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민주화 -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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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민주주의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기본 조건일까?

정치적 형태로서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기원과 역사적 과정을 고찰하지 않더라도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 이전의 중세 봉건 사회에서 공화정으로 이행 과정은 피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비릿한 피냄새가 가득하다. 오욕의 한국 현대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획득한 가치인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에서 정착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과정을 통해 달라진 삶의 질적 변화이다. 물론 변화가 없을 리 없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화라는 정치적 이념과 결합되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고 그 뿌리를 확인하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최장집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와 대안을 고민하기 위한 분명한 제언들로 가득하다. 개별 사안과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논쟁들도 중요하지만 거대 담론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들이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가장 첨예한 국가의 정책 사안인 한미 FTA에 대해 국민들은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들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이나 의사 표현이 서툰 것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거리가 멀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정치 혐오증은 민주주의 열망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다. 17대 총선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여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최근에 벌어진 5 ․ 31 지방 선거는 집권 여당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 선거로 볼 수 있다. 미래를 향한, 혹은 선거와 정책을 통한 국민적 열망들이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복과 실망감의 표현 수단이 되어 버렸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기한 ‘헤게모니’의 개념을 조금 다른 차원과 개념으로 정의한 뒤 민주주의와 헤게모니의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이 문제는 노동과 민주주의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평화와 공존의 공동체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살펴본다. 특히 3장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개념이 아니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촉발하는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어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한미 FTA’ 현안에 대한 문제와 대안은 눈여겨 볼 만하다.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입장에서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며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풀어나갈 방법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 삶에 좀 더 밀착된 이념으로서 민주주의 이후의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고 미래의 방향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양극화가 고착될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김유선의 <한국 노동자의 임금실태와 임금정책>을 보면 IMF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대통령이 나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반성하라고 가르치는 나라의 노동 문제는 인식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내맘대로, 내멋대로, 능력대로의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민주화되고 있는지 다같이 고민해 볼 일이다.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즉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와 분배를 염두에 둔 민주주의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던 관점을 벗어난지 오래다. 이제는 미래의 한국사회에 걸맞는 이념과 정책의 방향들이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서도 고민의 깊이와 방향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개인적, 지적 능력과 상상력은 매우 크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의 집단적 능력은 매우 낮다는 것 또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정치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은 매우 낮니다.(P. 44)”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더 큰 문제다. 우수한 개인의 능력들이 왜 집단적 능력으로 발휘되지 幣求째? 정치가 아닌 철학의 문제인가.

활발하고 꾸준한 논의와 공론의 장이 마련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내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와 제도의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성격은 바로 너와 나,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06070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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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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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출판된 소설 중에서 (아마도) 제일 아름다운 소설이랍니다.
둘이 읽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소설을 가리켜서 page turner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표현이지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소설이 아니라,
책장 넘기기를 거부하게 만드는 소설이지요. 뒷부분이 다가올수록 안타까움이 짙어지는 소설이에요.
이번 가을에 어떤 소설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올해 단 한권의 추천소설은 바로 이 책이랍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블로그에 실린 ‘지금 당장 이 책을 사서 읽으세요’라는 글의 전문이다. 이 책은 바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이다. 이런 내용의 추천사를 읽고 이 소설을 사 읽지 않을 재주가 없어 그날로 주문해서 읽었다.

