, 《너를 부른다》를 국민학생 때에 읽었다고 하는 또래동무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녁은 1979년에 나온 동시책을 아마 1982년이나 1983년에 처음 읽었겠지요. 게다가, 이 녀석은 1984년에 나온 권정생 님 동화책 《몽실 언니》를 1984년에 읽었다고 떠올렸습니다.

 

 나는 《너를 부른다》를 2000년이 되어 비로소 읽었고, 《몽실 언니》는 1998년에 겨우 읽었습니다. 이때가 되도록 어느 누구도 나한테 이러한 책·문학·삶이 있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 순희 사는 동네에 가면 / 개울물 소리 음악처럼 울려 오고 / 보드라운 새깃인 양 / 내 얼굴 스쳐 주는 바람. / 그 바람에 숨막힐 듯한 꽃 향기, 나무 향기. // 순희 사는 동네는 비탈진 골짜기 / 높은 산밭에서 거름을 주고 있는 순희를 보면 / 아! 그 귀여운, 일하는 모습 ..  (순희 사는 동네)


 어린이로 살아갈 때에 어린이 삶·꿈·넋을 빛내는 사랑·믿음·말을 들을 수 없다면 너무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이렇게 좋은 책·문학·삶이 있었어도 만날 수 없었으니, 나이든 이제 돌이키면 슬프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위인 형 언니 누나 들을 헤아리면, 이제라도 읽을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셈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한글을 깨치고 나서 《너를 부른다》와 《몽실 언니》를 어린이일 때에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늘 즐길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로서 어린이문학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 해가 지면 성둑에 / 부르는 소리. // 놀러 나간 아이들 / 부르는 소리. // 해가 지면 들판에 / 부르는 소리. / 들에 나간 송아지 / 부르는 소리. //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 어머니 생각―. // 부르는 소리마다 / 그립습니다. / 귀에 재앵 들리는 / 어머니 소리 ..  (부르는 소리)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을 즐기지 못하면 슬픕니다. 그러나,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답게 무럭무럭 뛰놀며 자랄 수 없다면 훨씬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만나거나 즐기지 못했지만, 마음껏 뛰놀며 동무들과 얼크러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일 적에 어린이문학을 맛보지 못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다이 온갖 생각날개 펼치며 꿈꿀 수 없으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빛나는 어린이문학을 듣거나 마주하지 못했으나, 끝없이 생각날개를 펼치며 나한테 다가올 새날을 기다렸습니다.

 

 책으로 적바림한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책으로 적바림하지 않았으나 삶으로 아로새기는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 온 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  (햇볕)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빛깔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내음일까요.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린이한테 어떠한 꿈과 노래와 춤사위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른한테 어떠한 사랑과 살림과 땀방울일까요.

 

 오늘날,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서면 이원수 님 동시를 가르치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대입시험을 치르는 자리에 이원수 님 동시를 지문으로 내놓고 문제를 풀라 하지 않습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이라는 자리에서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어린이책·어린이문학·어린이삶을 얼마나 누리거나 살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문제에 이원수 님 동시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찔레꽃이 햐앟게 피었다오” 하고 노래하던 때가 언제요, 이러한 노래는 누가 누구를 기다리며 부르는 말마디요 꿈인가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감자 씨는 묵은 감자, / 칼로 썰어 심는다. / 토막토막 자른 자리 / 재를 묻혀 심는다. // 밭 가득 심고 나면 / 날 저물어 달밤. / 감자는 아픈 몸 / 흙을 덮고 자네. // 오다가 돌아 보면 / 훤한 밭골에 / 달빛이 내려와서 / 입을 맞춰 주고 있네 ..  (씨감자)


 스물여섯 살에 처음 읽은 동시책 《너를 부른다》를 서른여덟 살에 다시 읽습니다. 앞으로 열두 해를 더 살아내어 쉰 살이 되고서 《너를 부른다》를 새롭게 거듭 읽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곁에서 이 동시를 함께 읽을 수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짝꿍을 만나 아이를 새롭게 낳으면, 내 손주가 될 아이들하고도 《너를 부른다》를 나란히 읽을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마, 다시 읽겠지요. 아마, 또 읽겠지요. 아마, 거듭 읽겠지요.

