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4 소설 보다
성혜령.이주혜.이희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미는 愚美[최애의 아이]


소설 보다 : 겨울 2024, 성혜령, 이주혜, 이희주, 문학과지성사, 2024-12-09.

 

 

  딱히 열광적으로 연예인의 팬이 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국 특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의 세계에 놀랄 따름이었다. 열광적이라고 한다면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것만이 아니라 굿즈라고 표현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거나 팬덤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아이돌 팬덤은 경계 너머의 세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 경계를 넘어가는데 뭔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고(조건보다는 진입장벽인가), 그 조건이란 대표적으로 나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암튼.

아이돌 팬덤에 대한 관심과 인식 전환이 된 계기는 누가 뭐라 해도 12·3 불법계엄 이후 남태령의 밤일 것이다. 눈오는 날의 키세스 군단, 응원봉. 그리고 응원 문화의 선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BTS 아미들까지.

  하지만 세상은 넓고 급변하며, 사람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어떤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소설 보다 : 겨울 2024에 수록된 최애의 아이우미와 같은 아이돌 팬도 있으니까. ’팬덤의 분위기와 지향하는 바가 있을지언정 개개인의 팬의 마음은 또 다를 테니까.

예전에, 커다란 스케치북 한 면을 모두 연필로 검게 칠하고 가수의 이니셜대로 지우고 있더라는 어떤 학생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미는 고무지우개 위에 유리의 이니셜을 새기고 회의 시간에도 유리의 이름을 반복해서 적는 아이돌 유리의 팬이다. 애정하는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행동은 소소하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우미는 다르다. 하긴, 그런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면 소설이 나아가겠는가. ’우미의 다름‘. 우미는 미성년이 아니며, ’최애아이돌 유리의 팬으로서 다른 것을 꿈꾼다.

  최애 아이돌의 연인이 되는 것은 아이돌 팬이라면 한번쯤은 꿈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돌의 연애나 결혼 기사가 파파라치든 공식적인 연예기사로 보도되면 그 아이돌의 생명력은 끝인 경우도 허다하다. 우미는 연인이라는 환상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최애 아이돌 유리의 아이를 갖는 것을 꿈꾸고, 이룬다.


그렇게 남자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던 순간이, 여자로 평가하는 눈빛과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해져 움츠리고 다녔던 자신의 이십대가 생각나 슬퍼졌다. 거기에 대한 반발로 미소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이 박여버린 높은 미적 기준이 거꾸로 자기 자신을 슬프게 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기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비참하지?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의 아이를.

 

  우미의 이 꿈이 가능한 현실, 에 놀랍지만 우미의 이러한 독백을 보건데, 우미가 아이돌 유리를 애정하고 유리의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것은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루어낸 집착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추고 싶은 우미는 愚美가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트로피처럼 갖고 싶은 우미가 있다면, 역시 그 욕망을 걸머쥐는 법을 아주 잘 아는 또다른 이들이 우미의 대척점에 있다. 욕망에 관한 탁월한 쟁취능력이 갖추어진 익숙한 그들-정치인이라거나 권력층이라 일컬어지는 혹은 남성이라 대변될 수 있는-, 어쩌면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환경, 그들만의 공고한 카르텔, 시스템.

 

우미와 같은 화이트칼라 계층에 소시오 패스 비중이 높은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나라 곳간 빼먹는 건 눈감아도 공병을 훔친 기초 수급자 노인은 실형을 주는 판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처음부터 최애아이돌에 대한 우미 행동의 의외성은 소설 마지막까지도 이어진다. 단순히, 요즘 넘쳐나는 한국형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행태를 다루는 건가 싶은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놓은 채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황에 그저 놀라워하고만 있기에는 그저 개개인을 소시오 패스로 격앙하여 이야기하기에는 자기들만 인간인 줄 아는 역겨운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탱크 데이[탱크]


탱크, 김희재, 한겨레출판, 2023-07-25.

 


  탱크가 핫하기에.

