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을 책임져라!

 

  

 서은국,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밤사이 몰아치는 빗소리에 ‘밖에 나갈 일만 없다면 집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참 좋다.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에서 비를 맞고 있다면, 비록 우산이 있다 하더라도 ‘아 집까지 언제 가, 짜증나’라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비와 빗소리에 느끼는 내 마음의 상대성에 다시 묻는다. 너는 지금 정말 행복하니?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p10

 

   그래.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사는 것,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망이다. 그런데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인간인데 이토록 행복감이 박복하다면 이론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행복한 인간만 살아남게 설계되어 있다면 결국 ‘행복’이라는 생존조건은 결과적으로 필연적이었던 건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조언이 정말로 참된 깨달음과 인생전환의 계기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흥’ 콧방귀 나게 하는 말이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하고 싶으냐고 화가 날 참이다. 하지만 ‘행복’에 관한 한 그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인식의 문제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역시나 그런 전개를 할려 치면 이따위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모르냐고?!라고 버럭 소리치고 책을 던져 버릴 참이었는데.........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p16

 

   시작부터 이러니 책을 던질 수가 없다. 고스란히 손에 들고 어떤 반전으로 향하는지 지켜봐야 했다.

   작가는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자연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생각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역시도 인간은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 추구라고 보았다. 오랫동안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는 철학자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저자는 행복 역시도 생존에 필요한 도구라고 말한다. 생명체의 존재는 생존이라는 점에서 보면 행복은 도구이며 단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경험해야 또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저자의 대학생들의 행복감에 대한 추적 연구 결과 약 3개월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이 반복·지속되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p115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인데 사람들은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고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 뒤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살면서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하며 이 행복의 ‘지속성’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인을 의식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더 행복의 기준이 ‘남’을 향해 있기도 하고 또한 즐거움과 쾌락에 대해 그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며 도덕적, 이상주의적, 철학적인 ‘행복’만을 쫓기도 하다.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p186

 

   잘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 또한 ‘생각’ ‘마음가짐’의 다른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어차피 삶에 대한 생각, 행복에 대한 기준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이다.

   중산층의 정의에 프랑스는 ①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②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을 것 ③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을 것 ④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⑤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 ⑥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이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기준이라 한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은 ①페어플레이를 할 것 ②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③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④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⑤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어떤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이 ①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②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③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④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직장인 대상 설문결과이긴 하지만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왔음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렇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왔기에 우린 스스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①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②월급여 500만원 이상 ③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④예금액 잔고 1 억원 이상 보유 ⑤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행복이 도구이자 수단이라면, 생존을 위한 도구인데 한국인의 도구는 어찌 보면 쉽게 이룰 수 있는 수단 아닌가? 이렇게 정확한 표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것을 행복을 유전자로 전수하는 한국인들은 언제쯤 참행복을 느끼는 유전자를 몸 속에 저장하고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프랑스보다, 미국보다, 영국보다 쉽게 수치화 할 수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 기가 막히다는 다른 말일 뿐.

   행복의 요인은 해도 적어도 절대적 불행의 요인이 제거된다면 행복에 대한 감흥은 달라질 수 있다. 심각하게 불행의 척도만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불행까지도 장려하는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한국인의 행복의 기원을 새로 쓰고 있다. 이런 ‘행복’만을 유전자에 새기는 한국인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할 뿐이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들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생각과 마음가짐을 달리 해서 만들어 가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이다. 이 책의 진화론적 설명을 빌자면, 그렇게 생각한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불행의 요인을 제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일이다. 잠재적 불행한 민족을 양성하지 않으려면......죽어라고 개인보고 변해야 한다고 할 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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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과 ‘자기 방어’에서 더 나아가


왜 아무도 성냥팔이 소녀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동화로 보는 심리학


류혜인, 이가서, 2013


  

  동화로 보는 심리학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많이 보아 온 동화에서 심리학 이론을 이끌어 낸다.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동화를 읽으며 자신의 전공을 적용시켰다. 한번쯤 의아하게 생각해 봤을 동화 속 궁금한 지점에 익숙하게 행하고 있는 ‘이론’으로 명명한 행동들이 나타나 있다.

  가령 백설 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라는 질문은 나쁜 일을 당하면서도 계속 낯선 이를 맞아들이는 백설 공주에게 갖게 되는 답답함 중 하나다. 나쁜 사람일지 모른다고, 제발 문을 닫고 열어 주지 말라고! 라고 외치지만 이미 백설 공주는 냉큼 달려 나와 기어이 낯선 이와 만나고 또다시 해를 입는다.