 

 왜냐하면, 나는 내 여덟 살에도 내 열여덟 살에도 내 스물여덟 살에도 내 서른여덟 살에도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하고 느끼니까요. 내 나이 마흔여덟이 된들 개나리꽃 들여다볼 때에 눈이 안 부시리라 느끼지 않아요. 쉰여덟이나 예순여덟이 되더라도 개나리꽃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이 부시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 하얀 찔레꽃 따먹었다오. /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  (찔레꽃)


 날마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빨래를 마치면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줄줄이 넙니다. 빨래들은 바람 불면 춤을 춥니다. 살랑바람 불면 살랑춤 춥니다. 싱싱바람 불면 싱싱춤 춥니다. 산들바람 불면 산들춤 춰요. 된바람 불면 된춤을 추기 때문에, 이때에는 빨래를 걷어 집안에 옷걸이에 꿰어 넙니다.

 

 날마다 새롭게 크는 아이들 바라보며 날마다 손바닥 꾸덕살 두툼해지는 내 손을 바라봅니다. 내 손을 들여다보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손은 이 나이 무렵에 어떠했을까 하고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된다면, 이 아이들 손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고 헤아립니다.

 

 흐르는 삶입니다. 자라는 사랑입니다. 피어나는 삶입니다. 찬찬히 크는 사랑입니다.

 

 싯말 하나에는 씨앗 하나 깃듭니다. 씨앗 하나에는 이야기 한 자락 감돕니다. 이야기 한 자락에는 삶과 꿈과 땀이 골고루 어우러집니다.

 

 살아가며 쓰는 시입니다. 생각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림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아가지 않고 머리만 굴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꼼수를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살림하지 않고 남을 들볶거나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 노란 빛이 햇볕처럼 눈이 부시네. // 잔등이 후꾼후꾼, 땀이 배인다. / 아가 아가 내려라, 꽃 따주께. // 아빠가 가실 적엔 눈이 왔는데 / 보국대, 보국대, 언제 마치나. // 오늘은 오시는가 기다리면서 / 정거장 울타리의 꽃만 꺾었다 ..  (개나리꽃)


 아이들하고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으니 동시를 읽습니다. 동시를 하나하나 알뜰히 읽으면서 나 또한 동시를 쓰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예쁘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천천히 글꽃이 됩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씨앗이 아이들 가슴에 젖어들어 씩씩하게 자라면 말꽃이 핍니다. 이 말꽃을 가만히 되새기면 시꽃으로 거듭납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고갯마루 넘으며 “이야, 저기 멧봉우리에 구름이 앉아서 쉬는구나.”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고갯마루 낑낑대며 넘다 보니, 나도 다리쉼을 하고 싶은 나머지, 판판한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멧봉우리 구름이 나처럼 다리쉼 하는 동무처럼 보였어요. 깜깜한 밤하늘 올려다보고 시골길을 거닐 때 아이가 “구름이 깜깜하니까 달이 하얗게 비추네.” 하는 말을 문득 내뱉습니다. 등불 없는 시골길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별이랑 달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봄이 찾아와 아이들과 밭뙈기에 씨앗을 심으면, 씨앗이 자라 싹이 돋으면,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르며 잎을 틔운다면, 푸른 줄기와 잎 사이사이 꽃봉오리 핀다면, 이때에도 어버이와 아이는 저마다 달리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싯말을 마음껏 터뜨리겠지요. 싯말은 삶말이고, 삶말은 싯말입니다.

 

