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조너선 밀러가 진행했던 84년 bbc 6부작 다큐 Sea of Faith
산책할 때 들었다. 기독교의 역사, 특히 기독교가 감당해야 했던 도전들 중심으로 그 역사를
보는 내용인데, 4부던가 5부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 꽤 자세한 내용이 있다. 매우 허접한 중등교육을
거쳤기 때문에,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상할 것도 없게도, 이상할 건 아니지만이 더 맞나) 혁명의 유산이 한국에서는 유산이 아니기 때문에, 내겐 히스토리 채널, bbc 같은 데서 만든 다큐들이 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을 진지하게 보게 한 최초의 것들이었고, 이 다큐들 보고 들을 때 정말 가슴이, 가슴이 뛰었다. 그랬다니깐. 다시 보면 지금도 그런다. 볼테르, 루소. 파리의 살롱에서 귀족들이 급진적 아이디어들을 논의하게 만들었던 이들. 심지어 "직업 불평꾼", 자신의 원한을 해소할 장으로 혁명을 이용했다는 (히스토리 채널에 따르면) 장-폴 마라. <민중의 친구 L'Ami du Peuple> 그가 발행했다는 신문. 이런 것들도, 두근두근. 아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의 여러 의의를 분명하게 칭송하는 Sea of Faith는 좋은 다큐.
얼마 전 수업에선
한국은 성공의 보람이 없는 나라 아니냐.
이 말에 공감한다면, 왜 그런가 생각해 보자.
이런 얘길 했는데, 뜻밖에도 즉각 공감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내 생각대로 이해된 건 아닐 수도 있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바로 공감함이 놀라웠다.
성공으로 부를 축적하고 명성은 얻나 몰라도, 좋은 사람 뛰어난 사람, 탁월한 사람 만나지 못한다.
사실, 부패 없이 성공 없다. 부패하지 않고는 상향 이동할 수 없게끔 와꾸가 짜여진 나라다. : 이런 얘기에도 공감이.
의사인데 방송인이고 지식인인 (정말, 그 말의 가장 좋은 의미에서 지식인인) 조너선 밀러.
이런 사람 한국에서 나올 수 없지 않나. 적어도 당분간은.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데 키에르케고르 애독자이며
여러 좋은 인용들과 함께 오래 진지하게 서양철학사에서 키에르케고르.. 이런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한국 상황에 맞추어 키에르케고르 --> 공자, 뭐 이렇게 바꾼다 해도) 한국인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사실
상향 이동... 이것을 모두가 살면서 한편 바란다면, 내가 조너선 밀러나 저 변호사처럼 되고 싶고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나. "정신의 삶" 이것 말이다. 그런데 그게 여기서는, 전혀 그림의 일부가 아님. 일부가 될 수 없음.
며칠 전 Writer's Almanac에서는
미국 모더니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그의 애독자였던 어떤 여성 작가에 대해 말하면서
그 여성 작가가 무명이고 젊었던 시절, 윌리엄스의 시를 사랑했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던 일에 대해 말했다.
(그 여성 작가는 처음 들은 이름, 모르던 작가). 나는 바로, '(그래서 그들 사이에) 혹시 강간? 성추행?' 자동 생각했고
하지만 이어진 얘기는, 윌리엄스는 참 온화한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친절했으며 두 사람은 오래 우정을 나누었다. 그녀는 1년에 두어번은 그를 방문하면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