 이러한 백설 공주의 행동을 저자는 '접촉 위안‘이라 말한다. 인간은 신체적 접촉을 하면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피부에 있는 C-촉각 신경섬유가 신체접촉 시 가장 활성화되어 뇌에서 엔돌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안정되고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오두막에서 홀로 외로운 백설 공주는 낯선 이의 방문에서 이러한 접촉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로 유명한 해님 달님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왜 호랑이의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그것은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상대가 거절하지 못하는 작은 요구에서 시작해 점점 큰 부탁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역시 거절하지 못하는 전략이다. 

  성냥팔이 소녀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방관자 효과로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보게 되는 현상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적어지는 현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자. 한 아이가 벌거벗었다라고 외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두 임금님의 옷이 멋지다는 동조 현상을 보였다. 이 현상은 ‘인간의 옳게 행동하고 싶은 욕구’와 다수의 의견이 곧 하나의 압력이 되어 ‘집단 규범’으로 작용할 때 일어난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가진 정보가 부족하고 그래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 강하게 일어나게 된다. 후자는 그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소외당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온달이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피그말리온 효과로 설명한다. ‘믿는 대로 실현된다’ 이것이 피그말리온 또는 로젠탈 효과다.

  같이 밥먹기에 실패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보자. 여우는 왜 두루미에게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주었을까? 이것에 대해 저자는 여우가 단지 ‘착각’한 것이라 말한다. 바로 자신의 생각이 보편타당할 것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동하리라는 잘못된 믿음 ‘허구적 합의 효과’ 탓이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할 때 자기를 기준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부와 마신에서 마신은 자신을 구해준 어부를 죽이려 한다. 이것은 좌절-공격 가설로 설명한다. 자신이 예상치 못할 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부당하게 차단될 때 좌절감을 느껴 공격성을 나타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심리가 여기에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아, 지금 나는 방관자 효과’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야, ‘난 접촉 위안이 필요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때 그 행동들은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이란 행동이 일어난 이후의 결과에 대한 해석이고 어쩔 땐 변명같이 들리기도 한다. 심리학을 통해 어떤 행동을 예측해서 그 심리를 피해 갈 거야라고 할 일은 없으므로. 왜 아무도 성냥팔이 소녀를 도와주지 않냐고! 방관자 효과라서. 그때서야 ‘맞아, 맞아 그래서 그랬어’라며 우리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뒤늦은 안심을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동화속에서 이끌어낸 심리학이론이 낯설지 않은 건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이렇게 읽어 내는 심리학이 누군가에 대한 또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의 차원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 방어’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전개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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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날들에는...

    

 

 

『꿈의 해석』. 프로이트. 조대경 완역.

   

   꿈을 재생하려 할 때 우리는 느슨하게 연관된 꿈의 요소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즉 우리는 꿈에 결여된 논리적 연결의 과정을 삽입한다. 우리의 기억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유일한 길이 객관적인 확인이고 이러한 이 회상인 꿈에 관하여는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이 마당에서 우리는 꿈의 기억이라는 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자고 일어나 지난 꿈이 생각나지 않을 때 가끔은 답답함을 느낀다. 특히 무언가 나의 현재 생활에 암시를 주는 듯한 꿈이었다고 느껴지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아주 생생한 꿈이거나 혹은 가물가물한 꿈의 기억이거나, 어느 때라도 내가 꿈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꿈에 관한 인간의 무의식을 서술하는 프로이트의 저작이 흥미가 당기는 것은 이러한 평소의 생각들과 체험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당연히 왜 꿈을 꾸고서 이를 잊어버리는지 꿈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들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 제1장은 꿈에 관한 학술적인 문헌들에 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의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꿈에 관한 많은 다른 학자들의 의견과 이에 대한 비판들, 프로이트의 견해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기에 서장은 읽기에는 딱딱하였어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이 실제 꿈 해몽과 같은 착각으로 사례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를 통해 나의 지난 꿈들에 대한 해몽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물론 조금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오히려 학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은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이라는 실질적인 분석들이 전적으로 성적인 문제에서부터 해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느끼는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가지고 있는 생각 외의 꿈에 관한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통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나의 생각들에 대하여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무엇이든 대립된 의견이 있다는 것은 안다. 다만 이러한 상반된 의견 속에서 이론에 대한 근거와 논리를 알고 분명하게 접근하는 것이 짧은 나의 견해를 정리하는데 보다 큰 도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오랫동안 무의식적인 사고에 꿈의 분석에 관한 프로이트의 절대적인 견해가 세뇌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르게 생각해 보기 전부터 꿈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는 거의 지배적이었고 이것이 단순한 그의 견해이며 이론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 완전한 진실로 사실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비록 비판하는 능력이 크게 있지는 않지만 치우친 사고를 멀리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과 각각의 논지는 사고의 확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꿈에서의 도덕적인 부분에 대한 접목이 그러했다. 꿈과 도덕적 의식의 작용과는 무관하다는 의견도 타당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한 이에 대한 반대의 의견도 동조되는 부분이 있다. 어느 하나를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주장하기는 어려우나 꿈에 관한 한 도덕적인 부분의 작용에는 어느 정도 이들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보다 수긍이 간다.