수많은 영화 가운데 기억나는 몇 편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꼽는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진실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각본, 연출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주인공 귀도는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를 본 순간 그녀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진심을 담아 도라를 감동시키고 그녀와 결혼한다. 아들 조슈아를 얻은 그들은 나치즘의 절정에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아들에게 1,000점 내기 게임이라고 속여 유태인 포로수용소 생활을 게임과 같은 환상으로 만들어 준다. 결국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하지만 아들 조슈아는 나무 상자에서 마지막 숨바꼭질에 성공하고 꼬박 하루 동안 숨어 있다가 누가 1등을 했는지 궁금해서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탱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귀도와 조슈아가 전해주는 감동은 전쟁의 참혹과 비정성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으며 마지막 장면이 주는 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전쟁이 어린 영혼에게 주는 충격과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전이 되어 버린 <안네의 일기>는 어른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읽힌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들이기 때문이다. 왜 싸우는지 왜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비참한 현실만이 또다른 폭력으로 아이들에게 각인된다. 전쟁이라는 폭력은 어린 영혼에게 가해지는 가장 심각하고 무거운 정신적인 좌절과 혼란이 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 무역 센터에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한다. 침대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반복되는 화면을 보면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이 너무나 먼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아침밥을 먹으로 걸프전의 폭격장면을 시청했던 1991년만큼이나 황당했다. 세상밖의 현실처럼 여겨지는 이런 일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실이 된다. 오늘도 이라크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전쟁은 계속된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12살 소년 오스카 셀은 아버지 토마스 셀을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에서 잃는다. 이후 소년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 소설의 초점은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심리소설이나 성장소설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소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물론 소년 자신의 이야기도 그렇다. 아버지가 남긴 열쇠 하나를 찾기 위해 뉴욕 시내를 헤매며 만나는 수많은 ‘블랙’씨들도 그렇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작위적이지 않은 소년의 순수성을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의 힘에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어른이 대신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가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꿈꾸고 상상하며 온몸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들’은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랑의 역사>를 쓴 니콜 크라우스의 남편으로, 뛰어난 부부 작가로 주목받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2006년 가을에 찾아온 특별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김연수의 추천사를 믿어도 좋다.

자칫 혼란스럽고 몰입을 방해하는 형식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은 입체적인 소설로 일으켜 세운다. 일관된 시점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는 작품에 비해 다소 가볍고 경쾌한 흐름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 언제나 놓여 있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머나먼 여행으로 읽히기도 한다. 제목의 의미는 물론 독자가 찾아야 할 숨은 그림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것이 폭력에 대한 경고인지 사랑에 대?찬사인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06102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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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인연의 배를 띄워 - 최척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7
황혜진 지음, 박명숙 그림 / 나라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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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전의 바다를 헤매는 일은 인류의 축적된 삶의 양식에 대한 최고의 인식 방법이다. 특히 우리 고전 문학은 선조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며 삶의 재현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가 살아온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낄낄거리며 때로는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조선 후기에 급속히 발달하는 소설 문학의 양상은 한국 문학의 전통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해 주었다. 자생적인 문학의 전통이 일천했던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지로 근대 문학으로 개화하기 전에 많은 풍랑을 겪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성과는 오롯이 한국 소설 문학의 전통이 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가 바로 조위한의 <최척전>이다. 이 소설은 조선후기의 전쟁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1592년) 이후 정묘재란(1597년)이 일어날 무렵부터 시작해서 난이 평정된 1600년경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500여년에 이르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혹독했고 참혹한 시련을 겪었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최척전>은 민중들의 삶이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주인공 최척과 옥영을 내세워 두 사람의 사랑과 기구한 운명을 사건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지만 두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만 볼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전쟁 중에 헤어져 안남(베트남)에서 해후하는 장면이나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살다가 고향인 남원에서 재차 상봉하는 장면은 질긴 운명과 인연을 내세운 한 편의 휴먼 드라마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기막힌 우연과 운명 뒤에 배경처럼 깔린 어두운 전쟁의 그림자와 민중들의 애끊는 사연들은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

역사 속에서 전쟁은 언제나 승리자의 입장에서 지배자의 입장에서만 서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조차 왜곡되는 역사에서 평범한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을 전달하는 것은 문학의 몫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혹하게 왜적에게 도륙당하고 불태워지는 장면은 그 어떤 역사보다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후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부정적인 한의 역사라고 일컫는 이유를 이 소설을 통해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나라말 출판사의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 중 하나로 출판된 이 책은 ‘지러운 세상 인연의 배를 띄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다른 어떤 판보다 내용이 충실하고 문장이 바르다. 황혜진의 글은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고전문학의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현대소설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박명숙의 그림 또한 적절하게 삽입되어 다소 지루하고 딱딱하게 전개될 수 있는 부분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 쌈지 부분이다. 책 중간에 ‘정유재란과 남원함락, 전쟁 포로 이야기, 강홍립은 역적이다와 충신이다. 최척전의 우연성, 지로로 보는 최척전, 작가 인터뷰’ 등 여섯 개의 도움글이 들어 있다. 각각 두 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이지만 고전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며 소설의 이해를 돕는 충실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고전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나 일반들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라말의 ‘고전읽기’ 시리즈는 가장 뛰어난 고전소설 시리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자신있게 추천해도 될 만하다.