  이 소설은 2023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덕분에 아니 때문에, 이 책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이 책에서 느꼈던 그 이미지에는 스타벅스가 일으킨 탱크 데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탱크 텀블러를 확장하면 소설 속 탱크가 되려나.

 

  소설 속 탱크는 전투용 차가 아니라 컨테이너. 5평 정도되는 텅 빈 기도실이다. 흔히 이러한 기도가 먹히는 곳이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이듯 탱크 또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마을 야산에 놓인 밀폐된 공간이다. 그냥 놓인 빈 공간이 아니라, ‘자율적 기도 시스템으로 홍보되고 커뮤니티에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돈도 받는 곳이다. 마케팅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상업시설 같다. 최초의 탱크 설립자 루벤에게 사사 받아 탱크의 시대를 창립한 이는 황영경이라는데, 루벤의 이름은 종교 색채가 강하고, 이런 설립자 운운은 사이비냄새를 열렬하게 풍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빈 컨테이너를 기도 공간이라며 운영하는데 왜 사람들은 종교 공간이나 시설이 아닌 이 탱크를 찾는가. , 비종교인도 있을 테니……. 그것도 그렇지만 탱크에서 기도하면 원하는 미래가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한 형태로 이 공간은 홍보되었다. 근데, 바로 이런 이유가 사이비의 전형 아니던가.

  물론 소설에선 탱크를 이렇게 말한다. “뿌리 없는, 종교도 아니고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도 아니고 딱히 자기계발도 아닌, 그야말로 뭣도 아닌 것이라고. 하지만 설립자 루벤은 주술처럼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어쩌면 너무 뻔한 말. 그리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말. 이미 저러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현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탱크 데이라는 날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이미 조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홀린 듯이 모여드는 이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마음껏 욕설과 조롱을 펼칠 공간이 있다는 것, 허락이듯 구원이듯 그것을 허용하는 공간이 주어졌으니, 주저없이! 뭔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신성한’ ‘영험한곳으로 홍보되는 탱크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보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그 삶에서 어려움외로움불편함슬픔등등을 겪은 이들이 찾을 것이라는 걸. 이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은 욕망의 성취 혹은 결핍의 채움, 그리고 고통의 치유. 공간이 주는 상징에 의미의지를 더해 사람들은 제 결핍과 욕망을 내어놓는다. 어쩌면 자기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쏟아내고 버리고 싶은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탱크를 선택했다. 어떤 이는 실제 종교시설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심리상담사를 찾거나 병원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점집을 찾을 것이고, 어떤 이는 친구나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탱크 데이에 이 책이 떠오른 걸 보면, 제목 때문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이비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의 문제로 탱크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탱크를 찾은 이들 중 왜 둡둡은 닉네임으로 나오는지, 둡둡은 죽는지, 성정체성은 어떤 경우라도 해결되지 못할 문제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믿음과 신념에 관한 문제 이 부분이 강한 건 여전하다. 그럴 것이라 예상한 듯 작가는 한국에 탱크의 시대를 만든 황영경이 손부경에게 하는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게 아니라 탱크를 믿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잘못된 숭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야. 너는 언젠가 사람들이 탱크를 신으로 모시게 될 거라고 했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탱크 안에 가만히 앉아 억만장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신자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때 난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도하는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너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부경아, 그거 아니.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거. 너는 삶을 방어하듯 살지. 늘 최악의 것을 먼저 상상하고 그래야 최악의 것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지.

 