   물론 이는 꿈의 기능일 수도 있고 지극히 도덕적 생활에 대한 각인에서 비롯된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속에 도덕적 생활이라는 부분에 대한 인식과 인지가 작용하는 한 인간은 이에서 벗어난 사고가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무언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 이는 꿈에서까지 이어지는 상황으로 이루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꿈과 심리적인 것의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면 인간이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온 의식은 꿈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꿈의 도덕성에 관한 의견의 대립을 넘어서 이 두 저자들은 부도덕한 꿈의 원천을 밝히려고 노력하며 이 원천을 정신생활의 기능에서 찾는가 신체적인 원인이 정신에 주는 해로운 영향에서 찾는가에 의하여 새로운 대립이 발전한다. 도덕성이 꿈으로 연장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꿈에 전적인 책임을 과하는 것은 유보하는데 그러나 사람들은 죄악스러운 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며 사람은 특히 수면 전의 마음을 정화할 의무가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념들의 출현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이러한 양립될 수 없는 도덕적 충동들은 눈을 떴을 때와 꿈을 꿀 때의 마음의 심리를 어떠한 결과로 이끄는가?

 

   꿈이 무엇인가, 꿈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한 이론들에서처럼 꿈이 가지고 있는 기능에서 논의하고 있듯 꿈과 심리적,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연결을 타당하게 본다. 결국 꿈이란 심리적인 부분의 정화작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일상의 생활 속에 꿈이 관여하고 있는 형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사고들, 내가 행한 행동들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꿈으로서 뱔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러하다. 내가 특정한 행동을 하고 거기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할 때 꿈은 나의 심리를 알고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꿈의 반영은 나의 도덕적 생활에 대한 더욱 강한 의무를 지우게 되고 이는 생활에 적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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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오제은 역, 학지사.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는 총4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놀라운 아이‘가 어떻게 하여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되는지, 또한 어린 시절 상처가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인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제2부에서는 인간의 성장발달단계에 따라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초기, 갓난아기, 유아기, 학령전 아동기, 학령기, 청소년기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성장하도록 돕는 교정훈련을 제시하고 연습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제4부에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치유를 통해 놀라운 아이로 변화되는 힘을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충족되었어야 할 의존적인 욕구들이 채워지지 못한 것을 당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유해한 결과들은 슬퍼했어야만 했던 것을 미처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해결된 채 남아 있는 욕구들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즉 표현되었어야 할 감정들이 한 번도 표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99


  저자는 1부에서는 개념을 설명하고 2부부터는 2인칭을 사용함으로써 바로 눈앞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인 당신을 치유하는 듯한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어떠한 상처가 내면에 남아 있는지를 이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거나 타인의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처받은 내면 아이에 대한 이해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각 장마다 설문지, 선언문 등을 첨부하고 실제 작업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인아이가 그들의 진짜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은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이것은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독서하고,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거소가 관련된다. p109


     우리가 ‘머리에 머무른다는 것’은 일종의 ‘자아방어기제’이다. 사람은 대상에 집착함으로써(뭔가를 강박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느낄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느낀다는 것은, 상처받은 아이의 수치심 중독 속에 갇혀 있는 얼어붙은 거대한 감정의 저장고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당신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우하기 원한다면, 근본적인 고통을 다루는 ‘실제적인 작업’을 해야만 한다.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다. p110