책의 말미에 ‘최척전 깊이 읽기’는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현대적 의미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차분한 설명이 더해진다. 읽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우리가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쯤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우리 땅 남원에서 시작해서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반을 무대로 한 최척과 옥영의 고된 여정은 우리 민족의 신산스런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방대한 스케일과 기막힌 우연성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최척이 만났던 명나라 장수 여유문과 주우, 옥영을 도왔던 일본사람 돈우 등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관계를 맺어간다. 일본과의 전쟁 문학이라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거나 비현실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한풀이 소설이 될법하지만 <최척전>은 그렇지 않다. 인간적 연대감이 형성되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계망이 이렇게 기막힌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소설보다 기막힌 작가 조위한의 기막힌 삶과 주인공 최척의 유사한 상황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얻게 된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무엇일까?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유랑민과 평등, 인권 측면에서 살펴봐야하는 전쟁의 의미는 이 책을 통해 비추어 보아야 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침략적 제국주의와 폭력을 앞세운 헤게모니 전쟁은 끊이질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오늘도 되풀이 되지만 영원한 평화와 공존의 시대는 요원하기만 한 슬픈 시대를 살고 있다.


06102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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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0-2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할 점을 남겨주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일만생기시기를........

sceptic 2006-10-2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즐겁고 행복한 책읽기 계속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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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붉은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주의는 현실이 되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74년간 지속된 인류의 또 하나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충격은 한 국가의 패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국가 건설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은 실망을 넘어 사회주의 진영을 공황에 빠뜨렸다. 60년대는 물론 70년대와 80년대라는 질곡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90년대의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했고 21세기에 들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요원하기만 하다.

특히, 노동 운동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노동자나 노동조합 같은 말은 곧바로 빨갱이를 연상시켰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뿌리깊은 부정적 뉘앙스와 잘못된 인식의 틀은 쉽게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 비정규직의 확대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여전히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아니 서로 다른 상식을 소유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를 걸어가면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종강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의 가족주의적 행복과 경제적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데 하종강이 지니는 의미의 본질이 있다. 한 개인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실 자살한 전태일 열사는 노동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단병호로 대표되는 민주노총은 이제 당당히 국회에 진출했다. 현실적 한계와 역량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역사는 늘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의 다른 모습들이므로.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은 1년에 300회가 넘는 강연을 하며 항상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을 한다. 그러니 그의 강연과 글은 이론적 틀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장감이 무기가 된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 말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읽는 사람의 손을 잡아 버린다. 이성적 판단과 이념의 진정성을 넘어 날것 그대로 따뜻한 피부처럼 온몸으로 안겨온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의 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감성에 기대는 그의 글쓰기는 그래서 더 무섭다. 이 감성이 유치한 감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노동조합 투쟁의 현장과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종조합이 왜 우리의 삶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직도 억압과 고통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현장의 울부짖음과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한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하종강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들의 필독서다. 자신이 노동자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하종강의 토막글들을 커다란 주제로 묶어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거칠게 편집된 책이지만 글의 길이와 주제와 상관없이 전달되는 감동은 단순히 내가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 줄 것이다. 오랫동안 현장에 서 활동하지 못하고 야만의 시절에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하종강은 ‘부채감’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채감이 20년이 넘도록 그를 지탱하게 해 주 힘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 부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로워도 안 된다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날선 칼날이 아니라 촉촉한 부드러움이라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울대가 울컥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감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참동안 허공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뱉는다고 당장 세상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장 큰 위험이 이러한 문제들과의 거리감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운동을 해야 읽은 것을 실천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으로 내가 당장 불편하더라도,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파업을 해서 내가 당장 비행기를 못 타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종강은 이 책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노동운동’이라고, 그것이 희망이라고.


