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개청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첫 발령을 받고 예전 블로그에 끄적이던 글을 모아놓으면 바로 이런 책이 되겠다 싶었다. 빠른 82년생이라는 저자는 언론고시에 여러 번 낙방하고 생각지도 않던 행정직 사무원이 된다. 비교적 직업 선택이 수월했던 시대를 거쳐 온 상사가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이라며 발끈한다. 하긴 그렇다. 저자나 나나 꿈나무란 말을 듣고 자란 세대이지만 지금은 이태백이니, 88만원 세대니, 초라한 이름만 따라붙는다.

  기성세대처럼 집단에 완벽히 순응하지도 못하고, G세대라는 신세대들만큼 열린 사고를 갖지도 못한 그냥 80년도 언저리의 세대들은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몰아가고 있는가, 꿍얼거리면서 소심한 반항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꿍얼거림을 엮은 책이다. 자나 깨나 헌신적인 부모님, 해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하느니 안정된 직장에 안착하는 현실, 셰익스피어도 읽었고 푸코도 아는데 날마다 문서 폰트에나 신경 써야 하는 절망감, 매번 잘 짜인 쇼 같은 회식 자리, 결혼이라는 변혁기에 대처하는 자세 등 비슷한 세대로서, 여성으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책을 참 쉽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음, 그렇군,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책이라는 말이다. 서평단 도서로 앞서 받아보았던 책들도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본인의 삶에 대해, 일상에 대해, 신이 나서 한껏 들뜬 어조로 썰을 풀고 있는데 나로서는 그 시간에『프랭클린 자서전』이나 『월든』같은 좋은 책을 한 번 더 읽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 왜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은가, 사무실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바람 등에 대해서도 쓰고 있는데 그런 글은 사적인 블로그의 카테고리 안에서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며칠 이런 책들을 붙들고 있다 보면 묵직한 드라마가 살아 숨 쉬는 잘 쓴 소설, 진짜 문학이 그리워진다. 이 책의 집필의도가 ‘회사 가기 싫어’라니 나도 가기 싫긴 하지만 더 이상 무슨 평을 해야 하나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SHIN 2010-03-0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님 안녕-!
난, 이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드는데요? ^^
책 구경하러 가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얼굴 좀 자주 비쳐봐요~

깐따삐야 2010-03-05 11:1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공감도 되고 재미없지는 않은데 두번 읽을 책은 아니란 생각이었어요.
요즘 몸이 무겁다 보니 마음도 같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말이죠.-_-;
 
<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예쁜 책이다. 날로 진화하는 카메라 덕분에 추억의 한 컷을 저장하기 쉬워진 요즘, 누구나 한 번 쯤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작가는 주변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소소한 사물에 얽힌 추억을 사진과 글로 되살려 놓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당신에게는 어떤 추억이 있나요?

잘 찾아보면, 잘 살펴보면

누구에게나 돋보이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안에 있는 돋보기를 제대로 사용하면

더 좋게 돋보이는 세상이 조금은 더 우리에게 가까워지지 않을까? (p.238)

  아무렇지도 않은 사물에 카메라 렌즈를 갖다 대는 순간, 그것은 추억으로 남는 동시에 때로는 나만의 작품이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사소한 발견’은 내 안의 돋보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외칠 수 있는 유레카인 셈이다. 



  사진 속 연인은 젊은 시절의 아빠와 엄마다. 아빠의 머리숱은 저 시절 같지 않고 엄마의 뽀얗던 피부엔 주름이 늘었지만 삼십년이 넘는 긴 세월에도 두 분의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다. 세월이 마모시킨 외모와는 상관없이 아빠의 선함과 엄마의 총명함, 그 변치 않는 기질 때문이리라 본다.

  결혼할 때 저 사진을 갖고 왔다. 아빠와 엄마가 그나마 가장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를 죽자 사자 쫓아다니던 아빠에게 불만이 많아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 계시지만 인연을 피해가실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오빠와 내가 세상 구경을 할 수 있게 해준 분들, 나의 사랑하는 아빠, 엄마.

  작가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라든가, 나의 어린 시절을 오래도록 잊고 지냈다는 생각을 했다. 늘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정작 참 좋았던 그 시절을 잊고 살았다. 오빠와 나는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 무언가 잘해서 받아오는 상장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고 부모님은 그 힘으로 고단한 삶을 버텨내셨다. 다 자란 성인이 된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께 딱히 해드릴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품안의 자식이란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일까.