  무엇이든 결국 선택한 자의 몫이라 이야기한다. ‘탱크또한 그러한 것이라면, 컨테이너 탱크는 계속 이어질까. 적어도 탱크를 찾는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들로 희망을 꿈꾸기도 하며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한 믿음을 품는 곳이라고 한다면 탱크 데이 스타벅스는 어떤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적어도 문화를 파는 공간이라는 스타벅스에 맞게 어떤 문화든 파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겠다. 저렴하고 몰염치한 문화도 수용되는 곳. 그것을 부추기는 곳이 한국형 스타벅스라는 것. 권력을 향한 풍자도 아니고 5.18이나 민주적 가치나 활동, 참혹한 참사에 대한 조롱을 당연시하는 마케팅. 그러한 행태가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결재라인을 거치는 동안 전혀 걸러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그 공간은 어떤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이런 일들은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이러한 행태를 해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제미를 느끼고 나아가 돈까지 번다니, 그치지 않을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소설 속 탱크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탱크 데이에 몰려드는 무리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행태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지속된 신념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지 탱크에 가두어 그들의 내면의 소리가 무엇을 뱉어내는지 듣고 싶, 아니 듣고 싶지는 않다. 뻔한 말같지 않은 말이 난립할 테니까.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그저 긍정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조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도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 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싶어 숨을 돌릴라 치면 무섭게 되돌아가는 어떤 힘이 있는 듯, 계속 제자리를 맴돌게 하는 나라다.

  여러 사건들로 단련된 민주시민들이 탱크를 뒤집고 단도리를 하는데도 조금만 숨을 돌리면 되돌아가고 무수한 탱크 데이가 생겨나 회의가 들라치면, 이처럼 불매운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을 방어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용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


소란한 속삭임, 예소연, 위즈덤하우스, 2025-02-26.

 

 

  인터넷 시대 별의별 사람의 이야기를 빠르게, 많이 접하게 된다. 세상에 그런 사람(사람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인간이라 칭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한)을 봤다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놀라면서 눈으로 훑게 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 소설을 보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이, 어떤 상황에 동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내게 그 일이 일어나는가 아닌가도 관건이지만 이처럼, 타인에게 쉬이 무엇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특히나 소설 속의 이유를 들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난 어떻게 행동하려나.

  마치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엮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하루하루를 보낸 일상인 것처럼 되어버린, 갈수록 세상에 대해 무감해지며 어떤 말도 표정도 짓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 같은 요즘의 삶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다시 연결을 꿈꾸고 있다. 타인을 힘들어하면서도 오히려 타인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 때문일지도.

  그리하여 만들어진 연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속 해방클럽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속삭이는 모임의 구성원이다. 그러니까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하는’, ‘서로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이 주요 활동인 모임. 급작스럽게 지하철에서 만나 만들어진 이 모임. 그러면 왜 속삭이는가.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속삭임의 힘은 있는 건가. 분명 모임의 몇몇은 속삭임이 주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믿는다.누군가를 설득하고 부드럽게 타이를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는 힘 같은 것.” 속삭이는 말의 힘을 믿으며 무엇이라도 속삭이지만 온갖 소리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당연처럼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말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보다 오래 전부터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고 금값이 비싸지고 있지만 웬걸, 한국 사회에서는 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세상이긴 하다. 그리하여 모아와 시내 두 명의 회원만이 있는 모임에는 속삭임만이 아니라 소란함도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50대 여성 '수자'. 이리하여 제목이 소란한 속삭임인가.

  궁극적으로 속삭이는 모임에서 이들은 무엇을 해방하고자 하는 걸까. 어떤 비밀을 속삭이고 싶은 건지, 결국 속삭이는 모임에 합류하게 된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인지, 당연하게도 각자가 가진 사연이 드러나고, 그 사연을 소란함으로 또는 속삭임으로 상쇄하고자 할 것이다. 다만, 홀로가 아닌 채로.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만큼 아픈 사람이 없다는 걸 모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모아는 시내와 수자, 자신 모두 마음 깊숙이 어디 한 군데가 단단이 틀어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감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어떤 모임이란 추구하는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나간다.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해도 그렇게 어느 한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은 소설에서 나타난 것처럼 서로가 가진 필요를 감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건 끼리끼리인가.

  짧은 소설 속에서 아래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남은 이유와 슬픔 그리고 못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때문에. 내게도 소란한 소삭임이 필요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만, 명동역 4번 출구를 지날 때면 이 모임을 떠올려보기는 할 듯하다.

 

'저는 슬퍼요.'

'왜요?'

'분명히 이유를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이유를 잃어버리고 슬픔만 남았어요.'