  2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술된 장과 3장의 초기 고통치료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읽었다.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중요함을 저자는 강조하면서 인지적인 중독이 감정을 회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성인아이가 그들의 진짜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은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라 말하며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독서하고,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과 관련된다며 두 개의 문을 가진 방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각 문마다 그 위에 표시가 있다. 한쪽 방에는 ‘천국’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방에는 ‘천국에 대한 강의’라고 써있다. 대부분의 상호의존적인 성인아이들은 ‘천국에 대한 강의’라고 쓰인 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고에 머물러 감정을 분출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여러 문제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당연, 저자의 의견에 동조한다. 다만, 사고중심주자로서 이 머리만 머무른다는 것의 장점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머리에 머무른다는 것이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것도 아니라는 점도. 그 둘은 결국 같이 이어지는 경험을 주로 하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 스스로가 내면의 아이를 돌보고, 변화시키고, 또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 저자가 서문에서 내세운 바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을 통해 상처받은 아이를 치유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보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시선이 더 많이 갔다. 이 책은 부모의 양육방법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점철되며 부모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아이들이 받게 되는 상처는 모두 부모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양육방식과 훈련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저자의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은 일단 보다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묵상의 형태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여 상처받은 아이를 찾아내고 그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거나 그 아이로 하여금 그때의 감정을 풀어내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신생아 때의 기억에 대해서 정말로 그 시기 아이들의 기억이 남아 있을까. 적어도 돌 이상의 경우는 조금 수긍이 가지만 신생아인 아이가 상처받은 경험을 지속하여 가지고 있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수록 의문이 든다. 그래서 이것은 오히려 아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모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아이에 대해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든 생각은 이것은 마치 가족치료처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관심가지고 잇는 것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으면서 부모의 양육방식과 훈련에 관한 것도 저자가 언급하고 있긴 하다.

  책을 덮고 난 느낌은 영적인 것. 그리고 명상을 접목한 저자의 치유 방식이다. 명상의 기능을 알긴 하지만, 교과서적인 교재의 느낌에서 목회적인 책으로의 전환됨이 이 책이 가진 느낌을 상쇄시켜주는 점이 아쉬웠다. 종교적인 색채가 전면에 내세워졌던 책이라면 오히려 기꺼이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의 치달음은 뜨악하게 했다는 점이 있다. 어쩌면 종교적인, 딱히 기독교적이지 않은 듯한, 그러한 색깔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들을 좀 더 잘 버무렸어야 할 것이라고, 차라리 그러한 관점임을 표면적으로 밝히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의 여러 가지 전공들 또한 보다 더 정교하게 버무려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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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감정

 

- 우리는 왜 슬프고 기쁘고 사랑하고 분노하는가

최현석 저, 서해문집, 2011.


  최현석을 인터넷에 검색하니 최근 핫한 사람의 이름이 먼저 올라와 있다. 셰프. 요즘은 먹는 것, 요리하는 프로가 대세다. 인간의 삶에서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 이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요리프로마다 먹는 음식의 맛을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 역시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에 대한 책을 이는 요리사가 아닌 의사 최현석이다. 최현석 의사는 내과 전공이며 자신의 직업의 전문적인 영역을 바탕으로 한 분야의 책을 많이 발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인간 개념어 사전'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총망라한 과학적인 사실을 이야기한다. 총망라한 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 분노, 슬픔, 기쁨, 좋음, 싫음, 공감이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각되는지를 과학적인 방법에 입각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의사라는 점이 이를 설명하는데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인 지식의 전달로 그치지 않는다. 감정에 관한 뇌 과학적 연구와 감정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모두 담겨 있다. 인간의 '기본 감정'과 '보편 감정'의 개념, 각 개별 감정들의 원인과 기능, 신경계 메커니즘,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된 병증 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의 감정들의 모든 모습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감정이란 개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이지만, 옆 사람들에게 퍼지는 전염성이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웃으면 웃을 만한 이유가 없어도 웃게 되고, 상대방이 화내면 자기도 화가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에서 누군가가 웃거나 즐거운 상황이 아니라 화를 내는, 분노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 영향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분노’가 사회계층의 불평등으로 느껴질 경우에는 집단의 힘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경우엔 이것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혹독한 체험을 통해서 나는 분노를 모아 두는 한 가지 숭고한 교훈을 터득했다. 마치 보존된 열이 에너지를 내놓듯이 우리의 분노도 다스려지기만 한다면 세계를 움직일 힘을 쏟아 낼 수 있다는 교훈이다.”

  감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곁든 책인데 어렵지 않게 서술된다. 서술톤이 조용하고 부드럽다. 다만, 극적인 힘은 약하다. 설명적 서술과 곁들여 감정에 대해 우리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겪게 되는 감정에 대해 아, 그때 그것이 그런 형태였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이 책이 개념어 사전인 결과이긴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좀더 깊은, 격정적인 감정에 대한 서술의 갈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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