  요즘 먹은 것, 입은 것,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사진 블로거들이 많아졌는데 이 책은 허영이라는 거품을 뺀 담백한 서정시 같은 사진첩이자 추억의 몽타주다. 단추나 클립 같은 사소한 사물들도 바라보는 자의 심상에 따라 얼마나 돋보일 수 있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착한 책. 그러한 시선 아래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특히 사진 찍기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들, 커피 한 잔 하면서 한 두 페이지 짬짬이 독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0-02-1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저곳 혹은 이 사람 저 사람 사진은 뻔질나게 찍어도 정작 내 부모님이나 가족들 사진은 많이 못 찍었어요. 아무리 마음먹고 찍을려고 해도 셔터누르는 횟수가 늘지 않네요.


그리고 요즘은 디카로 찍고 시디나 하드에 저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역시 사진은 앨범에 넣어놓고 넘겨보는 맛이 있어야 .. ^^


깐따삐야 2010-02-22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제 사진이나 가족들 사진은 예전 앨범에서나 찾을 수 있고.

오래 전, 포켓식이나 접착식 앨범 보면 추억이 모락모락 떠오르죠.^^

웽스북스 2010-02-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롤랑바르트가 엄마사진에 대한 푼크툼을 이야기하던 것이
깐따삐야님의 글과 사진을 보니 생각나요.

저도이책 읽으려고 챙겨놓았다는 ㅋㅋ

깐따삐야 2010-02-22 09:14   좋아요 0 | URL
푼크툼이 뭔가 찾아봤어요. 젊은 날의 부모님 사진에서 저와 오빠의 모습을 겹쳐 보기도 해요.

짬짬이 부담없이 읽으면 좋을 책.^^

newstar 2010-02-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리뷰를 보니, 책이 보고 싶어 지네요~
알라딘 경제경영분야 서평단에 있습니다. 서평단이 끝난후 책을 교환해서 보면 어떨까 하는데... 이 분야에도 관심이 있다면, 차후에 원하는 책과 함께 교환해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독서 되시길~

깐따삐야 2010-03-03 11:49   좋아요 0 | URL
여백이 많아 머리 식힐 겸 차 한잔 하면서 보면 좋을 책이에요.
저는 경제경영 분야라면 거의 까막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알아야 하긴 하는데 말이죠.-_-a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아내 생각이 나면 나는 새벽에 거리로 나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가 않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 거리. 바람도, 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 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새벽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내를 느낀다. (p.191)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남자가 있다. 직업은 남의 인생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남자는 낯선 의뢰인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활자화하고 이따금 동네에서 마주치는 죽은 자들의 인생에 대해서도 상상한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써내려가는 일기장 같은 이 소설은 죽은 아내에게 ‘나 이렇게 살고 있어.’ 라고 말을 거는 고백록 같다. 무명 대필 작가의 사무실 책꽂이 한켠, 묵묵히 꽂혀 있을 것 같은 처연한 일기장.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그 심상을 담담히 읊조리는 이 작품은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에 등장했던 젊은이들의 중년을 보는 것 같다. 자의식 강했던 달변의 청춘들은 사회에 발을 딛고,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혼자 밥을 먹고, 적막한 새벽 거리를 홀로 걷는다. 더 이상 누구와도 싸울 필요 없이 잔잔한 그리움만 남은 삶. 천진한 소녀 같기도 하고 세월을 헤아리는 노파 같기도 했던 아내는 현생을 떠나서도 남자의 삶에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은 따뜻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또한 모든 것을 비우고 쓴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기다란 기차 안에 혼자 탄 승객 같기도 하고 조금씩 흔들리는 다리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여행객 같기도 하다. 다가가 말을 걸고 싶다. 내치지 않을 것 같다. 태양계 안에서 가장 맛있다는 영주 막걸리든, 편의점에서 파는 소주든, 마주 앉아 술 한 잔 하고 싶다. 그는 소설 속 대필 작가 마냥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고 나는 사소한 것 하나 갈음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낼 것 같다. 그가 이튿날 필름이 끊겨 나를 잠시 마주쳤던 죽은 여자라고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을 쓰리라, 는 결의에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말이 없던 남자가 어깨와 아귀힘을 빼고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뒷모습을 드러내 보인 작품이란 느낌이다. 청승맞지 않은 고백, 침울하지 않은 우울이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마음 풍경과 도시 풍경이 담담히,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련한 온기를 뿜어낸다. 윤대녕만큼 세련된 멜랑콜리는 아니지만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와도 같은 이 소설에서 그 이상의 진솔함을 보았다. 정갈하고 진지한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ainy 2010-02-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 얻어갑니다~ 정갈하고 진지한 소설을 기다리는 1인 ^^

