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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소'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素소,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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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지를 건너와 뺨을 스치는 바람결에 온기가 가득하다. 파아란 하늘, 살랑거리는 바람에 화창한 볕이 주는 가을날의 마지막 몸짓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누구의 흔적일까. 볕 좋은 날, 소나무 숲 오솔길을 걷다 만난 가벼운 몸짓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줄 모르고 앉았다. 품을 벗어나고도 머뭇거림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아쉬움으로 서성거렸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머뭇머뭇 더디가는 가을을 재촉할 이유가 없듯이 오는듯마는듯 주춤거리는 겨울을 부를 이유도 없다. 지금 이 볕이 주는 온기를 담아두었다가 섣달 눈이 오는 날 가만히 풀어 내면 그만이다.

이제서야 가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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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최준영의 책 '동사의 삶'에 나오는 문장이다. 틀에 얶매이지 않고 본질로 다가가는 시각이 새롭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함께 떠올려 본다. 누군가를 몹시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아는 무엇을 이야기 한다. 그 중심에 그리움이 있다. "너였다가/너였다가,/너 일 것이었다가"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그 중심은 기다림이다. 스스로를 버리고 다음을 기다리는 나뭇잎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의 교류다. 봄이든, 희망이든, 시간이든, 너이든ᆢ. 다른 무엇을 담아 기억하고, 보고, 찾고, 생각하며 내 안에 뜸을 들이는 일이 기다림이다. 그렇게 공구한 기다림 끝에는 새로이 펼쳐질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다.

꽃을 볼 기회가 궁한 때다. 안 보이던 곳이 보이고 미치지 못했던 것에 생각이 닿는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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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花不惜命 심화불석명

愛雪常忍凍 애설상인동

​꽃을 찾아서 목숨조차 아끼지 말고,

눈을 사랑하거든 얼어 죽을 각오를 하라.

*추사 김정희가 겸재 정선의 '雪坪騎驢설평기려'(눈 덮인 들판에 나귀 타고 가다)를 보고 쓴 글이라 한다.

그 기상이야 덧붙일 말이 없다. 잇달아 드는 생각이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에서 해제되어 돌아와 쓴 당호 與猶堂여유당에 이른다.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평범한 이의 눈에는 숨쉴 틈이 안보이니 단 한걸음도 내딛기 버겁다. 그래도 위안 삼는 것은 있다.

莊子장자의 逍遙遊소요유다. 삶은 소풍이라고 했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마음의 자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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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하다'

약속되어 있음을 전재로 성립하는 마음가짐이다. 현재를 바탕으로 내일을 향해가는 발걸음의 근거이기도 하다. 무게를 더해온 깊이가 있기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깊어진다는 것을 누군가는 저물 때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저문다는 것은 특정한 상황의 마지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는 이 상황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질적변화를 시도할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을 이어가는 연속선상의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다른 계절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날이 급격한 변화를 재촉한다. 이 변화는 이제 더 굳건한 바탕 위에 서 있음으로 기꺼이 받아 안을 수 있는 질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을 굳건하게 이겨냈다. 애쓴 당신,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 당신의 그 힘이 다음을 기약하는 근거가 되리라. 당신의 그 힘이 있어 다가오는 시간은 찬란하게 빛나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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