06070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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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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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소설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 배제된 소설은 향기 없는 꽃과 같다. 그 향기가 목적인가 아닌가가 문제일 뿐. 그래서 소설을 읽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 시대에 사랑이라니? 아직도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출발해서 사랑까지도 필요한 사랑을 하는 현실과 만나게 되는 일을 비참하기까지 하다. 21세기의 사랑법은 어떤 것일까?

백년 쯤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그 사람들에게 사랑은 어떤 것일까를 궁금해 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오다가다 우연한 만남처럼 선별과정을 넘어선 우연을 만나면 그때 읽으면 된다. 책을 선별하고 읽고 되새기는 과정이 기계처럼 정밀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는 법이다. 일본의 근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그렇게 만났다.

1909년에 신문 연재 소설로 쓰여진 이 소설은 20세기 초 일본의 부유층 자제인 다이스케는 안개처럼 몽롱한 인생을 살아간다. 친구 히라오카와 그의 부인이자 대학시절 친구의 누이였던 미치요와의 사랑이 이 소설의 골격이다. 식모와 서생을 데리고 서른이 넘도록 직업도 없이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얻어쓰는 주인공은 형과 형수, 조카들과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가끔 들러 결혼 재촉을 받기도 한다. 결혼 후 먼 지방에 살던 절친한 친구 히라오카가 다시 그를 찾아오면서 미치요와 재회한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의 사건은 이것이 거의 전부다.

장편이 가질만한 복잡한 갈등도 사건의 번잡함도 없다. 구성이 탄탄하지도 않고 물 흐르듯 주인공의 의식과 갈등을 지루할 만큼 길게 서술하고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보면 신소설이 등장했던 개화기에 해당된다. 사건의 우연성과 감정의 과잉토로 등 유치할 정도의 사건전개를 보여주던 것에 비교하면 일본 문학의 예민한 감수성과 집중력있는 문체가 돋보인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한국 근대사를 떠올릴 필요는 없지만 참으로 한가해 보일만큼 정적이고 차분한 소설이다.

<산시로>와 <그 후> 그리고 <문>을 묶어 나쓰메 문학의 삼부작이라고 한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동경제대 영문학 교수라는 탄탄한 사회 경제적 지위를 지닌 그가 발표한 소설은 일본 근대문학의 출발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문학사의 <무정>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근대적 지성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여러 가지 평가와 논의는 비평가들과 학자들의 몫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일본 근대 문학의 풍경을 살펴 볼 수 있는 작품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화와 짙은 백합 향기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추억을 기억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며 감각적 이미지이다. 몸이 기억하는 과거는 잊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 향기를 잊지 못하는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과 그것을 확인하는 방식들이 너무 더디다. 치밀하고 탄탄하지 못한 구성의 한계 때문이지만 그것이 1909년에 발표된 소설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는 적절치 않다. 후반부에, 급격하게 그리고 열정에 가까울 정도로 두 사람이 사랑만을 확인하고 제각각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들은 공감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사랑을 미치요의 남편과 다이스케의 가족들이 모두 알아 버린 후 형이 찾아와 경제적 지원은 물론 가족간의 절연을 선언한다. 아버지의 분노와 부모간의 의절을 전한 것은 물론이다. 직업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다이스케의 눈에 비친 온통 붉은색의 세상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인식될 것인지 ‘그 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긴 여운과 다양한 결말을 의도한 제목이라기보다는 나쓰메 특유의 ‘대충’ 혹은 ‘무의미’한 제목 붙이기로 볼 수 있다.

고전으로 분류된 문학의 현재적 의미는 개개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문학의 본령은 여전히 내 삶에 미치는 영향과 반성적 인식의 틀이다. 감동과 교훈이라고 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소설의 의미를 떠나 진부한 ‘사랑’과 ‘인생’에 대한 쉼표와 같은 것이 소설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는 교양으로서가 아니라 일본 근대 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당대 한량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관심으로 읽으면 된다. 그 밖의 것들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방식으로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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