깐따삐야 2010-02-16 16:3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rainy님.^^

L.SHIN 2010-02-1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가 않다"

저는 그 반대의 경우는 있어봤어요. '마음은 슬프지 않은데 쓸쓸하다' 같은..^^;

깐따삐야 2010-02-16 16:36   좋아요 0 | URL
저도요. 슬프지는 않은데 쓸쓸한. 슬픈데 쓸쓸하지 않은 것보다 훠얼씬 더 춥춥한 느낌이요.^^;
 
<남자는 초콜릿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부 때 우리 과에 편입해 온 언니 중에 소위 연애박사 언니가 있었다. 어디 하나 또렷하게 생긴 데가 없을 만큼 타고난 외모는 별로인데 후천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공들인 덕분에 자기만의 아우라를 지니게 된 케이스, 그런 사람이었다. 다 함께 근교 계곡으로 MT를 갔던 날 밤, 언니는 대개 연애 경험이 미천하기 짝이 없던 우리 동기들을 모아놓고 사랑과 연애에 대한 본격 멘토링에 들어갔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자는 초콜릿이다』처럼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몇몇 사례 분석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현실에는 무지한 채 연애를 향한 환상 또는 망상만 키우고 있던 나로서는 오감을 바짝 집중한 채 재미나게 경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조그만 열쇠고리 하나를 보여주며 바로 이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사진 속 남자는 연하의 영국인이었고 조만간 함께 영국으로 떠나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니는 그 남자가 자기가 찾던 이상형과 가장 부합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바글바글 넘쳐나는 순수 토종 한국인과의 연애도 버겁기만 했던 나로서는 그 언니를 벌써 외국인이라도 된 것처럼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잠깐 동안 그 언니를 떠올렸다. 항상 빈틈없는 메이크업에 치마를 즐겨 입던 언니는 정박미경이라는 이 책의 저자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인 것 같지만 연애를 통한 진화를 믿는다는 점에서 중첩되는 면이 있다. 그 아무리 어리석고 지질한 연애일지언정 버릴 것이 없다는 면학의 자세. 물론 숱한 언니들의 단내 나는 멘토링에도 불구하고 이십대 전반을 멍청한 연애질에 소모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연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똑똑한 여자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사이클을 반복하거나 작용, 반작용의 원리마냥 역으로 방향만 트는, 좀 모자란 연애군에 속하는 사람 말이다. 어렸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간신히 용서하긴 했지만 그렇듯 전략은 없고 감정만 있는 연애란 들어오는 패에 상관없이 파투나기 십상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더욱이 한 가닥씩 한다는 연애타짜들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참 겁도 없는 하룻강아지였던 셈.

  이 책에는 그러한 끗발 좋은 연애타짜를 비롯하여 들어온 패가 빤히 읽히는 연애초짜의 케이스까지 일곱 가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본인의 처녀성에 회의하는 여자, 남성 혐오증 여자, 연하남에 꽂히는 여자, 네 다리를 걸치고 있는 팜므 파탈, 애인에게서 가족성을 추구하는 여자, 남자에게 구원의 존재가 되고픈 여자, 권력 있는 남자에게 끌리는 현대판 카미유 클로델...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연애 케이스를 통해 당사자인 남녀의 심리와 사회학적 구도까지 들여다본다. 확대경 같은 세심한 성찰에 뜨끔 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터.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이 시대에 비혼의 삼십대 여성이란 고달프지만 당당한데 상대 남자들은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왜 하나 같이 이기적이거나 비겁한 존재들로 그려지고 있는지 웃음이 난다. 세월을 먹는 동안 남자들의 구리고 후진 면을 너무 많이 간파했기 때문일까. ‘똑똑한 여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가 마치 이 책의 소제목 같다.