모아가 시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저는 반대예요. 슬픔은 잃어버리고 이유만 남았어요.'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자꾸 이유들만 머리에 남아서 악에 받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사의 정원바우어새


소설 보다 : 2025, 강보라, 성해나, 윤단, 문학과지성사, 2025-03-14.

 

 

  감사의 정원’. 실시간 검색어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바우어의 정원. 바우어의 정원은 따스하고 나른한 봄날의 정원을 떠오르게 했다. 모네가 그린 그림같은 프로방스의 어느 정원의 풍경을 떠올렸는데, 책을 읽고 각인된 건 새틴 바우어새였다.


  정원에서 연상된 기억으로 감사의 정원기사를 클릭했다가 다시 한번 이 새대가리를 떠올리는 아이러니. 새틴 바우어새(Satin Bowerbird)라는 이름은 (쓸데없이 정장을 갖춘) 젠틀한 새를 연상시킨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섬에서 서식하고 우리나라말로는 정자새라고 한다는데 이 새의 특징이 정원(Bower, 亭子)’을 만들기 때문이다.

  암컷새에게 구애하기 위해 수컷새가 타고난 외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탁월한 기술을 발휘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새틴 바우어새가 가진 기술은 집짓기로 한국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기술이다. 바우어새가 짓는 집은 새들이 일반적으로 짓는 둥지와 달리 크고 화려하고 정교하다. 집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란색 물건들로 정원을 꾸민다. 파란색 물건은 꽃이며 열매며 깃털이며 다른 종의 사체 등 자연에서 얻은 것 외에 인간이 만든 파란 플라스틱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바우어새의 종은 다양하여 파란 물건이 아니라 녹색이나 빨간색 등을 사용한다거나 집을 꾸미는 방식과 형태 또한 다양하다). 가히 탁월한 건축가요 인테리어 능력자라 할 수 있다.


[EBS 다큐프라임:천국의 새 2- 너에게 정원을 바친다]

 

  바우어새는 거대한 집을 짓고 갖가지 파란 것들로 장식하고 나면 온갖 기교를 부려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러나,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을 쪼며 괴롭히고 결국 내쫓는데 쫓겨난 암컷이 혼자 새끼를 기르든 말든 관심이 없다. 이미 짝짓기를 끝낸 후부터 새로운 암컷을 찾을 결심을 하고 제가 그토록 구애하며 매달린 암컷을 내쫓은 거니까. 이 바우어새는 그렇단다.


새틴 바우어가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장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던 내담자들. 그들은 오직 그 순간에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상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처럼.

 

[KBS동물티비 : 애니멀포유 animal4u_새틴바우어새의 비밀의 정원]


  그렇다. 나는 파랗고 쓸모없는 물건들로 공들여 정원을 상식하듯, 사람들 앞에서 고통의 파편을 훈장처럼 늘어놓은기괴한 바우어의 정원이 된 광화문 광장을 본다. 마치 수컷 새틴 바우어새가 지어놓은 바우어를 보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위한 구애인지 누구를 위한 구애인지 구애 자체에 매몰되어 버린, 어떤 종. 감사의 정원엔 6.25 참전국들의 공을 기리기 위한 석재 조형물이 늘어서 있다. ‘감사의 빛이라는데 기사에 나타난 대로 받들어 총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조형물. ‘감사의 빛인지 감사의 빚인지 감사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이 조형물과 정원은 새틴 바우어새가 매몰되어 지은 바우어 같지 않은가!


마지막에 좀 이상한 말을 했어요. 제가 겪은 건 유산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출산이라고. 자기가 유학한 프랑스에서는 다들 그렇게 표현한다고요. 제가 어리둥절해하니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데, 오디션 끝나고 그 몸짓이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왜 뒤늦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뭔가를 헐값에 팔아넘긴 기분이 드는 건지……

 

  받들어 총. 우리가 기억해야 할 6.25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마땅히 해야 할 감사가 왜곡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암컷 바우어에게 수컷 바우어가 지은 그 공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의 공간이자 범죄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여전하다. 어떤 이들의 결집은 억지스러운 말과 타인을 향한 비난과 험한 말을 쏟아붓는 것, 총칼을 받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지원하고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바래서는 안 될 텐데