 함께 누리는 삶이기에 함께 쓰는 시 아닌가 생각합니다. 함께 즐기는 삶이기에 함께 읽는 책 아니랴 생각합니다. 함께 꾸리는 삶이기에 함께 먹는 밥이요, 함께 사랑하는 삶이기에 함께 지내는 집이지 싶어요.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대로 내 고향마을을 삼습니다. 꼭 내가 태어난 데가 내 고향이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내 꿈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펼치면서 즐거운 자리가 내 고향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커다란 도시가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멧골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지구별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드넓은 하느님 품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깊은 바닷님 가슴속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따사로운 햇님 살결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 스스로 예쁘게 고향마을로 삼으며 뿌리내리는 터에서 삶꽃을 피우는 동안 시꽃을 피웁니다. 내가 아이들과 시꽃을 피울 수 있을 때에 내 삶꽃이 곱게 피어납니다.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어머니 파랑 치마 팔랑팔랑 / 쬐꼬만 내 치마도 팔랑팔랑. // 빨랫줄에 높다라니 매달려서 / 무섭지도 않은가 봐, 내 앞치마.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빨래 따라 꽃이파리 팔랑팔랑 / 꽃잎 따라 노랑나비 팔랑팔랑 / 모두 같이 춤춘다, 팔랑팔랑 ..  (빨래)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숨을 거둔 이원수 님은 조금이라도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한때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슬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리고 푸르며 젊은 나날을 보냅니다. 해방 뒤로는 숱한 군화발과 고달픈 새마을운동에 시달립니다. “내 소년 시절이 억압과 곤궁의 시절이라면 해방 이후는 자유롭고 복된 세상이 됨직도 하지만 그렇지가 못했고, 내 시도 역시 즐거운 노래로 돌아서지는 못했다(197∼198쪽).”는 이야기처럼, 이원수 님은 즐거이 부르는 싯말을 일구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원수 님 동시를 읽다 보면, 어느 한 대목 즐겁지 않은 싯말이 없어요. 울면서 웃고 슬프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꿈이었기 때문일까요. 동시집 이름이기도 한 시 〈너를 부른다〉는 1946년에 썼다고 해요. 동시 〈너를 부른다〉 첫머리는 “나뭇잎이 손짓하며 / 너를 부른다. / 운동장 느티나무 / 가지마다 푸른 잎새 / 바람에 한들한들 / 너를 부른다.”로 열고, 끝마디를 “순희야 / 순희야. // 양담배 양사탕 / 상자에 담아 들고 / 학교에 안 나오고 / 행길로만 도느냐. / 우리도 목메이며 / 너를 부른다.” 하고 맺습니다.

 

 2010년대에도 한길로만 도는 ‘너희’들이, ‘순희’들이 있습니다. 남녘땅에도 있고 북녘땅에도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를 뽐내는 미국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 때문에 먼지처럼 죽고 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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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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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도 힘들고 시읽기도 힘겹고
[시를 노래하는 시 12] 송경동, 《꿀잠》

 


- 책이름 : 꿀잠
- 글 : 송경동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3.30.)
- 책값 : 8000원

 


 열흘 남짓 입었는지 보름쯤 입었는지 헷갈리는 두툼한 웃옷을 벗은 엊저녁, 새 웃옷을 꺼내 입지 않고 잠들었는데, 반소매 웃통으로 이불 세 겹 덮어쓰고 자다가 내 옆에서 꼬물거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한테 내 이불 씌우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을 가리는 이불이 없더니, 그만 밤새 찬바람 많이 마시며 고단한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둘째 똥기저귀를 두 벌 빨래하고 나서는 도무지 몸이 버티지 못하겠구나 싶어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당근을 씻어서 알맞게 썬 다음 물을 짭니다. 이럴 때에 곁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거나 함께 놀아야 일이 수월한데, 꿈결인지 잠결인지 아스라한 소리만 듣고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허리를 폅니다.

 

 두 시간을 들뜬 몸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납니다. 두툼한 겉옷을 입습니다. 아이 둘은 어머니 곁에서 알짱알짱 붙어서 칭얼거립니다.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 칭얼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침과 낮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거꾸로, 아이 어머니가 드러누운 때, 내가 두 아이 먹을거리를 마련하면서 집안을 쓸고닦는 한편,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 빨래하는 몫을 기쁘며 홀가분하게 짊어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짊어지기야 하지요. 날마다 이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다섯 해째. 그렇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싱그러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이 집일을 거느리면서 아이들하고 사랑꽃을 나누었을까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립니다.


..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 괭이가 박혀 있던 손 ..  (손)


 아버지가 깬 뒤 둘째 아이가 셋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둘째를 살짝 안고 한동안 어르다가는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똥기저귀랑 낮에 눈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사이, 둘째 아이는 넷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아이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새로 빨래하는 김에 오줌기저귀 두 장을 더 빨래하고, 옆지기 두툼한 겉옷 한 벌 나란히 빨래합니다. 후줄근하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넙니다. 새벽에 빨래해서 널어 다 마른 옷가지와 기저귀를 걷습니다. 걷은 옷가지는 갤 틈이 없습니다. 똥을 두 차례 더 눈 둘째는 틀림없이 졸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둘째를 어르고 나서 먹을거리 마련하기를 더 하는 동안, 아버지는 둘째를 품에 안습니다. 둘째 가슴을 톡톡 다독이고 노래를 부릅니다. 둘째는 눈을 뜨고 감다 되풀이하다가 스르르 감습니다. 옳지 옳지 이제 나이 제법 먹었으니 꼭 어머니 등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곱게 잘 수 있겠지.