  나는 성찰은커녕 성질만 남은 연애에 질리거나 지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착했지만 미혼이거나 비혼인 여성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 사례나 충고들이 다소 식상하다 할지라도 좀 더 많이 살고 연애도 해볼 만큼 해본 언니의 명징한 경고로 의미 있게 와 닿을 것 같다. 기왕 연애하는 것, 좀 잘해보자는 것이다. 피투성이, 혹은 흙투성이가 된다 해도 연애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리며 사나이 갈 길 방해하는 이다해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그 귀찮은 손 놓지 않는 오지호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촌각을 다투는 대업을 앞두고도 키스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그 징글맞은 로맨틱함이라니. 이 책을 통해 그 눈 뜨고는 못 볼 로맨틱함 이면에 연애의 어떤 얼굴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도 가치 있으리라 본다. 타고난 기질 상 이 책 한권으로 연애타짜까지는 못되더라도 연애하지 말 걸 그랬어~ 괜히 연애했어~ 칭얼대는 일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천년의 사랑』이나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운명적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붐이 잠시 사그라진다 해도 운명적 사랑은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우려먹는 이야깃거리임이 분명하다. 얼마간의 편차가 있다 한들 독자들에게 꾸준히 먹히는 것을 보면 운명적 사랑이란 누구나의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로망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혹자는 말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상대에게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像)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결핍된 모정이나 부정의 발로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듯 심리적 추론을 할 틈도 없이, 설사 애정에 굶주린 어린 내 모습을 마주하는 안쓰럽고 부끄러운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불가피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니 운명 아니겠는가.

『4월의 물고기』역시 운명적 사랑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다. 처음에는 소녀취향을 채 못 벗어난 요가 강사와 겉멋 든 사진작가의 그저 그런 로맨스이려니 했다. 나는 벌써 노회한 것일까. 이렇듯 신파스런 주인공들을 만나면 공감의 맥이 툭, 툭, 끊어지며 공중 부양하는 가오나시나 좀비를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작가에게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보였다. 상투적인 대사와 과잉 연민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시의 적절하게 배치해놓은 추리 장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차 읽어나가는 동안, 그 감성에 있어선 차마 신경숙을 따를 수 없고 추리기법은 정이현의 솜씨에 한창 못 미친다는 느낌.

  주인공 진서인과 강선우의 운명적 사랑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는 교착점이 있다. 어머니를 잃고 성폭행을 당한 상처가 있는 진서인과 쌍둥이 여동생이 죽고 나서 성격 장애를 앓게 된 강선우. 강선우는 진서인에게서 죽은 여동생의 환영을 보고 진서인은 사랑에 홀려 떠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강선우에게 빠져 든다. 진서인에게는 할머니가 있었고 강선우에게는 신부님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기억과 내상을 온전히 치유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상대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던 반쪽짜리 사랑에서 점점 비밀에 싸인 베일이 벗겨지며 두 사람은 각자의 감춰진 진실을 보게 된다. 마치 몹쓸 어른들로부터 방치되고 버림받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소년과 소녀로 돌아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운명적 인연을 통과하며 강선우와 진서인은 스스로의 진짜 얼굴을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왜『폭풍의 언덕』에는 열광하면서 이 소설에는 마음을 줄 수 없는가, 생각했다. 어차피 허구이며 창작인 것이 소설이기에 작위가 작위인 것을 모르면 상관이 없다. 독자가 미처 느낄 수 없거나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작가의 수완이자 능력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소설엔 작위적 연민만 넘쳐날 뿐 마음을 덥혀 오는 진솔한 감동이 없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야 말고, 사랑할 사람은 사랑하고야 만다는,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지고지순한 명제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젊은 연인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던가.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젊은 연인들에게 피천득의 『인연』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내게는 끈적거리는 이 긴 소설보다 담백한 저 한 줄의 문장이 몇 배의 지고지순함으로 다가온다. 『4월의 물고기』는 안타깝게도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가독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10-02-0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실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너무 좋아해요.

결혼을 못하는 두번째 이유쯤 되려나 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10-02-03 15:4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영화 좋아해요. 영화 속 이은주가 참 예뻤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후광이 비치고 종소리가 들리고... 꼭 그런 것만이 운명은 아닐 거에요. 웬디양님의 반쪽은 웬디양님처럼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웬디양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