 

혼모노, 성해나, 창비, 2025-03-28.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혼모노 열풍이 조금 비껴간 시점이었다. 난 소설보다는 외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 책의 인기는 높은지 알라딘 서점을 클릭하자마자 40만부 기념 양장판 출간 소식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전 책 표지의 빨간 사과는 핑크빛이 감도는 사과로 바뀌었다. 사과, 그래 사과가 문제인가. 뜬금 사과의 색이 저렇게 옅어지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학습된 힘인지 DNA에 새겨진 탓인지 일본스러운것들에 대해선 기껍거나 선뜻 순순하게 몸과 마음이 나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혼모노에는 일곱 편의 단편 중 표제작인혼모노가 소설에서 연상되는 색채와 그 제목으로 인해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이긴 했다.

  그리고 혼모노 속 역 근처 버거집을 지나다 질겁한다. 앞집 신애기가 창가 자리에 앉아 버거를 먹고 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어떤 날의 롯데리아보살집이 계속 머리를 점령했다. 그날의 일들은 지리멸렬하고 조각조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원히 조각만 드러나는 건 아닌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멍해질 때가 있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났나, 내가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거나 덮이는 것은 아닌가 싶은 날들이 흘러간다. 그러다 또 한번씩 터져 나오는 조각들에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딱지가 쌓이기만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소설 속 문장처럼.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렁인다.

 

  굳이 버거집 풍경을 상상하면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은데, 혼모노를 보면서도 그저 코미디 같기만 했고 무당 문수를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라거나 능력을 벗어난 것을 취하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행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두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에게 도취되고 있는 박수무당 문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한동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미 애매한 형태로 바라보게 된 것을.

  영험한 신이 떠나가 버린 무속인은 무속인인가. 박수무당 문수가 그냥 문수가 아니라 직업인 박수무당이라면 현재의 문수를 가여워할지언정 문수무당으로 찾을 일도 박수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당이라는 역할을 맡은 문수의 역할은 끝이다. 그러나 문수는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의한다. 미친 듯이 작두를 타며 자신에게 도취된 문수여, 왜 이전에는 그러하지 못했는가. 이것을 자각이라고 해야 할지, 광기라고 해야 할지 문수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어느 쪽으로 하고 싶은지 나 또한 어정쩡하다. 다만, 생각보다 벅찬 환희도 없고 문수에 대한 애정도 생기지 않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감정의 파고는 매우 덤덤하다.

  이미, 12.3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입되었기에 무속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없는 자의 망나니같은 마지막 몸짓, 자의식 과잉의 몸짓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나야말로 존나 흉내만 내는 놈’, 아니 존나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놈에 대해 조소하고 싶은데 실제 겪어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던 시절이 생각나 웃지도 못했다. 이제껏 가만히 있다 무당이라는 역할 측면에서 신기가 없는 문수가 신애기에게 경쟁의식과 질투를 느끼면서 비로소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 무언가를 어떤 형태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니. ‘진짜가 된다는 건 뭐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되는 것인지, ‘진짜는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간혹 어떤 이의 처절한 몸부림은 연민보다도 환멸을 더 느끼게 한다. 내게 박수무당문수는 환멸이었을까.

  얼른 환멸을 끝내고 싶다. 마음 속에 지속적인 환멸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한 일 아닌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리하여 누가 만들어낸 이 환멸이 얼른 명징하게 해소될 수 있기 위해선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흐르고 있는 그날의 진실이 명확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그 사실, 진실을 드러내는데 문수처럼 작두 위에서 버둥거리는 관련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 이들이 흘리는 저 가짜 피와 광기가 그들로 인해 피눈물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 무엇도 아닌 양 만들어버리려는 것이 단순히 화가 난다는 말로 멈춰지지 않는다. 꽃이 피고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맑다고 그날이 그 일들이 모두 빛바래지면 안되는데……. 빨간색이 분홍빛으로 변한 표지 혼모노를 보며 진짜진짜 그 생각만이 가득해지는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