.. 우린 흙 묻은 안전화를 끌며 계단을 서성이다 / 후문을 나서 다시 새벽 작업장으로 간다 ..  (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한창 뛰놀며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같이 놀자고 부르는 첫째 아이를 한동안 무릎에 누여, 얘, 얘, 아버지는 좀 쉬자, 좀 쉬다가 놀자, 너도 책 좀 읽어 주렴, 아버지도 책 읽으며 살짝 쉬자꾸나, 다리도 쉬고 허리도 쉬며 등도 팔도 쉬자꾸나, 이야기하며 시집을 들춥니다. 만화책도 읽고 사진책도 읽고 그림책도 읽습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글을 읽히며 함께 들추기도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림책 그림을 혼자 말끄러미 바라보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굳이 어떤 말을 살붙이며 들려주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생각힘을 북돋웁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며 때때로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그림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만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시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나 어릴 적 살던 집에 책이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빨간빛 딱따구리 100권 넘는 손바닥책이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키면, 내 어버이 두 분부터 어린 나날 책을 읽으며 자라지 않았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버이 두 분은 도시와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바쁘게 부대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이 삶을 이었고, 종이로 된 책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이 둘레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 그 술집이 있던 닭장 골목 / 그 골목 밀고 이제는 멋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 나는 왜 이리 슬픈가. 집을 잃은 아이처럼 ..  (마지막 술집)


 나는 일곱 살 적 무얼 하며 한 해를 보냈는지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까스로 한두 대목 떠올립니다. 나는 여섯 살 적이나 다섯 살 적이나 네 살 적이나 세 살 적을 거의 하루조차, 한 시간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내 넋으로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일 적에 나는 한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하고. 우리 아이들이 두 살이고 세 살일 때에 나는 두 살 세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느 곳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누리며 살았을까 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저희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적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돌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 바라보면서 저희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모습을 되새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먼 뒷날 되새길 저희 어버이 모습, 곧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한 이야기 나누는 사람일까요.


.. 하고많은 길 중에 내가 걸은 노동자의 길 ..  (길)


 아이와 살아가는 숱한 어버이들이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 이야기합니다. 나도 내 아이들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이 그지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눈물을 짓습니다. 아이들 살몃 감은 두 눈을 바라보며 시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들 보드라운 볼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시를 절로 노래합니다.

 

 문득, 거꾸로,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나를 재우면서 내 어버이도 나를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그무렵 나는 내 어버이를 보며 나를 재우는 어버이 손길이 언제나 포근하면서 따사롭구나 하고 느꼈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쁘며 사랑스레 잠드는 아이들을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하면서 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과 말길 모두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게 바뀌니까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예쁘리라 생각해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사랑스럽구나 생각해요.


..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 나는 깜짝 놀랐다 /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  (뒷빽)


 송경동 님 시집 《꿀잠》(삶이보이는창,2006)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송경동 님이 틈틈이 적바림한 글줄을 그러모은 《꿀잠》이라는 시집이 태어나기까지, 참말 시쓰기가 힘들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팍팍한 울타리와 맞서면서, 힘들게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을 고단하게 내모는 걸림돌과 부딪히면서, 참으로 힘들게 시를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힘들게 쓴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겹습니다.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도 참으로 버겁습니다.

 

 시를 쓰기 힘든 이 나라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겨울밖에 없는 이 나라일까요. 시를 쓰면서 힘들게 이맛살 찡그리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픈 이 나라인 탓에, 시를 읽는 사람까지 뻑적지근해지는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겨우겨우 한 쪽 두 쪽 읽다가 이내 덮고는 똥기저귀를 빨고 오줌기저귀를 갈며 밥을 차리고 비질을 해야 할까요.


.. 세계는 학살을 하며 / 그게 평화라 하고 / 기생을 자유라 하고 / 굴종을 안녕이라 가르치기에 / 오늘부터는 없는 말 / 태어나지 않은 말들만 / 믿기로 했다 ..  (102쪽)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을 사랑했을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꿈을 심으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면서 아이들을 마주할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버지들은,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빛을 가슴에 묻으면서 어떤 사랑을 서로서로 빛낼까요.

 

 남녀평등이고 여남평등이고 성평등이고를 떠나, 201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도 집안일을 여자가 할 때에는 아뭇소리 없습니다. 2020년대를 곧 맞이할 텐데, 2030년대나 2040년대가 되더라도 집안일을 남자가 할 때에는 참 얄궂다는 눈길로 바라봅니다. 혼인을 해서 며느리가 되면 시댁 집안일과 제사까지 맡아야 합니다. 혼인을 해서 사위가 되면 친정마실을 하더라도 그저 손을 놓고 책상다리로 밥과 술과 고기를 받아먹기만 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무엇일까요.


.. 농사는 안 허는디요, 소작 허는디요 / 소작이 농사지 뭐여 웃던 사람들도 / 소작이 무신 농사여 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 아낙의 얼굴에 핀 더운 열꽃 ..  (바닷가 야유회)


 노동자 길을 걸어간 송경동 님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벌교하고 한참 멀디먼 서울바닥에서 노동자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거꾸로, 서울에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자 길을 걷다가, 전남 보성 벌교로 흙일꾼 길을 걷는다든지,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사람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서울로 가고, 또 서울로 몰리며, 또 서울에서 으싸으싸 하면서 나라를 갈아엎으려 하는지 궁금해요.

 

 바깥에 볼일이 있어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벌교읍을 지날 때면, 벌교시장 그득히 늘어선 꼬막장사 할매와 아지매를 바라보곤 합니다. 참말 사람 많고 저잣거리 넓구나 싶습니다. 벌교라 해 봤자 그리 넓지 않은 터에 넓지 않은 갯벌인데, 이 조그마한 벌교 갯벌에서 온 나라 꼬막구이 꼬막무침을 마련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하기는. 한국에서 거두는 쌀이 남아돈대서, 시골마을에서 ‘논을 묵히’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직불보상금).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구는 논밭으로도 ‘쌀이 남아돈다’지만 나라밖에서 새로운 곡식을 사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자동차와 손전화를 나라밖으로 팝니다.

 

 노동자는 자동차를 구워먹느라 힘들까요. 노동자는 2012년 1월부터 단돈 1만 원이 된 숫젖소 고기를 구워먹느라 버거울까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설이나 한가위 때처럼, 모두들 일손을 놓고 고향마을 시골로 가서 두 번 다시 서울로든 인천이로든 대구로든 부산으로든 가지 말고 흙하고 어깨동무하고 살아간다면, 파업 아닌 파업으로 온 나라 크고작은 도시를 꼼짝달싹없이 멈추도록 한다면,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몽땅 시골마을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텃밭과 무논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온 나라 공공기관과 청와대와 언론사 모조리 멈추도록 한다면, 깊은 밤에도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까만 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나겠지요.

 

 별을 보기 힘드니 시를 쓰기 힘듭니다. 별을 보기 힘겨우니 시를 읽기 힘겹습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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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1-29 22:21   좋아요 0 | URL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아이 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요. 철 들기 전의 세월들은 그저 부모님의 몫으로 고스란히 묻혀져 버리는 셈이지요. 사랑의 눈으로 찰칵 찰칵 찍힌 자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은 부모님 가슴팍에 새겨져 있겠지요.
저는...드문드문 네 살 때 기억과 여섯 살 때 기억이 나요. 네 살 땐 사랑하는 내 막내동생이 죽을 뻔했구요.그래서 거짓말처럼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아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날마다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자랐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똥 싸고 오줌 싸며 아버지가 어르고 어머니가 젖 먹이고 그 품안에서 소르르 꽃잠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송경동 시인요, 저랑 동갑 시인인데....읽으면 가슴이 참 아파요)

숲노래 2012-01-29 22: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리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송경동 님이 하루하루 더 즐거이 살아가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그러니까, 이 나라가 참으로 아름다우며 빛나는
좋은 나라로 차근차근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